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78화 (78/308)

[78]

* * *

최강철은 대학가 주변에 있는 펍에서 서지영과 마주 앉아 있었다.

수잔은 오랜만에 집에 다녀오겠다면서 오클랜드로 떠났고 클로이는 같이 있다가 남자 친구와의 데이트 약속 때문에 먼저 일어났다.

약간은 어두운 조명이었으나 마주 앉아 있는 서지영의 외모는 조금도 빛을 바래지 않았다.

요즘 들어 그녀는 최강철을 만날 때마다 화장을 했는데 예쁜 외모에 화장이 곁들어지자 마치 천사처럼 아름다웠다.

“지영 씨는 점점 예뻐지는 것 같아. 왜 그렇지?”

“칭찬이야?”

“응.”

“강철 씨만 모르지 다른 남자들은 진즉부터 알고 있었어. 내가 이래봬도 남자들한테 꽤 인기가 있거든요.”

“좋겠네. 남자들한테 인기가 있어서.”

최강철이 빙그레 웃자 서지영의 얼굴이 슬쩍 굳어졌다.

이런, 바보. 이런 이야기는 하는 게 아닌데…….

아, 난 왜 이 남자 앞에만 있으면 자꾸 엉뚱한 이야기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강철 씨, 요즘이 가장 한가할 때지?”

“아직 시합이 잡히지 않아서 훈련을 시작하지 않았어. 그래도 무척 바빠. 저번에 얘기한 투자 전문 회사를 준비하느라 정신없이 움직이는 중이거든.”

“정말 그거 할 거야?”

“내가 한다고 그랬잖아.”

“우와, 이 남자 정말… 그런데 그동안 왜 나한테 얘기 안 했어?”

“결과를 만들어놓고 얘기해 주려고 했지. 원래 말부터 앞서는 남자는 매력 없잖아.”

“나한테 매력 있게 보이고 싶었어?”

“당연하지. 지영 씨처럼 아름다운 여자한테 매력적으로 보인다면 세상 모든 여자한테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뜻이니까.”

그러면 그렇지.

도대체 이 남자는 왜 나를 여자로 보지 않는 걸까?

괜히 가슴이 설ㅤㄹㅔㅆ던 서지영이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가 슬쩍 말을 돌렸다.

언제나 포커페이스. 엄마가 말한 것처럼 예쁘게, 그리고 상냥하게, 이 남자가 자신에게 매력을 느낄 때까지 열심히 노력할 생각이다.

“그거 설립하려면 등기 보증 비용이 꽤 들 텐데 주식 판 거야?”

“아니, 계약금 받은 거 있어서 자금은 충분해.”

“계약금?”

“이번에 재계약하면서 돈을 받았어.”

“복싱해서 힘들게 번 돈이야. 강철 씨, 신중하게 생각해야 돼.”

“많이 생각하고 결정한 거니까 너무 염려하지 마. 난 의외로 치밀한 사람이라고.”

“그런데 강철 씨, 왜 그걸 하려고 하는 거야. 그냥 복싱 선수만 해도 돈 많이 번다며?”

“나는 젊어. 청춘의 꿈은 클수록 좋은 거잖아. 젊을 때 힘차게 날아봐야 되는 거 아니겠어. 나도 지영 씨도.”

“그래도 너무 위험해. 그런 거 하다가 망한 사람들 많다고 들었어…….”

“걱정하지 마. 난 성공할 자신 있으니까. 그런데 지영 씨, 예전에 했던 말 기억 나?”

“뭐?”

“우와, 이 아가씨 벌써 잊었나 보네. 내가 투자 전문 회사 차리면 지영 씨가 도와주겠다고 한 말. 기억 안 나?”

“그걸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었단 말이야? 에이, 그거 농담한 거면서 지금까지 기억하면 어떡해.”

“농담 아니었는데. 투자 전문 회사를 차리기 위해서는 최소 두 사람의 등기 이사가 필요해. 그중 한 명은 반드시 미국 국적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그래서 제안하는 거야. 지영 씨가 오케이만 하면 난 지영 씨를 내 파트너로 삼고 싶거든.”

“정말 거기로 오라는 거야? 난 아직 학생이라서 일을 할 수도 없잖아. 강철 씨, 지금 농담하는 거지?”

