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76화 (76/308)

[76]

* * *

나는 다시 돌아오면서 어떤 삶을 살고 싶어 했던가.

전생에서 겪었던 그 비참한 인생.

남에게 치이고 가난에 시달리며, 가족이 망가지는 것을 찢어지는 가슴으로 지켜봐야 했던 그 아픔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다.

그랬기에 나는 이번 삶에서는 누구보다 행복하게 사는 게 꿈이었다.

그 누구에게도 당당하게 맞설 수 있고 풍족한 돈을 벌어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마음껏 해보면서 인생을 즐기고 싶었다.

내가 복싱을 선택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집안의 막내아들로서 단기간에 막대한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 그것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운명이자 필연이다.

루시퍼가 나에게 선사해 준 지치지 않는 체력과 운동신경은 복싱에 최적화된 것이었고 새로 얻은 강철 같은 심장은 시합을 할 때마다 전율 같은 흥분과 투지를 불러일으켰다.

점점 돈이 쌓이면서 수시로 생각에 잠겼다.

나에게는 루시퍼가 준 천재적인 두뇌와 더불어 미래에 대한 기억이 있었기에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삶에 대한 선택이 필요했다.

돈을 벌 수 있는 전제조건은 명확했다.

미래에 대한 기억이 있으니 기업을 운영해서 돈을 버는 것은 쉬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간단한 방법이 수도 없이 많은 이상 지금은 타인의 관여와 감시를 받으며 기업을 운영할 이유가 없다.

더군다나 현재는 자신의 기억이 명확하게 발생되는 시기가 아니었으며 본격적으로 복싱이 궤도에 오르고 있었으니 사업을 생각할 때가 아니란 판단을 내렸다.

그럼에도 투자 전문 회사를 준비하고 있는 것은 코앞으로 서서히 미국의 경제를 박살 낸 블랙 먼데이가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위기는 기회였고 미래를 아는 자에게는 더없이 커다란 행운으로 다가온다.

서지영에게 투자 전문 회사에 대해서 이야기한 이유는 훨씬 더 간단했다.

비록 그녀가 세계 최고라는 펜실베이니아의 학생이었으나 자신이 지닌 미래에 대한 지식을 감안한다면 그리 중요한 존재가 될 수 없었다.

그것은 뉴욕 맨해튼을 주름잡는 세계 최고의 전문가나 경영학의 대가들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능력이 부족해서 돈을 벌기 위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면 당연히 그래야 했겠지만 그에게는 그런 것이 필요 없다.

외로웠을 뿐이다.

돌아온 후 지금까지 5년의 시간 동안 새로운 인생을 전생처럼 비참하게 살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앞만 보며 살아왔기에 조금씩 쌓여온 외로움이 그녀를 붙잡게 만든 이유였다.

그녀가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할 때 이미 전부 알아본 투자 전문 회사의 설립 방법, 정부의 규제 등에 대해서 물은 것은 그녀와 조금 더 같이 있고 싶다는 마음과 다시 만났을 때의 어색함을 없애기 위함이었다.

누군가와 편하게 대화 할 수 있다는 즐거움을 가지고 싶었다.

비록 숙소에는 윤성호와 이성일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테지만 그들과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는 서지영과 친구들의 존재는 1년이 지난 지금 더없이 소중한 일상이 되어 있었다.

최강철은 오늘도 서지영과 그녀들의 친구들을 만나 저녁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언제부턴가 여유를 찾기 시작했다.

복싱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피지컬을 끌어 올리기 위해 미친 듯 운동에 열중했지만 피지컬이 완성되자 그럴 이유가 없어졌다.

그녀들은 이제 4학년으로 진학하기 때문에 고향에 돌아가지 않은 채 펜실베이니아에 머물고 있는 중이었는데 장래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누군가와 친분을 쌓으며 알아간다는 것은 인간이 지닌 기초 행동이지만 거기에는 수많은 고민과 갈등, 그리고 기쁨이 함께했다.

서지영으로부터 시작된 관계는 클로이와 수잔을 편안한 친구로 만들어주었다.

그녀들과 수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경영과 경제에 관한 의견도 많이 나누었으나 인생에 대한 고민과 사랑, 추억, 가족 등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것에 대해서는 절대 입을 열지 않았다.

믿어주지도 않겠지만 그런 것을 함부로 입에 올려 주목받는 건 말도 안 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가 집으로 돌아온 것은 저녁 10시가 다 되었을 때였는데 문을 열어준 윤성호의 입꼬리가 바짝 올라가 있었다.

“아주 거기 가서 살지 그러냐?”

“그렇지 않아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어요. 관장님하고 성일이는 낚시 때문에 보기 어려우니까 외로워서 힘들거든요.”

“그게 외로운 얼굴이구나. 내가 보기에는 즐거워서 미친놈 같아 보이는데.”

