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종, 군밤의 왕-276화 (276/320)

90. 두려움 없어라 (3)

“허... 그렇군요. 우선 귀국의, 아니, 귀국 해군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조선의 전 총리 김옥균이 태연자약하게 답했다.

마치 자신의 독일스러운 억양을 놀리는 듯한 유창한 프랑스어였는데, 일국의 총리를 역임한 거물이 고작 대위 앞에서 위세를 과시하지는 않을 테니, 그렇게 들리는 것은 듣는 본인이 긴장한 탓일 것이라고 주재무관 에리히 레더(Erich Raeder)의 이성은 주장하고 있었다.

“주지하고 계시겠지만, 우리 조선국은 무기를 타국에 판매 혹은 공여하더라도 반드시 예의를 지키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지금껏 약한 나라를 거들어 능히 스스로 지킬 수 있게 한 것도 그 때문이지요.

물론 귀국도 상대적으로 해군력에서 열세에 처해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엄연히 국운 날로 떨치는 강대국 아닙니까. 곧 다시 말씀드리겠지만... 부속조건이 따로 붙을 수 있음을 미리 알려드리는 바입니다.”

“예, 시간을 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잠시 기다리시지요. 관계자들과 상의한 뒤 곧 답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뻣뻣한 경례로 답한 뒤, 저를 안내해준 서리를 따라 별채에 마련된 자리에 가서 앉았다. 동양 전통 건축이 아닌, 서양식 건물인 고로 편하게 앉아 있을 수 있었는데, 푹신한 의자와 아인슈패너(Einspänner, 비엔나 커피) 비슷한 커피 한 잔을 맞이하니 저도 모르게 긴장했던 것이 풀리고 말았다.

필리핀의 수빅만을 ‘대등하고 공정한 조건’ 하에 임대한 이후 독일은 꾸준히 주재무관을 동방 삼국에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동양이 중요하다 하더라도, 다른 나라들은 끽해야 대위에서 소령 정도를 보내는데 독일만 홀로 대령급을 떡하니 보낼 수는 없는 고로, 대신 재능은 있지만 어딘가 흠이 있는 젊은 장교들이 ‘한 번 다녀오면 원없이 후원해줌세’ 같은 기약 없는 약속에 떠밀려 파견되곤 하였다.

그나마 이전 상관 하인리히 왕자의 눈에 들어 조선에 오게 된 에리히 레더대위 정도면 튼튼한 연줄 있는 셈이므로 사정이 나았다. 갑작스레 베를린발(發) 비밀전보가 공사관으로 날아들기 전까지는.

직접 저 ‘국경방위연구소(정강사)’라는 미심쩍은 기관에 찾아가, 최근 전함 함포 사격시험에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고한 사격통제 기술의 실체를 파악하고 가능하다면 구매를 타진해보라는 지시에는, 티르피츠 제독이 직접 내린 명령임은 강조되어 있어도, ‘카이저’나 ‘수상’은 언급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정도야 독일의 군인에게는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일이었다.

꺼려지는 것은 본인이 이 복마전에 홀로 들어가야 한다는 점이었다. 물론 고작 대위에게 이런 국가지대사를 맡기는 티르피츠 제독의 심정도 불안은 하겠지만.

근래 독일의 식자 치고 조선을 모르는 이는 드물었다. 동아시아 철도회사에 한몫 걸친 사업가들, 조선이 한창 공황 시달릴 때 조선국 국채 사들인 은행가들, 큰맘 먹고 ‘마르크스-전 노선’과의 타협을 선언한 좌익세력들 등등. 의외로 근년간 인연이 많았는데, 그 이상으로 사람들이 관심 갖는 이유인즉 지난 세기 말 독일이 중국 시장에 진출하기 시작할 무렵 조선이 큰일을 많이 벌였기 때문이었다.

어지간한 유럽인들, 특히 (남부 놈들 말고 참된) 독일인들에게는 도덕이니 규범이니 하는 것보다 묵직한 군대의 힘이 훨씬 깊은 인상을 남기기 마련인데, 근대화된 군대 수십만을 중국 코앞에서 운용할 수 있는 나라라면, 그것도 다른 열강들이 수 달은 걸려 겨우 보낼 군대를 불과 며칠 만에 페킹까지 보낼 수 있는 나라라면 자세히 알아보지 않는 쪽이 바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계속 군생활 하다 보면 언제고 저도 맞부딪힐 일 생기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 처음 소위로 임관하였을 때부터 레더는 아시아 관련 소식이 신문에 실릴 때마다 꾸준히 정독하곤 했다.

