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26화 (26/308)

[26] 제5장 포효

스포츠서울의 김도환은 편집국장의 반대를 거듭 설득한 끝에 최강철의 기사를 1면으로 터뜨렸다.

<괴물의 탄생, 19연속 KO승의 신화>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가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1면 타이틀에는 두 손을 번쩍 치켜든 최강철의 전신 모습이 생생히 담겨 있었는데, 그에 대한 이력이 상세하게 소개되었고 장차 한국의 숙적인 히로키를 깨뜨릴 비밀 병기가 될 것이란 기대가 담겨 있었다.

더불어 그가 프로로 데뷔했을 때의 예측도 여과 없이 쓰여 있었다.

아마추어 복싱의 경기상 헤드기어를 썼음에도 19연속 KO승을 거둔 그의 파괴적인 주먹은 프로에 데뷔했을 때 폭발적인 위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 * *

최우용은 아침 일찍 출근해서 차를 정비하고 일을 나가기 위해 사무실로 들어섰다.

오늘 작업은 우기를 대비한 배수로 청소였는데 함께 나갈 정비원들과 작업 계획을 세우고 반장에게 지시를 받기 위함이었다.

이미 사무실에는 직원들로 가득 차 있었는데 정식 공무원들뿐만 아니라 일용직 작업원들까지 전부 들어와 거의 30명에 가까웠다.

그가 들어서자 웅성거리며 몰려 있던 사람들이 대화를 멈추고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영문을 몰라 어색하게 서 있자 박 반장이 활짝 웃는 얼굴로 최강철의 얼굴이 대문짝하게 나온 스포츠서울을 들고 다가섰다.

“최 씨, 자네 아들 신문에 나왔어. 본 겨!”

그가 내민 신문을 받아 본 최우용의 얼굴이 놀람으로 굳어졌다.

국가 대표가 되었다는 소식을 받고 얼마나 기뻤던가.

아들의 시합에 가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술 사라는 동료들의 뿌리침을 거절하지 못하게 만들어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시게 만들었다.

늦게 아들의 얼굴을 봤지만 그저 잘했다는 말만 전하고 곧장 잠에 곯아떨어졌는데 박 반장이 내민 신문에서 잘생긴 아들이 활짝 웃고 있었다.

“아니… 이게.”

“강철이가 그냥 국가 대표가 된 게 아닌가 벼. 읽어보라구……. 한국 웰터급의 미래라고 적혀 있더라니까. 자네 아들, 대단하구먼.”

최우용은 부랴부랴 신문에 담긴 기사 내용을 읽었다.

자신의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온통 칭찬 일색이었다.

또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이렇게 잘난 아들의 경기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게 아버지로서 너무 부끄러웠다.

“최 씨, 아들놈이 국가 대표가 됐는데 그냥 넘기지는 않겄지. 어제 막걸리 산 거 가지고 퉁 치고 그러지 마러.”

“암만, 그러믄 안 되지. 난 우리 아들이 국가 대표가 되면 집이라도 팔겠네.”

옆에 있던 윤 씨까지 나서자 작업원과 운전기사들이 여기저기서 한마디씩 했다.

그랬기에 최우용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좋아유, 까짓것 내가 한턱 쏘지, 뭐. 일요일 날 전부 우리 집에 와. 돼지 한 마리 잡을 테니까.”

작정한 듯 최우용이 소리치자 직원들이 박수를 치면서 좋아했다.

누군가의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건 동료들에게 너무나 행복한 일인 모양이다.

그때 저승사자 김근조가 문을 박차고 들어오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아침부터 사무실에서 왜 떠들고 그래! 내가 뭐라고 했어요. 사무실에서는 정숙하라고 몇 번이나 말해!”

“저그… 최 씨 아들이 국가 대표가 돼서 시방…….”

“국가 대표가 뭐, 그게 뭐라고 이렇게 떠드는 거요? 반장이면 반장답게 직원들 단속 잘하라고 했잖아요!”

“…죄송합니다.”

“시간 없으니까 바로 출발해요. 오늘 할 일이 많으니까 농땡이 부리지 말고!”

김근조가 고개를 조아리는 박 반장을 노려보더니 자신의 책상 쪽으로 가서 들고 있던 노트를 소리 나게 던졌다.

뭔가 아침부터 심기가 불편한 모양이었다.

몰려 있던 운전기사와 작업원들이 그의 눈치를 보면서 슬금슬금 사무실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박 반장 역시 최우용의 팔을 붙잡고 밖으로 이끌었다.

