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16화 (16/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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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 선수권대회라고는 하나 각종 대회 동메달 수상자까지 전부 참여하는 대회였으니 절대 만만치가 않다.

더군다나 요즘의 복싱 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기 때문에 대회에 참여하는 신인들의 숫자는 엄청났다.

한국인의 체형상 플라이급부터 라이트급까지 출전하는 선수가 가장 많았는데, 그 수는 200여 명에 달했고 최강철이 소속된 웰터급도 120명이 참가할 정도였다.

앞으로 한 달.

지금까지 3달 가까이 훈련하면서 꽤 많은 기술을 연마했지만 아직도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상대의 공격을 미리 차단하는 스토핑과 패링, 고급 방어 기술인 스웨잉과 반격의 기회를 노리는 슬리핑 등은 이론만 들었지 아직 익히지 않았고, 제대로 된 스파링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클린치도 익숙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자신이 있었다.

3달 동안 꾸준히 지속해 온 로드워크와 상체 근력 강화 운동으로 체력이 몰라보게 증진되었고, 복싱에서 가장 중요한 공격 기술인 스트레이트와 훅, 심지어 어퍼컷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게 되었으니 어떤 상대와 붙어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에게는 윤 관장도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비장의 무기 레프트 잽이 장착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스파링 파트너는 물론이고 김춘수와 정용택까지 레프트 잽 하나로 박살이 날 만큼 그의 레프트 잽은 면도날처럼 날카로웠다.

밥상이 나간 후 성적표를 슬그머니 앞으로 내밀자 아버지께서 조용하게 성적표를 들어 올렸다.

그러신 후 한참을 바라보다가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누나들에게 넘겼다.

성적을 확인한 누나들의 호들갑이 삽시간에 방 안을 가득 적셨는데 얼마나 놀랐는지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너… 너 이거 진짜니? 혹시 성적표 위조한 거 아냐?”

“내가 성적표를 뭐 하러 위조해. 진짜야.”

“우와, 미치겠네. 중간고사만 잘 봤으면 1등도 했겠다. 아부지, 강철이가 아무래도 미쳤나 봐요.”

막내 누나는 아직도 성적표를 뚫어지게 바라본 채 호들갑을 떨었고 둘째 누나는 최강철의 등을 두드리며 연신 잘했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자식들의 행동을 그저 말없이 지켜볼 뿐이었다.

벌써 알고 계신다.

학교로부터 이번 사고 때문에 정학을 한 달이나 받았다는 사실이 회사로 통보되었기 때문이다.

충격을 받으셨을 텐데 아버지는 최강철을 바라보며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아직 누나들은 그가 사고 친 걸 모르는지 성적만 가지고 계속 떠드는 중이었다.

그랬기에 먼저 최강철이 무릎을 꿇고 아버지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왜 그러니. 너 갑자기 왜 그래?”

영문을 모르는 막내 누나가 최강철의 행동에 깜짝 놀라 눈을 반짝거리며 의문을 나타냈다.

그때서야 누나들은 아버지의 반응이 이상하다는 걸 느꼈는지 천천히 입을 다물었다.

“싸운 이유가 뭐여?”

“참고 살기 싫었습니다.”

“무슨 뜻인겨?”

“걔들은 착한 학생들을 괴롭히며 학교를 어지럽히는 기생충들이었어요, 그리고 저를 벌레처럼 여기며 하찮게 대했습니다. 아버지, 저는 남들에게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존중을 받으며 살고 싶었어요. 그래서 싸웠습니다. 그놈들에게 남들을 괴롭히면 어떤 결과가 벌어지는지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랬구나.”

최강철의 말을 들은 아버지가 또다시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아들의 말이 무슨 뜻인지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평생을 살아오면서 못 배웠고 가진 게 없었기 때문에 남들의 괄시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좋아서 그랬던 건 아니었다.

그런 괄시와 천대 속에서 그가 버텨낸 것은 가족을 지켜야 된다는 책임감이 있었기 때문이지 결코 좋아서 그랬던 건 아니다.

