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63화 (63/308)

[63]

피터와 샘은 여유 있게 앉아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시저스 팰리스호텔 특설 링은 벌써 두 번째 왔지만 올 때마다 느끼는 점은 가슴이 뛴다는 것이었다.

호텔에서 뿜어져 나오는 화려한 조명, 그리고 웅대한 광장에 모인 수많은 사람.

아직 경기장에는 빈자리가 많았다.

있는 놈들과 시간을 쪼개서 쓰는 바쁜 놈들은 본경기가 시작될 때서야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에 좌석이 다 차려면 조금 더 시간이 걸려야 한다.

그럼에도 통로를 따라 수많은 사람이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었다.

메인 게임들이 곧 시작되기 때문인데 가끔가다 사람들 입에서 환성이 터지는 건 할리우드 영화배우들과 가수, 유명한 스포츠 스타들이 간간히 모습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이제 본게임들이 시작되면 링에서는 전사들의 뜨거운 숨결이 흘러나와 지금 느끼고 있는 흥분을 열광으로 바꿔줄 것이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떠드는 소리가 들린 것은 동쪽에서 최강철이 등장했을 때였다.

이곳에 올 정도면 미국 내에서도 꽤나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일 텐데 경기장을 반쯤 채운 관중들의 입에서는 평소에 하지 못할 야유들이 서슴지 않고 흘러나왔다.

“어이, 노랭이. 너희 나라로 꺼져!”

대부분의 야유는 그런 의미를 담고 있었다.

인종 비하 발언이었지만 사람들은 주변에서 야유가 터져 나올 때마다 웃었다.

오늘 경기의 특수성이 사람들을 그렇게 만들었다.

백인의 희망인 게리 쿠니가 헤비급을 장기 집권 하는 래리 홈즈를 꺾어주길 바라는 간절한 기대가 그들의 사고를 정지시켜 놓은 것 같았다.

피터와 샘도 야유를 들으며 웃었다.

그들은 자랑스러운 미국인이었고 군중들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니 동조가 안 될 리 없었다.

루카스가 입장해서 손을 번쩍 들 때 그들도 함성을 지르며 응원을 했다.

질 거라는 예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동양에서 온 노랭이 정도는 루카스가 단박에 처치해 줄 것이라 믿었기에 몇 회에 끝낼 것이냐라는 내기에만 관심이 갔다.

그러나 막상 경기가 시작되고 동양의 노랭이가 환상적인 아웃복싱으로 루카스를 요리하는 장면을 보자 저절로 감탄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우와, 저 자식. 테크닉이 장난 아니야. 엄청 빠르잖아.”

“빠르기만 한 게 아냐. 잘 봐. 못 치는 펀치가 없어. 더군다나 이동 중에도 균형이 정확하게 잡혀 있단 말이야.”

“모션이 끝내주는구만. 빈틈이 보이지 않아.”

피터의 분석에 샘이 감탄의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정말이다.

가딩을 한 채 움직이는 최강철의 디펜스에 루카스의 펀치는 허공만 휘저을 뿐이었다.

일방적인 경기가 지속되면서 루카스가 몇 회에 KO로 이길 거냐는 내기는 이미 그들의 머릿속에서 허공 멀리 사라진 지 오래였다.

“마치 레너드를 보는 느낌이야. 그렇지 않냐?”

“어떻게 레너드와 비교를 해. 하지만 대단한 건 사실이군. 저 정도의 아웃복싱이라면 루카스가 잡기 힘들겠는데.”

“하아, 저 바보 같은 자식. 엄청 얻어터지네. 방어가 안 되잖아.”

“그래도 아직 몰라. 루카스의 맷집은 정평이 나 있으니까 지켜보자고.”

1라운드가 끝나는 걸 확인한 피터가 감탄 속에서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비록 동양의 노랭이가 대단한 아웃복싱을 선보이며 깜짝 놀라게 만들었으나 그들은 아직도 루카스가 이겨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2라운드가 시작되면서 그들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엄청난 난타전.

