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종, 군밤의 왕-295화 (295/320)

97. 빗자루 별 (2)

가뜩이나 그의 이름 붙은 코일처럼 어디로 번개 튀길지 모르는 니콜라 테슬라인데, 그런 작자가 화약고 발칸으로 가게 되면 큰불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보장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미 합스부르크 제위의 후계자가 친히 테슬라를 사라예보로 초대하였고, 겉으로 드러나기로는 개인 대 개인의 사안이었으므로, 뒤늦게 영국에서도 깨달은바 더 문제를 제기하면 저들만 억지부리는 꼴이었다.

그러나 이미 쏟아진 물이라. 수습을 위해서라도 더욱 조선의 동맹 의무 이행을 확약받고자 물밑에서 협상을 시작하였는데, 영국은 조선과는 동맹의 동맹이라는 다소 모호한 관계인 데다가, 조선과의 협상으로 청과 일본까지 한데 발을 묶어두려는 야심찬 목표를 가지고서 움직이다 보니 그 협상은 영 지지부진하였다.

그러던 와중 귀남에게 조던 영국대사가 다시 접견을 청하였는데, 들은 귀남 답하기를 아직 남은 봄기운 만끽할 겸 향원정(香遠亭)으로 불러오라 하였다.

“근래 고생이 많다 들었소.”

“감사합니다, 전하.”

혹시나 지난번 본국의 지령에 따라 급히 접견 청한 것을 여전히 마음에 두고 있을까 걱정하였는데, 다행히 본래의 온순한 성품을 과하게 자극하지는 않은 듯하여 조던 대사는 은근히 한숨을 내쉬었다.

“실은, 일전에 테슬라 씨의 사직 여부를 두고 결례를 범한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려, 사과드리고자 찾아왔습니다.”

예정에 없던 접견 급히 잡았다가 전쟁 일어난 사례가 불과 사십년 전에 있었으니 (엠스 전보 사건) 허황된 걱정은 아니었다.

“허어, 사람끼리 부딪히다 보면 간혹 섭한 일을 서로 범하기도 하는 법 아니오이까.”

“그러나 예의지방 조선국을 대함에 어찌 가볍게 넘기겠습니까. 이에 약소하게나마 예물로써 배려에 보답코자 합니다.”

“오, 무엇이오?”

“과실주를 즐기신다 들었습니다.”

사실 술이라면 잘은 못하여도 또 싫어하지는 않는 귀남이었다. 옛날에야 기쁘든 슬프든 소주뿐이었건만, 지금은 아내 눈치로 인해 자주는 못 마실지언정 어지간히 다양한 술맛은 고루 볼 수 있으니 임금 노릇 호의호식의 자잘한 낙이었다.

그러나 호사 암만 누린들, 의식주 모두 멋 한껏 부리고 사는 김옥균 같은 이들과는 달리 취향 원체 소탈하였으므로, 그저 이런 맛도 있구나 신기하게 여길 뿐 딱히 옥액경장(玉液瓊漿) 즐기지는 아니하였다.

다만 그렇게 진상된 것을 아들 녀석들, 특히 안양대군과 경양대군은 퍽 좋아하였으니, 외국 사절들이 올린 귀물을 아랫사람에게 고루 나누어줌은 고래로부터의 법도라 딱히 문제될 것도 없다 하였다.

그러므로 고개 끄덕였더니, 곧 궁인 둘이 조심스레 술병 하나를 들고서 이름도 어울리는 취향교(醉香橋)를 지나왔다.

“우리 양국, 그리고 나아가서는 문명의 동반자들 사이의 우의를 위하여 귀한 포도주를 전하께 진상하고자 합니다.”

“포도주라?”

“근래 기술의 발달이 아니었더라면 대양을 건너 옮겨오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프랑스에서 나온 와인이 영국 기술에 힘입어 이곳 조선까지 오게 되었으니, 상징성이 없지 않다고 감히 자평해봅니다. 1858년산 혜성 빈티지(Comet vintage) 보르도 와인입니다.”

