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79화 (79/308)

[79]

* * *

텍사스 오스틴공항에 도착해서 렌트를 한 후 라운드 록으로 향했다.

라운드 록은 오스틴과 인접해 있는 윌리엄슨 카운티에 있는 조그만 도시였다.

기내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한 일행은 곧장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그가 가르쳐 준 주소를 찾아갔는데 도착하자 단층의 아담한 사무실이 나왔다.

‘PCs Limited’.

건물 정면에 자그맣게 쓰여 있는 상호명이 지금 그의 현재 상황을 설명해 주는 것 같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컴퓨터를 만지고 있던 청년이 갑자기 나타난 사람들의 모습에 놀란 눈을 숨기지 못했다.

비록 동양인이었지만 황인혜와 서지영의 외모가 너무 뛰어났고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청년을 향해 최강철이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오늘 사장님과 약속이 있어 온 사람입니다. 혹시 사장님 되시나요?”

“아뇨, 전 같이 일하는 친구 제임스입니다. 잠깐 요 앞에 나갔다 온다고 했으니까 금방 돌아올 겁니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아요. 어디서 봤더라……. 아 참, 잠깐 앉으세요. 커피 드릴까요?”

“그래 주시겠어요. 먼 길을 왔더니 커피가 그립네요.”

청년이 가리킨 낡은 소파에 일행들과 함께 앉으며 그의 움직임을 바라보다가 실내를 둘러보았다.

사무실은 70평 정도 되는 규모였는데 온통 컴퓨터 천지였다.

잘생긴 청년이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제임스가 커피를 타서 그들 앞에 놓았을 때였다.

웃는다.

최강철을 보자마자 웃는 그의 얼굴에는 반가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정말 허리케인이군요. 반갑습니다. 정말 반가워요. 저는 허리케인의 열렬한 팬입니다.”

청년이 다가와 반갑게 손을 내밀었다.

전화상으로 이름을 말했을 때는 주저하면서 반신반의하더니 직접 얼굴을 보게 되자 반가워죽겠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최강철은 반가운 얼굴로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청년의 이름은 마이클 델.

향후 포춘지 500대 기업에 꼽히는 거대 공룡 기업, 델 컴퓨터의 창시자가 바로 그였다.

“델, 반갑습니다. 이분들은 저의 사업 파트너인 서지영 씨와 황인혜 씨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정말 아름다운 분들이시네요.”

“반가워요.”

서로간에 인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최강철은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그녀들의 손을 잡는 마이클 델의 얼굴이 복사꽃처럼 붉게 물드는 걸 봤기 때문이다.

순진하다. 그리고 티 없이 밝은 친구였다.

인사가 끝나고 자리에 앉은 후 델은 한동안 최강철이 출전한 복싱 이야기를 하면서 침을 튀겼다.

컴퓨터를 만진다기에 샌님인 줄 알았더니 그는 엄청난 복싱광이었던 모양이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한참 복싱 이야기를 하던 그의 입에서 드디어 본론이 나왔다.

최강철이 그가 먼저 본론을 꺼내게 만든 것은 오랜 연륜에서 비롯된 노련함이었다.

“그런데 허리케인이 저를 왜 보자고 하신 거죠?”

“그것보다 먼저 물어볼 게 있습니다.”

“뭔데요?”

“델의 나이가 22살 맞죠?”

“네, 맞아요.”

“나는 23살입니다. 하지만 12월에 태어났어요. 그러니까 우리 친구 합시다.”

“저랑 허리케인이 친구를 한다고요!”

“왜 싫어요?”

“그럴 리가요. 아니, 그게 무슨. 나야 좋죠. 허리케인은 내 우상인데 그런 사람이 나 같은 사람하고 친구 한다면 최고의 영광이죠.”

펄쩍뛰는 델의 얼굴에서 흥분이 가득 찼다.

그는 최강철이 이런 제안을 한 것이 믿겨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투자를 위해 속이려는 생각을 가지고 제안한 것이 아니었다. 델은 지금 권투 선수인 자신과 친구가 된다는 걸 무척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더 기쁜 것은 바로 자신이었다.

