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95화 (95/308)

[95]

* * *

“아, 거 씨발. 무슨 사설이 저렇게 긴 거야!”

“저게 저놈들 밥그릇인데 오죽하겠냐. 저럴 때 나와서 방귀깨나 뀌는 놈들이 얼굴 비추는 거지.”

“벌써 강철이가 링에 들어온 게 10분이나 지났다고. 우리 강철이 힘들어서 큰일 났네.”

시끌벅적.

사전 행사가 길어지자 꽃다방에 들어와 있던 사람들의 불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화면에서는 장내 아나운서가 계속해서 누군가를 소개하며 지랄을 떨었는데 온통 모르는 놈뿐이었다.

“이제 끝났나 보다!”

드디어 길었던 주요 인사들의 소개가 끝나자 사람들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복싱 경기를 볼 때마다 생각하는 것이지만 이런 짓을 하는 놈들은 전부 동동 싸매서 리어카에 실어 개천에 내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복싱 경기가 있을 때마다 꽃다방 멤버인 김영호와 류광일은 오늘 새벽에 일어나 바람처럼 달려와 맨 앞자리를 차지하는 데 성공했다.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웬 미친놈들이 그리 많은지 그들이 들어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꽃다방 50석이 전부 찼다.

중계방송은 아침 10시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오픈 게임이 있었고 식전 행사를 한다고 지랄을 떠는 바람에 11시 반이 다 되어서야 이제 본 게임이 시작되려는 중이었다.

텔레비전에는 양 선수를 링 중앙으로 불러 모았는데 국가 연주를 하려는 것 같았다.

이것도 식전 행사의 하나다.

갑자기 텔레비전에서 애국가가 흘러나오자 맨 앞에 앉아 있던 류광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고 그 뒤를 김영호가 따랐다.

그러자 꽃다방에 가득 들어차 있던 사람들이 전부 자리에서 일어나 애국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 * *

장내 아나운서가 최강철에 이어 프레디 아두에 대한 소개가 이뤄지는 동안 윤성호의 입이 속사포처럼 열렸다.

그의 입술은 식전 행사를 하는 동안 바짝 말라 있었는데 너무 긴장해서 입술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강철아, 처음부터 무리하면 안 돼. 알았냐?”

“네.”

“우리 꿈을 이루는 날이야. 꼭 이겨야 한다.”

“그럼요. 이제 시작인데 지면 쓰나요.”

“심판이 부른다. 가봐.”

어느새 프레드 아두의 소개가 끝나고 레프리가 최강철을 향해 링의 중앙으로 나오라는 손짓을 하고 있었다.

천천히 다가가자 멘트 하나 다르지 않은 레프리의 주의 사항이 이어졌다.

레프리가 떠들었으나 최강철의 눈과 프레드 아두의 시선이 허공에서 번쩍이며 부딪쳤다.

프레드 아두가 또다시 하얀 이를 드러낸 것은 레프리의 주의 사항이 모두 끝났을 때였다.

“최강철, 길어봐야 6라운드다. 그때까지 잘 도망 다녀봐.”

“신사인 줄 알았더만 신사를 가장한 여우 새끼였군. 프레드 너나 잘해, 이 새끼야.”

때앵!

드디어 운명의 공이 울리자 최강철은 천천히 걸어 링의 중앙으로 나갔다.

이놈 작정했구만.

위잉!

프레드 아두는 자신이 아웃복싱을 할 거라 아주 확신했던지 처음부터 라이트 단발 훅을 던지며 접근해 들어왔다.

그 펀치를 피하며 프레드 아두의 가슴팍으로 파고들었다.

그러고는 양쪽 옆구리와 어퍼컷을 날리며 바짝 붙었다.

당황한 프레드 아두가 급히 가딩으로 편치를 막았으나 최강철은 거리를 떨어뜨리지 않은 채 연속으로 쇼트를 날렸다.

쇼트에도 모든 펀치가 들어 있다.

쇼트라는 의미는 짧은 펀치라는 것이지 어떤 기술을 특정해서 말하는 게 아니었다.

