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50화 (50/308)

[50]

* * *

스포츠서울의 김도환은 무앙수린의 버팅에 의해 최강철의 눈썹이 찢어지며 피를 철철 흘리자 열이 올라 발을 굴러댔다.

미친놈처럼 소리를 지르며 반칙패를 외쳤으나 심판이란 작자가 경기를 속개시키는 걸 확인했을 때는 주먹까지 치켜들었다.

그러나 최강철이 무앙수린을 처절하게 응징하는 장면을 보면서 솟아난 소름 때문에 온몸을 마구 문질러야 했다.

정말 무서우리만치 처절하고 집요한 응징이었다.

자신은 수많은 복싱 경기를 봤지만 3라운드만에 이 정도로 상대의 얼굴을 피 떡으로 만들어 버리는 선수는 처음 봤다.

“정말, 대단하구만.”

“봤냐, 저게 최강철이다.”

입을 떠억 벌린 채 정신없이 시합을 관전하던 마에다가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흘려내자 김도환이 자랑스럽게 말을 받았다.

하지만 마에다는 여전히 링에 시선을 둔 채 자신의 생각을 이어나갈 뿐이었다.

링에서는 최강철이 두 손을 번쩍 든 채 환호하는 관중들에게 인사하고 있는 중이었다.

“마치 펀치가 면도날처럼 예리해. 내가 봤을 때 저놈은 더 일찍 경기를 끝낼 수 있었을 거야. 그런데도 끝까지 참는구만. 물론 그 이면에는 저놈 심성에 담겨 있는 잔인함도 있었겠지.”

“말이 이상하네. 너희들은 복수와 응징을 잔인함으로 표현하나?”

“흥분하지 말라고. 응징을 하는 건 좋아. 그래도 저건 아니지. 일부러 상대를 쓰러뜨리지 않은 채 얼굴을 피 떡으로 만드는 건 잔인한 짓이야. 우리 일본 선수였다면 무사도 정신으로 단칼에 쓰러뜨렸을 거야.”

“하아, 이 자식이 또 속을 슬슬 긁네. 그래서 지진 났을 때 수만 명을 단칼에 때려 죽였냐?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들을!”

“그건 과거라고. 그리고 복싱도 아니지. 관동대지진 사건은 일부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서 벌인 짓일 뿐이야. 일본 전체 국민성과는 무관해.”

“지랄하고 자빠졌네. 너흰 그게 문제야. 항상 좆 같은 변명으로 일관하는 거.”

김도환이 눈알을 부라렸다.

비록 복싱 전문 기자였지만 그 역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본 교과서 역사 왜곡 사건에 이를 갈고 있는 중이었다.

그동안의 친분이 없었다면 그는 마에다를 쳐다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마에다는 노련했다.

김도환이 싸늘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자 빙긋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한국인들의 현재 정서가 어떤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그는 이런 주제로 더 이상 말씨름을 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만 원이란 큰돈을 벌게 되었군.”

“그건 또 뭔 개소리야?”

“저렇게 커다란 부상을 입었으니 결승전을 치르겠어? 설마 방금했던 우리 내기를 취소하겠다는 건 아니겠지?”

“싸우지도 않으면 내기는 당연히 취소되는 거잖아. 치사하게 부상당해서 경기를 못 했는데 돈을 내라는 거냐?”

“이긴 건 이긴 거니까. 저놈이 경기를 못 하면 히로키가 우승하는데 내기가 취소되어야 할 이유가 있어?”

“이런 개새끼.”

* * *

최강철이 화끈하게 무앙수린을 KO로 때려잡고 내려오자 수많은 사람이 달려왔다.

그의 상태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유광호은 가까이서 상처를 확인하고는 길고 긴 숨을 내뱉으며 쌍욕을 마구 터뜨렸다.

상처가 생각보다 제법 커서 금방 치료될 상황이 아니었다.

“저 개새끼, 죽여 버렸어야 되는데. 아, 씨발, 미치겠네.”

