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96화 (96/308)

[96]

최강철은 링의 중앙에 서서 승리의 포효를 터뜨렸다.

관중들은 그런 최강철의 별명인 허리케인을 끊임없이 외쳤는데 한쪽에서는 쓰러진 프레드 아두를 돌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다행이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그가 머리를 흔들며 캔버스에서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레프리의 경기가 끝났다는 사인과 동시에 윤성호와 이성일이 달려 나오며 그를 향해 돌진해 왔다.

윤성호는 얼마나 기쁜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강철아, 이 자식아. 장하다. 장해!”

“관장님, 고생하셨습니다.”

최강철이 웃으며 말하자 윤성호가 그를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

문제는 이성일이었다.

이 자식은 미친놈처럼 자신의 가랑이 사이로 머리를 들이밀려는 중이었다.

“야, 야. 잠깐만. 트렁크 좀 내리고!”

“괜찮아, 이 자식아. 지금 그럴 새가 어디 있어!”

“아프다고.”

“안 아프게 조심할게. 네놈 물건을 설마 내가 잡아 뜯기야 하겠냐?”

조심한다던 놈의 말은 거짓이다.

무작정 대가리를 처박았기 때문에 트렁크를 정리할 시간도 주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저번처럼 트렁크가 뒤로 밀려서 물건이 아프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성일은 최강철을 목말 태우고 미친놈처럼 사각의 링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좋다, 지금의 이 순간이. 나는 너무도 좋다.

“강철아, 조심해! 그렇지. 피해, 피해!”

최강희와 최강숙이 시합을 보면서 정신없이 소리를 질렀다.

다른 가족들은 말조차 제대로 못 하고 텔레비전에 시선만 고정하고 있었으나 그녀들은 마치 중계방송하듯 마구 떠들며 온몸을 흔들어댔다.

그러던 한순간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하던 최강철의 주먹에 프레드 아두가 풀썩 캔버스에 길게 쓰러지자 그토록 떠들어대던 그녀들의 목소리가 동시에 닫혔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놀람은 사람의 입을 틀어막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들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녀들의 비명에 맞춰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모든 동이 갑자기 한꺼번에 들썩거렸다.

집에서 최강철의 시합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동시에 소리를 질렀기 때문인데 지진이 난 것처럼 아파트가 흔들릴 지경이었다.

최우용은 주먹을 불끈 쥔 채 아들의 경기를 보다가 프레드 아두가 기어코 바닥에 쓰러지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만세를 불렀다.

가장 격렬한 반응을 보인 건 류순덕이었다.

그녀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계속 뭔가를 중얼거리며 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아들이 상대를 쓰러뜨리자 두 팔을 번쩍 들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손뼉을 마구 쳐댔다.

그 모습이 꼭 정신을 잃은 사람처럼 보였다.

모든 가족이 최우용과 류순덕을 따라 일어나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는데 손자 놈들이 뛰어다니며 좋아했기 때문에 거실이 온통 난장판으로 변했다.

“만세, 강철이가 이겼다! 만세!”

서로를 끌어안고 기쁨에 겨워 전부 소리를 질렀다.

“아버지, 강철이가 이겼어요… 강철이가……!”

“그래, 우리 아들 장허다, 장혀. 아이고…….”

한참을 웃음으로 아들의 승리를 기뻐하던 최우용의 눈이 붉게 물들더니 눈물이 줄줄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아들이 세계 챔피언에 등극했다는 감격은 그에게 기쁨의 눈물을 쏟아내게 만들기 충분했다.

* * *

장내가 정리되고 레프리가 최강철의 승리를 선언한 후 아나운서가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의 눈은 최강철에게서 떨어지지 못했는데 감탄의 기색이 역력히 서려 있었다.

“허리케인, 승리를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번 경기는 허리케인이 지금까지 펼쳐온 시합과 확연히 달랐습니다. 정말 대단한 인파이팅이었는데 미리 준비한 것인가요?”

“그렇습니다. 프레디 아두 선수가 워낙 강한 인파이터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 준비한 것입니다.”

“이제 IBF 챔피언에 오르셨는데요. 장래 계획은 무엇입니까?”

“조만간 저는 WBA나 WBC쪽에 통합 타이틀전을 요구할 계획입니다. 그런 후 저분과 타이틀전을 놓고 경기를 하고 싶습니다.”

