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사람을 노래하소서 (3)
정 밭을 갈지 않을 것이라면 사람의 피와 살이나 듬뿍 달라고 요구하는 듯한 무인지대의 땅 위로 사람이 쉴 새 없이 오갔다.
상부로부터의 지시는, 그 틈을 타 상대가 허튼수작 부릴지도 모르니 경계를 더욱 철통같이 하라는 것이었지만, 일선에서 지켜질 리가 없었다.
서툴거나 능숙한 프랑스어로 자리나 사람 찾는 소리가 분주하게 들려와, 전선에 조금은 활기가 돌아오는 듯했다. 야전병원 설치하기 좋은, 적당히 넓으면서도 안전한 평지를 찾고, 물자 쌓아둘 만한 오가기 편한 곳이 있는지 묻고... (몇몇은 비행장을 거론하던 것 같았는데, 아마 착각일 것이다.)
그렇게 부지런히 오가는 아시아인들 사이에,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이 있으니 이 작업을 감시하는 책임을 맡은 제4혼성티라이외르 연대장 조르주 피카르(Georges Picquart)가 하나요, 잠시 최익현이 저들끼리 무어라 이야기 나누러 간 사이 짬을 낸 총리 조르주 클레망소가 다른 하나였다.
“‘불행이 변하면 행운이 된다’더니, 여기서 이렇게 자네 같은 사람을 만날 줄은 몰랐네.”
“그렇습니까.”
처음 계획에서 다소 틀어지기는 하였지만, 어쨌든 전선에서 최익현 일행을 맞이하여 함께 파리로 돌아간다는 클레망소의 일정은 그럭저럭 끝나가고 있었다.
당초에 영국군 쪽으로 이 ‘붉은 십자군’이 향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클레망소는 상당한 아쉬움을 느꼈다. 프랑스군과 영국군 담당구역 경계를 지키는 것은 티라이외르, 그것도 상당히 소모된 튀니지 티라이외르 연대에 세네갈 대대를 밀어넣어 급조한 ‘혼성’ 연대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예상보다 길고 참혹한 전쟁에 프랑스가 지쳤다지만, 그처럼 규율 없는 무리가 프랑스 대육군의 첫인상이 된다니, 어찌 아쉽지 않겠는가. (물론 ‘무슈 최’ 앞에서 그런 소리 했다가는, 1871년도 파리에 진입하던 공화국군, 그것도 당신네들 제3공화국 대통령 될 사람이 지휘하던 그 군대보다는 낫다는 매서운 쏘아붙임을 당할 것이다.)
그랬는데, 이런 뜻밖의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
“저들 일행 맞이할 곳이 이쪽으로 옮겨졌다고 보고를 받았을 때, 일대를 담당하는 부대와 지휘관에 대해서도 함께 보고를 받았다네. 그랬는데... 언뜻 보아도 자네의 약력이 눈에 드러나더군.”
“이미 끝난 일입니다. 후회는 없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맡은 일을 정직하게 수행하였을 뿐인데, 외려 좌천당해 중령 자리를 거의 스무 해 동안 지키고 있다니, 그리고 그것도 어디 후방의 참모부서가 아니라 전방에서 이런... 부대를 이끌고 있다니, 옳지 않은 일일세.”
기수로 보나, 이전 보직으로 보나 지금쯤 적어도 별 한둘은 달고 있어야 할 사람이 어째서 고작 티라이외르 부대나 지휘하고 있는가 – 이 빌어먹을 전쟁만 아니었더라면 본토 땅을 밟지 못했을 것이다 - 했더니, 알고 보니 그 옛날 드레퓌스 사건 때 방첩대의 독일 간첩을 색출하였던 그 사람이라지 않는가.
