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73화 (73/308)

[73]

* * *

최강철은 경기를 끝내고 나서 몰려든 기자들로 인해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은 아니었으나 기자들의 관심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대단했다.

호텔에서 하루를 더 머무는 동안 한국 기자들은 물론이고 미국 기자들까지 무려 50여 명과 인터뷰를 했다.

헤글러와 헌즈가 벌인 세기의 빅 매치로 인해 메인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그가 벌인 치열하고도 멋진 경기가 화면을 타고 전 세계로 퍼져 나가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뜨거워졌기 때문이다.

“라이언 캐슬러는 훌륭한 선수였습니다.”

“저는 가끔 아웃복싱도 하지만 보신 것처럼 강렬한 인파이터입니다.”

“어떤 상대와 붙어도 두렵지 않습니다. 다음 경기 역시 이번처럼 멋진 경기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제 목표는 세계 챔피언입니다. 2년 이내에 레너드와 한판 승부를 벌이고 싶습니다.”

최강철이 기자들에게 한 말이었고 이 말들은 여과 없이 신문 기사로 변해서 사람들 속으로 퍼져 나갔다.

사람들은 그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서 비웃지 않았다.

8전 8KO승을 거둔 신진 강자.

더군다나 그가 보여준 시합은 사람의 피를 들끓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기에 복싱 팬들은 최강철의 인터뷰 기사를 보며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MBC 스포츠 뉴스입니다. 어제 벌어진 헌즈 대 헤글러의 오픈 경기로 출전했던 최강철 선수가 세계 최강인 레너드 선수와 시합을 갖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최강철 선수는 어제 벌어진 경기에서 라이언 캐슬러 선수를 7회 KO로 누르며 8전 8KO승을 거두었으며 조만간 북미 랭킹에 오를 거란 전망입니다. 최강철 선수가 몇 번의 시합을 거쳐 북미 챔피언에 오른다면 레너스 선수와의 일전이 그저 희망이 아닌 사실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민영환 기자, 최강철 선수가 어떤 선수인지 다시 한번 소개해 주십시오.

-최강철 선수는……

최우용은 가족들과 둘러앉아 과일을 먹다가 텔레비전에서 아들에 대한 뉴스가 나오자 눈을 부릅뜨고 시선을 고정시켰다.

화면에서는 어제 벌어졌던 시합 장면이 하이라이트로 편집되어 방송되고 있었는데 그가 모르던 내용들이 기자들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아내는 화면에서 최강철의 모습이 보이자 벌써부터 눈물을 글썽였다.

시합을 보면서 얼마나 애간장을 태웠는지 모른다.

지금도 아들이 불의의 일격을 받아 휘청하던 장면을 생각하면 가슴이 벌렁거릴 정도였다.

“엄마, 왜 또 울어요. 울지 마요.”

“아녀, 우는 거 아니다.”

“강철이 잘하고 있잖아요. 저렇게 텔레비전까지 나올 정도로 미국에서 잘하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오늘 회사에 가니까 전부 난리가 아니었어요. 전부 강철이 이야기 하느냐고 일을 제대로 못 할 정도였다니까요.”

최강희가 분위기를 전환시키려는 듯 떠들어대자 최강숙이 맞장구를 쳤다.

자랑스러운 동생.

그녀들은 최강철의 누나라는 사실로 인해 오늘 하루 종일 직원들에게 모든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안다, 엄마가 왜 우는지.

엄마는 분명 아들이 보고 싶어서 눈물이 흘렀을 것이다.

“그런데 강철이 너무해. 2년이나 지났는데 한 번쯤 왔으면 좋겠다.”

“바쁘니까 그런 거지. 계속 시합을 하는데 어떻게 오겄어.”

최강숙이 불쑥 아련한 눈으로 말을 하자 최우용이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중얼거렸다.

똑같은 마음이다.

지금이라도 문이 열리며 아들이 들어오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헛된 망상이란 걸 안다.

그럼에도 보고 싶다.

