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58화 (58/308)

[58] 제9장 진출, 신대륙

“새끼들, 많이도 왔네, 안재만이 흑사파 출신이랬지?”

“응, 그놈은 거기서 나와 극동을 차리고 승승장구한 놈이야. 현재 흑사파 보스하고는 형제로 지낸다고 하더군.”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한 놈을 병신으로 만들려고 하다니, 미친놈이야. 나중에 뒷감당은 생각 안 한 모양이지?”

“살모사 같은 놈이 그런 것도 생각하지 않았겠나. 이유가 있어.”

“무슨 이유?”

“안재만은 지금까지 이런 방식으로 유망주들을 상대해 왔어. 그놈만의 독특한 방식이지. 조폭 출신이라서 그런가 잔인해.”

“그래도 누울 자릴 보고 누워야지. 쟨 지금 꽤나 유명해졌잖아.”

“아직 사람들이 얼굴도 알아보지 못하는데 뭐가 유명해? 그깟 아마추어 복싱에서 우승한 걸 가지고 대단하게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건 별거 아냐. 더군다나 흑사파에게는 든든한 뒷배가 있거든.”

“뒷배, 그게 뭔데?”

“중정 부장. 흑사파는 그 새끼의 주구들이야. 주로 야당 정치인들을 테러할 때 써먹었는데 일처리를 잘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이런 짓을 벌였구만. 뒤탈을 생각하지 않고?”

“그런 거지. 하지만 오늘은 상대를 잘못 골랐어. 우리 부장이 신경 쓰고 있는 이상 저놈들은 이제 황천길로 갈 수밖에 없다.”

스미스가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맞는 말이다. 한국의 중정 부장이 아무리 세다 해도 CIA 서울지부장에게 상대가 안 된다.

더군다나 자신이 들은 정보에 따르면 이번 작전은 본국에서 직접 날아왔기 때문에 중정 부장이 아니라 전두환이 개입되었다 해도 찍어 누를 수가 있었다.

그 모습에 이태섭이 입맛을 다셨다.

그는 해병대 특수수색대 출신으로 5년 전부터 CIA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여기서 칠 생각인가?”

“그렇겠지. 비겁한 놈들이야. 한 명 상대하는데 10명이나 왔어. 그것도 쇠파이프를 들고 오다니, 쯧쯧.”

이태섭이 혀를 차면서 차에서 내리자 그 뒤를 따라 스미스가 따라 내렸다.

후미를 맡고 있는 뒤쪽의 B조도 지금쯤 접근하고 있는 중일 것이다.

그들은 한국에 파견된 CIA의 특수요원들로 지부장의 명령을 받고 그동안 최강철을 보호하고 있는 중이었다.

지부장의 명령은 단 하나.

안재만의 행동을 파악해서 최강철에게 위해를 가하지 못하게 만들라는 것이었다.

왜 그런 명령이 내려왔는지 모른다.

하지만 신군부 정권이 통치하고 있는 한국에서는 하루에도 수많은 일이 발생했기 때문에 일일이 이유를 알면서 행동한 적은 없었다.

“저놈, 싸울 생각인 모양이네. 전혀 두려워하지 않잖아.”

“그럼 자네 같으면 가만있겠나? 어차피 린치를 생각하고 온 놈들한테 가만히 앉아서 당하는 놈이 병신이지.”

“어, 저 미친놈이 도끼를 꺼냈어!”

“구경 좀 할까? 마크 브릴랜드까지 꺾었다던데 어느 정도 실력인지 궁금하지 않아?”

“미친 소리 하지 마. 최강철이 조금이라도 다치면 우린 큰일 난다고. 빨리 해치우고 가자. 밤이 늦었어.”

* * *

도끼를 들고 돌진해 오는 김춘식을 향해 최강철이 이빨을 드러내며 마주 부딪쳐 나가는 순간 고무타이어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 후 김춘식의 몸이 그래도 푹 쓰러졌다.

“으… 으…….”

놈은 도끼를 떨어뜨린 채 바닥을 기면서 팔을 부여잡고 있었는데 밝은 달빛으로 쏟아져 나오는 피가 선명하게 보였다.

뚜벅뚜벅.

김춘식이 쓰러지자 흑사파 조직원들이 당황함을 숨기지 못할 때 어둠을 뚫고 네 명의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들의 손에는 소음 권총이 들려 있었다.

서용태가 급히 칼을 꺼내 들다가 맨 앞에 선 자가 갈긴 총알에 다리를 얻어맞고 김춘식과 비슷한 자세로 쓰러졌다.

쇠파이프를 들고 있던 나머지 똘마니들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자들이 소음 권총을 쏴서 대가리들을 때려잡자 부들부들 떨면서 움직이지 못했다.

총 앞에서 쇠파이프는 무용지물이기 때문이었다.

“미스터 최, 우리가 조금 늦었지요?”

