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종, 군밤의 왕-313화 (313/320)

100. 이웃이 있으리 (3)

“초대에 감사드립니다.”

의아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모한다스 간디가 인사를 건넸다.

문전박대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요, 설령 만남을 성사시키더라도 대부분 공감하는 시늉만 하리라 여기고 왔건만, 반대로 주요 당사국 바로 다음 순서로 조선국 대표 김옥균이 모임을 청해올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던 것이다.

“허허, 별 말씀을요. 인도가 이번 회의에서 중요한 의제가 되리라는 것은 명백하고, 다만 달라질 점이라면 그것을 명시적으로 언급할지의 여부뿐일 텐데, 이 강화회의에 참석한 이로써 마땅히 만나뵙고 뜻을 주고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같은 아시아 사람이라는 동질감으로 인해 저리 정중하게 나온다고 보기에는 김옥균의 인상과 평판이 – 아무래도 영국 측의 평가가 그대로 인도에 전해질 수밖에 없던 것이다 – 심상치 않았다. 필히 노림수 있으리라 믿는 간디와 국민회의 대표단 사람들의 표정이 조금씩은 굳었다.

“그렇다면, 그 뜻은 무엇이 될는지요.”

“우리 조선국은 금번 전란에서 매우 독특한 입지를 점하게 되었습니다. 마땅히 이 귀한 기회를 활용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간디의 께름칙함을 곱절로 만드는 말이었다. 그것을 곱씹는 사이, 일행 가운데 가장 젊은 자와할랄 네루(Jawaharlal Nehru)가 먼저 따져 물었다.

“아무리 우리 인도인들이 국제정치로부터 사실상 차단된 지 오랜 세월이 지났다고 하지만... 대가 없는 호의가 없음은 알고 있습니다.”

‘너희마저 우리를 무시하려 드느냐’ 하는 비분(悲憤) 담긴 말. 그러나 김옥균은 그 속내 모를 웃음을 지우지 않았다.

“과연 그렇습니까? 어떤 호의는 그 자체로도 충분한 대가가 되기도 하는 법이지요. 앞으로의 세상에서는 오히려 그것이 정상이 되기를 바라기에 이번 강화회의에 나선 것이기도 하고요.”

사뭇 진지해진 표정으로 김옥균이 본론을 꺼냈다.

“우리 조선국은 가칭 만국연합에 인도가 가입하기를 원합니다.”

“그 말씀은...”

“인도의 독립을 이 자리에서 단번에 논할 수는 없지요. 그것을 위한 자리만은 아니니...”

그러나 이 회담에서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는 것이 인도, 보다 정확히는 인도를 필두로 한 열강의 식민지 문제였다.

애초에 식민지 해방과 민족자결을 내세우며 피아 구분을 확실히 한 독일과, 그런 흐름을 맞이하여 결국 문명과 도덕의 치장을 스스로 조금은 벗은 영국과 프랑스, 양측의 대립으로 인하여 돌이킬 수 없는 충돌 경로로 빠져들지 않았던가.

그리고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최대 식민지 인도가 어떤 선례를 남기느냐는, 어떻게 결착이 나든 다른 식민지 모두에게도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엄연히 ‘인도 제국’ 아닙니까? 이미 소소하게나마 여러 국제기구에 참여한 전력도 있으니, 그런 전례를 따져보면 가입 자체는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귀국과 영국이 동의한다면요.”

그러면서 자신이 준비해온 이 만국연합 계획을 늘어놓았다.

세상 모든 나라들이 참여하는 모임. 전쟁과 평화의 문제를 비롯하여, 하늘 아래 부단히 생기는 다툼거리를 말로써 풀어낼 모임.

그 모임의 원칙은 일국 일표(一標) 원칙의 다수결이 될 것이며, 독립적인 군권과 외교권을 지닌 모든 정부에게 참여 자격이 주어질 것이다.

“우리는 몰라도, 우리 영국인 라자(Raja)와 그분의 정부는 결코 쉬이 동의하지 않겠지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결정은 아니지요. 그러나 이 구상과 이를 둘러싼 정황을 잘 이해한다면, 설득의 여지가 충분히 있을 것입니다.”

마침내 간디가 말문을 열었다.

“참으로 원대한 구상입니다.”

“그만큼 언뜻 허황되어 보이겠지만, 필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귀국뿐 아니라 하늘 아래 모두에게요.”

