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14화 (14/308)

[14]

* * *

시험이 끝난 다음부터 휴일과 일요일, 개교기념일이 겹쳐지면서 삼 일 동안 학교가 쉬었지만 정문고 학생들 사이에서는 최강철이 벌여놓은 일이 빠르게 퍼져 나갔다.

정문고가 발칵 뒤집혀진 것은 화요일이 되어 학생들이 등교한 후였다.

연휴 동안 소문을 들었으나 믿지 못했던 놈들과 뒤늦게 소식을 들은 놈들은 학교에서 김춘수 패거리와 정용택 패거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서 소문이 사실로 증명되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소문의 내용은 간단한 것이었지만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정문고를 휘어잡고 있던 김춘수와 정용택이 피떡이 되어 실려 갔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단 한 명, 최강철에 의해서 말이다.

삼삼오오 둘러앉은 학생들은 그 이야기를 하느라 정신이 팔려 있었는데, 인기를 한 몸에 받은 건 직접 싸움을 눈으로 확인한 놈들이었다.

소문으로 들은 것과 직접 본 것은 현실성 면에서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놈들 주변에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몰려든 놈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특히 같이 농구했던 5반의 이정태는 인기 절정을 누렸다.

“들어는 봤냐. 절정고수가 새카만 하수들을 단칼에 몰살시키는 거. 최강철이 그랬다고. 김춘수는 한 대도 못 때리고 줄곧 얻어터지다가 피떡이 됐는데, 그 뒤에서 깝치던 패거리 놈들은 그야말로 작살이 났어. 난 최강철이 놈들을 패는데 막 소름이 돋아서 오줌이 마렵더라. 정용택은 더 맞았어. 최강철이 그냥 맞으라고 하니까 쪽팔려서 그랬는지 덤볐는데 얼마나 터졌는지 얼굴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개판이 되었어.”

“우와, 최강철 정말 대단하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내가 성일이한테 들은 바로는 강철이가 복싱을 한대. 곧 시합에 출전한다나 봐. 지금까지 실력을 숨기고 있었던 거지.”

“권투를 얼마나 배우면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나도 권투 배워야겠다.”

“인마, 그게 배운다고 강철이처럼 되는 거냐? 성일이가 그러는데 강철이는 지금 시합에 나가도 우승할 수 있는 실력이래.”

“아이고, 그런 애한테 덤볐으니 그 자식들 죽어도 싸구만.”

“가장 중요한 건 최강철이 놈들한테 경고를 했다는 거야. 다시 한 번 학생들을 괴롭히거나 폭력을 휘두르면 그땐 완전히 죽여 버리겠다고 했어. 완전히 좆 된 거지.”

“그 자식들이 말을 들을까?”

“안 들으면. 그렇게 두들겨 맞았는데 덤벼들 생각이 들겠어? 강철이 완전 독종이야. 정신을 잃은 김춘수만 내버려 두고 나머지 놈들은 얼마나 팼는지 곡소리가 농구장 주변을 쩌렁쩌렁 울릴 정도였다고. 그 새끼들 잘못했다고 비는 걸 보니까 내가 그런 놈들한테 기죽어서 꼬랑지를 말았던 게 쪽팔려 죽겠더라.”

“그럼 강철이가 우리 학교 짱이 된 거야?”

“인마, 그건 당연하지. 양쪽 짱을 다 때려잡았는데 누가 강철이한테 덤비겠냐. 강철이가 짱이 됐으니까 우린 불행 끝 행복 시작이야.”

“다행이네. 그동안 그 새끼들 등쌀에 학교 오기가 싫었는데 우리도 이제 천국에서 살 수 있겠다. 그런데 선생님들이 가만있을까? 그렇게 팼으면 여러 놈이 병원에 실려 갔을 텐데?”

“나도 그게 걱정이다. 꼰대들이 이 사실을 알면 가만있지 않을 텐데…….”

“무슨 일이 있겠어. 강철이가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니고 학생들 괴롭히던 놈들을 혼내준 거잖아. 그러니까 오히려 상을 줘야 해.”

“꼰대들 생각이 워낙 고리타분해서 어떻게 나올지 몰라. 하여간 잘 해결되어야 할 텐데 걱정이다.”