최강철이 손으로 VIP석을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건 복싱계에서 불세출의 영웅이라 불리는 슈가레이 레너드가 앉아 있는 자리였다.

레너드는 최강철이 자신을 가리키자 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아나운서께 잠깐 부탁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지금 레너드가 웃고 있는데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아… 그게. 알았습니다.”

최강철의 말에 잠시 망설이던 장내 아나운서가 IBF 회장인 로버트의 고갯짓을 확인한 후 진행 요원들에게 마이크를 가져다주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냥 넘길 수 없는 일이었다.

최강철의 요청에 관중들 속에서 소란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열화와 같은 반응.

그들은 최강철과 레너드가 대화하는 걸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이윽고 레너드의 손에 마이크가 쥐여지자 최강철이 그를 향해 푸른 시선을 던지며 입을 던졌다.

“레너드, 오늘 내 시합이 어땠습니까?”

“아주 훌륭하더군. 경이적인 경기였어.”

“당신과 내가 붙으면 어떨 것 같습니까. 나랑 한번 싸워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던가요?”

“싸우고 싶네. 자네의 경기를 보면서 피가 들끓었어. 하지만 아직 나한테는 안 돼!”

“뭐가 안 된다는 말입니까. 레너드, 나는 당신이 은퇴한 이유가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내 꿈은 당신과 시합을 하는 거였는데 너무 아쉽군요. 지금이라도 복귀하실 생각이 없습니까?”

“푸하하… 생각해 보지.”

“조만간 결정해서 통보해 주시길 바랍니다. 시간이 흐르게 되면 당신이 나한테 싸워달라고 애원할 수도 있을 테니 말입니다.”

“그럴 리는 없어. 나는 지금까지 누구한테도 애원한 적이 없다.”

“어쨌든 한번 붙읍시다. 여기 있는 모든분들이 당신과 나의 시합을 원하고 있지 않습니까?”

“조금만 더 쉬고 생각해 보지. 가족들하고 쉬는 게 너무 좋거든. 하지만 오래 쉬다 보면 노는 게 싫어질 수도 있겠지. 그때 네가 통합 타이틀 챔피언에 올라 있다면 붙어주마.”

“알겠습니다. 당신을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모든 타이틀을 가져오겠습니다. 나는 당신을 영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약속을 꼭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 * *

스포츠뉴스의 PD 사창환은 부랴부랴 갑자기 복싱 전문가들을 초빙하느라 하루 종일 정신이 없었다.

윗선이 최강철에 관한 특집을 마련해서 오늘 중으로 방송하라는 오더를 내렸기 때문이다.

일요일에 쉬다가 날벼락을 맞았다.

무슨 프로그램을 반나절 만에 준비하란 말인가.

그럼에도 까라면 까야 한다.

복싱 중계와 프로그램을 전담하던 이종엽과 윤근모는 지금 미국에 있었기 때문에 급히 대타로 농구를 전담하는 캐스터 금상호를 불러냈고 복싱 전문가 정복기를 간신히 수배해서 스튜디오로 나오게 만들었다.

진짜 자다가 콩을 볶아 먹을 정도로 미쳐서 날뛰었다.

오후 3시.

불려 나온 농구 캐스터 금상호가 인상을 북북 긁으며 거칠게 물어왔다.

신경질이 가득 담긴 얼굴이었다.

하긴 그럴 만도 하다. 농구가 아니라 복싱에 대해서 진행을 맡아달라고 했으니 그로서는 황당한 일이었을 것이다.

“뭡니까, 이게?”

“최강철이 오늘 사고를 쳤잖아요. 위에서 지금 난리가 아닙니다. 국민들 관심이 너무 뜨거워서 그냥 넘길 수 없었던 모양이에요.”

“그래서요?”

“혹시 오늘 경기 보셨습니까?”

“봤습니다.”

“아이고, 다행입니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일단 이것부터 읽어보십시오. 최강철에 관련된 자료하고 슈가레이 레너드 관련 자료가 같이 담겨 있으니까 참고하시고요. 이건 오늘 진행할 대본입니다.”

“하아, 환장하겠군. 일단 주세요. 내가 다행히 복싱을 좋아하니까 웬만큼 진행은 가능할 겁니다.”

“고맙습니다. 조금 있으면 정복기 씨가 나올 테니 그때 녹화를 시작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PD 사창환이 자료 화면을 준비하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동안 복싱 전문가 정복기가 나타났다.

