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43화 (43/308)

[43]

* * *

최강철은 세계 선수권대회가 끝난 후 자신에게 부족하다고 생각된 단점들을 보완하기 시작했다.

브릴랜드와 경기를 치르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세계 최고의 테크닉을 지닌 브릴랜드의 펀치는 알고도 피하지 못한 경우가 있었는데 워낙 스피드가 빨랐고 예상치 못했던 각도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물론 상당수의 펀치는 일부러 맞아준 것도 있다.

아마추어 복싱에서 쓰는 12온스 글러브의 파괴력이 워낙 떨어지기 때문에 자신의 펀치를 적중시키기 위해 상대방의 펀치를 끌어들인 경우였다.

하지만 프로 복싱에 들어가면 그런 짓을 할 수 없다.

프로 복싱에서 사용하는 8온스 글러브는 아마추어에서 사용하는 12온스 글러브에 비한다면 맨주먹과 다를 바 없어 더욱 완벽한 방어 기술이 필요했다.

더불어 브릴랜드가 구사했던 더블펀치를 집중적으로 연마했다.

시합을 하면서 더블펀치는 처음이라 전혀 대비하지 못했기 때문에 정타를 여러 번 맞았다.

브릴랜드의 더블펀치는 스트레이트와 훅, 어퍼컷 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쏟아져 나왔는데 상대의 방어를 순식간에 무너뜨릴 정도로 효과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점적으로 훈련한 것은 패닝에 의한 크로스 카운터였다.

상대의 펀치를 흘림과 동시에 반격하는 크로스 카운터는 작용과 반작용의 원리를 이용해 상대에게 충격을 주기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 비장의 무기로 써먹을 수 있는 기술이었다.

학교 측의 우려와는 달리 최강철은 2학년 연말 고사에서도 전교 수석을 차지했다.

연속 KO승의 기록이 깨진 것처럼 전 과목 100점이란 기록도 깨졌다.

주요 과목이 아닌 한문에서 한 문제를 실수한 게 원인이었다.

복싱에서도 그랬지만 최강철은 기록이 깨진 것에 대해 조금도 아쉬움을 가지지 않았다.

사람은 완벽할 수 없다.

완벽한 인간은 발전할 수 없는 법이고 실수가 있어야 또 다른 진화를 이뤄낼 수 있기 때문이다.

* * *

되돌아보면 고등학교 시절의 시간들은 더없이 느리게 지나간 것 같았다.

의미 없는 삶의 연속.

그 삶이 주는 지겨움 속에서 더 많은 자유를 갈망하며 학교와 공부에 치여 사는 인생을 원망했고, 빨리 어른이 되어 마음껏 세상을 살아가려는 욕망에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기를 간절히 바랐다.

가장 아름다워야 했던 시절의 만용.

스스로를 갈고닦아야 했음에도 어리석었던 자아는 주변을 원망하기 바빴고 자신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알지 못했다.

자신의 불행했던 삶은 청춘을 청춘답게 살지 못했기에 나타난 결과였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안다.

그랬기에 최강철은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하며 시간을 보냈다.

영어가 어느 정도 마스터 되자 일본어를 공부했고 중국어까지 손을 댔다.

향후 미래의 세계에서는 일본어와 중국어가 무척 중요해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겨울 방학이 찾아왔고 최강철은 시간을 반으로 쪼개어 공부와 훈련을 반복하며 지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자신의 신체는 거의 완벽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꾸준히 반복된 근력 강화 운동의 결과다. 겨울방학이 끝났을 때 그의 평상시 몸무게는 정확하게 70㎏을 유지했는데 웰터급에 최적화된 몸무게였다.

시합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3㎏을 감량해야 되었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 정도의 몸무게를 계속 유지한다면 웰터급을 평정했을 때 미들급으로 전향하는 것도 무리가 되지 않을 것이다.

방학 기간 동안 최강철은 자신의 주 무기들을 가다듬는 데 최선을 다했다.

레프트 잽의 스피드와 강도를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 360도 회전 타격 훈련을 매일같이 반복했고 콤비네이션 강화를 위해서 기구까지 특별히 고안했는데 펀치 볼이 여섯 개나 달린 것이었다.

더불어 신무기로 장착한 더블펀치와 패닝에 이은 크로스 카운터를 즉시 실전에 써먹을 수 있을 정도로 훈련했다.

자신의 예상처럼 윤성호가 국가 대표 코치로 발탁된 것은 겨울방학이 끝나기 바로 직전이었다.

대통령이 직접 칭찬한 적이 있었으니 협회장은 한 자리가 빈 국가 대표 코치직에 다른 사람을 염두에 두지 못했을 것이다.

