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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환생-6화 (6/308)

[6]

* * *

이성일의 성적은 최강철과 비슷했다.

하긴, 거의 매일 붙어 다녔으니 시험 며칠 전부터 공부하는 시간이 같았고 IQ도 비슷해서 둘의 성적은 그 나물에 그 밥이었다.

이제 서서히 적응이 되기 시작했다.

과거로 돌아오고 일주일이 지나자 고등학생으로 살아가는 것이 점점 익숙해져 갔다.

그동안 최강철은 이성일과 함께 방과 후 복싱 체육관을 찾아다녔다.

이성일은 갑자기 웬일이냐며 툴툴거렸으나 최강철의 제안을 마다하지 않았다.

요즘 들어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문고는 짐승들의 세계였다.

중학교 때와는 달리 블랙서클들이 난립을 하고 있었는데 요즘의 일진들과는 상대도 되지 않을 만큼 폭력적이었고 잔인했다.

체격이 형편없는 최강철과는 다르게 탄탄한 몸매를 지닌 이성일은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밤안개’라는 블랙서클의 입단을 선배들에게 권유받았다.

하지만 이성일은 단호하게 거절했고 체육관 뒤로 끌려가 거의 반병신이 될 정도로 얻어맞았다.

그럼에도 이성일은 3일이 지나자 멀쩡하게 나타나 최강철을 향해 바보 같은 웃음을 지었다.

왜 그랬냐고 묻자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나중에야 알았다. 놈은 블랙서클에 들어가는 순간 최강철과 헤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는 것을.

선배들에게 맞은 것은 감수할 수 있었으나 같은 학년에 다니는 놈들이 설치는 건 참기 힘든 일이었다.

블랙서클에 가입한 놈들은 주기적으로 친구들에게 상납금을 받았는데 선배들에게 일정액을 바친 후 나머지 돈으로 담배를 사 피웠고 술을 마셨다.

놈들이 노리는 것은 그나마 제법 산다는 놈들이었다.

최강철이나 이성일 같은 떨거지들은 털어도 나올 것이 없기 때문에 아예 상납금 자원에서 제외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학교생활이 편한 건 아니었다.

놈들은 자신들의 행동에 걸리적거리면 여지없이 주먹을 들었고 이성일이 바로 그 대상 중 한 명이었다.

사건이 터진 것은 겨우 마음에 드는 복싱 체육관을 찾아내서 등록한 다음 날이었다.

가히 복싱 열풍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복싱 체육관은 사람들로 북적였는데, 괜찮은 시설을 구비한 곳은 관비가 비쌌기 때문에 둘은 버스로 세 정거장이나 떨어진 외곽의 체육관을 골랐다.

오전 수업이 끝나고 점심을 먹은 후 최강철과 이성일은 운동장 근처의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주로 이성일이 물었고 최강철이 대답했는데 요즘 갑자기 공부에 빠진 것과 권투에 관한 이야기가 주제였다.

“야, 인마. 나 정말 어색해 죽겠어. 쉬는 시간에 네가 책을 보는 건 정말 꿈속에서나 상상했던 일이거든?”

“나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갈 거다.”

“지랄, 집안 어렵다고 돈 벌 거라는 게 불과 보름 전의 일이야. 사내놈이 변덕이 죽 끓듯 하는구만. 괜히 엉뚱한 생각하지 말고 때려치워. 너나 나나 이 실력으로 어딜 가겠냐.”

“3년 동안 열심히 하면 어디든 갈 수 있어.”

“얼씨구, 그런 놈이 권투를 배운다는 건 또 뭐야?”

“같이하면 돼. 체력이 좋아야 공부도 하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이성일의 얼굴을 보면서 최강철이 씨익 웃었다.

자신의 생각을 말해준다면 이성일은 당장 일어나 병원에 가자고 설칠 게 분명했다.

낄낄거리며 농담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대화의 수준이 형편없을 정도로 어렸으나 이성일과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김원진과 그 패거리가 다가온 것은 둘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 교실로 돌아가려 할 때였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갔기 때문에 예령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다.

“뭘 봐, 씨발 놈아!”

이성일과 눈이 마주친 김원진이 대뜸 욕을 해왔다.

놈은 이성일보다 한 뼘이나 작은 키를 가지고 있었으나, 몸집이 당찼고 제법 주먹 솜씨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하게 김원진은 이성일을 볼 때마다 시비를 걸어왔는데 이번이 벌써 세 번째였다.

김원진의 도발에 뒤에 서 있던 놈들이 웃었다.