다들 드레퓌스 대위 본인의 거취에만 신경이 팔려 있는 사이, 알게모르게 좌천되었고, 그렇게 여론의 관심 뒤편으로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클레망소 본인부터가 어떻게 하면 그 시국을 이용해 파나마 스캔들로 생긴 도덕적 상흔을 어떻게 지워볼 수 있을지만 고민하고 있었으니, 항상 새로운 이슈를 갈망하는 여론은 어떻겠는가.
“각하, 제 업무를 다한 것에 정부를 대표하여 칭찬해주시는 것은 항상 감사한 일이지만, 당면한 업무가 적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논의를 하는 것은 다소 부적절하다고 지적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맞는 말일세. 허나 지금 저기 쌓이는 쌀포대보다 더 큰 문제가 우리 후방에 쌓이고 있으니, 우선순위를 잘 따져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더 큰 문제라 하시면...”
“패배주의. 그것이 후방을 좀먹고 있네. 이대로라면 전선으로도 번지겠지.”
알자스-로렌을 탈환할 때만 하더라도 ‘거룩한 단결(Union sacrée)’에 반대하는 이는, 그 전에도 계속 전쟁에 반대해온 장 조레스(Jean Jaurès) 같은 몇몇 사회주의자들 뿐이었다. 그러나 인명피해 집계가 공개되기 시작하고, 전선으로부터의 소식을 전해받은 가정들이 늘어나면서,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성급히 검열을 도입하였지만, 처음부터 무소식이었다면 모를까 이미 한 차례 전해진 편지가 그 다음부터는 먹줄 죽죽 그어진 채로 돌아오니 뒷말 아니 나올 수 없었다. 먹줄의 정체를 묻는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전사통지서가 전해질 때부터는, 조레스를 필두로 협상, 적어도 타국 중재에 나서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또한 개전과 동시에 입대한 젊은이들 상당수는, 그 열정이 환멸로 변한지 오래였으며, 그 뒤에 들어간 이들은 그마저도 부족할 터. 저 식민지에서나 일어난다는 집단 항명이 본토에서 일어날 위험도 군부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던 차였다.
그때, 하늘에 비행선이 나타났다.
파리지앵들 가운데 ‘독일의 친구들’이 있다는, 비행선이 흩뿌린 전단의 내용은 언론의 자유를 일시적으로 제한할 명분을 제공해주었다. 그로 인한 혼란과 불만이 바로 카이저가 노린 바이겠지만, 이미 일어난 일이라면 최대한 선용해야 하는 시국이지 않던가.
“그러나 우리 프랑스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그런 방책은 그리 오래 갈 수 없고, 사실 바람직하지도 않지. 탄압과 검열 대신, 최종적인 승리를 이끌어내기 위해 마지막까지 온 힘을 다하도록 감투정신을 고취하는 것만이 답일세.”
“그래서 제가 필요하다는 말씀이시로군요.”
“그렇지. 우리에게는 영웅이 필요하네. 지금 메츠에 있는 드레퓌스 대령처럼, 우리가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모두에게 알려줄 그럴 영웅.”
그리고 그 영웅은, 고작 티라이외르 깜둥이들을 지휘하는 것 이상으로 훨씬 ‘영예로운’ 보직을 맡아야 하리라.
“이 자리에서는 할 수 없는 일입니까?”
“미안하지만, 그렇다네. 주변에 듣는 귀가 많으니 여기서 거론하기는 무엇하지만...”
지금까지 프랑스가 내세워 온 – 그리고 몇몇 나라에게 강요하기도 한 - ‘백인의 짐’ 타령을 진지하게 믿는 듯한 이 군인 앞에서, 클레망소는 현실을 말하지 않기로 했다.
반면 피카르는 그의 조국 프랑스가 지금까지 내세워온 문명의 가치를 믿었다.
튀니지와 세네갈 출신으로 이루어진 그의 부대원들에게도, 그는 그렇게 말해왔다. 비록 약간의 불합리는 있을지언정, 이 전쟁에서 옳은 쪽은 자신과 그들의 조국 프랑스임을. 적군이 민족자결을 말한다고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이름만 그럴듯한 새로운 예속일 것이라고.