“혜성이라. 그러고 보니 내년인가에 큰 혜성이 하나 온다고 하였는데...”

“하하, 맞습니다, 전하. 핼리 혜성이지요.”

영국인 과학자의 이름에 은근히 힘을 실으며 조던이 말했다.

“서양과 동양을 막론하고 혜성은 변화의 상징이라고 들었습니다. 당장 영국만 하여도, 해협 건너편의 상황이 여의치 않았던 1811년에 혜성이 나타나 많은 이들의 눈길을 끌었지요. 아마 지금과 같은 정세가 이어진다면, 내년에도 비슷하게 설왕설래 하겠지요.

하지만 이 혜성 빈티지처럼, 그런 소란 속에서도 지혜로운 사람은 무언가 가치있는 것을 얻을 수 있기 마련입니다.”

“그리 말하는 것을 보니, 품은 뜻이 따로 있는 모양이구려.”

혜성 어쩌고는 잘 몰라도 사람 얼굴 보기는 백 년이 넘은 귀남이었다.

“나보다는 총리나 예판이 더욱 잘 알 일이지만, 우리가 그대 나라들의 전쟁 운운하는 이야기에 과히 동조하지 않는다 하여 지금껏 수호하던 정을 버리는 것은 아니외다. 하니 혹 그대들을 암중(暗中)에 해할까 걱정하지는 마시오.”

훅 들어오는 본론에 오히려 당황하는 조던 대사였다.

“태씨의 사직을 윤허한 것도 스스로 원하였기 때문이지, 무슨 침소봉대할 것까지야 있겠소이까. 물론 그대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그 사람됨이 분방하니, 반드시 따로 사람을 붙이도록 할 것이외다.”

테슬라야 코치치 그자의 정치 구상에 어울릴 생각은 없었지만, 비엔나로부터의 소식이 전해지자 마음의 방향이 마치 그의 교류 전기와 같이 삽시간에 뒤바뀌었다.

저와 연고 있다 주장하는 연고 없는 땅이지만, 강대국의 사실상 황태자가 저를 초청하였다 하니 허영뿐 아니라 사업과 연구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응해야 하지 않겠는가.

“결례를 사과드리러 왔건만, 외려 이리 위로의 말을 듣게 되니 어찌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국왕 전하의 말씀을 들으니 응어리진 것이 모두 풀리는 듯합니다.”

조선의 국력이 근래 신장되었다 한들 어찌 대영제국에 비하겠냐만, 지금 아쉬운 것은 유사시 저들의 전선은 하나라도 줄이고, 상대의 전선은 하나라도 늘려야 하는 처지인 영국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세계를 무대로 하던 전쟁에서 항상 주도권을 쥐고 있던 영국은, 지금까지 누려왔던 주도권이 역으로 자신들의 약점이 되는 전례없는 상황에 당황하고 있었다.

독일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려던 시도는 절반의 성공만을 거두었으며, 인도에서는 몇 년 벵갈 분리의 철회에 고무된 젊은 지식인들이 뭉쳐 자치 그 이상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세계의 길목을 장악하고 모든 바다를 누비던 것을 자랑스레 여겼지만, 이제 다시 보니 그들이 장악한 것은 바로 그 길목과 바다뿐이요, 나머지 땅은 어느새 그들이 지녔던 문명을 따라잡은, 그리고 지금까지 영국이 누렸던 영화를 옆에서 지켜본 이들의 손에 아직도 남아있던 것이다.

영국의 앞날이 이처럼 불확실한 때가 드물었던 만큼, 온갖 생각과 전망, 근거없는 주장이 무성하였다.