그리고 알아갈수록 이상한 나라가 이 조선이었다.

말로는 평화와 도덕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딴짓하는 것이야, 기독교 윤리 운운하면서 언제든 같은 기독교인 뒤통수 때릴 준비가 되어 있는 다른 유럽 국가들도 비슷하다 할 만했다. 허나 조선의 유별난 점은, 도덕과 실리 중 무엇이 진의인지 도저히 알 수 없다는 데 있었다.

당장 이번만 하여도 그러하였다. 페킹이나 쿄토의 공사관 쪽에서 전해지는 소식들은 이번에 조선 국방부에서 벌인 이 훈련을 두고 하나같이 큰 소란이 일어났음을 증언하고 있었다. 중국은 그래도 조선을 적성국으로 여기지 않으니 의구심보다 호기심이 앞서는 듯했는데, 가뜩이나 그의 조국 독일과 영국의 사이가 틀어지면서 처지 곤란해진 일본은 사정이 또 달랐다던가.

조선에 부임해서 지난 몇 달간 사태를 관망한 레더가 보기에도, 아시아 황인 국가가 벌이는 훈련인데 무슨 볼 일 있겠는가 치부하기에는 심상치 않았다.

여러 사정으로 퇴직해 있던 국왕의 총신들이 갑자기 별 볼 일 없는 관청에 채용되더니, 곧 군사훈련 일정을 발표하고, 거기서 아직 유럽에서도 제대로 도입되지 않은 비행기까지 선보였다. 비행기의 군사적 효용과는 별개로, 지금까지 이만한 기술력을 숨기고 있다가 갑작스레 드러냈다는 점에는 의심할 만한 구석이 있었다.

거기에 더불어, ‘신형 장비’를 도입한 전함이 정밀한 화포 사격까지 과시했다. 사실 그렇게 멀리서 쏜 것은 아니어서, 파괴된 표적이 정말로 포탄에 맞아 격침된 것이 맞긴 한가 회의할 만도 했지만, 전후 맥락을 고려했을 때 저 장비가 제대로 된 첨단 기술의 산물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티르피츠 제독의 제의를 들고 왔을 때, 저쪽에서 흔쾌히 보여준 실물을 보니, 문외한인 레더가 보아도 겉만 번지르르한 물건은 일단 아닌 듯했다. 영국 해군에서 애지중지하고 있다는 두마레스크는 아이들 장난감처럼 보이게 만드는 짜임새였다.

“상의 끝에, 귀국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하였습니다. 다만 몇 가지 우려되는 바가 있더군요.”

한 시간 정도 흐른 뒤, 다시 호출을 받고서 처음 김옥균을 만난 그 방에 들어섰더니 대뜸 나오는 말이 이러하였다.

“우리가 이렇게 국방에 힘을 쓰는 것은 누구를 겁박하거나 침노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뜻 어리석게 보일 수 있음을 알면서도 약자들을 위한 조병창을 자처하는 것입니다.”

이번 발칸에서의 소요 이전에도 이미, 그런 소국에 팔면 얼마나 팔겠느냐 코웃음치던 이들은 독일제 무기가 독일의 영향력과 함께 들어갈 수 있었을 틈에 조선제 무기가 저렴함을 내세워 들어가고 있음을 깨닫고 모두 침묵하고 있었으니, ‘어리석게 보는’ 사람은 적어도 관계자들 중에는 드물었다.

“그런데 이 계산기로 말하자면, 우리는 물론이요 그런 나라들도 스스로 거함거포를 마련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 인류 전체의 복지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사용하고자 공여를 언급한 것이지요.”

“그렇다면...”

“한 번 우리 입장에서 생각해 보십시오. 대금을 받고 이 계산기를 판매한다면, 지금까지 도의를 내세운 것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티르피츠가 가장 걱정하던 답변이 김옥균의 입에서 나왔다.

