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93화 (93/308)

[93]

* * *

최강철의 경기가 3일 앞으로 다가오자 미국 전역이 흥분 속으로 사로잡혀 갔다.

동시에 WBA의 타이틀전이 벌어졌으나 온 관심은 최강철이 출전하는 IBF 쪽으로 집중되었다.

미국 출신인 마크 브릴랜드가 출전함에도 WBA 타이틀전이 복싱 팬들에게 관심을 받지 못한 것은 그의 경기 스타일이 아웃복싱이었고 안전 운행을 하면서 지루한 경기를 펼쳤기 때문이다.

그가 아무리 탁월한 테크니션이라 해도 관중들의 피를 뜨겁게 만들지 못하는 한 최강철과 같은 인기를 얻기 힘들 것이다.

복싱 팬들의 관심이 최강철과 프레디 아두의 경기에 몰리자 NBC는 쾌재를 부르며 연신 특집 방송을 내보냈다.

WBA 세계 타이틀을 주관하는 ABC가 코를 빠뜨리고 있는 것과 확연히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위성 생중계를 신청한 국가는 한국을 비롯해서 영국과 일본 등 7개 나라나 되었기에 짭짤한 중계수입까지 챙겨 NBC 스포츠 국장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폈다.

오늘 그들이 준비한 것은 복싱 전문 기자인 토머스와 복싱 기술 전문가 잭슨을 출연시켜 3일 후 벌어지는 시합의 경기 예상평을 들어보는 것이었다.

앵커인 윌리엄은 NBC의 대표적인 복싱 전문 앵커로서 20여 차례의 세계 타이틀을 중계한 경험이 있는 베테랑이었다.

녹화가 시작되자 윌리엄의 오프닝이 시작되었다.

“전국의 시청자 여러분, 오늘은 3일 후에 벌어지는 프레디 아두와 최강철 선수의 IBF 타이틀전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현재 두 선수의 대결은 복싱 팬들로부터 초미의 관심을 끌고 있는데요. 먼저 토머스 기자에게 묻겠습니다. 토머스 기자는 최강철과 상당히 친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언제부터 알게 된 겁니까?”

“82년 세계 선수권대회에서 처음 봤습니다. 그때부터 최강철 선수의 경기라면 거의 따라다니며 취재했으니까 벌써 6년이나 되었군요.”

“아, 그때를 저도 기억합니다. 오래전 일이라 복싱 팬들은 잘 모르겠지만 공교롭게도 같은 날 WBA 챔피언 결정전에 출전하는 마크 브릴랜드를 최강철 선수가 잡았죠?”

“그렇습니다. 완벽한 KO승이었습니다.”

“그 시합을 직접 보셨나요?”

“예, 봤습니다. 그 당시 최강철은 결승에서 마크 브릴랜드의 전매특허인 아웃복싱을 완벽한 인파이팅으로 때려 부셨는데 얼마나 강렬했는지 소름이 끼칠 정도였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최강철 선수의 팬이 되었습니다.”

“같은 날 브릴랜드가 시합을 합니다. 토머스 기자는 지금 브릴랜드와 최강철이 붙으면 누가 이길 것 같습니까?”

“하하… 지금 여긴 프레드 아두와 최강철의 경기에 관련한 이야기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냥 궁금해서 그렇습니다. 워낙 최강철 선수를 오랫동안 지켜봤으니 두 선수의 장단점을 잘 알것 같아서요.”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마크 브릴랜드는 비록 아마추어 시합에서 최강철에게 졌으나 프로에 들어온 이후 새로운 신무기들을 장착하며 최고의 복서로 거듭 태어났습니다. 분명 그는 언젠가 최강철 선수와 다시 붙게 될 테니 저의 의견은 그때 다시 말씀드리죠.”

토머스가 교묘하게 대답을 회피하면서 고개를 돌렸다.

이유가 있다.

그렇지 않아도 WBA 타이틀전이 죽을 쓰고 있는 마당에 자신이 굳이 앞장서서 총대를 멜 이유가 없었다.

최강철로 인해 IBF가 주목을 받고 있을 뿐이지, 지금의 복싱계는 WBA, WBC가 양분하고 있는 상황인데 엉뚱한 말로 그들을 자극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윌리엄이 노련하게 화제를 돌린 것은 그 역시 그런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그런 기회가 오면 다시 질문할 테니 그때는 꼭 대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번에는 복싱 기술 전문가인 잭슨 씨에게 묻겠습니다. 잭슨 씨, 복싱 기술 전문가로서 두 선수의 경기가 어떻게 진행될 것 같습니까?”

“제가 봤을 때 이번 경기는 최강철의 방어를 프레드 아두가 뚫을 수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최강철 선수는 매우 빠른 스피드를 지녔고 방어 기술도 완벽해서 프레드 아두가 그를 잡기 위해서는 거친 공격이 필요할 겁니다. 이번 경기에서 최강철 선수는 점수 위주의 경기를 펼치면서 안전하게 운행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프레드 아두쪽에서는 초반부터 적극적인 공격 전술을 들고 나올 것 같군요.”

