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도끼를 들고 (2)
싸우지 않고 상대로 하여금 뜻을 접게 하는 방편 여럿 있으니, 유세하여 설복함이 하나요, 세력으로 겁박함이 또 하나다.
조선이라면 당연히 전자를 먼저 행하기 마련인데,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이미 서로 맞지 않음을 보이는 셈이라, 거스르려는 뜻이 없으리라 여기던 북경의 여러 사람을 놀라게 했다.
“싸워서는 안 됩니다.”
손덕명이 단언했다.
“지금 무어라 하셨소?”
“조선국은 공사관이 아니라 공안을 통해 이 전갈을 보내왔습니다. 심지어 표문의 형식도 없이, 간략하게 한쪽 조정이 다른 쪽 조정에 고하는 식으로 전했지요. 이는 두 나라의 다툼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끔 하기를 원한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많고 많은 자금성 전각 중 하필 무근전에 모였으니, 원세개는 적진에 와 있는 느낌이었다. (근래 부쩍 손덕명과 그 무리가 신군을 경계하고 있음을 모를 리 없는 그였다.) 그렇지만 황상이 무근전에 친림하여 학사들과 대책을 논의하겠다 하였는데 어찌 가만히 있겠는가.
문제의 전문(傳文)에는 이르기를, 지금 강남 땅의 사인(士人)과 기기창 중에는 저들 조선과 오래도록 교분 맺어, 교역의 이익을 함께 나누었으니, 청컨대 근래 병공창을 시작해 그 운영에 개입한다고 했던 것을 거두어달라 하였다.
“만일 당당하게 이러한 요구를 해왔다면, 받아들이든 그렇지 않든 나라 안팎에서는 다툼의 소지가 생길 것이요, 저 서양 나라들도 변고 있음을 깨닫고 이빨을 드러내겠지요.”
“만일 우리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설마 그들이 군대를 일으켜 우리를 치겠소?”
“군대가 압록을 넘기만 해도 문제입니다. 만일 다투어 우리가 전장의 이로움을 얻지 못하는 일이 있다면, 그때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천조로서 번국과 다투는 것 정도야, 어떻게든 포장하면 명분으로써 그 흠결을 감출 수는 있다. 하지만 당당하게 일전 벌여 패배한다면, 이미 형해(形骸)로 전락한 천조 아래의 질서가 티끌로 화할 것이다.
“싸워서 지지 않으면 될 일이오. 그것은 우리 군부에서 알아서 할 것이지만, 장담컨대 순순히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외다.”
이홍장 있던 시절부터 만에 하나 조선군과 대립케 될 경우를 상정하고, 나름대로 면밀히 머리 굴려왔던 북양군이다. 직례에서 싸운다면 구미가 화포를 앞세우고 짓쳐들어와 수만 대병을 천진에 내려놓지 않는 한 승산이 있다는 허장성세에는 일말의 진실이 있었다.
“조선이 이십만 정병을 거느렸다지만, 그 중 실제로 투입 가능한 수가 얼마나 되겠소? 일전에 칠만 정병을 두던 시절에 일만을 동삼성에 보냈으니, 넉넉히 잡아 십만을 동원한다 한들, 그 중 최소 오만은 요동과 요서에서 치중(輜重) 지키기에 바쁠 것이요, 예봉(銳鋒)은 오만 중에서도 일만에 지나지 않을 것이외다.”
물론 북양군도 수가 늘어났다 한들 쭉정이가 적지 않다. 하지만 이는 조선군도 마찬가지일 터. 정예한 총포와 치밀한 병제로써 가다듬는다 한들, 동네 장정을 모아서 묶어둔 정도라면 얼마나 그 군기가 매서울 것인가. 나날이 재정의 부담은 늘어가는데 그것을 소위 연병법으로 충당하여, 금은 요하는 곳에 사람 넣는 식으로 운영하는 군대라면 그 실력이 대단치는 않을 터.
