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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킹과 밥 애런은 대대적으로 홍보를 때리기 시작했다.
25전 전승의 강력한 챔피언 링의 도살자 더스틴 브라운과 최근 들어 복싱 팬들의 인기를 한 몸에 끌어당기고 있는 12전승 KO 행진의 히어로 허리케인 최강철의 대결이 확정되는 순간부터 그들은 아예 작정한 듯 세계 타이틀전 못지않은 홍보전을 펼쳤다.
그들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는 건 여러 분야에서 나타났다.
먼저 경기장을 뉴욕의 메디슨 스퀘어가든으로 잡았다는 것이 그중 하나다.
이번 시합에 출전하는 선수들의 인기가 상당하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프로모션을 하는 당사자가 세계 최고의 영향력을 지닌 그들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까지 메디슨 스퀘어가든이 열린 것은 세계 타이틀전에 한정되어 있었다.
더군다나 시합은 미국 전역으로 생방송이 결정되었는데 주관 방송사가 바로 ABC의 ESPN이었다.
ABC는 복싱 중계에 있어서는 독보적인 방송국으로 전 세계 위성 중계망을 가장 탄탄하게 보유한 회사였다.
돈 킹과 밥 애런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텔레비전에 그들에 관한 특집 방송을 편성하게 만드는 괴력을 발휘했다.
시합 전까지 2차례에 걸쳐 두 선수를 심층 분석 하는 특집을 마련했는데 경기 장면들과 전문가들의 예상이 어우러지면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뿐만이 아니다.
각종 주요 신문에까지 영향력을 발휘해서 수시로 기사가 나가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시합일이 점점 다가올수록 미국 전역은 무패가도를 달리는 두 선수의 대결에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비교를 하자면 국내에서 박종팔과 라경민의 라이벌전이 벌어졌을 때 한국에 불어닥친 열풍 이상으로 뜨거운 것이었다.
최강철은 델 컴퓨터에 대한 투자를 마무리 지은 후 곧바로 훈련을 시작했다.
레드불스에 그가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을 때 체육관에 있던 모든 선수는 시합을 위해 훈련을 시작하는 그에게 뜨거운 격려의 박수를 보내줬다.
이제 레드불스에서 훈련하는 선수들은 최강철의 시합이 잡히면 일반 복싱 팬들 못지 않게 뜨거운 관심을 가지고 흥미 있게 지켜본다.
언제나 심장을 뜨겁게 만들어 버리는 그의 경기는 선수인 그들마저도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강렬해서 최강철의 훈련 장면은 그들에게 좋은 구경거리이자 교본과 같은 것이었다.
더군다나 이번은 북미 타이틀이 걸린 중요한 일전이었기에 그들의 관심은 더욱 뜨거울 수밖에 없었다.
윤성호는 이미 훈련 계획표를 짜놓은 채 그를 기다렸기 때문에 또다시 전쟁을 위한 구슬땀을 흘려냈다.
이완되었던 몸을 원상태로 복구하기 위해 로드러닝은 기본이고 상체 근육 강화와 복부 단련을 집중적으로 훈련했으며 자신의 주 무기를 차례대로 점검해 나갔다.
돈 킹이 보내온 승리 청부사 제프 카터가 시카고에서 날아온 것은 훈련을 시작한 후 보름 정도 지났을 때였다.
지금까지 톰슨은 기술 분석 전문가를 보내주면 어떻겠냐는 의향을 먼저 타진해 왔으나 이번만큼은 그런 의향을 묻지 않고 그냥 들이닥쳤다.
나중에 안 일이었지만 이성일이 황인혜를 통해 적극적으로 원했다는 것이다.
시합의 중요성이 커지자 이성일은 마음의 부담감을 심하게 느꼈던 모양이다.
훈련이 끝나면 최강철은 매주 제프 카터가 포함된 스태프진과 함께 전략 회의를 가졌다.
이성일이 먼저 그동안 분석한 더스틴 브라운의 장단점을 브리핑하면 제프 카터가 보완하는 방식이었다.
더스틴 브라운. 25전승에 21KO를 기록하고 있는 강타자.
이성일과 제프 카터의 분석에 따르면 그는 별명인 링의 도살자란 이미지와 다르게 교활하고 상대의 심리를 정확히 분석해서 야금야금 무너뜨리는 인파이터였다.
절대 무리한 공격을 하지 않으면서도 끊임없이 압박하는 그의 전술에 상대들은 기가 질려 무너졌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었다.
마빈 헤글러와 유사한 스타일이다.
더군다나 못치는 펀치가 없었고 워낙 방어막이 단단해서 근접전을 펼칠 때 펀치를 허용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단점도 있었다.
25번의 경기에서 그는 3번의 다운을 당했는데 전부 복부를 맞고 쓰러진 것이었다.
이상하다.
