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종, 군밤의 왕-203화 (203/320)

66. 천하의 대세 (4)

문화전(文華殿)에 들어앉은 황제 자이티얀이 영어 스승 자일스가 가져다준 『햄릿』을 한창 읽으며 초조한 마음 달래는데, 문득 섭영기 소리 들려오니 돌아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 만했다.

“볼만 하오?”

“참으로 준수하시니 천자의 위엄이 깊고도 높습니다.”

황비가 저의 불안을 살피고 달래려 하는 말인가, 아니면 진실로 그리 보이는 것인가. 부디 후자이기를 바라는 자이티얀이었다.

“족히 헌걸차시니 근심하지 않으셔도 될 것입니다.”

“급히 꾸민 모습이 그리 보인다니 다행이군.”

급조한 것은 지금쯤 원세개에게 가고 있을 조칙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자금성은 넓고 북경은 더욱 광활한즉, 실지로 그의 명 받들어 원가가 입궐할 때까지는 시간이 오히려 많이 남았다. 그로 인해 고심할 여유만 늘었으니, 변법의 첫머리 조치 중 하나로 조선국에서 편히 쓰고 있다는 그 덕률풍인지 전화인지를 널리 들여와야겠거려니 곁가지로 생각하는 자이티얀이었다.

그와는 별도로, 가장 마음쓰고 있는 것은, 지금까지 금궁 안에서 유유자적 북신(北辰, 북극성) 행세하며 천하가 스스로를 돕기를 기다리는 대신, 이제 천하를 이끌고 나아갈 생각 품었으니 어찌하면 그에 맞게 처신할지였다.

아직 입에 맞지 않는, 남을 누르고 그 위에 서는 말투를 스스로 연습하고, 그 말투에 맞는 몸가짐도 해보려 하였으나, 고작 한두 시진 준비한 연기가 과연 얼마나 효험 있을지, 그런 위엄 지녔다 칭송받는 선대의 조상들의 그 기세는 과연 어디서 나온 것인지 자문(自問) 연이었다.

“저 황하 큰물도, 처음 천산에서 내려올 때는 샘물 하나에 불과한 법이지요. 하물며 황상께서는 이미 깊고도 깊은 못과 같으시니, 염려치 마시고 마음 두신 바를 모두 행하시면 그로 충분할 것입니다.”

“고맙소.”

그때 내관 하나가 나아와 고하기를,

“황상께 말씀 받들어 올리나이다. 군관 원세개가 궐문에 당도하였는데, 벼슬 없는 서생 손덕명이라는 이를 대동하였은즉 함께 들고자 윤허를 구하였나이다.”

하니, 심호흡 한 번 하고 비답 내렸다.

“들라 하라. 이곳에서 맞이하겠다.”

“예, 폐하.”

곧 이곳에서 심대한 정사 의논될 것을 아는 황비도 내관 물러난 뒤 곧장 진지함 담아,

“무엇을 하시든, 필요한 일이리라 소첩은 믿습니다, 폐하.”

말하고서는 물러났고, 이제 자이티얀 한 사람만 남게 되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진작에 했어야 할 일을 이제야 하게 되었으니, 저 자신을 제하면 누구의 탓도 아니었다. 어렸을 때는 서태후에게 휘둘리고, 이홍장에게 휘둘렸으며, 이제는 조선과 소위 민심에 휘둘리고 있었는데, 만일 조선이 조금만 간악한 마음 먹었더라면 어찌 되었을 것인가.

심지어 누군지는 몰라도 저를 노리는 듯함을 직감한 서태후가 짐짓 음독하여 쓰러진 시늉 하고 있을 뿐임을 밝혀내 제게 알려준 것도 조선이요, 이를 이용하여 흠정당 거두어 공론 움직이는 지렛대로 써보자 제의한 것도 조선이었다. 그러니 고맙고도 무안한 일이었다. 어찌 이 기회를 허투루 보낼까.