모처럼 꺼낸 말의 뒷부분을 김옥균이 채어가니, 잠시나마 어색한 정적이 방 안에 돌아왔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 김옥균의 시선이 간디의 눈과 맞닿았다.

그보다 한참 젊으면서도, 족히 여러 길은 더 깊어보이는 눈. 삽시간의,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았을 고민 끝에 다시 말문이 열리고, 짧은 답이 나왔다.

“참으로 훌륭합니다. 감사할 따름입니다.”

“... 아마 진심으로 감사히 여기는 것은 아니었겠지. 우리가 정말 인도 사람들만 좋으라고 그런 제의를 하는 것은 아님을 깨달을 만큼 명석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네.”

“그랬구만. 알려줘서 고마우이. 이번에야 우리 미국 쪽에서 직접 만나볼 일은 없겠지만, 언제고 인도인들과 마주앉아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니.”

그날 일정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김옥균이, 홀로 찾아온 태프트에게 말했다. 커튼 열어젖히니 맑은 달빛 내려와, 두 사람이 마주하고 있는 술잔을 비추었다.

그러나 이미 몇 잔씩 주고받은 두 사람의 눈빛은 취기에 자리 내주지 않는 야심으로 여전히 또렷하였다. 이 자리 역시 필리핀에서의 옛정을 되새기는 사석(私席)이라고는 하지만, 두 사람을 포함해 이곳 제네바에 와 있는 각국 대표 중 그 누구도 그리 쉽게 믿지는 않을 것이다.

필리핀에서도 ‘테디’ 루스벨트라면 모를까, 태프트는 그렇게 (그 덩치에 비해) 눈에 띄는 인사가 아니었다. 허나 여기서 다시 보니, 어떻게든 이 기회에 저들 나라와 일신의 영예를 위해 한 건 올리고자 하는 마음은 같았으므로 지음(知音)까지는 아니라도 지심(知心) 사이는 되었다.

무엇보다, 이곳 제네바 강화회의에서 서로 필요한 사이 아니었던가. 대륙에서 가장 멀쩡하게 남은 러시아와 더불어, 승리 없이 끝날 이번 전쟁의 사실상 승자가 된 미국은 무슨 제의를 한들 유럽에서 우군을 얻을 수 없고, 조선은 함께 온 청과 일본의 힘을 빌린다 한들 그들만으로는 유의미한 소리를 내기 어려웠으니.

“영국인들이 당황해하는 것을 보는 것도 나름대로 재미는 있더군. 하기야, 의심과 불안에 한껏 물들게 해야 조금은 그 완고함이 꺾일 테지.”

“자네들이 유럽 각국에 제시한 ‘금융지원’ 방안만 하겠나. 그때 백악관으로 전한 내 발상은 그렇게까지 과격한 건 아니었는데.”

“흠흠,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과한 면도 없지는 않았지만... 지나간 일 아닌가?”

한껏 유럽 나라들의 경계만 산 몇 달 전의 기억을 김옥균이 상기시키니, 머쓱해진 태프트가 헛기침을 했다.

물론 말은 저렇게 해도, 그 난처했던 경험은 그대로 국무부로 전해졌다. 아마 지금쯤이면 조선이 했다는 것처럼 소위 ‘국제관계’ - ‘가로세로(縱橫)’의 번역어 – 연구 및 자문 인력을 급히 확충하고 있을 테니, 이번 회의의 수 개월에 걸친 일정이 마무리되기 전까지는 무언가 그럴듯한 결과가 나올 것이다.

그 인력에게 일거리를 전해주기 위해서라도, 개인적인 호기심을 겸해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영국을 위한 것도 아니고, 인도인들을 위한 것도 아니라면 누구 좋으라고 그런 제의를 하는 겐가? 내 물을 수밖에 없네그려. 나라마다 한 표씩 주어서 의회 비슷한 의사결정기구를 만든다는 생각이야, 사실 나를 포함해 국제법 조금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떠올릴 만한 발상이지만, 엄연히 자주국이 아닌 나라를 그리한다니...”

“사례로 따지면 당장 우리와 저기 옆방 일본이 있지 않은가? 중국 아래의 ‘스스로 선 나라(自立之邦)’로서 서양 나라들과 한동안 교류했으니. 거기서 격이 오른 뒤에도 중국을 ‘윗나라(上國)’으로 한동안 모셨고.”

