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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환생-12화 (12/308)

[12] 2장 날갯짓

시험 치는 기간에도 최강철은 체육관으로 향했다.

이성일은 그에게 미쳤다면서 최소한의 양심을 가져야 한다며 같이 공부하자고 우겼으나 최강철은 그저 미소만 지어줄 뿐이었다.

최강철을 향해 인상을 쓴 건 윤 관장도 마찬가지였다.

시험 기간이라는 걸 뒤늦게 안 그는 최강철을 향해 잔소리를 퍼부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담겨 있지 않았다.

“인마, 아무리 공부를 포기했어도 시험 본다면서 체육관에 나오는 놈이 어디 있냐? 너 졸업 안 할 거야?”

“할 겁니다.”

“도대체 넌 왜 공부를 안 하는 거냐. 공부가 싫어?”

“관장님, 저 공부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쯧쯧… 어련하겠냐.”

윤 관장이 혀를 차면서 최강철을 향해 글러브를 던졌다.

공부에 대한 잔소리를 했지만 어차피 공부를 포기한 놈이라면 아무리 떠들어도 입만 아플 뿐이다.

그리고 권투로 성공하려는 놈에게 공부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신군부가 쿠테타를 통해 정권을 틀어쥐었어도 먹고살기 빠듯한 전국의 수많은 청춘은 권투로 성공하기 위해 지금도 샌드백을 두드리는 중이었다.

그들의 공통된 희망은 어차피 가진 것 없는 육신 하나뿐이었으니 오로지 주먹 하나만으로 성공해서 잘 먹고 잘 살아보겠다는 것뿐이었다.

최강철은 그가 던져준 글러브를 끼지 않고 먼저 근력 강화 운동부터 시작했다.

체육관에 온 이후 지금까지 최강철은 반드시 1시간 반 동안 근력 강화 운동을 했는데 2달이 거의 다 되어가자 상체의 근육이 눈에 띨 정도로 발달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하체도 마찬가지였다.

한 달이 되기까지 5㎞를 뛰었던 최강철은 체력이 어느 정도 받쳐주자 로드워크 거리를 10㎞로 늘였다.

처음에는 조금 힘들었으나 몇 번 뛰고 나자 거리의 의미가 없어졌다.

현재의 체중은 64.5㎏.

그사이에 체중이 또 1.5㎏이나 늘었다. 물론 윤 관장의 주머니는 그를 먹이느라 물 새듯이 비어갔지만 최강철은 뻔뻔하게 그가 주는 것을 먹어치웠다.

“나중에 갚을게요.”

그 말 한마디에 모든 걱정과 시름이 날아갔다.

맞다. 그래서 퍼 먹이는 거다. 최강철이 자신의 꿈을 이뤄준다면 이 정도 투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윤 관장은 체육관에서 5명의 관원이 씩씩거리며 훈련하고 있었으나 최강철이 들어온 후 그들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근력 강화 운동을 하고 있는 최강철은 200개의 윗몸일으키기를 마친 후 팔굽혀펴기와 턱걸이를 각각 100개나 했으며 지금은 줄넘기를 하면서 몸을 풀었다.

2달 전에 봤던 최강철과 비교한다면 눈으로 믿어지지 않을 만큼 몸이 바뀌어 있었다.

앙상하게 보였던 갈빗살은 이제 찾아볼 수 없었고 가냘팠던 다리와 팔에는 앙팡진 근육들이 자리 잡은 상태였다.

그러나 아직도 멀었다.

처음보다 훨씬 피지컬이 좋아졌으나 아직 그의 몸이 완전해지려면 5㎏은 더 불려야 한다.

윤 관장은 최강철이 줄넘기를 끝내자 물병을 들어 그에게 주면서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놈은 하늘이 자신에게 점지해 준 선물임이 분명했다.

1시간 반 동안 미친놈처럼 근력 강화 운동을 했음에도 놈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을 뿐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잠시 쉬어. 무리하지 말고. 쉬면서 텔레비전이나 봐. 그동안 식사 준비해 놓을 테니까. 오늘은 네가 좋아하는 삼겹살 준비했다.”

“관장님, 오늘은 나머지 훈련부터 하고 저녁을 먹어야겠습니다.”

“왜?”

“공부하라면서요. 내일이 시험 마지막 날인데 최선을 다해야죠.”

“너 인마, 그걸 농담이라고 하는 거냐?”

“하하하… 오늘은 집에 일이 있어서 빨리 가봐야 되요.”

