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 움직이는 바큇살 (2)
공자가 초나라에 머물 때, 미치광이 시늉을 하는 숨은 현인 접여(接輿)가 찾아와, 문앞 서성이며 공자를 봉황에 빗대어 걱정하는 노래를 불렀다던가. 전봉준 본인 생각에 자신은 공자에 한참 못 미치니 – 당장 키만 보아도 그렇지 않은가 – 미치광이 시늉하는 현인 대신 진짜 미치광이가 찾아오는 것도 가하다 싶었다.
일국 총리 예정쯤 되는 사람으로 내방한 외국인 쫓아냄도 좋지는 않으리라 여겨, 만나겠노라 하고 나왔더니 옷차림은 말쑥한 사람이 언행은 영 이상하였다.
대뜸 악수를 하고서는, 함께 나온 아내를 보고서,
“아름다우십니다, 부인.”
하는데, 저와 같은 생각 들었는지 엘러노어도 영 뜨악한 반응이었다.
그러건 말건 엘러노어에게도 악수를 청하고, 그 다음 다시 전봉준과 악수하여 세 번을 채운 테슬라가 말했다.
“하하. 압니다. 사람들이 저를 종종 독특하다고들 하는데, 조금 억울한 면이 있습니다.
저는 일련의 합리적인 원칙에 따라 사고할 뿐입니다. 예컨대 여성과 귀걸이는 어울리지 않고, 특히 진주 귀걸이는 더욱 혐오스럽다는 것이 있지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으신 것만으로도 아리땁다 할 수 있지 않을지요?”
슬슬 경무서에 연락해야 하지 않을까 싶을 무렵, 마치 진자가 되돌아오는 것처럼 다시 멀쩡한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제가 찾아온 것은, 그 ‘라디오텔레폰(Radiotelephone)’ 문제 때문입니다. 세계 최초의 시도가 거하게 실패했다고 들었는데, 저라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습니다.”
런던 시절 장인어른에게 순박한 촌놈이라 놀림당하던 것도 꼬박 스무 해 전 일이다. 자기가 하는 말을 스스로 믿지 않는 사기꾼과 정말 진지하게 믿는 괴짜는 능히 구분하고도 남았는데, 저 당당함은 후자에 해당한다는 증좌였다.
“제가 귀국이 도둑질을 도왔다고 했다는 얘기 들으셨겠지요? 무선 음성송수신의 발명자는 마르코니 그 자가 아니라 바로 저입니다! 물론 남들이 훔쳐간 제 발명이 한둘이 아니고, 마르코니 그자는 그 중 고작 17가지만 훔쳐갔으니 나은 축에 들지만, 동양 속담을 빌리자면 ‘오십 피트나 백 피트나’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마르코니의 ‘업적’을 이 나라에서 인정해주는 바람에, 그 이탈리아 절도범이 날뛰면서 저의 소위 ‘발명품’을 전세계에 홍보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 때문에 저는 후원을 잃었고요.”
대체 저보다 한참 못난 마르코니나 그 에디슨 같은 작자들이 무엇 덕에 그리 승승장구하는가, 테슬라는 알지 못했지만 대개 사업 수완의 차이였다. 동양 소국에서 노벨상 수상한 것을 부풀려 전세계가 저의 발명을 인정했다고 하면서, 그 J. P. 모건의 후원을 받아내는 데 성공한 마르코니였다.
가차없이 에디슨을 쳐냈던 것처럼, 수익이 된다면 눈 깜짝하지 않고 아무 연줄 없는 세르비아인 따위 언제든 이탈리아인으로 갈아치울 수 있는 모건이었는데, 그 전에 더 적극적으로 등쳐먹을 생각 하지 않고, 심지어 테슬라의 그 기괴한 무선방송탑 사업에 초기 자금을 지원해준 것만 해도 미국 자본가들 중에서는 가장 양심적인 축에 든다고 해야 할 터였다.
그런데 에디슨만큼 싹싹하거나 돈벌이하는 재주도 없는 테슬라가, 가뜩이나 미덥지 못하다는 평이 나오는 중 그 탑을 더욱 성대하게 지어 무선통신뿐 아니라 송전까지 가능하게 하겠다며 자금을 더 내놓으라 하였으니, 그것까지 받아줄 성품이라면 모건이 아니라 무슨 진인(眞人)쯤은 될 것이었다.
“하지만 모건 씨는 늘 관대하면서 나름대로의 – 물론 어디까지나, ‘나름대로’지만 – 통찰력도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잘 풀리려던 차에, 이곳 조선에서 그 대토론회를 마르코니의 ‘기술’을 가지고 중계한다는 소식이 뉴욕까지 전해지면서 아예 가망이 없어지고 말았지요.”