아쉬움이 가득 들어차 있는 얼굴은 분노와 흥분으로 인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사무장님, 일단 라커룸으로 갑시다. 강철이 치료부터 해야겠어요. 우리 팀 전담 의사 좀 불러줘요.”

“알았어. 그런데 윤 코치, 얘 괜찮을까?”

“일단 의사 소견부터 들어봅시다.”

길고 긴 여운.

관중들은 아직도 최강철이 보여준 경기의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열기를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열기를 피해 일행들은 라커룸으로 이동했다.

수많은 기자가 몰려들어 질문을 퍼부으며 사진을 찍었으나 지금은 인터뷰를 할 상황이 아니었다.

라커룸에 들어와 땀을 닦아내고 일행들과 잠시 기다리자 한국 대표단 전담 의사로 따라온 김기석 박사가 헐레벌떡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숨을 고르지도 못한 채 최강철을 향해 다가왔는데 상처를 본 후 꽤나 심각한 얼굴을 만들었다.

“이 사람아, 이 정도면 경기하지 말았어야지, 왜 그랬어. 자네, 이번 시합만 뛰고 선수 그만둘 생각인가!”

“어떻습니까?”

“내일 경기는 어렵겠어. 찢어졌을 때 바로 시합을 중지했다면 덜 했겠지만 펀치를 맞아서 그런가 많이 벌어졌구만. 일단 병원으로 가세. 가서 봉합 수술부터 받지.”

“꿰맨다는 거죠?”

“당연하잖아. 빨리 수술해야 상처 자국이 남지 않아.”

“수술하면 시합을 못 하는 거잖아요?”

“어허, 방금 내가 한 말 듣기나 한 거야? 자넨 내일 시합 못 한다고. 이런 몸으로 무슨 시합을 해!”

김기석 박사가 고함을 지르자 윤성호와 몰려 있던 사람들의 안색이 단박에 흐려졌다.

마치 사망 선고를 받은 얼굴들이었다.

특히 김동길과 문성길의 얼굴은 더없이 굳어졌는데 안타까움이 잔뜩 묻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그들은 직접 링에 올라 싸우는 사람들이었으니 지금 최강철의 심정이 어떠할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랬기에 그들은 차마 최강철의 눈을 마주 보지 못했다.

그때 최강철의 입이 열렸다.

“눈 좀 찢어졌다고 죽지 않습니다. 박사님, 응급처치나 해 주세요. 저는 어떤 일이 있어도 내일 싸울 겁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박사님, 목숨 걸고 싸워본 적 없으시죠. 매일처럼 전쟁을 치르는 놈이 상처 좀 입었다고 도망가는 거 봤습니까!”

시합할 때는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자 상처에서 통증이 생겨났다.

찢어진 살들이 아우성을 치면서 눈 주변이 부풀어 올랐다.

냉정하게 판단한다면 내일 시합을 포기하는 게 맞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 시합이 끝나면 이미 뉴델리에 날아와 있는 톰슨은 계약서를 꺼내 들 것이 분명했다.

프로의 몸값은 그 사람이 얼마나 값어치가 나가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가치의 결정은 성적에 의해 좌우되고 자신은 그 성적을 바탕으로 당당하게 몸값을 요구할 생각이었다.

톰슨은 그림자처럼 숨어 자신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장사꾼이다. 자신에게 커다란 기대감을 가지고 있을 테지만 조금만 빈틈을 보이면 여지없이 약점을 물어뜯을지 모른다.

더불어 히로키를 반드시 만나고 싶었다.

유광호의 간절한 소원과 국민들의 성원을 생각한다면 이대로 물러설 일이 아니었다.

“강철아, 사람이 찾아왔어… 톰슨이다.”

“톰슨이 왔어요?”

“응, 너를 만나보고 싶다는데 어쩔래?”

“만나야죠. 어디 있습니까?”

“로비에.”

“관장님도 같이 가실래요?”

