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74화 (74/308)

[74]

차를 파킹하고 올라가자 캠퍼스의 익숙한 풍경이 나타났다.

벌써 펜실베이니아 대학에 온 것도 8번이나 되었기 때문에 오랜만에 왔으나 낯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경영학 분야에서 세계 최고 권위자 중 한 명으로 불리는 빈 스카터 교수의 강의 시간은 오후 2시부터 시작되어 4시에 끝난다.

지금 시간은 오후 1시 30분.

강의 시간에 맞추기 위해 차를 타고 오다가 휴게소에 들러 간단하게 샌드위치로 배를 채웠더니 오히려 시간이 남았다.

한편으로는 성처럼 보이고 어떤 건물은 궁전처럼 보이는 대학 건물들을 살피며 천천히 걸었다.

유펜,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또 다른 이름이다.

1740년 벤자민 플랭클린의 교육 이념에 따라 설립된 학교로 경영학 쪽에서는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건물들은 역사와 전통을 품은 채 올곧게 서 있었는데 비슷하면서도 모두 다른 모양을 지니고 있었다.

한참 동안 건물들을 둘러보다 시간에 맞춰 강의실로 향했다.

그녀의 모습을 보게 된 것은 강의실로 가는 길목에 놓여 있는 벤치에서였다.

항상 같이 다니는 여학생들과 서지영은 밝게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자신을 본 모양이다.

여자들답게 웃고 떠들며 수다를 떨던 그녀들의 눈이 한꺼번에 그를 향해 날아왔다.

그냥 본 것이 아니라 놀란 시선들이었다.

똑바로 걸어가 그녀들을 향해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 강의실로 걸어 들어갔다.

뒷골이 당겼으나 되돌아보지 않았다.

자신이 여기에 온 것은 수업을 듣기 위함이었지 그녀를 보기 위함이 아니었다.

습관처럼 맨 뒷자리에 앉았다.

이미 강의실은 학생들이 반쯤 들어찼는데 그동안의 경험으로 봤을 때 강의가 시작되면 70명이 훌쩍 넘는 인원이 들어온다.

참 배짱도 좋다.

몰래 수업을 훔쳐 들었으나 최강철은 이곳에 올 때마다 자신이 펜실베이니아 학생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의자에 앉아 강의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조심스러운 사람의 발소리가 들리더니 옆자리에 가방이 놓인 것은 그가 턱을 괴고 학생들을 바라볼 때였다.

“앉아도 되죠?”

그녀다.

늘 친구들과 창가 자리에 앉아 수업을 듣던 서지영이 다기와 옆자리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형식적인 물음이기에 대답조차 하지 못했다.

이미 의자에 앉은 사람에게 안 된다고 말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그녀는 옆자리에 앉은 후 주섬주섬 책을 꺼내더니 더 이상 말을 붙이지 않고 전면에 시선을 둔 채 꼼짝하지 않았다.

잠시 동안 그녀를 바라보다 눈을 돌렸다.

그녀에게서 예쁜 향기가 났다. 말없이 앉아 있었음에도 괜히 신경이 쓰일 만큼 예쁜 향기였다.

빈 스카터 교수가 들어오면서 곧 강의가 시작되었다.

그는 세계 최고의 석학답지 않게 강의 시작 전 농담으로 학생들의 주의를 끌어모았고, 중간중간 강의에 관한 질문을 학생들에게 던지는 버릇이 있었다.

“여러분, 식사 맛있게 하셨나요?”

“예.”

“오늘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변화시킨 5명의 유대인 어록에 대해서 말하겠습니다. 먼저 모세는 율법이 최고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는 사랑이라고 했으며 마르크스는 자본이라고 했고 프로이트는 섹스라고 했죠. 자, 그럼 질문을 던지겠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무엇이라고 했을까요?”

“…….”

그의 질문에 학생들이 아무런 대답을 못 했다.

이것이 유머인지 아니면 진짜 어록에 관한 질문인지 교수가 던진 질문의 의도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반응에 빈 스카터 교수의 얼굴에서 사람 좋은 웃음이 떠올랐다.

“아직도 여러분은 저에 대한 특징을 파악하지 못했군요. 경영의 처음은 인간관계로부터 시작되는 것이지요. 사람의 특성을 파악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뛰어난 지식이 있다 해도 결국 경영에 실패하게 됩니다. 자, 그럼 질문을 던진 내가 해답을 알려주겠습니다. 아이슈타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야!’. 이해되시나요?”

결국 농담이다.

뒤늦게 의도를 알아챈 학생들이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많은 학생이 그저 고개만 끄덕이며 뭔가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의 말은 유머였으나 학생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그의 강의 주제는 자원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것이었다.

뉴욕대의 교수들과 역시 다르다.

그의 강의는 언제나 학문에 그치지 않고 실례와 이론을 접목시켜 진행되는데 자원 안에는 석유와 주요 광물, 그리고 국가가 지닌 문화와 예술에 관한 것까지 총망라되어 있었다.

