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32화 (32/308)

[32]

* * *

아웃복싱의 기본은 거리를 확보하는 것이다.

강력한 펀치력을 가지고 끝없이 접근전을 펼치는 상대에게 거리를 주지 않은 채 싸우는 최고급의 기술이 바로 아웃복싱이다.

아웃복싱이라고 해서 도망만 다닌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정확한 타이밍을 뺏어 적의 방어를 뚫고 공격하기 때문에 오히려 펀치의 숫자는 아웃복싱을 구사하는 쪽이 훨씬 많다.

현재 웰터급을 호령하고 있는 환상의 테크니션, 슈가레이 레너드가 바로 아웃복싱의 정수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레전드다.

안 맞고 때린다. 그리고 기회가 나면 폭풍처럼 몰아붙여 상대를 쓰러뜨리는 그의 아웃복싱은 복싱의 교과서라 불릴 정도로 완벽했다.

최강철은 날카로운 잽을 연속으로 던지며 가르곤의 왼쪽으로 돌았다.

가르곤이 오른손잡이기 때문이다.

아웃복싱의 원칙은 상대의 주 공격 루트의 반대편으로 스텝을 옮기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상대의 훅이나 스트레이트에 완벽하게 노출되기 때문에 강력한 한 방으로 경기가 끝날 수도 있다.

쉬익, 쉬익!

마치 피스톤처럼 터지는 레프트 잽.

가르곤의 접근을 원천 차단 하고 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최강철은 상대의 스톱핑을 피하며 연속으로 레프트 잽을 날렸다.

그의 레프트 잽은 다른 선수들이 날리는 것과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었다.

강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눈부시도록 빠르다.

최강철의 레프트 잽에 의해 몇 차례 얼굴을 가격당한 가르곤의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

공격을 시작하는 순간 날아오는 레프트 잽이 균형을 무너지게 만들어 쉽사리 공격 기회를 잡기가 어려웠다.

더군다나 커팅이 쉽지 않다.

레프트 잽의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계속해서 위빙과 더킹을 했지만 피하기가 쉽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방어에 성공하고 공격을 시작하려 하면 어느새 전권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백전노장이었다.

상대의 레프트 잽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한 번만 기회를 잡으면 언제든지 무너뜨릴 자신이 있었다.

아웃복서를 잡는 방법은 수도 없이 많다.

지금까지 참고 있는 것은 놈이 어떤 무기를 가졌는지 스텝의 움직임은 어떤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가르곤이 본격적으로 공격을 시작한 것은 1라운드 중반이 지날 때였다.

최강철의 레프트 잽이 나오는 순간 벼락같이 파고들며 강력한 좌우 훅을 터뜨렸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하는 작전.

비록 레프트 잽에 맞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의 공격을 성공시킬 수만 있다면 이 경기는 충분히 자신이 이길 것이다.

백전노장답게 레프트 잽을 피하며 기회를 노리던 가르곤이 좌우 훅을 날리며 급작스럽게 접근해 들어오자 최강철의 다리가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그동안 그는 신중하게 전진 스텝을 밟으며 자신을 추격하기만 했을 뿐 쉽게 공격을 퍼붓지 않았었다.

강력한 공격을 맞이한 최강철은 레프트 잽을 회수하며 더킹으로 연타 공격을 피한 후 라이트 스트레이트를 뻗었다.

정확한 타이밍에 의한 카운터펀치.

위력에 중점을 둔 것이 아니라 스피드를 이용해서 상대의 힘을 역이용한 공격 방법이었다.

덜컥.

양 훅을 날리던 가르곤의 얼굴이 뒤로 젖혀지는 순간 최강철의 펀치가 속사포처럼 날아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터진 스트레이트 콤비 블로우와 좌우 복부 공격이 순식간에 가르곤의 전신을 타격하고 회수되었다.

급하게 가드를 올리고 얼굴을 방어했으나 최강철의 스트레이트와 왼쪽 옆구리 공격은 이미 성공한 후 빠져나간 상태였다.

뒤로 주춤 물러났던 가르곤이 전열을 재정비하고 확인했을 때 이미 최강철은 거리를 확보한 채 레프트 잽을 날려 오는 중이었다.

속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경기를 시작하면서 이번 시합은 누구의 펀치가 더 강력한지, 누구의 공격 패턴이 더 강한지에 의해 승부가 갈려질 것이라 판단했다.

최강철의 전적이 모두 KO승으로 끝났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분명 정면 승부가 펼쳐질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놈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아웃복싱을 펼치며 자신을 괴롭히고 있었다.

똑같은 패턴.