“내가 농담하는 것 같아?”

최강철이 부드러운 눈으로 서지영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같이 보던 그녀의 시선이 천천히 꺾이며 밑으로 내려갔다.

그녀는 늘 이렇다. 자신이 말없이 바라보면 얼굴이 붉어지며 시선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한다.

분명 자신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아무런 내색조차 하지 않는 걸 보면 지금까지 한 번도 연애를 하지 않았다는 게 저절로 믿어진다.

“내가 왜 지영 씨를 선택했는지 알아?”

“몰라.”

“전문가들은 수도 없이 많지만 믿을 만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야. 나는 지영 씨처럼 올곧은 사람이 필요해. 마음 놓고 일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 내 곁에는 거의 없어.”

“돈은 사람을 무섭게 변하도록 만드는 괴물이야. 오죽하면 친구끼리는 돈거래를 하지 말라고 그랬겠어. 싫어. 난 그렇게 되는 거 겁나.”

“바보구나. 같이 일하자고 했지 내가 언제 돈거래하자고 그랬어?”

“그게 그 말이잖아. 투자 전문 회사는 돈을 운용하는 곳인데 친구끼리 그런 거 하면 우정이 깨지는 건 순간이라고.”

“돈은 내가 운용할 거니까 지영 씨는 옆에서 도와주기만 하면 돼.”

“그게 가능해?”

“그럼.”

“강철 씨가 생각하는 투자 전문 회사가 어떤 건데 그게 가능해?”

“사모펀드. 나는 내 자금으로 사모펀드를 운용할 거야. 주식과 선물, 유망 기업에 대한 투자, 그리고 부동산. 이 세 가지에만 투자할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강철 씨, 자금이 얼마나 되는데?”

“이번에 계약금으로 받은 거까지 합하면 250만 달러 정도가 있어.”

“허억!”

최강철의 대답에 서지영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불과 1년 전에 35만 달러가 있다고 들었는데 그사이에 엄청난 자금이 불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아무리 복싱 선수가 돈을 잘 번다고 하지만 이제 23살에 불과한 최강철이 가지고 있기에는 터무니없이 많은 돈이었다.

“물론 이 자금의 운용 결정은 전부 내가 결정하니까 지영 씨가 책임질 일은 아무것도 없어. 내가 돈 버는 데는 감각이 뛰어나거든. 지영 씨가 만약 온다면 투자에 대한 관리와 회사 운영만 해주면 돼. 그러니까 우리 회사에 와서 나를 도와줘.”

* * *

최강철은 뉴욕 맨해튼에 있는 커피숍 피올라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빌딩숲 사이로 난 거리에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오전 11시.

빌딩 안에 가득 찬 사람들은 저마다의 일에 빠져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을 시간이었다.

언제 봐도 웅장하다. 그리고 이곳이 세계 경제의 중심이란 생각이 들 때마다 많은 생각에 잠긴다.

얼마나 지났을까.

커피숍 문이 열리며 황인혜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강철아, 갑자기 웬 일이야. 무슨 일 생겼어?”

“하하… 내가 누나 좋아하잖아요. 보고 싶어서 왔죠. 설마 관장님이 아니라서 실망한 건 아니죠?”

“그럴 리가 있니. 난 성호 씨보다 우리 강철이 보는 게 더 좋아.”

“그런데 왜 들어오면서 내 옆자리를 확인했어요. 그것도 아주 날카롭게.”

“호호… 그거야 껌딱지처럼 붙어 다니는 사람이 안 보이니까 그렇지.”

처음에는 윤성호 이야기만 나오면 질색하던 그녀가 이제는 자연스럽게 농담으로 받아들였다.

거의 3년이 다 되어가면서 그녀와 윤성호는 언제부턴가 일주일에 한두 번씩 몰래 데이트를 하는 사이로 발전되어 있었다.

“누나, 이번 주 토요일에 뭐 해요? 혹시 시간 나시면 나랑 데이트하실랍니까?”

“너, 연상 좋아하니?”

“누나처럼 매력적인 여자라면 충분히 좋아할 만하죠. 어때요, 내가 대시하면 받아줄래요?”

“죽는다.”

“하하하… 누나가 날 좀 도와줄 일이 있어요. 그런데 조금 멀리 가야 돼요.”