“자, 그럼 여기서 여러분의 의견을 듣겠습니다. 지금까지 나는 자원이 경제에 얼마나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지 사례를 들어 설명했습니다. 그럼 질문, 지구의 자원이 곧 고갈된다면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이야기할 사람은 손을 들어주세요.”

빈 스카터 교수가 질문을 던지고 기다리자 여기저기서 꽤 많은 학생이 손을 들었다.

확실히 한국과는 다르다.

만약 한국의 강의실이었다면 학생들은 교수의 눈을 피하느라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한정된 자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냐에 따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많은 차이를 보일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석유 같은 경우 오일쇼크 발생 시 전 세계 국가의 경제를 수렁으로 몰아넣을 만큼 커다란 영향을 미쳤습니다. 하지만 석탄의 경우는 또 다르겠죠. 석탄은 세계 경제에 미미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고갈된다 해도 경제와의 동조성은 적을 거라 판단됩니다…….”

“자원의 고갈은 지구 전체의 괴멸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한 경제적인 가치를 넘어 근본적인 삶의 유지를 위협하면서…….”

“자원은 무기가 될 것 같습니다. 동시에 모든 자원이 고갈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서 중요 자원을 보유한 국가는 세계 경제를 주도할 것이고 자원을 보유하지 못한 국가는…….”

꽤 많은 학생의 대답이 이어졌다.

최고의 대학에 다니는 천재들답게 대답의 수준이 상당히 높았다.

천천히 강의실을 훑던 빈 스카더 교수의 시선이 최강철 쪽으로 고정된 것은 더 이상 손든 학생이 보이지 않을 때였다.

“거기, 끝에 앉아 있는 학생. 자네 이름이 뭔가?”

여유 있게 학생들의 대답을 듣고 있다가 날벼락을 맞았다.

교수가 자신을 손가락으로 지목해서 이름을 묻는 순간 최강철은 급히 옆에 앉아 있는 서지영을 봤다.

손가락의 방향이 정확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이 아니라 서지영을 지목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빈 스카터 교수의 손가락은 방향을 조절해서 정확하게 자신을 가리키고 있었다.

“거기 여학생 말고 자네 말이야!”

이런, 젠장.

교수가 다시 한번 말하자 모든 학생의 시선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이젠 더 이상 버티다가는 정말 바보가 될지도 몰랐다.

“최강철입니다.”

“나는 자네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군. 어디 말해보게.”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

다른 학생들이 말할 때는 얼굴에 웃음을 짓고 있던 빈 스카터 교수는 고집스러운 표정으로 반드시 대답을 들어야겠다는 듯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더군다나 학생들은 이름을 대자 웅성거리며 놀람을 숨기지 못했는데 톰을 비롯해서 텔레비전에 나온 그의 모습을 본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잠시 주변을 바라본 후 입을 열었다.

이미 웅성거리던 학생들은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조용해졌는데 그가 무슨 말을 꺼낼지 상당히 궁금한 표정이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자원이 경제와 커다란 연관 관계를 맺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자원 고갈되어도 경제가 수렁에 빠지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왜 그런가?”

“하나의 자원이 고갈되면 인류는 그에 상응하는 새로운 자원을 개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원 고갈은 경제의 침체를 불러일으키는 것보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경제 체제를 구축하는 기회로 작용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볼 수 있겠나?”

“석유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원유 생산국이 아닌 나라들은 석유가 무기화되어 가는 현실을 우려해서 태양열을 이용하거나 풍력을 이용한 에너지 개발을 오래전부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시스템은 더욱더 증진되어 어쩌면 수소나 배터리를 이용한 전기 자동차 등 신기술의 개발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음…….”

최강철의 대답에 빈 스카터 교수의 입에서 무거운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가 자원 경제를 연구하면서 가장 고민스러웠던 부분에 대한 실마리가 일개 학생의 입에서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지금 최강철이 말한 이론은 그를 비롯해서 경제학 석학들이 한창 연구 중인 과제의 일부였고 아직 해답조차 내놓지 못하고 있던 것들이었다.

“자네, 우리 학교 학생이 아니란 걸 진즉부터 알고 있었네. 어디 학교 학생인가?”

“한국의 서울대 경영학과 학생입니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게 아니고?”

“그렇습니다.”

“정말 획기적인 대답이었네. 이게 자네의 생각인가 아니면 어디서 공부했던 건가?”

“저의 생각입니다.”

거짓말이다.

자신이 말한 것은 전생에서 살 때 우연히 봤던 유명한 경제학자 폴 로머의 자원 경제학의 일부에서 인용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빈 스카터 교수가 알리가 없으니 최강철은 태연하게 거짓말을 했다.

재밌는 일이지만 자신의 말은 그를 충격 속으로 몰아넣은 것 같았다.

“자네, 혹시 기회가 된다면 우리 와튼 스쿨에서 공부해 볼 생각이 없나?”