놈들은 전부 정문고를 양분하고 있는 블랙서클 밤안개의 멤버들이었다.

하지만 웃은 건 놈들뿐만이 아니었다.

김원진의 도발을 받은 이성일은 가소롭다는 웃음을 얼굴에 띠었는데 까불면 죽여 버리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비록 김원진이 제법 한가락 했으나 이성일에게는 안 된다.

이성일은 중학교 때부터 주먹으로 누구한테 빠지지 않는 실력을 가진 놈이었다.

“이 새끼가 미쳤나. 얻다대고 다짜고짜 욕이야. 죽고 싶어?”

“하아, 이 씨발 놈. 그동안 정태 때문에 봐줬더니 안 되겠네. 이따 체육관 뒤로 와. 한판 붙자.”

“좋아. 나도 좆만 한 놈이 설치고 다니는 게 눈꼴 시렸던 판이다. 갈 테니까 기다려.”

낄낄거리는 놈들의 웃음이 더욱 진해졌다.

놈들은 둘의 싸움이 기대되는지 즐거운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웃지 못한 것은 최강철과 놈들 뒤편에 있던 이정태뿐이었다.

이정태는 중학교 때까지 이성일과 친한 사이였으나 고등학교에 들어와 밤안개에 가입하면서 소원한 사이가 된 상태였다.

“하지 마라.”

“쪽팔리게 왜 이래. 그런 새끼한테 내가 질 것 같아?”

“당연히 네가 이기지. 하지만 얻어터지는 건 너야. 잘 알잖아?”

“설마 그러겠어?”

“그놈들은 그러고도 남아. 그러니까 내 말 들어. 분명 다구리를 들어올 거다. 그 새끼들은 주먹으로 하지 않을 거야.”

“씨발…….”

과거의 기억.

그래, 맞다. 그때 그는 이성일과 함께 체육관 뒤로 갔다가 맨땅에 먼지 나도록 얻어터진 적이 있었다.

그랬기에 말렸는데 이성일은 잠시 동안 침묵을 지키더니 잇새로 강하게 말을 뱉어냈다.

“그래도 할 수 없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오늘 일을 끝내야 돼. 여기서 내가 나가지 않으면 그 자식들은 나를 완전히 쪼다 취급할 거다.”

이성일의 눈빛을 보며 더 이상 말을 아꼈다.

아직 새파란 청춘이 몇 대 얻어터지는 게 뭐 그리 대수겠는가. 하지만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다면 평생을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하고 싶은 대로 해. 더 이상 말리지 않을 게.”

“대신 넌 따라오지 마. 괜히 끼어들었다가 너도 다칠 테니까.”

“이 자식아, 걱정도 팔자다. 네가 가는데 내가 왜 안 가겠어. 가서 봐야지. 얼마나 얻어터지는지 내 눈으로 봐야 병원에라도 데려갈 거 아니냐.”

“미친놈.”

방과 후 가장 친한 친구 놈의 싸움이 있었지만 최강철은 오후 수업을 충실히 받았다.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루시퍼가 선물해 준 두뇌의 한계가 어디까진지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도대체 자신의 IQ를 얼마로 세팅해 놨기에 그렇게 난해하던 수학은 물론이고 영어 문법과 단어들이 머릿속으로 거침없이 저장되었고 나머지 과목들도 마찬가지였다.

원리의 이해는 선생님의 설명만으로도 충분하고 암기는 몇 번 읽어보는 것으로 머릿속에 저장되어 다시 보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이 정도 능력이라면 방과 후 별도로 1시간만 공부해도 충분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수업에 집중하다 보니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드디어 결전의 시간이 다가왔다.

이성일은 오후 내내 아무런 말도 없었다.

평소에 그토록 쾌활했던 놈이 막상 싸움이 결정되자 긴장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정문고의 체육관 뒤 공터는 블랙서클의 아지트였다.

정문고에는 두 개의 거대한 블랙서클이 존재했는데, 그중 하나가 밤안개였고 나머지 하나는 ‘타이거’란 명칭을 가지고 있었다.

세력이 비슷한 둘은 서로 정문고를 양분하며 공존했고 체육관 뒤 공터는 일이 생길 때마다 놈들이 애용하는 도살장이었다.

최강철은 따라오지 못하게 하는 이성일의 말을 거부하고 그와 함께 체육과 뒤편 공터로 향했다.

이미 놈들은 공터에 앉아 담배를 피우면서 낄낄거리고 있었는데, 싸움 당사자인 김원진은 어디서 구했는지 얇은 가죽 장갑을 낀 채 공터 중앙에 서 있었다.