하여, 이제 조선의 도움은 받을 만큼 받았으니, 장차 스스로 앞가림하고 나아가 다시 천자로서 만천하에 도움 주고자 작심하면서 원세개를 불러들였다. 금궁 뒤에 숨어 있다가 이제 비로소 머리 내밀었으니, 한 번 동쪽에서 떠오른 해가 때 되기 전까지는 다시 숨지 못하듯, 저 또한 다시 때를 만나기 전까지는 돌이킬 수 없게 될 것이었다.

곧 바깥에 발소리 들려오니 필히 원세개와 그 손덕명이라 하는 젊은이일 터였다. (남을 ‘젊은이’라 부르기에는 사실 셋 중 올해 보령 스물셋인 황제가 가장 젊었으므로 조금 이상한 일이었지만.)

‘천리 길도 발 아래부터 시작이라 했던가 (千里之行 始於足下).’

다시 심호흡하고, 저쪽에서 들기를 고하기 전 먼저 문을 열었다.

“내 오래 기다렸다. 얼른 들어오라.”

문 활짝 열자마자 마주한 원세개-로 추정되는 이-도, 아마 손덕명이라는 이일 그 옆의 젊은이도 대경(大驚)한바, 익숙지 않은 일방적인 하대보다, 이 파격에 저들이 먼저 놀랐으니 선수를 잘 취한 듯하였다.

“하명한 바는 받들었다 들었다.”

“예... 예, 폐하. 조서 봉정한바 황은의 두터움은 태산을 모두 깎을지언정 말로는 형용할 수 없습니다.”

“내 듣기로, 그대가 항상 바라마지않던 자리라 하더군.”

광오한 천하의 주인 행세가 효험 거두었는지, 아니면 이 파격으로 인해 미리 전례 맞출 준비하느라 마음 졸였던 것이 빗나가서 그런 것인지, 어디 가서 겸양하고 다닐 것 같지는 않던 원세개의 당황하는 기색은 이어지고, 그 옆 손덕명의 표정은 기묘해졌다.

“그, 폐하, 참으로 송구스러운 물음이오나...”

“북양대신 자리를 노리고 있음을 어찌 알았느냐, 그 말인가? 너희가 내게 고하지 않으니 내 어디서 듣겠느냐, 조선에서 전해주었다. 비록 이번에는 삼 개월 대리를 명했으나, 북양대신이 그 전에 물러난다면 그 자리는 오롯이 너의 것이니, 그리 알지어다.”

“예, 폐하.”

아마 원세개가 아무리 젊은 군관들의 추앙을 받고 회군 시절부터 종군한 다른 늙은 장수들에게는, ‘그 젊은이 쓸만하다’ 하는 평 듣는다 한들, 정면으로 이홍장에게 반기 든다면 그 중 얼마나 따를지 알 수 없었다.

허나 황명으로 그 자리를 가져간다면 이야기가 십분 달라진다. 물론 그리 되면 원세개 본인도 오직 황은으로써 이홍장 자리 얻어낸 격이 되므로, 스스로 자리보전할 방도를 마련하기 전까지는 절로 북극성 도는 천추성(天樞星, 북극칠성의 하나)가 될 것이었다. 아마 저 ‘예, 폐하’ 전에 있던 촌음의 망설임은 그 때문이리라.

“조선국은 누대의 번병이자 아조 제일의 벗이니, 제의하기를 변법의 대업을 이룸에 힘써 돕겠다 하였다. 그들이 나라 안팎의 간특한 무리를 미리 살피고, 세개는 직례와 일대를 지켜 감히 변법에 토 다는 불온한 무리를 제압하며, 덕명은 변법의 절목을 살펴 나라가 속히 앞으로 나아가되 넘어지지 않도록 살핀다면 어찌 큰 공효 이루지 못하겠느냐.”

“하유에 티끌 하나 틀림이 없나이다.”

그런데 손덕명 눈에는 티끌이 보이는지, 세상 두려울 것 없는 젊은이 기세로 원세개 대신 물었다.

“의문되는 바가 둘이 있은즉 감히 여쭙겠나이다.”

“물으라.”