프랑스와 러시아는 조선의 동맹국이니, 요청한다면 언제든 흔쾌히 내어줄 것이다. 영국은 동맹의 구도를 굳이 따지면 조선의 반대편이지만, 이미 전함 여러 척을 판매한 경력이 있으니, 지금 독일 해군본부가 예의주시하고 있는 그 신형 전함을 싸게 들여오는 대가로 계산기를 제공하는 식의 합의가 충분히 이루어질 만했다.

그리되면 사실상 독일만 배제되는 셈이었다. 물론 그렇게 세계 이곳저곳으로 기술이 확산되면, 어디에서든 유출될 것이요, 독일의 우수한 과학자와 공학자들이 복제할 수도 있겠지만, 그 사이의 수 년 동안 발생할 전력 격차는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더구나 지금껏, 여차하면 영국을 북해에서 압도할 수 있는 전력을 갖춤으로써 동맹으로서든 적으로서든 영국이 독일을 무시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티르피츠 본인에게는 정치적 치명타가 될 것이다. 그의 주장대로 전함을 마구잡이로 건조했지만, 배수량만 컸지 실질적인 전력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같은 해군 내의 정적에게서 나오든, 의회에서 나오든, 그가 꿈꾸던 대양함대 구상 – 그리고 그와 함께 따라오던 카이저의 지지 – 은 난국에 봉착하게 될 테다.

허나 구매 대금이라면 스위스나 미국 등을 통해 우회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고 쳐도, 명분을 말한다면 독일이 무슨 도의를 내세워 조선과 친한 척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군주 사이의 친분이 있는 러시아조차 가상적국으로 둔 판에, 조선의 선의를 마냥 기대할 수도 없었다.

“그러니 이렇게 하시지요.

이 계산기는 본래 군용이 아니라, 민수용으로 개발되었습니다. 지금 전세계 강국의 조병창 안에, 이렇게 군대를 위해서 잠겨 있는 훌륭한 기술이 또 있지 않겠습니까? 문명의 진보가 바로 그 문명의 자해에 쓰일 수 있는 현실은 안타깝지만, 현실을 부정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더 낫게 만들 방도를 찾는 것이 옳은 길이겠지요.”

청산유수로 쏟아지는 말 가운데서 레더는 정신이 멍해지기 시작했다. 들을수록 그럴듯하게 들리니, 요새 베를린에도 그 이상한 클럽 세워서 정치인들끼리 어울리자며 판을 깐다는 조선국의 솜씨답다 해야 할까. (독일의 경우, 제국의사당 옆 대로의 이름에서 따온 ‘라임나무 클럽’이 예산 더 타기 바라는 육해군의 공적이 되고 있었다.)

“그러니 우리가 당당하게 이 계산기를 귀국에 넘길 만한, 그런 명분을 대가로 받겠습니다. 귀국의 과학과 공학은 유럽의 자랑이지 않습니까? 평화를 위해 쓰일 수 있는 기술을 공유합시다.”

일국의 총리까지 지낸 사람 앞에서 고작 전령 노릇하는 대위 한 사람이 무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알겠노라 답하며 작별 고하는 레더는, 헛소리로 담판을 망치지 않은 것만 하여도 최선 다한 셈이라며 스스로 다독였다.

프랑스가 해군으로 영국 따라잡기를 진작에 포기하면서, 유럽 제2의 해군국 자리는 독일이 손에 넣은지 오래였다.

그러나 그처럼 강력하고, 규모에서는 다소 밀려도 어쨌든 영국처럼 전세계를 누빌 수 있는 전력을 보유한 독일제국의 해군이라지만 조선의 제안에 맞는 그런 과학기술을 지니고 있을 리는 만무하였다.

“그리하여 내 이리 발걸음하게 되었소이다.”

“정부를 거치지 않고 이렇게 제안을 먼저 던져놓고, 감당하기 어려워지니 그제야 찾아오다니... 사람 곤란하게 하는 재주가 우리 독일 안에 이렇게 널리 퍼졌다니 괴로울 뿐이외다.”

수상 베른하르트 폰 뷜로우가 대놓고 빈정거렸다. 저 ‘곤란하게 하는 재주’ 지닌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야, 당연히 선황의 개혁 덕에 맘놓고 저들 목소리 높이는 좌파들 얘기지, 설마 다른 사람 생각했느냐고 반문하였겠지만, 그 정도 눈치까지 없는 티르피츠는 아니었다.