“두 선수의 테크닉에 대해서 비교해 주시죠. 어떤 공격 기술과 방어 기술을 가지고 있는지 분석해 오셨죠?”

“그렇습니다. 최강철 선수의 공격 기술은……..”

잭슨의 비교 분석이 한참 동안 이어졌다.

그는 그동안 두 선수가 치른 시합의 공격 기술에 대해 통계로까지 분석해서 가져왔고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상대 공격에 대한 방어 기술까지 면밀하게 보여주며 장단점을 이야기했다.

복싱 기술 전문가다운 분석이었고 진행 기술이었다.

윌리엄은 그의 분석이 모두 끝나자 토머스에게 두 선수의 훈련 과정과 일상생활, 언론 보도에 대해서 출연자들과 함께 매끄럽게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텔레비전의 편집은 교묘하기 짝이 없다.

그들이 대화하는 중간중간 두 선수의 하이라이트 장면이 방송되면서 시청자의 흥미를 끌어당겼고 틈틈이 가십거리를 끼워 넣어 눈을 돌릴 수 없게 만들었다.

윌리엄이 PD의 급박한 사인을 보고 시계를 봤다. PD의 사인은 이제 녹화를 끝내자는 신호였다.

“오늘 잭슨 씨의 분석은 감탄할 정도로 훌륭했습니다. 경기를 준비하는 두 선수에 대한 토머스 기자의 말씀도 상당히 재미있었고요. 하지만 프로그램을 끝내기 전에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해야 될 것 같습니다. 먼저 잭슨 씨, 이번 시합에서 누가 승리할 것으로 예상하죠?”

“박빙입니다. 하지만 저보고 내기를 걸라고 한다면 프레디 아두의 승리에 걸겠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최강철은 지금까지 프레디 아두처럼 강력한 공격형 인파이터를 만난 적이 없습니다. 프레드 아두는 지금까지 그가 상대한 선수들과 수준이 다르죠. 강력한 전진 패턴에 맞서 최강철은 아웃복싱으로 맞설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이 승패를 결정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지금까지 줄곧 인파이팅으로 상대를 KO시켰지만 단발 KO승이 없을 정도로 주먹의 위력이 뛰어나지 않은 선수입니다. 아웃복싱으로 점수를 딸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은 프레드 아두의 펀치에 견디지 못하고 무너질 겁니다. 그만큼 프레드 아두는 강력한 인파이터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토머스 기자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말도 안 되는 말씀입니다. 이번 경기는 무조건 최강철이 이깁니다. 그가 단발 KO승을 거두지 못한 건 완벽한 승기를 잡기 위해 기회를 노리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의 펀치를 맞아본 선수들은 전부 머리를 저으며 마치 망치로 맞은 것 같다는 말들을 했습니다. 더군다나 최강철의 스피드는 프레드 아두가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빠릅니다. 아무리 공격 본능이 뛰어난 프레드 아두라 해도 날카로운 반격을 뚫고 공격을 성공시키기는 어려울 겁니다. 최강철의 아웃복싱은 정평이 나 있을 정도로 뛰어납니다. 나는 잭슨 씨가 무슨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지구력 때문입니다. 이번 경기는 12회로 치러지죠. 반면에 최강철 선수는 지금까지 6라운드 이상을 뛰어보지 않았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모르겠습니다. 6라운드까지 뛰었다고 해서 지구력이 없을 거란 판단은 어디서 나오는 겁니까? 절대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못하겠습니다.”

“아… 아… 두 분 그만들 하시죠. 벌써부터 의견이 엇갈리는군요. 그만큼 두 선수의 시합이 박빙이기 때문에 이런 의견들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시청자 여러분, 이제 3일 후면 여러분이 기다리고 기다리신 결전의 시간이 다가옵니다. 기대해 주십시오. 스포츠라인, 여기서 인사드리겠습니다.”

* * *

시합 전날 계체량 측정에 이어 공식 기자회견이 열렸다.

몰려든 기자들로 인해 뉴욕호텔의 기자회견장은 발 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였다.

미국의 기자들뿐만 아니라 한국과 영국 등의 기자들이 몰려들었는데 100명이 훌쩍 넘는 인원이었다.

최강철은 기자회견 장소에 나가 프레디 아두와 악수를 나눴다.

눈빛이 강하다. 그리고 침착하다. 그리고 심기가 깊다는 것이 시선에서 나타났다.

프레디 아두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입이 무거운 사람이었다.

나이가 28살이나 되었는데 언론이 아무리 유혹해도 최강철에 대한 비난을 절대 입에 담지 않았다.

품격은 품격으로.