심지어 들려오는 말로는 – 조던 그에게 전해지기로는, 이런 소문이 돈다면 반드시 극구 부인하라는 단서가 붙어서 왔다 – 내각의 어떤 얼간이가 한 말인지는 몰라도 조청일 3국이 공동으로 발주한 드레드노트급 전함의 인도를 우호적 중립 또는 그 이상을 약속받을 때까지 미루자는 제안까지 나왔다고 하니, 그 황망함과 초조함을 능히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적극적인 협조를 이끌어내려 한들, 국왕 귀남은 전쟁에 휘말려들어가 백성들이 애꿎은 생명을 잃는 일을 원치 않고, 총리 김옥균은 열강의 속셈을 꿰뚫어보고 이용하는 데 있어서는 혹시 본관이 안동이 아니라 윤돈 아니냐며 물어보아야 할 인물인지라 쉽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자 하는 바가 있습니다.”

몇 번 주저한 끝에 조던 대사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물론 우리 영국을 비롯하여 여러 나라들이 조선에 요구하는 바가 결코 가볍지 않음은 잘 알고 있습니다. 어쩌면... 불교에서 쓰는 말대로 인과응보라 할 수도 있겠지요. 한때 유럽 나라들의 이익을 위해 이곳 아시아 나라들을 마음대로 하려다가, 이제는 자칫 반대의 상황이 될지도 모르는 지경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공식 석상에서야 당연히 아직도 우리 영국이 천하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전쟁을 원한다면 싸워 이기겠다 호언하지만, 실제로는, 만일 전쟁이 일어난다면, 모든 도움이 천금과 같을 것입니다.”

아무리 언론에서 – 특히 근래 런던에서 유행한다는 ‘라디오-텔레폰’ 드라마에서 – 전쟁을 운운한다지만, 영국의 입장에서 최선은 그런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요, 차선은 전쟁은 일어나되 적국과 동맹국들만 피와 돈을 흩뿌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중의 앞에서 그런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는 법. 바로 그들의 세금 또는 젊음으로 육성한 군대였으니, 저쪽이 정 전쟁을 원한다면 우리는 물러나지 않고 오히려 한 수 따끔하게 가르쳐주겠다, 원한다면 일전도 불사하겠다 하는 식으로 대꾸할 수밖에.

“꼭 한쪽은 옳고 한쪽은 그르다 하는 것을 전하의 나라에 강요할 생각은 없고, 또 그리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품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때가 되면, 어느 한쪽의 편을 들지 않는 것이 자연스레 다른 한쪽을 편듦과 다름없게 되는 그런 지경이 당도할 것입니다.

어느 나라보다도 도덕과 평화를 사랑하는 조선국이라면 – 희망컨대 – 올바른 쪽의 편을 들을 것이라 믿습니다.”

귀남이 수십 년 전에 (주로 그가 구워주는 군밤을 먹으며 방심하던) 외국 공사들에게 듣곤 하였던 협박과 같게 보기에는, 너무나 진솔한 말이었다.

“내 기억하겠소.”

“양자택일 외에는 길이 없다는 것은 얼간이들이나 하는 소리지. 저들 보기에나 길이 둘 뿐이지, 실제로는 상하좌우 동서남북. 널린 것이 길 아닌가?”

늘 그렇듯 테슬라의 허황된 말을 듣는 김창암은 ‘예, 어련하시겠습니까.’하는 대꾸를 겨우 틀어막았다.

다행히도 사라예보의 여름 거리를 달리는 자동차에 동석한 페타르 코치치가 저의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주었다.

“선생님, 목소리가 너무 높습니다. 여기서부터는 듣는 귀가 있으니 주의해주시지요.”

어쩔 수 없이 테슬라를 놓아보낸다면, 적어도 영국과 독일 중 한쪽을 편들지는 않도록 조치를 취해달라는 영국 대사의 간곡한 요청을 귀남이 받아들였으니, 지존의 뜻 받들어 팔도 강산뿐 아니라 천하 팔방을 누비는 공안서가 명을 받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필 그 수장 김가진의 눈에 들어, 소싯적에 천하 편력하며 경험 쌓아야 비로소 나라의 동량으로 구실할 수 있다는 논리에 따라 일만 생기면 여기저기 불려다니는 김창암에게는 썩 좋은 이야기는 아니었다.