“누구십니까?”

“미국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우린 당신을 보호하라는 지시를 받고 왔소. 오랫동안 지켜봤는데 이제야 일이 끝났군요.”

“음…….”

빙긋 웃는 사내를 보면서 최강철이 가볍게 신음 소리를 냈다.

총을 쏜다는 것은 나타난 자들이 조폭과는 비교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강력한 집단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더군다나 미국에서 왔다면 CIA일 가능성이 컸다.

‘하아.’

더 럼블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갔다. 일개 소속 선수의 안전을 위해 CIA까지 동원할 정도라면 그들은 이보다 훨씬 더 힘든 일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뜻이었다.

“이제 그만 가셔도 됩니다. 나머지 일은 우리가 처리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오.”

“고맙습니다. 하지만 뿌리가 남았는데 괜찮겠습니까?”

“이놈들이 소속된 흑사파와 안재만 역시 더 이상 미스터 최를 건드리지 못하게 조치할 겁니다. 그러니 안심해도 될 거요.”

* * *

시간이 정해졌다.

톰슨이 보내온 비행기 티켓은 3월 16일 11시 비행기였다.

세 사람의 취업 비자는 출국하기 일주일 전에 나오는 것으로 확정되어 있었는데 기한이 3년으로 되어 있었다.

떠날 날이 정해지자 시간이 미친 것처럼 흐르기 시작했다.

서울대의 입학식 날.

부모님과 누나들은 캠퍼스를 가득 채운 채 웃고 있는 학생들과 가족들을 바라보며 눈물을 숨기지 못했다.

이 좋은 학교를 두고 미국으로 떠나야 하는 아들의 손을 꼭 잡고 어머니는 연신 눈물을 찍어 내셨다.

안다, 그 마음.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마음이었고 이보다 더 커다란 세계를 위한 비상이었으니 어머니를 달랠 수밖에 없었다.

학교 측에서 급한 연락이 온 것은 휴학계를 내고 3일이 지났을 때였다.

약속된 시간에 맞춰 캠퍼스를 따라 경영대를 향해 걸어갔다.

최신식으로 웅장하게 지어진 건물.

상아탑 중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건물답게 경영대의 건물 곳곳에는 위압감이 잔뜩 묻어나오고 있었다.

계단을 올라 학과장실 문을 두드리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가 들어서자 반백의 노신사가 책을 보고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경영대 학과장을 맡고 있는 유문호 교수였다.

경영학 쪽에서 국내 최고의 권위를 자랑한다는 석학이었고 털털하고 자상한 성격으로 학생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사람이기도 했다.

“최강철 군인가?”

“예, 교수님.”

“앉게.”

유문호가 먼저 앉으며 자리를 권하자 최강철이 공손한 자세로 소파에 앉았다.

그러자 유문호가 소파 옆 다탁에서 준비된 차를 직접 따라 내밀었다.

“자네, 휴학했다면서?”

“예, 교수님 사정이 있어서요. 부득이…….”

“그 사정 내가 들어봐도 되겠나?”

묻는 유문호의 표정을 살폈다. 그가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는지 아니면 단순하게 학과 수석의 휴학이 궁금해서 묻는 건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에서는 어떤 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능력이 탁월할 수도 있고 아니면 살아온 많은 세월 속에서 습관적으로 굳어진 것일 수도 있다.

잠깐 망설이다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유문호를 향해 결국 입을 열었다.

“교수님 저는 권투를 합니다.”

“알고 있네. 그래서 그게 어쨌다는 건가?”

입맛이 쓰다. 자신이 권투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이곳으로 오라고 했다면 오늘 대화가 쉽지 않을 거란 판단이 섰다.

“그렇다면 제가 더 럼블과 계약을 했다는 것도 아시겠군요. 기사에 난 것처럼 저는 미국으로 건너가 권투를 계속할 생각입니다.”

“언제까지?”

“꿈을 이룰 때 까집니다.”

“꿈을 이루지 못한다면 어쩔 생각인가. 그럼 그때 다시 돌아올 텐가?”

“그건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내가 자네를 부른 건 그것 때문이었네. 미국이란 나라는 철저하게 능력을 우선시하는 사회라네. 만약 자네가 실패한다면 차가운 빙판길을 헤매게 될 걸세. 최강철 군, 기한을 정하게. 젊은 나이에 꿈을 이루기 위해 싸우는 걸 나는 언제나 응원하는 사람일세. 하지만 나는 꿈을 잃은 젊은이가 상처받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네. 더군다나 자네는 경영대 수석 입학자란 신분을 가지고 있는 전도양양한 인재이지 않는가. 기한을 정하고 싸우게. 그런 후, 실패하게 된다면 무조건 돌아와 주게. 우리 사회와 국가는 자네 같은 우수한 인재가 필요해. 만약 일이 잘못된다 해도 절망 속에서 시들지 말아주기를 부탁하네. 내가 자네를 부른 건 그 말을 해주기 위함이었네.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나?”