그때의 젊은 김옥균은 이를 안타깝게 여겼지만, 지나고 나서 보면 이 또한 나라의 보배가 된 이력이었다. 청국이 이곳까지 와서, 유럽 나라들 사정 논의하는 자리에 얼굴 들이밀었다는 데 자족하면서 조선을 믿고 따르는 것도, 일본국이 그런 기세에 휩쓸려 조선 뒤를 따르는 것도 모두 따지고 보면 그때부터 죽 내려온 것 아닌가.

“뭐, 생각해보니 그야 그렇군. 애초에 승패가 명확하지 않으니, 이 정도의 모호한 결론이라도 다들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지.”

간디 일행이 떠나자마자, 커즌이 영국의 체면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득달같이 달려와, 인내심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정중하게 캐물었던 이야기는 앞서 태프트에게 전한 바 있었다.

“양원제(兩院制)와 비슷하게 강대국들만 모이는 의결기구를 모든 나라의 의결기구 위에 두고, 거기에 영국을 비롯해 주요국의 자리를 마련한다. 그리 말했던가? 그런 조건 하에서라면야, 전체 표 수를 늘리기 위해 식민지에 자치권을 부여하고 이 연합에 가입시킨다는 것을 조심스레 검토는 해볼 수 있겠지.”

모든 식민지에는 자치권을. 그렇지 않을 경우, 정전 직후부터 부쩍 오스트리아-헝가리에서 힘 얻는 주장처럼 완전히 동등한 정치적 권리를. 이도저도 아닌 경우에는, 만국연합의 표결에 따른 시한부 위임통치를.

전쟁이 어느 한쪽의 승리로 끝났다면, 승자의 권리로써 정의(正義)가 무엇인지를 정의(定義)할 수 있었겠지만, 그렇지 않았으므로 이런 모호한 방안이 겨우 성립할 수 있었다.

“허나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게. 그렇게 숨통 터준 것이 자칫 걷잡을 수 없게 되지 않도록 만반의 대비는 해야 할 것이라고도 커즌 씨에게 덧붙여주었으니.”

“뭐? 아니, 왜?”

“애초에 이 회의는 모두가 만족하지 못한 채 모인 자리이지 않은가? 모두가 만족하며 끝나는 것은, 둘 중 하나의 경우뿐일세. 회의 자체의 성사가 목표였거나, 아니면 자신이 탐냈던 바가 모두는 아니어도 그럭저럭 받아들여지며 마무리를 지었으니 다행이라며 스스로 속이면서 물러나거나.

설령 인도나 이집트, 아일랜드 등등이 모두 이 연합에 가입한다 한들, 영국 바깥에 문호가 그렇게 쉽게 열리지는 않을 걸세. 공론의 장을 만드는 시늉만 하고, 실제로는 국제무대에서 저들의 힘과 목청 되돌려줄 긴요한 수단으로 쓸 공산이 크지 않겠는가. 프랑스도 사실 그리 다르지는 않을 테고.”

“후, 하기야, 그렇게 얘기해주지 않았더라면 영국도 납득하진 않았겠지.”

술 한 모금 –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김옥균에게 ‘함경도의 추억’을 상기시켜달라며 전한 독주였다 – 기울이며, 잠시 생각을 정리한 태프트가 혼잣말하듯 말을 이었다.

“아무리 요식행위라 한들, 우리 미국을 비롯해 다른 국가들이 들어오려는 욕심은 낼 만큼의 시장은 개방해야 하겠지. 그리고 거기서부터는 우리가 알아서 쟁취해야 할 테고.”

손가락으로 몇 번 (태프트의 무게를 감당하느라 푹 들어간) 소파의 팔걸이를 툭툭 두드리며 태프트는 잠시 계산해보았다.

만족하기에는 너무나 좁은 문일 테지만, 끝내 다시 전쟁에 호소할 만큼의 답답함이 쌓이는 것을 허용하지는 않을 만큼의 틈이기도 할 것이다. 차라리 식민지 현지 정치세력을 포섭하거나 기술력으로 압도하는 것이 수지에 맞을 정도로.

“좋아. 그 정도라면, 우리로서도 조선식 식민지 문제 해법에 동의할 만하군. 각론으로 들어가면 어떨지 몰라도, 원론적으로는 나쁘지 않다 하겠네.”

“어차피 문장부호 한둘까지 들어가면서 다툴 생각은 없었네. 우리에게 그만한 여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자네들과 우리 유럽 친우들이 공정하다고 여기는 대로 처리하면 되겠지.”