아웃복싱을 하던 놈이 갑자기 스텝을 멈추더니 루카스와 맞짱을 떴다.

피가 저절로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한순간에 십여 발의 주먹이 오고 갔는데 얻어맞는 건 대부분 루카스였다.

정말 그들을 놀래게 만든 장면이 나온 것은 2라운드 중반이 지날 때였다.

클린 히트를 성공시켜 루카스를 뒤로 물러나게 만든 동양의 노랭이가 엄청난 화력을 뿜어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너무 놀라 숨이 멈춰졌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른 펀치 샤워.

노랭이의 콤비네이션은 스트레이트와 양 훅, 보디와 어퍼컷까지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는데 마치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의 번개를 보는 것 같았다.

소리를 지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으나 이미 그때는 전율에 젖어 이성이 마비된 상태였다.

저런 펀치를 맞고 살아남는다면 그건 인간이 아니다.

맷집이 좋은 루카스가 쓰러져 버둥거리는 걸 보면서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노랭이의 펀치는 무시무시했다.

“샘, 봤냐? 봤어!”

“쉣! 아우, 소름 끼쳐.”

“저 새끼, 저거 뭐야? 도대체 어디서 온 놈이야?”

“야, 팸플릿 좀 봐봐. 저놈 이름이 뭐라고 되어 있냐?”

샘이 자신의 팔을 쓰다듬으며 의자에 놓여 있는 팸플릿을 가리키자 피터가 빠르게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중간에 들어 있는 노랭이의 이름을 확인했다.

“으… 최강철!”

최강철이 루카스를 쓰러뜨리자 스포츠라인의 토머스가 미친 듯이 사진을 찍어댔다.

뒤에서는 관중들이 모두 일어서 함성을 지르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마치 세계 챔피언이 도전자를 압도적인 힘으로 눌렀을 때 쏟아져 나오는 환호성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아우, 저 새끼 대단하네. 그때도 느꼈지만 엄청나구만.”

“할리, 나 좀 잠깐 나갔다 올게.”

“어딜 가려고?”

“전화 좀 써야겠어. 조금 이따가 봐.”

“잠깐, 너는 꼭 이 상황에서 이런 짓을 해야겠냐? 너 쟤 띄우려고 그러는 거지?”

“귀신같은 놈.”

“너무 빠른 거 아냐?”

“괜찮아. 저 정도면 돼. 맞으면 좋고 틀려도 상관없어. 래리 홈즈와 게리 쿠니의 경기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지만 슬쩍 끼워 넣을 생각이야. 우리는 저런 애들을 키우는 게 일 아니냐.”

“그렇긴 한데…….”

“같이하자. 매도 같이 맞아야지.”

“물귀신 작전이냐?”

“물귀신이 될지, 나중에 보너스를 받게 될지 어떻게 알아. 일단 사무실에 연락해서 저놈 아마추어 전적 좀 정확하게 확인해 봐야겠어.”

“하아, 고민되게 만드네.”

스포팅 뉴스의 할리가 토머스의 말을 듣고 인상을 찌푸렸다.

대단한 건 맞다. 하지만 갓 데뷔한 놈에 대한 기사를 쓴다는 건 부담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가장 친한 토머스가 하겠다고 덤비자 슬쩍 마음이 동했다.

그 정도로 최강철의 경기는 충격적이었다.

* * *

라커룸으로 돌아온 일행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가득 떠올라 있었다.

준비한 대로 완벽하게 데뷔전을 치렀기에 윤성호와 이성일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가득 배어 나왔다.

“야, 강철아. 오늘은 경기도 이겼으니 특식이나 먹으러 가자.”

“어디로?”

“황인혜 씨가 가르쳐 준 한국 식당 가서 김치찌개에 소주 한잔 어때?”

“아이구, 좋네. 좋아. 성일이가 기특한 생각을 다 했구만. 어떻게 너는 시간이 갈수록 똑똑해지냐.”

윤성호가 나서면서 반색을 했다.