“소국의 변법은 깃털같이 가벼우나, 대국의 변법은 천하를 울리니 어리석고 간악한 무리는 놀라기 마련입니다. 지금 이때를 놓치면 중흥은 허상이 될 것인데, 폐하께서는 이를 잡기 위하여 능히 큰 결단을 내릴 수 있으십니까?”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아무리 놀라고 두려워한다 한들, 군세가 없으면 아무도 간악한 일을 벌이지 못하는데, 백문제개로 말미암아 모든 양이가 아국에서 이익을 다투니 그들 중 누구도 먼저 나서서 남의 경계를 사지 않을 것이요, 나라 안에서 직례 도모할 만한 자들은 북양군이 있고 또 번병 조선이 있으므로 감히 준동치 못할 것이다.”

미리 준비한 답변이 먹힌 듯, 더 토를 달지 않고 다음으로 넘어갔다.

“또한 제가 생각하는 변법의 궁극은, 조정이 만백성의 공복(公僕)으로써 모두의 살길을 마련하는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흥중(興中)은 본(本)이요, 무엄함을 무릅쓰고 말씀 올리면 조종의 위엄은 말(末)입니다. 이를 가납하실 수 있으신지요?”

“이 사람, 무슨 망발을!”

“어전이니라.”

“소, 송구하옵나이다.”

원세개가 말리는 것을 한마디 말로 위압하니,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곧장 죄를 청했다.

“덕명은 들으라. 너의 말이 맞다. 백성이 있고 나라가 있으니, 나라의 위엄이 백성을 위하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비록 지금은 정국이 그에 맞지 않아 부득불 권도(權道) 취해야 하겠지만, 어찌 본말이 뒤집히게 내버려두겠는가.”

자이티얀이, 혹은 그 옆의 다른 누군가가 권병(權柄)의 맛이 한여름 제호탕(醍醐湯)보다 달콤함을 알았더라면, 말만 쉬울뿐 실제로는 그렇지 않음을 간하든 스스로 느끼든 하였겠지만, 그렇지 않았으므로 가볍게 답하였다.

“이 손 모, 변법을 위해 목숨 다하겠나이다.”

조선국 기세 누를 생각 품는 이들을 조선국이 돕고, 황제의 위엄을 빌려 종국에는 그것을 흩어없애려 하는 자를 황제가 직접 도우니, 인간사 기묘함이 이와 같았다.

자이티얀이 어릴적, 안뜰에 소복이 쌓인 눈을 본 적이 있었다. 하얗고 몽실몽실한 것이 예쁘기도 하고, 그 촉감 궁금하기도 하여, 저도 모르게 무릎 꿇고서 조그만 공도 만들고, 글씨도 써보고, 기둥도 세웠다.

처음에는 참 차가워서 놀랐지만, 손에 익으니 저의 살갗 벌겋게 됨을 모르고서 한참 만지작거렸는데, 이 위엄찬 천자 행세도 그와 같지 않은가, 원세개와 손덕명을 이홍장에게 보내놓고, 서태후 기습하려 간소한 행차로 공왕부 향하는 자이티얀은 문득 생각했다.

(바로 그날, 감히 서태후 권세의 기둥과 같은 귀한 몸이 동상 입을 뻔하게 방치하였다며 자이티얀을 시위하던 내시 여럿이 심하게 매질 당하고 품계가 깎였는데, 어린 자이티얀은 알지 못했다.)

“귀인께서는 성함이 어찌 되시는지요? 지금 태후께서 봉변하시어 신기 불평(不平)하신바...”

“네 아비다.”

문 열리고 접대하러 나오는 연배 있는 시종이 나름 공손하게 물었는데 일부러 무례하게 하대하였다. 따지자면 천자가 만백성 어버이이니 틀린 말은 아니다. 저쪽도 발끈하였으나 그 당당함을 보고, 곧장 돌아가는 형세를 알아챘는지 얼굴이 하얘지면서 재빨리 부복하였다 (저의 밑에서 일할 사람은 언제나 잘 뽑는 서태후였다).

“죽여주시옵소서!”

“그래, 사죄(死罪)가 맞구나. 허나 갚을 기회를 주마. 태후 있는 곳으로 나를 안내하되, 태후로 하여금 알지 못하게 하라.”