* * *

최강철이 공부하고 있는 3반의 담임선생 임진영은 수업에 들어가기 전 학생들이 떠드는 걸 보면서 그런가 보다 했다.

시험이 끝났고 한참 말이 많은 나이었기에 언제나 이놈들은 친구들과 장난치느라 정신이 없다.

자신도 그랬다.

꿈많던 시절, 그저 친구들과 같이 있는 것만으로 행복하고 좋았으니 놈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오늘은 조금 짜증이 몰려왔다.

삼 일 연휴 동안 첫날 빼고 나머지 이틀 동안 시험지를 채점하느라 학교에 나오는 바람에 마누라에게 잔소리를 들었고 아이들의 투정을 받아야 했다.

더군다나 연휴가 끝나고도 이틀 동안 야근하면서 답안지 채점을 마쳤기 때문에 몸이 천근처럼 무거웠다.

참 먹고살기 힘들다. 누군가는 선생이 최고로 편한 직업이라고 하지만 이럴 때면 그냥 보통의 샐러리맨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답안지를 채점하면서 가장 눈에 띤 것은 최강철이었다.

그가 맡고 있는 과목은 역사였는데, 이번 시험은 조금 어렵게 출제해서 학생들 평균이 중간고사보다 5점이나 내려갔으나 전체 학생 중 유일하게 최강철은 하나도 틀리지 않고 100점을 받았던 것이다.

최강철.

전혀 눈에 뜨지 않던 놈이었다.

공부는 중간 정도였고 운동 실력은 젬병이었다. 더군다나 성격도 소심해서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있는 듯 마는 듯하던 놈이었다.

최강철이 1학년 밤안개 패거리들을 박살 냈다는 걸 나중에 듣고도 믿지 못했다. 직접 불러 사실이라는 게 밝혀질 때까지.

그때의 놀라움이란.

다행스럽게 학생주임이 나서서 적극 변호했기에 정학 처분은 면했지만 그토록 조용했던 최강철이 사고를 쳤다는 게 꿈만 같았다.

그때부터 최강철을 유심하게 지켜봤다.

분명한 것은 놈의 수업 태도가 몰라보게 달라졌다는 것이었다.

다른 선생들에게 들은 것도 똑 같았다.

모든 선생은 그의 수업 태도를 보면서 특이하다고 말했다. 어떤 질문을 해도 척척 대답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수학 선생의 칭찬이 컸다.

수학 선생은 칠판에 어려운 문제를 써놓고 종종 학생들에게 풀어보라는 짓을 많이 했는데 최강철이 모두 풀어냈다며 입에 거품을 물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람은 한순간에 변할 수도 있다지만 최강철의 변화는 믿어지지 않았다.

수업에 들어가 지루한 내용들을 한 시간 동안 말하자 진이 다 빠졌다.

연휴 동안 하루도 쉬지 못했기 때문인지 몸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고 있었다.

겨우겨우 교무실로 들어와 자리에 앉자 학생주임이 굳은 얼굴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임 선생, 잠깐 이야기 좀 합시다.”

“무슨 일이시죠?”

“최강철이 또 사고를 쳤어요.”

“사고라뇨, 걔가 무슨 사고를 쳤단 말입니까?”

“김춘수와 정용택이 그놈한테 얻어맞아서 지금 병원에 있어요. 놈들 부모들이 지금 난리가 아니라서…….”

학생주임의 설명을 들은 임진영이 입을 떡 벌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1학년 밤안개 패거리를 작살냈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놀랐지만 지금의 놀람과 비교한다면 새 발의 피였다.

김춘수와 정용택이 어떤 놈들이란 말인가.

그놈들은 선생들의 통제에서 벗어날 만큼 인생 막장을 살아가는 놈들이었는데, 수시로 대들어서 곤욕을 치른 선생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이걸 과연 믿어야 할까.

한 놈이 16명을 상대해서 이겼고 그 중 두 놈을 병원에 입원시켰다는 사실을 듣게 되자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들은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임진영이 충격으로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할 때, 4반의 담임선생이 슬쩍 끼어들었다.

그가 바로 최강철을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했던 수학 선생이었다.

