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종, 군밤의 왕-228화 (228/320)

75. 닭의 머리 (2)

괴력난신 음사(淫祀) 베푸는 곳이라 하여 민영환은 주소를 건네주면서도 부디 그런 곳에 깊이 마음을 두지 말기를 청하였다.

허나 막상 가서 보니, 번듯한 건물에 당호도 떡하니 걸어놓아, 괴이쩍은 문양을 달아놓은 것을 제하면 딱히 이상할 것도 없었다.

“대군대감 되시는지요?”

난데없는 조선말은, 전후좌우 둘러보아도 갑자기 문 열고 나온 저 코쟁이 젊은이 입에서 나온 것이었다.

“알레이스터 크로울리라고 합니다.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어찌 아시었소? 나름 변복하고 왔는데...”

“과연 궁금해 하시는군요. 스승님께서 소생에게 일러주시기를, 이곳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를 감안하면 그리 어렵지 않은 문제라 답변드리라 하셨습니다. 우선 안으로 드시지요.”

“허...”

어차피 영국인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조선국에서 온 귀빈의 주위에 이목을 붙여놓을 것이요, 딱히 드러내기 민망한 일 하는 것도 아닌 고로, 혹여 흠례 범하여 기껏 주영공사관의 나름대로 중요한 – 민영환은 인정하기 싫은 현실이었다 – 연줄이 본국으로부터의 조치로 망가지게 만드는 그런 일만 막으면 될 것이었다.

하여 미리 연통을 보내둔 것인데, 어쨌든 이 황금개벽회가 암암리에 조선을 위해 그런 일도 돕고 있으니, ‘무엇 하는 곳인지를 감안하면 당연하다’라는 진령군 전언이 거짓은 아니었다.

“몹시 궁금해하시는 듯한 기운이 느껴지는군요.”

“박수라도 되는 모양이로군.”

“하하, 이역만리에서 고국의 말을, 그것도 생김새 다른 사람에게서 들었으니 궁금하게 여기지 않으면 목석(木石) 아니겠습니까.”

함께 걸어들어가며 살핀 건물 안쪽도 여전히 멀쩡하여, 유럽의 저택이 대략 어찌 생겼는지는 잘 모르는 안양대군이지만 딱히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그나마 정성 들여 저들 방식으로 표구해둔 조선산 그림들이 복도에 죽 전시되어 있는 것이 특색이라면 특색일 텐데, 살펴보니 그 그림들도 조선서는 점잖은 취향으로 대접받지 못할, 소위 관성대제(關聖大帝)나 그 비슷한 신장(神將)들을 다루고 있었다.

그런데 유독 하나가 눈에 띄는데, 화풍으로 보나 구도로 보나 서양 그림인데 어째 어디선가 본 듯하니 익숙하였다.

“다른 분들도 저 그림 내력을 궁금히 여기시더군요.”

이 자리에 험수씨 같은 사람이 있었더라면, 개벽회 정문부터 이곳까지의 구성이 모두 치밀하게 의도되어 있음을 드러내 밝힐 수 있었을 테다.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똑같은 생각을 품을 수밖에 없게 유도해두고는 그것을 맞히는 시늉을 하는 것이니, 진령군 본인을 만나기 전부터 절반은 넘어가는 셈이다.

“제가 직접 붓에 손을 댄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소재를 제공했으니 절반은 제 그림이라 할 수 있지요. 아이거(Eiger)의 산신령입니다.”

내력 풀어놓기를, 이 크로울리는 본디 유복한 집안의 자제였으나 부친을 일찍이 여읜 뒤로 인생사를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했다. 케임브릿지에 들어선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방황이 시작되었는데, 그때 클럽 한 구석에서 ‘신령의 여주인’ 이야기를 들었다 했다.

“그분께서 오신 뒤부터 심령주의니, 초자연 연구니 하던 사람들은 모두 두 갈래로 갈렸습니다. 이미 저 프리메이슨 사이에서 벌어진 논쟁은 외부인인 제게도 알려졌을 정도지요. 물론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스승님이셨지만요.”

집안에 여력이야 차고 넘치므로, 어찌 친하게 지내던 친우들과 함께 반쯤 장난삼아 강령회를 열기로 하고 초빙했는데, 만나자마자 덜컥 묻기를, ‘젊은이는 산 오르는 것을 어지간히도 좋아하는 모양이로군’이라 하였다는 것 아닌가. 이어서 언제고, 조만간 산을 오르다가 큰일을 당할 것이니 미리 준비하라 하였다.