“나는 가봤자 허수아빈데 뭐 하러 가. 그리고 애들 내일 시합 있잖아. 조금 있다가 코치진끼리 회의가 있어.”

“알았어요.”

방을 나가는 윤성호의 등을 바라보며 최강철은 주섬주섬 옷을 꺼내 입었다.

역시 눈치가 빠른 사람이다.

자신의 말투에서 강한 의지가 담겨 있지 않다는 걸 듣자마자 그는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톰슨이 혹시 오늘 올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지만 막상 왔다는 소리를 듣자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가 온 것은 자신을 확인하기 위함일 것이다.

더불어 내일 경기의 가능 여부와 상처의 정도를 파악해서 상부에 보고할 생각이겠지.

천천히 로비로 내려가자 톰슨이 손을 드는 게 보였다.

여전히 만면에 웃음을 잔뜩 배어 문 그의 얼굴은 무슨 생각을 가졌는지 알 수가 없었다.

“미스터 최, 오늘 경기 잘 봤어.”

“괜찮았습니까?”

“당연히. 언제 봐도 자네 경기는 관중들의 피를 끓게 만드는 마력이 있어. 나는 자네의 그런 점이 좋아.”

“고맙군요. 그런데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부탁할 게 있어서 왔네.”

“나한테요? 뭐죠?”

“내일 시합은 하지 말게. 내가 온 건 그것 때문이야. 나는 자네가 계약 때문에 무리해서 출전할까 봐 온 거야. 다시 말하지만 나는 이까짓 아시안게임 결승전 결과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 자네는 우리에게 보물이야. 이번 경기로 인해서 계약의 조건이 변하지 않을 걸세. 그러니 출전하지 말게.”

“고마운 말씀이군요.”

최강철이 웃으며 톰슨의 얼굴을 바라봤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했다.

특히 권투 선수들은 시합을 하면서 늘 상대의 눈을 바라보는데, 그가 생각하는 모든 것이 거기에 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톰슨의 눈은 진지했다. 그리고 이익을 추구하는 사업가답지 않게 진심을 담고 있었다.

그럼에도 최강철은 웃는 얼굴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지만 나는 내일 시합에 출전할 겁니다. 전사는 불행한 내일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에겐 싸워야 할 이유가 또 있습니다.”

“그게 뭔가?”

“자존심이죠. 나는 그동안 한국 선수들을 무차별적으로 때려눕힌 히로키를 꼭 만나야 합니다. 그래서 가르쳐 줄 생각입니다. 한국에 내가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음… 무슨 소린지 알겠네. 좋군, 아주 좋아.”

톰슨이 웃었다.

최강철을 조사하면서 한일 관계에 대해 정확하게 알았고 히로키에 대한 것도 어느 정도 알기 때문이었다.

볼수록 마음에 든다.

이 정도 기량에 이 정도의 투지라면 최강철은 엄청난 사고를 쳐줄 것이다.

“지금 우리는 체육부의 고위 관계자들을 거의 다 포섭해 놓은 상태네. 자네의 병역 제한 조건은 금방 풀리게 될 거야.”

“나만 한정된 겁니까?”

“그럴 리가 있나. 그렇지 않아도 국위 선양을 한 선수들에게 제약을 걸고 있는 규정이 문제가 있다는 걸 인식하고 있더구만. 우리는 거기에 슬쩍 불을 붙여줬을 뿐이야.”

“다행이군요.”

“계약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 난 지금이라도 했으면 좋겠지만 자네 의견을 존중하겠네.”

“병역 제약 조건이 해결되면 즉시 하죠. 하지만 미국으로 건너가는 건 내년 3월이나 되어야 합니다.”

“왜?”

“대학교에 들어가야 하거든요. 입학을 해야 휴학계를 낼 수 있으니 그때까지는 기다려야 할 겁니다.”

* * *

히로키는 아마추어 복싱에 데뷔한 지 벌써 올해로 6년이 되었다.

