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62화 (62/308)

[62]

* * *

피터와 샘은 LA의 중심가에서 활동하는 변호사들로 권투광들이었다.

특히 오늘 게임은 빅 이벤트였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예약을 해서 기다려 왔는데 경기 시작 2시간 전에 와서 언더 카드까지 전부 보고 있는 중이었다.

2개의 언더 카드 경기는 흥미가 떨어졌다.

나름대로 치고받으며 열심히 싸웠지만 긴장감도 없었고 수준도 고만고만해서 흥미가 돋지 않았다.

그럼에도 기대를 하지 않아서인지 실망감조차 들지 않았다.

어차피 본게임은 오픈 경기부터다.

오늘 메인으로 잡혀 있는 오픈 게임은 WBA 라이트급과 미들급의 랭킹전이 준비되어 있어 수준 높은 경기를 보게 될 것이다.

더군다나 래리 홈즈와 게리 쿠니의 대결은 상상만 해도 몸이 오싹거릴 정도로 기대되는 시합이었다.

게리 쿠니의 강한 펀치력이라면 링의 여우라고 불리는 래리 홈즈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루카스가 나오는구만. 루카스 경기는 화끈하지.”

“그런데 상대가 한국 놈이야. 이봐, 샘. 이놈이 누군지 알아?”

“내가 그런 놈을 어떻게 알아.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어.”

“그런데 이런 놈이 어떻게 루카스의 상대가 됐을까. 아예 전적조차 없는데.”

“루카스 이놈, 안전 운행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조만간에 10라운드로 올라간다더니 몸을 사리는 모양이네.”

“어쨌든 루카스가 경기는 잘해. 역시 복싱은 인파이팅이지. 루카스가 이 상태로 잘만 성장한다면 새로운 강자가 한 명 탄생할 거야.”

“요새 웰터급은 정말 무시무시한 놈들이 많아. 루카스가 더 화끈하지 않으면 버텨내기 힘들어. 이번 경기는 어쩐지 재미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 저 냄새 나는 한국 놈은 루카스의 펀치력이 무서워서 도망만 다니다 말 것 같은 생각이 든단 말이지. 한국 놈들이 질긴 거로는 유명하잖아.”

“그걸 극복해야 강자가 되는 거지. 도망 다니는 놈을 완벽하게 때려잡는 능력을 보여줘야 팬들이 생기는 거라고.”

“어쨌든 이제 시작하니까 지켜보자고. 우리 내기할까?”

“무슨 내기?”

“루카스가 저놈을 몇 회에 쓰러뜨리는지 알아맞혀 보는 거야. 내일 점심 내기 어때?”

“좋아, 그렇다면 난 3회에 걸겠어.”

“난 2회에 걸지. 이제 데뷔하는 놈을 상대로 2회를 넘긴다면 난 루카스를 달리 보게 될 거야.”

* * *

최강철은 마주치자마자 라이트 훅을 던져오는 루카스의 전진을 더킹으로 피한 후 좌측으로 돌았다.

그냥 돈 게 아니라 레프트 잽이 동반된 이동이었다.

쉬익!

단 한 방에 루카스의 고개가 젖혀졌다.

놀라는 게 눈에 보였다.

그의 레프트 잽은 거의 스트레이트 성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맞으면 충격을 받을 만큼 강하다.

연속으로 레프트 잽이 날아가자 루카스의 가드가 바짝 올라갔다.

잽이라고 그냥 맞아줬다가는 대미지를 입게 될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강한 체력과 펀치력이 있었지만 스피드가 느리다.

아무리 훌륭한 선수라도 스피드가 없다면 빠른 발을 가진 아웃복서를 잡아내는 게 어렵다.

루카스의 스피드는 최강철의 스텝을 따라 오지 못했다.

잽을 피한 후 반격을 가해왔지만 최강철은 이미 사정권에서 벗어나 있는 상태였다.

레프트 잽으로 거리를 재며 원투 스트레이트와 복부를 때린 후 빠져나갔다.

