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49화 (49/308)

[49]

최강철의 눈이 싸늘하게 식었다.

무앙수린은 주의를 주는 심판에게 고의가 아니었다며 어깨를 으쓱대고 있었으나 눈가에는 그 기분 나쁜 미소가 슬금슬금 새어 나오고 있었다.

“야, 심판. 반칙이잖아. 씨발, 네 눈은 동태 눈깔이냐? 머리로 박았잖아, 저 개새끼가!”

피를 흘리며 코너로 돌아오자 윤성호가 방방 뜨면서 금방이라도 무앙수린을 때려죽일 것처럼 뛰어나왔다.

그런 그를 최강철이 말렸다.

여기서 흥분을 참지 못하고 일을 벌이면 당한 건 자신인데 오히려 손해를 볼 수도 있었다.

상처는 제법 컸다.

정면에서 들이박았기 때문에 뼈 있는 부분이 1㎝나 찢어졌다.

링 닥터가 급히 올라와 응급치료로 바셀린을 왕창 바른 후에야 겨우 피가 멈췄다.

하지만 격렬한 경기를 하게 된다면 피는 다시 흐를 것이다.

그럼에도 최강철은 다가와 괜찮냐고 묻는 심판에게 전혀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시합을 재개하자는 신호를 보냈다.

1라운드의 남은 시간은 불과 10초였으나 무앙수린은 그 특유의 기분 나쁜 미소를 지은 채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같이 웃어주었다.

미친 소를 다루듯 피하면서 10초를 보내고 라운드가 끝나는 공이 울리자 코너로 돌아왔다.

“괜찮겠어?”

“문제없습니다. 관장님, 제가 흘린 피 얼마나 됩니까?”

“이 자식아, 그건 왜 물어?”

“돌려받아야죠. 저 새끼 피로 말입니다.”

“아우, 열받아. 어쩐지 미친놈처럼 실실 웃는 게 기분 나빴어. 저 씨발 놈, 아주 작정하고 나온 것 같아.”

“크크크…….”

최강철이 윤성호의 울분을 들으며 기괴한 웃음을 흘려냈다.

재밌어서 웃는 게 아니다.

그 웃음 속에 담긴 것은 잔인함과 차가운 심장에서 뿜어내는 한기가 잔뜩 담겨 있는 것이었다.

2라운드.

공이 울리자 최강철은 1분간의 휴식으로 눈 상처를 조금 더 옭아맨 후 천천히 링 중앙으로 걸어 나갔다.

맞은편에 다가온 무앙수린의 얼굴은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원하는 바를 성공했으니 지금부터 천천히 상처 입은 맹수를 사냥하겠다는 생각인 것 같았다.

최강철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그런 놈의 눈을 바라봤다.

너… 아직 내가 어떤 놈인지 모르지.

지금부터 보여줄게, 네가 한 짓이 얼마나 어리석고 바보 같은 짓이었는지를 말이야.

최강철은 미친 멧돼지처럼 접근전을 펼쳐오는 무앙수린의 안면을 향해 빛살 같은 레프트 잽을 던진 후 곧장 좌우 스트레이트 콤비네이션을 폭발시켰다.

뒤로 물러서지 않은 채 번개처럼 터뜨린 펀치 세례였다.

예상과 달리 물러서지 않고 반격한 펀치들로 인해 무앙수린의 신형이 휘청거렸다.

최강철은 멈칫하며 전진을 멈춘 무앙수린의 양쪽 옆구리를 바디로 때린 후 예리하게 어퍼컷을 올려쳤다.

바디를 먼저 때린 것은 안면을 비워놓게 만들기 위함이다.

자신의 생각대로 게임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놈의 안면 가딩을 무너뜨릴 필요성이 있었다.

지속적인 복부 공격.

최강철은 빠른 스텝을 이용해서 눈부시게 빠른 펀치들을 무앙수린의 양쪽 옆구리에 꽂아 넣었다.

격렬하게 움직이며 펀치가 교환되자 또다시 눈에서 피가 슬금슬금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최강철은 눈을 파고드는 피를 닦지 않은 채 멧돼지를 사냥하는 것처럼 화살같이 예리한 펀치들을 무앙수린의 옆구리에 집중시켰다.

드디어 견디지 못하고 무앙수린의 가드가 옆구리로 내려오는 게 보였다.

그걸 보면서 최강철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놈은 이제 펀치를 내미는 시늉만 해도 옆구리를 막기 위해 팔꿈치가 저절로 내려가고 있었다.

쐐액!

옆구리를 때릴 것처럼 빠져나왔던 라이트 훅이 놈의 면상을 훑었다.

하지만 각도를 조금 비틀었기 때문에 정타로 맞지 않고 긁어내리 듯 무앙수린의 얼굴을 치고 빠져나왔다.

실수라고?

아니다, 일부러 그런 거다.

커팅을 만들기 위해 고의로 만들어낸 각도로 때린 펀치였다.