그 역시 급하게 달려왔기 때문인지 얼굴이 땀투성이였지만 사창환이 자료를 주자 금방 안색을 회복하고 대본을 읽어나갔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는 워낙 복싱계에 대해서 빠삭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대본을 주욱 읽어보기만 한 후 스튜디오에 앉았다.

금상호의 오프닝 멘트는 땀으로 범벅이 된 사창환이 녹화를 알리는 신호를 보내면서 시작되었다.

“전국에 계신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IBF 세계 챔피언을 획득한 최강철 선수에 대해서 특집 방송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오늘 스튜디오에는 복싱 전문가 정복기 씨가 나와 계십니다. 안녕하십니까?”

“예, 안녕하세요. 정복기입니다.”

“오늘 최강철 선수의 경기가 정말 대단했습니다. 완전히 압도적인 경기를 펼쳤는데 정 위원님은 어떻게 보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오늘 벌어진 경기는 최강철 선수의 시합 중에서도 단연 압권이었습니다. 시합을 하기 전 전문가들은 최강철 선수가 아웃복싱을 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전혀 다른 결과가 펼쳐졌죠. 마치 정교한 단거리 미사일이 한꺼번에 터지는 것처럼 완벽하고도 화려한 공격력을 보여주었는데 챔피언인 프레드 아두가 꼼짝을 하지 못했습니다.”

“프레드 아두는 대단한 인파이터로 정평이 나 있잖습니까. 현재 IBF 챔피언들 중에서 유일하게 WBA나 WBC 챔피언들과 비슷한 수준을 지닌 강력한 챔피언으로 알려졌는데 무기력하게 무너졌습니다. 이유가 있을까요?”

“최강철 선수의 스태프 쪽에서 완벽한 작전을 짜 왔기 때문입니다. 프레드 아두의 펀치가 크다는 것을 간파한 것이지요. 더군다나 최강철 선수의 펀치 스피드가 워낙 빨라서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한 게 원인입니다.”

“그럼 자료 화면을 보면서 천천히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생명은 시각적인 효과다.

아무리 심층적인 분석이 이어진다 해도 계속해서 말반 반복하면 시청자들은 금방 질리게 되기 때문에 자료 화면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그랬기에 사창환은 오늘 벌어진 하이라이트 장면을 틀어주고 두 사람이 알아서 지껄이게 내버려 두었다.

어차피 시청자들은 강렬했던 최강철의 경기 장면에 눈이 팔려 두 사람이 떠드는 소리를 제대로 듣지 않을 것이다.

금상호와 정복기는 대본에 따라 한동안 두 선수의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에 담겨 있는 질문이었다.

“지금까지 최강철 선수의 주요 기술들에 대해서 분석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럼 다음은 경기가 끝난 후 커다란 화제를 몰고 온 레너드와의 대화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시죠. 정 위원님, 레너드가 오랜만에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는데요. 얼굴은 현역 때나 다름없어 보였죠?”

“그렇습니다. 은퇴한 지 이제 4개월밖에 지나지 않아서 그런가, 예전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더군요.”

“최강철 선수가 은퇴를 한 레너드에게 공개적으로 도전 의사를 밝혔습니다. 정말 이뤄지기만 한다면 꿈의 대결로 불리게 될 텐데요. 가능할까요?”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강철 선수의 인기는 현재 판타스틱4에 육박할 정도로 뜨겁습니다. 북미 타이틀을 획득했을 때 최강철 선수는 듀란에게도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그때도 관중들은 열광을 하면서 시합을 해달라는 요청을 열화와 같이 보냈습니다. 그랬기에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최강철 선수는 IBF 타이틀을 획득했고 조만간 WBA 챔피언에 오른 마크 브릴랜드나 WBC의 허니건과 통합 타이틀전을 벌이겠다고 공언했잖습니까? 만약 최강철 선수가 양 기구 중에서 하나만 정복해도 복싱 팬들의 성화에 의해 대결이 성사될 가능성이 무척 커질 겁니다.”

“정말 기대가 되는군요.”

“저 역시 상상만 해도 가슴이 뛸 정도로 흥분이 됩니다. 만약 시합이 성사된다면 전 세계 복싱 팬들이 열광하는 빅 이벤트가 될 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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