떠나기 전 날.

군대에 간 둘째 형을 빼고 모든 가족이 모였다. 인천에 있는 큰누나 식구들까지 모였으니 정말 다 모인 거나 다름없다.

가족들은 웃지 못했다.

조카들이 깔깔거리며 뛰어다녔으나 부모님은 물론이고 큰형 내외와 누나들까지 아무도 웃음을 보이지 않았다.

나쁜 일로 가는 것이 아니었음에도 가족들은 최강철에게 빚을 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약하지 못하는 시간 동안 아들이자 동생은 머나먼 이국땅에서 돌아오지 못한다.

일가친척 하나 없는 곳에서 죽을 둥 살 둥 모르며 싸워야 했으니 고난과 외로움 속에서 힘들게 살아야 할 것이다.

계약금으로 집을 샀고, 조카의 수술을 했으며, 그렇게 원하던 개인택시와 침대에서 잠을 잘 수 있었으니 그야말로 죄인처럼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최강철의 마지막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일부러 유쾌하게 떠들며 가족들의 분위기를 풀어주려 했으나 어머니의 눈물 속에서 분위기는 점점 무거워만 갔다.

저녁 식탁에 올라온 음식들은 전부 최강철이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어머니와 큰형수가 오랫동안 부엌에서 뚝딱거리며 만든 것들이었다.

떠나는 날 어머니는 끝끝내 안방에서 나오지 않으셨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어머니는 멍한 눈으로 앉아 화장대에 놓여 있는 가족사진을 바라보고 계셨다.

천천히 다가가 어머니의 등을 끌어안았다.

“엄마, 저 이제 가야 해요.”

“그려…….”

마치 허깨비 같다.

그러나 어머니는 최강철이 다가와 자신을 끌어안자 손을 올려 최강철의 팔을 붙잡았다. 그런 후 통증이 가득 찬 음성과 함께 울음소리가 배어 나왔다.

가슴이 아프다. 어머니를 다시는 버리지 않겠다고 맹세했는데 이렇게 우시는 모습을 보자 가슴 끝이 칼로 찔린 것처럼 아파왔다.

“엄마, 이거 받아요.”

“뭐여?”

“이건 아버지 모르게 잘 가지고 계세요. 누나들 혼수 비용이니까 꼭 지니고 계시다가 쓰세요.”

“이눔아, 가지고 가. 너도 거기서 써야 될 거 아녀!”

“제가 쓸 돈은 가져가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이제 정말 가야 해요. 엄마, 제가 없는 동안 건강하게 계세요.”

“정말… 정말 가는 거여!”

“엄마, 잘 다녀오라고 한 번만 웃어주세요. 거기서 힘내라고… 잘 지내라고 해주세요. 그렇게 울지 마시고, 웃어주세요. 그래야 편히 떠날 수 있잖아요.”

“크윽… 강철아. 우리 새끼 보고 싶어 어쩌… 잘 다녀와야 한다. 몸 건강히. 알았지?”

어머니가 몸을 돌려 끌어안으시며 웃었다.

눈물 속에서 억지로 웃으려 노력하시는 어머니의 얼굴이 마치 광대를 닮았으나 그 모습에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엄마, 이제 갈게요. 다시 돌아올 때까지 부디 안녕히 계세요.”

* * *

럼블에서 나온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출국 수속을 마치고 공항 로비에서 가족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아버지와 누나들의 손이 따뜻했다.

큰형 내외는 어제 저녁을 먹고 구미로 돌아갔기 때문에 배웅 나온 사람은 그들뿐이었다.

결국 어머니는 따라오지 않으셨다.

아들을 보낼 자신도, 떠나는 뒷모습을 보면서 견뎌낼 자신도 없었기 때문이다.

윤성호와 이성일도 눈물의 이별을 하고 있었는데 그들 역시 눈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하고 돌아왔을 때는 엄청난 기자들과 환영 인파가 몰려들었으나 출국하는 날에는 오직 스포츠서울의 김도환과 몇몇 기자만이 모습을 드러냈다.

당연한 일이다.

그는 수많은 금메달리스트 중의 한 명일 뿐이고 히로키를 때려눕히며 국민들을 열광케 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금방 기억 속에서 잊혔으니 미국으로 출국하는 것 정도는 뉴스거리가 될 수 없었다.

가족들과 헤어져 게이트를 향해 걸어갔다.

어느새 이별의 슬픔이 걷혀졌고 걸어가는 걸음걸음에 야망과 투지가 서서히 들어차기 시작했다.

이제 비행기를 타고 13시간 후면 자신의 꿈이 펼쳐질 신대륙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창문을 통해 수많은 비행기가 보였다.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곳곳에서 노닐었고 햇빛은 더없이 영롱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관장님, 오늘따라 하늘이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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