“흠흠. 선생의 어려운 사정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마르코니 씨의 발명이 먼저 우리 쪽에 전해졌고, 더구나 수상자 선정은 무슨 정치적 논리가 아닌 엄정한 학문적 판단을 거쳐 내려진 것입니다.”
“아, 물론 과거의 일을 두고 조선을 탓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것, 제게도 기회를 달라는 것이지요. 듣기로 자전거 가게 운영하며 부업으로 비행 기계 만들던 형제도 중히 채용한다던데, 설마 저 같은 인재를 마다하시겠습니까?”
안양대군이 퀴리 부부를 데려온 일을 두고 세간에서는 천리마의 뼈 사온 고사에 종종 빗대곤 하였는데 - 그 ‘조소늄’ 발견 후에는 그런 얘기가 쏙 들어갔다 – 오라는 천리마는 아니 오고 무슨 도깨비 같은 작자가 왔는가 싶었다.
“그... 저는 아직 총리로 부임하지도 않은 상황이고, 해결해야 할 국정의 현안도 적지 않습니다. 밤이 늦었으니 우선 돌아가시고, 몇 달만 기다리시면 그동안 관련 부처를 통해...”
“아, 현안이라! 맞습니다. 그런 게 있다고는 오는 길에 들었지요. 농촌에 문제가 조금 있다고 하던데, 지난 토론회 의제로도 올라갔다지요?
그러면 이건 어떻습니까. 그 문제, 제가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조금은 구미가 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더 듣기를 청하니, 나오는 답의 상태가 영 무엇하여, 광(狂)과 현(賢) 사이에서 다시 진자가 앞으로 휙 넘어간 듯했다.
“단순한 문제입니다. 충분한 물과 태양광만 확보된다면, 지금 조선에서 재배하는 것보다 훨씬 빽빽하게 작물을 심어도 적절한 생장조건을 구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같은 면적에 더 많은 씨앗을 심는다면, 그에 맞추어 생산량도 늘 수밖에 없지요.
또 참새나 쥐 같은 유해한 조수를 잡는 것도 방법일 텐데, 꼭 인력을 빌리지 않더라도 특정 대역의 전자기파를 방사하여 살상할 수 있습니다. 작은 동물들이니, 인체에는 미소한 부작용만을 일으키는 입사량으로도 충분히 살상 효과를 낼 수 있겠지요. 시간과 예산을 주신다면...”
농사 경험이야 소싯적 무논에서 농사 도우며 거머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제공한 정도인 전봉준이지만, 그만큼으로도 어지간한 서구 지식인들 – 심지어 사회주의자들 중에서도 – 보다 해박하다 할 만했다.
그랬기에 테슬라 입에서 나오는 소리에 시큰둥할 수밖에 없었다.
“농경과 관련되어 이전에 연구를 따로 진행하신 바가 있으신지요?”
“그, 경험의 부재가 항상 결격사유인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처음이라는 말씀이시군요.”
사실이 그러하였기에 잠시 테슬라의 말문이 막혔다.
“후... 물론 사회주의자로서, 그리고 지금 이 나라를 이끌어가는 데 한몫 거들게 된 입장으로서 기술의 발전은 항상 환영할 일입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당면한 현안을 실질적으로 해결하는 데 우선순위를 둘 수밖에 없습니다. 토론회 소식을 들으셨다니 이해가 쉽겠지요.”
완곡한 축객령에 테슬라도 마침내 다급해졌다.
“조금만 더 들어주십시오. 충분히 도움될 만한 것이 있습니다. 고안해놓은 것이 한둘이 아니고, 제 머릿속에만 있는 발상도 서재 두셋은 채울 만하니까요. 음... 이건 어떻습니까?”
기관총 쏘듯 우르르 나오는 말이 한참 이어진 뒤에, 그제야 테슬라가 덧붙여 물었다.
“어, 죄송합니다만, 펜과 종이를 주시겠습니까?”
나라의 중대사란 모름지기 길일(吉日)을 골라 시행함이 예로부터 내려오는 법도였다.
그런데 개화한 눈으로 보니, 무릇 천기의 길흉이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크게는 재변(災變)이 없고 작게는 천후(天候) 나쁘지 않으면 그것이 길한 것이었다.