“후, 미안하오. 내 근래 신경 쓸 일이 많아서. 무안하지만 양해를 청하오.”

“괜찮소. 의회 때문에 골치아픈 것은 공통의 사정이니, 따지자면 우리는 동맹 사이라 할 수 있지 않겠소?”

그놈의 라임나무인지 오렌지나무인지 하는 모임이 생긴 이후로, 자유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이 – 예컨대 사민당의 베른슈타인(Eduard Bernstein) 같은 작자 - 잔뜩 헛바람 들어서는, 합심해서 정부의 ‘세계정책’이 과도한 예산을 요구한다며 비판하고 있었다.

친목을 도모하고 정파 간의 갈등이 건전하게 유지되도록 하기 위한 모임이라더니, 정말로 저들끼리 당색 초월한 작전회의를 하면서 ‘조선에서 했다는 그 청문회나 토론회가 참 좋은 제도다’ 같은 소리나 하고 있으니, 지난 총선에서 과반 살짝 못 미치는 정도까지 올라온 독일민족당을 그 모임에 집어넣으면 조선의 흉계도 무력화되리라고 안일하게 생각한 카이저와 뷜로우 모두 뒤통수를 얻어맞은 셈이었다.

바로 그렇게 발목 잡히는 일을 막기 위해 카이저가 기용한 오토 뵈켈마저도, 머리 긁적이며 ‘지갑 열리기 전 애국심과 열린 뒤 애국심 다르다’ 같은 변명이나 하고 있었다. 전쟁이라도 나지 않는 이상 저의 득실 따져가며 투표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사람 본성이라 뵈켈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기술 대 기술로 교환을 하자고 청했다, 이 말이군. 그것도 군사기술이 아니면서 전략적인 가치를 가질 만한 무언가로.”

“그리 되었소이다.”

“허 참, 그런 것을 나누어 가지자고 진심으로 제의했다니... 여전히 기술적으로는 부족한 나라에서 운 좋게 한 가지를 선점하였으니 이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려는 그 뜻은 이해하지만, 우리로서는 영 곤란하구려.”

‘오죽했으면 내가 찾아왔겠느냐’ 하는 생각이 여실히 드러나는 얼굴로 티르피츠가 맞장구를 쳤다.

“설령 그런 기술이 있다 하여도, 손을 거치며 국경을 넘나들다 보면 자연히 보안은 취약해지기 마련이오. 조선이야 주변 나라들이 다들 저의 눈치 보는 상황이니 괜찮겠지만, 우리는... 후.”

그 기이한 연구소의 실체가 그 아래서 수행하던 연구의 일부와 함께 세상에 드러났으니, 비행기 같은 검증되지 않은 기술에 투자하는 것은 조선의 진심이라 할 만하였다. 그런 나라이니, 아직 중공업에서도 갈 길 먼 상황에서 전함용 사격제원 계산기 같은 엉뚱한 물건이 튀어나온 것이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영국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만한 기술이 설령 있다 하더라도 과연 조선이 만족할 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아예 뒷말 안 나오게 큼직하게 양보한다면, 그때는 조선보다 이곳 베를린에서 바로 성토하는 소리가 나올 것이다.

그때,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뷜로우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방법이 하나 있소.”

“무엇이오?”

“사실 조선이 아무리 화려하게 저들 솜씨를 보였다지만, 아직 검증되지 않은 기술이기는 하지 않소? 제독도 그것이 혹 남의 손에 들어가고 우리 손은 비껴갈까 그것이 두려운 것이지, 기술 자체가 정말 아쉬운 것은 아니고.”

“그건 그렇소만...”

“그러니 우리도 명목상으로는 그럴듯하지만 사실 그렇게까지 중하지는 않은 그런 기술을 내걸고 평화와 진보 운운하면 될 것이외다. 카이저께서도 흔쾌히 그런 교섭은 인가하실 게요.”

그 ‘명분 놀음’에 대해 카이저의 생각이 예전같지는 않았지만, 그것도 독일이 패권을 장악하는 과정, 그리고 그 후의 명분에 대한 고민이지, 조선과 어울리기 위한 고민은 결코 아니었다.