그동안 시합을 준비하느라 정신없이 살았기 때문에 긴장이 풀리자 소주 생각이 간절했다.

하지만 최강철은 장난스러움을 가득 담고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이 자식아, 거긴 비싸. 돈도 없는 놈이 좋은 건 알아가지고.”

“곧 대전료 나올 거 아냐. 우리, 돈 때문에 불쌍하게 살지 말자고.”

“일단 씻고 생각해 볼게. 가진 돈이 달랑거려서 불안하거든.”

그 말에 두 사람의 안색이 동시에 하얗게 변했다.

물론 두 사람도 생활비를 조금씩 부담했지만 대부분의 돈은 최강철의 주머니에서 나왔는데, 돈 주머니가 고개를 흔들자 세상이 다 무너지는 얼굴을 만들었다.

문이 열리며 사람이 나타난 것은 최강철이 샤워를 하기 위해 수건을 집어 들 때였다.

곱슬머리, 꼭 찐빵처럼 머리가 부풀어 오른 남자.

세계 복싱계를 한 손에 주무르며 거대한 부를 축척하고 있는 거물.

바로 돈 킹이었다.

“강철, 인사해. 돈 킹이셔.”

뒤를 따라 들어온 톰슨이 소개하자 알은척을 할 사이도 없이 돈 킹이 거침없이 걸어와 최강철의 몸을 끌어안았다.

쇼맨십이다.

땀으로 젖은 몸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끌어안았다는 건 그가 얼마나 상황 대처에 능한지 알려주는 것이었다.

왔어. 이제야 조금 관심이 당긴 모양이지?

“오늘 시합 끝내줬어. 부사장한테 여러 번 이야기는 들었지만 직접 눈으로 보니까 더 대단하더구만. 축하하네.”

“고맙습니다.”

“자넨 우리 럼블의 보물이야. 앞으로도 이렇게 멋진 경기를 계속 보여주면 고맙겠어. 그래, 어디 다친 건 아니지?”

“괜찮습니다.”

“하하하… 그렇겠지. 내가 보니까 거의 맞지 않는 경기를 하더구만.”

“루카스 정도는 너무 약합니다. 돈 킹 씨, 나는 더 강한 선수를 원합니다.”

“호오, 그래?”

“톰슨 씨에게도 말했지만 나는 두 달에 한 번씩 링에 올라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정규라운드를 뛰게 해주십시오. 화끈한 경기를 보여 드릴 테니 말입니다.”

“알겠네. 내가 그렇게 해주지. 나도 자네가 무럭무럭 스타로 커주기를 기대한다네. 오늘 시합처럼만 해준다면 그런 날이 오는 건 어렵지 않을 거야. 하하하… 난 바빠서 이만 가봐야겠어. 조만간 다시 보자고.”

돈 킹이 껄껄 웃으며 최강철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런 후 라커룸을 빠져나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최강철의 입이 불쑥 열린 것은 돈 킹의 몸이 완전히 돌아섰을 때였다.

“대전료는 내일 바로 입금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오늘 남은 돈으로 저녁을 먹으면 빈털터리가 되거든요.”

* * *

일행은 래리 홈즈와 게리 쿠니의 경기를 지켜봤다. 공짜로 세기의 대결을 볼 수 있었으니 이런 행운도 없다.

경기는 일방적인 응원 속에서 치러졌으나 래리 홈즈의 KO승으로 끝이 났다.

압도적인 경기력의 차이.

두 선수가 받은 금액은 각각 1,000만 달러를 상회했으니 얼마나 커다란 관심 속에서 치러졌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런 거금을 받고 치러진 경기답지 않게 래리 홈즈는 게리 쿠니를 압살해서 승리를 간절하게 원하는 백인들의 소망을 무참히 박살 내버렸다.

백인들이 소동을 일으켰으나 경기 결과를 바꿀 수는 없다.

링 위에서 싸운 자들은 그들이 아니라 래리 홈즈였고 게리 쿠니는 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최강철이 집으로 돌아온 것은 시합을 끝낸 이틀 후였다.