최강철 역시 같은 태도로 그를 대했다. 챔피언에 대한 존경심 때문이 아니라 하나의 성숙한 인격체로서 깨끗한 승부를 펼칠 생각이었다.

기자들의 질문은 끝없이 이어졌다.

끈질기다.

어떡하든 자극적인 기사를 생산하기 위해선지 그들은 상대방에 대한 심기를 건드려 왔으나 프레드 아두는 물론이고 최강철도 교묘한 화술로 그들의 도발을 피해 나갔다.

“최강철 선수, 당신의 인기는 현 챔피언인 프레드 아두보다 훨씬 뜨겁습니다. 그런데도 IBF에 도전하는 이유가 뭡니까?”

“진정한 강자는 링을 가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복서로서 매순간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프레드 아두 선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는 뛰어난 선수입니다. 강력한 공격력을 갖추었고 방어 능력 또한 뛰어나서 챔피언으로 손색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챔피언과 시합을 하게 되어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경기도 KO로 이길 겁니까?”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링에 올랐을 때 최선을 다해 싸웁니다. 지금까지 제가 연속 KO승을 거둔 것은 그 결과에 따른 것입니다.”

최강철이 교묘한 화술로 계속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자 이번에는 기자들의 질문이 프레드 아두를 향해 쏟아졌다.

그 역시 최강철과 비슷한 말을 해 나가면서 기자들의 질문을 피했다.

하지만 마지막 질문에서 터진 그의 말에 프레스 센터가 폭탄이 터진 듯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최강철 선수는 뛰어난 기량을 가지고 있지만 저는 그를 이길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잡초처럼 커왔기 때문입니다. 최강철 선수는 온실 속의 화초에 불과합니다. 야생에서 굶주린 사자와 드넓은 초원에서 풀을 뜯어먹으며 편하게 산 초식동물은 싸움이 되지 않는 다는 걸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아… 끝내준다.

지금까지 참아왔던 게 지금 이 순간을 노리고 있었기 때문인 모양이다. 그것도 기자회견이 다 끝나가는 마당에.

똑똑한 놈.

지금까지 신사처럼 행동해 오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심리전을 펼치는 걸 보면 똑똑한 것보다 영악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쓴웃음이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왔지만 최강철은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일어서서 기자회견장을 나서는 프레드 아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내가 온실 속의 화초였고, 편하게 살아온 초식동물에 불과하다고 말했어?

넌 뭔가 착각하고 있구나. 나는 결코 그렇게 살아온 적이 없어. 보여줄게, 링에서.

내가 어떻게 지독하게 살아왔는지를.

* * *

최우용은 토요일에 올라온 큰아들 내외를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눈에 띄게 밝아진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손자가 병에서 완쾌한 후 아들은 얼굴에 들어 있던 어둠을 벗어내고 활기차게 살면서 그 먼 길을 건너 자주 집에 오곤 했다.

“할아부지!”

손자들이 뛰어와 가슴에 안기는 순간 너털웃음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이제 뛸 수 있게 된 둘째 손자 놈은 반갑다는 듯 가슴에 안겨 어리광을 부렸는데 그 웃음이 너무나 해맑았다.

며느리의 얼굴도 밝았다.

언제나 며느리는 올 때마다 반찬거리를 잔뜩 장만해서 들고 왔는데 그가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이 모든 것이 최강철로 인해서였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한 아들은 매 맞아 번 돈으로 가족들을 챙겼는데 큰아들이 구미에 있는 새 아파트를 사서 들어간 것도 아들이 보내준 돈으로 장만한 것이다.

벌써 두 달이 넘도록 통화를 하지 않았다.

시합이 없을 때면 꼭 일주일에 한두 번씩 전화가 왔었는데 중요한 시합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가 소식이 끊긴 게 두 달이 훌쩍 넘었다.

궁금하고 답답했지만 전화를 하지 않았다.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으나 그것이 방해가 된다는 걸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강철이 시합은 내일 아침 10시에 중계한다네요. 아시죠?”

“응, 그렇다는구나. 그것 때문에 올라온겨?”

“예, 우리 동생 시합하는데 그냥 있을 수 없잖아요. 가족들이 전부 모여 응원해야죠.”

“큰 시합이라는데 걱정이다. 잘해줘야 할 텐데…….”

“잘할겁니다. 강철이는 꼭 이길 거예요.”

“그려, 그랬으면 좋겠구먼.”

“아버지, 오다가 보니까 아파트 단지 앞에 돼지갈비집이 크게 생겼더라고요. 오늘은 우리 가족 나가서 오랜만에 외식하시죠.”

“뭐 하러 나가서 돈을 써. 그냥 집에서 먹으면 되지.”

“엄마나 이 사람도 저녁 준비 하려면 힘들잖아요. 그러니까 가요. 가서 저랑 소주 한잔하세요.”

“허어… 그럼 그러자, 어차피 잠도 안 올 텐데 오늘은 소주나 마시고 푹 자야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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