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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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체육관으로 최강철이 들어서자 관장인 윤성호가 관원들을 가르치다가 천천히 다가왔다.
윤성호는 10년 전 라이트급 한국 챔피언까지 지냈으나 동양 챔피언 타이틀전을 앞두고 스파링을 하다가 망막을 다치면서 은퇴했던 불운한 천재였다.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그의 원, 투 스트레이트는 복싱계에서 일품으로 통했는데 웬만한 선수들은 그의 연타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런 그가 영등포 변두리에 체육관을 차린 것은 워낙 독특한 성격을 지녀 남 밑에서 코치 생활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골이라고나 할까.
조금만 자신의 생각과 달라도 그는 가차 없이 들이박았는데 그런 성격 때문에 커다란 체육관의 코치직을 5번이나 그만두었다.
아직 이른 시간임에도 체육관에는 5명의 관원들이 열심히 섀도복싱과 샌드백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되지 않아서 그럴 뿐. 워낙 현재의 복싱 열기가 대단해서 성호체육관의 전체 관원은 변두리치고는 꽤 많은 50명에 이르렀다.
“왜 혼자 왔어. 이틀 전에 같이 왔던 친구는 어쩌고?”
“집안에 일이 있어 며칠 못 올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많이 아프시다네요.”
거짓말이다.
지금 이성일은 놈들의 집단 구타에 여기저기 다쳐서 제대로 몸을 움직이기가 어려웠다.
“이런 젠장. 그럼 관비 돌려줘야 해?”
“아닙니다. 아버지 호전되시면 다시 나온다고 했으니까 그러지 않으셔도 돼요.”
“다행이네.”
윤성호가 슬그머니 얼굴을 폈다.
관원이 50명이나 되었지만 체육관을 운영하기에는 빠듯한 실정이었다.
더군다나 3명 빼고는 아직 데뷔전도 치르지 못한 놈들이기 때문에 별도의 수입도 생기지 않았던 차라 한 놈이 아쉬운 판이었다.
“너 이름이 뭐라고 했지?”
“최강철입니다.”
“키와 몸무게가 어떻게 되냐?”
“178㎝에 60㎏입니다.”
“어이구…….”
윤성호의 입에서 저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아무리 관원 한 명이 아쉬운 판이라도 최강철처럼 허약한 놈이 복싱을 배우겠다고 왔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런 놈은 길어야 한 달이다.
물론 좋은 점도 있었다. 대충 기초 훈련만 시키다가 돌려보내면 되니까 신경 쓸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복싱 배운 적 있나?”
“없습니다.”
“싸움을 해본 적은?”
“싸워본 적도 없습니다.”
갈수록 태산이다. 하긴, 이런 약골이 무슨 싸움을 해봤겠는가.
분명 이놈은 학교에서 줄곧 얻어터지는 게 분해서 복싱을 배워보겠다고 온 놈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그는 새로운 관원을 대하는 관장의 자세로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좋다. 그건 그렇다 치고, 복싱은 왜 배우려고 하는 거지?”
“선수 생활을 해보려고 합니다. 저는 권투로 성공하고 싶습니다.”
“푸하하하…….”
최강철의 대답을 들은 윤성호의 입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복싱을 배우기 위해 오는 놈들이 대부분 하는 대답이었지만 그 말이 최강철의 입을 통해 나오자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사람은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어야 한다고 했는데 최강철은 구정물이 흐르는 도랑에서 멍청하게 다리를 뻗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흘리던 윤성호는 곧 웃음을 멈추었다.
스스로 실책을 깨달은 그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최강철을 향해 두 손을 들어 올렸다.
“미안. 솔직하게 조금 어이없어서 그랬다. 지금의 네 몸으로는 선수 생활을 한다는 게 불가능해 보여서.”
“저는 꽤 괜찮은 주먹을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보고 판단해 주시죠.”
“그래?”
놀림을 당했다고 생각했다면 얼굴이 붉어져야 정상인데 최강철은 전혀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더군다나 눈앞의 말라깽이 놈이 호언장담을 하자 호기심이 동했다.
놈의 얼굴로 봤을 때 학교에서 얻어터지다가 온 놈의 면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 어디 얼마나 괜찮은 주먹을 가졌는지 보자.”
윤성호가 최강철을 데리고 샌드백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체육관에는 3개의 샌드백이 공중에 매달려 있었는데 그중 두개는 다른 관원이 차지한 채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중이었다.
“어디 쳐봐.”
윤성호가 고개를 까닥이며 바라보자 최강철이 책가방을 내려놓고 교복을 벗었다.
그런 후 가볍게 몸을 풀고 샌드백의 앞에 서서 글러브를 끼었다.
쉬익, 팡! 팡, 파앙……!
복싱을 배우겠다고 결심을 굳힌 후 체육관을 결정할 때까지 매일 공터에 나가 섀도복싱을 했다.
공간에 임의의 목표점을 만들어 놓고 일주일 동안 연습했더니 점점 스피드가 빨라지고 있었다.
연속해서 두드리는 최강철의 주먹에 의해 샌드백이 흔들렸다.
하지만 최강철은 흔들리는 샌드백을 향해 한동안 주먹을 멈추지 않았다.
팡, 팡, 파앙……!
“환장하겠네.”
윤성호가 샌드백을 두드리는 최강철을 바라보며 저절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정말 어이가 없어 기가 막혔다.
최강철의 체형은 금방 쓰러질 정도로 말랐는데 샌드백을 때리는 모습은 너무나 강렬해서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임팩트였다.
복싱을 배우지 않은 사람은 흔들리는 샌드백을 두드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모른다.