이성일이 준비한 전략은 아웃복싱이 아니라 최단거리 접근전이었다.

제프 카터와 밤을 새워가며 끙끙대던 이성일은 프레드 아두의 펀치가 크다는 것을 알아채고 최단거리 접근전을 전략으로 세웠던 것이다.

공이 울리는 순간부터 최강철이 바짝 붙은 채 난타전을 펼치자 금방 경기장의 분위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전문가는 스피드가 빠른 최강철이 아웃복싱을 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막상 전혀 의외의 상황이 발생하자 관중들은 입을 떠억 벌린 채 링의 중앙에서 맞부딪치는 선수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밀어도 밀리지 않았고 최단거리를 유지하며 연타를 퍼부었다.

펀치의 속도, 그리고 체력.

오늘 경기의 승패는 이 두 가지로 결정 난다.

강력한 인파이터라고 알려진 프레드 아두는 최강철의 펀치에 맞서 주먹을 난사했으나 바짝 붙은 거리에서 날아오는 쇼트에 여러 차례 얼굴을 적중당하자 점점 가드가 좁혀졌다.

가드가 좁혀진다는 것은 특유의 맹렬한 펀치 각도와 펀치의 파괴력이 작아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작용과 반작용의 원리다.

최강철은 바짝 웅크리는 프레드 아두를 따라다니며 링을 휩쓸었다.

프레드 아두는 그를 떨어뜨리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했지만 최강철의 피지컬은 그의 압박을 충분히 견뎌낼 정도로 단단했다.

이것이 인파이팅만 하던 놈의 한계다.

프레드 아두가 1라운드 내내 당하면서도 뒤로 훌쩍 물러서지 못한 것은 공격 본능이 놈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잘했다, 어떠냐?”

“성일이 분석이 맞아요. 놈은 최단거리에서는 펀치가 흘러 나갑니다. 적정한 거리만 주지 않으면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겁니다.”

“체력 안배 잘해. 먼저 지치는 놈이 지는 거야.”

“걱정하지 마세요. 저놈보다 먼저 지치는 일은 없을 겁니다.”

2라운드.

최강철의 공격 패턴은 똑같이 이루어졌다.

머리를 맞댈 정도로 접근해서 끊임없이 펀치를 퍼부었다.

잠시도 쉴 틈이 없는 무지막지한 공격이었다.

워낙 짧은 접근전이었기에 상대의 공격에 여러 차례 펀치를 허락했으나 최강철은 절대 물러서지 않고 거리를 줄여놓은 채 펀치를 날렸다.

충분히 견딜 수 있었다.

미리 공격당한다는 것을 알았고 천부의 반사 신경이 있기에 결정적인 공격은 전부 피했다.

전략이 확정된 후 준비해 놓은 숏 훅과 숏 스트레이트, 어퍼컷과 양쪽 옆구리 공격이 쉴 새 없이 터졌다.

새로운 콤비네이션이다.

그의 주 무기인 토네이도 콤비네이션에 비해 위력이 적겠지만 오히려 펀치의 속도는 훨씬 더 빨랐다.

2라운드에 불과했을 뿐인데도 사람들은 자리에서 전부 일어나 열광을 하고 있었다.

그들로서는 이런 경기를 처음 봤을 것이다.

프레드 아두의 맷집은 훌륭했다.

수없이 작렬하는 펀치를 맞고도 끊임없이 펀치를 날려 왔는데 아직까지 새파랗게 날이 서 있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너는 결국 견디지 못한다.

지금 네 전신을 두드리는 내 펀치가 시간이 지날수록 너를 죽음 속으로 몰아넣을 테니 말이다.

4라운드가 끝나자 이종엽이 급히 물병을 들어 올려 입으로 쏟아부었다.

라운드가 끝나면 광고를 하기 때문에 40초의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옆에 있던 윤근모도 자신과 똑같이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는데 벌써 지친 기색이 완연했다.

1라운드 초반만 잠깐 앉아 있었고 그다음부터는 계속 선채로 중계를 했기 때문에 벌써부터 목이 칼칼하게 아파왔다.