티끌만한 불만이라도 표할 것 같으면, 환갑 넘긴 김가진이 사람 좋게 픽 웃으면서 넌지시 ‘하면 내 직접 가면 되겠는가?’ 물으니, 공안서는 물론이요 저자의 어지간히 간담 튼실한 사람을 데려온들 거절하기 어려울 것이었다.

반면 코치치로 말하자면 사서 하는 고생이니, 누구를 붙잡고 하소연을 하겠는가.

그저 세르비아 나라 안팎의 세르비아인들에게는 그들 겨레가 낳은 불세출의 위인으로 여겨지는 사람이, 위인은 위인이되 나이 먹을수록 괴팍해지는 작자임을 몰라보고서 일을 키운 자신을 탓해야 할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 보러 가는 자들이 그리 속을 썩인다 이 말인가?”

“전부는 아니지만, 적어도 몇몇은 그렇습니다.”

“이름부터가 참 무엇하더니... 엥이.”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을 기다리게 할 수는 없는 법. 약조한 6월 28일을 두어 주가량 앞두고 먼저 도착한 일행이었다.

그것이 이제 겨우 나흘 뒤로 다가왔는데, 밝혀진 일정을 볼작시면 국빈 자격으로 도착하자마자 임시정부 수반 바샤기치(Safvet-beg Bašagić)를 만나고, 그 뒤에는 시내 행진 등등 각종 행사가 있었다. 테슬라의 차례는 그 다음날이었다.

그러니 이 이름도 해괴망칙한 ‘검은 손(Crna Ruka)’ 일당은 말 그대로 선수(先手)를 쳐서, 28일 당일에 무언가 일을 벌이려고 한다 하였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런...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일을 공공연히 떠들어도 된다는 말입니까?”

그나마 김창암쯤 되는 젊은 사람이었으니 망정이지, 최익현 같은 사람이 이런 역적 모의를 하는 작자들이 버젓이 횡행한다는 소리를 들었다면 어느 쪽이든 쓰러지는 사람이 나왔을 것이었다.

“물론 그자들도 비록 식견이 짧기는 해도 나름대로 꿍꿍이가 있으니, 대놓고 흉흉한 말은 하지 않지만, 우리말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듣고서 짐작할 수 있을 정도요.

이곳 ‘젊은 보스니아(Mlada Bosna)’ 회관에도 분명 그들에게 찬동하는 자들, 아니면 직접 베오그라드에서 나온 자들이 여럿 있겠지.”

“미리 어딘가에 신고할 수는 없습니까?”

“그랬다가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우리의 ‘하나된 보스니아’ 운동의 싹을 짓밟는 셈이지. 우리는 보슈냐크인도, 크로아티아인도, 세르비아인도 모두 끌어안고 가야 하오. 말로 설득하고 최대한 끌어안고 가야지. 그러려고 위험을 무릅쓰고 오늘 연설을 계획한 것이기도 하오.”

바샤기치는 인구의 절반 조금 못 미치지만 농토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무슬림 보슈나크인들을 대표하는 사람이자, 코치치와 같은 문필가이기도 했다. 이왕 독립한 김에 제대로 살기 좋은 나라 만들자는 데 있어서는 코치치와 뜻을 같이했지만, 혼자서, 그것도 세르비아인이 아니라는 치명적인 흠결이 있는 사람으로서 통합을 말하기에는 힘이 부쳤다.

특히 불평불만 가진 세르비아인 젊은이들은 이곳 젊은 보스니아회를 구심점 삼아 뭉치고 있었는데, 저들이 저 이탈리아의 카르보나리(Carbonari)처럼 한 시대의 최전열에 서겠노라 청년다운 야심 품은 자들이 대부분이겠지만, 조금 더 불순한 뜻으로 옆 세르비아의 베오그라드에서 넘어온 자들도 있을 것이었다.