“어딜 가는데?”

“텍사스, 오스틴.”

“별일 없긴 한데 무슨 일인지 알아야 가든지 말든지 할 거 아니야. 너 혹시 나 납치하려는 건 아니지?”

“이건 엄청난 비밀이라서 비행기 타면 그때 이야기해 줄게요. 그리고 납치한다 해도 누나는 봉 잡는 거잖아요. 나같이 젊고 멋진 놈이 납치하면 두 팔 벌려서 환영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그거야 그렇지. 그런데 성호 씨도 가는 거야?”

“아뇨, 관장님은 주업이 낚시잖아요. 덕분에 맨날 매운탕을 먹느라고 내가 죽을 판입니다. 대신 같이 갈 사람이 한 명 있어요.”

“누구?”

“제 여자 친구요.”

* * *

끊임없이 생각한다.

과거의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 지금 이 시기에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결정을 내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최강철은 시간이 날 때마다 고민을 거듭했다.

지금 통장에는 럼블과의 계약으로 인해 100만 달러가 들어와 있었다.

선점.

복싱으로 인해 정신없이 보내다 보니 안전한 주식 투자를 제일 먼저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선점에 대한 강한 욕구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랬기에 최강철은 몇 달 전부터 그에 대한 조사를 해왔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마이크로 소프트였다.

여기저기 전화를 하고 수소문해 본 결과, 이미 마이크로 소프트는 최초로 퍼스널 컴퓨터를 생산하고 있는 IBM과 MS-DOS에 대한 독점 계약을 끝내고 이윤이 커지면서 사업 확장에 여념이 없는 상황이었다.

늦었다.

누가 막대한 이윤이 창출되고 있는 상황에서 투자를 받아준단 말인가.

무조건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해서 어려움에 있는 잠룡을 선택해야만 자신의 투자는 이루어질 수 있었다.

따라서 그가 선택한 것이 바로 텍사스였다.

텍사스에 있는 그를 찾기 위해 정보 수집 회사를 세 군데나 동원해서 한 달 만에 간신히 찾아낼 수 있었다.

그를 찾아내자마자 투자 전문 회사의 등록을 미친 듯이 서둘렀다.

자신의 생각대로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한 그를 잡을 수만 있다면 황금 알을 낳은 거위를 얻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바로 오늘 비행기를 타고 4시간만 움직이면 드디어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진다.

미리 3번이나 전화 통화를 해서 약속을 받아냈기 때문에 이제 만날 일만 남았다.

자신보다 어린 친구.

불과 22살의 어린 나이로 학교마저 그만두고 자신의 꿈을 위해 달려 나가는 위대한 탐험가를 말이다.

* * *

서지영은 최강철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와 고민에 사로잡혔다.

그녀가 죽어라 공부해서 세계 최고라는 펜실베이니아 경영학과에 입학한 것은 아버지가 죽고 배다른 오빠들이 그룹의 경영권을 장악하면서 그녀와 그녀의 엄마를 미국으로 쫓아낸 것이 가장 커다란 이유였다.

삼류 드라마가 따로 없다.

그룹의 회장과 젊은 아가씨의 만남. 그로 인해 태어난 그녀.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발생된 재산 싸움과 직계 자식들로부터 이방인이라고 치부되었던 그녀와 엄마에게 떨어진 칼날.

그 모든 것이 삼류 드라마다.

그럼에도 막상 직접 현실이 되어 버린 이 더러운 상황은 그녀에게 커다란 상처를 줄 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중학생 시절 친구들과 헤어져 머나먼 미국 땅으로 쫓겨나던 순간 그녀를 차디찬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복 오빠들을 향해 반드시 다시 돌아오겠다는 다짐을 했다.

비록 그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 조건으로 꽤 많은 돈을 주었으나 그 약속은 강압에 의한 것이었으니 지킬 이유가 없었다.

아무도 모르는 미국에 와서 힘든 나날들을 보내며 살았다.

모든 것이 낯설었고 말도 통하지 않는 이곳에서 버티며 견뎌온 시간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올 정도로 힘든 시간이었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비밀. 가슴속에 비수처럼 찔려져 있는 고통으로 더욱더 밝은 웃음을 짓고자 노력했지만 혼자 있으면 끝없는 외로움에 시달렸다.