조선을 골탕먹일 수 있다고 하면 그러니 쌍수 들어 환영하지 않겠는가? 뷜로우 본인이 나아가 진언한다면 ‘역시 그대는 나의 보배요’ 소리가 나올 것이다.

생각이 그에 닿으니, 우울한 기분이 그나마 조금은 풀어지는 듯했다.

“적절한 후보를 물색한 뒤, 곧장 카이저께 말씀 올리도록 하겠소.”

“고맙구려.”

티르피츠를 돌려보낸 뒤 뷜로우는 보좌관들을 시켜 탐색에 들어갔다.

아직 춘분도 되지 않은 때라 벌써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슐렌부르크 궁을 오가는 사람과 전화가 끊이지 않았는데, 마침내 몇몇 비관론자들이 금일 퇴근은 틀렸다고 낙담할 무렵, 혈통에 약간의 흠이 있는 것을 제외하면, 재능으로 보나 애국심으로 보나 결격사유가 없는 젊은 화학자 프리츠 하버(Fritz Haber)가 물망에 올랐다.

“허어, 바람을 붙잡아 비료를 만든다니, 참으로 훌륭한 발상이구려.”

“그 법도는 사실 이미 덕국에서 창안되어, 곧 널리 퍼질 것이라 하는데, 이 하씨는 이를 개량하여 더욱 간편하게 하는 방안을 궁구하고 있다 합니다. 이만하면 태씨의 자산기를 넘기고 받아온다 하여도 명실(名實) 모두 허물되지 않을 듯합니다.”

빌헬름 2세가 뷜로우 생각대로 기꺼이 받아들여 조선까지 전해진 독일 측의 답변인즉, 하버의 연구에 조선인 연구자가 참여하고, 그 결과를 양국이 공유하는 식으로 계산기 받은 값을 치르겠다 하는 것이었다.

베를린 생각으로는 이미 검증된 기술도, 독일에 없는 기술도 아니니, 혹시 조선이 눈치를 채고 말을 돌리면 어떻게 할지를 걱정할 만큼 독일에 유리한 교환이었는데, 사실 훨씬 허무맹랑해 보이는 기술이라 하더라도 시비(施肥)에 쓰임새 용하다 하면 조선국의 군신(君臣)과 사민(士民) 중 마다할 사람이 외려 드물 것이었다.

하물며 그 기법으로 화약도 능히 생산할 수 있다 하니, 그렇게 전용되는 일이 있다면 안타깝겠지만 그래도 기술의 쓰임은 많을수록 좋지 않겠는가.

“이조와 예조, 공조에 전하여 우리 학사(學士)로 그 하씨와 더불어 일할 만한 이를 널리 구하도록 하시오. 이때를 대비하여 안양대군이 서양에서 미리 과학의 스승될 인재를 여럿 구해왔으니 참으로 종사의 보살핌이 아닐 수 없소.”

은근히 아들녀석 자랑을 하면서 귀남이 말했다.

그렇게 정강사 사람들과 총리 전봉준이 모두 물러가고, 함께 청정(聽政)하는 세자만 남았다.

“연(姸)이가 학문을 좋아하니 이 얘기를 들으면 기뻐하겠구나.”

연이란 곧 귀남의 맏손녀 선경군주(璿慶郡主)였다. 모계로 내려오는 공부 머리가 한데 모였는지 총명하여 – 세자빈 김씨가 스스로 아이들 가르칠 창녕부부인을 경계하여 아동 가르치는 법을 널리 취하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 종실을 이어갈 원손에 버금가는 귀애(貴愛)를 한몸에 받고 있었다.

그런데 세자가 걱정하는 듯한 얼굴을 성급히 감추려 노력하는 것 아닌가.

“무언가 걸리는 바가 있는 게냐?”

“그렇사옵나이다.”

“내 앞에서 털어놓지 않더라도 어차피 막내 귀에 들어가면 다 내게도 전해질 것이니라.”