딱히 세작을 보낼 것도 없이, 조선 사내 서넛 모인 자리에 술만 몇 모금 들어가면 곧장 흘러나오기 마련인 종군 시절 이야기만 들어도 그 허술함을 얼추 알 수 있었다.
하물며 전쟁이라 하기도 무엇하였던 지난날 동삼성 출병이 실제로 겪은 싸움의 전부인 조선군과 달리, 이곳 신군의 군관들은 직접 사교와 염군, 서양 군세 등등과 다투어본 이들로부터 보고 배웠다. (그리고 그 배움의 공량(수업료)으로서 그 늙은이들을 ‘명예롭게 은퇴’시켜 주었다.)
“소생이 비록 백면서생이라 하나, 병법에서 반드시 싸우기 전 미리 이겨놓으라 함은 알고 있습니다. 조선의 군세가 그처럼 부풀려진 면이 있다 하지만, 우리 군의 허실(虛實)도 따져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군 모두가 정병은 아니오. 내 그것은 인정하지. 허나 들어보시오. 저들이 작은 나라로서 우리에 비길 만한 군대를 두고 있으니, 만일 출병한다면 그것을 유지하는데 군량과 재정이 소요될 것이므로 시일이 흐를수록, 또 그들이 동삼성 안쪽으로 깊이 들어올수록 우리에게 유리해지오.”
“천(天)과 지(地)는 그렇다 쳐도, 인(人)에 이르러서는 어찌할 생각이십니까?”
“그야 황상께서 영단을 내려주신다면 어렵지 않은 일이외다. 이 모든 일의 근원인 변법에 바로 해결의 단초가 있으니, 나라의 은혜로 농토 얻은 백성들에게 그들의 땅을 지키기 위해 일어나라 한다면 어찌 백만 대군도 못 모으겠소?”
손덕명에 이어 양계초, 담사동 등이 하나씩 돌아가며 공박하는데, 군의 일로 말하자면 그래도 원세개에 한참 못 미치는지라 상대적으로 청산유수처럼 문답이 흘러갔다.
하지만 화북의 백성 민심을 이용하자는 계책에 이르러서는 곧장 반발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천부당만부당한 일입니다! 강남과 조선을 싸잡아 변법을 물리고 나누어준 토지를 빼앗으려 하는 자로 몰아가게 된다면, 그것은 곧 중원을 반으로 나누는 것입니다!”
“이미 남양과 북양의 군세가 병립할 때부터 반으로 나뉜 중원 아니었소?”
그때 한 마디가 나와, 모두의 입을 막았다.
“어전이다.”
천하의 형세를 그 (명목상) 주인 앞에서 거론할 정도까지 과열된 것을 보면, 역시 한쪽은 아직 미숙하고 다른 쪽은 기고만장한 것이었다. 속으로 한숨 들이키며 자이티얀이 모임 쉬는 이야기를 꺼냈다.
“양쪽의 논의는 잘 들었다. 그러나 북양대신이 이른 것처럼, 이는 결국 나 한 사람의 뜻에 달린 일이다. 참으로 그 결심이 무거우니, 어찌 촌음의 사이에 정하겠는가? 잠시 지켜볼 일이다.”
타타라씨가 보고 싶어, 무근전 나온 뒤 곧장 자금성 깊숙한 곳으로 향했는데, 엉뚱한 객이 있었다.
“황상께서 국정을 친람하심이 참으로 훌륭하고 아름답다 하겠습니다.”
‘아름답지 않을 리가 있겠느냐’라고 허장성세로 교오(驕傲)한 시늉 하려던 자이티얀은 상대를 살피곤 곧장 그 마음을 가라앉혔다. 나이로도 이제 예순을 넘겨 황실의 어르신 대열에 든 공친왕 이힌이었다.
“후, 정말 그리 생각하시오?”