“씨발 놈, 정말 왔네. 아주 죽으려고 환장했구나.”

“누가 죽을지는 두고 보면 알 거 아니냐.”

책가방을 내려놓은 이성일이 양쪽 어깨를 풀면서 공터 중앙으로 향했다.

밤안개 패거리들은 여전히 빙글거리며 두 사람이 싸우기를 기다렸다.

안다.

이 싸움의 결과를.

둘의 싸움은 이성일의 승리로 끝나지만 공터를 주욱 둘러싸고 있는 10명의 패거리가 곧 끼어들어 다구리를 친다는 것을.

그 선봉에는 이만석이 있었다.

이 자식은 진석중학교를 주먹으로 휘어잡은 놈으로, 태권도가 2단이고 골격도 큰 걸로 워낙 유명했기 때문에 정문고에 들어오자마자 밤안개의 리더인 김춘수가 스카우트한 놈이었다.

공터의 중간에서는 싸움이 시작된 지 불과 5분 만에 이성일이 김원진을 힘으로 찍어 눌러 바닥에 깔고 사정없이 주먹을 날리는 중이었다.

그대로 내버려 두면 곧 싸움이 끝날 텐데 과거처럼 이만석이 각목으로 이성일의 등짝을 후려갈기는 게 보였다.

최강철은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이만석이 앞장서자 뒤쪽에서 구경하던 놈들이 차례대로 싸움에 끼어들며 이성일을 향해 마구 주먹을 날렸다.

과거에는 그 모습에 격분해서 끼어들었다가 죽도록 얻어맞았지만 최강철은 끝끝내 놈들이 하는 짓을 지켜만 보았다.

겁이 나서가 아니었다.

루시퍼에게 선물 받은 강철 같은 심장은 놈들의 행동에 겁먹을 정도로 하찮은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끼어들지 않은 것은 자신의 계획에 차질이 발생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붙어도 천부적인 운동신경으로 몇 놈 정도는 처리할 수 있겠지만 아직 피지컬이 허약했기 때문에 부상을 당할 염려가 있었다.

선물 받은 천재 두뇌는 지금 끼어들어 싸움을 하면 놈들을 전부 처리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

과거에도 싸움에 끼어들었다가 팔이 부러지는 바람에 세 달이나 깁스를 하고 다닌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놈들의 비겁한 행태를 지켜보며 이가 악물려졌으나 끝내 참았다.

3년. 고등학교 3년 동안 복싱으로 명성을 날리기 위해서는 하루라도 헛되이 시간을 보낼 수 없었다.

맞는 와중에도 자신을 바라보는 이성일의 시선이 미치도록 불쌍했으나 최강철은 팔짱을 낀 채 그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놈들의 구타는 거의 10여 분 동안 이어지다가 멈췄다.

그 시간 동안 이성일의 모습은 피투성이로 변했고 온몸이 흙으로 뒤덮여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최강철은 천천히 다가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이성일을 부축해서 일으켰다.

그런 후 이만석을 향해 입을 열었다.

“실컷 팼으니까 이제 가도 되냐?”

“병신 새끼. 친구가 맞는데도 비겁하게 가만있다니 넌 남자도 아니야, 이 새끼야. 보기 싫으니까 당장 꺼져.”

“이만석, 집단으로 한 사람을 구타해 놓고 비겁하다는 소리가 나와? 봐라, 성일이의 모습을. 아주 엉망이 되었잖아.”

“우리한테 덤비는 놈은 그래도 싸. 그러니까 좆 까는 소리 하지 말고 얼른 꺼져!”

“크크크… 가지. 그런데 말이야. 한 달 후 이 자리에서 다시 보자. 그때는 내가 너하고 한번 붙고 싶은데 괜찮겠어?”

최강철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아무 때고 집단으로 사람을 때리는 놈들의 행동에 전혀 겁먹은 얼굴이 아니었다.

그걸 보면서 이만석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는 곧 최강철의 행동에 가소롭다는 표정을 떠올렸다.

“아주 죽고 싶어서 환장했군. 개새끼가 어디서 주둥이를 놀려? 한 달 후라고 했지. 씨발 놈아,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려 줄 테니까 약속이나 지켜. 지금 당장 패 죽일 수도 있지만 그때의 기쁨을 위해 참아준다.”

웃어라.

그러나 그 얼굴에 떠올랐단 비열한 웃음은 한 달 후에 지옥을 맛보게 될 것이다.

한 달이면 충분하다. 한 달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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