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25화 (25/308)

[25]

최강철의 승리가 확정되고 두 손을 번쩍 치켜드는 순간 링으로 올라온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미친 듯이 터졌다.

이것 또한 특이한 일이다.

지금까지 6체급의 국가 대표가 결정되었으나 기자들이 이런 반응을 보인 적은 없었다.

그중에는 올림픽 금메달이 유력시되는 선수들도 있었지만 그들에 대한 관심은 지금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최강철이 기록한 19연속 KO승은 아마추어 복싱 역사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으니 기자들이 거품을 무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다른 대회는 제쳐두고 마지막 4연속 KO승은 전국에서 가장 강하다는 선수들만 참여한 국가 대표 선발전이었기에 기자들의 관심은 폭발적이었다.

더군다나 웰터급이었다.

아마추어 복싱에서는 히로키에 가로막혀 연신 고배를 마셨고 프로 복싱에서는 겐죠에게 5연패를 당하며 한국 킬러라는 별명을 갖게 만들어준 체급이었다.

기자들의 궁금증은 다양했고 집요했다.

벌 떼처럼 달려든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거의 30여 분 동안 인터뷰를 한 후에야 라커룸으로 겨우 돌아올 수 있었다.

마음은 급했으나 기자들은 쉽게 그를 보내주지 않았다.

* * *

“강철아, 일단 씻자. 고생했다. 고생했어. 그리고 정말 고맙다…….”

윤 관장이 또다시 감정이 복받치는지 떨리는 음성으로 말하며 땀에 젖어 있는 최강철을 끌어안았다.

그는 최강철의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 미친 듯이 링 안으로 뛰어 들어왔는데 두 눈에서 연신 굵은 눈물을 흘려냈다.

세계 챔피언이란 꿈을 이루기 위해 달려왔던 많은 시간을 부상 때문에 접은 이후 그의 소망은 오직 하나, 자신의 손으로 챔피언을 만드는 것뿐이었다.

국가 대표에 선발된 것일 뿐 챔피언이 된 것은 아니었으나 그것만으로도 감격에 겨워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그런 윤 관장을 최강철은 가만히 안아주었다.

그의 감정이 가슴으로 전해져 와 심장이 따뜻해져 오랜 시간 그를 안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더 바쁜 일이 있기에 그럴 수가 없었다.

“관장님, 먼저 전화를 쓰고 싶어요. 가족들에게 알려줘야 되는데…….”

“그렇지, 당연히 알려 드려야지. 가만있어 봐. 저쪽 사무실에 전화가 있는 것 같더라. 일단 씻고 있어. 내가 갔다 올게.”

최강철의 말을 들은 윤 관장이 그때서야 뒤로 물러나며 급히 눈물을 훔치고 라커룸을 빠져나갔다.

핸드폰이 없는 시절이었고 체육관이란 특성 때문에 공중전화도 보이지 않았으니 전화할 데가 마땅치 않았다.

사무실에 있는 전화 역시 직원들의 허락을 받아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무조건 달려갈 일이 아니었다.

윤 관장이 돌아온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았다.

샤워라고 해봤자 찬물에 땀만 씻으면 되는 거라 불과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는데 이미 윤 관장은 라커룸으로 돌아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철아, 가자. 전화 쓰게 해주겠단다.”

“예.”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급히 사무실을 향해 움직였다.

체육관을 관리하는 사무실의 규모는 불과 열 평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직원도 달랑 두 명만 앉아 있었다.

이미 이야기가 끝난 건지 일행이 전화기 쪽으로 다가갔어도 직원들은 자신들의 일에 몰두한 채 이쪽은 쳐다보지 않았다.

최강철은 전화기를 들고 먼저 아버지가 근무하는 회사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길다.

그 짧은 시간에 수많은 생각과 흥분이 몰려와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버지는… 자신이 국가 대표가 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주면 얼마나 좋아하실까…….

신호음이 끊기며 걸걸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하지만 아버지의 목소리는 아니다.

-여보시요.

“안녕하세요. 저는 최, 우 자, 용 자 되시는 분의 아들입니다. 아버지와 통화할 수 있을까요?”

-최씨 아들? 누구?

“최강철입니다.”

-강철이냐. 나, 반장 아저씨여. 아버지 지금 일 나가고 없는데 어쩌. 무신 할 말 있어?

“언제 들어오시죠?”

-한참 걸려. 공사 현장에 나가 있거든. 들어올라믄 7시는 다 되어야 할 거여.