그에 반해 조국을 위한 헌신은 어떻게든 보답을 받을 것이었다. 그 옛날 로마군도 복무를 마친 속주민에게는 시민권을 주지 않았던가.
그러나 이 전쟁이 프랑스가 식민지를 해방시키는 것으로 끝나는 가능성은, 에펠탑 위에 검은 독수리 삼색기가 휘날리는 경우뿐일 터였다. 피카르는 애써 알지 않으려 노력하고, 클레망소는 어쩔 수 없이 직시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어쨌든, 자네도 그때 그런 일만 없었다면, 잘하면 지금쯤 군단장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았겠는가? 좌우지간, 재고해보기를 바라네. 내 다시 말하지만, 우리의 조국과 대육군에는 영웅이 필요해.”
“예, 각하. 숙고 후 답변드리겠습니다.”
결국 연대장 나부랭이에게 무안만 당하고 돌아가는 클레망소의 뒤통수를 보며 피카르 중령이 고민에 빠져 있는데, 짐 나르던 젊은 아시아인 하나가 유창한 프랑스어로 말을 걸어왔다.
“무슨 어려운 일이라도 있으신지요? 저희 쪽에서 도울 수 있다면 방법을 알아보겠습니다.”
인천부에서 공부하다 십자군 따라온 대남 젊은이 완생공(阮生恭)이었다.
“사적인 일이니 마음에 담아두지 말게.”
심란한 마음으로 인하여, 저만큼 프랑스 말을 잘 한다면 반드시 듣기도 잘할 것이라는 데는 생각이 미치지 않았다.
구주에서 서로 열심히 싸운다고 하지만, 그들 먹여살리고자 추산해보니 고작해야 인구 수가 중원보다도 못하였다. 정말 냉정하게 말한다면, 얽혀들어간 사람의 수로만 따졌을 때 청국 함풍·도광 연간의 동란만도 못하지 않은가.
그리고 그때 숱하게 굶어죽기는 하였지만 어쨌든 멀쩡한 땅을 최대한 갈아가며 중원 사람들은 살아남았다. 그때에 비해 정세 평온함은 말할 것도 없으며, 더구나 조선 땅에서 만들다가 요새는 근지(近地)에서도 꽤 괜찮게 뽑아내는 강철 농기구가 있고, 허황된 풍문에 따르면 바람을 붙잡아 만든다고도 하는 그 조선 땅의 ‘비료’의 쓰임새 또한 무궁하니, 설령 구주 전역이 농사를 전폐한다 한들 중원의 곳간 헐면 한 해는 족히 먹여살릴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더불어, 이만하면 도쿠가와 사람들이 매년 오사카 향해 절이라도 해야 한다는 말 나올 만큼 소출 늘어난 일본 관동 평야, 새롭게 곡창이 된 동삼성과 북해도 등을 따지면, 거기에 다시 몇 달을 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호기로운 전망을 제쳐두고 냉정하게 바라보면, 아무리 지금은 그 놀라운 연설의 효과를 보고 있다지만 그 열기가 식은 뒤에는 조청일 삼국의 재정이 버티기 어려울 것이었다.
선두에 선 이들은 열의 넘쳐 자원한 자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이대로 몇 해가 지난다면 그들 또한 교대해야 하니, 결국 삯을 주고 사람을 부려야 할 테다. 또한 직접 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대신 곡식을 보내거나 금은을 보내오고 있었는데, 그 또한 한계가 있을 터.
“처음 그 땅에 우리 창의단 당도할 때 뭇 양인들이 크게 놀라고 부끄럽게 여기기는 하였으나, 아직까지는 그뿐이라 합니다.”
