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푸른 산 맑은 물 (3)
종친이 직접 나서서 나라의 예악과 문물을 가다듬음은 일찍이 세종대왕의 대에도 있던 아름다운 일이니, 국운 일신함이 그때에 능히 비할 만한 금일에 이르러 대군이 친히 이를 도움은 역시 가당한 것이라.
...라고 안양대군이 졸지에 공조에 붙어있게 된 것을 두고 세인들은 참으로 훌륭하다 하였는데, 그렇게 말하는 사람치고 정말 제게 도움되는 이가 없으니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아버지 환심을 사 보려다, 졸지에 과한 관심을 얻은 그에게 공조 관원들이 ‘부디 맡아주십사’ (즉 ‘네가 해라’) 청한 바는 곧 이름을 바르게 하는 것으로, 그때그때 중구난방으로 옮겼기에 어지럽던 과학과 공학의 낱말들을 올바르게 정하는 일이었다.
헌데 이름을 정하려면 먼저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야 하는 것이요, 귀찮아서 대충 정했다가 후에 폐단이라도 발생하면 사람들이 영영 저의 탓을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분명 자신이 명칭을 정하면 조선 팔도, 그리고 인천에서 공부하는 여러 나라 젊은이들이 그에 따르게 될 터이니 이는 엄청난 권한인데, 지나가던 참의 변수(邊燧)가 농으로 이르기를,
‘큰 권한에는 많은 야근이 따르는 법입니다.’
라 하였으니 참으로 그 말이 맞았다.
그러므로 눈물 머금고 – 하품할 때마다 고이니 과장하는 말이 아니었다 – 서책 뒤져가며 여기저기에 배움 구하였으니, 그나마 귀씨 부부가 어눌한 조선말로나마 조금 도와주고, 또 자육원에서 어깨 너머 배움으로 그럭저럭 견식 있던 별단이가 옆에서 거들어줘 근근이 버티고 있었다.
그나마 아버지 주상께서는 밤에 불 밝히고 있으면 기특하다며 가배와 달달한 주전부리 – 어머니께서 좋아하여 수랏간에서 많이 만드는 것이었다 – 보내주시니 조금 나았는데, 그러면 무얼 하는가.
머리 싸매고 있는데 문득 쿵쿵 소리 들리고, 이윽고 거대한 인영이 드리웠다.
“형님, 형님, 그 얘기 들으셨습니까?”
고개 돌려보니, 생긴 것은 곰 같되 은근히 저의 둘째 형을 닮아 눈치는 있는 경양대군이었다.
“안색 어두우심을 보니 이미 들으신 모양입니다.”
“아바마마께서 일거리 진천뢰(震天雷)에 불 붙여 내려주심을 이르는 것이라면 이미 들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양과자와 함께 전해온 어명이었다. 아무리 경양대군이 촉새라지만 직접 성심을 전하는 내관만큼 빠르겠는가.
“그래도 나랏일을 그리 짊어지시니 얼마나 좋습니까. 형님께서 평소에...”
“시끄럽다, 인석아. 힘 기른다며 몽치나 휘두르는 녀석이 무슨 나랏일을 거론하느냐.”
“허어, 그것도 다 아바마마의 깊은 헤아림에 따른 것인데 그리 말씀하시니 아우는 마음이 아픕니다.”
이 역시 체구가 장군감이니 먼 미래 젊은이들이 즐겨한다는 헬스인지를 하면 좋겠다 여긴 귀남의 발상이었는데, 주변에서 태조대왕 어진과 닮았다 할 때마다 뿌듯함을 느끼는 경양대군은 나날이 넓어지는 저의 어깨를 퍽 자랑스레 여기곤 하였다.
그러므로 마음 상하였다는 것도 시늉이요, 본심은 저의 형 놀리는 데 있었다. 그러나 그 본심이 너무나 잘 들어 마치 대못처럼 푹푹 박힘을 깨닫고서 절로 삼갔다.
“새로이 세상 빛을 보는 문물 속에 인명을 해치는 독이 있나 살피는 것도 가볍지 않은 일인데, 더 나아가 그것이 천지(天地)에 미쳐 혹 생령을 상하게 하지 않는지를 헤아리고, 혹 깨우치는 바 있으면 널리 알려 천하의 경계하는 바로 삼도록 하라 하셨다.
이것이 어디 하루아침에 될 일이더냐? 그리고 네놈은 아우가 되어서 언사 그러하니 구업(口業) 쌓기가 그리 즐겁더냐?”