물론 치기어린 마음에, 무슨 큰일 당하는지 한 번 두고나 보자는 심보로, 학기 끝나고 알프스 등반할 때 따로 준비는 하지 않고서 산행에 나섰다.

“곧장 아이거 봉에 올라 숨을 몇 번 들이쉬었는데, 하늘과 땅이 뒤집히면서, 무언가 형언할 수 없는, 초월적인 기운이 임하였지요.”

냉소적으로 따지면 젊은이 성미를 진령군이 슬슬 긁은 탓에 급성 고산병이 온 것이라 설명할 수도 있을 테지만, 크로울리는 경위가 어찌 되었든 저의 영적 체험만은 사실이라 믿는듯, 어딘가 까불거리던 말투가 갑자기 진중하게 바뀌었다. 물론 곧 원래대로 돌아갔지만.

“그때 제게 찾아오신 분의 인상을 급히 회고하여 그린 것입니다.”

마침 그 무렵 복도와 계단을 지나, 눈치 없어도 뭔가 중하다 싶은 방문 앞에 섰다.

“스승님, 알레이스터입니다. 대군대감을 모시고 왔습니다.”

“드시라 하세요.”

방에는 의외로 단정하게, 이곳에서 흔히 보았던 늙은 중산층 부인 같은 옷차림 하고 있는 진령군이 앉아 있었다. 크로울리가 고개 한 번 숙이고 문 닫고 나간 뒤에야,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곧장 부복하였다.

“나라의 은혜 입은 미천한 무당이 대군대감을 감히 뵙습니다. 요하시는 바가 있으시다면 어찌 한 몸을 아끼오리까.”

연이 있다고는 들었으나 곧장 이리 나올 줄은 몰랐던 안양대군이 외려 무안해지도록 예를 갖추었는데, 기실 진령군이 이리 명성 떨치는 데 공사관의 덕이 없지 않았기에 과하지만은 않았다.

그 성공에는 물론 개인의 수완도 있었다. 여전히 ‘동양의 신비’ 같은 말에 넘어가는 사람이 이른바 식자들 가운데도 한가득이니, 적당히 이용하기만 해도 – 예컨대, 강령회 전에는 투박하고 어색한 영어를 쓰다가 적당히 열기가 달아오르면 대갓집 영어로 말투를 바꾸는 식의 얄팍한 술수 – 모두가 열광하곤 하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어찌 족할까. 처음 큰 기대 없이 진령군을 데려다 놓은 대원군이 그 성공을 듣고서 미리 안배하기를, 갑자기 불씨나 노담의 학문에 대해 묻는 이들이 있어 무당 밑천이 드러나면 곤란할 테니, 그처럼 배움 필요한 일에서는 공사관으로 하여금 도와주기로 하였다.

어찌 보면 도움이요 어찌 보면 목에 칼 채운 셈인데, 진령군이야 어차피 한 번 작두 위에 오른 심정이어서 지금 딱히 더 아쉽게 여기거나 하지는 않았다. 권세 주는 이에게 넙죽 엎드리는 것이야, 이렇게까지 오기 전 저자 바닥과 한몸일 때부터 익혀온 술기 아니던가.

“몸을 축낼 것까지는 없고... 서생 하나를 찾고 있소.”

과연 놀랍고 어색한 일이 참 많다 여기면서, 곧장 말을 꺼내었다.

“지난 연회에서 도열한 전선 사이에서 난행한 배가 있었음은 그대도 들었을 것이오. 그 배를 창제한 공장(工匠)이 누구인지, 그것을 알고자 이리 찾아왔소이다.”

하니, 곧장 저의 앞에 두터운 책을 꺼내놓고서 몇 번 뒤적여 곧 찾아냈다.

“파슨스(Charles Algernon Parsons)라는 사람으로, 멀리 뉴캐슬에서 기기창을 운영하는 이입니다.”

“허... 어찌 그리 빠르게 찾았소?”

“왕림하시기 직전에 받은 신문에 그 이름과 소식이 나왔습니다. 미리 적어놓은 공을 보았다 하겠습니다.”

그냥 공사관에서 기다리기만 하였어도 발걸음 아낄 수 있었으리라는 것을 깨달은 안양대군은 허탈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에는 더욱 허탈해졌다.