최익현이 손수 이끈 제1진이 법국에 도달하고, 이어서 2진이 법국 거쳐 남쪽 이태리 접경까지 나아갔으며, 덕국에 남아 새로 세워진 파란국 통해 아라사에서 넘어오는 양곡 분배를 맡을 3진, 오지리로 간 4진 등등. 모두가 그 자리에 속속들이 도착하고 있었다.
“허어. 효험이 없던 것이오?”
“사사로이 여기기로는, 제방이 흔들려 금은 갔지만 아직 물이 새어나오지는 않는 형국인 듯합니다.”
그러나 최익현이 그가 함께 데려간 빼어난 젊은이들 - 안창호, 여운형, 조소앙(趙素昻), 김규식(金奎植) 등. 후에 개화당으로 오도록 최대한 포섭해볼 것을 지시해둔 김옥균이었다 – 의 보고를 종합하여 올리는 장계를 보면, 그런 김옥균의 분석도 어쩌면 현실보다는 희망에 가깝다고 냉정하게 평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의 세대에서 누구보다 저 양인 마음 가장 잘 안다고 자부하는 김옥균은, 반드시 큰 울림이 있었을 것이라고 직감하고 있었다.
단군이 유대인의 후손이라는 장성공 오배 말년의 헛소리나 – 대개는 노망의 산물로 여겨, 점잖지 못한 소화(笑話)의 소재로 삼았다 – 성상 전하께서 잠저에 계실 적 천주교를 받아들이셨다는 정동 뒷골목의 은밀하고도 무엄한 풍문이 사실이 아닌 이상, 최익현이 무슨 깊은 뜻을 가지고서 십자 깃발을 내걸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유럽인이, 사악한 사라센(Saracen)들이 아닌 그들 자신으로부터 그들을 구하기 위해 동방에서 온 금세의 ‘프레스터 존’들을 보고서 마음 한구석 움직이지 않겠는가?
“어제 덕국 대사가 감사를 표하면서, 적국인 법국으로 향하는 양곡도 절대 가로막지 않겠노라 단언하였는데, 이것이 혹시 마음 변하는 징조는 아닌지 모르겠소.”
비단 덕국뿐 아니라 영국과 법국, 오지리국 등등도 역시 비슷하게 협력을 표명하였다. 적어도 전선에 나간 여러 아주 사람들이 필요시 각국 후방 누비며 물자를 구하거나 사람 찾을 수 있게끔 협조하는 것은 다들 승낙하였다.
당장 꽤 많이 건너간 예자선 차량이나 비행기의 부속은 현지에서 구하는 것이 더 편할 것이요, 넘어간 의생들의 자질이 꼭 훌륭하지만은 못하니 때로는 급한 환자 태우고 명의 찾아 달려가야 하는 경우도 있을 터였다. 여러 약제 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당장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중재를 제안했더니 여전히 난색들 표하지 않았던가.
“송구하오나, 그보다는 그저 그들이 싸워 이기는데 도움 되리라 여기기에 그리 흔쾌히 승낙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각국의 민심과는 별도로, 그 나라들의 군부는 지금쯤 창의단의 도움까지 산정하여 새롭게 군략을 짜고 있을 것이니, 아마 그 발로일 것입니다. ”
덕국 신임 원수가 얼마 전 공표했다는 ‘힌덴부르크 계획(Hindenburg-Programm)’이 그런 군략의 하나였다. 법국과 영국도 그리 다르지는 않을 테다.
“우선 지엽이라 할 만한 소소한 계책들은 조금씩 베풀고 있으나, 이로는 대공(大功) 세우기에 족하지 않으니, 반드시 그 다음 수 쓸 때를 기다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곡식이 들어오는 만큼 농사에 투입되는 인력을 공업에 투입할 수 있고, 그 결과 병기창에서 더 많은 화포가 나온다면, 나날이 줄어드는 병력을 화력으로 메울 수 있을 것이었다.
또한 군 의료인력이 조청일 삼국과 아주 전역에서 찾아오는 만큼 기존의 인력에게는 총 쥐어주고 전방으로 내몰 수 있는 것이라.