그가 만들어낼 세상은 그만큼 크고 거대했으니 어떤 면으로 봤을 때 영웅이란 말은 그가 들어야 한다.

“친구, 반가워.”

“응, 그래.”

“사실 난 너한테 할 말이 있어서 왔어. 그런데 너를 보니까 친구가 되고 싶었어. 믿어져?”

“왜 그런 생각을 했지?”

“앞으로 내가 할 말은 너와 친구가 되었을 때 더욱 커다란 신뢰성을 갖기 때문이야. 그리고 솔직히 말한다면 나는 네가 마음에 들어. 나에게는 너같이 생긴 착한 친구가 한 명 있어. 너는 그놈과 많이 닮은 것 같아.”

“나만큼 잘생겼어?”

“하하… 얼굴은 네가 더 잘생겼다.”

“다행이네.”

“델, 본론을 말할게. 나는 네가 하는 사업에 투자를 하고 싶어서 왔다. 그래도 되겠니?”

“투자?”

“그래, 투자.”

“에이, 뭔 소린지 모르겠네. 이런 작은 구멍가게에 무슨 투자를 해. 허리케인 지금 나 놀리는 거지?”

“놀리긴, 지금 네가 개발하고 있는 컴퓨터, 난 그게 마음에 들어.”

“‘Turbo PC’ 말하는 거야?”

“응, ‘Turbo PC’.”

아, 델이 지금 개발한 컴퓨터의 이름이 이것이었구나.

사실 그는 전화 통화로 대충 지금의 상황만 파악하고 왔기 때문에 델이 개발한 컴퓨터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서둘러 온 것은 선점에 대한 조급함 때문이다.

일단 부딪치고 설득해서 어떡하든 조금이라도 투자하는 게 그의 목표였다.

“그거 잘 팔려?”

“개발한 지 얼마 안 되서 사람들이 잘 몰라. 그래도 한 달에 10대 정도는 팔리고 있어.”

“그렇구나. 그런데 지금 사무실이 너무 비좁네. 크기도 작고.”

“부모님과 친척들이 융자를 받아서 준 돈으로 이것도 간신히 차린 거야. 그래도 본전치기는 하고 있어. 여기서 IBM 퍼스널 컴퓨터도 같이 팔거든.”

“우리 사무실을 큰 도시로 옮기자. 가구도 새로 맞추고 장비들도 좋은 걸로 구입해. IBM 거는 팔지 마. 네가 개발한 ‘Turbo PC’를 팔아야 돈이 될 거 아니냐.”

“난 돈이 없어. 은행 융자도 전부 꽉 차서 더 이상 돈 빌릴 데가 없단 말이야.”

“그래서 내가 투자한다고 했잖아. 필요한 돈은 전부 내가 댈 테니까 너는 컴퓨터 제작에만 열중하면 돼. 그리고 직원들도 더 충원시켜. 여럿이 움직여야 효율성이 커지지.”

“난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겠어. 도대체 나한테 왜 그러는 거야?”

“우린 친구가 됐고 난 너의 가능성에 투자하는 거라고 말했잖아.”

“그걸 전부하려면 엄청난 돈이 들어가는데 정말 그래도 괜찮겠어?”

“그럼. 그 정도 각오하지 않고 왔겠냐.”

“그렇게 되면 넌 뭘 얻게 되는데?”

“지분. 네 회사에 대한 지분을 나한테 줘. 델, 내가 50만 달러를 투자하겠다. 그러면 회사 지분을 얼마나 줄 테냐?”

“50만 달러!”

델의 얼굴이 단박에 시커멓게 죽었다.

그 돈이면 주도인 오스틴에 커다란 사무실을 열고 새로운 장비와 인력을 구축해서 제대로 사업을 할 수 있는 돈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그는 이해가 안 가는지 최강철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볼 뿐이었다.

이제 겨우 사업을 시작해서 본전치기를 하고 있는 그에게 50만 달러란 거금을 투자하겠다는 최강철의 정신머리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델, 대답을 해야지?”

“20%… 아니, 30%?”

