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11화 (11/308)

[11]

* * *

시험이 눈앞으로 다가왔으나 최강철은 운동하는 것을 빼먹지 않았다.

이미 전 과목에 대한 시험공부는 마친 상태였고 심지어 아직 배우지 않았던 것들까지 입력해 놓았기 때문에 과거에 했던 것처럼 벼락치기 공부는 필요 없었다.

루시퍼에게 선물받은 최고의 두뇌는 무지막지할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고1 정도의 수학 능력을 처리하기엔 아까울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지금은 무엇보다 복싱 기술을 배우고 익히는 것과 피지컬을 증진시켜 체력을 강화시키는 것이 중요했다.

그가 생각하고 있는 계획을 차근차근 실천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빨리 궤도에 진입할 필요가 있었다.

윤 관장은 최강철의 근력이 붙으면서 점점 체력이 올라가자 본격적으로 훅과 어퍼컷, 그리고 연타 기술을 가르쳤고, 복싱에서 가장 중요한 블로킹에 대해서 직접 시험을 보였다.

훅은 최단거리에서 상대를 서서히 격침시키는 스트레이트와 달리 원거리에서 날아가 한 방에 적을 무너뜨리는 미사일 포와 같은 것이었다.

스트레이트는 잽과 함께 병행되면서 순간 스피드를 이용했지만 훅은 힘의 응축 과정을 거쳐 원거리를 날아가 강력한 충격을 주는 기술이었다.

또 하나의 무기 어퍼컷은 실전에서 가장 유용한 펀치 기술이었다.

고개를 숙이는 상대의 목덜미를 뜯어버리는 기술로서 만약 그가 어퍼컷을 익혔더라면 밤안개 패거리들은 훨씬 커다란 고통을 맛봤을 것이다.

윤 관장은 훅과 어퍼컷의 기본 원리를 가르쳐 준 후, 며칠 되지 않아 곧바로 방어 기술과 스텝에 대한 시범으로 들어갔다.

그는 최강철의 습득 능력이 엄청나다는 것을 지난 한 달 동안 눈으로 직접 확인했기 때문에 기술을 가르쳐 줄 때마다 눈에 열기가 가득 찼다.

“강철아, 지금부터 블로킹을 가르쳐 줄 테니 잘 봐라. 블로킹에는 두 가지가 있다. 암블로킹과 숄더블로킹이란 것이다. 먼저 암블로킹이다.”

윤성호가 시범 조교로 나선 관원의 펀치를 양팔을 이용해서 커버링하는 것을 보여주었다.

관원의 펀치를 그는 팔꿈치의 각도를 틀어 교묘하게 팔로 블로킹했는데 관원이 전력으로 던지는 펀치들이 전부 그의 팔에 걸렸다.

최강철은 윤 관장의 움직임을 보면서 유심히 팔꿈치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암블로킹의 기본은 팔꿈치의 회전과 상하 움직임에 있다는 원리가 금방 간파되었는데, 관원이 펀치를 내는 순간 윤 관장의 팔이 반사적으로 이동하는 것이 보였다.

“다음은 숄더블로킹이다.”

윤 관장이 턱짓을 하자 관원이 그의 얼굴을 향해 펀치를 날렸다.

방금 보여주었던 것과 다른 것이 있다면 윤 관장의 왼쪽 어깨가 자신의 왼쪽 턱을 완벽하게 가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봤겠지만 숄더블로킹은 너같이 오른손잡이가 강력한 훅을 가진 상대의 펀치로부터 가장 취약 지점인 턱을 보호하는 방법이다. 다시 말해, 암블로킹이 실패했을 때 치명적인 타격을 피하기 위한 방어기술이다.”

이해가 된다.

윤 관장의 설명과 시범은 한 번뿐이었지만 금방 두 가지 방어 기술의 핵심이 머릿속에 저장되었다.

복싱은 과학이란 말이 새삼 정확한 표현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가 배운 위빙과 더킹은 물론이고 지금 배운 블로킹 역시 상대의 펀치 각도를 계산해서 가장 효율적으로 피하는 회피 기술들이었다.