“저는 지금 공부를 할 수 없는 형편입니다. 제가 이곳에 온 것은 교수님의 강의를 꼭 듣고 싶어서였을 뿐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학교 측의 허락을 받지 않고 몰래 강의를 들은 것은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할 일이 아닐세. 학문을 배우는 것은 누구에게나 열린 일이잖은가. 언제든지 와서 공부해도 자네를 나무라는 일은 없을 거야. 하지만 그 사정이란 건 알고 싶구만.”

빈 스카터 교수가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최강철을 바라보았다.

언제부턴가 그의 모습을 발견했음에도 지금까지 내색을 하지 않은 것은 가끔가다 이렇게 펜실베이니아의 명성에 이끌려오는 학생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학문을 배운다는 것은 도둑질이 아니라는 평소 그의 신념이 최강철의 존재를 외면하게 만든 이유였다.

그때 누군가로부터 그를 깜짝 놀라게 만드는 말이 흘러나왔다.

“교수님, 저 사람은 최근에 벌어진 헌즈 대 헤글러의 오픈 게임으로 출전했을 만큼 대단한 실력을 가진 복싱 선수입니다.”

최강철은 수업이 끝나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학생들이 그가 복싱 선수라는 걸 알아봤기 때문에 귀찮은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치기다.

미래의 경제 이론을 꺼내 들어 교수를 놀래게 만들었기 때문에 강의실에 있었던 학생들은 전부 그의 존재에 대해서 궁금증을 숨기지 못했다.

뒤에서 급한 걸음이 다가온 것은 산책로를 지나 주차장으로 향하고 있을 때였다.

“강철 씨, 잠깐 기다려요!”

그녀다. 서지영이 빠르게 달려오며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무슨 일이죠?”

“헉, 헉. 시간 있으면 잠깐 저랑 이야기 좀 해요.”

“저와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았나요?”

“잠깐… 숨 좀 돌리고요.”

허리를 접은 그녀가 한참 동안 헐떡거리며 숨을 고르는 걸 보면서 최강철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서지영은 허리를 굽힌 채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혹시라도 그냥 갈까 봐 경계하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잠깐 시간이 지나자 서지영이 허리를 펴고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왔다.

“설마, 그냥 가려고 한 건 아니죠?”

“가려던 거 맞는데요.”

“우리 할 이야기가 있잖아요. 그런데 그냥 가면 어떡해요.”

“예?”

“지금 나한테 화난 거 맞죠. 그래서 일부러 못 본 체한 거잖아요?”

눈을 들어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을 받자 저절로 입맛이 당겨졌다.

맞는 말이다. 어쩌면 자신의 말을 믿지 못한 그녀에게 원망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본체만체한 건지도 모른다.

그랬기에 최강철은 쓴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화난 거 아닙니다. 그렇다고 그리 유쾌한 것도 아니었죠. 말을 믿어주지 않는 걸 알면서 유쾌하다면 그놈은 머리에 나사가 빠졌거나 성인군자, 둘 중 하나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그동안 안 온 거예요?”

“그럴 리가요. 그동안 바빠서 못 왔을 뿐이에요.”

“뛰어와서 그런가 목말라요. 저번에 내가 커피 샀으니까 이번에는 강철 씨가 음료수 사주세요.”

거참, 환장하겠네.

이 여자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다.

결국 그녀와 함께 캠퍼스를 나서서 카페에 들어가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때부터가 고문이었다.

서지영의 사과는 단도직입적이었고 너무 적나라해서 듣는 순간 얼굴이 다 벌겋게 변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만합시다, 그런 얘기.”

“그럼 사과받아 주는 걸로 알고 더 이상 말하지 않을게요. 아, 속이 다 후련해요. 그동안 무척 미안했거든요.”

“원래 성격이 그렇게 솔직합니까?”

“내숭 떠는 성격은 아니에요.”

그녀가 유쾌하게 웃으며 남아 있는 음료수에 예쁜 입술을 가져다 댔다.

행동을 보니 음료수를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인 것 같았다.

“지영 씨, 궁금한 게 있는데 뭐 하나 물어봐도 됩니까?”

“뭔데요?”

“여기 학생들은 졸업하면 대체적으로 어디에 취직하죠?”

“그건 사람마다 다 달라요. 능력에 따라 스카우트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뭐라고 말하기가 그러네요. 하지만 대체적으로 물었으니까 대체적으로 말해줄게요. 여기 졸업생들은 대부분 미국 내의 일류 기업들에 스카우트돼요. 강철 씨도 알겠지만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베스트 중에 베스트들만 모여 있거든요.”

“혹시 투자 전문 회사에 가는 사람들도 있습니까?”

“그거야 당연히 있죠. 거기도 경영의 일부잖아요. 특히 투자 전문 회사는 조건이 좋아서 졸업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기업이에요.”

“그렇군요. 지영 씨도 그런가요?”

“그럼요, 저도 그쪽 분야에서 일해보고 싶은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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