저의 본 모습을 아는 이들이야, 굳이 다른 사람으로 둔갑한 채 대할 필요가 없는 황비 타타라씨, 쥐죽은 듯 몸 사리고 있는 서태후, 지금쯤이면 천하 어디 먼 구석 – 마지막으로 듣기로는 덕의지국의 옛 총리대신을 만나러 간다고 했다 – 유람하고 있을 이홍장. 그리고 마지막으로 눈앞의 이힌이 전부일 테다.
“세파(世波)의 매서움은 금석(金石)도 피해갈 수 없습니다. 허나 그것을 앞장서서 마주하는 것과, 남이 어떻게 해주기를 기다리며 떠밀려 가는 것은 미추(美醜)가 극명하지요.”
“성패(成敗)를 말씀하지는 않으시는구려.”
“그것은 신이 함부로 말씀드릴 바가 아니지 않겠습니까.”
사실 이힌뿐 아니라 자이티얀 본인도 딱히 할 말은 아니었다. 만일 무너질 대청의 천명이라면, 어영부영 허송세월하다 눈 뜨고 당하느니, 할 일은 무엇이든 해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대청을 중흥케 한다는 것은 사실 한 가지 일이 아니었다. 강역 전체를 온존함도 중흥의 한 축이요, 새 법도를 세우고 민의를 널리 받아들여 나라의 물산을 풍족케 하는 것도 그 중 하나요, 대청 종실이 영세토록 군림할 기반을 잃지 않음도 하나요, 중국이 중국으로 남을 수 있도록 천하에서 가장 앞서게끔 하는 것도 하나였다.
“처음에는 그저, 조선이 하였던 것처럼 변법 두 글자를 내세우면 만사가 스스로 이루어질 줄 알았소. 그러나 지금 생각건대, 어쩌면 그 개화를 이루기 위해 지금 천하의 모든 것을 안고 가려던 것부터가 불가한 일 아니었는가, 그렇게 의심할 때가 있다오.
이제 겨우 한쪽을 막아 몽골을 억눌렀더니, 강남과 조선을 시작해 나머지 모두가 흔들리고 있구려.”
얼마 전, 그 풍국장이라는 자가 월권을 범해가며 남양대신 직할의 기기창을 통어하는 권한을 강탈하였을 때, 장지동이 밀서를 보내 왔다. 무엇이 급하여 사직의 반석을 모두 빼 기둥을 새로 쌓으려 하느냐 묻는 글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이루어질 중흥이라. 어떤 면에서는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사이 한떄의 번국이 한때의 상국보다 더 나아가, 나라는 더 부유하고 군은 더 강대해지게 된다면, 그때도 과연 중흥을 중흥이라 여길 것인가? 강남에서는 그리 여길 여유가 있겠지만, 이미 저도 모르는 사이 계속 약해지는 만족 조정의 입장에서는 그런 솜털 같은 회의마저도 태산처럼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만일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무엇을 버리시겠습니까?”
“모르겠소. 강역을 버린다면, 우리가 한인뿐 아니라 여러 족속을 거느려 혼일(混一)에 이른 것을 재차 부정하는 것이고, 자의원을 폐한다면 한 번 깨인 민의가 결국 다시 떠나가고야 말 테지.”
“그리고 변법을 포기한다면, 중국이 중국으로 남지 못하겠지요.”
“잘 알고 계시오.”
탈 벗은 자이티얀의 말에는 젊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회한이 담겨 있었다.
“신은 젊어서부터 나라의 은총을 입어 외무(外務)를 두루 살폈습니다. 처음에는 조선이 우리를 일컬어 상국(上國)이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변법을 하고 대서 나라와 사귄 뒤에는 우리를 대국(大國)이라 불렀지요. 그리고 지금은 민간에서, 심지어 동삼성에서도 종종 청국(淸國)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니 그 조정에서는 어떻겠습니까.”
심지어 일본국에서는 대놓고 ‘지나(支那)’라고도 한다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따지고 보면 이힌이나 자이티얀의 대에서 저지른 잘못 때문은 아니겠지만, 그 뒤탈 뒤집어쓰는 것은 결국 후대의 그들이니 이제 와서 선조를 탓한들 무엇하겠는가.