그는 하늘이 푸르렀던 어느 날 마치 거짓말처럼 나타나 자신의 가슴속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지금은 그를 생각하면 웃음이 떠오르는 남자가 되어 있었다.

전도양양한 펜실베이니아 학생이 그 좋은 일류 기업들을 팽개치고 이제 막 시작하는 투자 전문 회사에 이름을 올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의 제의가 왔을 때 이미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곳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랬기에 그다음 날 미련 없이 같이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그와 함께 투자 전문 회사의 등록을 마쳤다.

마이더스 CKC.

이미 최강철은 회사의 이름을 지어놓은 상태였는데 모든 서류를 완벽하게 구비해 놓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등록 서류에 무한 책임 사원, 즉 대표이사 자리에 적혀 있었고 최강철의 이름은 유한 책임 사원란에 기재된 상태였다.

걱정할 이유는 없었다.

최강철은 사모펀드 쪽만 전념한다고 했고 자신의 자금만 가지고 운용한다고 했으니 그녀가 대표이사라 해도 책임질 일은 거의 없었다.

더군다나 시간이 지나자 슬그머니 욕심이 들기 시작했다.

일류 회사에 들어가서 말단으로 시작하는 것보다 신생 회사였지만 경영을 전담할 수 있다면 훨씬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록 절차는 간단했고 바로 삼 일 전 등록이 완료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부지런히 걸어서 공항으로 들어가자 최강철이 멀리서 손을 흔드는 게 보였다.

첫 출장이다.

이 남자는 학교 마칠 때까지는 일을 시키지 않겠다고 하더니 회사가 등록되자마자 불과 며칠 만에 출장가자는 제안을 해와서 그녀를 놀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전혀 투정조차 부리지 않았다.

그녀가 마이더스에 이름을 올린 건 그와 함께 있고 싶다는 마음이 무엇보다 컸기 때문이었으니 즐거운 마음으로 여기까지 달려왔다.

“조금 늦었네.”

“응, 차가 막혔어.”

“인사해. 황인혜 씨야. 아주 유능한 회계사고 내 복싱 매니저이기도 해.”

“아, 안녕하세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강철 씨가 엄청 아름다운 분이라고 그러던데 직접 보니까 들은 것보다 훨씬 아름다우시네요.”

“호호… 그런 거짓말 듣기 좋아요. 자주 해주세요.”

“정말이에요.”

서지영이 입을 손으로 가리며 웃자 황인혜의 시선이 싸늘하게 최강철을 향해 돌아갔다.

전혀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서지영의 외모가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야, 최강철. 너 일부러 나 데려온 거지. 비교되라고?”

“무슨 말씀을… 그렇게 정확하게 하세요. 하하하…….”

“나 참 기가 막혀서. 이렇게 예쁜 여자 친구가 있으면서 왜 나 같은 노인네를 동반하자고 했는지 모르겠네. 둘이 손잡고 신나게 데이트나 하면 될 것이지?”

“말했잖아요. 놀러가는 게 아니라 일하러 간다고.”

“좋아, 그럼 털어놔 봐. 도대체 얼마나 큰 비밀이기에 지금까지 내용도 말해주지 않고 바쁜 사람을 오라 가라 한 거니?”

“누나, 난 누군가를 만나러 가요. 투자하기 위해서.”

“투자. 네가 무슨 투자를 해?”

“텍사스에 아주 좋은 아이템을 가지고 사업을 시작한 친구가 있어요. 그래서 걔한테 투자를 하려고 해요. 누나를 같이 가자고 한 건 그 친구의 재정 상황에 대한 판단과 향후 투자 했을 때의 이윤 배분, 그리고 회계적 처리, 공증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얘가 갑자기 무슨 소릴 하는지 모르겠네. 네가 투자를 왜 해, 권투 선수가?”

“무슨 그런 질문을 당연하듯이 합니까. 그거야 돈 벌려고 그러는 거죠.”

“투자는 얼마나 하는 건데?”

“그 친구가 지분을 얼마나 내놓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최대 100만 달러 정도는 생각하고 있어요.”

“그게 무슨… 너 100만 달러가 누구 집 애 이름인 줄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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