그동안 한국 선수와는 7번을 붙었는데 전부 이겼고 각종 국제 대회에서 우승한 전력도 여섯 차례나 된다.

아마추어 전전 81전 3패 51KO승.

그가 기록한 3패 중 2번은 데뷔 초에 당한 것이고 1번은 세계 선수권대회에서 가르곤에게 패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아시아권에서는 무적을 자랑해 왔는데 이번 대회가 끝나는 즉시 프로로 데뷔할 계획이었다.

일본 권투계에서는 그에게 거는 기대가 상당했다.

겐죠가 최근 들어 WBC와 WBA 세계 랭킹에 들어갔지만 일본 권투계에서는 펀치력과 기술력이 뛰어난 히로키에게 거는 기대가 더 컸다.

그랬기에 일본 신문은 지금 난리다.

이번 대회에서 4연속 RSC승을 거두며 결승까지 진출했기 때문에 한국의 최강철을 꺾고 우승을 차지할 것이란 기사가 신문을 도배하고 있었다.

히로키는 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먹은 후 여유 있게 커피를 마셨다.

깔끔한 얼굴.

지금까지 일방적으로 경기를 해왔기 때문에 얼굴에는 상처 하나 없었는데 눈매가 섬뜩할 정도로 예리했다.

커피를 마시던 그가 입을 연 것은 문이 열리며 코치인 다케시가 들어와 자신의 앞자리에 앉았을 때였다.

“그 새끼 어떻답니까?”

“눈이 꽤 찢어졌어. 병원에 갔다 왔다는데 호텔 방에 처박혀 있어서 현재 상태가 어떤지 알 수 가 없어. 한국 놈들이 워낙 철저하게 입단속을 해서 정보가 안 나와.”

“어제 보니까 1㎝ 이상 찢어진 것 같던데요?”

“대충 그 정도였어. 하지만 부상 입은 상태로 싸웠기 때문에 더 벌어졌을 거다.”

“어려울까요?”

“내가 봤을 땐 그래. 그런 몸으로 나와봤자 선수 생명만 단축될 게 뻔한데 뭐 하러 나오겠나. 하긴, 또 모르지 한국 놈들은 또라이가 워낙 많아서 말이야.”

“운이 좋은 놈입니다. 변명거리가 생겼으니 얼마나 좋겠습니까.”

“무슨 소리냐?”

“출전하지 않으면 상처 때문이고 출전해서 져도 상처 때문이라고 그럴 것 아닙니까.”

“얘기가 되는구만.”

“그런 놈은 언제든지 박살 낼 수 있었는데 아쉽군요. 이번 기회에 아주 박살을 내놔야 더 이상 덤벼들 생각조차 하지 못할 텐데 말입니다.”

“자신감이 좋구나.”

“나는 예전의 히로키가 아닙니다. 프로로 전향하기 위해서 1년 전부터 맹훈련을 해왔어요. 야수가 되기 위해 철저히 준비해 왔기 때문에 최강철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 대일본이 얼마나 강한지 최강철을 꺾어서 보여주고 싶었는데 참 일이 더럽게 꼬여 버렸네요.”

“크크크… 네가 이번에 그 자식을 꺾으면 영웅이 되었을 거다. 우리나라 국민들도 한국 놈들 못지않게 반한 감정이 커져 있거든. 그래도 기다려 봐. 혹시 알아 그놈이 출전할지. 출전만 하면 너에게는 커다란 기회가 될 수 있어.”

“반병신이 된 놈을 때려눕히면 뭐 합니까.”

“그래도 일단 이겨야지. 히로키, 그놈이 정신 나가서 출전한다면 무조건 이겨야 한다. 무슨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말이야. 우리에겐 금메달이 필요해. 알았어?”

“걱정하지 마세요. 만약 링에 올라온다면 야금야금 박살을 내놓을 테니까요. 조선 놈의 피 맛은 어떨지 모르겠군요. 김치 냄새만 나지 않으면 좋을 텐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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