“하지만 내 질문은 그대로일세. 그렇게 했을 때 조선이 얻는 건 뭔가? 쉽사리 떠오르지는 않는군그래.”

어쨌든 겉으로는 모든 식민지가 해방 또는 해방에 준하는 식으로 – 실제 사정이야 어찌 되었든 – 변모할 것이므로, 동맹국들은 명분을 얻게 될 것이다. 협상국들은 전후에 꽤 늘어날 ‘나라’들을 거느리며, 전후질서에서 전쟁으로 인한 손실을 만회할 기회를 틈틈이 엿볼 힘을 얻을 것이고.

그 정도 명분이면 나라 뜯어고치기에 족할 오스트리아나, 독일에게 약속받은 트리폴리타니아를 식민지 아닌 다른 이름으로나마 보장받을 길 열린 이탈리아, 영토는 상실했지만 발칸의 옛 속국들이 저를 보는 눈매를 단단히 고쳐준 오스만 투르크 등등. 나름대로 얻는 바가 있거나, 적어도 무언가 얻었다고 스스로 기만할 구석이라도 있는데, 조청일 삼국, 특히 이 창의단을 앞장서서 이끌고 전쟁 끝나는 원인도 상당 부분 제공한 조선은 유독 얻는 바가 없어 보였다.

“그야, 아무것도 없으니 당연히 떠오르지 않겠지. 그러니까 영국도 겨우 납득했고.”

“허, 워싱턴 D.C.의 우리 친구와는 달리 이제 다시는 대선 안 나간다고 쉽게 말하는 것 아닌가.”

“대신 이 만국연방을 얻었으니, 이것이 유지되는 한 딱히 무얼 더 얻어보고자 욕심낼 일도 없는 것일세.”

애초에 조선 하나의 힘, 거기에 청과 일본의 힘까지 빌려다 보탠다고 하여도,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다.

“아국이 어쩌다 보니 지난 수십 년 동안 널리 통교하면서 그 ‘선의’로 허명을 얻었는데, 창의단 좌충우돌로 거의 소진되었다 보아야 할 걸세. 이번은 말하자면 남은 거스름돈까지 모두 쓸어모아 밀어넣는 것이라 할 수 있고.”

최익현 한 사람이 한사코 자신의 책임이라 주장하여 어물쩡 묻히기는 하였지만, 그 기억이 어디 가지는 않을 터, 적어도 한동안은 같은 아주라면 몰라도, 유럽을 무대로 조선이 예전처럼 날뛰기는 어려울 것이다.

기억이 흐려진들 역사는 남으니, 유럽인들 가운데서 조청일 삼국의 창의단에 고마움 느끼는 이가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그와 더불어 조선인들이 그렇게 쉽게 그들 안에 침투하여 영향력을 발휘하였다는 것, 그리고 그 영향력을 거리낌 없이 풀어내 큰 파란을 일으켰다는 것을 경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국록을 받는 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할 수밖에 없고.

“그러니 이번에야말로, 국외(局外) 나라의 선의 없이도 어지간하면 전쟁 나지 않도록 확실히 다져놓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우리 정부의 뜻이자 내 십수 년 다진 결의이기도 했다네.

비록 좁은 문이고 작은 무대지만, 주먹과 총칼 대신 대화를 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했지. 이것이 사라지거나 무늬만 남지 않도록 계속 지키고 가꾼다면, 반드시 뜻을 이룰 수 있으리라 믿네.”

아마 간디 또한 그것을 직감으로든, 이성으로든 깨달았기에 군말 덧붙이지 않고 감사하다는 말만을 남긴 채 떠났을 것이다. 스스로 힘을 모아 언제고 독립할 수 있으리라는, 세상이 더 좋아질 수 있다는 의지와 자신을 갖추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들 스스로 해야 할 일이기에.

“갑자기 땅이 뒤틀리고 바다가 메워지지 않는 한, 우리 조선은 열강 대열에 들기 어렵네. 아무리 힘을 키운다 한들 좌우에 중국과 일본이 있으니, 비록 여느 강대국 못지않은 힘을 품고 천군만마를 거느린다 한들, 약소한 나라로 영락하지는 않을지언정 일대를, 대륙을 좌지우지하는 그런 일은 벌어지기 힘들지.

반면 명분과 도덕이 산산히 흩어지고 오랑캐 세상이 돌아온다면, 가장 먼저 당할 수밖에 없는 것 또한 우리 조선 같은 나라야. 그러니 평화와 질서는 그 자체로 충분한 대가 아니겠는가?”

