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15화 (15/308)

[15]

어머니와 함께 돌아오는 길은 멀었다.

매일처럼 다니는 길이었으나 어머니의 침묵은 그 길을 너무나 멀게 느끼도록 만들었다.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다.

그저 평소처럼 가족들을 위해 저녁을 준비하실 뿐이었다.

도망쳤다.

어머니의 침묵은 몽둥이를 든 것보다 훨씬 아팠고 견디기 힘들 정도의 고통을 주고 있었다.

체육관으로 가서 미친 듯이 몸을 혹사시켰다.

가슴속에 들어 있는 것은 결코 후회가 아니었다. 놈들을 부순 것은 자신의 인생을 멋지게 다시 시작하려는 의지의 반영이었고 결심이었으니 절대 후회할 일이 아니었다.

그가 괴로운 것은 자신의 등 뒤에서 아들에게 제발 버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던 어머니의 가여운 모습과 현재의 침묵이 겹쳐졌기 때문이다.

다시는 어머니를 아프게 만들지 않으려 했으나 또다시 그는 어머니의 가슴속에 상처를 만들어 드렸으니 자신은 여전히 불효자에 불과했다.

류순덕은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준비하면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믿어지지도, 이해할 수도 없는 일을 마주치자 당황스러움에 하루 종일 정신이 멍해졌다.

배움이 없어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부족했기에 갑자기 일이 생기자 어쩔 줄을 몰랐다.

나이 18살에 시집와 6남매를 낳고 기르면서 수많은 일을 당했으나 남편을 하늘같이 섬기며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면 언젠가 행복해질 거라 믿었다.

막내아들을 나이 마흔에 낳았다.

워낙 많은 나이에 아이를 가졌기 때문에 의사는 자칫 위험할 수 있다는 말을 했고 가난한 형편에 입을 늘리는 게 싫어서 유산을 결심했다.

하지만 남편인 최우용은 아이의 유산을 한사코 반대했다.

남편은 강철의 바로 위 형이 5살 때 장티푸스에 걸려 갑자기 죽는 바람에 한동안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는데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절대 아이를 지우지 못하게 만들었다.

막내아들은 태어나면서부터 건강 상태가 좋지 않더니 크면서도 언제나 비실거렸다.

체력도 좋지 않았고 머리도 좋지 않았지만 남편인 최우용은 최강철을 끔찍하게 사랑해서 어렸을 때는 언제나 옆에 끼고 살았다.

공부를 잘하지 못했지만 그러려니 했다.

부모가 배운 게 없었고 살림마저 넉넉하지 못해 다른 아이들처럼 과외를 시키거나 학원에 보낼 형편도 되지 못했다.

더군다나 이 형편으로는 대학을 보낼 능력도 되지 않았다.

위로 다섯의 자식들이 전부 대학 진학을 포기한 것은 그런 이유였고 최강철도 그런 범주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녀의 꿈은 오로지 하나.

사람은 평생 먹고살 입을 가진 채 태어난다고 했으니 자식들이 무사히 장성해서 가정을 꾸려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기도할 뿐이었다.

막내아들은 특별하게 잘하는 건 없었으나 너무나 착해서 지금까지 속을 썩여본 적이 없었기에 오늘 벌어진 충격은 훨씬 더 컸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상대방 부모들을 향해 고개를 조아리면서도 끝없이 그녀를 괴롭힌 것은 아들의 행동에 대한 원인이었다.

학교에서도, 집에 돌아왔을 때도 쉽게 최강철을 향해 화를 내지 못했다.

그토록 열심히 공부를 하더니 전 과목 100점을 맞았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나자 정신이 아득해졌다.

혹시 최강철의 싸움은 못난 부모 때문에 벌어진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꿈을 펼치기에 너무 작은 둥지.

그 둥지가 아들을 방황하게 만든 거라면 과연 그녀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 * *

“친구를 패서 5명이나 병원에 입원했어요. 이런 놈을 그냥 둘 수는 없어.”

학생주임이 사건 개요를 설명하자 교장선생이 불같이 화를 냈다.

최강철의 담임선생 임진영은 그의 앞에서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었는데 아직 나설 타이밍을 잡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장선생은 학교에서 일이 벌어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기 때문에 학생주임은 웬만한 학생들 간의 싸움은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일은 다르다.

몇 놈이 병원에 입원했고 부모들까지 학교로 찾아와 난리를 피웠기 때문에 보고하지 않을 방법이 없었다.