커팅 펀치.

충격은 반으로 줄겠지만 안면의 상태가 정타로 맞을 때보다 훨씬 대미지를 크게 받는 펀치 기법이었다.

무앙수린은 최강철의 펀치가 연이어 자신의 얼굴을 칼로 찢어내듯 스치고 지나가자 성난 황소처럼 밀고 들어왔다.

정타로 맞아서 충격을 받은 것보다 이런 펀치가 더 후유증이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이미 그의 얼굴은 최강철의 펀치로 인해 표피가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최강철은 그의 펀치가 쏟아져 나올 때마다 1년 동안 미친 듯이 연마했던 패링을 이용한 크로스 카운터와 더블펀치를 전광석화처럼 터뜨렸다.

칼날처럼 예리하고 송곳처럼 날카로운 최강철의 펀치는 무앙수린의 안면을 철저하게 유린했는데 2라운드 중반이 지나면서부터는 피멍이 들기 시작하더니 결국 코에서 붉은 피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혈투다.

최강철의 눈에서 흐르는 피와 무앙수린이 코로 뿜어낸 피가 접근전을 펼칠 때마다 하얀 캔버스를 불게 물들였다.

이미 무앙수린의 얼굴에는 습관처럼 자리 잡고 있었던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팡, 파앙, 팡… 팡… 팡!

2라운드가 끝날 때쯤 최강철의 주먹이 불을 뿜었다.

돌진해 온 무앙수린의 펀치들을 위빙과 더킹으로 피한 후 전매특허인 콤비네이션이 터진 것이다.

하지만 10발의 펀치들은 정타가 아니라 전부 커팅 펀치들이었다.

맞는 순간 너클부분의 각도를 틀어버리는 커팅 펀치들이 얼굴을 난자하자 결국 무앙수린의 눈썹이 계속 쌓여온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길게 찢겨 나갔다.

당장은 피가 뿜어져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상처가 벌어지면서 독약을 마신 것처럼 서서히 죽어갈 것이다.

2라운드를 끝내고 돌아오자 윤성호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눈에서 흘러나온 피가 많아졌기 때문에 빠르게 치료할 필요성이 있었다.

부들부들 떨린다.

지금까지 36번을 싸워왔으나 이렇게 커다란 부상을 입은 건 처음이었다.

“인마, 상처가 자꾸 커지잖아. 빨리 끝내고 치료받자!”

“안 됩니다. 끝을 봐야죠.”

“무슨 소리야!”

“죽일 겁니다. 내게 비열한 짓을 했으니 혹독하게 피의 대가를 치르도록 만들 겁니다.”

“우와, 이 미친놈…….”

최강철의 눈을 본 윤성호가 질렸다는 표정을 만들었다.

평소에는 유순했고 착한 동생처럼 행동하지만 이럴 때마다 이놈은 야수로 변한다.

하지만 윤성호는 더 이상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 맞다.

전사는 그래야지. 지옥의 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독하리만치 차가운 냉정함과 복수심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역시 이대로 간단하게 끝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하여간, 더 맞지 마. 눈탱이 더 찢어지면 내일 경기 못 해!”

“걱정하지 마세요.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3라운드 공이 울리자 최강철의 스타일이 다시 바뀌었다.

치열하게 접근전을 펼치며 무앙수린을 압박하던 전술을 바꾸고 완벽한 아웃복싱으로 전환시켰다.

빠르게 움직이는 스텝.

마치 춤을 추듯 흔들어대는 그의 스텝을 따라 무앙수린이 움직였으나 스피드에서 상대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최강철은 자신이 확보해 놓은 거리에서 펀치를 뿜어냈다.

적의 반격을 무력화시켜 놓고 원거리 공격을 통해 야금야금 침몰시키는 작전이었다.

상처 때문이다.

무앙수린의 기를 눌러놓기 위해 2라운드에서는 인파이팅을 펼쳤으나 더 이상 상처가 커지면 윤성호의 말대로 결승전에 지장을 주게 된다.

최강철은 더 이상 커팅 펀치를 구사하지 않았다.

이미 무앙수린의 안면은 칼로 긁어놓은 것처럼 엉망으로 변했기 때문에 정타가 들어가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쉬익, 쉬익.

방울뱀이 우는 소리처럼 소름 끼치는 파공음이 최강철의 레프트 잽에서 거침없이 터져 나왔다.

무앙수린의 펀치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파괴적인 공격 수단이었다.

스트레이트에 가까운 레프트 잽이 접근해 오는 무앙수린의 안면을 교란시키면 여지없이 그 뒤를 따라 스트레이트와 양 훅이 조화를 이루는 강력한 콤비네이션이 터졌다.

비틀비틀.

3라운드에 들어 거리를 줄이지 못한 무앙수린은 10여 차례에 달하는 최강철의 파워 있는 콤비네이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그의 얼굴은 피 범벅으로 변해 있었다.