복싱에서 복부를 맞고 쓰러졌다는 건 시합을 더 이상 진행시키지 못할 정도로 커다란 대미지를 입었다는 뜻인데 그는 전승 행진을 이어가고 있었다.
제프 카터는 그 이유를 내성의 강화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선천적으로 복부가 약한 선수라도 끊임없이 복부 타격 흡수 훈련을 지속하면 충격을 받았을 때 다른 선수들보다 쉽게 회복된다는 것이었다.
그런 설명을 하면서 다운을 당했던 영상을 틀어주었는데, 제프 카터의 말대로 더스틴 브라운은 다운을 당한 후 아웃복싱으로 시간을 보내며 위기를 모면하고 특유의 인파이팅으로 전환해서 역전 KO승을 거두었다.
펀치력도 좋고 테크닉은 물론, 방어력까지 좋아서 특별한 단점이 없다는 이야기다.
그랬기에 최강철은 화면에서 고개를 돌리며 카터를 향해 입을 열었다.
“카터, 당신이 봤을 때 이번 경기는 누가 이길 것 같습니까?”
“나는 당연히 자네가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네.”
“왜죠?”
“저놈이 상대한 선수들 중에서 자네만큼 뛰어났던 파이터는 없었어. 브라운은 분명 좋은 선수네. 눈에 띌 정도로 커다란 단점도 없고 맷집도 괜찮은 편이야. 하지만 자네를 이길 수는 없을 거야. 왜냐하면 자네는 저놈이 지닌 단점을 하나도 가지지 않았거든.”
“쉽게 말해주세요. 자꾸 빙빙 돌리면 머리 아픕니다.”
“자네의 스피드는 브라운을 압도하지. 그리고 펀치력도 놈이 경계할 만큼 강하잖나. 그래서 자네가 이긴다는 거야. 나와 성일은 오랜 상의 끝에 저놈을 때려잡는 방법을 강구해 냈다네. 그건 말이야…….”
홍보의 효과는 대단했다.
시합이 잡히고 ABC에서 특집 방송이 나간 후부터 신문 기자들이 벌 떼처럼 몰려들어 레드불스 주변이 기자들로 가득 찰 정도였다.
관장인 피터는 노련한 사람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기자들을 정리해서 인터뷰 날짜를 정해 최강철의 훈련이 방해받지 않도록 조치했는데 매주 화요일 1시부터 2시 사이에만 체육관 문을 열어주었다.
물론 최강철 측과 조율해서 결정한 것이었다.
막을 이유가 없었다.
복싱 선수는 인기로 돈을 벌기 때문에 언론에 노출되는 걸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었다.
1시간이었지만 기자들이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훈련하는 장면을 연출해 줘야 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인터뷰 시간은 길어야 30분밖에 되지 않았다.
“허리케인, 지금 훈련은 잘 진행되고 있습니까. 소문에는 훈련 시작이 늦었다는 소리가 들리던데요?”
“잘못된 소문을 들으셨군요. 보다시피 저는 이번 시합을 대비해서 맹훈련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더스틴 브라운 선수는 이번 시합에서 허리케인을 5회 이내에 잠재울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습니다. 그 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날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시죠. 복싱은 입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해 드리겠습니다.”
“브라운 진영에서는 허리케인의 경기 영상을 분석한 결과 펀치력이 그리 강하지 않았다는 판단을 내리더군요. 단발 KO가 한 번도 없다는 것이 그 증거라고 하던데요.”
“그럴 수도 있겠군요. 권투에서 가장 화끈한 건 한 방 펀치로 상대방을 쓰러뜨리는 건데 지금 생각해 보니 저는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 인정하시는 겁니까?”
“인정합니다. 하지만 브라운은 그날 뼈저리게 경험하게 될 겁니다. 내가 왜 한 방 KO가 없는지를 두 눈으로 확인할 테니까요.”
“그럼 이번 시합도 예전처럼 운영하실 생각입니까? 불꽃 인파이팅 말입니다.”
“제 스타일은 언제나 변하지 않습니다. 관중들의 흥미를 저격하는 복서야 말로 링에 설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브라운은 5회 이내에 끝내겠다고 장담했습니다. 허리케인은 몇 라운드를 생각하고 있습니까?”
“나는 라운드를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가 내 펀치를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호언장담을 하는 건 부질없는 짓입니다.”
“혹시 비장의 무기를 준비한 게 있는지 말해주십시오.”
“없습니다.”
“브라운 측에서는 허리케인을 잡기 위한 전략을 마련해 놨다던데 없다니요?”
“복싱이 예상한 대로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리고 나는 그들이 예측할 수 있는 범위에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복싱 팬들에게 이번 시합을 임하는 각오에 대해서 한 말씀 해주십시오.”
“기다리십시오. 여러분의 기억에 평생 남을 만한 경기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기자들이 번갈아 가며 질문을 할 때마다 최강철은 편안한 얼굴로 전혀 주저함 없이 대답했다.