새로운 기술들을 보게 되자 가슴이 뛴다.

비록 밤안개 패거리들을 집단으로 쓰러뜨렸으나 자신은 이제 막 복싱에 입문한 햇병아리나 다름없는 존재였기에 아직도 배워야 할 기술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러나 걱정과 두려움 대신 희망과 기쁨이 가슴에 가득히 들어찼다.

지금 이대로라면 루시퍼가 선물해 준 운동신경과 체력으로 최단시간 내에 복싱 기술들을 완벽하게 익힐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텝이다. 스텝의 종류에는 네 가지가 있는데 바로 전진 스텝과 백스텝, 좌우사이드 스텝이다. 각각의 스텝은…….”

과외나 학원은 최강철의 집안 형편으로 봤을 때 꿈도 꾸지 못하는 것이었다.

정문고에도 제법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나 대학을 희망하는 놈들이 꽤 있었기 때문에 학교 주변에는 학원들이 우후죽순처럼 존재했지만 최강철은 과거에도, 지금도 그런 곳엔 가본 적이 없었다.

시험이 내일로 다가왔으나 최강철은 체육관에서 훈련하다 오랜만에 가족들과 저녁을 먹기 위해 이른 저녁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일요일이라 일찍 체육관에 갔었고 내일이 시험이었으니 저녁에 마지막으로 시험 범위에 있는 내용들을 훑어볼 생각이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천천히 걸어갈 때 집으로 가는 골목길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봤다.

어머니는 단골 가게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손에는 콩나물과 생선, 사과 등이 담긴 봉지가 들려 있었다.

“강철 엄마, 정말 이럴 거야? 얼마라도 갚아줘야 나도 먹고살지!”

“미안혀. 낼 모레 월급날이니까 그때 한꺼번에 줄게.”

“어련히 그러겄다. 많이 쌓였으니까 반이라도 갚아.”

가게 아줌마가 어머니를 향해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 게 보였다. 오랜 세월 함께해 온 가게 주인은 누구보다 집안 사정을 잘 알기에 웃음으로서 어머니의 난처함을 상쇄시켜 주고 있었다.

그 웃음을 받으며 어머니가 계면쩍게 미소를 지었다.

상대방이 아는 거짓말을 해야 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어땠을까.

집과 가까이 있는 가게는 어머니의 단골이었는데 외상으로 물건을 샀기 때문에 아버지의 월급이 다가올 때면 언제나 재촉을 받는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언제나 외상값을 전부 갚지 않으셨다.

자신과 누나의 학비, 그리고 몸이 아픈 큰 조카의 병원비를 대느라 허리가 휘어졌기 때문에 어머니에게는 생활비가 남아날 새가 없었다.

최강철은 가게 주인에게 인사하고 돌아서는 어머니를 향해 천천히 다가가 손에 든 봉지를 받아 들었다.

“반찬거리 사셨어요?”

“지금 오는 겨?”

“예. 그런데 뭘 이렇게 많이 사셨어요?”

“우리 아덜, 내일 시험이라고 해서 좀 샀다. 도서관에서 오는 거여?”

“예.”

웃는 얼굴로 묻는 어머니에게 또다시 거짓말을 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다고 말하시지 않을 어머니는 막내아들이 권투한다는 걸 안다면 기절할지도 모른다.

“내일 시험이니께 오늘은 푹 쉬어. 그동안 너무 열심히 했잖여.”

“그럴게요.”

최강철이 대답하면서 어머니의 어깨를 남은 팔로 포근하게 감싸 안았다.

좁은 어깨. 한 팔로 감아도 남을 만큼 어머니의 어깨는 왜소했고 말랐다.

그 어깨로 6남매를 키운 어머니의 늙은 얼굴에는 밭고랑 같은 주름들이 새겨져 있었다.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이번 삶은 과거처럼 살지 않을 겁니다. 어머니를… 누구 못지않게 호강시켜 드릴 테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 * *

“강철아, 어제도 체육관에 갔냐?”