괜히 사무실에 있어봤자 좋은 꼴을 보기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 씨블 눔. 아침부터 소장한테 깨졌나 벼. 어린 새끼가 하여간 성격이 지랄이여, 지랄. 저런 새끼가 어뜩혀서 공무원이 됐는지 몰러. 나라가 개판이니까 개새끼들이 살판났다고 멍멍 짓는구먼. 최 씨, 원래 저런 눔이니까 신경 쓰지 마러. 알았지?”

“그럼요.”

어머니는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두말하지 않은 채 잔치 준비를 했다.

동네 아주머니들의 도움을 받아 음식을 준비했는데 아버지가 직접 도축장에 가서 돼지를 잡아 왔기 때문에 집 안 전체가 음식 냄새로 가득 찼다.

일요일이 되자 많은 손님이 몰려들었다.

아버지의 회사 직원들뿐만 아니라 동네 주민들까지 전부 몰려들어 마당 곳곳에 상을 펼쳤어도 자리가 부족할 정도였다.

누나들까지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섰으나 어머니는 일을 하느라 고생이 심하셨다.

그럼에도 얼굴에는 하루 종일 웃음꽃이 피었다.

어머니의 얼굴에서 저렇게 밝은 웃음이 피어난 모습은 거의 보지 못했다.

최강철은 아버지가 부를 때마다 떠들썩한 술자리에 가서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아버지는 손님들을 접대하면서 연신 너털웃음을 짓고 계셨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또다시 취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취하시면 같은 말을 반복하는 버릇이 있었다.

“자네들, 이거 봤는가. 이게 국가 대표가 되었다는 증서여.”

“어허, 이게 그거구먼. 번쩍번쩍 빛나는 거 같어.”

친구분들이 호들갑을 떨어주자 아버지의 얼굴에서 자랑스러움이 올올이 흘러나왔다.

아버지는 어느 정도 술에 취하자 국가 대표 증서를 옆구리에 끼고 다니셨는데 보는 사람들마다 증서를 내밀며 보여주었다.

“우리 강철이가 말이여. 커억… 인물이여. 이눔, 생긴 것 좀 봐봐. 날 닮아서 을매나 잘생겼어. 안 그려?”

“자네보다 훨씬 났구먼. 아무래도 제수씨 닮은 거 가터.”

“뭔 소리를… 내 아들인데 날 닮아지 누굴 닮어. 이눔이 국가 대표가 된 것도 전부 내 피를 물려받아서 그런 겨. 내가 소싯적에…….”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지만 최강철은 아버지의 옆에 앉아 조용히 웃기만 했다.

좋았다.

아버지는 아들이 얼마나 공부를 잘하는지, 얼마나 착한지, 얼마나 권투를 잘하는지 친구분들께 하루 종일 자랑하셨다.

그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벅차올랐다.

왜 진즉 이러지 못했을까. 아버지의 가슴에 대못을 박으며 살았던 그 못난 과거가 떠올라 새삼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이야기를 듣다가 슬며시 일어나 정신없이 음식을 나르는 어머니 곁으로 다가갔다.

“엄마, 내가 갖다 드릴게요.”

“거그 앉아서 쉬고 있어. 국가 대표는 이런 거 하는 거 아녀.”

“괜찮아요. 이리 줘요.”

“이눔아, 엄마 말 들어. 훌륭한 사람이 음식이나 나르고 있으믄 쓰겄냐. 이런 건 엄마하고 너그 누나들이 할 테니까 이제 들어가서 쉬어라.”

막무가내였다.

그럼에도 어머니와 누나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한껏 피어 있었다.

자랑스러운 아들과 동생을 가졌다는 자부심이 힘들다는 생각조차 지워 버린 모양이었다.

* * *

“강철아, 준비 됐지?”

“무슨 준비?”

“흐흐… 데이트할 준비지, 뭐냐. 자식이, 꼭 형한테 부끄러운 소리를 하게 만든다니까.”

학교에 나오자마자 이성일이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붙여 왔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화요일이다.

놈의 몸에서는 좋은 냄새가 났는데 뭔가를 처바른 것 같았다.

“야, 너 엄마 화장품 바르고 나왔냐?”

“아니, 누나 꺼.”

“잘하는 짓이다.”

“이 자식아, 얼굴이 안 되면 스타일이라도 좋게 만들어야 되는 거야. 너도 줄까? 누나 모르게 슬쩍 가지고 나왔는데.”