“정확히 말해. 그래야 계약을 하니까.”

“강철, 내가 부모님과 친척들한테 받아서 회사를 차린 게 20만 달러야. 물론 그중의 대부분이 컴퓨터를 사느라고 쓴 거지만 나는 ‘Turbo PC’를 개발하느라 2년 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고생했어. 그래서…….”

“부모님과 친척들이 융자받은 금액이 얼마지?”

“어… 15만 달러.”

“네가 받은 융자는 얼마냐?”

“5만 달러야.”

“그럼 다 합쳐서 20만 달러군. 그것까지 합해서 내가 70만 달러를 투자하겠다. 그러니 회사 지분의 30%를 나에게 줘라.”

“정말… 그래도 되겠어?”

“당연하지. 그럼 지금부터 네가 가지고 있는 회사 지출 계산서와 은행 융자 통장, 세금 계산서에 관한 거 다 가져와. 그걸 전부 확인한 다음에 계약을 맺자. 여기 계신 인혜 누나는 회계 전문가야. 이분이 우리 투자에 관한 재정 내용증명과 향후 이익 배분 산정, 세금에 관한 부분과 각종 법적 관계 등을 처리할 거야. 그리고 지영 씨는 우리 회사의 대표이사기 때문에 서류들이 작성되면 너와 직접 협약을 맺게 될 거다. 우리 계약은 ‘PCs Limited’와 마이더스 CKC 이름으로 맺어진다는 거 잊지 마.”

“강철, 난 아직도 꿈을 꾸는 것 같아. 도대체 왜 나한테 이런 행운이 갑자기 다가온 건지 정말 모르겠어.”

이건 뭐 완전히 숙맥이나 다름없다.

하기야 어린 나이에 겁 없이 뛰쳐나와 생고생을 하면서 컴퓨터를 팔던 22살의 젊은이가 투자에 대해서 뭘 알겠는가.

더군다나 그는 사업을 시작한 지 이제 겨우 2년밖에 지나지 않아 겨우 터전을 마련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하루 동안 꼬박 앉혀놓고 투자 협약에 관한 것들을 설명해 주자 머리가 비상하게 돌아가며 빠르게 이해했다.

역시 천재는 천재인 모양이었다.

최강철과 일행은 라운드 록에 하루를 머물며 투자에 관한 협의를 계속한 후 일요일이 되어서야 뉴욕으로 돌아왔다.

정식 투자 협정은 나중에 완벽한 서류가 작성되었을 때 사인하는 것으로 했지만 일단 델의 사인이 들어 있는 가계약을 맺었다.

세상은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보험이 필요했다.

최강철은 기쁨에 겨워 어쩔 줄 몰라 했으나 서지영과 황인혜는 그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구멍가게에 불과한 컴퓨터 조립 회사에 70만 달러란 거금을 쏟아붓고 저렇게 즐거워한다는 것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특히 황인혜의 걱정은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다.

“강철아, 너 미친 거 아니니?”

“왜요?”

“난 도저히 이해가 안 돼. 저런 작은 회사에 70만 달러를 쏟아 붓는다는 게 말이나 되냐고!”

“델의 컴퓨터는 IBM에서 만드는 것과 엄청난 차이가 있는 대단한 기술이에요. 개인의 선호도에 맞춰 컴퓨터를 조립해 주기 때문에 곧 조만간 엄청난 반응을 일으킬 겁니다. 더군다나 IBM에서 만든 컴퓨터에 비해 훨씬 싸거든요. 무슨 뜻인 줄 알겠어요?”

“그래도 그렇지, 미래의 희망을 보고 그런 거액을 투자한다는 게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돼. 70만 달러면 보통 사람들은 평생을 먹고 놀아도 될 만큼 큰돈인데 네가 뭐가 아쉬워서 남의 빚까지 갚아주며 투자를 해!”

“누나, 걱정하지 말고 서류나 잘 준비해 주세요. 시간 없으니까 서둘러야 해요.”

“우와, 얘 봐. 마치 나를 하인처럼 다루네? 내가 여기까지 와준 것도 어딘데 그런 것까지 나한테 하란 말이니?”

