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종, 군밤의 왕-282화 (282/320)

92. 수레바퀴 굴리기 (3)

옛글에 따르면 사람이 이상한 짓을 하면 천지 사이에도 변괴가 일어난다고 하는데, 위군자가 군자연하는 것도 그런 이상한 짓에 드는지, 영국인과 법국인이 머리 맞대고 합심하는 일이 지금 한양에서 일어나고야 말았다.

“어찌하면 좋을까요?”

“전들 알겠습니까. 본국의 방침을 기다려야지요. 둘 중 한쪽에서는 언제고 답이 오지 않겠습니까.”

명색이 조선의 동맹국인 프랑스가 이런 상황에서는 한마디 하기가 더 쉬울 듯하였기에, 자연스레 모임은 영국의 맥도널드(Claude Maxwell MacDonald) 공사가 프랑스의 랭드르 공사를 찾아오는 식으로 성립되었다.

“초조한 심정은 저희도 비슷합니다. 위안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뒤에 독일이 있는 게 틀림없다는 점에서는 동의할 수밖에 없더군요.”

프랑스의 첩보망이 영국의 그것에 비할 바는 되지 않지만, 독일 외교관과 주재무관들의 밀정 노릇이라는 것도 썩 그 수준이 높지는 못하였다.

“그렇다면 국왕 전하의 정부에서 왜 이번 사태가 확대될 가능성을 우려하는지도 잘 아시겠군요.”

“귀국에는 인도가 걸려 있는 문제지만, 저희 역시 모로코 사태와 관련이 있으니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우리 유럽 국가들이 아시아의 눈치를 보게 되다니... ‘땅을 바꾸어 생각한다(易地思之)’라는 말이 있다지만 썩 유쾌하지 않은 일이로군요.”

처음에는 영국과 프랑스 어느 쪽도 독일의 공작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아시아 국가들끼리 뭉친다 한들, 그곳에서 유럽 강대국들끼리 부딪히는 이해관계도 이제 거의 다 정리된 마당에 무슨 영향이 있겠는가?

그러나 이완용의 그 논설이 게재되자, 갑자기 시계의 태엽들이 모두 제자리에 맞물린 것처럼 가능한 최악의 미래가 여러 사람 머릿속에서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동맹을 믿었기에, 그리고 아시아인이 유럽인들이 나서서 ‘맺어준’ 동맹을 멋대로 파기하리라는 가능성을 검토한 적도 없었기에 보지 못했던 현실과 미래가 이제야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시아 국가들이 아무리 근대화된 군대를 지녔다 한들, 국력과 지리적 한계로 인해 아시아 바깥에 유의미한 영향력을 투사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이 직접 유럽에 손을 댈 필요도 없었다. 아시아의 현상(Status quo)을 타파하려 한다면, 세계를 한바탕 뒤엎고자 하는 대리인이 유럽의 심장부에 떡하니 있으니 그와 손만 잡으면 될 일. 이미 지난 베네수엘라 사태에서 독일이 중국 편을 들어준 전례도 있지 않던가.

더 답답한 것은 호의를 기대하는 것 외에 영국과 프랑스가 할 수 있는 일이 딱히 없다는 점이었다.

물론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가 손을 잡으면 극동을 제압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가능하고도 남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비용이 만만치 않으리라는 것도 불 보듯 뻔하였고, 독일이 가만 있지 않으리라는 것도 명백하였다.

함대로 봉쇄한다? 그 함대 정박할 곳을 용케 구한다 해도, 영국과 프랑스만 손해 보는 셈이었고, 조선과 일본의 기업가들로서는 오히려 쌍수 들어 환영할 일이었다. 그 함대 사라진 만큼 카이저의 함대 역시 북해에서 날뛸 것이다. 영불 양국이 지닌 이권의 지분을 조금 넘겨줄 테니 중립을 지키라 한다면, 조선 총리와 그처럼 친교 돈독하다는 루즈벨트를 대통령으로 뽑아놓은 미국이 마음 흔들리지 않을 리가 없다.

군대를 움직인다? 영불 양국의 지원을 받은 러시아가 마음을 먹는다면 중국과 조선 정도는 공략할 수 있겠지만, 시베리아가 엉망이 되고 카이저가 저의 호헨촐레른 조상들을 기리겠다며 동쪽으로 뻗어오는 것을 감수할 만큼 러시아가 새 친우들과 친밀한가 하면 결코 그렇지 않았다.