이번 라운드는 철저하게 윤 관장의 지시대로 움직일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관중들을 지루하게 만들 생각은 없었다.

아웃복서가 인기가 없는 것은 많은 선수가 도망 다니며 점수 위주의 경기를 하기 때문이었지만 그렇지 않은 선수도 있다.

그게 바로 슈가레이 레너드다.

그는 근본을 아웃복싱에 두고 있었으나 기회가 날 때마다 폭풍 같은 연타로 반격을 해서 관중들을 열광시키는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그가 복싱 역사상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인정받으면서도 복서로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지 못한 것은 타이슨처럼 위험을 감수하는 용맹함과 결단력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강철은 프로에 데뷔하면서 확고하게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상했다.

바로 아웃복싱에서 이어지는 불꽃같은 인파이팅이었다.

복싱은 관중들의 흥분으로 인기를 얻었고 그들이 내지르는 함성으로 돈을 버는 운동이었다.

언제 어느 순간 터져 나올지 모르는 인파이팅의 마력으로 관중을 사로잡지 못한다면 아무리 좋은 시합을 해서 승리를 한다 해도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가 없다.

루카스는 최강철이 아웃복싱을 구사하며 틈이 날 때마다 반격을 가해오자 서서히 눈이 붉어졌다.

빠른 발을 이용해서 돌아나가는 최강철의 공격에 벌써 여러 차례 클린 히트를 허용했기 때문에 그의 심장은 분노로 들끓기 시작했다.

컴온, 컴온.

좌측으로 도는 최강철을 향해 그가 손짓으로 도망가지 말고 덤비라는 신호를 보냈다.

자신을 응원하는 관중들에게 상대가 도망만 가기 때문에 제대로 된 시합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어필한 건지 아니면 최강철을 도발해서 자신의 의지대로 경기를 끌어나가고 싶었던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답답해하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지금 최강철은 슈가레이 레너드의 스타일을 그대로 따라하는 중이었다.

빠른 스텝을 이용해서 적의 펀치를 흘려내고 반격한 후 후속 공격을 무력화시키는 전략.

이런 게임은 관중들이 지루할 새가 없다.

언제 어느 순간 반격이 터져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루카스로서는 미치고 펄쩍 뛸 노릇이겠지만 최강철은 스토핑에 이은 레프트 스트레이트와 패링에 이은 크로스 카운터를 적절하게 터뜨렸고 기회가 날 때마다 연타를 쏟아낸 후 뒤로 물러섰다.

루카스의 맷집이 워낙 좋았기 때문에 버틴 것이지 이것만으로도 웬만한 복서들은 충분히 충격받을 정도의 공격들이었다.

마치 상처 입은 황소처럼 저돌적으로 밀고 들어오는 루카스의 양 훅을 피하며 날이 선 눈으로 최강철은 양쪽 보디와 어퍼컷을 날린 후 화살 같은 스트레이트를 퍼부으며 좌측으로 돌아나갔다.

분노다.

루카스의 눈에는 이제 서서히 분노가 담기고 있었다.

자신의 주먹은 매번 허공만 흘러 다녔고 샌드백처럼 당하고만 있으니 냉철함으로 무장되어야 할 이성이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그런 루카스의 눈을 보면서 최강철은 거리를 확보한 채 아웃복싱을 구사했다.

이성일의 분석은 너무 정확해서 루카스의 움직임과 공격 패턴, 그리고 수비할 때의 단점이 라운드 중반부터 눈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경기를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물론 그건 자신의 동물 같은 반사 신경이 칼날처럼 반응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8온스의 위력은 역시 무섭다.

무차별적으로 퍼붓는 루카스의 펀치 대부분을 방어 기술로 피했으나 가끔 방어막을 뚫고 들어온 주먹은 스쳐 맞았어도 12온스보다 훨씬 강한 파괴력이 있었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지금 루카스는 죽을 맛이었을 것이다.