“예, 그럼 아버지 들어오시면 전해주세요. 제가 오늘 국가 대표가 되었다고요.”

-아이고, 그것이 참말이냐. 축하현다, 축하혀. 그러잖아도 니네 아부지가 그거 보겠다고 아침부터 안달을 했는데 일이 바빠서… 어쩠든 잘혔다.

“고맙습니다.”

-경사 났구먼. 내가 니 아부지 들어오믄 꼭 알려줄 테까 걱정하지 마라. 강철아, 장허다.

“고맙습니다. 아저씨.”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끊었다.

반장 아저씨는 아버지와 동향이라 친하게 지냈기 때문에 집에도 가끔 놀러와 막걸리를 나눠 마시는 사이였다.

아쉬웠지만 참았다. 직접 기쁜 소식을 알려 드리며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으나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기만 했다.

전화를 끊고 나자 머리가 팽이처럼 돌아갔다.

반장 아저씨의 목소리에서 뭔가 이상한 냄새가 맡아졌기 때문이다.

일이 바빠서 못 오실 수 있다. 아들의 시합보다 가족을 먹여 살리는 회사 일이 훨씬 중요하니까.

하지만 반장 아저씨의 목소리는 그 이상의 뭔가가 담겨져 있었다.

그럼에도 최강철은 고개를 흔들고 곧바로 집에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두 번 울리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덜컥하며 통화음이 떨어졌다.

-강철이냐!

“엄마, 저에요.”

-우리 아덜, 다치지 않았어. 몸은 괜찮은겨?

“예, 안 다쳤어요. 그리고 엄마, 저… 국가 대표 되었어요.”

-아이고, 그게 정말여! 강철아… 강철아, 고생혔다. 고생혔어. 흐윽…….

어머니는 국가 대표가 되었다는 말을 하자마자 눈물을 쏟아내며 말을 잇지 못하셨다.

가슴이 먹먹하게 아파왔다.

눈물이 쏟아지려는 걸 이를 악물고 참았다.

전화를 하자마자 수화기를 들었다는 건 어머니가 소식이 오기를 학수고대하며 기다리고 있었다는 뜻이다.

“엄마, 기쁜 일인데 왜 우세요. 그만 우세요.”

-그려, 그려…….

“금방 갈게요. 배고프니까 엄마, 맛있는 거 해주세요.”

* * *

학교가 끝나자마자 쫓아온 이성일은 물론이고 퇴근해서 돌아온 누나들은 방구들이 떠나갈 정도로 기뻐하며 최강철은 축하해 줬다.

이성일은 학교 때문에 경기장에 오지 못했는데 얼마나 궁금해했는지 온몸이 젖을 정도로 뛰어왔다.

어머니는 전화할 때와 다르게 차분하게 최강철을 맞아들이며 그저 장하다는 말과 함께 아들의 등을 한참 동안 두드려 주기만 했다.

감정을 추스르시는 게 버릇이 되었다.

6남매를 키우시며 갖은 역경을 버텨온 어머니는 시간이 지나자 당신의 감정을 숨기며 저녁을 준비하느라 바쁘게 움직이셨다.

저녁상이 모두 준비되었으나 아버지는 돌아오시지 않았다.

어머니가 여러 번 회사에 전화했으나 당직자는 귀찮다는 듯이 이미 퇴근했다는 말만 전해줄 뿐이었다.

결국 어머니의 성화로 인해 가족들은 8시가 훌쩍 넘어서야 늦은 저녁을 먹었다.

아버지가 들어오신 건 10시 반이 다 되었을 무렵이었다.

취하셨다.

아버지는 막걸리를 좋아하셨지만 주량은 그리 센 편이 아니라 쉽게 술에 취하시는 편이었다.

비틀거리며 대문을 들어온 아버지는 최강철을 보자마자 끌어안은 채 한참 동안 가만히 계셨다.

그런 후 천천히 가슴에서 아들을 떼어낸 후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강철아, 아부지가 너무 기뻐서 한잔혔다. 우리 아들이 너무 자랑스러워서 아저씨들한테 술 한잔 샀어.”

“잘하셨어요.”

“약속 지키지 못해서… 미안혀다. 아부지가 못나서 우리아들 국가 대표 되는 곳에도 못 가보고…….”

“바빠서 그러신 거잖아요. 아버지, 들어가세요. 많이 취하셨어요.”

“그려, 들어가자. 우리 아덜, 아부지 좀 업어줘라. 아부지가 술 취해서 그런가 잘 걷지 못하겄어.”