반대로 극동 쪽에는 영불 양국과 달리 쓸 수 있는 수가 너무나 많았다. 홍콩에 병력을 보내든, 아직도 현지인들만 아는 샛길이 수없이 많을 티베트와 버마의 산맥 너머로 무기를 보내 인도의 토호들을 뒤흔들든, 수없이 뻗어 있는 두 식민제국의 촉수 한둘만 건드려도 여지없이 피가 쏟아져 나올 것이었다.

더구나 두 나라를 괴롭힐 이유도 차고 넘쳤다. 명분으로 따지자면 반백 년 전의 일들이 있으니 특히 중국은 할 말 많을 것이요, 영국과 프랑스가 독점한 아시아의 시장들이 풀린다면 그 자리는 독일과 조선·일본이 나누어가질 수 있을 것이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완용의 저 주장은 자칫 화약통 위에 던지는 성냥이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중국과 같은 거대한 나라가 이곳 한양의 여론 추이에 그렇게 흔들릴 지도 모른다니, 여전히 이해는 잘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저도 마찬가지지만... 본국에서 그럴 가능성을 염려하니 따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옆나라 일본에서 영국 공사 지내고 있는 정산(靜山) 선생 어니스트 사토우(Ernest Satow)가 들으면, 그러게 좀 동양 사정 공부를 하지 그랬느냐고 핀잔을 주었을 말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군인 출신으로, 어쨌든 정당한 명령이라면 불복하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을 이들이었으니, 이해 여부와는 별개로 이렇게 한 자리에 앉아 어찌하면 본국 지시를 이행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수레바퀴를 굴린다... 노리고 한 것이라면 참으로 무서운 비유 아닙니까.”

“정말 운명의 수레바퀴(Rota Fortunae)를 연상시키고자 그런 표현을 썼으려고요.”

“모르는 일입니다. 그 이완용 씨로 말하자면 어렸을 적 영국에서 현대식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

이완용 그자는 이미 일전에 포르모사(대만)에서 벌어지는 일을 두고 통렬히 비판하고는, 본인이 직접 건너가 그 땅 원주민들의 권익을 위해 투쟁한 바 있었다. 그런데 포르모사에서 조선과 일본이 하던 일을, 유럽 국가들은 전세계를 대상으로 수백 년간 해오고 있었으며, 당장 조선 옆의 청과 일본도 그 운명에 처할 뻔하였다.

그러니 그가 굴려야 한다고 말하는 수레바퀴가, 정녕 높이 오르려는 자는 끌어올려주고, 정점에 올라 득의양양한 자는 끌어내리는 수레바퀴. 눈먼 여신 포르투나(행운)의 그 수레바퀴를 말하는 것이라면 이미 정점에 올라 있는 영국과 프랑스 같은 나라에게 한없이 섬뜩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그렇게 수레바퀴 움직이면, 극동 중요해진 만큼 이곳 자리가 대사(Ambassador)로 격상될 지도 모르니 개인적으로는 좋은 일이겠군요.”

“하, 그건 그렇겠습니다. 그렇다 한들, 우리 두 사람 모두 그리 기쁘지만은 않을 듯합니다만.”

“동감입니다.”

머리 맞대고 대책 논의한들 군인 출신 외교관 둘이서 딱히 뾰족한 수가 나오지는 않았다. 본국에서도 ‘우선 조선 정부와 협의하여, 그런 위험한 논의가 확대되지 않도록 최대한 본국 입장을 전달할 것.’이라는 식의 모호한 지시를 받았을 뿐이었으니, 대륙 건너편 유럽에서도 아직 별다른 묘책은 구하지 못한 듯했다.

그러므로 신세 한탄과 신변잡기 등등 섞인 가운데, 결국 받은 지시 그대로 조선 정부에 본국의 우려를 전달하는 정도만 하고서 흐름을 지켜보자는 쪽으로 합의가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문득 사환이 조심스레 문을 두드리며 불청객 왕림을 알렸다.

“조선 총리 무슈 전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무슈 전? 이곳에?”

옆자리 맥도널드와 눈빛 주고받은 뒤 랭드르가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허... 우선 드시라 하게. 아니, 나가서 맞이하겠네.”

현관에 나가 맞이하니 과연 전봉준 그 사람이었다.