하지만 그는 베테랑이다. 광고가 끝났다는 사인이 들어오자 즉시 마이크를 끌어당긴 후 멘트를 시작했다.

“정말 대단한 경기입니다. 최강철 선수, 4라운드에서도 최강철 선수는 똑같은 패턴으로 폭풍 같은 공격을 퍼부었습니다. 윤 위원님, 이건 그동안 보여주었던 최강철 선수의 경기 스타일이 아닌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4라운드가 지난 지금까지 최강철 선수는 라운드당 300회 이상의 펀치를 내고 있습니다. 물론 프레드 아두 선수도 계속해서 펀치를 내고 있지만 최강철 선수의 펀치 숫자에 비하면 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 걸로 보이네요.”

“걱정되는군요. 이러다가 지치는 건 아닐까요. 너무 무리하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오버 페이스를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조마조마하군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프레드 아두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쉬면서 입을 벌리고 있잖습니까.”

“아, 그렇군요. 지친 기색이 조금 보이는 것 같습니다.”

“복싱은 때리는 사람도 지치지만 맞는 사람도 지치게 되어 있습니다. 프레드 아두는 지금까지 꽤 많은 펀치를 허용했어요. 상당한 맷집을 지녔기 때문에 버텼지, 다른 선수였다면 벌써 쓰러졌을 겁니다.”

“정말 살 떨리는 경깁니다. 최강철 선수도 여러 차례 펀치를 허용해서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정타는 아니었어요. 전부 흘려 맞은 거고 제대로 들어간 건 2, 3차례밖에 없었습니다. 최강철 선수 맷집도 상당히 강하군요. 전혀 대미지를 받지 않은 모습입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5라운드의 공의 울렸습니다. 최강철 선수 이번 라운드에서도 잘 싸워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전력으로 달리면 얼마나 뛸 수 있다고 생각하나.

5분, 10분? 아니면 20분?

미안하지만 사람이 전력으로 달릴 수 있는 시간은 대부분 30초를 넘기지 못한다.

그것은 복싱 선수뿐만 아니라 모든 선수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고, 인간의 한계에 대한 경계선에 관한 이야기다.

프레디 아두가 불과 5라운드 만에 이렇게 지친 것은 최강철이 끊임없이 그를 향해 펀치를 난사해서 잠시도 쉬지 못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5라운드 중반이 지나자 프레드 아두의 숨소리가 거칠게 변하기 시작했다.

서서히 한계에 도달했다는 신호였다.

최강철은 바짝 붙은 상태에서 옆구리를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놈의 체력을 더욱 깎아내리기 위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보디 공격만 한 것이 아니라 수시로 안면을 노렸기 때문에 프레디 아두의 방어선이 수시로 무너졌다.

퍽, 퍽, 쿠웅!

양쪽 옆구리에 이어 올라간 어퍼컷이 정확하게 들어가는 순간, 그토록 단단했던 프레드 아두의 신형이 비틀거렸다.

“와아, 와아!”

프레드 아두의 신형이 비틀거리는 순간 관중석에서 폭탄이 터지는 것과 비슷한 함성이 새어 나왔다.

팽팽하게 맞서던 두 선수의 결투에서 처음으로 균형이 무너지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기회다. 그러나 서두르지 않는다.

최강철은 비틀하며 한 발 물러서는 놈의 가슴을 향해 다시 바짝 다가서며 계속해서 복부를 두들겼다.

부웅, 부웅, 부웅!

프레드 아두가 전열을 재정비하고 무차별적으로 펀치를 난사해 왔으나 최강철은 냉정한 눈으로 그의 펀치를 피하며 반격을 가했다.

콰앙, 콰앙!

패링에 이은 양쪽 쇼트 훅이 정확하게 들어가자 프레드 아두의 신형이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경기가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후퇴를 한 것이다.

도망가지 못한다, 프레드 아두.

내가 말했지. 너나 잘 하라고.

그 정도 스텝으로 내 공격을 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최강철의 신형이 번개처럼 앞으로 나가며 강력한 쇼트 콤비네이션을 퍼부었다.