벌써 클린 히트가 들어간 것만 해도 20여 차례나 되었기 때문에 아무리 맷집이 대단한 루카스라 해도 대미지가 쌓여갈 수밖에 없다.

완벽한 경기였다.

아웃복싱의 정석에 이은 패턴 공격은 1라운드 내내 루카스를 괴롭히며 완벽한 우세를 점유한 채 끝났다.

관중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는 것은 그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감탄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당신들은 곧 진정한 복싱이 무엇인지 구경하게 될 것이다.

“잘했다, 강철아.”

“뭘요, 기본이죠.”

“이 자식아, 이럴 때는 조금 겸손하라고 몇 번이나 말해. 어떠냐, 저놈?”

“펀치가 좋네요. 압박도 제법 훌륭하고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예전에 상대했던 가르곤이나 브릴랜드에 비하면 많이 부족한 놈입니다.”

“내가 보기에도 그렇더라. 그래도 조심해. 한 방에 갈 수 있어.”

“알아요.”

“1라운드만 더 하자.”

“아뇨, 그냥 여기서 끝내는 게 좋겠어요.”

“왜?”

“아웃복싱을 보여준 건 1라운드만으로 충분합니다. 이제 손이 근질거려서 참기 힘들어요.”

2라운드에 들어서자 루카스의 스텝이 바뀌었다.

1라운드에서는 무작정 밀고 들어오더니 디렉션 웨이를 차단하는 스텝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이 스텝은 그 유명한 챠베스의 전매 특허였다.

빠른 발을 지닌 상대로 하여금 도망 다니는 길을 차단해서 계속 몰고 나가는 전략인데 아무리 체력이 좋은 선수들도 3라운드만 지나면 숨을 헐떡거릴 만큼 지치게 된다.

물론 그 와중에도 정교한 펀치를 날려 상대로 하여금 잠시도 쉴 수 없게 만드는 파워와 체력이 동반되어야 가능한 전략이다.

최강철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올랐다.

기껏 6라운드에 불과한 경기에서 디렉션 웨이 차단 스텝을 구사하는 루카스의 행동이 우스웠기 때문이었다.

자신은 지금 당장에라도 12라운드를 풀로 소화할 수 있는 체력이 있었다.

전략이 잘못됐다.

네가 생각했는지 아니면 너의 코칭스태프가 주문한 건지 모르나 최강철이 어떤 인간인지 지금부터 보여준다.

위잉!

후퇴로를 선점하고 날려 온 루카스의 좌우 스트레이트가 빠져나가는 순간, 그동안 물러서던 최강철의 스텝이 멈췄다.

그런 후 강한 양쪽 훅이 보디를 향해 날아갔다.

퍽, 퍽!

의외의 반격에 루카스의 신형이 멈칫했다.

펀치의 강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움직이며 던지는 펀치를 여러 차례 맞았으나 충분히 견딜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놈이 스텝을 멈춘 채 터뜨린 보디 공격을 맞자 몸이 경직 현상을 일으켰다.

우습게도 코치들이 주문했던 디렉션 웨이 차단 전략은 그때부터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그가 공격할 때마다 현란한 스텝을 보여주며 달아나던 최강철이 스텝을 멈춘 채 반격을 가해왔기 때문이었다.

‘이 새끼, 이거 미친 거 아냐!’

주먹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더 자신이 있는 건 자신의 맷집이었다.

지금까지 6번을 싸웠으나 한 번도 다운을 당하지 않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상대를 몰아붙여 승리를 거둬왔다.

이놈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하는지 알 수 없었으나 자신에게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그때부터 루카스는 최강철에게 접근해서 무차별적으로 펀치를 휘둘러댔다.

관중들의 함성 소리가 서서히 커지기 시작했다.

1라운드에서도 최강철이 선보인 완벽한 아웃복싱에 매료되었던 관중들은 양 선수가 링 중앙에서 부딪혀 주먹을 갈겨대자 뜨거운 열기에 사로잡혀 갔다.