“좋은 저녁입니다, 신사 여러분. 저 아름다운 노을에 어울리는 좋은 제안을 가지고 왔습니다.”

빙긋 웃으며 전봉준이 말을 꺼냈다.

글로 실은 바는 입바른 소리건만, 그 뜻 꺼낸 입은 차마 바르다 못할 것이라, 귀남과 전봉준, 정강사 사람들, 그리고 곁가지로 김가진까지 끙끙대고 있던 것이 오늘 아침의 일이었다.

처음 논설 나온 뒤 며칠이 지나도록 답은 나오지 않고, 일진회는 열심히 기세 올리면서 세간의 온갖 이목을 모으고 있었다.

유독 이상한 점은 곧장 찾아와 아랫사람 단속 못한 죄를 고할 줄 알던 최익현이 부재하다는 것이었는데, 나이도 슬슬 병치레 많아질 나이거니와 아직 경연 때도 아니었기에 딱히 흠은 아니었다.

공식 모임도 아닌데 최익현 오지 않는다 하여 논의를 시작하지 않는 것도 무엇하였기에, 정강사 네 사람 모이자마자 다시 대책 고민을 시작했건만 여전히 이야기는 빙빙 돌았다.

“자칫 걱정하던 전란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사안입니다.”

그간 대란이 일어나지 않게, 또는 일어나더라도 수십 년 뒤로 밀리게끔 하고자 애써왔던 것이 잘못하면 모두 무위로 돌아갈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전봉준은 걱정이 쌓였다.

“그러나 바른 행실 권면함을 나라의 자랑이자 이익으로 삼아왔건만 지금에 와서 물러남도 부당한 일입니다. 하물며 완용은 아직 일개 서생이니, 우리 국제를 따른다면 나라에서 그를 막거나 꾸짖음 역시 옳지 못합니다.”

이완용 하는 일이라면 좋게 볼 수 없는 귀남이지만, 처벌하려니 벌주기가 마땅치 않고, 또 그가 문제삼는 나라들 사정 들어보니 과연 취지는 좋았다.

그렇다고 믿고 맡기자니 그 또한 곤란하여, 진퇴유곡이라 할 만했으니, 당장 김윤식과 김홍집이 함께 걱정하기를,

“아국 땅에서 오가는 언설에 이처럼 이목이 쏠려 있으니, 반드시 국론 움직임에 크게 놀라는 이들이 나올 것입니다. 구원(舊怨) 운운하며 서양 나라들과 다투려 하는 자가 필히 나올 것인데, 한 번 나오면 그 기세가 겉잡을 수 없을 것이련만 아국 바깥의 청국이나 일본에서 나온다면 제지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하였다.

“하지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기는 하지 않습니까? 꼭 저희 공산당의 이론을 들고 나오지 않더라도, 서양 나라들이 다른 땅에 들어가 속국으로 삼는 것은 언제고 해결되어야 할 병폐입니다.”

“그러나 이미 여러 해 동안 합의하기를, 속국으로 삼으면 반드시 그 나라 문물을 계발하고 백성들로 하여금 풍족케 하는 것이 도의라 하지 않았습니까? 비록 그 후로 여러 해가 지나, 위세 강한 나라들은 겉으로만 따르는 시늉을 하면서 실제로는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지만, 조금 더 기다리면 반드시 나아지는 바가 없으리라고 어찌 장담하겠습니까?”

영국과 프랑스에게 애초에 그럴 기미도, 마음도 없음을 알고서, 자신들은 구체적으로 연한을 정해 (별 수익도 없는) 식민지를 모두 독립시키겠다고 빌헬름 2세가 선포한 것이었지만.

“이미 법국이 대남에서 물러난 사례가 있으니 반드시 허황된 생각은 아닐 것입니다. 또한 아국의 산업이 이대로 흥성하게 되면, 반백년 안에는 새 판로를 구하여야 할 것인데, 그때가 되었을 때 법국이나 영국이 저들과 아국이 친하다 하여 그 속국에 우리 물산을 흔쾌히 들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앞서는 또 영·법 양국이 위세 등등하기에 아직 그들이 내세우는 도의가 우뚝 서 있는 것이라 하지 않았소?”

“그것은... 그렇습니다. 신 또한 이번 일진회의 주장을 보고서 끝내 혼란스러워 한 가지 간언을 올리지 못하니 송구할 따름입니다.”