그 ‘소소한 계책’이란, 정강사에서 스스로 내놓은 것도, 바깥에서 구한 것도 있었는데, 모두 그 자체로는 난을 진압하기 부족하지만 적어도 불길 번지는 데 훼방은 놓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예컨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졸지에 그가 하던 연구를 내려놓고 이 일에 말려들게 된 격치물성청의 하임 바이츠만이 동지중해 전역을 누비며 벌이고 있는 공작이 있었다. 재조선 시온주의자들을 대표해 이집트와 시리아 사이 팔레스타인에 ‘레반트의 벨기에’를 세우는 방안을 들고 갔는데, 아직 호응이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물밑 협상이 꽤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어느 한쪽도 레반트(지중해 동안 일대)나 메소포타미아에서 무언가 꾸미기에는 힘이 달리고, 그렇다고 서로 믿을 만한 사이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니, 차라리 유대인 공동체를 그 사이 완충지대에 두어 서로 탐내지 않게끔 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제안이었다.
차라리 전후에 그 땅을 직접 삼키면 될 영국은 말할 것도 없고, 아무리 세속주의를 내세운다지만 알 쿠드스(예루살렘)를 유대인들에게 고스란히 넘겨주어 논란 만들 생각은 없던 코스탄티니예의 청년들도 현재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평화로운’ 논의가 이루어지는 상황 자체가 양쪽에 모두 유리하였기에 제자리걸음일지언정 대화가 이어지고 있던 것이다.
한편, 서부전선에서는 인력과 물자를 옮겨온다는 명목으로 잘 준비되던 공세가 ‘X자 대신 붉은 십자 표시를 당하는(red-crossed)’ 일이 종종 일어나고 있었다. 위험한 상황을 막기 위해 적십자를 칠한 비행기가 하늘을 맴도는 동안, 무인지대의 좁다란 안전통로는 양쪽을 오가는 사람으로 붐볐다.
지휘관 입장에서는 분통 터지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그 상황에서 공격을 감행했다가 넘어오는 인력과 물자가 끊기는 사태라도 벌어지면, 외교적 뒷감당 이전에 당장 굶주림의 재림을 두려워하는 병사들로부터의 안위를 걱정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어느 정도의 선은 지키며 벌어지다 보니, 이런 훼방도 거시적으로 보면 하루에 유럽 전역에서 이만 명 죽어나갈 것을 일만팔천명으로 줄이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므로 이제 ‘소소하지 않은’ 다음 수를 연환계(連環計) 모양새로 쓸 때가 되었는데... 이 또한 비록 현지에서 최익현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다소 시일이 걸릴 것이었다.
“그리 하시오. 대시(待時) 외에 다른 방책이 또 있다면 좋으련만...”
저의 말 한 번에 아주 전역이 요동치는 것을 보면서, 어쩌면 이번에는 무언가 바로 이루어지지 않을까 내심 여기던 귀남이었기에, 그 말에 약간의 실망이 실렸다. 놓치지 않은 김옥균이 나름대로 위로하였다.
“삼가 아뢰건대, 성려를 거두어주시옵소서. 구주의 상잔하는 나라들이 부끄럽게 여길지언정 서로 무너뜨려 그나마 흘린 피 벌충하려는 욕심을 버리지 않고 있으니, 이는 상정(常情)입니다. 나랏일 맡아보는 이가 저들 나라에 이득되는 것 얻고자 무운(武運)에 기대려는 것을 어찌 구짖거나 만류하겠습니까?”
결국 인의조차 이해와 손익을 완전히 초월할 수는 없는 법.
정강사에서 고심한바 구주 나라 간의 이해가 이처럼 맞물린 이상, 어느 한쪽이 먼저 물러날 수는 없을 것이었다.
“신 또한 남은 이들과 함께, 계책 마련하기를 게을리하지 않겠나이다.”