윤성호는 국가 대표 코치 제의를 수락한 후 체육관 뒤편에 숨어서 펑펑 울었다.

못다 했던 청춘의 꿈을 최강철로 인해 다시 시작했고 국가 대표 코치라는 영광을 얻었으니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였다.

국가 대표 코치는 한시적 임무를 띠고 있었기에 국가 대표가 소집되지 않는 한 할 일이 없는 보직이었다.

그럼에도 돈은 나온다. 비록 적었으나 국가에서 정기적으로 돈이 들어온다는 건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진짜 즐거운 일은 체육관 전면에 새로운 현수막을 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세계 선수권대회 우승자 배출에 이어 그가 국가 대표 코치로 임명되었다는 사실은 훨씬 많은 관원들을 끌어모으는 계기가 되었다.

살판났다.

좁았던 체육관을 개조해서 장비도 새로 들여놨고 안 쓰던 건물 2층까지 세를 빌려 공간을 넓혔다.

코치진도 2명이나 더 보강했다. 관원들의 숫자가 400명에 달하자 체육관의 살림살이는 점점 여유를 찾아갔다.

* * *

“강철아, 빨리 와. 이 자식아, 이제 시작한다니까!”

이성일이 사무실에서 튀어나오며 소리를 버럭버럭 질렀다.

이미 사무실에는 20여 명의 관원이 잔뜩 몰려 있었는데 최충일의 세계 타이틀전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지금쯤 길거리에는 개미 새끼 하나 없을 것이다.

이때의 프로 복싱 인기는 절정을 구가했는데 세계 타이틀전이 벌어지는 날이면 동네 주민들이 전부 모여 응원전을 펼쳤기 때문에 거리에는 사람 구경 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화장실에서 나와 이성일을 따라 사무실로 들어갔다.

윤 관장은 맨 앞좌석에 앉아 최강철이 들어오자 비어 있는 옆자리에 앉으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빠르게 걸어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텔레비전 화면에서는 타이틀전에 앞서 공식 행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경기는 필리핀에서 열렸기에 위성으로 중계되는 중이었다.

최충일.

아마추어 전적 78승 5패, 54KO승을 기록한 엘리트 복서로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후 프로로 전향, 타이틀전에 도전하는 지금 13승 무패, 12KO승을 기록하고 있는 강자였다.

정말 대단한 전적이다.

경량급인 슈퍼 페더급에서 이 정도의 KO율은 가히 경이적이라고 표현할 만했다.

“강철아, 최충일의 스트레이트를 잘 봐라.”

“예.”

“저놈의 스트레이트는 당대 제일이라고 알려져 있어. 얼마나 예리한지 살갗이 베일 정도라고 해. 펀치의 수발과 각도가 완벽하고 스피드도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지.”

“KO율이 좋네요.”

“상대한 놈들은 전부 5회를 넘기지 못했어. 워낙 스트레이트 위력이 대단해서 당한 놈들 얘기로는 망치로 맞은 것 같다고 하더라. 아마 나바라테도 버티기 힘들 거야.”

“버티면요?”

“응?”

“챔피언은 백전노장입니다. 최충일 선수가 상대했던 상대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레벨이에요. 만약 나바레테가 5회를 무사히 넘기게 되면 후반에 위험할 것 같아요.”

“하긴, 최충일은 10라운드를 뛰어본 경험이 거의 없으니까. 하지만 신문 기사를 보니 지옥 훈련을 통해 체력이 좋아졌다고 하더군. 기대해도 될 거야.”

“글쎄요.”

최강철은 윤 관장의 의견에 별다른 토를 달지 않았다.

그렇다고 수긍을 한 것도 아니었다.

전생에서 다시 돌아온 후 모든 것이 똑같이 반복되지 않는다는 걸 배웠기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당장 자신의 삶을 보더라도 그렇다. 자신은 예전의 패배자가 아니었고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며 새로운 삶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루시퍼가 새로 준 삶이 어디까지 사람들의 삶에 관여되는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알 방법이 없었다.

이윽고 경기가 시작되자 몰려든 관원들의 입에서 연신 탄성과 고함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경기는 1라운드부터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윤 관장의 말대로 최충일의 스트레이트는 번개처럼 빨랐고 강력한 위력을 가져 나바레테의 안면을 연신 흔들어놓았다.

자신의 우려와는 다르게 최충일의 움직임은 무척 가벼웠는데 엄청난 훈련량을 소화했다는 말이 사실인 것 같았다.

일방적인 경기.

유리한 경기를 이끌던 최충일이 5라운드에서 다운을 뺏어내는 순간 관원들이 전부 한꺼번에 일어나며 두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강력한 라이트 스트레이트.