나오는 독설의 본심은 한탄이라. 마음 독하지는 못한 경양대군의 얼굴에 송구함이 살짝 어렸다.
“휴우. 막막한 일이다. 육판서 십이참판의 절반이 달라붙어야 할 일을 나 홀로 하라니, 경무대 가서 대죄라도 해야 할까.”
“아니, 형님. 그걸 왜 혼자 다 맡으려 하십니까.”
‘이럴 때 보면 또 우직한 것이 은근히 큰형님 닮았다니까.’라는 말은 혹 형이 더 서러워할까 마음 속에 구겨넣으며 경양대군이 말했다.
“그건 또 무슨 소리냐?”
“어디 아바마마께서 만기친람(萬機親覽)하시어 오늘에 이른 줄 아십니까. 천하의 인재를 모아 고루 맡김이 우리 국제에도 명명백백히 나와 있는 도리일진대, 나라에 인재가 없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 적당히 명분 만들어 남들에게 시키면 될 일이지요. 형님께서는 대강만 살피시고요.”
그 무렵 우중충하던 하늘에 구름 잠시 개고 햇볕 한 줌이 들어오는데, 경양대군 던진 말이 차차 소화되면서 안양대군 표정 펴지는 것이 마치 천인감응(天人感應)하는 형세와 같았다.
“녀석, 안 그런 줄 알았는데 꾀 좀 쓰는구나.”
소심하게 몸으로 가리고 있던 주전부리 그릇을 슬쩍 아우 쪽으로 밀면서 무심한 듯 대꾸했다.
“낸 김에 조금 더 내 보아라. 그럼 무슨 명분이 좋겠느냐?”
“아니, 그 무슨 물 빠진 과객 구해줬더니 괴나리봇짐 타령하는 소리입니까.”
“봇짐이라니. 나 혼자서는 도저히 뾰족한 방편이 떠오르지 않으니 하는 얘기다. 이대로라면 아바마마께 찾아가, 부족한 둘째 형을 도와 나랏일 거들고자 하는 큰 뜻을 아우가 보였으니 부디 헤아려주십사 청해야 할 것 같구나.”
베푼 선의가 협박으로 돌아오니, 보기에 따라 그 앞에 놀린 것의 앙갚음으로도, 뻔뻔한 요구로도 풀이될 수 있는 일이었다. 허나 찾아온 사람은 경양대군이었으므로, 이 방 안 사정 모르는 이들이 어느 쪽 말을 일리 있다 여길지는 명백하였다.
“아니, 총명한 형님께서 스스로 고심하지 않으시고, 몽치나 뒤흔드는 아우에게 물으시니 이 어찌 가당한 일입니까?”
“그래, 아까 그 말은 미안하다. 내 심란하여 다소 지나쳤구나.”
허나 암만 뒤흔들어 보아도, 저를 서투르게나마 돕고자 한 마디 던졌을 뿐 무언가 깊은 생각을 가지고서 한 말은 아닌 듯하였다. 새삼 억울해하는 동생을 거꾸로 달래는데, 문득 마음 닿는 곳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요새 교우하는 이들 중에 육체사인가 뭔가 하던 이들이 있지 않더냐?”
“있지요.”
이번 내각이 가장 고심하는 정책 둘을 뽑으라면 새로 세울 경제개발 오개년계획이 하나요, 아주대회 개최가 또 다른 하나일 테다. 전자라면 몰라도 후자에는 지난 내각 때부터 저 좋아 분투해온 윤치호만한 적임자가 없는 고로 금번에도 유임되었는데, 윤치호와 어울려 이런저런 일 벌이던 서재필은 남에게 자리 내주고 밀려나 있었다.
저 두 사람이 하는 육체사 모임이 수박희(手搏戱)부터 총질까지 몸 쓰는 잡기 모두에 얽혀있다 보니, 경양대군 좋아하는 소위 ‘운동(運動)’ - 이 역시 성상 하유하는 말씀에서 처음 쓰인 낱말이었다 - 의 일에도 어쩌다 얽히게 되었다.
“그들이 다루는 것이 결국 사람 몸의 생육하는 이치인데, 결국 이번에 하교하신 바가 거기에 맞닿지 않겠느냐?”
“그렇습니까?”
“음, 홀로 하는 고심이니 괘념치 말고 듣거라.”
하고서 한동안 궁시렁궁시렁하니, 형 놀리러 왔다가 졸지에 눌러앉게 된 경양대군은 멋쩍게 양과자나 주섬주섬 집어먹었다.
“... 어떠냐. 사리에 맞는 계책인 것 같으냐?”