주변에 있던 1학년 담임선생들은 학생주임이 다가오자 귀를 쫑긋 세운 채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허어, 걔가 그렇게 싸움을 잘한단 말입니까. 정말 기가 막힌 일이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그놈 약골로 봤는데 전혀 아닌 모양이군요. 그 자식 이번 수학에서 100점을 받았어요. 공부 열심히 하는 놈인데 맞은 놈들이 병원에 입원했다면 큰일 났네.”

“그놈이 수학에서 100점 맞았어요? 제가 맡고 있는 영어도 100점 맞았거든요.”

“정말입니까!”

잠시 동안 말을 잊고 있던 임진영이 옆에서 영어 선생까지 끼어들어 말을 하자 기어코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이 자식, 이거 괴물이야, 뭐야.

어머니가 학교로 불려 와 김춘수와 정용택의 부모에게 미안하다며 고개를 조아리는 장면을 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이런 장면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지만 막상 어머니가 다른 사람에게 고개를 조아리자 가슴이 터질 것처럼 아파왔다.

예전의 그는 소심하고 못났으나 어머니가 다른 사람에게 고개를 숙이는 모습은 만들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어머니.’

연신 허리를 숙여 용서를 부탁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결국 고개를 돌렸다.

“당신 아들 깡패야.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싸움을 해서 애들을 병신으로 만들어? 어쩔 거야. 어쩔 거냐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원래 그런 아이가 아닌데…….”

“아닌 새끼가 주먹을 휘둘러서 사람을 다치게 만들었단 말이야. 거 말도 안 되는 소리 작작해. 그런 새끼는 콩밥을 먹어야 정신을 차려!”

김춘수와 정용택의 부모들은 학교에서 깡패를 키운다며 당장 잘라 버리라고 악을 고래고래 썼다.

최강철은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속이 부글부글 끓었으나 지금은 참을 때였다.

대신 담임선생이 나섰다.

임진영 역시 피해 부모들의 짓거리를 지켜보다가 더 이상 참기 어려웠던지 기어코 목소리를 키우기 시작했다.

“이것 보세요. 정말 너무 하신 거 아닙니까? 이게 지금 싸운 거처럼 보이세요? 걔들이 먼저 시비를 걸었어요. 더군다나 16명이 한 명한테 말입니다. 집단 폭행을 하려고 했단 말입니다. 그걸 지금 알고나 하는 말씀이세요?”

“우리 아들이 병원에 입원했다고. 당신 지금 쟤 편드는 거야, 뭐야!”

“그럼 고소하세요.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봅시다. 집단으로 한 명을 죽이려고 덤벼들었다가 오히려 병원에 간 놈들이 제정신이란 말입니까? 부모님들은 걔들이 학교생활을 어떻게 했는지 알고나 계신가요. 갖은 못된 짓을 하고 행패를 부린 놈들이 바로 걔들이에요. 그놈들한테 맞아서 병원에 갔던 애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시죠. 좋습니다. 제가 아는 것만 해도 병원에서 치료하고 나온 애들이 10명도 넘으니까 같이 고소해 봐요.”

“당신 미쳤어!”

“얼마나 답답하면 이런 소리를 하겠어요. 부모님들이 이러시니까 걔들이 그렇게 된 거 아닙니까. 돈 때문에 그러세요? 돈 때문이라면 시비 걸지 마세요. 당신 아들들한테 맞아서 병원 갔던 애들한테 물어줄 돈이 훨씬 더 클 테니까요. 그리고 쟤는 깡패가 아닙니다. 모범생이라고요. 이번 중간고사에서 전 과목 100점을 맞은 학생이라고요.”

“선생이란 작자가 학생 차별 하네, 이거 미친 거 아냐?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김춘수의 아버지가 임진영의 멱살을 잡고 늘어졌다.

그는 허름한 잠바를 입고 있었는데 아들이 입원해 있다는 걱정보다 처음부터 합의금을 받아내고 싶었던지 병원비 이야기를 계속했던 사람이었다.

그때 학생주임이 나서며 그를 뜯어말렸다.

“임 선생 말은 사실입니다. 당신 아들로 인해서 학교가 지금까지 엉망이 되었어요. 그렇게 와달라고 부탁할 때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더니 지금 이게 무슨 짓입니까? 그만하고 돌아가세요. 그렇지 않으면 사건이 커질 겁니다. 김춘수와 정용택이 그동안 벌인 짓을 전부 경찰에 고발하겠단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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