그 적십자 울림이 대서양을 넘어 미국에까지 전해졌을 가능성을 문득 셈해보며 김옥균이 말했다.
유럽에서 대서양을 넘어 미국 여론을 강타한 ‘붉은 십자군’ 사진은 워싱턴 D.C. 조야의 사람들로 하여금 만감 교차하게 하였다.
대부분은 ‘언덕 위의 도성’ 미국 대신 저 동양인들이 십자가를 들고 평화의 사절로서 유럽까지 나아왔다는 사실에 은근한, 혹은 노골적인 자격지심을 품었는데, 3선 도전에 대해 모호한 태도로 둘러대는 것도 슬슬 신물이 나던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솔직한 반응은 이러하였다.
“저 깃발을 들고 선두에 서는 것은 나였어야 했네.”
너무나 솔직한 발언이었음을 한 박자 늦게 깨달은 루스벨트가 급히 수습했다. 친우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필리핀에서 함께 지내면서 가장 가까운 벗이 되었다- 앞이었기에 망정이지, 만일 주변에 기자가 하나라도 있었다면 정치적 파장이 적지 않았을 것이었다.
“아, 그러니까, 어디까지나 미국인들의 선의와 도덕의 첨병으로서 말이지.”
“굳이 변명할 필요 없네.”
“고마우이.”
그 전 해군성에 있을 때는 태프트를 배불뚝이 호인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필리핀에서 같이 지내보니 저와 죽이 잘 맞는, 그리고 야심까지도 꽤 닮은 사람이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연임에 성공한 뒤, 전쟁성 장관으로 워싱턴 D.C.에 돌아온 태프트였다. 물론 말이 전쟁성 장관이지, 실제로는 그의 위에 있는 대통령처럼 모든 일에 기웃거리면서 루스벨트가 위임하는 일이라면 모두 맡아보고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연방대법원에 자리 하나쯤 얻으면 족하다 여기던 사람에게 슬그머니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물론, 그런 야심을 뒷받침할 수완까지는 루스벨트 본인에게는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그와 다른 인사들의 중론이었기에, 아직까지는 그리 크게 경계하고 있지는 않았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미국이 세계정치의 전면에 나설 기회야. 나는 그것을 이끈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고 싶네. 도와주게. 그러면 자네에게도 한 자리 알아봐줌세.”
“웅변조로 구슬리는 대신 직설적으로 나오는 걸 보니, 차마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겠군. 기대하고 있네.”
“그 기대에 맞길 빌지. 요새 암암리에 나도는 금융지원 말일세...”
전쟁이 3년차에 접어들면서, 참전국들은 공통적으로 한 가지 문제에 부딪혔다.
돈이 없었다.
총알은 납이라지만, 그 납을 총알로 만드는 것은 금이었다. (납을 위해 금을 쓴다니, 옛날의 연금술사들이 들으면 통곡할 일이었다.)
누구보다 앞장서서 전비를 지출해야 했던 영국마저도, 월가의 은행에서 급히 변통하는 것을 넘어 이제는 그 열 배에 달하는 규모의 재정지원을 요청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하던가.
액수도 액수지만, 민간의 자발적인 거래와 정부 간 합의에 따른 거래는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나고 있었다.
“... 그런 여론에 은근슬쩍 편승하면서, 또 부추기고 있는 사람이 있다지.”
“거 누군지 궁금하군그래.”
“성이 T 자로 시작하고, 유럽 강대국의 제국주의를 싫어한다던데...”
“마크 트웨인 선생의 부고가 또 과장되었다던가?”
아직 악의까지는 드러내지 않고 있지만, 언제고 그렇게 변할 수 있을 법한 눈빛을 서로 주고받던 중,
“그리고 내 개인적인 소식통에 따르면, 지금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 앉아 미합중국 대통령과 독대하고 있다더군.”
“흐흐, 맞네. 맞아.”
태프트가 먼저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곧 다시 진지하게 말했다.