물론 불순하다 하여도 그들 나름대로는 순수한 뜻이고, 보스니아 전체에도 그것이 더 이로우리라 철석같이 믿는 자들이 많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는 것이 코치치의 생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코치치는, 자신이 생각한 보스니아의 앞길을 이곳 모임에서 설파하고 지지를 구함으로써 첫발을 내딛고자 했다. 폭력에 폭력으로 대항한다면 통합이니 공존이니 하는 이상은 성립할 수 없음을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다시 얘기하지만, 조선에서라면 모를까 여기서는 효험 없을 게요. 그 작자들이 당신 말대로 대공을 해칠 음모를 꾸미고 있을까 싶어 따라왔지만...”

애초에 테슬라가 이곳 사라예보에 온 까닭은 비엔나와 부다페스트에 연줄 만들기 위함이었다. 그 연줄 끊어버리려는 자들을 단호하게 응징하기만 하면 그것으로 족할 것이다.

“해보지 않고 무어라 단언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선생께서 따라오셨으니, 찬조연설 한 번만 해 주시면, 아마 그것으로도 꽤 사람들 눈길을 끌어올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그새 도착하였군. 좌우지간 행운을 빌어주시오, 김 군.”

안에 들어가면 오가는 말을 김창암이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고 도리어 오해만 주고받을 것이라, 입구까지만 따라오고 우선 밖에서 기다리기로 하였다.

“흠흠, 우리 테슬라 선생을 잘 부탁드립니다.”

“내 걱정은 하지 말게. 나도 세르비아 사람이라네.”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묻기 전에 테슬라는 홀랑 내려버렸다. 그가 평소에 쓰지 않던 수상쩍은 지팡이 하나를 들고 내렸다는 것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우우! 꺼져라!”

“타협주의자!”

그리고 연설을 시작한지 몇 분 되지도 않아, 코치치는 호되게 당하고 있었다.

아마 자신이 희곡을 쓸 때만큼 연설이 잘 나오지는 않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지만, 바람잡이가 청중 가운데 여럿 있는 것이 훨씬 큰 이유일 테다.

“합스부르크의 주구 같으니!”

“몇 크로네(krone,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화폐) 받고서 연단에 섰나?”

물론 이럴 때를 대비하여 테슬라를 데려온 것이었다.

앞서 연설 시작하기 전, 다들 달려들어 얼굴 한 번 뵙고자 하면서, 저의 이름 한 번 기억해주면 영광일 것이라고들 하였으니, 이제 슬슬 연단에 대신 올리면 꽤 효과가 있을 것인데...

“배신자, 죽어라!”

베오그라드에서 온 청년인지, 아니면 그런 청년의 부추김을 받은 자인지는 몰라도 동포 하나가 연단 위로 뛰쳐 올라왔다. 슬슬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할 무렵.

‘지지직’ 하고 살 타는 냄새와 함께, 그자가 뒤로 풀썩 자빠졌다. 그의 동료인 듯한 이들이 바로 달려들었기에, 뒤통수가 깨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 난데없는 일을 일으킨 사람은 곧 이상한 지팡이 휘두르며 연단에 올랐다.

“아까 보았던 테슬라요.”

침묵한 좌중을 향해 저의 지팡이를 슥 들며 말했다.

“이것으로 말하자면 ‘테슬라 특제 전기적 호신장치’로, 치명적이지 않은 수준의 전류를 흘려보내 위험한 상황을 ‘평화적으로’ 해소하는 기물이외다.”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에게 무언가 그럴듯한 선물을 줄 생각을 하던 중, 찾아온 안양대군이 아무래도 유럽 땅은 흉흉하여 그 땅에 가는 아낙네들조차 권총 하나씩 들고 간다 하니, 호신에 유용한 물건을 만듦은 어떻겠느냐 하였다.

그렇게 만들고 보니 의외로 쓸모있는 것이었다. 공안서에 납품하려 하였더니 사람 괴롭게 하는 법은 벼락이나 물 외에도 (대체 물로 어떻게 사람을 괴롭게 하는지는 테슬라도 알 수 없었다) 많으니 불필요하다 하였지만, 분명 이곳 유럽에서는 흥행할 것이었다.