“하하, 차라리 어디 구중궁궐에 틀어박혀 천하의 흐름만 관망하였다면 이러한 고뇌도 없었을 것을.”
“정말 그리 생각하십니까? 그저 당하는 것보다는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도 행함이, 선대와 후대를 통틀어 아름다운 일이요 부끄러움 없는 길입니다. 신이 찾아온 것도 그것을 아뢰기 위함입니다.”
“내 대에서 종사가 끊어지더라도?”
천자가, 칸이 직접 그것을 입에 담으니 그 무게가 가벼울 리 없다.
“‘우리의 거룩한 트로이가 멸망할 날이 오리라. 프리아모스 왕과, 그가 창으로써 다스리던 백성들은 모두 주살을 당하리라 (A day shall come in which our sacred Troy shall perish / And Priam, and the people over whom / Spear-bearing Priam rules, shall perish all.).’”
공친왕이 느닷없이 영어로 읊었다.
“호메로스로군,”
“근래 영국인을 금궐에 들이시어 배우고 계신다 들었습니다. 흥망성쇠는 만고의 이치이니 옛희랍의 시인이 이른 바가 틀리지 않습니다.”
“그대도 정녕 이대로라면 대청의 명운이 다할 수밖에 없다 여기는 것이오?”
저의 예상대로 자이티얀이 알아들으니 잠시 희미한 미소를 지었지만, 이내 이어지는 말 속에서 도로 입꼬리는 내려갔다.
“고작해야 조선이 반기를 들 마음을 넌지시 전한 데 지나지 않으니, 아직 가타부타 천명 논하기에는 이르고도 이릅니다. 허나 만에 하나, 모든 일이 그르게 된다 한들, 우리 대청은 수천 년 전 일리움(트로이)의 야인들과는 달라야 하고, 또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행(行)의 공덕이지 않겠습니까.
만일 금상의 대에 천명을 잃는다 한들 어떻습니까. 다시 되찾으면 됩니다. 되찾을 수 있도록 신이 터전도 일구어 놓았습니다. 중한 것은 천시를 거스르고자 무리하여 천하 자체를 망치지 않는 것입니다.”
“고맙소.”
그러나 이힌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으니, 말미에 나온 본론은 앞서 이힌이 건넨 따뜻한 위로만큼 반갑지는 않았다.
“만일 조선이 스스로 승냥이 대열에 합류하여 중원을 도모하려 한다면, 신은 목숨을 걸고 막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뜻이 예전과 변함이 없다면, 오히려 조선을 가로막아 그나마 이 천하에서 도의를 아는 이를 피폐하게 하고 우리 만주의 터전을 황폐하게 하는 것이 옳지 못한 길입니다.”
“이 무슨 말인가! 동삼성이 자보(自保)하겠다고?”
이홍장을 몰아내고 그때까지 목숨 붙이고 있던 회군 늙은이들도 엽지초의 일을 계기로 하나씩 밀어낸 결과, 그 전에도 북양군의 ‘실세’ 였던 젊은 군관들은 이제 명실공히 그 중추를 맡게 되었다.
그러나 자신이 벌인 일을 두고 희희덕거리면서 남쪽에서 돌아온 풍국장 –만일 이 일로 강남이 들고 일어난다 하면 오히려 기창을 미리 독점해둔 자신의 공이 더 드러날 것이었다- 은, 다른 군관들 모인 회의실의 분위기가 초상집과 같음을 의아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그 무슨 말씀이십니까?”
‘내가 먼저 물었네’라고, 조선에서 들어온 요즘 말로 ‘유모(幽模, 유머)’ 담아 말할 법도 하지만, 도저히 그럴 상황은 아니었다.
“그것이... 동삼성총독 공친왕께서 조선이 대놓고 도의를 어기고 침공하지 않는 한 그들을 막지 않겠다고 하셨다더군.”