“솔직히 자네의 3선은 과욕이라고 생각하고 있네. 그러나 그와는 별개로, 이번 일은 좌시해서는 안 돼. 차라리 유럽 국가들끼리 순전히 저들의 그 은밀한 동맹이니 협상이니 꾀하다가 발이 엉켜서 공멸의 길로 간다면 모를까, 이 전쟁은 훨씬 큰일을 걸고 넘어졌으니.”
“뭐, 대충 무슨 가락인지는 나도 알고 있네. 그래도 자네가 저 윌슨 교수나 민주당 사람들과 동조할 줄은 몰랐는데.”
“도덕이 아니라, 이익의 문제잖은가. 잘못하면 우리 미국이 진출할 시장을 그대로 그 원 주인에게 묶어두기 위해 국민의 혈세를 흩뿌리는 일이 될 수도 있어. 반대로 현명하게 처신한다면, 구대륙 유럽의 그 욕심 많은 손아귀로부터 유망한 시장들을 모조리 떼어내고, 상처뿐인 독일 대신 우리가 인도양과 지중해까지 섭렵할 수 있겠지.
자네가 여기서 잘못된 선택을 해서 공화당 지지율까지 떨어뜨리는 일은 좌시할 수 없지 않겠나?”
“뭐, 어쨌든 잘 되었지.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 계획을 맡기에는 자네가 적임자일 테니.
내 또 다른 친구, 고균이 보내온 조선 정부의 비공식 제안일세.”
종이 한 장에 간략히 적혔지만, 위에는 떡하니 ‘TOP SECRET’이 적힌, 엄연한 공문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미국을 끌어들여 유럽 나라들이 전쟁 계속하려는 것을 막아보려던 정도였는데, 그 얘기를 들은 귀남이 미국 소리가 나오자마자 크게 기뻐하며 더욱 욕심을 내보라 촉구하였고, 그 결과가 이러하였다.
“영국을 지원하면 얻는 게 없고, 독일을 지원하면 뒷감당이 어려울 수 있으니, 차라리 둘 다 돕는 시늉이라도 한다...”
“그렇지. 저 십자군에 우선 한 발짝 걸치는 것으로 시작하고. 그 사이에 전쟁을 끝내는 방편과, 끝낸 뒤의 방책을 준비해야지. 원한다면, 계획 이름에 자네 이름을 붙여 주지.”
“‘태프트 플랜’이라! 하하. 꽤 나쁘지 않군.”
이번에는 두 사람 모두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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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역사보다 훨씬 일찍 끝난 드레퓌스 사건의 피해자, 조르주 피카르 중령이 다시 등장했습니다. 본래는 드레퓌스의 복권과 더불어 함께 복권되었고, 클레망소 내각의 전쟁부 장관까지 역임하였으며 이후 1차대전 직전 사고사할 때까지 군단장을 역임했지만, 작중에서는 그럴 일 없이 한직을 전전하고 있습니다.
그가 지휘를 맡은 티라이외르는 본디 경보병을 의미하는데, 식민지에서 징병한 부대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많이 쓰였습니다. 튀니지 외에도 세네갈, 베트남 등에서 이런 ‘티라이외르’가 창설되었고, 1차대전 시기에는 주로 세네갈과 튀니지에서 많은 수가 징병되었습니다. 전쟁이 진행되면서 점차 그 수도 늘어났고, 작중에 등장하는 혼성 티라이외르 편제(서로 다른 식민지 출신 대대끼리 묶은 연대)도 등장하게 됩니다.
작중에서 피카르의 옆에 있던 베트남인 완생공은 원 역사에서는 독립과 혁명운동에 투신하여 수없이 많은 가명을 썼는데, 그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호지명(胡志明), 즉 호치민이 되겠습니다.