아마추어 경기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장면이었는데 커팅 펀치에 당한 그의 얼굴은 전체가 피멍으로 가득 찬 상태였다.

최강철은 균형이 무너진 상태에서 흔들거리는 무앙수린을 집요하게 괴롭히며 시간을 끌고 나갔다.

기다린다.

차갑게 가라앉은 눈은 상대의 목 줄기를 뜯어버리기 위해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앙수린이 발악을 시작한 것은 라운드가 중반을 지나고 있을 때였다.

이대로 계속 경기가 진행되면 결국 지게 될 것이란 판단이 서자 그는 온 힘을 다해 최강철의 품을 향해 뛰어들었다.

국왕께서는 자신에게 이번 대회에서 우승하면 커다란 상금을 내리겠다는 약속을 했다.

찢어지도록 가난했던 삶.

부모는 7명의 동생을 돌보지 못했기에 모든 것은 자신의 몫으로 돌아왔다.

배고프다며 울부짖는 동생들을 먹이기 위해 하루 종일 바닷가를 헤매며 물고기를 잡아야 했다.

나는 이겨야 한다. 이겨서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있는 가난과 고통의 사슬을 끊어내야만 한다.

내가 싸우는 것은 오로지 살아남기 위함이다.

무앙수린은 화살처럼 날아온 최강철의 레프트 잽을 고스란히 얼굴로 받아내고 참고 또 참으며 숨겼던 자신의 양 훅을 놈의 옆구리에 집중시켰다.

상대는 눈이 찢어졌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얼굴을 보호할 가능성이 컸다.

강하다는 것을 알기에 치사하지만 버팅 작전을 구사했다.

놈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 후 승부를 본다면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기는 자신의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고의로 버팅해서 눈은 찢어놨으나 그것이 오히려 놈을 분노하게 만든 것 같았다.

치사하고 야비한 전술이었으나 양심의 가책은 받지 않았다. 살기 위해 싸우는 전사는 목숨을 거는 법이었으니 이길 수만 있다면 이빨로라도 물어뜯을 의향이 있었다.

워낙 빠른 스피드를 가진 놈이었다. 얼마나 빠른지 자신의 무딘 두 발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였다.

더군다나 예리한 레프트 잽은 맞을수록 두려울 정도로 강해서 얼굴에 닿을 때마다 고개가 뒤로 젖혀졌고 그 뒤를 이어 터지는 콤비네이션은 그야말로 정신이 얼얼할 정도의 충격을 주었다.

이런 놈을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 우스워졌다.

최강철은 자신이 상대할 수 있는 놈이 아니었다.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투지, 그리고 지독한 냉정함과 분노를 억누르며 상황을 주시하는 침착함, 자신의 단점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야금야금 뼈를 발라내는 잔인함까지 모두 갖췄으니 이놈은 진짜 복서다.

그러나 한 가지가 부족한 것 같다.

바로 야수의 본능.

지금까지의 경기는 보지 못했으나 이번 시합을 하면서 느낀 것은 최강철이 자신처럼 근성 있는 자에게는 완벽한 피니쉬를 가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마지막 희망을 가진다.

이번 한 번의 기회로 마지막 승부를 불꽃처럼 펼칠 생각이었다.

최강철은 무앙수린이 품으로 파고들며 강력한 양 훅을 던지자 가딩으로 얼굴을 차단한 후 지체 없이 어퍼컷을 올려쳤다.

기다린 순간이다.

상대의 피범벅이 된 얼굴을 확인했지만 그의 시선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을 뿐이었다.

승부라는 것. 분노로 인해 상대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었지만 이제는 끝내야 할 때였고 자신은 이 순간을 기다려 왔다.

예리하게 구십 도로 치고 올라간 어퍼컷이 무앙수린의 턱을 가격하고 빠져나오는 순간 최강철의 어깨가 전진하며 상대의 몸을 밀쳤다.

그러고는 곧바로 사이드스텝을 밟으며 무앙수린의 신형을 로프 쪽으로 돌렸다.

경기가 진행될수록 웃음기가 사라진 무앙수린의 얼굴에서 깊은 고독과 슬픔을 느꼈다.

당신은 왜 그리 슬픈 눈을 가지고 있는가.

처음처럼 비릿한 미소로 나를 바라봤다면 내가 던지는 이 펀치가 조금은 덜 미안했겠지.

미안, 무앙수린.

번개처럼 터지는 활화산 같은 공격.

아웃복싱을 던져 버리고 정체를 드러낸 최강철의 폭풍 같은 연타가 무앙수린의 안면에 무차별적으로 꽂혔다.

경악에 빠져든 관중들의 함성은 그의 펀치 샤워를 감당하지 못했다.

당신이 전사고 불꽃같은 승부를 원했다면 이것으로 끝을 내주마.

이것이 바로 내가 당신에게 주는 배려이자 마지막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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