“응.”

“이 자식아, 시험 전날에도 운동한다는 게 말이 돼? 아무래도 난 네놈 속을 모르겠다. 대학 간다는 거 뻥이었지?”

“뻥 아니거든.”

“허이구, 말이나 못하면. 그렇게 공부 안 해놓고 퍽이나 대학가겠다. 나 좀 보고 배워. 그래도 중간은 가야 나중에 대학을 가든 말든 하지!”

이성일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최강철을 바라보면서 툴툴거렸다.

놈은 시험 일주일 전부터 체육관을 빼먹고 벼락치기 공부를 했는데 자신과 달리 매일 저녁 늦게까지 운동하는 최강철이 걱정된 모양이었다.

그런 이성일을 향해 최강철이 입을 열어 이상한 웃음을 흘려냈다.

아마 놈은 자신이 체육관에서 돌아와 매일 자정까지 공부했다는 사실을 알면 까무러칠 게 분명했다.

“걱정 마라, 너 모르게 할 만큼 했으니까.”

“까불고 있네. 네가 무슨 짓을 하는지 손바닥처럼 들여다보는 사람이 나야. 이 자식아, 네가 언제 공부를 했다고 우겨!”

“나 수업 열심히 듣는 거 못 봤어?”

“얼씨구. 됐다, 됐고. 하기야, 언제 우리가 시험 때문에 스트레스 받은 적이 있었냐. 그냥 되는 대로 살아가는 거지. 그나저나 시험 끝나면 김춘수가 그냥 넘어가지 않을 텐데 걱정이네.”

이성일이 슬그머니 밤안개의 짱 김춘수의 이야기를 꺼냈다.

놈은 최강철이 밤안개 패거리를 작살 낸 다음부터 보복을 걱정해 왔는데 시험 기간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시작될 거란 예상을 하고 있었다.

“넌 예나 지금이나 매일 걱정으로 사는구나. 언제 그 성격 고칠래?”

“뭔 소리야?”

이성일이 최강철의 말을 듣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전혀 이해되지 않은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성일을 향해 최강철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돌렸다.

놈은 모를 것이다. 자신의 인생이 언제나 걱정 속에서 살았다는 것을.

교실은 예전과 다르게 쥐 죽은 듯이 조용했는데 친구들은 책을 펴놓고 마지막 열을 올리는 중이었다.

최강철이 입을 닫자 부스럭부스럭 이성일이 책을 꺼내 중얼거리며 시험에 나올 법한 내용들을 외우는 게 보였다.

평소에는 공부와 담을 쌓고 지내던 놈들마저 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책을 보니 학생이란 신분은 질긴 올가미인 게 분명했다.

최강철은 교실을 가득 채운 친구들을 바라보며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겼다.

과거에는 몰랐지만 막상 다시 인생을 살게 되자 모든 것이 새로웠고 모든 것이 소중했다.

이러한 소중함을 모른 채 인생을 낭비하며 살았던 자신의 삶은 부끄럽고 후회스러운 것들뿐이었다.

잘못된 판단과 우유부단한 성격 때문에 일어났던 수많은 잘못된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그를 부끄러움 속으로 빠뜨렸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전쟁에 나가는 장수의 굳은 얼굴처럼 문을 박차고 들어온 영어 선생이 소리를 질러 학생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모두 책 치우고 가방을 중간에 올려놓도록. 눈알 돌리는 놈은 죽는다. 만약 커닝하다가 걸리는 놈은 죽을 때까지 빠따로 때릴 거니까 알아서 해. 반장, 시험지 돌려!”

시험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돌아온 인생의 첫 시험지는 그리움과 추억 속에서 현실이 되어 그렇게 최강철의 책상 앞에 놓여졌다.

한동안 움직이지 않고 시험지를 바라보았다.

과거에도 지금처럼 열심히 공부했다면 자신의 인생은 슬프고 비참하지 않았을 것이란 아쉬움과 이제 새롭게 만들어갈 그의 인생을 생각하며 그는 천천히 볼펜을 손에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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