북양의 군관들도 다들 서양에서 직접 배웠든, 그렇게 배워온 사람 아래에서 수학했든 하여, 인성과는 별개로 나름의 군재들은 갖춘 이들이다. 회군과 이전 녹영군 군관 사이에 재질의 차이가 마치 평지와 태산 정도라면, 지금 북양군의 핵심인 이들은 하늘 정도에 해당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압록강에서 바로 조선군을 막아낼 수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동삼성 군세가 비록 스스로 마적들 막아내는 정도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없지는 않으므로. 그들이 시간을 끄는 동안 철도로 미리 나아가 심양 등을 지키며, 최악의 경우 철도를 파괴하며 후퇴한다는 것이 – 물론 동철에서 좋아하지는 않겠지만, 이기고 나서 조선에게 배상금을 뜯어내면 될 일이다 – 기존의 계획이었다.
그런데 공친왕이 여차하면 조선과 저들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겠다 하니, 그런 계획이 엉뚱하게 틀어져버린 것이다.
“그런데 애시당초 남의 나라에 군병 몰고 들어오면서 도의를 지킨다는 게 가능은 한 일입니까? 지금이 송양공(宋襄公)이 전차 몰던 때도 아니고...”
풍국장이 묻자 그와 사이 좋지 않은 단기서가 곧장 트집을 잡았다.
“조선왕이 송양공이라면 지금쯤 나라가 네 번은 망했을 겝니다. 차라리 진문공(晉文公)이라면 모를까.”
“뭐라? 그럼 우리는 형초(荊楚)라는 말이냐?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
“그만!”
가뜩이나 기분 팍 상한 원세개가 외치니, 모두가 헛기침 한두 번씩 하고서 좌정하였다.
“조선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무근전 학사들도 지금은 변법을 조금 늦출 때라고 하고, 또 조선과 만일 싸워 피 흘리게 되면 어느 쪽도 수습하기가 어렵습니다.”
고작 서른 넘겼지만 벌써 속내 드러내지 않는 버릇을 들여, 존재감은 없지만 그 뜻도 쉽게 알 수 없다는 뜻으로 사람들이 용과 같다고 하는 왕사진이 다시 정적을 깨뜨렸다.
“지금은 학사들과 같이 생각할 때가 아니다. 그들이야 만일 조정이 무너져도 저기 남쪽이나 바다 건너로 도망하여 다시 헛기침하고 다닐 수 있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잖은가!”
원세개가 쏘아붙이니 ‘그러시다면야...’ 하는 눈치로 왕사진은 다시 입을 닫았다.
“이왕 이리 된 것, 먼저 치시지요.”
“우리가 먼저? 화보(華甫, 풍국장) 자네 미쳤나?”
“어차피 저 도의 타령 하는 것을 보면, 동삼성이 우리 편 들고 싶지 않아 적당히 핑계 대는 것에 가깝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선수를 쳐서, 적당히 요동 근처까지만 미리 점령해 방어선을 구축하는 겁니다. 원래 전쟁이란 하다 보면 서로 날카로워지기 마련이고, 아무리 조선이 인의의 군대 자부한다지만 그 방어선 뚫다 보면 절로 표독해지지 않겠습니까? 스스로 오랑캐임을 입증하겠지요. 명분도 잃고, 저들의 힘도 빠지게 될 테니 생각할수록 이것이 상책입니다.”
“황상께서 결코 용납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단기서가 다시 목청을 높였다.
“황상께서는 백가쟁명의 윤음을 내리시어, 나라에 도움 되는 일이라면 모두 거리낌 없이 발의하라 하셨습니다, 비록 자의원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잠시 국사 맡기는 것은 유보하였다지만, 그 대의는 아직 살아있지요. 대인.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군문의 일은 우리 무부들이 가장 잘 알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이럴 때는 황상의 재가를 얻어 ‘잠시’ 집정하여야 국난을 헤쳐나갈 수 있겠지요.”