그럼에도 오랜 세월을 살다 보니 그것이 버릇이 되었고, 그렇게 살아야만 없는 자들은 적은 돈이라도 벌어 가족들을 건사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아들을 빤히 바라보자 당당한 아들의 모습에서 윤이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구나. 아들은 바보처럼 살아온 자신의 모습에서 부끄러움과 슬픔을 배웠는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혼내려고 했으나 막상 그런 생각이 들자 가슴이 서늘하게 내려앉았다.

그래도 안 된다.

지금 같은 격변기에 잘못 주먹을 휘두른다면 어느 귀신이 잡아갈지 모르기에 사랑하는 아들이 걱정되는 것조차 숨기지 못했다.

“강철아, 사람은 참는 것을 배워야 한다고 혔다. 창피함도 견디고 부끄러움을 속으로 삭일 줄도 알어야 되는 거여.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주먹을 쓰는 순간 너와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치는 법이라고. 지금도 봐라. 당장 너희 엄마가 슬퍼하고 네가 학교에서 처벌을 받았잖냐. 안 그려?”

“그렇습니다.”

“알믄 되었다… 그러믄 된겨.”

“다시는… 주먹을 쓰지 않겠습니다. 아버지,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강철아, 좋은 성적 받아와 줘서 고맙다. 하지만 주먹은 이제 안 돼. 주먹을 쓰는 놈들은 주먹으로 망한다고 혔어. 알겄지?”

“예.”

“난 우리 아덜이 잘할 거라고 믿을란다. 이제 네 방에 가서 쉬어.”

* * *

시합이 잡히자 윤 관장은 참가 신청서를 낸 후 비상에 돌입했다.

성호체육관에서 신인 선수권대회에 참가를 한 관원은 모두 5명이었기 때문에 윤 관장은 다른 때와 다르게 최강철에게 집중하지 못했다.

다른 관원들 역시 식구이기 때문이다. 속으로는 최강철에게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싶었지만 간절함은 다른 관원들 역시 마찬가지였기에 그는 대회에 참여하는 관원들을 위해 시간을 쪼개고 쪼갰다.

웰터급의 체중은 63.5~67㎏이었으나 최강철은 체중 조절을 할 필요조차 없었다.

지금 현재 최강철의 체중은 65㎏에 육박하고 있었으니 3개월 만에 5㎏이 증가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윤 관장은 불안감을 숨기지 못하고 없는 돈을 털어 관원들 몰래 보약까지 대령했다.

평소 체중이 65㎏이란 것은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훈련에 들어가면 2㎏ 정도 빠지기 때문에 자칫 웰터급 출전이 어려워질 수도 있었다.

정말 윤 관장의 정성은 눈물 날 정도였다.

어떡하든 최강철의 체중을 늘리기 위해 각종 보양식을 끼니마다 대령했는데 옆에서 이성일이 끼어드는 것조차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되자 최강철은 로드워크를 하면서 모래주머니를 달았다.

아침에는 2㎏짜리 모래주머니를 양발에 차고 10㎞를 뛰었고 저녁에는 타이어를 매단 채 국민학교 운동장을 돌았다.

이성일이 옆에서 같이하겠다고 덤볐다가 하루 만에 나가떨어졌기 때문에 최강철은 혼자서 훈련 일정을 꾸준히 소화해 나갔다.

낮에는 그동안 배운 공격 기술들을 반복 훈련하며 스피드와 연타 능력을 끌어올렸고 위빙과 더킹, 그리고 스텝들을 다듬었다.

근력 강화 운동도 멈추지 않았다. 아직 근육이 완벽하게 자리를 잡지 못했기 때문에 잠시도 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악마가 선물한 체력과 운동신경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 나가고 있었다.

피지컬이 점점 자리를 잡으면서 체력도 무섭게 강해지고 있었는데 체력이 뒷받침되자 운동신경이 면도날처럼 예리하게 변해갔다.

시합을 3일 앞둔 지금 최강철의 몸무게는 여전히 65㎏을 유지하고 있는 중이었다.

윤 관장이 워낙 열심히 먹였기 때문에 하루 종일 땀을 쏟아냈어도 체중은 변하지 않았다.

근육량이 그만큼 증가했다는 뜻이다.