공사관 돌아가서는 영국 신보들이 알았다면 그 관헌들도 진작에 파슨스를 찾아갔을 터이니, 여차하면 조선도 그와 만나려 한다고 민영환으로 하여금 말 전하라 하였다.

그랬더니 이게 웬걸. 그 영국이 뜻밖에 순순히 지금 파슨스 그 사람이 런던에 와 있으니 원한다면 만나보라며 답신한 것이었다.

이역만리 생고생에 이만한 운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발걸음 가볍게 찾아갔다가 무겁게 돌아왔다.

혹시 조선국에 와서 일해볼 생각 없느냐 하였더니,

“이처럼 귀하신 분께서 성의를 보여주시니 정말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입니다. 하지만 소중한 제의를 받아들일 수 없음을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아, 그저 마음이 무거울 뿐이로군요.”

기껏 중늙은이 파슨스를 찾아갔더니 나오는 말이 이처럼 정중한 시큰둥함으로 가득하였다.

“실은, 이미 여왕 폐하의 해군과 저 암스트롱(Armstrong Whitworth) 사에서 계약 제의를 받은 상태입니다.”

“기선이라면 우리 조선국과 그 이웃나라들에도 많이 있소만.”

“왕립해군 쪽에서는 구축함 두 척을, 암스트롱 사에서도 한 척에 각각 저의 터빈을 싣겠다고 했는데, 이미 회사를 차려서 운영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확실한 발주가 아니라면 함부로 고려하기가 어렵습니다. 귀국에서 제 터빈을 사용해주신다면 물론 두 팔 벌려 환영할 일이지요. 공사관을 통해 주문을 넣어주시면 되겠습니다.”

“하면 선생께서만 우리에게 오시는 것은...”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회사를 차려서 운영하고 있는 입장입니다. 그리고 설령 저하께서 저희 회사에, 이를테면 아시아 내의 특허권 같은 것을 주신다 하더라도, 솔직히 값이 헐하지만은 않은 제 터빈을 쓰려는 조선소가 얼마나 있겠습니까?

제가 만일 십년 전쯤에 이러한 제의를 받았다면, 전혀 거리낌 없이 귀국을 찾아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발명의 성과를 거둘 때로, 사업에 집중하여야 할 듯합니다. 다시 한 번 송구스러움을 전합니다.”

그렇게까지 말하니, 지금 안양대군이 아니라 전권을 받은 다른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딱히 마음 돌릴 방편이 없을 듯하였다.

그래도 한 번 시작한 일에서 난관 만났다 하여 곧장 포기하기에는, 스스로 부끄럽고 또 남의 눈치가 있는 것이라 – 당장 영국만 하더라도 민영환이 있지 않은가 -

먼저 찾아온 객이 있다 하여, 굳이 저 때문에 그대 스승에게 폐 끼칠 것까지는 없다며, 푹신한 의자에 앉아 낙담한 마음을 추스리던 안양대군에게 또 그 크로울리가 찾아와 말을 걸었다.

“뜻이 이루어지지 않으신 모양입니다.”

“거 관심법이라도 터득한 게요?”

뾰로통한 대꾸에 넉살 좋은 응대가 돌아왔다.

“스승님께서는, 진리에 닿기에 앞서 얄팍한 술수들은 모두 꿰고 있어야 한다고 하시더군요.”

그 진리가 무엇인지 사실 알지 못하기에 둘러대는 이야기였고, 크로울리도 얼마 전부터는 어설프게나마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승에 대한 ‘정’ 반절, 그리고 그 소위 술수들 가운데에 무언가 참된 것이 있으리라는 믿음 반절로 아직 붙어있는 것이었다. (언제고 의식을 치룰 때, 갑자기 무슨 흥이 솟았는지 점잖은 부인 시늉을 한순간에 걷어치우고 맨발로 작두를 타던 스승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했다.)

“그리고 드나드는 손님의 기색을 살피는 것은 하다못해 상점가의 종업원들도 익히는 술수지요.”

“뭐, 그러면 술수 얘기 나온 길에, 지금 내 뜻하는 바가 이루어지게 하려면 어찌해야 할지 점이라도 한 번 쳐 주시오. 복채는 줄 테니.”

갑작스런 점쟁이 대접에도 크로울리는 나이에 맞지 않는 미소가 그대로였다.

“복채야, 대군께서 이곳 협회를 찾아오셨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복채입니다. 굳이 직접 밝히지 않더라도, 어디 아시아 나라에서 찾아오신 젊은 귀인을 스승님의 수제자가 극진히 대접하더라... 그런 소문만 돌아도 충분한 일이지요. 오히려 그쪽이 더 좋기도 하고요.”