그나마 가장 냉정하게 이익만 따질 수 있을 김옥균조차 진퇴유곡에 빠졌으니, 남들은 오죽하겠는가.

귀남은 미간을 손으로 꽉 쥐었다.

저의 나라가 남에게 넘어가는 설움 겪었으니, 남들은 그런 설움 아니 겪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야 당연히 있었지만, 그것을 위하다가 정말로 전쟁이라도 크게 나버리면, 그리고 그 뒤의 세상이 온통 난장판이 되어버린다면 그 또한 끔찍한 일이었다.

차라리 믿을 만한 사람이 저 일진회 가운데에 있어, 올바르게 이끌어가면서 적당히 남의 나라 병탄한 코쟁이들에게 ‘적당히 합시다’ 하고 말만 넌지시 건네는 선에 그친다면야 조금 낫겠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완용이잖은가.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저의 아내 민씨도 지금은 명부사 움직이는 맛과 손주손녀 보는 재미에 살고 있는데 이완용이라고 개심치 못할까 싶기도 하였다. 그러면 다시, 그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는 공산에 기껏 회생한 국운을 도로 맡길 것이냐 하는 의심이 들고... 그렇게 무한히 빙빙 도는데...

어째 익숙한, 늙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무어라 떠드는 것이 들려와, 그들의 임금과 마찬가지로 잔뜩 고민하고 있던 이들의 귀를 쫑긋 세웠다.

“전하, 특진관 최익현이 섬돌 아래서 대죄(待罪)하고 있나이다.”

“아니, 무슨 죄를 지었다고... 우선 들라 하라.”

곧장 들여보내니, 사람 목도 도끼로 능히 칠 법한 흉흉한 눈빛의 최익현이 입시하였다.

“신이 어리석어 충담(忠膽)과 간흉(奸凶)을 분간치 못하고, 마침내 옥과 돌이 섞이는 폐단을 초래하고야 말았습니다.”

이어서 고하기를, 다들 훌륭하다 말하는 일당이 어찌하여 그 회를 만들어 세론 어지럽히는가 살피러 갔더니, 그 집은 사치스럽고 어울리는 무리는 경박하며, 무엇보다 일당 그자의 본심을 살피니 굳은 뜻 있을 자리에 그저 욕심 하나만이 있을 뿐이었다.

(집이 사치스럽고 무리가 어떻다 하는 부분에서 김옥균은 절로 뜨끔했다가, 이어지는 말을 듣고 조금 안도하였다.)

“... 분명 그자는 소신의 당에 들어온 지 여러 해가 지났건만, 이를 알지 못하고 오직 떠도는 세평(世評)만을 따졌으니, 어찌 하나라도 신의 허물 아님이 있겠습니까?”

물론 그 전에도 하는 짓이 결코 군자는 아니려니 싶었지만, 그런 자들을 모두 쳐내면 자유당 안에 사람이 얼마 남지 않을 것이라, 한동안 뒤로 넘겼을 뿐이었다.

그러던 것이 이렇게 국제적인 사안으로 커져버렸으니, 비록 생각은 옛날 유생이라지만 식견은 그렇지 않은 최익현도 얼추 돌아가는 형세를 알 수 있었다.

“우리 또한 그 일을 두고 고심한 지가 꽤 되었다오. 이완용 그자가 내 듣기로도 소인 중의 소인인데, 내놓는 말이 겉으로 보기에 취할 바가 아예 없지는 않으니, 어찌 다스림이 마땅하겠소?”

그러나 거기에 있어서는 최익현도 훈계하는 것 외에 떠오르는 바가 없었다. 애초에 지난 며칠을 따라다니다가 단념하고 나오지 않았던가. 자유당이 적어도 겉으로는 위아래 도리 지키는 선비 정당인 이상 만나면 공손히 훈계 듣지 않을 핑계가 없었지만, 아예 문 닫고 나오지 않던가 하는 식으로 끈질기에 최익현을 피해 다니니, 그를 붙잡아올 방편 없고서야 도저히 손을 쓸 수 없었다.

그러는 동안 아주 사람들끼리 뭉치자는 듣기 좋은 의리의 말부터, 중화 문물을 이은 나라들끼리 협력하면 저 넓은 중원에 나아가 언제든 대성(大成)할 수 있다는 이익의 이론까지 절묘하게 섞어가며 부채질하는 말이 지난 며칠 사이 연이어 나오면서, 비단 여항(閭巷) 여론뿐 아니라 자유당 안의 사람들도 슬그머니 마음이 기울고 있었다.