만약 운동을 하지 않았다면 최강철의 체중은 67㎏을 훌쩍 넘었을 것이다.

최강철이 홀로 링에 올라 훈련을 시작하자 체육관에 있던 관원들이 슬금슬금 링 사이드로 몰려왔다.

링에서는 윤 관장이 미트를 낀 채 최강철의 펀치를 받아내고 있었는데 펀치가 작렬할 때마다 북이 터지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최강철이 훈련하는 모습을 보면서 관원들의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나름대로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던 하재용을 비롯해서 프로에 입문한 선수들까지 전부 지켜보고 있었는데 최강철의 펀치가 터질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찔거렸다.

그만큼 무서웠다.

누가 최강철을 보고 이제 복싱에 입문한 지 겨우 4개월 된 놈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마치 펀치가 화살처럼 날아가 미트에 틀어박혔다가 빠져나오는데 한 번 공격할 때마다 7, 8차례의 연타가 고스란히 작렬하고 있었다.

복싱 유망주는 그런 펀치를 날릴 수는 있다.

하지만 지금 최강철이 하는 것처럼 잠시도 쉬지 않고 20여 분 동안 전력으로 펀치를 날리는 건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시간이 꽤 흐른 지금까지도 최강철의 펀치 스피드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는데, 오히려 미트를 대주고 있는 윤 관장의 얼굴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펀치의 강도가 그만큼 강했고 펀치의 각도를 바꿀 정도로만 방향을 틀면서 미트를 대줬음에도 체력이 버티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윤 관장이 이번 시합에서 기대하고 있는 하재용이 최강철의 정확한 스트레이트 난사를 지켜보며 옆에 있던 서영훈에게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하재용은 이번 시합에 페더급으로 출전하는 신인이었고 서영훈은 이미 프로에 데뷔해서 3전을 치러 두 번을 이긴 사람이었다.

“형, 저놈 저거 정말 괴물이죠?”

“괴물 정도가 아니야. 스피드가 플라이급인 나보다도 더 빨라. 웰터급에서 저 정도의 스피드라면 아무도 못 잡을 것 같다.”

“저 자식 체력도 대단하잖아요.”

“휴우… 나는 지금까지 저런 놈은 처음 봤어. 강철 같은 체력에 번개 같은 주먹을 가졌으니 이번 대회에서 저놈은 파란을 일으킬 거야.”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저런 놈을 누가 이기겠어요.”

“정말 안타까운 건 우리 체육관에 스파링 상대가 없다는 거다. 그래서 관장님도 걱정을 하시더라. 혼자 훈련하는 것하고 강한 스파링 상대와 실전 훈련을 하는 건 많은 차이가 있거든.”

“형길이 형하고 광섭이 형이 가끔 해주잖아요.”

“걔들 수준으로는 연습 상대가 되지 않아. 그냥 움직이는 샌드백이지. 한 체급 위인데도 스파링을 붙으면 1라운드도 버티지 못하잖아.”

주형길과 김광섭은 그와 더불어 프로에 입문한 미들급 선수들이었다.

윤 관장은 관원들을 보호하느라 그들을 가급적 최강철의 스파링 상대로 붙이지 않았었는데 대회가 다가오면서 번갈아가며 링에 올렸지만 결과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처참했다.

비록 4라운드짜리라도 그들은 프로 복서였고 체급도 위였으나 제대로 된 주먹 한번 내보지 못하고 1라운드를 견디지 못한 채 박살이 났다.

“형은 쟤가 이번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세요?”

“모르지. 강철이가 강한 건 사실이지만 실전 경험이 전혀 없어서 불안해. 더군다나 대회에 나가보면 전혀 예상치 못했던 괴물들이 나타나거든. 거기다 안타깝게 각종 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했던 놈들도 출전하니까 만만치 않을 거다. 사각의 링은 지옥이야. 한 놈만 살아서 걸어 나오는 지옥 말이다. 그 지옥에서 살아남는 건 오로지 저놈 몫이야. 이제 얼마 안 남았으니까 곧 알게 되겠지. 저놈이 진짜 괴물인지 아니면 무늬만 괴물인 척한 놈인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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