가족들은 잠시 대화를 멈추고 저마다의 생각에 잠긴 채 텔레비전 화면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어떤 말로 서로를 위로할지 생각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때르릉, 때르릉…….

거실에 놓여 있던 전화기에서 갑자기 신호음이 들리기 시작한 것은 텔레비전에서 최강철의 모습이 사라지며 프로 야구에 대한 소식이 전해질 때였다.

최우용이 손을 뻗어 전화기를 들자 국제전화라는 교환의 메시지가 전해졌다.

눈이 부릅떠졌고 수화기를 잡은 손에 힘이 가해졌다.

“여보세요. 강철이냐!”

-아버지, 잘 계셨죠. 저 강철이에요.

“이눔아. 몸은 어뗘, 괜찮은겨?”

-예, 괜찮아요.

“수고혔다. 수고혔어… 그래, 지금 어디냐?”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호텔이에요.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 뉴욕으로 돌아가요.

“힘들었겄다. 이제 시합 끝났으니까 푹 쉬어.”

-그럴 생각입니다. 엄마는 옆에 계세요?

“그려, 잠깐 기다려라.”

아들의 전화란 걸 알고 부리나케 달려와 옆에 쪼그린 채 귀를 기울이고 있던 류순덕이 남편으로부터 수화기가 넘어오자 급히 입을 열었다.

“강철아, 엄마다.”

-엄마, 잘 계시죠?

“그럼, 나야 무슨 일 있겄냐. 너만 잘 있으믄 여기 있는 우리가 무슨 일이 있겄어.”

-엄마, 다리는 어떠세요?

“괜찮어. 이젠 아무렇지도 않어.”

-아프시면 무조건 병원에 가셔야 해요. 알았죠?

“응, 그려. 강철아… 그런데 언제 들어오는 거니……?”

-조금 더 있어야 해요. 계속해서 시합이 잡히기 때문에 지금은 돌아가기 힘들어요.

“그래도 시간 내서 한번 들어오면 안 되겄냐… 보고 싶어. 우리 아들… 너무 보고 싶어, 이눔아.”

-저도 보고 싶어요. 잠자리에 들 때면 엄마 얼굴이 너무 보고 싶은걸요.

“흐윽…….”

류순덕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막내아들.

늘 옆에서 강아지처럼 따라다니던 아들은 이제 성인이 되어 머나먼 미국 땅으로 떠나더니 돌아올 기약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들의 목소리가 마치 꿈결처럼 들려와 그녀의 그리움을 폭발시켜 눈물이 흐르게 만들었다.

사랑하는 아들… 아들이 미치도록 보고 싶다.

* * *

클리프턴으로 돌아온 최강철은 편안한 휴식을 취하며 시간을 보냈다.

격렬한 경기를 치렀기 때문인지 정타를 맞지 않았는데도 온몸이 욱신거렸으나 이틀 정도 쉬고 나자 원상태로 몸이 회복되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피터를 포함해서 레드불스 선수들은 집으로 찾아와 승리의 축하 인사를 전하며 떠들썩한 분위기 연출했다.

그들은 텔레비전을 체육관에서 함께 봤다며 떠들어댔는데 한동안 시합에 관해 궁금한 것들을 묻다가 밤이 늦어서야 돌아갔다.

다시 평온이 찾아왔다.

윤성호와 이성일은 집으로 돌아오자 다음 날부터 낚싯대를 들더니 코빼기조차 보이지 않았는데 아침이 되면 총알같이 둘이 손잡고 호수로 향했다.

몸이 원상태로 회복되자 최강철은 옷을 차려입고 맨해튼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골드만삭스 뉴욕 지점이었다.

돈 킹은 약속한 대로 보너스를 포함해서 27만 달러를 입금했기 때문에 두 사람의 몫을 떼고 나머지 돈을 추가로 투자하기 위함이었다.

돈을 은행에 묶어두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다.