“지금은 그 언사가 과격하고 사람을 놀라게 하지만, 신이 보기에도 정도를 지킨다면 의리에 맞는 바가 없지 않을 듯합니다. 그러나 그 일진회의 무리를 가르치고 다스리려 하여도, 소인이 스스로 소인임을 자인할 리 없으니 이 또한 어려운 일입니다.”

“소인이 소인임을 자인한다라... 흠...”

생각해보면, 귀남 자신이 아는 그 이완용 이야기를 조선 팔도가 알게 된다면 아무도 현혹되지 않을 것이었다. 예컨대 지금 그 자리에 이완용 대신 최익현 같은 사람, 하다못해 어딘가에 있을 이박사나 백범 선생 –얼마 전 외국인 구타한 사건에서 그 이름을 언뜻 본 듯도 하였는데, 아마 귀남이 소싯적 들었던 그이는 아닌 듯했다- 같은 사람을 그 자리에 앉힌다면 조금은 마음이 놓일 터인데...

“그러면 일진회의 사람들을 시험하여, 그 덕성이 어떠한지를 살피면 어떻겠소? 따른다면 교화의 여지가 있는 것이요, 그렇지 못한다면 그 실체 드러날 테니 역시 우환이 절로 풀릴 것이외다.”

어질지 못한 사람 귀로 해석하면 함정을 파자는 것이었는데, 정 안 되면 계략을 써서 이완용이 입을 도로 막자고 제의하려던 김옥균은 깜짝 놀랐다.

귀남 발의하고 김옥균이 완성한 대(對) 이완용 비책인즉, 금덩이 던져두고 견리사의(見利思義)할지 견물생심(見物生心)할지 살피는 것이었다.

전봉준이 공사관에 간 것은, 이완용 그자가 총리대신 자리에 나오지도, 허튼소리 하지도 못하게 할 방법 있다 하면서 이 계획의 공범으로 끌어들이기 위함이었다. 물론 주변의 여론은 어쩔 수 없으니 반드시 영법 양국도 속국 대함에 있어 다소간 성의를 보여야 할 것이라고 당부한 뒤에 꺼낸 계책인즉, 허무하게도 인정(人情) 뿌리는 것이었다.

조선국도 여론을 움직이기 위해 없는 살림에 각국 공사관에 예산을 배정하는데, 영법 두 나라가 천하의 대세를 두고 어찌 천금을 아끼겠느냐 하니, 공사 두 사람도 머뭇거리다가 결국 동의하였다.

그리하여 몇 주 전 에리히 레더가 했던 것처럼, 은밀하게 이완용네에 양국 공사관 사람들이 오갔다. 이완용은 갑작스러운 일확천금에 은근히 경계하였지만, 다른 일진회 사람들은 한껏 들떠, 논조 한 번 누그러뜨리고 인당 십만 원 넘게 받으면 어찌 남는 장사 아니겠느냐, 앞으로도 이 회에 충성 다하겠노라 김칫국을 마셨기에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김옥균네 개화당이나 공안서 등등의 눈길을 피하기는 어렵겠지만, 영국 쪽에서 장담하기를 다 저들에게 수가 있노라 하였으니, 결국 이완용이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뒤탈 안 나도록 받아내는 길뿐이었다.

그리하여 현물로 금은 받는 대신 영·법 양국 국채로 받고, 주변 눈길 단속하기 위해 적당히 돈으로 입막음하고, 만전을 기했건만, 다음날 최익현이 공안서 김가진과 함께 나타나서는,

“썩은 나무에 조각을 할 수 없고 거름으로는 담장을 쌓을 수 없다지만, 이처럼 중한 일에 어찌 사람을 버릴 생각을 품겠는가.”

하고서 저의 국채 받은 사실을 낱낱이 증좌 곁들여 보여주는 것 아닌가.

“그러니 비장한 각오로 사람을 널리 사귀고 부덕을 교화해야 하지 않겠는가? 내 지금껏 받은 성은에 부응하지 못하였으니 부족한 재주로나마 이렇게 나랏일 받들고자 한다네.”

흙빛이 된 이완용에게 결연한 말투로 최익현이 말했다.