그의 통장에는 정확히 만 달러가 찍혀 있었는데 웃으며 떠난 돈 킹이 다음 날 입금시킨 대전료였다.

우리나라 돈으로 670만 원이다.

일반 회사원 월급이 50만 원 정도밖에 안 되는 시절이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엄청나게 큰돈이었다.

하지만 래리 홈즈가 받은 금액에 비한다면 그야말로 조족지혈이다.

그럼에도 조급한 마음은 들지 않았다. 아직도 그에게는 루시퍼가 준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고 난 후 다음 날 레드불스로 들어가자 센터장 피터를 비롯해서 소속 선수들이 승리를 축하해 주었다.

그들이 TV에도 나오지 않은 자신의 시합 결과를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했으나 해답은 친하게 지냈던 마크로부터 흘러나왔다.

그의 손에는 스포츠라인 신문이 들려 있었는데 한쪽 귀퉁이에 최강철의 기사가 실려 있었던 것이다.

<동양에서 온 갈색 폭격기, 허리케인 최강철을 주목하라>

제목이 멋있다.

뉴스를 쓴 기자는 직접 라커룸까지 찾아와 인터뷰를 했던 토마스였다.

기사에는 자신의 아마추어 전적이 무패였으며, 어마어마한 KO율을 지녔고, 루카스를 일방적으로 쓰러뜨렸다는 사실과 함께 향후의 행보가 기대된다는 것들이 적혀 있었다.

피터는 물론이고 마크와 제임스 등의 선수들도 그의 아마추어 전적까지는 몰랐던 모양이다.

“우와, 강철. 나는 네가 그렇게 대단한 선수인지 몰랐어. 아마추어에서 KO율이 97%라는 게 말이 돼? 브릴랜드를 이겼다고 해서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야. 정말 대단해.”

“루카스도 일방적으로 쓰러뜨렸다며. 나는 네가 고전할 줄 알았어. 그 자식, 꽤 잘하는 신예로 이름이 있던 놈이었거든.”

마크와 제임스가 떠들어대자 선수들이 한마디씩 거들었다.

그들은 최강철과 스파링을 해본 선수들이었기에 어느 정도 실력을 가졌는지 눈으로 직접 확인했지만 설마 루카스를 일방적으로 때려 부술 줄은 생각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빙긋 웃어주었다.

이들은 아직도 모른다. 내 세상에서 살아 숨 쉬는 야망의 크기와 실력을 말이다.

돈 킹은 약속을 잘 지켰다.

2~3달에 한 번꼴로 시합을 주선해 주었는데 그때마다 최강철은 상대를 박살 내며 경기를 끝냈다.

데뷔전 이후 6번의 경기를 모두 KO로 잡아냈다.

7전 7KO승.

그야말로 폭풍 같은 진격이었다.

그의 경기는 언제나 화려했고 불꽃처럼 뜨거워 관중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상대가 점점 강해졌으나 최강철의 강렬한 펀치 세례를 견뎌낸 자는 아무도 없었다.

데뷔전부터 그의 기사를 실었던 스포츠라인의 토머스가 계속 기사를 써댔고, 직접 경기를 관전했던 복싱 팬들의 입에서 최강철의 이름이 회자되기 시작했다.

이례적인 일이다.

아직 메인 게임으로 뛰지 않았음에도 최강철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오로지 그의 불꽃처럼 강렬한 인파이팅이 관중들을 매료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시합에 이겨 나갈수록 차곡차곡 통장에 돈이 불어났다.

계약 조건에 의해 승리할 때마다 대전료가 50%씩 상승했기 때문인데 계속 승리를 거듭한다면 다음 시합의 대전료는 20만 달러에 육박하게 될 것이다.

최강철은 통장을 바라보며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3일 전 경기가 끝나자 대전료가 들어와 통장에 찍힌 돈이 20만 달러가 훌쩍 넘었다.

이제 서서히 다가온다. 돈이 돈을 벌어들이는 세상을 두 눈으로 확인할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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