다운을 당한 나바라테는 카운터 3에 일어났으나 머리를 흔들며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필리핀 적지에서 벌어졌기 때문인지 챔피언이 일어나자마자 12초나 빠르게 공이 울려 절호의 찬스를 놓쳤다.

정말 기가 막힌 일이었다. 아무리 적지라 해도 라운드를 일찍 끝내는 짓까지 한다는 건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었다.

결국 최충일은 6회부터 정신을 차린 노련한 나바레테의 경기 운영에 말려들어 11회에 KO패를 당하고 말았다.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전생의 결과는 현실에서도 똑같이 벌어졌다.

“이런 병신, 저놈의 유리 턱. 도대체 저런 주먹을 맞고 쓰러진다는 게 말이나 돼!”

그렇게 위력이 큰 펀치에 맞은 것이 아니었음에도 지쳐 있던 최충일이 나바레테의 레프트 훅에 쓰러져 더 이상 일어나지 못하자 윤 관장이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댔다.

그건 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실망 때문이다. 그리고 역전 KO패였기에 더욱 화가 났을 것이다.

최강철은 그런 윤 관장과 관원들을 바라보며 두 눈을 지그시 오므렸다.

오늘도 한 가지 배웠다.

최충일의 공격력은 챔피언을 압도했으나 맷집과 체력은 그렇지 못했다.

복싱은 우수한 공격력이 있다고 적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이길 수 있는 훨씬 많은 무기가 있어야 한다는 걸 이 시합이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잘 싸우고 졌다는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것… 이겨서 우뚝 서는 것만이 바로 정의이고 영광이다.

* * *

겨울방학 동안의 집중적인 훈련 결과는 명확하게 나타났다.

1982년, 고등학교 3학년이던 7월 최강철은 서울에서 벌어진 아시아 복싱 선수권대회에서 5연속 KO승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4월에 치러진 국가 대표 선발전까지 감안한다면 9연속 KO승이었다.

총 전적 33전, 33승, 32KO승.

아시아 선수권대회는 아시안 게임을 대비해서 각국의 주전들이 대거 불참했기 때문에 반쪽 대회가 되었음에도 그의 KO 행진은 언론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대회를 지켜본 복싱 관계자들의 평가는 침이 마를 정도로 칭찬 일색이었고 그가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킬러인 일본의 히로키를 잡을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을 앞다퉈 보도했다.

최강철이 각국의 주전들이 대거 빠진 아시아 선수권대회에 출전하겠다고 했을 때 복싱 협회의 사무장 유광호와 국가 대표 코치진은 결사적으로 말렸다.

괜히 출전했다가 강력한 금메달 후보인 최강철이 부상이라도 당해서 4개월 후에 있는 아시안게임에 참여하지 못한다면 낭패도 그런 낭패가 없었다.

그럼에도 최강철은 그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출전을 강행했다.

진정한 훈련은 실전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수준급의 선수들을 상대로 지금까지 새롭게 진화시킨 자신의 기술들을 시험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관원들이 부쩍 늘었어도 여전히 성호체육관에서는 스파링 파트너를 구할 수 없었는데 윤 관장이 서울시를 전부 뒤져가며 간신히 괜찮다는 파트너를 구해왔어도 제대로 된 훈련을 할 수 없었다.

워낙 실력의 격차가 컸기 때문이다.

이제 최강철의 펀치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국가 대표급은 되어야 가능했다.

아시아 선수권대회에서 최강철은 모든 경기를 3라운드에 끝냈다.

1라운드에서는 상대 선수의 공격을 최대한 받아주며 그동안 익혀왔던 방어 기술들을 시험했고 2, 3라운드에서는 자신의 진화된 공격 기술들을 펼쳐 일방적인 경기 끝에 모든 경기를 KO로 끝냈다.

비록 강자들이 출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준이 조금 떨어진 대회였으나 최강철의 폭풍 같은 질주는 정말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이제 남은 국제경기는 아시안게임뿐이다.

각국의 정예들이 모두 출격하는 아시안게임만 휩쓸어 버린다면 프로 복싱에 진출하려는 계획은 완벽하게 충족된다.

벌써 더 럼블의 톰슨은 두 번이나 그를 만나기 위해 서울로 날아왔는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만 따면 병역 제약 조건을 무조건 풀 수 있도록 조치하고 있는 중이란 사실을 알려왔다.

사실일 것이다.

더 럼블 정도의 로비력이라면 돈에 죽고 사는 신군부 정권의 실세들을 완벽하게 손아귀에 틀어쥘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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