저의 입으로 방금 전 홀로 하는 고심이라 하지 않았던가? 우선 고개를 끄덕이니, 형이 저 덕에 무언가 계책을 내었거려니 할 뿐이었다.
“그러니까, 네 말대로 나 한 사람이나 이곳 공조에서 아바마마 하유하신 바를 모두 맡아 처결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할 일이란, 네 말대로 여러 사람을 한데 모아 그들로 하여금 천지인 화육하는 이치를 밝히고 또 알리게 하는 데 있을 테다.”
지난 번 구주행에서 깨달은바, 저들 잘났음을 굳게 믿어 의심치 않는 서양 사람들까지 넘어갈 만한 주장을 내어놓으려면 다분히 힘을 쏟아야 할 것이었다.
“그런데 알리기만 하여서 되겠습니까? 아우가 듣기로도 이번 일에 얽힌 공장과 고공이 한둘이 아니라 했는데, 하물며 다른 나라에 이르러서는...”
“그러니 더욱 열심히 알리면 될 테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있어 네가 좋아하는 그 고가활명수에 사람 상하게 하는 독물이 들어 있다고 갑자기 말한다면 너는 듣겠느냐?”
“만약 그렇다면 누군가 벌써 그런 이치를 밝혀내지 않았겠습니까? 세상에 허황된 말이 많으니 쉽게 믿지는 않을 것입니다.”
한참 땀 흘린 다음 따뜻한 물로 몸을 씻고, 그 다음 활명수 한 잔을 하면 그만큼 시원한 것이 또 세상에 없었다. (간혹 어머니께서 종종 ‘요즘 젊은 사람들은 퍽 편하게 산다’라고 하신다 들었는데, 경양대군이 알기로 저 태어나기 전에도 몸 씻고 헹구는 법도가 나라에 널리 있었다 하였으니 무슨 유난스레 여길 바가 있는가 싶었다.)
“그렇지. 그런데 만약 내가 직접 그렇게 일러준다면 어떻겠느냐? 거기에 더불어, 법국 서생 모모가 이런 이치를 밝혀냈다며 상세하게 증좌까지 내놓는다면?”
“그럴 리는 없겠지만... 아마 마음이 조금은 흔들리지 않겠습니까?”
“흐흐, 역시 그렇지 않으냐?”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제가 형님을 알기 때문에 가한 일 아니겠습니까? 남의 나라에 도리가 이러하다 설파하는 것은 또 사정이 다를 텐데요.”
“이미 적십자사라는 것이 있어 널리 이름을 떨치고 있지 않으냐? 네가 이른 이치를 쭉 미루어보면 우리도 그런 것을 하나 새로 세워 여러 나라에 걸쳐 도리를 전파하면 될 일이다.”
면암 대감의 친우인 서사(스위스) 사람 두남이 그처럼 대단한 사람임을 몇 해 전만 해도 몰랐던 두 사람이었다. 한양에 열국 사람들이 모여 구주 신보의 채사군들이 곁가지로 두남을 찾아가 그의 사정을 알리는 일이 없었더라면 아마 영영 몰랐을 것이었다.
“이치로 타일러 여러 나라의 선비들과 함께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그 나라 안의 공론이 알아서 우리 대신 힘을 써줄 것이다. 어떠냐?”
“역시 형님은 대단하십니다.”
“하하, 고맙구나.”
조각 한쪽이 드러났던 해는 도로 구름 사이에 숨었는데, 안양대군의 화창하게 갠 표정은 그대로였다.
경양대군이 한 마디 더 하고 몸을 일으키기 전까지는.
“이처럼 총명하시니 역시 나라의 여러 일을 맡아보실 만합니다. 아버님께도 언제고 상세히 형님의 지재를 고하도록 하겠습니다.”
“뭐라 하였느냐? 이 녀석, 당장 돌아오지 못할까?”
결국 그리하여 운산 광독의 일은 장차 멋모르고 당하는 일이 없도록, 공조가 후원하는 회(會)를 하나 꾸려 문물의 이롭고 해로움을 살피고 또 널리 알리기로 하였다.
그 외에도 처음 총리 김홍집이 발의한 건강보험이니 무어니 하는 방편이 여럿 있었지만, 아무래도 황란의 여파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새로 오개년 계획까지 착수하는 판이라, 현실적인 부담 – 김옥균의 표현을 빌리면, ‘그 보험을 말씀하시는 참의대부께서는 아울러 조세를 늘리는 데도 찬동하시는 것이겠지요?’ - 으로 말미암아 좌초되고야 말았다.