그때마다 기자들은 그의 대답을 미친듯이 노트에 적었다.
모든 것이 기사다.
최강철이 말한 것은 내일 아침이면 기사가 되어 미국 전역에 뿌려질 것이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그들은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서 다시 더스틴 브라운에게 쫓아가 더 자극적인 기사들을 생산해 낼 테니 말이다.
미국에서 강력한 챔피언과 불꽃같은 인파이팅의 주인공 허리케인이 맞붙는다는 사실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을때 뒤늦게 한국에서도 최강철이 북미 타이틀전에 도전한다는 기사가 터져 나왔다.
바로 김도환이 일하고 있는 스포츠서울이었다.
스포츠서울은 단독으로 대문짝만 하게 최강철에 대한 기사를 실었는데 시합 날짜와 경기 장소, 북미 챔피언 더스틴 브라운에 대하여 자세하게 소개했다.
<최강철, 드디어 북미 챔피언에 도전하다!>
기사가 터지자 한국에서도 복싱 팬들 사이에서 커다란 소란이 일어났다.
일 년 전 헌즈 대 헤글러의 대전 때와 국내에서 녹화 방송 된 2번의 시합에서 전율적인 경기를 보여준 최강철의 인파이팅을 아직도 잊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종은 스포츠서울의 김도환이 터뜨렸는데 얻어맞는 건 방송사들이었다.
열화와 같은 국민들의 위성 중계 요청이 봇물처럼 밀려들어 업무를 못 볼 정도였다.
MBC의 스포츠 담당 부장 이창래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국장실로 들어간 것은 스포츠서울을 필두로 각종 신문들이 봇물처럼 기사를 터뜨린 지 5일이 지났을 때였다.
“국장님, 어쩌면 좋겠습니까?”
“뭘?”
“이대로 있다가는 복싱 팬들이 회사에까지 쳐들어올지도 모릅니다. 최강철, 그 자식 인기가 장난 아니라고요.”
“그래서?”
“위성 중계를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난 뭐 귀머거린 줄 아냐? 그러지 않아도 ABC 쪽에 벌써 문의해 봤는데 이 개새끼들이 말도 안되는 가격을 부르더라. 완전히 미친놈들이야.”
“벌써 접촉해 보셨습니까. 그래서요, 얼마를 달라고 하던가요?”
“50만 달러를 내놓으란다.”
“아니, 그게 무슨. 세계 타이틀전도 아니고 북미 타이틀전인데 50만 달러라니요. 말도 안 됩니다.”
이창래가 펄쩍 뛰면서 눈을 부릅떴다.
헌즈와 헤글러가 시합할 때 그들이 ABC에 지급한 돈은 30만 달러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위성 생방송이라 30만 달러란 거액을 지불했지 만약에 녹화 방송으로 나갔다면 5만 달러 정도면 충분히 얻을 수 있는 화면이었다.
그러자 국장이 입맛을 다시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때는 전 세계 여러 국가에 동시 위성 중계가 되었기 때문에 가격이 낮았던 거고 이번은 한국만 가져가는 거라서 가격을 내릴 수 없단다. 싫으면 관두라는구만.”
“이런 씨발 놈들이, 우리를 봉으로 아는군요.”
“그러니까 괴롭더라도 참아. 우리가 그런 거액을 주면서까지 그놈들 장난에 놀아날 수는 없잖아. 사장님한테 보고했더니 그냥 웃으면서 신경 쓰지 말란다. 그런 건 중계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시면서 프로 야구하고 축구에 올인하래.”
“할 수 없죠. 직원들한테 전화 오면 그렇게 설명하라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조금 아쉽기는 하네요. 국민들이 최강철의 시합을 학수고대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나중에 그놈이 세계 타이틀전에 도전하면 그때 노력해 보자고.”
“알겠습니다. 그럼 나가보겠습니다.”
이런 게 수긍이다.
국장이 위성 중계를 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 말해주자 이창래는 두말하지 않고 그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가끔가다 군부에서 내려 보낸 사장은 이유조차 말해주지 않고 지랄을 떨었지만 국장만큼은 절대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
전화벨이 무섭게 울리기 시작한 것은 이창래가 인사를 하고 나가려 할 때였다.
전화기를 확인한 국장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사장에게서 직통으로 날아온 인터폰이었기 때문이다.
“예, 문찬호입니다.”
-문 국장, 최강철 건 말이오. 아무래도 우리가 맡아서 중계를 해야겠어. 그러니까 준비하시오.
“갑자기 그게 무슨… 50만 달러를 주고 사자는 말입니까?”
-그렇다니까.
“그건 사장님이 하지 말라고 하셨던 건데 갑자기 왜…….”
-파란 집에서 전화가 왔어. 레드원이 관심 가지고 계시니까 무조건 위성 중계 해야 된단 말이오. 무슨 소린지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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