프레드 아두가 간헐적으로 펀치를 냈으나 최강철의 엄청난 화력 앞에는 무용지물에 불과했다.

이미 그의 숨소리는 거칠어질 대로 거칠어져 입이 벌어져 있었고, 얼굴은 고통으로 잔뜩 일그러진 상태였다.

그때, 5라운드를 종료하는 공이 울렸다.

“강철아, 저 자식 지쳤다.”

“알고 있습니다.”

“입이 벌어져서 다물어지지 않고 있어. 저건 체력이 끝까지 갔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야.”

“이제 끝내겠습니다. 마지막에 준비한 걸로 끝낼게요.”

“서둘지 마. 놈은 한 방이 있는 놈이야!”

“잘 알면서 그래요. 나는 보기보다 상당히 냉정한 놈입니다. 절대 무리하지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조심해, 이 자식아!”

윤 관장이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으나 최강철은 그를 향해 빙그레 웃어준 후 공이 울리자 의자를 박차고 나갔다.

네가 6라운드에 끝낸다고 했지?

그 약속 지켜봐!

링의 중앙으로 나서는 프레드 아두의 발은 천근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저런 발로는 거북이도 쫓아가지 못할 것 같은 스텝이었다.

6라운드가 시작되자 최강철은 그동안의 패턴을 버리고 아웃복싱으로 전환했다.

아웃복싱이 시작되었다는 건 그의 전매 특기인 레프트 잽이 움직인다는 뜻이다.

스트레이트처럼 강력하고 화살처럼 빠른 레프트 잽이 말이다.

쉬익, 쉬익, 쉬익!

무거워진 프레드 아두를 향해 거리를 확보한 상태에서 최강철의 레프트 잽이 무차별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레프트 잽만 나온 것이라면 어떡하든 피했겠지만 그에게는 레프트 잽과 연동되는 스트레이트와 미사일 훅이 장착되어 있었다.

파앙, 파앙, 파앙!

프레드 아두가 최선을 다해 방어를 하며 반격을 시도했으나 레프트 잽을 성공시킨 최강철의 신형은 어느새 전권에서 빠져나가 있었다.

거의 샌드백 수준이다.

아직도 최강철의 스텝은 경기를 막 시작한 것처럼 움직이고 있었으니 그의 지친 발로 따라잡는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아웃복싱을 하던 최강철의 패턴이 또다시 변한 것은 라운드 중반 레프트 잽에 이은 스트레이트가 프레드 아두의 안면에 정확하게 틀어박혔을 때였다.

인파이팅.

휘청거리는 프레드 아두를 따라 들어가며 최강철 특유의 폭발적인 콤비네이션이 터지기 시작했다.

거리를 정확하게 잰 상태에서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그의 펀치는 미사일을 연상케 할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프레드 아두에게 사망 선고를 내린 것은 콤비네이션의 끝자락에 위치한 라이트 훅이었다.

콰앙!

마지막 저항을 하기 위해 프레드 아두의 왼손이 빠져나오는 순간 크로스 카운터가 작렬했는데 얼마나 강했던지 머리가 홱 돌아갈 정도였다.

마치 고목나무 쓰러지듯 프레드 아두의 신형이 스르륵 무너져 내리며 캔버스에 길게 뻗었다.

카운트를 셀 필요도 없었다.

정신을 잃은 선수에게는 카운터를 세는 것보다 닥터를 부르는 것이 훨씬 현명한 짓이다.

관중들은 최강철이 아웃복싱을 하다가 전매특허인 폭풍 같은 대시를 시작할 때부터 함성을 멈추고 넋을 잃은 채 지켜보고 있었다.

최강철의 공격이 얼마나 강력했던지 사람들은 손에 땀을 쥐고 함성조차 지르지 못했다.

관중의 함성이 천둥처럼 터진 것은 레프리의 손짓에 의해 닥터가 급히 링으로 뛰어 들었을 때였다.

“허리케인, 허리케인, 허리케인!”

거의 광란에 가까운 합창이 관중들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진정으로 누군가에게 감탄한 사람들에게서는 이런 반응이 나온다.

그것은 바로 미친 듯한 열광이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