레프트 잽으로 거리를 두고 자신이 무시한 채 공격하면 좌우로 빠지면서 연타 공격을 가해왔기 때문에 압박 전술을 펼칠 새가 없었다.

이미 자신의 얼굴은 얼마나 많은 펀치를 맞았는지 화끈거릴 정도였다.

충격을 받은 건 아니었으나 정신이 멍해질 정도로 많은 펀치를 맞았다.

불과 1라운드만에 자신이 맞은 펀치를 계산해 본다면 대략 50발은 넘을 것 같았다.

* * *

“잘했다, 강철아. 이대로만 하자.”

“가르곤은 아직 쌩쌩해요. 저 친구는 아직 자신의 주 무기를 꺼내지 않았어요.”

“알아, 그래서 너한테 말하려고 했다. 저놈, 아무래도 지금까지 탐색전을 펼친 것 같아. 네가 접근전을 펼칠 거라고 생각했다가 당황한 모양이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다르겠지. 그래도 괜찮아. 네 스피드면 충분히 피할 수 있어.”

“그럼요.”

최강철이 윤 관장의 갈라진 목소리를 들으며 태연하게 대답했다.

윤 관장은 1라운드가 진행되는 동안 얼마나 소리를 질렀는지 이미 목구멍에서 쇳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제부터가 진짜야. 놈은 너를 코너로 몰려고 할 거야. 그걸 막아야 해.”

“걱정하지 마세요.”

“놈이 밀치지 못하도록 만들어. 클린치가 들어오면 돌면서 빠져나오라고!”

공이 울렸으나 윤 관장은 발악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안다, 그의 마음이 어떤지.

그는 가르곤이 본격적으로 거칠게 공격을 시작했을 때 커리어가 부족한 자신이 견디기 어려울지 모른다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역시 다르다.

가르곤은 2라운드에 들어서자 특유의 전진 스텝을 밟으며 콤비네이션을 날리기 시작했다.

선제공격이다.

최강철의 날카로운 레프트 잽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전술을 들고 나왔다.

피할 사이도 없이 허공에 양 훅을 던졌던 가르곤의 몸통이 와락 달려들었다.

그러고는 최강철의 몸을 밀며 양쪽 복부를 향해 강력한 보디 공격을 가해 왔다.

암 블로킹으로 막으며 좌측으로 도는 순간, 가르곤의 왼손이 몸통을 끌어안았다.

아니다, 안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날카로운 라이트 어퍼컷이 송곳처럼 솟구쳐 올라왔다.

고개를 돌려 피했으나 귀가 먹먹해졌다.

아무래도 놈의 펀치가 귓가를 훑고 지나간 모양이었다.

윤 관장이 예상한 것처럼 가르곤은 최강철의 빠른 발을 잡기 위해 클린치 작전을 펼쳤다.

심판이 뜯어말렸으나 잠시뿐, 그는 계속해서 거칠게 패턴 공격을 퍼부으며 실패하면 즉시 몸통을 끌어안고 주먹을 날려 왔다.

다섯 번.

심판이 가르곤을 뜯어낸 것이 벌써 다섯 번이다.

그동안 그가 최강철의 몸을 끌어안고 날린 펀치 횟수는 50번이 넘었다.

물론 근접거리에서 맞았기 때문에 충격은 없었으나 비겁한 작전을 들고 나오자 최강철의 얼굴이 저절로 일그러졌다.

가르곤이 심판에 의해 잠시 물러났다가 그대로 돌진해 왔다.

자신의 작전이 먹혀든다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최강철은 슬며시 이를 악물고 지금까지 사이드로 돌던 스텝을 멈춘 채 돌진해 오는 가르곤을 향해 마주 달려들며 전광석화처럼 십여 발의 펀치를 날렸다.

‘아직까지 몰랐던 모양인데 내가 아웃복싱을 펼친 것은 네가 두려웠기 때문이 아니다.’

패턴공격을 펼치며 다가오던 가르곤의 접근이 최강철의 무지막지한 콤비네이션의 의해 저지당하며 무너졌다.

최강철이 날린 십여 발의 펀치 중 절반이 얼굴과 옆구리에 작렬했기 때문에 가르곤은 가드를 올린 채 방어에 치중하며 전신을 웅크렸다.

펀치의 강도는 물론이고 워낙 펀치가 빨라 이전처럼 클린치 작전을 펼쳤다가는 버티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최강철의 선제공격은 가르곤이 접근할 때마다 가차 없이 터졌다.

당황스러움과 충격으로 가르곤의 얼굴이 벌겋게 변했다.