그때 결혼하기 싫다며 난리를 치던 경양대군은 아주대회 끝나고서 완전히 생각이 달라졌는데, 섬라국왕은 한 번 조선 다녀오면 옹주의 마음이 바뀌리라 여겼는지 오히려 더욱 꺼리게 되었다. 허나 아유타국 얘기 먼저 꺼낸 허물이 그쪽에 있었으니, 어찌 주워담겠는가.

그리하여 다시 몇 달을 더 끌다가 겨우 올해 가을 국혼 맺기로 결착이 났으니, 그와 동시에 열 길 우물과 같던 경양대군 마음씨가 도로 야트막한 웅덩이와 같이 경망스러워졌다.

“그것이... 사람의 재지(才智)와 문명 날로 발전하는 것이 두렵다 여겼습니다.”

“어째서 그렇더냐?”

“이번은 요행히 우리에게 쓰임새가 없는 술기를 얻어 이처럼 교섭하였는데, 그럼에도 그간 숨겨오던 정강사가 드러나게 되었으니 다음에는 남몰래 개발하여 내놓기가 훨씬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술기의 발전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으니, 이번에 영국과 독일이 동시에 만들기로 공표한 전함만 보아도 능히 그 어떤 이전의 거함을 상대할 수 있다 하지 않습니까. 이러한 일이 다시 이어지게 되면, 과연 아바마마께서 처음 사위(嗣位)하셨을 때와 같은 곤궁함을 피할 수 있을는지...”

조심스레 털어놓으니 너털웃음 돌아온다.

“허허,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하였더니 그것이었구나. 내 생각하기에는 외려 두려울 것이 없느니라.”

“연유를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귀남이 원자폭탄에 생각이 닿았을 적 하던 고민과도 이어지는 물음이었기에, 간만에 천기를 누설하기로 하였다.

“세자의 말처럼 천하 문명이 날로 발전하게 되면, 사람도 절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만일 그러지 않는다면, 문명이 사람을 절로 해치게 될 것이니, 스스로 두려워하며 언행을 삼가지 않겠느냐?

예컨대 한 번에 도호부 하나를 진멸할 수 있는 흉포한 진천뢰가 세상에 나오게 되면, 다들 그것을 가지려 욕심을 내면서도 함부로 쓰지는 못할 것이니라.”

잘 이해 못하는 세자가 한창 머리를 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귀남도 저의 머리로 이해한 것이 아니라, 쏘련과 핵전쟁을 한다고 두려워한 것 사십 년, 북괴가 핵을 만든다고 난리친 것 삼십 년을 고루 겪고서 내린 결론이었지만.

“그리고 그것 하나만 있으면 이전에 군함이니 화포니 하는 병기가 아무리 극렬하더라도 나라 지킴에는 족할 것이다. 또한 우리가 그런 물건 나왔을 적 도덕과 명분 얘기하려면, 우리 또한 그것을 능히 만들 수 있어야 하기는 할 테다.

혹 난행(亂行)하는 무리가 나온다면 마땅히 예로써 타이르고 덕으로써 가르쳐야 할 터인데, 서당의 훈장도 회초리가 있어야 학동이 말이 듣지 않겠느냐? 내 나라 지키는 힘을 누누히 말한 것이 이 뜻이다.”

여전히 갸우뚱하는 고개를 애써 곧추세우는 세자는, 언제고 그런 물건 나온다면 곧장 포착할 수 있도록, 저의 주변 공조 사람들에게 은근히 물어보고 다니라고 두 대군에게 일러줄 생각을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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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역사에서 전간기 독일 해군 재건과 2차대전 초기 해상전을 총괄하였던 에리히 레더는 1901년 중위 시절 전대장으로 있던 하인리히 왕자(빌헬름 2세의 동생)와 안면을 트게 되었습니다. 존재감은 없지만 묵묵히 맡은 일을 잘 하는 이 초급장교를 눈여겨본 하인리히 덕에 레더는 1905년 해군본부 공보담당관을 맡으면서 티르피츠 제독과 연을 맺게 됩니다. 이후 티르피츠의 대양해군 건설론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면서, 황실과 티르피츠라는 두 연줄에 힘입어 고속으로 출세하게 되지요. 그리고 그 직전에는 외국어에 능숙하다는 점으로 인해 러일전쟁 참관무관으로 극동에 파견되기도 했는데, 작중에서는 다른 이유로 극동에 오게 되었습니다.