돈은 돈을 부르는 괴물이었고, 사람의 인생을 성공시키기도, 나락에 빠뜨리기도 하지만 결코 방치해서는 안 되는 보물이기도 했다.

어디를 가든 증권사만큼 화려한 곳도 없다.

골드만삭스 뉴욕 지점은 금융의 중심지 맨해튼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들어가는 입구부터 고급스럽고도 화려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천천히 걸어 창구에 도착하자 자신의 얼굴을 알아본 도널드가 마치 죽었다가 돌아온 자식을 본 것처럼 요란하게 뛰어나오는 게 보였다.

처음 주식을 시작할 때 상담한 것도 그였고 계좌를 개설해 준 것도 그였다.

“미스터 최, 오랜만입니다.”

“잘 지냈습니까?”

“당신의 경기를 봤습니다. 정말 대단했어요. 나는 당신이 그렇게 유명한 복싱 선수인 줄 정말 몰랐습니다.”

두 손을 맞잡은 그의 손에서 진심이 우러나왔다.

의외였을 것이다.

수많은 고객을 보유하고 있겠지만 텔레비전에 나올 정도의 유명 인사를 자신이 관리한다는 사실이 그를 흥분케 만든 것 같았다.

도널드는 한쪽에 마련된 VIP 상담석에 최강철을 데려간 후 직접 커피를 타와 탁자에 내려놓고 한동안 복싱 이야기를 했다.

그대로 놔두면 하루 종일이라도 복싱 이야기만 할 기세였다.

그랬기에 최강철은 슬며시 그의 말을 끊고 자신이 온 목적을 이야기했다.

“도널드 씨, 오늘 내가 여기에 온 건 내가 보유한 주식의 수익률이 궁금해서 온 겁니다. 지금 어떻게 됐는지 알 수 있을까요?”

“그럼요, 그렇지 않아도 오셨을 때 자료를 뽑아놓으라고 시켜놨습니다. 제가 가져올 테니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본론이 나오자 도널드가 빙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후 금방 다시 돌아와 최강철 앞에 서류를 내밀었다.

“여기 그동안의 미스터 최가 보유한 주식의 차트와 수익률 분석표가 있습니다. 3달 동안 15%의 수익률이 났습니다. 단기간에 꽤 큰 이익을 본 거죠.”

“그렇군요.”

서류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3달 만에 15%라면 은행 이자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수익이었다.

“몇 번을 전화할까 망설였습니다. 이렇게 수익률이 났을때는 일단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거든요. 그 종목들은 오를 만큼 올랐기 때문에 갈아탈 필요성이 있습니다. 그대로 놔두면 떨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왜 그렇죠?”

“요즘 대형주들이 서서히 약세를 보이고 있어요. 정부에서 막대한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법인세를 대폭 올린다는 소문이 있거든요. 잘 아시겠지만 지금 정부의 부채는 역사상 최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버크셔 해서웨이는 계속되는 인수 합병으로 인해 당국의 감시가 심해진 상황입니다. 언제 세무 조사가 들어갈지 알 수 없단 말입니다.”

“그렇군요.”

“신중하게 생각해 보십시오. 하지만 저는 보유 주식을 팔고 다른 주식을 사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걸 말하는거죠?”

“디지털 리서치나 액슨 모빌, 포드 등이 괜찮을 것 같습니다. 디지털 리서치는 컴퓨터 오퍼레이팅시스템을 개발해서 성장 동력이 상당히 좋은 회삽니다. 몇 해 전 발생했던 오일쇼크 기억하시죠? 액슨 모빌은 오일쇼크가 가라앉으면서 지금 한창 기업을 확장해 나가고 있습니다. 포드도 좋습니다. 포드가 새로운 차종을 내놓을 거란 정보가 입수되었습니다. 그게 확실하다면 주가는 큰 폭으로 오를 게 분명합니다.”