“알았다, 이 자식아. 그래도 꼭 밥은 처먹고 간다는구만. 그럼 훈련하고 있어. 그동안 삼겹살 구워놓을 테니까 먹고 가.”

윤 관장이 주먹을 번쩍 들었다가 내리면서 자신의 가슴팍을 두드리고 돌아섰다.

밥순이로 전락한 자신의 처지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결코 싫은 기색은 아니었다.

최강철이 링 위로 오르는 것을 힐끔 봐라봤던 윤 관장은 체육관에 딸린 부엌에 들어가 부지런히 음식 준비를 했다.

이미 밥은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에 삼겹살을 굽고 상추를 부지런히 씻은 후 계란말이와 두부전을 부쳤다.

철저하게 계산된 식단이었다.

그는 최강철의 몸을 만들기 위해 지금까지 영양 요소를 철저히 체크하며 식단을 마련했다.

상을 전부 차리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30분밖에 소요되지 않았다.

이 짓도 계속하다 보니 점점 준비하는 시간이 빨라졌다.

식사 준비가 모두 끝나자 링으로 향하던 윤 관장은 천천히 걸음을 멈추고 최강철의 훈련 모습을 지켜봤다.

잠깐만 지켜보겠다던 처음 생각은 최강철의 움직이는 모습에 매료되어 점점 하늘 저편으로 사라져갔다.

정말 볼수록 무서울 정도의 재능이다.

매일 보며 지도하고 있었지만 최강철의 움직임은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달랐다.

쇄액, 쉬익, 쉭, 쉭…….

링 한복판에서 최강철이 잽과 스트레이트에 이은 훅과 어퍼컷을 연사시키며 회전하고 있었다.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부드러운 동작.

하지만 그의 몸에서 터져 나오는 펀치 하나하나에는 날카로움과 강력함이 줄기줄기 새어 나와 공간을 가격한 후 회수되었는데 펀치의 속도가 대단했다.

자신이 가르치면서도 어이없다는 생각이 든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스텝을 가르쳐 준 것은 불과 10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최강철은 익숙하게 펀치와 스텝을 조화시키며 링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 * *

시험은 쉬웠다.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하긴, 악마가 선물한 두뇌를 가지고도 매일같이 2시간씩 공부했으니 정문고 선생들이 낸 문제를 풀지 못한다면 오히려 그것이 이상한 건지도 몰랐다.

시험이 모두 끝나자 같은 반 친구들은 감옥에서 풀려난 것처럼 환호성을 질렀다.

불쌍한 청춘들이다.

시험을 잘 본 놈도, 못 본 놈도 시험이란 굴레에서 벗어나자 너무나 행복한 모양이었다.

이성일이 슬쩍 다가온 것은 시험 보느라 고생했다는 담임선생님의 종례가 끝난 후였다.

“강철아, 오늘 정태 패거리들하고 한판 붙기로 했다.”

“농구?”

“저번에 그 자식들이 이겼다고 얼마나 우쭐대던지, 밸이 꼴려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오늘 붙자고 했어.”

“난 훈련하러 가야 하는데 어쩌지?”

“인마, 너 권투에 미쳤냐? 정말 권투 선수 하려고 작정했어?”

“그럴 거다.”

“지랄한다. 권투로 성공하는 게 그리 쉬운 건 줄 알아. 세계 챔피언은 아무나 하는 거냐고. 그러다 골병들어, 새끼야!”

“그건 해봐야 알지.”

“이 자식이 언제부터 이렇게 고집이 세졌데. 좋아, 권투해라. 나도 너 따라다니며 할 테니까. 하지만 오늘은 농구해. 이미 약속 다해놔서 네가 빠지면 안 돼.”

“아이고, 지겨운 놈아.”

“할 거지?”

“가자, 친구 놈이 강남 가자는데 안 따라갈 수 있나.”

“잘 생각했다, 이 자식아. 시험 끝났는데 우리도 숨은 쉬어야지. 오늘 신나게 뛰어보자고.”

이성일이 펄쩍거리며 좋아하는 모습에 최강철이 환하게 웃었다.

그래, 이럴 때도 있는 거지.

예전 그의 유일한 즐거움은 이성일과 몰려다니며 농구를 하는 것이었다.

비록 체력이 약해서 줄기차게 뛰어다니지는 못했으나 친구들보다 키가 컸기 때문에 농구를 할 때는 제법 쓸모가 있었다.

그러나 단순히 그것 때문만이 아니다.