아예 그럴 재주가 없었다면 모르겠으되, 이제는 아주대회에서 술수 겨룰 정도로 얼추 그 도에 통한 이가 생겼고, 또 아주 일원이 화평하여 전보로 언제든 저 서쪽 중원의 일기를 알 수 있었으므로, 비록 종종 틀리는 일은 있어도 날씨의 개략은 이제 능히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해 넘기고서 길일 정하여 정식으로 영의정과 총리대신직을 제수하니, 행사에 맞추어 택일한 관계로 그로부터 며칠 지난 지금도 날씨는 온난하였다.
그러나 천지인 삼재(三才)가 항상 함께 가는 것은 아닌지라, 천기(天氣) 온화하다 하여 자연히 사람 사이도 따뜻해지는가 하면 그것은 아니었다.
관원들 치고 개화당이나 자유당 당색 또렷한 사람은 많아도 공산당은 드문 것이 현실이었고, 조만간 개각하면 당장 저들 자리는 멀쩡하여도 판서나 참판 자리에는 ‘적인(赤人)’ - 적인(狄人, 오랑캐) 연상케 하는 못된 말이었다 – 앉아 그들 눈치 보게 될 것이 명백하였다.
더구나 전봉준 본인도 관과 얽힌 경험이라면 동헌 마루 위보다는 아래쪽에 있던 경력이 훨씬 길었던 사람이라, 고시의 난류 거슬러 용문(龍門) 오른 인재들로서는 전봉준 보는 눈이 아무래도 청안(靑眼)보다는 백안(白眼)에 가까웠다.
“흠흠, 영상, 계시오이까.”
그나마 정강사 계속 맡고 있는 김윤식은 그럴 사람이 아니었으니, 이런 이들부터 시작하여 조금씩 사람들 마음 잡아 나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전봉준은 생각하고 있었다.
“아, 어서 드시지요. 마침 차를 한 잔 하려던 차였습니다. 더 내오라 하지요.”
“하하, 금번 내각은 드디어 가배 일색을 벗어나게 되었으니 늙은 사람에게는 좋은 일이외다.”
김윤식이 뼈 있는 농을 던졌다. 그 말마따나, 민태호를 제하면 계속 법국에서 서양 문물 배운 이들이 집정하다가 처음으로 영국 홍차물 든 사람이 영상 자리에 올랐으니, 가배가 입이나 몸에 맞지 않는 이들에게는 호소식이었다.
후다닥 나온 잔을 기울이며 김윤식이 본론을 꺼냈다.
“태씨의 도안을 모임에서 검토하였는데, 먼저 그 어뢰로 말하자면 참으로 훌륭하여 병비의 계책으로 삼을 만하다고 중론이 모였소이다.
허나 도안의 내실을 살피면 포풍착영(捕風捉影)과 다름없지 않은가 의심을 거둘 수 없으니, 정강사에 공학과 과학 이치에 밝은 사람이 부족한 탓인지, 아니면 태씨가 전한 도안에 흠결 있는 탓인지 함부로 단언할 수는 없는 일이외다.”
예컨대 사오년 전에 미리견 땅에서 전영(특허) 내었던 그 어뢰만 하여도 그러하였다.
어뢰야, 근래 계속해서 언급되기를 장차 해전의 모양새를 바꿀 수 있는 대단한 무기라고들 떠들곤 하였으므로 정강사에서도 모르는 바 아니었으나, 태씨가 고안한 것은 무작정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닌, 복사(輻射, 라디오)의 법으로 방(放)한 뒤에도 사람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신통한 물건이었다.
복사로써 사람 목소리나 전보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이리저리 움직이라 하는 지시도 내릴 수 있다 하니 문외한이 듣기에는 무슨 도깨비 놀음 소리였던 것이다.
“비록 나라에 스스로 과학의 이론을 창안하는 사람은 아직 없다지만, 남의 이론이나 주장을 살피고 그 잘잘못을 가릴 만한 학인(學人)은 적잖이 있지 않습니까? 만일 정강사 안의 소식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걱정하신다면 공안서를 통해 대책을 강구해보지요.”
“고맙구려. 허나...”
“예, 혹 또 다른 일이 있는지요?”
“일전에 건비호가 하늘 처음 날았을 때, 고균이 비행기 무용하다 설파하며 이르기를, 이러한 기물이 국방의 대의를 거스르는 빌미가 될까 두렵다 하였소.”
그때야 나랏님 위엄으로 날게 만들었다지만, 불과 한 해 사이에 무섭게 재주가 늘어 지금은 능히 십수 리를 거뜬히 날고, 여(呂)자 모양으로 공중제비도 돈다 하였다.
구주의 경쟁자들은 어디 정말 제대로 날기는 하였겠냐며 합심하여 비방하고 또 그 의의를 낮추어보곤 하였는데, 그것이 라이트 형제는 물론이요, 무엇보다 안양대군의 오기를 북돋았던 것이다.