그러나 좌중은 그의 난데없는 상품 홍보에 냉담하였다.

“흠흠. 어쨌든, 내 하고자 하는 말인즉, 세르비아고 보스니아고, 크로아티아고 무슨 사람 죽고살고 할 것까지 있느냐 이것이외다. 당장 아까 당신네들이 그처럼 세르비아의 자랑이라 떠받들어준 이 사람도 태어나기는 크로아티아 땅에서 태어났고, 국적은 오스트리아에, 미국에, 돈벌이는 멀리 조선에서 하고 있다 이 말이오.

완전히 자의는 아니었지만 이왕 함께 섞여 살게 된 것, 짜증나고 밉지만 조금씩 참고 살 수는 없겠소? 짜증나기로 따지면 당신네들도... 아, 실언이오. 실언.”

실언은 아니요 본심이었다. 모처럼 그간 못하였던 동유럽 판로 개척을 조금 하려 하는데, 이게 무어란 말인가.

“세상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 짜증들 난 것은 알겠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마구 해치려 한다면 뭐가 되겠소?”

그때, 누군가 다시 야유하기 시작했다. 아마 그간의 정적은 (저들 여기기에는) 위인의 배신에 따른 충격으로 인한 것이었던 모양이었다.

“관광객? 대공이 관광객이라고? 성 비투스 축일에 우리 사라예보의 대로를 당당히 저들 것인양 행진하려는 자가?”

“합스부르크를 어찌 믿습니까? 보나마나 그들은 거짓 약속으로 보스니아를 삼키고, 무슬림들보다 더욱 악랄하게 우리 동포를 탄압할 것입니다!”

“옳소!”

“기만에는 진실을! 압제에는 죽음을!”

“흥, 공갈 협박도 적당히들 하시오.”

공갈이라면, 하버가 개발하려던 독가스를 보고서 고작 이런 것으로 전쟁을 하려 하느냐 코웃음쳤다는 조선 국왕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의 냉소가 연료가 되어, 비난하는 소리가 더욱 크게 일어났고, 뒷전에 선 페타르 코치치는 난처함에 어쩔 줄 몰라했다.

“공갈? 공갈이라고!”

“우리의 결의를 무시하지 마라! 외지에서 편하게만 살다 온 자가 우리의 처지를 어찌 아는가!”

바깥에서 무슨 소리인 줄도 모르고 듣던 김창암도 슬슬 들어가보아야 하나 걱정하고, 심지어 모임을 ‘단속’하러 나왔지만 실은 한통속이었기에 가만히 있던 경찰들도 어쩌면 밥값은 해야 하지 않을까 걱정하기 시작하던 무렵.

“휴... 설득하려 한 내가 바보지. 이보시오들. 흉흉한 음모는 그대들만 꾸밀 수 있는 게 아니라오. 협박이라는 건 이렇게 하는 거요.”

하는 비웃음과 함께, 테슬라는 곧장 예의 그 지팡이를 몇 번 빙빙 휘두르더니 곧장 저의 팔뚝에 가져다 댔다.

“선생님, 지금 무슨...”

그러나 이미 ‘지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테슬라는 쓰러진 뒤였다.

곧 자초지종을 알게 된 김창암은, 혹시 사고체계의 전반적인 자유분방함이 세르비아인의 특질인지를 코치치에게 물으려다, 마찬가지로 넋이 나간 듯한 그의 표정을 보고 단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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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역사에서 영국은, 1차대전 개전 직전 오스만 해군에 인도될 예정이던 전함을 압수하여 ‘애진코트(HMS Agincourt, 아쟁쿠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이는 친독과 친영으로 여론이 갈려 있던 오스만 투르크가 급격히 독일 쪽으로 기우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를 주도한 것이 중동과는 악연뿐인 윈스턴 처칠이었지요. 이를 감안하면 작중에 언급된 조청일 3국 드레드노트 전함 인계를 늦추자는 제안은 그나마 정상적이라 하겠습니다.