그 외에도 보여주기식으로 이런저런 조치들이 행해졌는데, 예컨대 광무총국의 대덕인 미리견인 후보가 광독으로 사람 상한 일을 숨기려 하였다 하여 탄핵하는 일이 있었다.
재벌과 세족들이 보기에도 긁어 부스럼 만든 그 양인이 문제의 꼬투리를 주었고, 민려(民黎) 눈에도 저의 잘못 감추려 하였다니 퍽 나쁜 자라. 하여 영락없이 저의 앞 사람들이 방관한 허물로 말미암아 죄 받을 판이었는데, 그때 국왕 귀남이 나서서 이르기를,
“듣기로 그 후씨는 비록 잘못이 없지 않으나 그 자리에 앉은지 오래 되지 않은 연소한 사람이요, 또 그 재주가 탁월하다. 멀리서 우리 동방까지 온 인재를 쉽게 내쳐서야 되겠는가.”
하여, 광무 대신 공조가 벌이는 다른 사업을 맡기기로 하였다. 마침 그가 운산 산중에 방죽을 세워 전기를 만들어내는 방안을 제안하였다 하기에, 여러 사람들 생각에 그가 적임자인 자리가 있었던 것이다.
“충주와 춘천 두 고을을 흐르는 강에 큰 방죽을 세우는 일은 나라의 큰 하천인 한강과 그 주변을 편안케 하는 것이다. 이번 오개년 계획에서 이를 맡아 시행하게 되었으니, 후씨로 하여금 이를 돕게 함이 마땅한 일이다.”
기무회의에서 발의된 바에 찬동하는 임금의 뜻이 또 이러하였다.
(후에 후버가 그 제언 세우는 방도를 기무회의에서 조리있게 설명한바, 그 자리에서 그의 지재에 찬탄한 귀남이 이르기를, 일이 잘 되면 방죽의 이름을 후보제(厚保堤)로 정함도 좋겠다 하였는데, 그러한 예는 일찍이 없었다고들 하여 대신 후버에게 소양(昭陽)이라는 아호를 내려 춘천 소양제와 연이 닿게끔 만들었다.)
“다들 바쁘게 사는구나. 나만 하겠냐만.”
그 후소양 선생의 이야기 – 저의 형 세자와 동갑내기라 하였다 – 들은 안양대군의 반응은 딱 이 정도였다. 그 계책을 처음 아뢰었을 때 칭찬을 받은 이후로 딱히 업무가 더 줄거나 하지는 않았는데, 그러다 보니 이곳저곳에서 그 방책 괜찮다 한 것과는 별도로 도통 진전이 없었다.
물론 서재필을 필두로 할 일 없던 개화당 젊은이들을 마구 끌어들여 회의 설립과 운영에 필요한 잡다한 일을 모두 맡기고는 있었지만, 정작 중요한 것, 예컨대 모임의 이름과 문양을 정하는 데 있어서는 결국 그 한 사람만을 다들 바라보았던 것이다.
“대공 각하, 이번에 엉뚱한 요청을 받아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통변과 함께 찾아온 마리 퀴리의 말에 비로소 안양대군은 스스로 하는 연민에서 벗어났다.
“무슨 일이오?”
“각하께서 후원하는 그 모임에서 제가 연구하는 이 ‘방사능’이 얼마나 인체에 유해한지를 알려달라고 하는데, 아직 원소를 분리해내지도 못한 판에 지나친 간섭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와주지도 않을 놈들이 퍽 말은 많다’는 투의 험한 어조는 통변을 거치면서 상당 부분 누그러져서 전해졌다.
“그 모임은 이름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던데, 일의 우선순위를 조금 잘못 정하고 있지 않은가 싶네요.”
자신이 잃어버린 고국의 이름을 따 폴로늄이라고 미리 이름을 정해둔 원소를 분리해내려면 아직 조금 더 시일이 걸릴 듯했다. 그나마 사정이 편 덕에 딸 이렌느의 육아는 걱정을 덜었지만, 물 다르고 말 다른 곳에 적응하는 것은 그리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그런 터에 저들이 뭐라도 되는 양 – 나중에 듣고 보니, 뭐라도 되는 젊은이들이기는 했다 – 찾아와서는 그리 뻔뻔한 요청들을 내놓으니, 가뜩이나 날카롭게 곤두선 신경에 더욱 거슬렸던 것이다. 이대로라면 다음에 찾을 방사성 원소의 이름을 조소늄(Josonium)으로 하려던 본래의 생각을 조금 고쳐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부인의 우려하는 바는 잘 알겠소. 내 그들에게 주의를 주겠소이다.”