묵묵히 듣던 태프트는 ‘그랬군’ 한 마디만을 남기고 다시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겼다. 진한 향을 그 독함이 가리고도 남는, 루스벨트의 의도 뚜렷한 그 양주를 마시면서 김옥균도 생각 가득한 침묵으로 한동안 응대하였다.

“훌륭하다고 생각하네. 정부의 공식 입장을 떠나 개인적으로도.”

“고마우이.”

“하지만, 멋지다 여기기 때문에 경고할 수밖에 없겠네. 힘으로 뒷받침되지 않는 이상은 허상에 불과하고, 이상으로 덮이지 않은 힘은 폭력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지. 후자는 이제 모든 나라들이 깨달았겠지만, 전자는 어떨지 모르겠군.”

이번 전란에서 미처 다 활약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고 잘하면 남의 나라 땅이라면 모를까 조선에서는 훈련할 때 외에는 쓰일 일 없기 때문에 태프트는 잘 알지 못할 것이다.

주상의 수십 년 독촉으로 전군에 보급된 신형 총포들. 각국 군부가 뒤늦게 조선에 그런 긴요한 물건 있었다면서 이마 탁 치곤 하였다는 그런 소총과 기관총이 있었음을. 자동차에 철판을 덧대고 기관총과 속사포를 올렸으며, 융비총국 어딘가에서는 그것보다도 더한 강철 요괴를 만들고 있으리라는 것을.

허나 설령 그것을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태프트 하는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그만큼만 되어도 스스로 지키기에는 얼추 족할 것이요, 청과 일본국 두 나라를 아울러 함께 가는 데도 큰 도움이 되겠지만, 천하를 논하기에는 한참 부족할 것이었다.

그만한 힘을 갖추고서 지금처럼 청과 일본 두 나라와 함께 거닌다 한들, 천하 태평이라는 그 큰 뜻을 떠받들며 유지하기에는 벅찰 것이다. 더구나 다들 그것을 내버리는 판에, 창의단 기억 되살리자면서 동양 삼국만이라도 화평 말하자 한다면, 글쎄. 당장 지금 세대가 늙어 사라진 뒤만 해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 말해주니 나 또한 고맙군그래. 그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우리도 준비하는 바가 있다고, 지금은 그렇게만 말해줄 수밖에 없겠네.”

다행히 태프트는 그리 깊게 파고들지 않았다.

“이 자리에 테디가 없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겠군. 그 성정이라면 자네 목을 조르든 자해공갈을 하든 궁금해서 어떻게든 답을 듣고자 할 테니.”

“내가 함경도에서 그 사람과 함께 곰 사냥하러 간 얘기를 했던가...”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한편, 아직 김옥균이 간디 일행을 만나 이야기 나누고 있을 무렵, 함께 스위스로 온 김가진은 엉뚱한 곳에 가 있었다. 그날 밤 김옥균이 태프트에게 넌지시 언급할, 그 ‘준비하는 바’를 위함이었다.

“두 분 모두 반갑습니다. 대군께서도 안부를 물으시더군요.”

김가진이 서양 예법대로 피에르와 마리 퀴리 두 사람에게 악수를 건네었다.

“하하. 덕분에 잘 지내고 있지요.”

그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가 이제야 조금 숨 돌릴 수 있게 된 퀴리 부부의 눈에는, 아직 그때의 피로가 가시지 않은 듯했다. 어쩌면 저대로 주름이 남을지도 모르는 일.

그러나 만약 김가진이 두 해 일찍 퀴리 부부, 특히 마리 퀴리를 만나보았더라면 그나마 크게 호전되어 지금 모습이 되었음을 눈치챘을 것이었다.

한창 전쟁으로 수십만 젊은이가 진토(塵土)로 화할 때, 조국 폴란드와 전선의 비극 사이에서 고뇌하며, 어쩌면 그때 하버의 제안대로 독가스라도 만들어, 전쟁을 조금이라도 빨리 멎게 해야만 하지 않았을까. 자신이 그때 하버 통해 피우수트스키와 연줄 하나라도 만들어 두었더라면, 무언가 조금은 달라졌을까, 매일같이 스스로 묻고 따지고, 마음과 기억을 파헤치던 시절.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마음의 잔잔함이 바람 없는 레만(Léman) 호의 수면과도 같을 것이다.

“솔베이(Ernst Solvay) 선생으로부터 말은 전해들었습니다. 제안할 문제가 하나 있다고요.”