공왕부는 근래 집주인 여러 차례 바뀐 티를 내듯, 검소한척 꾸미는 공친왕 취향과 저 필요한 것만 들이는 이홍장 취향, 그리고 호사스러우면 무엇이든 들이는 서태후 취향이 어울려 그 멋을 다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안쪽으로 향하였는데, 비록 허세가 구 할이요 속으로는 여전히 서태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다지만 원체 걸음걸이가 호기로웠던지라, 음독하고 쓰러져 있어야 하건만 멀쩡히 정원 산책하고 있던 서태후 앞에 그가 나타났을 때, 서태후는 자신이 마지막으로 본 그 황제가 맞는가 놀라 궁색한 변명 생각하는 것을 잠시 잊었다.

“하하, 누가 그랬는가, ‘연약함이여, 여인의 이름이로다! (Frailty, thy Name is woman!)’ 참으로 틀린 말이 아닐 수 없소이다. 쾌유하셨으니 실로 천운이라 하겠소.”

“그, 그렇습니다, 황상. 호천(昊天)의 굽어살핌이 있어...”

“길게 말하지 않겠소. 누구를 의심하여 난데없는 노단(老旦, 노파 역을 맡은 경극 배우) 노릇을 하는지는 묻지 않겠으나, 다만 한 가지 알려주러 왔소이다.

백가쟁명의 윤음 내린 뜻이 이지러져, 마치 양묵(楊墨)이 전횡하는 것과 같다고도 하더군. 하여, 본래의 그 아름다운 뜻을 되살리고자 옛적 텀거투러허 후왕디(옹정제)께서 그리하셨던 것처럼 어리석고 미혹된 무리를 직접 깨우치고자 하오.

세간에 이르기를, 국민당이 후당(后黨)이라 하던데, 그런 요설 퍼질 만큼 당을 잘못되게 이끄는 이들이 필히 있을 것이오. 그들이 누구요?”

“황상, 이것은 옳은 법도가 아닙니다. 나라 이끌어가는 도리는...”

“그러면 거짓 음독하여 누구를 모해할 생각 하는 것은 옳은 법도요?”

거기까지 알고 있고, 또 본인이 알고 있음을 드러냈으니, 더 거짓을 말한들 하등 쓸모가 없다. 당당하게 찾아와 드러냄은 마침내 궁 밖으로 나와 (비유적으로든, 실제로든) 행하고자 하는 바를 행할 만큼 든든한 세력을 얻었다는 뜻이요, 저의 국민당이나 멀리 강남 장지동이 그 사이 몰래 넘어가지는 않았을 것이니 필히 북양군을 손에 넣은 것이리라.

“법도에는 맞지 않으나...”

하여, 자이티얀이 여태껏 듣지 못했던 진솔한 말투가 나왔다.

“폐하, 처음에는 이 여인의 몸으로 종실을 짊어짐이 옳은 것이라 굳게 믿었지만, 조종의 위엄을 벗어나 홀로 권세 얻을 궁리 하면서부터는 보이는 것이 달라졌습니다.

살펴보니, 제가 지금껏 예순 평생 동안 행한 모든 일이 대청 종사를 위함이었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설령 그랬다 한들 후과 나온 것을 보면 누구도 믿지 않겠지요. 하지만 이번만은 달랐습니다. 이미 가만히 있으면 중흥이 이루어질 기세를 얻었는데, 천하의 혼일된 지경을 스스로 무너뜨릴 궁리 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누구인지는 몰라도 기미하고 조제하는 이들이 바뀌었고, 혹 이로써 그런 무리의 뿌리를 뽑아낼 수 있을까 싶어 얕은 수를 썼다... 그리 이르고 싶은 게요?”

“그렇습니다. 늙은 이 몸뿐 아니라 황상께서 백가쟁명의 윤음 내리신 그 큰 뜻에도 따르는 것이라 여겨, 옳은 일이라 여기고서 행한 것인데, 아마 이것도 불가에서 말하는 업보겠지요.”

체념하고서 술회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를 가장하고서 동정을 끌어내려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고, 지금은 그리 중요한 일도 아니었다.