어쨌든 아직 비행기 만드는 데 그렇게 비용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국방에 관한 귀남의 어심이 원체 확고하였기에 결국 김옥균 걱정은 기우(杞憂)로 끝나는가 싶었는데, 바로 그 국방에 들어갈 국용을 나라 백성들 고루 잘 살게 하는 데 전용하자는 주장을 펴는 이 전봉준이 보무당당히 육조거리와 광화문을 오가게 되었던 것이다.
“태씨의 창안한 바를 영상께서 그대로 옮겨주심은, 반드시 속뜻이 있기 때문이라, 정강사 안에서 그렇게 수군대는 이들이 적지 않더이다.”
“올바르게 헤아렸으니 무어라 더 할 말이 없습니다.”
“허...”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성상의 뜻이 확고하다 하여도 간언할 바는 간언하여야 합니다. 적어도 저는 그리 여깁니다. 만일 그리하지 않는다면, 제가 그 국사공론회에서 떠든 바를 듣고서 저를 추대해준 이 땅의 백성들을 속이는 것과 같지 않습니까?
농협의 제도를 전국에 널리 퍼뜨려 소출을 고루 늘리고, 더 나아가서는 팔도의 대소 군현에 각각 나름의 업이 생기게끔 하는 것이 제가 품은 큰 계책입니다. 이제 와서 말씀드리지만, 혹 제가 정승의 반열에 들지 못하더라도 다음 내각에서 진지하게 다룰 수 있도록, 생각의 초안을 개화당에 미리 전달하기도 했지요. 그것을 위해서는 결국 국용을 어디선가 얻어와야 하고요.”
“그러나 그러한 시무책을 실지로 행하려면 결국 정국이 평탄하여야 하는데, 내각과 참의원의 뜻을 한데 아우르기도 전에 성심과 어긋나게 되면 끝내 뜻을 못 이루지 않겠소이까?”
“영의정은 일인지하 만인지상 자리라 들었습니다. 아무리 위에 모시는 한 분이 귀하시다 하나, 그것만을 생각하면 여덟 글자의 소임 중 넷만 행하는 것이니 반쪽짜리 영의정이지 않겠습니까?”
국사공론회 끝나고, 그 해몽이란 사람 말은 참 잘하더라 하는 세평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었다. 언설의 정교함이나 치밀함이야 남만 못할지 몰라도, 그것을 육성으로 옮겨 외치듯 꺼냄에 확고한 열기가 있으니, 사람 목소리를 그대로 옮길 수 있게 된 작금에는 참으로 맞는 재주였다.
“그리 심지 굳으시니 이 늙은이가 무어라 더 하겠냐만, 아무래도 걱정은 연로한 사람의 장기라, 어쩔 수 없구려.”
“너무 심려치 마시지요. 병비는 줄이고 대신 이 태씨가 제안한 것과 같은 재주로 벌충한다 하면, 능히 성심도 돌릴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린 것은, 만에 하나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의 일이지요. 우선 해보고 난 뒤에 다시 고심할 일입니다.”
하고서는, 농담삼아 덧붙이기를,
“그리고 병비 줄인다 하면 육조 가운데서 적어도 호조는 확실히 제 편으로 돌려놓을 수 있겠지요.”
하면서 식어가는 차를 홀짝이는데, 김윤식 대꾸하기를,
“만일 병비 나가던 것을 돌려 영상의 그 계책 시행하는 데 쓴다면, 결국 짊어진 가마니 내려두고 대들보 걸쳐매라 하는 격이라, 꼭 그렇지만도 않을 테요.”
하였다.
“다시 진지하게 고언삼아 말하자면, 영상께서 귀한 자리에 오른지 얼마 되지 않아 그처럼 큰 뜻을 편다면, 여러 사람이 놀랄 것이요, 그중에는 군심(君心)뿐 아니라 군심(軍心)도 있을 것이오.
영상의 심지 굳고, 또 정정당당히 민의 받들어 이곳에 오른 분께 함부로 잘잘못 말할 수도 없는 것이지만, 삼가 바라건대 이 이치는 알고 미리 대비하기를 청할 뿐이외다.”
“고맙습니다. 달게 받겠습니다.”
각오 다지는 전봉준이었다.
그런데 엉뚱한 데서 문제가 먼저 불거졌으니, 임금도, 군부도 아니요, 안양대군이 모셔온 마리 퀴리가 선제적으로 나섰다.
“조선은 평화를 사랑하는 나라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지금 무슨 짓이지요?”