“미친놈아, 그걸 왜 가지고 나와!”

“이따, 걔들 만나기 전에 다시 한 번 바르려고.”

“어이구.”

“크크크… 걔들이 너 나온다니까 전부 몸을 배배 꽜다고 하드라. 네가 오늘의 에이스니까 잘해야 돼.”

“그건 또 뭔 소리야?”

“젤 예쁜 애로 해줄 테니까 무조건 자리 지키고 있으란 말이야. 나도 네 덕분에 용궁 좀 갔다 오자.”

“내가 어쩔 수 없이 가긴 한다만 1시간만 있다가 나올 거니까 그렇게 알아.”

“무슨 개소리셔? 인마, 너 죽을래!”

“시험이 코앞이야. 그리고 3달 후에 시합 있는 거 몰라?”

“그래도 그렇지, 이게 어떤 이벤튼데 그런 싸가지 없는 소릴 하냐. 안 돼, 오늘은 죽어도 안 돼.”

“차라리 죽여라, 이 자식아.”

수업을 받는 이성일의 태도는 여간 방자한 게 아니었다.

비실비실 웃기도 했고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며 생각하는 로댕이 되기도 했다.

아무래도 첫 미팅이다 보니 가슴이 뛰어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 것 같았다.

옆에서 지랄을 해도 최강철은 수업에 집중했다.

이제 보름 후면 2학년 기말고사가 치러지기 때문에 수업에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시간은 잘도 흘러갔다.

점심시간이 되자 이정태가 쫓아와서 오늘의 작전을 열심히 설명했는데 주요 골자는 무조건 최강철을 밀어준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짝짓기를 할 때 남자들이 소지품을 하나씩 내놓으면 제일 예쁜 애가 집는 물건은 무조건 최강철의 것이라는 작전이었다.

필요 없다고 했으나 이놈들은 막무가내였다.

이런 작전이 필요한 이유는 다음 미팅을 성사시키기 위한 것이라며 무조건 작전에 동참하라고 협박을 했다.

이윽고 모든 수업이 끝나자 이성일이 책가방에서 뭔가 주섬주섬 꺼내더니 얼굴에 잔뜩 처바르는 게 보였다.

“강철아, 손 내밀어봐.”

“왜?”

“너도 발라야 해. 그러니까 손 내밀어.”

“싫다, 인마.”

“바르라면 발라.”

움츠리는 최강철을 향해 손에 뭔가를 잔뜩 묻힌 이성일이 덥석 달려들더니 얼굴에 대고 문질렀다.

끈적끈적한 느낌. 냄새는 좋았으나 뭔가 찜찜하고 묘한 느낌이었다.

“야, 이 변태 자식아, 여자 화장품을 왜 처발라!”

“크크크… 이 자식아, 여자들이 이 냄새 좋아해. 나중에 고맙다고 뽀뽀나 하지 마러.”

약속 장소는 영등포에서 제법 번화가에 있는 빵집이었다.

빵집이었으나 빵만 파는 게 아니다. 우유도 팔고 주스도 팔기 때문에 고딩들의 미팅 장소로는 최적이었다.

도망가지 못하도록 옆구리를 꼭 붙잡고 이성일이 떠밀었기 때문에 꼭 죄를 짓고 형사에게 끌려가는 범죄자 같았다.

두 놈이 들어서자 먼저 와 있던 이정태가 손을 번쩍 치켜드는 게 눈으로 들어왔다.

점점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놈이 손을 번쩍 든 곳에는 시커먼 사내놈 셋과 맞은편에 다섯 명의 여학생이 가지런히 앉아 있었다.

“어서 와.”

반색을 하는 이정태에게 가벼운 눈인사를 던지고 슬그머니 자리에 앉았다.

이성일은 공주를 호위하는 기사처럼 씩씩하게 자리를 차지했는데 못생긴 놈이 참으로 용감했다.

최강철이 뒤늦게 나타나자 여학생들의 눈이 초롱초롱 빛나기 시작했다.

그는 몰랐겠지만 영등포 쪽에서 최강철은 여학생들 사이에 가장 유명한 남학생이었고 사귀고 싶은 워너비 스타였다.

여학생들은 언제나 꿈을 꾼다.

백마 탄 기사가 잠자고 있는 숲속의 공주에게 다가오는 것처럼 언젠가 멋있는 남학생이 자신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꿈을 말이다.

그 멋있는 남학생 중 1위가 바로 최강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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