“만일 그렇다면 안타까운 일이오. 그러니 이제라도 개심하여 정사를 보익(補益)토록 하시오. 그리하지 않는다면... 큰일을 위하여 작은 것을 끊어야 할 수도 있으니.”

“황상께서 마침내 큰일을 도모하시려 하니 그저 기쁘고 또 고마울 따름입니다.”

등 돌려 나오는 내내 뒷맛이 개운하지 못했다.

그러나, 저의 읽던 이야기에 나오는 그 햄릿처럼 ‘실(實)이냐 허(虛)냐’ 따지며 천하 대세 흐름만을 살피다 보면, 한 사람 마음은 편하겠지만 천자로서는 부끄러운 일. 그렇게 스스로 마음속을 다지면서 환궁하였다.

서태후의 음독이 낭설로 돌던 중, 돌연 다시 나타난 서태후 본인이, 국민당은 황상의 밝은 정사 익찬(翼贊)함을 그 주된 뜻으로 삼아야 한다고 난데없이 강조하고, 뒤이어 직례 바깥에서는 그런 사람 있는지도 잘 모르는 원세개라는 젊은 군관이 북양대신 자리를 꿰어찼다고 하였다.

거기에 더불어 갑작스레 무근전(懋勤殿)에 여러 학사를 모아, 변법의 긴요한 바를 남김없이 아뢰도록 하겠다는 칙령이 내렸는데, 그 안에 드는 것은 손덕명이니 담사동(譚嗣同)이니, 양계초니 하는 다들 나이 서른도 되지 않은 연소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 무근전에서 나오는 안건마다 곧장 흠정당에서 받아 발의하고, 국민당은 여기에 반기들기는커녕 적극 찬동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중원 땅이 흥하든 말든, 저들 밥벌이만 지장 없으면 무방한 서양 언론에서는 설익은 앎을 자랑하는 이들이 떠들기를, 직례의 군권이 새 사람 손에 넘어간 뒤에 이러한 변화가 일어났으니, 프랑스 말로 친위 ‘쿠-데타(Coup d'état)’ - 조선 말로 옮기면 환국 –이 일어나지 않았겠느냐 단정하였다.

저의 코앞에서 일어난 일을 남의 나라 서생들 쓴 글로 보는 이홍장 심산이 그러므로 얼마나 씁쓸할 것인가. 치소 정리하고 이제 떠날 채비를 하는 이홍장에게 찾아온 객 있으니, 근래 북경 곳곳을 활발히 친림하여 돌아본다는 황상 폐하였다.

예 갖추니 곧장 하문하기를,

“합비로 돌아가는 것이오?”

“신이 비록 도잠(陶潛, 도연명)은 아니나, 고향 떠난지 오래되어 전원(田園) 어찌 되었을지 알 수 없으니 한 번은 직접 살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뒤에는... 그간 살피지 못했던 천하를 널리 보고자 합니다. 혹 기연(奇緣)을 얻어, 지금 꾀하시는 변법과 치세의 요결을 얻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여로를 정하면 반드시 예부에 글이라도 한 통 넣어주기를 바라오. 오가는 나라마다 귀빈으로 대접받아야 마땅하지 않소.”

“늙은 신이 끝까지 황상을 보필하지 못하였는데, 그 미욱함을 도리어 과분한 은총으로 베풀어주시니 감히 고개를 들기 어렵습니다.”

그 방도야 잘못이 많았겠지만, 또 막상 이렇게 쓸쓸히 떠나가는 이를 보니 마음 한구석 아련하였는데, 이홍장이 그 모습을 보니 여전히 눈앞의 사람은 여러 해 전 강남 만인소에 응답하여 자의원을 열겠다 풋풋하게 선포하던 그 황제가 맞았다.

“몸을 일으키시어 뜻을 펼치시니, 전해듣기로는 마치 용흥(龍興)하는 기상을 금세에 다시 보는 듯하였다 하더군요. 그러나 신에게는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아니하시니, 어찌 된 영문인가 감히 여쭐 따름입니다.”

“경은 이미 짐작하고 있지 않소이까. 꾸민 것이오.”