“그렇습니다. 이론적 문제인 동시에... 정치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문제지요.”

“정치적?”

“이렇게 말씀드리면 다소 과장한 것처럼 들릴 수 있지만, 어쩌면 앞으로의 평화에 있어 매우 중한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안건입니다.”

잠시 마주보며 고민하던 부부가 결론을 내렸다.

“좋습니다. 국경 없는 과학자회가 주관하는 이번 솔베이 회의(Solvay Conference)의 안건으로 고려해보도록 하지요. 정확히 무엇인가요?”

거침없이 회의실 문을 열며 마리 퀴리가 물었다.

회의실 안에는 이미 와 있는 수많은 노소 과학자들이 담소인지 논쟁인지 모를 이야기를 열심히 나누고 있었다. 이미 바닥에 굴러다니는, 끄적인 수식으로 까맣게 변하다시피 한 종잇장 여럿은, 답이 ‘둘 다’임을 암시하고 있었다.

뉴질랜드 출신으로 영국에서 연구에 매진하던 어니스트 러더포드(Ernest Rutherford)와 그의 조교로 따라온 덴마크인 닐스 보어(Niels Bohr), 자칫 전쟁에 동원될 뻔하였다가 겨우 멎은 싸움 덕에 이 자리에 마음 편히 올 수 있던 독일인 오토 한(Otto Hahn) 등등 화려한 인물들이 이 자리에 있었는데, 김가진은 알더라도 정확히 무엇하는 사람인지는 잘 모를 것이었다.

그러나 자리 말석에서 그 보어와 열심히 논쟁 벌이고 있는, 전쟁으로 인해 베를린행 대신 아직도 취리히에 남아 있다가 이 자리에 오게 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한 사람은 퀴리 부부에게 이야기 들은 덕에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좌중을 슥 흝는 김가진만큼이나, 이 과학자들도 암만 보아도 저들 일원은 아닌 듯한 이 동양인 노인에게 관심을 표했기에 절로 대화가 멈췄다.

“사실 이것은 저희도 가설이라 하기에조차 민망한, 한 가지 가능성으로 아직 검토하고 있는 안입니다만... 실현된다면 반드시 전인류의 최대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는 기술이기 때문에 이 자리에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여전히 이론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대신 모든 낱말을 외운 – 공안서 총관이라면 그 정도의 정성은 있어야 했다 – 김가진이 그 ‘기술’의 내용을 털어놓았다.

지금의 과학 수준으로는 아직 상상, 그것도 공상의 영역에 있을 수밖에 없지만, 조만간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 여럿과 그들의 천재적 후인들에 의해 현실로 끄집어내질, 그리고 중간 과정은 몰라도 결과물에 대해서는 귀남조차 너무나 잘 알던 그것.

“... 이른바 원자폭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 *** ---

원 역사의 인도는 작중에서와 달리 1차대전 수행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특히 작중에서는 열리지 않은 메소포타미아 전선에서의 전쟁 수행에 인도에서 징집된 군대는 큰 역할을 수행했지요. 프랑스만큼은 아니어도 상당히 인력이 소모되고, 인도에 더욱 의지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눈앞에 다가오자, 영국은 인도에 더욱 강경한 통제조치를 가하는 동시에 인도 엘리트들을 정책결정 과정에 조금씩 포함시키게 됩니다.

인도, 정확히는 영국 통치하에 (사상 최초로) 하나로 묶인 ‘인도 제국’이 베르사유 조약 서명국이 되고 국제연맹 초기 창립에도 참여하게 된 것은 그 결과 중 하나였습니다. 이것이 전례가 되어, 아일랜드, 이집트 등 주권이 없거나 불완전한 영국의 식민지들이 국제연맹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영국 밖에서는 국제연맹에서의 발언권 확보를 위한 꼼수로 인식되었지만, 실제로는 식민지 엘리트를 회유하고, 약화된 영국의 영향력을 감안하여 일정 부분 타협하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었습니다. 작중에서는 인도가 전쟁에 기여한 것 이상으로 영국의 발목을 잡았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원 역사에서와 비슷한 딜레마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20세기 초중반의 쟁쟁한 물리학자 및 화학자들이 참여했던 것으로 유명한 솔베이 회의는, 벨기에의 화학자이자 사업가, 박애주의자였던 에른스트 솔베이의 통큰 기부로 시작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을 딴 이 회의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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