“하하… 그렇긴 하죠. 미녀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즐거운 게 어디 있어요. 관장님도 인혜 누나하고 데이트할 때 그런 느낌 없었어요?”

“야, 그건 즐거움이 아니라 노동이야.”

“왜요?”

“인혜 씨가 잠시도 긴장을 풀지 못하게 만들거든. 어째 그 여자는 시간이 갈수록 무서워지는지 모르겠다.”

“그건 관장님이 좋아해서 그래요. 점점 좋아지니까 점점 힘들어지는 거 아닐까요?”

“어려운 소리 하지 마라. 머리 아프다. 그런데 너 진짜 지영인가 걔하고 사귀는 건 아니지?”

“왜요. 사귀면 안 돼요?”

“조심해, 인마. 복싱 선수는 여자를 사귀는 순간 끝이야!”

“하아, 고리타분한 소리 또 하시네. 그럼 결혼해서 애까지 난 권투 선수들은 전부 뭐예요? 나, 보기보다 불쌍한 놈이라고요. 지금까지 독수공방. 응, 이 나이 되도록 관장님 감시하에 여자 친구 한 명 사귀어보지 못했는데 그런 소리가 나와요!”

“그런가?”

“관장님, 그러는 거 아닙니다. 나도 관장님처럼 사랑이란 거 해보고 싶다고요.”

“어머, 얘 봐. 큰일 날 놈이네.”

최강철이 고개를 빼 드며 항의하듯 대들자 윤성호가 두 눈을 동그랗게 만들었다.

말대로라면 이미 열렬한 사랑에 빠진 놈처럼 행동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눈에 담겨 있는 장난기를 본 순간 입맛을 다시며 오른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이 놈은 틈만 나면 자신을 놀리는 게 취미다.

“그런데 왜 기다렸어요. 무슨 일 있어요?”

“귀신같은 놈. 그건 또 어떻게 알았대?”

“관장님은 순진해서 얼굴에 다 나타나요. 우리가 어디 하루 이틀 같이 지낸 사입니까. 척 보면 착이죠.”

“내일 톰슨이 찾아온단다.”

“시합 잡혔답니까?”

“그건 아닌 것 같고, 너하고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어.”

“그렇군요. 그런데 성일이 이놈은 벌써 자요?”

즉시 감이 왔다.

시합이 잡힌 걸 알려주기 위해 톰슨이 직접 올 이유가 없었으니 그가 여기까지 오는 건 분명 계약 때문일 것이다.

럼블과의 계약 기간은 이제 두 달 남짓 남았을 뿐이다.

톰슨이 뜨면 황인혜가 반드시 따라온다.

처음에는 마지못해 오는 경우가 많았으나 요즘 와서 그녀는 이곳에 오는 걸 매우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강철, 잘 지냈나. 얼굴이 꽤 좋아 보이는구만.”

“해피 뉴 이어. 늦었지만 새해에는 좋은 일만 있길 바랍니다.”

“자네도 그러길 바라네.”

톰슨이 인사를 하면서 황인혜를 슬쩍 바라보았다.

그가 다시 입을 연 것은 눈치 빠른 황인혜가 윤성호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을 때였다.

“내가 여기 온 이유는 이미 눈치챘겠지만 계약을 연장하기 위함일세. 세월이 참 빠르지. 벌써 3년이란 시간이 지났으니 말이야.”

“시간은 쏘아진 화살이라고 하더군요. 절대 돌이킬 수도 붙잡을 수도 없는 것이죠.”

“자네를 처음 봤을 때가 지금도 생생하다네. 그때가 고등학교 2학년 때였지?”

“맞습니다. 세계 선수권 대회 때 봤으니까요.”

“지금도 그랬지만 난 자네를 볼 때마다 부담을 느낀다네. 자네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어. 꼭 노련한 사업가와 마주한 느낌이랄까?”

사실일 것이다.

그의 느낌이 그럴 수밖에 없는 건 시시때때 나타나는 자신의 노련함이 삐죽삐죽 그의 감성과 감각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톰슨 씨,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선수로 뛴 3년 동안 나로 인해 얼마나 돈을 벌었습니까?

“돈을 벌었을 거라 생각하나?”

“그럴 리는 없었겠죠. 아직 빅게임을 만들지 못했으니 손해를 보지 않았다면 다행일 겁니다.”

“자네 말이 맞네. 우리가 자네를 데려온 것은 미래를 위함이었네.”

“만약에 내가 계약을 하지 않겠다면 어쩔 생각입니까?”

“그렇게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네.”

“왜 그렇게 생각하죠?”

“내가 본 자네는 누구보다 의리와 정이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한 달 전에 누군가가 나를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밥 애런 프로모터의 챨리 헌이라고 하더군요.”