숨기려 한들 숨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고, 또 도광 연간부터 자신까지 네 황제를 모신 노신을 예우하는 마음에라도 차마 원세개나 서태후 대하듯 할 수는 없었다.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다만 군문에서도 기병(奇兵) 중할지언정 항상 이에 기대면 필패(必敗)라 하고 있습니다. 성세(聲勢) 일으킨 뒤, 그것이 겉으로만 드러낸 것임이 드러나게 된다면, 도리어 자승자박의 패착에 이를 수 있으니 부디 마음 기울여 주시기를 청합니다. 지금과 같이 천하의 대세가 요동칠 때에는, 때로 우직하게 가운데 근본을 지킴이 상책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경이 권세 모두 잡고 있을 적, 나를 그리 도와줬더라면 이날이 어찌 왔겠소’ 하는 치기어린 울분 대신, 점잖게 답해주었다.

“마지막까지 나를 생각하여 그리 간언해주니 그 마음을 알만 하오. 그러나 이미 사세 여기에 이르렀는데, 어찌 돌이키겠소.”

“세언에 이르기를 천하의 대세는 합친 지 오래되었으면 반드시 나뉜다 하였습니다. 신이 지난 며칠 들은바, 새로이 뒤에서 헌책하는 여러 젊은이들이 토지를 나누어주는 일부터 시작하여 변법을 크게 꾀하고 있다 하였는데, 필히 반발이 있을 것이니 두렵게 여길 따름입니다.”

서태후 본인은 어쨌든 멀쩡히 숨 붙이고 있지만, 학문이 부족할 뿐 지략과 눈치는 있는 외번의 왕공들도 곧 뭔가 이상함을 짐작할 것이다. 물론 갑자기 날벼락 맞게 된 강남 한인들의 반발에 비하면 사소하게 보일 정도겠지만.

“나 또한 그것을 두렵게 여기오. 허나 그 대세라는 것이 정말 상수(象數)의 학에서 이르는 것처럼 천하의 운행에 따른 것인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련만, 그 세 타고 말고는 순전히 사람의 마음먹기에 달린 것 아니겠소? 설령 대청이 잠시 나뉜다 한들, 그 사이 변법을 완수하고 다시 합치면 될 일이외다.”

“눈 흐려지고 허리 굽은 신은 앞날을 감히 살피지 못하니 어찌 그에 더 말을 붙이겠습니까.”

“고맙소.”

그리하여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지만 세력의 크고 작음은 하룻밤 사이 뒤바뀐 북경에서 늙은 거인은 마지막 하직인사를 올렸다.

이홍장이 첫 행선지로, 결코 벗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파란만장한 시대를 함께 헤쳐왔던 같은 노인네 안부나 물으러 동삼성 찾아가, 연로하여 벼슬 내려놓은 마신이가 심양에 차린 청진사(모스크)에서 차 대접을 받을 무렵.

드디어 겉은 그대로이되 속은 새로운 조정에서 평균지권(平均地權)의 대의 내걸고 토지개혁에 착수하였는데, 직례 일원부터 시작해 저항하는 지주들은 신군(新軍) 군교들과, 또 때로는 그 군교들이 들고 온 양창(라이플)의 개머리판과 산뜻한 연을 맺곤 하였다.

그리하여 민심이 시끄러워졌는데, 민심보다 더욱 민감한 것은 전심(錢心)이었다. 오가는 조선 상인들의 든든한 벗이 되어주던 지주들이 봉변하니 곧 조선 사람들 물건 팔 길이 막히는 것이요, 나날이 새로 내려오는 정령 가운데에서 사람이 돈을 쓰기 어려우니 그 물건 살 사람도 없는 것이요, 이 두 일이 다 일어나기는커녕 그 기미만 겨우 보였지만 한양의 한없이 민감한 사람들은 모두 눈앞에 훤하다 여기는 것이었다.

평균지권 네 글자 나온 그 다음날은 순휴하는 날이라 그나마 별일이 없었지만, 그 바로 다음날부터 시작해 한양 식주공행은 삼칠일을 내리 하한(下限) 찍었으니, 십사 년 전 기묘년(1879) 소란 따위에 비할 수 없는 개국 오백일년 공황의 시작이었다.