“교장선생님, 싸움이 벌어진 원인은 골칫덩어리인 블랙 서클에 가담한 놈들 때문입니다. 걔들은 수시로 학생들을 때리고 돈을 뺏어왔는데 학교 분위기가 엉망으로 변한 것도 걔들로 인해서였습니다. 이번 일도 그놈들이 집단으로 최강철을 때리기 위해 갔다가 벌어진 일입니다. 최강철은 농구하다가 걔들이 싸움을 걸어와서 어쩔 수 없이 싸웠다고 하더군요.”

“원인이 문제가 아니에요. 사고가 터진 게 문제지. 그렇게 주먹질을 하는 놈이 학교생활은 오죽하겠냔 말입니다. 무조건 퇴학시키세요.”

“교장선생님…….”

이야기를 듣던 교장선생이 노발대발하자 학생주임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는 최강철이 블랙 서클을 정리하겠다는 말을 했을 때 도와주겠다는 약속을 했기 때문에 어떡하든 변명을 다시 하려고 했다.

그러나 교장선생의 싸늘한 눈빛에 열렸던 입이 다시 다물어졌다.

교장선생은 학교에서 제왕적인 존재였고 그가 교감으로 승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반항은 꿈도 꾸지 못할 형편이었다.

그때, 고개를 숙인 채 입을 굳게 다물고 있던 임진영이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교장선생님,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최강철을 퇴학시켜서는 안 됩니다.”

“무슨 소리야!”

“이번 시험에서 강철이는 전 과목 100점을 받았습니다. 기말고사만 가지고 따지면 전교 1등이에요. 제가 봤을 때 강철이는 이대로 계속 열심히 공부한다면 일류 대학에 진학할 수 있습니다. 정문고의 명예를 빛낼 학생이죠. 그런 우수한 학생을 나쁜 놈들 때문에 퇴학시킨다는 건 학교 차원에서 커다란 손실입니다.”

“전 과목 100점이라고!”

“예, 그렇습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내가 알기로 학년 수석은 김민호인 걸로 알고 있는데?”

“지금까지는 김민호였습니다. 하지만 이번 기말고사 수석은 최강철이 맞습니다.”

“걔가 원래 그렇게 공부를 잘했나?”

“중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이번 시험을 대비해서 엄청 열심히 했다고 하더니 결과가 좋게 나왔습니다.”

“중간 하던 놈이 어떻게 전 과목 100점을 맞습니까. 혹시 시험지가 유출된 거 아냐?”

“그렇지 않습니다. 과목 시험지는 선생님들이 개별 보관 하고 있잖습니까. 더군다나 모든 선생님이 강철이의 평소 수업 태도를 높이 평가하고 있었습니다. 강철이는 순수한 자기 실력으로 이번 시험을 본 게 분명합니다.”

“허어… 그것참…….”

“교장선생님, 최대한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이 일을 계기로 다시는 사고치지 않도록 제가 잘 관리하겠습니다. 그러니 퇴학만은 면하게 해주십시오.”

임진영이 고개를 수그리자 옆에 서 있던 학생주임이 같이 고개를 수그렸다.

두 사람은 동시에 교장선생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떡하든 최강철이 퇴학당하는 것만은 막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최강철의 학기말 성적은 반에서 9등, 전교에서 101등이었다.

중간고사의 성적이 평균 78점이었기 때문에 기말고사에서 모든 과목을 100점 맞았어도 최상위를 기록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학생들에게는 충격이었다.

정문고를 양분하고 있던 블랙 서클, 밤안개와 타이거를 순식간에 무너뜨린 최강철의 존재는 전설과 같이 통했는데 기말고사 성적마저 전 과목 100점이 나오자 전교가 한동안 그에 대한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최강철에 대한 화제는 그것으로 멈추지 않았다.

싸움의 파장이 커져 퇴학 처분을 내릴지 모른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다행스럽게 정학 한 달이 떨어졌는데, 교장선생님이 최강철의 기말고사 성적을 확인하고 선처를 해줬다는 말들이 여기저기 떠돌아 다녔다.

정학을 한 달이나 맞았으나 사실 의미 없는 정학이었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성적이 나오면서 정문고가 곧바로 여름방학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담임선생인 임진영이 성적표를 나눠주면서 최강철이 전 과목 100점을 맞았다는 소식을 전하자 반 전체가 충격으로 말을 잃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최강철이었다.

반 친구들은 이제 최강철이 오랫동안 권투를 훈련받아왔다는 사실을 이성일을 통해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이런 성적을 거뒀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다.

지독하게 훈련을 했다면서 언제 공부를 그렇게 했단 말인가.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시험 문제 답안지가 미리 유출되었을지 모른다는 의심이었으나 임진영은 단호하게 학생들의 그런 의심을 지워 버렸다.