“정말인가?”

“그 사람은 나한테 새하얀 한 장의 종이를 내밀었습니다. 백지수표는 럼블 쪽도 많이 쓰는 거니까 잘 아시겠네요.”

“음…….”

“그 사람은 나한테 어떤 조건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믿기십니까?”

“믿네. 그래서 뭐라고 그랬나?”

“싫다고 했습니다. 아직 럼블 쪽에 신세를 갚지 못했거든요.”

“정말인가?”

“나는 거짓말을 싫어합니다. 그리고 톰슨 씨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따라서 럼블이 합당한 계약 조건을 내민다면 나는 톰슨 씨와 계약할 생각입니다.”

“고맙네. 우리가 줄 수 있는 선에서 최대로 맞춰보겠네. 그러니 자네의 생각을 말해주게.”

“3년 계약, 계약금은 100만 달러. 경기 개런티는 탑다운 방식으로 30만 달러부터 시작하는 거로 하죠. 탑은 100만 달러, 다운은 10만 달러입니다. 하지만 제가 세계 챔피언에 올랐을 때는 별도 계약을 하겠습니다. 괜찮겠습니까?”

“좋네, 그렇게 하지.”

톰슨은 최강철의 제안을 즉시 받아들이며 희미하게 웃었다.

기가 막히다.

자신이 최후에 제시하고자 했던 계약 조건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조건을 내밀었으니 윗선에 보고해야 할 이유도 없었고 시간을 끌 이유도 없었다.

늘 생각하는 거지만 최강철은 정말 머리가 좋은 것 같았다.

그랬기에 그는 일차적으로 가져왔던 계약서를 아예 꺼내 들지도 않았다.

“고맙네, 곧 계약서를 작성해서 가져오겠네.”

“서두르지 않아도 됩니다. 내 마음은 변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런데… 타이틀전에 관한 진척은 없습니까?”

“지금 움직이고 있는 중이야. 더스틴 브라운 쪽과 지금 협상 중이니까 조금만 더 기다리게. 그놈들은 경기를 치른 지 한 달밖에 안 된다면서 자꾸 뒤로 빼고 있어.”

“겁쟁이군요.”

“강철, 농담하지 마. 자네도 그놈을 잘 알면서 그러나.”

“사람은 겉으로 보는 것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혹시 압니까, 그놈이 엄청난 겁쟁이일지.”

최강철이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톰슨을 향해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하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더스틴 브라운의 별명은 링의 도살자였다.

25전을 싸워서 지금까지 무패 가도를 달리며 북미 타이틀을 5차례 방어하고 있었는데, WBA와 WBC 랭킹 7위를 차지하고 있는 중이었다.

현란한 테크닉을 보유했고 21KO승을 기록할 정도로 펀치력도 뛰어나 강력한 차세대 챔피언으로 거론되는 놈이었다.

최강철이 웃자 잠시 놀란 눈을 했던 톰슨의 표정도 비실거리며 풀렸다.

이 와중에 농담하는 최강철의 배짱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상대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도 없으니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이놈은 전사 중의 전사다.

“내가 알기로 그놈 쪽 움직임이 이상해. 협상이 진행되지 않는 걸 보면 뭔가 있는 것 같아.”

“뭐가 말입니까?”

“아무래도 소속 프로모션을 옮길 생각인 모양이야. 그동안 더스틴 브라운은 세계 챔피언에 도전하지 못하는 걸 가지고 불만이 많았다더구만.”

“럼블 측은 접근하지 않았습니까?”

최강철이 정곡을 찔렀다.

더스틴 브라운은 현재 웰터급의 강력한 신성중 하나로 그만큼 매력이 넘치는 선수였으니 럼블 쪽도 접근했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톰슨은 여전히 웃음을 머금은 채 최강철을 바라보며 여유 있게 입을 열었다.

“우리가 왜? 럼블에는 최강철이 있는데 뭐 하러 그놈에게 접근한단 말인가. 강철, 내 보스 돈 킹은 무식해도 의리는 있는 사람일세. 더군다나 우린 자네를 그놈보다 훨씬 높게 평가한다네.”

“듣기 좋은 말이군요.”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야. 솔직히 말하지. 그놈에게 밥 애런이 붙었어. 아마 자네를 영입하려다가 안 되니까 손을 쓴 것 같아. 우리도 뒤늦게 알았네.”

“일이 꼬일 수도 있겠군요. 밥 애런은 저한테 맺힌 게 있을 텐데요?”

“정확하게 말하면 자네에게 맺힌 게 아니라 내 보스에게 맺힌 거지. 하지만 걱정하지 말게. 밥 애런이 아무리 도망가도 자네와 더스틴 브라운은 붙을 수밖에 없어. 우리가 반드시 그렇게 만들 테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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