“무엇을 두고 그리 말함인지 알려주지 않으면 어찌 스스로 알겠소?”
저의 형 군대 가 있는 동안 대신 자리 맡아두고 있던 – 군대 가 있는 삼 년 동안 공조의 제 자리 없어지리라 믿은 안양대군은 그의 아버지가 자식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애틋한지를 몰랐던 것이다 – 경양대군이 우당탕 달려왔는데, 마리 퀴리가 단단히 팔짱 끼고서 단언하였다.
“그 ‘정강사’ 관청에서 협조를 청하는 공문이 들어왔더군요. 무슨 기이한 생각을 품고서 그러는지는 몰라도, 저는 조소늄이 무기를 개발하는데 쓰이는 것은 학자로서 용납할 수 없어요.”
테슬라 딴에는, 허장성세 부리는 것과는 별개로 미국에서 후원 잃은 만큼 조선에서 단단히 후원 얻어내고자, 잡히는 대로 마구 투고하였는데, 개중에는 얼마 전 조소늄과 폴로늄에서 관측되는 흥미로운 현상을 ‘복사활동(Radio-activité, 방사능)’이라 이름 붙인 퀴리의 업적을 건드리는 것도 있던 것이다.
“그... 어, 조금 오해가 있는 듯하오.”
“그러면 풀어주시지요. 그 전까지는 정강사의 요청을 포함해, 조선 정부가 요구하는 어떤 학술활동에도 응하지 않겠어요.”
“아니, 주상께서 계신 한양 한복판에 있으면서 그리 소란을 일으키면 피차 곤란한 일 아니오?”
“그렇지요. 계약 조건을 무단으로 위반했다는 이유로 저를 내쫓을 수도 있을 테고요. 하지만 제 이름이 붙은 무기가 인명을 살상했다는 말을 평생 듣는 것만 할까요.”
귀남이 나지오로 사람 목소리 듣겠다 한 데서 시작한 파란이 퍽 크게 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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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선 송전, 와이파이와 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 등등, 오늘날에는 전기차나 이상한 강아지가 먼저 연상되는 경우도 있지만, 테슬라라는 이름에는 수많은 미래지향적인 구상들이 함께 따라붙곤 합니다. 확실히 이런 개념들을 백 년도 더 전에 제시하고,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에서 – 그리고 무엇보다 실제 성과도 여럿 냈다는 점에서 – 테슬라의 천재성과 과학기술, 특히 전기공학 분야에서의 공헌은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간에서 부풀리는 것처럼 그를 독보적인 천재라고만 보기는 어려운 면도 있습니다. 그의 공상 중에는 현실적이었던 것도 있지만, 고주파 ‘죽음 광선(Death Ray)’이나 ‘학습능력 증진 전기장’, 오존을 이용한 연고 등 현실적으로 구현 가능성이나 쓰임새가 부족한 것도 많았지요.
공자가 초나라에서 접여를 만난 이야기는 『논어』와 『장자』에 모두 전합니다. 다만 만남의 정황은 조금 다른데, 접여가 공자의 숙소에 찾아와 문밖에서 노래를 불렀다는 것은 『장자』를 따른 것입니다.
라디오 신호로 조종하는 어뢰와 선박은 1896년과 1898년에 실제로 테슬라가 개발하여 특허로 출원한 것입니다. 이를 응용하여 1차대전 시기에 이미 초보적인 무인기가 개발되었고, 이후 1920년대에는 무선 탱크(소련의 텔레탕크 등)도 등장한 바 있지요. 하지만 대부분 실용성이 없었고, 무인기가 실제로 유용하게 쓰인 것은 1970년대 이후에 이르러서였습니다.
원 역사에서도 테슬라는 마르코니로 인해 꽤 피해를 보았습니다. 비록 테슬라 본인의 주장처럼 마르코니의 무선통신 기술이 모두 테슬라 본인의 발명을 베낀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마르코니가 기술적으로는 후발주자였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를 실제 성과로 옮기고 여기저기에 홍보하는 데 있어서는 마르코니가 훨씬 뛰어났고, 결국 J.P.모건은 테슬라가 자신의 무선통신과 무선송전 기술 실증을 위해 야심차게 추진하던 워든클리프(Wardenclyffe) 탑 건설에 대한 지원을 취소하게 되지요.
이때를 계기로 테슬라는 본격적으로 재정적으로 궁핍한 삶에 빠져들게 됩니다. 비둘기나 숫자 3에 집착하고, 진주 귀걸이를 혐오하는 등 강박증 증세도 이때부터 강하게 나타나게 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