시험이 끝났으니 어쩌면 오늘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옷을 갈아입을 필요는 없었다. 교복은 모든 생활이 가능한 만능이기 때문이다.

농구장으로 나가자 비슷한 놈들이 러닝만 입은 채 교복 바지를 둥둥 걷고 슛 연습을 하는 게 보였다.

정겨운 모습들이 예전 감정을 저절로 솟구치게 만들었다.

이정태 패거리는 5반이었는데 3반인 최강철 패거리와 하루를 멀다하고 시합을 하는 사이였다.

굳이 전적을 따진다면 정태 패거리들이 3번에 2번 정도 이길 만큼 전력이 앞섰다.

“떡볶이 내기다, 라면은 추가고.”

“더 이상 말하면 잔소리지. 무조건 고!”

상대편 주장인 이정태가 소리치자 기가 죽기 싫었던지 이성일이 악을 쓰면서 대답했다.

그러고는 반 친구들을 끌어모은 후 입을 열었다.

“야, 너희 돈들 있지?”

“없는데.”

몇 놈이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이성일은 표정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이 시절 가난한 놈들은 돈이 있어도 일단 없다고 뻗대는 게 일반적인 상식이었기 때문에 시합에서 지면 주머니를 털어 돈이 나온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굳이 지금 돈 있느냐고 물어본 이유는 전의를 북돋아주기 위함이었다.

코 묻은 돈이었으나 그것만으로도 지금의 친구들은 목숨을 걸고 뛰어다닐 것이다.

“우리가 저 새끼들 목구멍에 바친 돈이 지금까지 한 트럭은 될 거다. 그러니까 오늘만큼은 절대 지면 안 돼. 알았어?”

이성일이 떠들자 친구들의 눈빛이 변했다.

먹고살기 어려운 시기. 어렵게 마련해 준 부모님의 용돈을 친구 놈들 아가리에 처넣는다는 건 불효자로 불리기에 충분했다.

“아자, 아자… 화이팅!”

전후반 각각 45분.

축구도 아닌데 무슨 농구 경기를 90분이나 하냐며 의문을 갖겠지만 그때는 그랬다.

마땅히 할 일 없는 고1의 청춘들은 뛰다가 죽을 때까지 시합을 했는데 간혹 동점으로 끝나면 연장전으로 30분을 더 뛰었다.

시합은 팽팽하게 진행되었다.

워낙 동네 농구다 보니 룰도 없고 반칙도 없었기 때문에 붙잡고 늘어지는 게 다반사였다.

최강철은 시합을 하면서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어차피 이 시합은 이긴다.

정태 패거리가 조금 우위에 있었지만 전력이 확 차이 날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예전과 달리 체력이 극강으로 변해 버린 그가 본격적으로 경기에 가담한다면 게임이 되지 않을 것이다.

천천히 움직이다가 결정적인 기회가 왔을 때만 골을 집어넣었는데 그렇게 했음에도 전반전이 끝났을 때 10점이나 앞섰다.

놈들이 나타난 것은 전반전이 끝나고 친구들과 함께 물을 마시고 있을 때였다.

피식…….

기다리던 놈들이 나타나자 최강철의 얼굴에서 희미한 웃음이 떠올랐다.

10여 명의 패거리들과 함께 등장한 김춘수의 모습을 보자 농구하던 친구 놈들은 뱀 앞에 선 개구리들처럼 몸을 움츠렸지만 이성일은 잠깐 놀랐을 뿐 각오하고 있었다는 듯 어깨를 세우는 것이 보였다.

기다리던 놈들이 나타났으니 농구는 이제 더 이상 할 필요가 없어졌다.

농구장에 들어선 김춘수는 패거리들과 곧장 최강철을 향해 다가왔는데 그 기세에 친구들은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네가 최강철이지?”

“맞아.”

“맞아? 이 씨발 놈이 하늘 같은 선배한테 반말을 하네. 어디서 눈깔을 치켜뜨고 쳐다봐. 개새끼가, 눈깔을 확 파버릴까 부다.”

“선배가 선배다워야지 선배 대접을 하지. 선배가 좆 같은데 선배 대접을 하겠어?”

“하아, 이 또라이 새끼. 환장하겠네.”

“바쁘니까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본론으로 들어가. 여기 온 게 날 잡으려고 온 거잖아. 권투해서 좀 친다며. 어떻게 할래. 혼자 할 거냐, 아니면 뒤쪽에 서 있는 멀대들도 같이할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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