저 ‘잠시’란, 아마 그들, 어쩌면 그 자손들 대까지를 말할 테지만, 오천 년 중원 역사로 따지면 잠시가 맞을 테니 아예 거짓은 아니었다.
“화보의 말에 일리가 있다.”
“위정(원세개) 존형!”
“나라의 힘을 헛되게 쓰는 일이라면, 사태가 진정된 뒤에 우리 힘만 다할 것이니 행하지 않는 것이 맞다. 하지만 이중당께서 늘 걱정하신 것처럼 조선을 언제고 꺾어야 한다면 남양의 군세가 잠시 그 우두머리를 잃은 지금 막는 것이 맞아.”
“학사들이 하는 말에 일리가 있습니다. 조선으로서는 이곳 직례까지 밀고 올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가 조금 물러나고, 변법의 속도를 조금 늦춰서 저들과 타협하면 될 일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 북양군의 쓰임이 다하게 되면, 그때는 자네가 책임질 텐가?”
물론 신군의 효용이 정말로 없어지려면, 갑자기 구미의 모든 나라가 재액을 당해 – 예컨대 요즘 유행한다는 소품(小品) 내용처럼 역병이 창궐한다던가 – 사라지는, 그런 일이 일어나야 하겠지만, 이미 권력의 한 단락을 맛본 이들에게는 조정의 뜻 한 마디에 쩔쩔맨다는 조선이나 일본국 군부로 돌아가는 것이야말로 팽(烹) 그 자체였다.
이미 과분한 것을 누리고 있는데 더 욕심을 내겠느냐는 말을 하기에는, 단기서의 용기도, 청렴함도 그에 미치지 못하였기에, 끝내 그 또한 침묵을 다시 지키게 되었다.
“그러면 결정된 것이야. 화보 자네가 중산(仲珊, 조곤曹錕)에게도 전해주게.”
그리하여 일이 벌어지기도 전에 사세 불리함 깨달은 북양군이 스스로 일어나 소위 ‘계엄’을 선포하니, 이 모든 것이 겉으로는 황상 한 사람의 뜻이었다.
졸지에 자금성이 다시 저의 감옥 되었음을 광서제가 뒤늦게 한탄한들 무슨 소용이랴. 북양군을 누를 수 있는 인근의 군세라면 남양군이 하나요, 조선군이 또 하나인데, 전자는 결국 자신의 황명으로 머리를 날려버렸으니 이제 후자에 기댈 수밖에.
그런 북경의 영(令)에 응답하듯, 조선국 정부는 동원령을 선포하였다.
“하하, 조선 놈들, 허풍이 많이 늘었군. 호왈(號曰)하는 기세가 드디어 우리 중원과 같게 되었어.”
그 소식 들은 원세개는, 은근슬쩍 걱정하면서도 주변의 시선을 생각해 위풍당당한 척 말했다.
“실로 그렇습니다. 아무리 그 나라가 불필요하게 군영을 크게 유지하고 있다 한들, 어찌 그 조그만 땅에서 육십만 대군이 나오겠습니까?”
다시 몇 달에 걸쳐 날선 공방이 몇 차례 말로 오간 뒤 마침내 조선군이 선전포고 없이 압록강을 넘었다는 급보가 전해졌을 때는 그 거짓 위세가 어느 정도 참이 되었다.
“내 무어라 하였는가! 그렇게 소란 떨었는데 몇 달을 준비하였건만 고작 삼만 명이라니!”
“심지어 안동(단둥)에서의 보고에 따르면 그 중에는 총을 들지 않은 자가 더 많다고 합니다. 하하!”
왕사진이 조금은 조심스럽게, 정말 삼만이 맞는가 살펴보았더니, 안동뿐 아니라 압록강 곳곳에 나가 있는 첩자들이 도강한 조선군의 수효가 아마 삼만 전후일 것이라 확인해주었다.