“감사합니다.”
그때, 도통 진도가 나가지 않던 고민거리에 혹시 답을 구할 수 있을까 싶던 안양대군이 물었다.
“조금 민망한 일인데, 한 가지 물어도 되겠소?”
군주가 무치(無恥)라면 대군도 어느 정도는 뻔뻔해도 되지 않겠는가.
“무엇인지요?”
“부인을 괴롭히는 이 모임의 이름 말이외다... 고백컨대 아직 정하지 못했다오. 혹시 좋은 생각이 있소?”
잠시 생각하던 마리 퀴리가 말했다.
“마음 같아서야, ‘그만 건드리세요’나 ‘그 기구는 장난감이 아닙니다’를 말씀드리고 싶지만... 그런 개인적 감정을 제쳐두고 보면 분명 칭찬할 만한 목적을 가진 모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굳이 제게 물어보신다면, 그런 목적을 잘 드러내는 이름이 필요하다 하겠습니다.”
“그렇소. 이왕이면 저 적십자처럼, 확 눈에 들어오면서도 기억에 남는 그런 것으로 정하고자 하는데, 마땅한 방안이 떠오르지 않아 계절이 바뀌도록 계속 고심하고 있다오.”
“말씀하신 것이 자연과 인간 양쪽의 평안을 보호하는 것이지요? 자연 하면 역시 녹색이지요. 이왕이면 이름에 평화나 조화를 연상케 하는 단어도 들어가면 좋겠고요.”
처음에는 청산(靑山)이니 녹림(綠林)이니 하는 안이 나왔는데, 전자는 구주 나라에서는 산의 색을 청(靑)으로 칭하지 않는다 하여 곧장 기각되었고, 후자는 구주에서는 괜찮아도 이쪽 해동과 인근에서 오해받기 딱 좋은 이름이라 하여 또 폐기된 바 있었다.
그 이후로 딱히 색깔을 생각하지 않고 있었는데, 불현듯 떠오르는 바 있었다.
“정말 고맙소. 큰 도움이 되었구려.”
“그렇다니 다행입니다. 저는 그러면 이만...”
녹화회(綠和會)라는 이름을 머릿속에 새기면서 안양대군이 인사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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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듯 나온 변수는 원 역사에서는 최초의 한국인 출신 미국 대학 졸업자로 남았습니다. 그러나 이는 본인이 원한 유학이 아니라, 갑신정변에 연루되어 도미한 것이었고, 그마저도 생활고에 시달리던 중 졸업 직후 열차 사고로 사망하였습니다. 다행히 작중에서는 그럴 일 없이 평범한 관료로 지내고 있습니다.
경양대군이 ‘몽치를 휘두르는’ 것은 인디안 클럽을 말합니다. 19세기 인도에서 영국을 통해 보급된 인디안 클럽은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우리에게 익숙한, 아령과 역기를 이용한 웨이트 트레이닝이 보편화되기 전에는 영미권을 중심으로 가장 널리 보급된 운동기구였습니다. 처음에는 상당히 길었던 목제 곤봉은 이후 생활체육 용도로 전파되면서 점차 경량화·단축되는데, ‘국민학교’ 시절의 곤봉체조가 그 흔적입니다.
흔히 구별 없이 쓰이는 ‘제언(堤堰)’은 엄밀히 말하면 ‘제’와 ‘언’의 총칭입니다. 18세기 조선에서의 용례를 기준으로, ‘제’는 강의 상류에서 산 사이를 막은 것을, ‘언’은 하류에 널찍하게 막은 것을 각각 지칭했다고 합니다. 작중에서는 ‘댐’의 역어로 ‘제’가 쓰이게 되었습니다 (최원규 (1992), “조선후기 수리기구와 경영문제”, <국사관논총> 39).
오늘날 온전히 남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은 경기전에 있는 것이 유일하지만, 이는 고종 초기 복제하여 한양에 둔 것이 한국전쟁 중 다른 여러 어진과 함께 소실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 역시 임란 이후 유일하게 남은 전주 경기전 어진을 본딴 것이기 때문에 곤룡포의 색이 적색인 것을 제외하면 지금 남아있는 것과 동일합니다.
원 역사의 마리 퀴리는 1898년 십여 톤 가량의 피치블렌드를 직접 분해하는 고된 작업 끝에 폴로늄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몇 달 뒤 다시 라듐을 추출하는 데 성공하지요. 작중에서는 후자인 라듐이 ‘조소늄’으로 명명될 지도 모르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