최강철은 무차별적으로 펀치를 던져오는 루카스에 맞서 자신이 익혀온 방어 기술들을 가동시키며 역습을 가했다.

스토핑에 이은 스트레이트, 패링에 이은 크로스 카운터, 스웨이 백에서부터 시작되는 연타 기술까지 새로 익힌 기술들을 번갈아가며 선보였다.

이렇게 1분을 끈다.

루카스의 주먹은 두렵지 않았다.

아무리 그의 펀치가 강하다 해도 정타를 맞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관중들의 함성이 점점 커져가는 것을 느끼며 최강철은 루카스의 빈 곳을 골라가며 철저하게 유린했다.

쉬익, 팡!

생각했던 1분이 지났고 관중들의 함성이 절정으로 올라갔을 때 최강철의 라이트 스트레이트가 루카스의 안면에 그대로 틀어박혔다.

비틀거리며 한 발 물러서는 루카스.

최강철의 폭풍 같은 전진이 시작된 것은 그때부터였다.

지금까지 꽁꽁 숨겨왔던 자신의 비장의 무기, 콤비네이션 펀치들을 꺼내 든 것이었다.

파앙, 팡, 팡, 팡……!

오른쪽 스트레이트부터 시작된 콤비네이션이 오른쪽 옆구리에 터진 레프트 훅에 이어 안면으로 올라갔다.

전광석화와 같은 콤비네이션의 출발.

루카스의 신형이 순식간에 터진 10발의 공격에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비록 가드를 올린 채 방어하고 있었으나 그토록 강한 맷집을 가졌다는 루카스는 반격할 생각조차 못하고 뒤로 물러나기 바빴다.

그냥 두지 않는다.

최강철은 예리한 눈으로 루카스의 후퇴를 따라잡으며 원거리에서 묵직한 라이트 훅을 내리꽂았다.

위잉!

강력한 라이트 훅이 루카스의 가드를 뚫고 안면을 훑었다.

가딩에 의해 위력이 반감되었으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가 의도한 대로 루카스를 로프에 묶어놨으니 말이다.

그때부터 최강철은 미사일 같은 스트레이트와 양 훅으로 루카스를 두들겼다.

관중들의 피를 끓게 만드는 것은 머리를 맞대고 미치도록 싸우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강력한 공격으로 적을 무너뜨리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상처 입은 짐승.

루카스는 마지막 발악을 하듯 펀치를 날려 왔으나 최강철은 그의 공격을 모조리 피하면서 치명적인 펀치를 그의 전신에 퍼부었다.

이미 루카스의 눈은 반쯤 풀려 있었는데 온전한 정신이 아니었다.

관중들은 벌써부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있는 상태였다.

최강철의 활화산 같은 콤비네이션이 연속으로 터지며 루카스가 휘청거리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습관적으로 숙여지는 머리.

이성일이 분석한 것처럼 루카스는 공격받을 때 습관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지금까지 그것을 알면서도 공략하지 않았던 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

콰앙!

최강철의 강력한 어퍼컷이 숨을 헐떡거리던 루카스의 고개를 하늘로 솟구치게 만들었다.

거의 백팔십도에 가깝게 머리가 들렸는데 펀치에 맞는 순간 루카스의 주먹이 추욱 늘어지며 무너져 내렸다.

레퍼리가 말리기 위해 다가왔을 때 이미 최강철은 몸을 돌려 루카스로부터 물러났다.

조용히 뒤로 물러나 레퍼리가 카운터를 세는 걸 지켜봤다.

루카스는 일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으나 몸을 제대로 지탱하지 못하고 있었다.

심판이 카운터 도중 손을 가로젓는 순간 두 팔을 번쩍 치켜들고 관중들을 바라보았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 그를 향해 야유를 퍼붓던 사람들은 사라진 지 오래였고 오직 그를 향해 거대한 함성이 몰려들었다.

이만하면 괜찮았나?

괜찮았을 거야.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는 걸 잊지 마.

조만간 당신들은 더없이 화려하고 불꽃같은 전투를 구경하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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