“누나가 전문가잖아요. 수고하는 비용은 드릴게요.”

“얘가 정말… 날 뭘로 보고. 싫어. 줘도 안 받아.”

“그럼 누나 우리 회사로 들어오면 되겠네. 들어와서 우리 회사 회계를 총괄해 주세요.”

“그러고 보니까 그것도 이상해. 계속 마이더스 CKC라고 자꾸 그러던데 그게 네가 만든 회사야?”

“예, 투자 전문 회사예요.”

“그건 또 왜 만들었대. 넌 복싱 선수잖아. 왜 자꾸 날 놀래게 해!”

“올래요?”

“미쳤니. 내가 그 좋은 직장을 내버려 두고 엉뚱한 짓만 하는 회사에 들어가게?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하하하… 하긴, 지금 누나가 와도 할 일은 별로 없을 거예요. 하지만 나중에 때가 되면 꼭 와줘요.”

“너네 회사가 일 년에 천만 달러 정도 수익을 올리면 그때 생각해 볼게.”

“정말입니다. 약속했어요.”

“아이고, 제발 그런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

“누나 정말 시간이 없어요. 빨리 투자 협정을 맺어야 되니까 최대한 서둘러 주세요. 그리고 지영 씨, 미안하지만 지영 씨가 누나를 좀 도와줘. 혼자 하기는 힘들 테니까 옆에서 필요한 걸 챙겨줬으면 좋겠어.”

“응, 알았어.”

럼블 측에서 타이틀전이 결정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은 텍사스에 다녀온 지 5일이 지난 후였다.

앞으로 정확히 세 달 후 뉴욕의 메디슨 스퀘어가든에서 치러진다는 것이었다.

윤성호와 이성일은 펄쩍펄쩍 뛰면서 당장 훈련을 시작해야 된다고 안달을 부렸으나 최강철은 투자를 마무리하기 위해 뉴욕을 매일같이 드나들며 정신없이 움직였다.

투자에 관한 전문가들이라면 협정을 맺기 위해서는 기업의 현재 및 장래 이익 산정과 향후 전망, 그에 맞는 효율적 투자 금액을 산출하고 투자의 타당성을 검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걸 알 것이다.

하지만 최강철은 그런 것에 시간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일을 빠르게 진행할 수 있었다.

이미 투자금은 그가 직접 정해놨고 델 컴퓨터의 수익성은 분석할 이유조차 없었으니 말이다.

지금 당장은 커다란 수익이 들어오지 않겠지만 조만간 델은 그에게 엄청난 돈을 벌어다 준다는 걸 알고 있는 이상 수익성에 대한 분석은 필요 없는 것이었다.

황인혜가 회계 전문가였으나 투자 협정에 관한 경험이 없었기에 그녀가 만들어놓은 초안을 경험이 많은 투자 전문가에 의뢰해서 철저하게 자문을 받았다.

투자 전문가는 그의 투자 내역을 본 후 말도 안 되는 투자라며 무조건 하지 말라는 조언을 했으나 최강철은 빙그레 웃기만 했다.

만약을 대비해서 최강철은 회사명이 바뀌었을 때 승계 과정을 명확히 했고, 상장을 했을 때 지분에 대한 주식의 배분과 회계 감사에 관한 부분까지 꼼꼼하게 챙겼으며, 법률적인 부분까지 완벽하게 검토해서 조금의 문제도 발생하지 않도록 만들었다.

윤성호의 성화는 대단했으나 최강철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모든 서류가 완성되자 서지영과 함께 텍사스로 날아갔다.

시합을 두 달 반쯤 남겼을 때였다.

1986년 2월 17일.

마이클 델과 서지영이 나란히 투자 협정서에 사인하는 역사적인 순간 최강철은 계속해서 사진을 찍었다.

그런 후 두 사람이 사인한 서류를 넘겨가며 한 장 한 장 근거를 남겼다.

가슴이 뛰어 미칠 것만 같았다.

거대 공룡 기업 델 컴퓨터의 지분을 단돈 70만 달러에 30%를 확보했으니 행운도 이런 행운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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