조선의 호의에 부응하여 어엿한 나라로써 개혁 이루어내려던 황제의 또 다른 호의가 이렇게 이어지게 되었으니, 사람 일 모른다 하던 성상 말씀이 참 옳았다며 신료들이 한탄한들 만시지탄(晩時之歎)에 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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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와 같은 중국 고전의 번역이 16세기부터 이루어진 것에 반해, 서양 고전의 동양 번역은 다소 늦게 이루어졌습니다. 문화의 차이도 있지만, 당장 서양 기술을 먼저 들여와야 했던 서세동점의 시대 상황도 관련이 있을 듯합니다. 중국에 셰익스피어가 처음 번역된 것은 1903년, 상해에서 출판된 『해외기담(澥外奇譚)』으로, 햄릿은 여기에 ‘색사비아(索士比亞)’ 저 “한리덕이 큰 원수를 갚고자 숙부를 죽인 이야기(報大仇韓利德殺叔)”로 수록되었습니다. 그러나 전문이 제대로 번역된 것은 국민정부 시기에 이르러서였지요.

중국에 최초로 전화가 도입된 것은 1882년이었으나, 양무파 대신들의 주도로 중국 전역에 빠르게 전보가 보급된 것과는 대조되게도 그 도입의 속도가 느렸습니다. 1911년 청조 멸망 시점에서 중국 전체의 전화 가입자 수가 8천 명에 불과할 정도였지요. 추측컨대 이는 언어의 문제로, 음성보다 문자를 주고받는 것이 훨씬 편리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훗날 삼민주의 중 ‘민생주의’로 발전하는 손문의 평균지권 사상은, (후대에 보기에는 다소 사회주의적일 수 있지만) 유럽 자유주의자들이 한때 내세웠던 토지 공개념과 중국 전통의 대동사상이 결합되어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이는 한창 손문이 무장혁명을 꾀하던 시기 동맹회의 강령에도 들어갔고, 이후 북양정부와 협력하던 시기에는 완화되었다가 1차 국공합작 무렵의 만년에는 다시 경자유전 원칙이 재강조되는 등, 시세에 따라 변동은 겪었을지언정 손문 사상의 핵심 요소로 남았습니다 (정태욱(2015), “손문 평균지권의 자유주의적 기원과 중국 공화혁명에서의 전개과정.” <법철학연구> 18(2)).

중간에 광서제가 언급하는 옹정제 이야기는, 그가 『대의각미록(大義覺迷錄)』을 직접 집필해 화이론에 입각해 반청복명을 외치는 한족 지식인들을 설득하려 했던 것을 뜻합니다. 1730년 완성하여 전국에 배포하고, 글을 모르는 백성을 위해 공개 강연회까지 열도록 하였는데, 그러한 선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큰 성과는 거두지 못하였고, 옹정제 사후 건륭제는 대의각미록을 모두 거두어들여 불살랐습니다 (물론 이는 <대의각미록>이 청조 역대 황제의 잘잘못을 가리고 일부나마 허물을 인정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대의각미록에서 옹정제가 청의 집권을 정당화하며 주장한 ‘대일통(大一統)’론, 즉 오직 청이 있었기에 중원뿐 아니라 당시 ‘천하’의 전부가 하나의 집안에 뭉치게 되었다는 것은 나름대로 호응을 얻었고, 후일 오족공화론 등으로도 이어지게 됩니다. 여담으로, 엉뚱하게도 대의각미록은 당시 조선에도 받아들여져 북학파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조정이 만백성의 공복”이라는 것은 매우 극단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이는 서양 민권론과 전통의 대동사상 (‘천하위공’도 같은 맥락에서 나오는 말입니다.)이 결합되어 제기되는 주장으로 강유위가 무술변법 당시에 이미 주장하였던 것 중 하나입니다. 따라서 그보다도 열 발짝쯤 더 급진적인 손문이라면 오히려 황제 앞이기에 성질을 죽여서 말한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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