도널드가 최강철의 눈을 바라보며 열정적으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주식 매니저들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고객의 마음을 움직여 주식을 계속 팔고 사야 증권사의 수익이 남기 때문에 매니저들은 장기적으로 주식을 보유하는 손님을 극히 싫어한다.

디지털 리서치, 액슨 모빌, 포드.

그의 말대로 지금은 좋은 회사일지 모르지만 전생의 기억에서 그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으니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지금은 주식 매니저의 손에 휘둘린 투자는 절대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나는 코카콜라와 버크셔 해서웨이를 팔 생각이 없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내가 여기 온 이유가 또 한 가지 있습니다. 나는 코카콜라와 버크셔 해서웨이를 추가 구입 할 생각입니다. 15만 달러를 입금해 놓았으니 예전처럼 반반씩 나눠서 사주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까. 언제 말입니까?”

“오늘 사주시죠.”

“알겠습니다.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주식을 팔 생각이 없다는 말에 실망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던 도널드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뭔가를 얻은 사람의 얼굴에서는 기쁨의 웃음꽃이 핀다.

그가 급히 서류를 작성하기 위해 사무실로 뛰어간 후 최강철은 천천히 거대한 객장을 바라보았다.

바글거리는 객장의 사람들.

일확천금을 꿈꾸며 자신의 인생을 올인하고 있는 저 사람들은 2년 후에 벌어지는 블랙 먼데이의 처참한 공포 아래 추풍낙엽처럼 자신들의 삶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

서류에 사인을 하고 증권사를 나오자 거대한 빌딩들이 그를 맞이했다.

맨해튼의 끝을 향해 천천히 걸어 나갔다. 빌딩들 사이로 비추는 강렬한 햇살이 자신의 앞날을 축복해 주는 것만 같았다.

지금 자신의 투자는 극히 보수적이었고 안정적인 것이어야 한다.

본격적인 투자는 블랙 먼데이의 여파가 사그라지는 순간부터이고 컴퓨터의 세상이 활짝 열리는 90년대부터 시작될 것이니 자산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하지만 그가 모른 것이 있었다.

지금의 그 판단이 얼마나 현명한 것이었는지를 말이다.

디지털 리서치는 화려한 불꽃을 피우다가 몇 년 후 세상에서 사라졌고, 액슨 모빌은 4년 후 알래스카에서 1,100만 갤런의 원유 유출 사고를 일으켜 치명타를 입었으며, 포드는 GM에 밀려 그저 그런 회사로 전락하고 만다.

물론 블랙 먼데이 전에 모든 주식을 처분하겠지만 그랬기에 그의 안정적인 투자는 충분히 일리가 있는 것이었다.

* * *

시간의 여유는 그에게 다시 학교 생활을 동경하게 만들었다.

돈 킹은 곧 다시 시합을 잡겠다고 약속하며 당분간 쉬라는 말을 남겼기 때문에 최강철은 책을 들고 뉴욕대를 찾았다.

뭔가를 배운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새로운 학문, 새로운 환경, 새로운 세계, 새로운 사람들.

처음 접한 지식을 대할 때마다 한 줄기 환한 빛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것 같았다.

그가 펜실베이니아 대학을 찾은 것은 오랜만에 빈 스카터 교수의 강의를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뉴욕대의 교수들도 뛰어난 학문을 지니고 있었지만 빈 스카터 교수의 강의에 비하면 왠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펜실베이니아로 향하면서 자연스럽게 서지영을 떠올렸다.

아름다운 여인이다.

피식.

자신도 모르게 그녀를 생각하자 웃음이 나왔다.

실망에 찬 모습으로 돌아서던 그녀의 얼굴. 과연 그녀는 자신을 다시 보게 되었을 때 어떤 표정을 지을까?

빅 이벤트의 오픈 게임에 출전했으니 지금쯤 그녀도 자신이 복서란 사실을 알게 되었을지 모른다.

하긴, 모른다고 해도 상관없다.

그녀는 단순히 지나치며 만났던 여인이었으니 그에게는 그저 스쳐 지나는 한 줄기 바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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