“그러면 복채도 받았으니 한 번 얘기나 들어봅시다.”

“이것도 따지고 보면, 저희끼리 하는 얘기지만 어디 잔칫상에서나 부리면 족한 얕은 수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정말로 얻는 바가 있다면 무슨 흠결이 있겠습니까?

자, 그러면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하고서는 눈을 크게 뜨고 그를 직시하였다.

“흠, 무언가 요구하였지만 상대를 움직이기에는 너무나 작은 대가였군요.”

주변 사정만 알더라도 얼추 짐작할 수 있는 말이라, 아직은 놀라기보다는 콧방귀가 나올 일이었다.

“하여, 다른 상대를 구하려 찾아오셨는데, 그보다 앞서 어디까지 대가를 내어줄 수 있는가를 대감께서 먼저 고민하셔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야만 더 헛걸음하지 않고 바로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의외로 깊은 말이 나와서, 은연중에 깔보던 안양대군의 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말이야 맞는 말이다. 아무리 대군이라지만, 그저 영국 여왕에게 축수하고 경하하는 뜻 전하고 돌아가는 것이 본디 맡은 바의 전부인 자신이, 돌아가서 구설수에 오르지 않으면서 내어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되겠는가?

재물로 따진다면 아무리 조선국이 국운 드높아졌다 하나 이번 파슨스 일에서 여실히 드러났듯 구주의 여러 나라에는 훨씬 뒤지고, 위신으로 따져도 저들이 줄 수 있는 것에 비해 노씨권학상 같은 것은 한참 쳐지는 실정이다.

그나마 있는 것이라면, 나름의 문명에 따라 도의 지키는 나라라는 것, 그리고 직접 장사하려는 이들에게는 판로로 적합하다는 것 정도일 텐데, 그것에 구미가 당기는 이들이라면 자신이 나서지 않았더라도 진작에 저 마씨나 번씨, 그리고 그 전의 맥씨(맥심)처럼 조선에 발 들이밀었을 테다.

고민 이어지는데, 복도에 발소리 들렸다.

대체 언제야 죽은 홈즈가 산 코난도일을 괴롭히는 판국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그 답답한 심사 토로하고자 찾아왔던 아서 코난 도일이, ‘귀인은 항상 주변에 있으니, 문 열지 않고 지나친다면 오직 저 한 사람 탓’이라 일러준 진령군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였더라면 – 물론 진령군도 딱히 깊게 생각하고서 내놓은 말은 아니었지만 – 문을 열고서 안양대군과 맞닥뜨렸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일은 없어 그저 출입문으로 구두 발자국 소리는 향할 뿐이었다.

“선약이 끝난 모양이로군요. 드셔도 될 듯합니다.”

여전히 생각에 잠긴 안양대군에게 한 마디 덧붙였다.

“스승님께서 워낙 유럽 각지에서 명성이 높으시다 보니, 교유하는 인사도 적지 않습니다. 저희 모임에 꼭 몸담지 않더라도, 연락 주고받는 사이인 사람도 많고요. 개중 이른바 과학 하는 이 하나 없으려고요. 그런 이들에게 절실한 것이 하나쯤 있지 않겠습니까?”

적당히 고맙다 에둘러대고는 곧장 진령군 찾으러 가. 혹시 그런 사람 있는가 물었는데, 안타깝게도 유망한 사람들 중 정말 과학 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허. 이게 끝이오?”

“영국 내의 사람으로는 끝입니다.”

“그러면 영국 밖에는?”

“몇 사람 있기는 합니다. 어디 보자... 우선 늙은 몸의 실례함을 용서하여 주시기를 청합니다.”

품에서 돋보기 안경 쓰고서, 입에 침 묻혀가며 누런 수첩 뒤적거리던 진령군이 곧 이름 몇 글자를 찾았다.

“러시아의 표도로프(Nikolai F. Fyodorov) 선생이 있기는 한데... 대감께서 구하시는 그런 사람은 아닐 테고... 그 문하에 또 사람이, 아, 치올코프스키(Konstantin E. Tsiolkovsky)... 흠. 지금은 시골에서 훈장 노릇을 하고 있다는군요.