“어찌 되었소?”

“면암 선생께서 세 시진 전에 들어가신 뒤 아직 나오지 아니하셨다 하니, 어찌 되었을지 능히 짐작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일당 선생네 앞에 다시 보내둔 김창암으로부터 받은 보고였는데, 김옥균도 엄연히 같은 조정 사람이니 들어도 되지 않겠는가 생각한 김가진이 그대로 전해주었다.

이완용이 그 말주변으로 빠져나가려 하였다가 웃어른 앞에서 마땅히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하여 두어 시진쯤 또 훈계 듣는 모습이 선하여 - ‘내 부덕과문(不德寡聞)하나 헛되이 나이 먹기로 자네 태어날 무렵 전랑(銓郞, 이조정랑) 벼슬하고 있었는데...’ - 김옥균은 ‘풋’ 웃었다. 일당 그치도 내일모레면 지천명이라지만, 몸의 나이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었다.

“그것을 또 그대로 받았다니, 일당 그자도 참...”

“사람이 득의로우면 한치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법입니다. 저희 서에서 자주 쓰는 수법이기도 하지요.”

“하기야, 도합 백만 원이라면 나라도 잠시 마음 흔들릴 듯하기는 하오.”

그 뒤로 일진회는 해체되지 않고서 하던 얘기를 계속 하였으며, 일당 선생도 전국을 돌며 아주 사람끼리 단결하여 세상의 모범 되자는 둥, 이전과는 조금 결이 다르지만 면밀히 관찰하지 않는 이들은 알아차리지 못할 이야기를 설파하곤 하였다. 어딘가 피로하여 넋 나간 표정에, 일정 마치고 귀경할 때면 안색이 더욱 피폐해졌으니, 사람들은 이르기를 얼마나 혼신을 다하였으면 저리 사람이 파리해지는가 하며 찬탄하곤 하였다.

물론 그의 활동은 면암 선생의 면밀한 조언을 받아 이루어졌으며, 이때를 노린 우남 군도 간혹 한두 마디씩 옆에서 거들곤 하였다. 너무나 바빠 잠깐 총리대신 운운하던 것은 곧장 철회하였으니, 어찌 그가 권세를 위하여 아주가 어쩌니, 백방(百邦)의 자존자결(自尊自決)이니 운운한다고 쉽게 꾸짖을 수 있을까?

어찌 되었든, 청국과 일본국에서도 화답하는 목소리가 나왔고, 덕국 역시,

‘우리 독일은, 처음 베를린에서 합의되고 이어서 한양에서 재확인된 원칙에 따라, 유럽 그 어느 나라보다 앞장서서 모든 국가와 민족의 주권을 존중하고, 이로써 새로운 문명과 진보의 시대로 나아가는 기틀을 다지고자 한다...’

운운하며, 모로코를 둘러싼 논쟁을 평화적으로, 그리고 국제적 선의에 따라 해결하기 위한 회담 개최를 제의하였으니, 빌헬름 2세에게는 만족할 만한 결과였다.

한편, 멀리 떨어진 세상의 다른 구석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고향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아니, 갑자기?”

젊은 변호사 모한다스 간디가, 이 낯선 땅에서 그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그의 벗 파르시 루스톰지(Parsee Rustomjee)에게 느닷없는 고별을 전했다.

“저 조선의 지식인이 우리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을 보니,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더군요.”

이곳 트란스발은 참으로 놀라운 곳이었다. 영국인, 아프리카너, 줄루인, 중국인, 인도 각지에서 온 사람들. 그들 중 누군가는 힘과 부를 가지고 있었고, 누군가는 머릿수만을 지니고 있었건만, 몇 년의 다툼 끝에 어느새 조금씩 어설프게나마 균형이 맞추어지고 있었다.

그 기틀은 결국 단합이었다. 함께 뭉쳐서 힘을 보이는 것. 그러나 거룩한 바라타(Bharata, 인도) 땅에는 그 이상이 필요할 것이다.

“결국 벵갈 분할은 무기한 보류되었으니 사실상 없던 일이 된 것 아닌가? 우리가 이곳 트란스발에서 하는 일도 우리 겨레를 위한 일인데...”

“언제까지 우리 땅, 우리 겨레의 운명을 남에게 맡겨둘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간디가 가볍게, 그러나 묵직한 결의 담아 미소를 지었다.