이후에도 해군의 핵심 인사로 남아있던 레더는 나치 집권 후 해군 재건에 힘쓰면서 1939년 티르피츠 이후 최초의 대제독(Großadmiral) 자리에 오르기도 했지만, 이것이 그의 말년을 불행하게 만드는 원인이 됩니다. 2차대전 개전 시점에서 해군은 제대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정권의 실세 괴링과의 반목, 연이은 해군의 졸전 등으로 인해 끝내 사임하고야 맙니다. 종전 후에도 체포되어 전범재판에 올랐고, 고령으로 석방되기까지 옥고를 치러야만 했지요.

여담으로 레더 군생활 초기의 듬직한 후원자였던 하인리히 왕자도 교주만 점령 후 독일 동양전대 사령관으로 잠시 재직하였는데,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친선 도모 목적으로 일대를 순방하면서 1899년 조선에 들린 바 있습니다. 이때 지금은 인왕산 자락으로 이전된 경희궁 황학정(黃鶴亭)에서 국궁을 쏘아보기도 했다고 합니다.

19세기 중반을 거치며 국제 외교무대의 관례로 자리매김한 주재무관은, 제국주의 열강 간의 군비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첩보활동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특히 영국과 독일 양국은 주재무관을 통해 상대국의 건함 동향을 파악하는 데 힘썼지요. 양국의 차이라면, 영국 해군이 입수한 첩보는 내각과 그럭저럭 공유된 반면, 독일 해군의 첩보는 여간해서는 해군본부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는 점이 있겠습니다. 1905년 초 영국의 신규 전함이 대구경 주포만을 탑재한(All-big-gun) 형태로 건조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한 티르피츠가 다른 부처와 협의 없이 다음해 해군 건함예산 추가를 요구하여 관철시킨 것은 그 한 가지 예가 되겠습니다.

‘라임나무 클럽’의 이름은 지금도 독일 연방의사당(Bundestag)으로 쓰이고 있는 제국의사당(Reichstag) 옆의 운터 덴 린덴 대로(Unter den Linden, Linden=라임나무)에서 따왔습니다. (열매 라임과는 무관한 나무입니다.) 우리로 따지면 광화문 광장 정도에 해당할 만큼 역사적으로 베를린의 주요 건물들이 밀집한 대로로, 브란덴부르크 문도 이 대로의 끝에 있습니다. 격동의 독일 근현대사를 모두 겪은 대로라 하겠습니다.

하버-보슈법은 흔히 질소 고정에 성공한 첫 사례로 간주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앞서 무정부주의자들의 구아노 채굴 에피소드에서 소개되었던 것처럼, 이미 19세기 말에는 구아노의 고갈 가능성이 진지하게 제기되고 있었고, 전세계 비료 생산량의 3분의 2를 독점한 칠레가 독단적인 가격정책을 펼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비료 없이는 급증하는 인구를 부양하기 어려웠던 독일에게 이는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19세기 말 구아노 대신 칠레초석이 개발되기 시작했지만,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칠레가 주 산지였기 때문에 문제는 남아있었습니다. 더구나 영국과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화약의 원료로도 사용되는 구아노와 칠레초석의 수입선이 막힐 수 있다는 사실은 큰 위협으로 부각되게 됩니다.

이에 1890년대부터 유럽, 특히 독일 과학자들은 질소 고정을 위한 방법을 본격적으로 모색하기 시작하였는데, 작중 시점에서 가장 유망하였던 것은 독일 화학자 아돌프 프랑크와 니코뎀 카로가 개발한 프랑크-카로법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비르켈란-에이드법이나 파울링법, 바디슈법 등이 모두 1905년 시점에서는 유망한 공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공통적으로 에너지 효율이 낮다는 문제가 있었기에, 비교적 저온·저압에서 적당한 촉매만 있으면 대량 생산이 가능했던 하버-보슈법에 의해 대체되게 됩니다. 그렇지만 하버가 자신의 실험을 성공시킨 것이 1909년이고, 이것이 칼 보슈가 이끄는 연구진에 의해 대량생산에 성공한 것은 1913년이었기 때문에, 1차대전 당시까지도 프랑크-카로법과 비르켈란-에이드법이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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