혜성은 많은 문명권에서 불길한 징조로 여겨졌는데, 생각보다는 자주 관측 가능한 혜성의 특성상 무언가 일이 터질 때를 전후하여 혜성 한둘쯤 지나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나폴레옹 전쟁과 관련이 있다고 알려진 1811년 혜성은 사실 그 이전이나 이후에 관측되었더라도 나폴레옹과 연결지어져 해석되었을 것입니다.

귀남옹은 1986년에 보았을 핼리 혜성은 1910년에도 근일점을 지났는데, 이때 지구가 핼리 혜성의 꼬리에 들어간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혜성 꼬리에 함유된 유독물질이 지구 대기권에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잠시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후대에 ‘근대인의 어리석음’으로 알려진 이 사건은 사실 당시에도 비과학적인 것으로 비웃음거리가 되었고, 후대에 다소 과장된 면이 있습니다.

혜성에 관한 독특한 유럽 전통 중 하나는 ‘혜성 빈티지’ 또는 혜성포도주입니다. 즉 혜성이 지나간 해의 와인은 유별나게 맛이 좋아지게 된다는 것인데, 1811년 혜성과 연계되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혜성 빈티지는 이후 유럽에서 통설로 굳어지게 됩니다. 많은 경우에는 혜성이 관측된 해 유럽 어딘가의 와인 농가는 풍작을 겪기 때문에 생긴 일이겠지만, 개중 우연의 일치로 실제로 품질 좋은 와인이 나오는 해도 있었는데, 1858년 보르도 와인은 그 중 하나라고 합니다.

니콜라 테슬라는 본인의 ‘세르비아 혈통과 크로아티아 고향’에 모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이는 오늘날에도 테슬라의 출신을 두고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가 서로 ‘가짜뉴스’를 퍼뜨린다며 비난을 주고받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발칸 반도의 민족 갈등 중 상당 부분은 종교 갈등의 측면도 가지고 있습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세르비아와는 달리 무슬림 비중이 높았고, 작중에 언급된 것처럼 이들이 기득권을 쥐고 있기도 했습니다. 사페트 벡 바샤기치는 그런 보스니아인 중 하나로, 원 역사에서는 코치치와 함께 1910년 개설된 보스니아 의회의 일원이었습니다. 다만 코치치가 의회에서 가장 극단적으로 대세르비아주의를 내세웠던 반면 바샤기치는 일정한 자치권만 보장된다면 합스부르크 지배에 협력할 수 있다는 쪽이었습니다.

1914년 사라예보 사건을 일으킨 것으로 악명 높은 ‘검은 손’은 1901년 세르비아군 내의 사조직으로 시작하여, 오브레노비치 왕조를 붕괴시키고 훗날 유고슬라비아 왕국까지 이어지는 카라조르제비치 왕조를 세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세르비아의 고토 회복과 이를 통한 범세르비아 국가의 건설을 주장했고, 1910년대 초를 거치면서 다양한 불만세력을 포섭하여 ‘단합이 아니면 죽음을’이라는 단체로 변모하게 됩니다.

그러나 ‘젊은 보스니아회’ 등 원 역사에서 검은 손과 함께하게 된 세력들은 범세르비아주의 외에도 매우 다양한 사상을 품고 있었고, 작중에서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가 바로 합스부르크 치하로 합병된 것이 아니라 엉겁결에 독립하였기 때문에 아직 사상적으로 유동적인 상태입니다.

최초의 전기충격기는 20세기 초 미국 서부에서 가축을 다루기 위해 발명되었습니다. 작중에서는 뭐든지 전기를 쓰고 보아야 직성이 풀리던 테슬라로 인해 완전히 엉뚱한 목적으로 개발되었습니다. 여담으로, 오늘날 가장 잘 알려진 전기충격기인 테이저 건도 군이나 경찰이 아니라, SF 소설의 팬이었던 NASA 직원이 먼저 개발하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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