더군다나 최강철이 지금 하는 것처럼 정확한 임팩트를 터뜨리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련이 필요했다.
윤성호를 진정으로 놀라게 만들고 있는 것은 최강철이 한 지점만 계속해서 가격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움직이는 샌드백을 향해 정확히 한 지점을 가격한다는 것은 고도의 집중력과 순발력이 필요했다.
아직 복싱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폼은 엉성했고 펀치의 회수와 발진이 부드럽지 못했지만 임팩트 하나만큼은 발군이었다.
더군다나 펀치를 내는 속도도 처음 복싱을 배우는 놈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빨랐다.
그랬기에 그는 최강철이 샌드백을 두드리는 걸 중지시키지 않고 지켜봤다.
이미 훈련을 하고 있던 관원들은 행동을 멈추고 최강철의 모습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그들 역시 의외의 상황에 상당히 놀란 눈치였다.
윤성호가 최강철을 중지시키지 않은 것은 체력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과연 저렇게 말라빠진 몸으로 얼마나 많은 펀치를 내뻗을 수 있는지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손을 들어 최강철을 중지시킨 건 10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숨소리가 가쁘게 들려왔고 펀치의 속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윤성호의 얼굴은 굳어질 대로 굳어져 있었다.
10분.
권투 선수에게 10분이란 시간은 지옥을 경험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믿어지지 않았다.
처음 권투에 입문한 놈이 이런 지구력과 펀치를 보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최강철, 이 자식. 너 어디 체육관 다니다 왔어!”
처음에는 믿지 못하던 윤성호는 최강철이 거듭해서 복싱은 처음이라고 뻗대자 천천히 기쁨의 웃음을 흘려냈다.
천재라는 말이 있다. 하늘에서 내려준 사람이란 뜻이다.
동양 챔피언을 목전에 두고 눈물을 흘리며 링을 내려와야 했던 그의 꿈은 자신의 손으로 직접 세계 챔피언을 키워보는 것이었다.
언감생심이란 것도 안다. 하지만 그런 꿈을 꾸지 않고서는 이 생활을 지속하기 어렵기에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다.
세계 챔피언은 전국에서 복싱으로 성공하기 위해 피나는 훈련을 하고 있는 젊은 청춘들에게는 간절한 꿈이었지만 그중 성공하는 자는 10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하다.
물론 최강철이 세계 챔피언 재목이라고 확신한 건 아니었다.
어떤 미친놈이 이제 막 글러브를 낀 신출내기가 조금 한다 해서 세계 챔피언 재목이라고 확신한단 말인가.
그럼에도 윤성호가 만면에 웃음을 띠운 것은 최강철의 자질이 그만큼 훌륭했기 때문이다.
제대로 키워 국가대표라도 된다면 신생 성호체육관은 명문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최강철, 고등학교 1학년이라고 했지?”
“예.”
“고등학생은 프로 선수가 될 수 없다. 알고 있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아마추어로 시작해서 올림픽에 나가고 싶습니다. 프로 전향은 그다음에 생각하고 싶습니다.”
“이 자식아, 올림픽이 누구 집 애 이름인 줄 알아?”
“꿈은 크게 가지라고 했잖아요.”
“말은 잘하네, 어린놈이.”
“관장님, 어떠십니까. 제가 쓸 만한가요?”
“기본기가 많이 부족하지만 펀치력은 괜찮은 것 같다. 가르치면 꽤 하겠어. 어때, 제대로 배워볼 테냐?”
“그러려고 왔는데요.”
“훈련을 시작하면 공부는 뒷전으로 미뤄야 해. 그래도 괜찮아?”
“공부는 제가 알아서 합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최강철의 대답에 윤성호가 빙그레 웃었다.
맞는 말이다.
공부를 잘하는 놈이 미쳤다고 복싱을 배우겠다며 체육관을 찾았을까.
이런 건 괜한 기우에 불과했고 이 타이밍에 전혀 어울리지 않은 질문이었다.
“지금 네 체중으로는 라이트급이다. 키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체급이지. 원래부터 그렇게 마른 거냐?”
“제대로 못 먹고 커서 그렇습니다. 더군다나 운동을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근육량도 현저히 부족하고요. 앞으로 운동 열심히 하고 잘 챙겨 먹으면 괜찮아질 겁니다.”
“이놈아, 고기는 나도 못 먹고 살아!”
“누가 관장님한테 고기 사달라고 했나요. 그렇다는 거죠.”
“하여간, 너는 오늘부터 내가 직접 훈련시킬 테니 마음 단단히 먹고 따라와. 알았어?”
“예, 알겠습니다.”
“네 말대로 너의 피지컬은 지금 너무 형편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부터 당분간 피지컬을 증진시킬 수 있는 훈련과 기본기를 중점적으로 훈련시킬 생각이다. 네가 얼마나 열심히 훈련하느냐에 따라 복싱 인생이 결정된다는 거 절대 잊지 마라. 나는 네가 조금이라도 게으르거나 사고를 치면 바로 잘라 버릴 거다, 알겠어?”
노려보는 윤 관장의 말은 협박으로 들리지 않았다.
아마 그는 어린 나이의 고등학생 유망주를 놓치지 않기 위해 처음부터 기를 잡아놓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최강철이 봤을 때 그의 행동은 우스운 것이었다.
54살의 나이를 살면서 세상의 수많은 더러운 것을 경험했던 최강철이었으니 이제 35살에 불과한 그의 협박이 마치 자장가처럼 들렸다.
그럼에도 최강철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은 모를 것이다. 내 마음이, 그리고 인생을 다시 살아가야 하는 내 각오가 얼마나 간절하고 뜨거운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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