그 역시 그런 의심을 가져봤기 때문에 미리 철저하게 조사했는데 전 과목 답안지 유출이 생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각 과목의 출제는 담당 선생이 하는 일이었고 모든 선생은 시험이 모두 끝난 후 답안지를 작성하기 때문에 한꺼번에 답안지가 유출될 리가 없었다.

임진영의 결론은 최강철이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해서 이런 결과를 만들어냈다는 것이었다.

“으… 미친놈.”

다른 친구들도 충격을 받았으나 이성일이 받은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언제나 그는 최강철을 지켜봤기 때문에 얼마나 열심히 훈련했는지 똑똑히 두 눈으로 지켜봤다.

최강철은 공휴일을 포함해서 매일 저녁 9시까지 훈련한 후 집에 돌아갔기 때문에 그의 기준으로 봤을 때 공부할 새가 없었다.

그 역시 체육관에서 놈과 함께 연습을 했지만 최강철의 훈련량에 비한다면 새 발의 피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집에 돌아가면 녹초가 되어 씻자마자 꿈속을 헤맸으니 최강철이 그 시간에 돌아가 공부했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너 정말 훈련 끝나고 집에 가서 공부했던 거야?”

“그랬다고 했잖아.”

“아이고, 미치겠네. 너 때문에 내가 요즘 정신이 이상해졌어. 너 진짜 최강철이 맞아?”

이성일이 두 눈을 부라리자 최강철이 씨익 웃었다.

당연한 일이다. 불과 몇 달 만에 전혀 믿지 못할 일들을 연달아 만들어냈으니 누구보다 자신을 잘 아는 이성일에게는 충격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태연한 목소리로 이성일을 향해 입을 열었다.

“나 머리 좋아. 지금까지 공부를 안 해서 성적이 안 나왔을 뿐이었어. 그러니까 너무 놀라지 마라.”

“지랄한다.”

“앞으로는 계속 그럴 거야. 그리고 말했듯이 나는 대학에 간다. 그것도 최고의 대학에. 나는 한 번 한 약속은 꼭 지키는 편이거든. 자, 그럼 학교 끝났으니까 우리 체육관에나 가볼까?”

“오늘 방학했는데 체육관에 가자고?”

“성일아, 내가 시간이 없다. 할 일이 많아서 너무 바빠.”

“당최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

“그런 게 있어. 갈 거야, 말 거야?”

“간다, 가면 될 거 아냐.”

가방을 둘러메고 교실을 나서는 최강철을 따라붙으며 이성일이 고개를 마구 흔들어댔다.

요즘 들어 벌어지는 일들이 모두 꿈만 같다.

최강철이 연신 보여주는 믿을 수 없는 일들, 지난 4년 동안 사귀어왔으나 지금 옆에 서 있는 최강철은 전혀 다른 존재로 느껴지고 있었다.

마치 불가능한 일들을 당연한 듯 해치우는 최강철의 존재는 만화 속에 나오는 슈퍼맨을 보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이 체육관으로 들어서자 윤 관장이 관원들을 지도하다 말고 급히 다가오는 게 보였다.

그는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지 잔뜩 상기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이제 오냐?”

“예, 관장님.”

“오늘부터 방학이라고 했지?”

“그런데요?”

“강철아, 드디어 시합 공고문이 떴다. 서울시 아마추어 신인 선수권 대회 말이야.”

윤 관장은 소식을 전해놓고 얼굴에 함박웃음을 띄웠는데 이 시간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아마추어 복싱 경기는 신인 선수권, 우승권, 선수권 대회, 크게 3가지로 구분된다.

신인 선수권은 각 대회의 은메달 이상 수상한 선수는 참여할 수 없기 때문에 가장 레벨이 낮았고 우승권 대회는 우승한 선수가 참여하지 않는 대회다.

반면에 선수권 대회는 우승했던 선수까지 전부 참여하기 때문에 가장 레벨이 높은 수준을 자랑한다.

최강철은 복싱 경험이 전혀 없기 때문에 유일하게 참여할 수 있는 대회가 바로 신인 선수권 대회뿐이었다.

윤 관장의 말을 들은 최강철의 표정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정말로 기대했던 순간이었다.

자신의 계획대로 움직이려면 3학년까지 군대를 면제받는 조건을 획득해야 했기 때문에 복싱을 시작한 이후 신인 선수권 대회가 개최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던 중이었다.

“언젭니까?”

“8월 23일. 앞으로 한 달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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