“예, 아버지.”

아버지를 등에 업고 걸었다.

너무 야위어 마치 허깨비를 업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키에 깡마른 몸.

아버지는 이 몸으로 자식들을 위해 평생을 머슴처럼 일하셨고 그럼에도 돌아가실 때까지 힘들다는 말씀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두 손으로 목을 감싼 아버지의 팔이 따뜻했다.

앙상한 이 두 팔이 왜 이렇게 따뜻한 걸까.

* * *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던 담임선생과 교감선생은 최강철에게 축하 인사를 하고 부랴부랴 돌아갔는데 학교 측에 보고를 하기 위한 것 같았다.

그 결과가 이것이다.

최강철은 학교 정문에 떡하니 걸려 있는 현수막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정문고의 건아, 최강철. 국가 대표 선발!

정문 양쪽을 가로지르며 설치된 거대한 현수막은 학생들을 보라는 의미보다 지역 주민들에게 보라는 의미가 더 강했다.

내세울 게 변변치 못했던 학교에서 국가 대표가 나왔으니 경사도 이런 경사가 없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실 안으로 들어서자 반 친구들이 괴성을 지르며 그의 우승을 축하해 줬다.

격의가 없는 인사였고 축하였다.

정문고를 장악했던 블랙 서클들이 그로 인해 완전히 뿌리가 뽑힌 이후 학교의 분위기는 몰라보게 달라졌는데 예전과 다르게 면학 분위기가 자리 잡혀 있었다.

모든 것이 최강철로 인해 생긴 결과였다.

블랙 서클을 박살 낸 후 최강철은 주먹을 쓰는 놈들에게 치가 떨릴 정도의 경고를 했다.

어떤 순간이든 친구들이나 후배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면 반병신으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경고였기에 논다고 까불던 놈들은 구석에 찌그러져 얼굴도 제대로 들지 못했다.

물론 협박에 불과한 말이었으나 학생들이 느끼는 체감 효과는 너무나 커서 그 경고를 어기는 놈들이 없었다.

최강철은 그야말로 전설이었다.

혼자서 수십 명을 상대로 박살을 냈고 정문고 역사상 처음으로 전 과목 100점을 달성하며 전교 수석을 차지했으니 살아있는 전설로 충분히 불릴 만했다.

그 후로 최강철은 권투와 공부만 했고 친구들과 격의 없는 농담을 해서 두려움을 없애주었다.

지금 이 순간 친구들이 그를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건 그런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조례를 하기 위해 들어온 담임선생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아침부터 이사장을 비롯해서 교장선생은 물론이고 동료 교사들에게까지 축하 인사를 받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아직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상태였다.

잘 키운 제자 하나가 열 자식 부럽지 않다더니 꼭 그 짝이었다.

“주목, 우리의 자랑스러운 친구 최강철이 국가 대표가 되었다. 자, 우리 모두 축하의 박수를 보내주자.”

담임선생의 조례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는 자신이 직접 본 시합 장면을 학생들에게 침을 튀겨가며 전해줬는데 학생들은 마치 한 편의 무협 영화를 보는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들었다.

이런 태도로 수업을 듣는다면 아마 이번 기말고사에서 반 평균이 10점은 올라갈 것이다.

조례가 끝나고 수업이 시작될 때마다 선생님들은 최강철에 대해서 한마디씩 했다.

그들에게도 최강철은 히어로다.

비록 자신들에게 공부를 배우는 제자였지만 전교 수석을 차지하면서 복싱 국가 대표까지 되었으니 칭찬이 마르지 않았다.

이성일이 화장실에 다녀오던 최강철을 슬며시 이끈 건 점심시간이 거의 끝날 무렵이었다.

“강철아, 날짜 잡혔다.”

“무슨 날짜?”

“이 자식아, 그새 까먹었어. 우리 미팅하기로 했잖아.”

“아하, 미팅.”

그때서야 생각난 최강철이 입술에 웃음을 베어 물었다.

이성일의 협박에 그러마, 하고 대답은 했으나 막상 미팅 날짜가 잡혔다는 말을 듣게 되자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미팅에 나가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여자로 보이지 않을 만큼 어린애들과 웃고 떠든다는 것이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최강철은 침을 흘리며 열변을 토하는 이성일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다음 주 화요일이야. 5 대 5, 정태가 문화여고에서 제일 예쁜 애들만 오니까 약속 반드시 지키라고 펄펄 뛰더라. 인마, 어딜 보는 거야. 내 말 듣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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