정확한 펀치에 당했기 때문인지 그의 코에서는 피가 새어 나왔고 눈도 서서히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벌써 일곱 차례나 같은 공격을 당하자 그는 이제 쉽사리 클린치 작전을 펼치지 못하고 그저 빠르게 이동하는 최강철을 뒤쫓기만 할 뿐이었다.

3라운드에 들어선 최강철의 공격 패턴이 또 변했다.

아웃복싱을 하면서 인파이팅을 병행하는 작전이었다.

빠르게 돌다가 상대의 공격이 실패했을 경우 최강철은 전광석화와 같은 콤비네이션을 4~5차례 구사한 후 뒤로 빠져나갔다.

가르곤은 그때마다 어쩔 줄 몰라 했다.

난타전을 펼쳤다면 해볼 만했겠지만 최강철은 공격이 끝나면 지체 없이 거리를 확보하며 뒤로 물러났다.

분노로 인해 머리가 하얗게 변해갔으나 다리가 점점 무거워져 이제 쫓는다는 것도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3라운드 내내 저렇게 미친 듯이 움직이면서 전혀 지친 기색조차 보이지 않는 최강철이 인간으로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또다시 들어오는 공격.

이제 주먹을 내는 것조차 두려울 정도다.

놈은 자신이 펀치를 내는 순간을 이용해서 공격을 해 왔는데 철벽이라 불렸던 자신의 방어 체계가 그때마다 무용지물로 변하곤 했다.

최강철은 코너에서 1분 남았다는 윤 관장의 사인을 받은 후 좌측으로 빠르게 움직이던 스텝을 멈추고 전진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분노에 사로잡혀 있는 가르곤의 눈.

그 눈에는 최강철이 스피드를 이용해서 아웃복싱을 했기 때문에 경기가 제대로 풀리지 않는다는 억울함과 분노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의 모습은 먹이를 놓친 채 올가미에 걸려 상처 입은 짐승과 비슷하게 보였다.

가르곤.

네가 원하지 않은 경기를 했다고 나를 비겁하다고 느끼는 것이냐.

이런 아웃복싱을 한 놈은 처음이겠지. 나 같은 스피드와 콤비네이션을 가진 놈은 처음 봤을 테니까.

하지만 네가 잡지 못했다고 해서 나를 비겁자로 본다면 그건 커다란 오산이야.

왜냐하면 진짜 내 스타일은 아웃복싱이 아니라 인파이팅이기 때문이다.

최강철은 사이드스텝을 멈추고 흠칫 놀라는 가르곤을 향해 빠르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스텝을 고정시킨 채 특유의 강력하고 빛살처럼 빠른 연타 공격을 시작했다.

가르곤도 정신을 차리고 맞불을 놓았으나 최강철은 물러서지 않은 채 쉴 새 없이 펀치를 뿜어냈다.

밀린다.

그렇게 강하다던 가르곤이 최강철의 칼날 같은 연타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주춤거리며 밀려났다.

“야, 미친 새끼야. 지금 뭐 하는 거야! 뒤로 빠져. 빠지라고! 이 웬수 같은 놈아!”

링 밖에서 윤 관장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쌍욕을 해댔으나 최강철은 작정을 한 것처럼 가르곤의 백스텝을 따라잡으며 패턴 공격을 퍼부었다.

이미 관중들은 난리가 난 상태였다.

압도적인 우세를 보였던 최강철이 마지막 1분을 남기고 정면 대결로 판을 새로 짜며 불꽃같은 승부를 펼치자 전부 자리에서 일어나 미친 듯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결국 코너에 몰린 것은 가르곤이었다.

최강철의 펀치력을 견뎌내지 못하고 백스텝을 밟던 그는 코너에 등을 기댄 채 정신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거기가 지옥이다.

난타전을 펼칠 때는 완벽한 타이밍을 잡지 못했지만 그가 코너에 몰리자 최강철은 거리를 확보한 후 미사일 같은 펀치를 갈기기 시작했다.

“와아, 와아!”

관중들의 함성 소리가 장송곡처럼 들렸다.

최강철의 펀치에 의해 가르곤의 얼굴은 쉴 새 없이 돌아갔는데 이미 얼굴은 처참하게 변해서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그 투지가 대단하다.

끝끝내 쓰러지지 않고 버티는 가르곤의 정신력은 복서로서 인정해 줄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심판의 눈에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스톱, 스톱!”

최강철이 송곳 같은 좌우 스트레이트를 가르곤의 얼굴에 작렬시키고 뒤로 물러서는 순간 레프리가 몸을 던지며 둘 사이를 가로막았다.

시합 종료를 불과 10초 남겼을 때 발생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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