다음날 확인하였을 때도 도강한 조선군은 그대로 삼만. 그 다음도 삼만이었다. 단기서도 조심스럽게, 풍국장에게 슬슬 사과하고서 그 비위를 맞춰주어야 되지 않을까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며칠 뒤, 각각의 보고가 사실 따로 집계한 것이라는 사실이 요양(遼陽)에 미리 보내둔 신군 7협(여단급)의 절망적인 전보를 통해 밝혀졌을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고지식한 단기서에게는 저의 체면 상할 일이 하나쯤은 줄어든 셈이니 그나마 덜 나쁜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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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 ‘유머’는 한자로 유묵(幽默yōumò)이라 쓰는데, 이는 민국초 학자 린위탕(임어당)이 처음 대중화시킨 표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작중에서는 조선에서 먼저 ‘유모’로 번역하면서 한자가 조금 바뀌었습니다. (발음도 mò 대신 mó로 조금 바뀌었습니다.)
단기서와 풍국장이 티격댈 때 나오는 송양공은 ‘송양지인’의 고사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만, 그 반대 사례로 종종 언급되던 진문공의 이야기는 오늘날에는 조금은 덜 알려진 듯합니다. 춘추오패의 일원으로 들기에는 논란이 많은 송양공과는 달리, 확실히 그 안에 드는 진문공은, 『사기』 등을 통해 후대에도 그 파란만장한 일대기가 전하고 있습니다.
고향 진나라를 떠나 유랑하던 시절, 초나라에서 환대를 받았는데, 이때 초 성왕에게 약속하기를 후에 나라의 주인이 된 뒤에 초와 맞붙게 된다면 세 번(三舍, 약 36km)을 후퇴하겠다고 했습니다. 이후 정말로 등극한 후에 초나라와 전쟁을 벌이게 되었을 때, 진문공은 이 약속대로 정말 후퇴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함정이었고, 전공에 욕심이 난 초나라 장수 성득신이 후퇴하는 진군을 빠르게 추격하다 보니 본대와 거리가 생기자, 이를 곧장 요격하여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어쨌든 약속은 지킨 셈이었고, 그렇다고 송양공처럼 인의를 따지다가 패배한 것도 아니었기에 인구에 회자되는 고사가 되었습니다. 여러모로 현실 지향적이었던 당시의 인의론을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중간에 공친왕이 읊는 『일리아드』의 시구는 3차 포에니 전쟁에서 카르타고의 몰락을 바라보던 로마 장군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가 식객 겸 인질이었던 그리스인 폴리비오스 앞에서 읊었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모든 국가가 겪을 수밖에 없는 쇠망의 비애를 담은 탄식이었다고 전해집니다.
동삼성의 자보와 유사한 원 역사의 사례는 실제 의화단의 난 시기에 강남 총독들이 선언했던 동남호보(東南互保, 혹은 동남자보)입니다. 당시 장지동과 이홍장, 유곤일, 원세개 등의 지방관들은 의화단의 편에 서서 모든 열강에 선전포고를 한 조정의 정책이 사실 의화단의 강압에 의한 것이라 주장하면서, 열강의 이권을 보호하는 한편, 반란을 진압하고 치안을 유지하겠다고 선언했지요. 이는 한편으로는 의화단의 난의 피해가 직례와 산동 일부에 국한되게끔 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중앙정부의 지방 통제가 유명무실해졌음을 널리 보이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19세기는 대중문학의 장르 거의 대부분이 – 독자층의 호응과는 별개로 – 나타난 시기였습니다. 흔히 ‘포스트-아포칼립스’ 물이라고 부르는 작품들도 마찬가지지요. 일례로 『프랑켄슈타인』의 작가로 유명한 마리 셸리가 1826년에 출간한 『최후의 인간』은 판데믹으로 몰락한 21세기 말의 세계에서 영국의 마지막 생존자들이 벌이는 모험을 담고 있습니다. 이후 점점 넓어지는 대중문화 저변에 힘입어 외계인의 침공 같은 다른 소재들 (예컨대 H.G.웰즈의 『우주전쟁(War of the Worlds, 1898)』)도 하나씩 등장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