그러면 조금 더 내려가서... 아,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정말입니다. 바다 건너 프랑스가 있었지요. 흠... 얼마 전에 그쪽에서 굿판 벌이는 동안 방 안의 자기장을 계측하겠다고 한 사람이 있었는데... 아, 찾았습니다. 이 사람은 어떨는지요?”

박봉을 쪼개어 아내의 연구를 도우랴, 곧 태어날 아이 뒷바라지 대비하랴 고생이 많던, 소르본대 초임 교수 피에르 퀴리(Pierre Curie)에게, 곧장 해협 건너 파리로 간 안양대군 재촉으로 김홍집이 언제고 커피 한 잔 하러 오라는 초대장을 보내게 된 것은 얼마 뒤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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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에는 오컬트 전반, 후대에는 대중문화 곳곳에 깊은 영향을 준 알레이스터 크로울리는 본디 유복한 퀘이커 집안 출신이었습니다. 그런데 독실한 신도이자 소년 크로울리가 매우 존경하던 아버지가 11세 때 암으로 죽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하지요.

이후 케임브릿지대에 입학하여 우수한 성적 – 딱히 열심히 학업에 임하지는 않았지만 최우수 성적을 자퇴 전까지 종종 거두었다고 합니다 – 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방종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원 역사에서는 이때의 성적인 일탈로 처음 초현실적인 체험을 했다고 합니다. 결국 본래의 목표였던 외교관을 포기하고, 신비주의 결사였던 원 역사의 황금여명회에 몸을 담게 되지요.

다른 한편으로 젊었을 때 크로울리는 등산에도 열중하여, 산악회 회원으로 알프스의 준봉을 여러 차례 오르기도 했습니다. 이는 황금여명회에 든 이후에도 이어진 열정이어서, 1902년에는 K2 등정을, 1905년에는 칸첸중가 등반을 각각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여담으로 원 역사에서도 크로울리는 동양철학 – 정확히는 그 중 자신의 오컬트 활동에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만 – 에도 관심이 있어, 『도덕경』을 번역하여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파슨스의 기행은 본래의 역사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어, 작중에 언급된 것과 마찬가지로 바이퍼급 구축함 두 척의 터빈 공급 계약을 따냈습니다. 이와는 별도로 영국 해군에 납품할 계획으로 건조된 암스트롱 사의 코브라함에 대해서도 동일한 계약을 맺었지요. 안타깝게도 세 척은 모두 불운한 사고로 단명했지만, 파슨스의 과실은 아니었기 때문에 한동안 그의 회사는 성공가도를 달렸습니다.

엄청난 투자를 받은 덕에 기술적으로도 파슨스의 터빈은 크게 발전해, 초기 모델은 불과 7.5킬로와트급이었지만 1899년에는 최초로 메가와트급 출력을 자랑하는 터빈을 준공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그의 회사 (파슨스 사C.A. Parsons and Co.)의 경영권은 아들 조지(1차대전에서 전사했습니다.)를 거쳐 딸 레이첼(여성 공학교육의 선구자이기도 합니다)에게 상속되었고, 1997년에는 독일 지멘스 사에 인수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몇 번 지나가듯 언급된 아서 코난도일은, 작중 시점에서는 셜록 홈즈를 죽인(‘마지막 문제’, 1893) 뒤 끊임없이 연재 재개 및 홈즈 부활 요구를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젊었을 때부터 심령주의에 크게 공감하였던 그가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서 진령군을 찾는 것은 그 때문이지요.

체계적인 정신의학이나 상담 기법이 등장한 것도 아닌 작중 시점이기에, 원 역사에서 권력자의 불안심리를 이용해 큰 위세를 누렸던 진령군 같은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두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었습니다. 19세기 초 유럽 정계에 큰 영향을 주었던 크뤼데너 남작부인( Barbara von Krüdener)이나, 후일 러시아를 뒤흔들 그리고리 라스푸틴도 비슷한 경우라 하겠습니다.

지나가듯 언급된 러시아 사상가 표도로프는 우주주의(Cosmism)라고 알려진 독특한 사조를 이끌었는데, 기독교 철학과 초기 트랜스휴머니즘 등이 기묘하게 얽혀 있었습니다. 인간의 불행을 극복하기 위해 먼저 죽음을 극복하고, 그렇게 죽음을 극복했는데 조상들은 죽은 채로 내버려두면 효도가 아니므로 조상들도 모두 소생시키고, 그렇게 되면 지구만으로는 인구를 감당할 수 없으니 우주로 진출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사상 중 일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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