“세상이 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변화란, 세계가 인간에게 던지는 질문이지요. 정답이 될지는 몰라도, 한 가닥 대답이라도 해보아야 후에 부끄럼 없지 않겠습니까.”

숭고한 힘. 폭력에 폭력으로 응할 수 있으면서도, 능히 거꾸로 찍어누를 수 있으면서도 오히려 주먹을 들지 않는 그 단합되고, 숭고하고, 어리석지만 현명한 힘.

스스로 ‘진리의 고집(사티아그라하Satyagraha)’이라 명명할까 고민 중인, 아직 어설프지만 더이상 마음 속에만 두지 않을 발상을 들고 간디는 고향에 돌아갈 참이었다.

“행운을 비네. 자네와 우리 모두를 위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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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을 끊임없이 순환하는 수레바퀴에 비유하는 것은 고대 로마부터 중세를 거쳐 오늘날까지 서구 예술에 나타나는 모티프입니다. 이 비유에는 운명을 계절의 변화 같은 자연스러운 순환이 아니라 변덕스럽게, 때로는 잔악하게 인간을 농락하는 – 한 번 정점에 오르면 내려갈 수밖에 없는 – 것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들어 있습니다.

몇 편에 걸쳐 단편적으로 언급된 지중해와 대서양 해운의 요지 모로코는, 원 역사에서 1차대전으로 이어지는 여러 국제적 분쟁의 무대가 되었습니다. 영불협상에 의거해, 영국은 이전에는 열강들이 비교적 평화적으로 – 물론 어디까지나 상호 견제의 차원에서 – 침탈하던 모로코에서 프랑스의 주도적 영향력을 인정하였습니다. 이를 위협이자 독일에 대한 견제로 인식한 빌헬름 2세는 직접 모로코를 방문하는 등, (적어도 겉으로는) 모로코의 주권과 독립을 존중하여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는 독일이 자신의 외교적 고립을 자각하고 더욱 모험적인 외교정책으로 돌아서게 되는 계기인 알헤시라스(Algeciras) 국제회의로 이어지게 됩니다.

작품 초반 1860년대에 잠깐 이름이 언급되었던 어네스트 사토우는, 원 역사에서도 이 시기까지 계속 극동에 남아 있었습니다. 일본과 동양 문화에 심취했던 사토우는 서예를 배워 상당한 경지에 이르기도 했는데, 이때 그가 사용한 별호가 정산(静山, 세이잔)이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에 거의 40년을 머물렀음에도 불구하고, 의화단 사건 이후 한동안 북경 공사로 재직하였기 때문에 정작 영일동맹 체결 후 일본에 파견되는 외교관이 대사급으로 격상되었을 때에는 대사로 오를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지요.

원 역사에서 영국은 티베트가 인도의 안보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지만, 러시아의 남하가 티베트 대신 훨씬 교통이 유리한 중앙아시아 방면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티베트에 대한 관심은 상당히 후순위로 밀렸습니다. 그러나 달라이 라마 13세가 의화단 사건 이후 친러 독립행보를 보이면서 영국도 비로소 경계를 하게 되었고, 1903년에는 티베트를 대대적으로 침공해 라싸를 점령하기에 이릅니다. 그러나 그 직후 러일전쟁이 일어나고, 몇 년 뒤 영러협상까지 이루어지면서 자칫 국제정치의 전면으로 끌려나올 뻔하였던 티베트는 다시 이면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인도의 국부 마하트마 간디는 본래 영국에서 교육을 받은 엘리트로, 남아프리카에서 같은 인도인들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면서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뛰어들게 됩니다. 그러나 작중에서는 제2차 보어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 인도인 권익 향상을 위해 시도하였다가 끝내 실패한 ‘나탈 인도인 구급대(Natal Indian Ambulance Corps)’가 결성되지 않았고, 의화단과 케이프 식민지의 영국을 견제하는데 바쁘기 때문에 간디를 독립투쟁의 길로 몰아넣었던 트란스발 당국의 각종 인종차별 정책도 펼쳐지지 않았습니다. 대신 엉뚱한 빌헬름 2세와 이완용이 그를 자극하게 되었네요.

이름처럼 파르시(조로아스터교를 신봉하는 인도인)였던 파르시 루스톰지는 20여 년에 걸친 간디의 남아프리카 생활 동안 그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친우로서 간디의 정치활동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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