‘거룩한 단결’이란, 프랑스를 침략하는 세력으로부터 조국을 방어한다는 이른바 ‘방어적 애국심’에 입각한 거국적 합의를 지칭하는 표현입니다. 물론 그 ‘단결’의 함의에 대해서는 좌우를 막론하고 생각이 갈렸고, 전쟁의 사회적 비용이 가시화되면서 균열의 조짐도 조금씩 나타났지요. 작중에서는 프랑스가 예방적 성격이라지만 선공을 가한 상태이기 때문에, 그 단결의 정도도 원 역사만큼 공고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힌덴부르크 프로그램은 원 역사에서도 전쟁 3년차인 1916년에 도입된 프로그램입니다. 독일 사회의 통제권이 사실상 군부에 이양되면서, 독일이 총력전에 돌입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요. 독일의 모든 생산력을 전시경제를 위해 쥐어짜고, 이를 위해 모든 성인 남성에게 노동의 의무를 부과하는 한편 – 본디 여성과 아동까지 포함되었으나 정부에 의해 거절되었습니다 – 전선에 나가 있는 숙련공들을 다시 후방으로 돌리고 이를 통해 무기의 생산량을 곱절로 늘린다는 것이 골자였습니다.
이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고, 독일이 전쟁 종결 직전까지도 이런저런 신무기를 투입하고 공세를 펼칠 수 있게끔 하는 한 가지 원동력이 되었지만, 독일이 이미 처해 있던 어려운 상황을 돌파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더구나 내부적으로도 많은 모순과 시행착오가 있었습니다. 그간 축적한 자본으로 미국에서 물자를 들여올 수 있던 영국과, 유럽 최강의 농업대국 프랑스는 아주 약간 상황이 나았지만, 그뿐이었습니다.
한편, 윌리엄 매킨리 미 대통령이 1901년 암살당하지 않고 정상적으로 임기를 종료하면서, 이후 미국 대선의 구도가 상당히 바뀌게 되었습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실제로도 3선에 대한 야심을 품고 있었고, 주변에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점치고 있었습니다. 특히 매킨리의 암살로 대통령직을 승계받으면서 첫 대통령 임기를 마쳤기 때문에, 억지를 조금 부리면 ‘두 번째 선거’로 3선에 도전하는 것이 완전히 잘못되지 않았다고 우길 여지가 있었지요.
원 역사에서는 재선 직후 (다분히 돌발적으로) 3선 불출마를 선언한 루스벨트는, 대신 자신의 정치적 후계자로 친우였던 태프트를 공공연히 후원하게 됩니다. 그러나 태프트는 루스벨트와 친한 만큼 그와 닮은 야심을 가지고 있었고, 1908년 대선에서 승리하자 루스벨트의 다분히 진보적인 정책과 인선을 갈아엎기 시작합니다.
결국 둘 사이는 완전히 갈라지게 되고, 1912년 대선에서 루스벨트는 3선 불출마 선언을 번복하고 경선에 뛰어듭니다. 그러나 작중에서는 그럴 일 없이 무난하게 1912년 초 시점까지 왔고, 원래 있던 야심은 어디 가지 않았기 때문에, 한 세대 뒤에 그의 꿈을 이루게 된 FDR과 비슷하게 혼란한 국제정세를 빌미로 3선을 노리는 상황입니다.
원 역사의 1912년 대선에서 루스벨트는 3선 불출마 선언을 번복했고, 경선에서 밀려나자 아예 제3당을 창당해버립니다. 그 결과 민주당의 우드로 윌슨이 낙승을 거두게 되지요.
작중에 묘사된 금융 문제는 원 역사의 1차대전에서도 등장했고, 이때 미국은 영국을 지원하면서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큰 힘을 보태주었습니다. 그러나 작중에서는 독일이 반식민지 기조를 내세우면서 미국이 한 번쯤 다시 생각할 이유가 생겼고, 더구나 그런 급한 상황에서 영국에 쏠쏠한 도움이 된 남아프리카의 금광도 상당 부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