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종, 군밤의 왕-182화 (182/320)

60. 하늘 속이고 바다 건너기 (1)

여명을 전주곡 삼아, 마침내 동쪽에서 해가 수평선을 돌파하는 모습. 일출은 오늘따라 장관이었다.

“엑스 오리엔테 룩스(Ex oriente lux. 빛은 동방으로부터)! 정말 멋지군!”

“하하, 니키. 낭만주의자 같으니라고. 일출 정도야 출항하고서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볼 수 있는 것 아니었나?”

“조르주(요르요스), 그러는 너야말로 감성이 메마른 것 아니야? 그리고 잘 보라고. 바다 색이 바뀌었어.”

“허, 그런 것도 같네. ‘누런 바다(黃海)’라더니, 정말인가.”

아마 바뀐 것은 바다 빛깔보다는 그들 마음이겠지만. 저의 사촌형 ‘니키’가 유난을 떤다고 은근히 놀리고 있었지만, 그리스 왕국의 왕자 요르요스도 사실 설레는 것은 매한가지라, 이렇게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구경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공식적으로는 얼마 전 첫 삽을 뜬 일대의 대사업 시베리아 횡단철도 건설을 격려하기 위하여 떠나는 여행이었다. 하지만 그보다는 졸지에 차르가 되어버린 알렉산드르 3세가, 아들 니콜라이는 자신보다는 조금 더 세상 경험을 널리 쌓게끔 해주고픈 마음으로 기획한 면이 강했다. 물론 한창 혈기왕성할 나이의 니콜라이였으므로, 그 부정(父情) 어린 마음 모르더라도 중간 기착지마다 돌아다니며 이국의 정취를 만끽하려 했겠지만.

그리하여 기나긴 여정 끝에 마침내 대륙 반대편에 도달하였으니 스무 살 젊은이 마음이 설레지 않을 리 없었다. 어제 함장 로멘 대령이 직접 보고하기를, 오늘 중으로 동방에서 그들의 공식적인 첫 목적지인 카레야, 조선에 닿을 예정이라 하지 않았던가.

“도착하면 그때부턴 바빠지겠지.”

“하하, 나는 그저 따라서 구경 온 셈 치라고. 설마 고명하신 황태자께서 대역으로 나를 내세우려 한다던가 하지는 않으시겠지?”

요르요스 말마따나, 그리스 왕국이라고 하면 극동에서는 그런 나라도 있었느냐며 어리둥절해 하는 자들이 태반이요, 설령 그 이름 들어본 자가 있다 한들 옛 희랍(希臘)이 아직까지 명맥 잇고 있다니 참 대단하다며 엉뚱하게 찬탄하는 이들이 다시 태반일 테다. 하지만 그의 사촌으로 말하자면 러시아의 체사레비치(황태자) 니콜라이였으므로, 조용히 관광이나 하려고 한들 누구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었다.

“그래도 너무 힘은 빼지 말라고, 니키. 미리 전달받은 계획상 일정만 하더라도 꽤 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조선을 둘러보고 난 뒤에는 옆 일본도 잠깐 들리고, 그 다음에는 다시 사촌형네 나라로 돌아가서 블라디보스토크... 덜컥 병이라도 나면 우리 아버지(요르요스 1세)께서도 곤란해지시니까.”

“뭐, 지금까지 여행에서는 별 탈 없었으니까, 너무 걱정은 마.”

“말마따나 지금까지는 여행이었지만 이제부터는 ‘순방’이잖아. 너무 쉽게만 생각해서는 안 되겠지.”

니콜라이의 공식적인 목적지는 블라디보스토크 한 군데요, 나머지 지역들이야 가운데에 잠시 기항하면서 둘러보는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실론이나 자바 같은 곳에서야 그랬을지 몰라도, 점차 진지한 나랏일이 여럿 얽힌 극동에 다가갈수록 황태자 역시 언행에 신경을 써야만 할 것이었다.

비록 수염도 다 나지 않은 니콜라이라지만, 그런 이치를 모를 리 없었다. 그런 바깥 세상 고민보다 우선 신실한 신앙의 수호자이자 자애로운 러시아 인민의 어버이가 될 준비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여기는 궁내의 몇몇 늙은이들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러시아는 엄연한 강대국이었고, 강대국은 자신의 의사가 어찌 되었든 세계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는 법이므로.

더구나 그가 출항하기 전 듣기로도 조선은 러시아와 프랑스 두 나라가 호의적으로 내민 동맹 제의를 사실상 거절하였다고 하였다. 극동이 아무리 현재 러시아에게는 중요하지 않은 땅이라 하여도 앞으로는 그렇지 않을 것이니, 국경을 접한 이웃 중 하나인 조선에 대해서 더욱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보니 조선은 자유주의자니 사회주의자니 하는 자들 소굴이라던데. 조금은 몸조심해야 할 수도 있겠는걸.”

“그런가? 듣고 보니...”

별 생각 없이 말을 꺼냈는데, 요르요스는 그제야 저의 사촌형의 귀가 얇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개인의 건강이야 그렇다 쳐도, 불행하게도 이 시대 문명 세계의 군주들이라면 대개 걱정할 수밖에 없는, 불순분자들의 음모 – 당장 로마노프 황실에도 그런 슬픔이 불과 수년 전에 닥치지 않았던가 –를 거론하였으므로 니콜라이가 아니라 다른 러시아 황족을 데려다 세워놓아도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는 했지만.

더구나 조선의 국내 사정에 대해 출항 전 보고받은 것을 떠올려보니 더욱 그럴듯하게 들리는 면도 있었다. 그나마 친러파라고 들었던 그 문명진보당(개화당)이 지난 선거 – 니콜라이 본인의 사견으로는, 군주의 위엄을 스스로 내려놓는 실책이었다. -에서 참패하고, 대신 반러·친영 세력이 힘을 얻었다 하였던가. 어쩌면 동맹 제의를 거절한 것도 그와 무관치 않을 수도 있었다.

방금 전만 하더라도 설레는 마음 가득했던 ‘사촌 니키’의 얼굴이 급히 굳어졌다. 그제야 요르요스가 말실수를 깨닫고 수습에 나섰다.

“에이, 아무리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고 하지만 설마 그 정도일까. 그리고 어련히 경호를 알아서 하겠어? 말한 것처럼 ‘조금만’ 신경 쓰면 될 걸. 그리고 정말 정신이 이상한 자가 아니고서야, 설령 극단주의자라 하더라도 대러시아의 황태자를 감히 노리겠어? 조선이 이상한 짓을 많이 하기는 하지만, 적어도 전쟁을 좋아하는 나라는 아니라고 들었어.”

곧 밝혀지기로, 요르요스의 말마따나 걱정할 것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조선에서의 일정에서 니콜라이 일신에게 가해진 최대의 고난은, 멋모르고 현지 예법을 따르겠다며 신발을 벗고 마루에 억지로 – 요르요스의 표현에 따르면 ‘인도의 요가 수련자처럼’ - 앉았을 때 허리와 관절이 혹사당한 것, 그리고 펄펄 끓는 매운 수프에 혀를 덴 것. 이렇게가 전부였으니.

허나 세상 일이라는 것이 대개, 한쪽에게 다행스러운 것이 다른 한쪽에게는 꼭 다행이 아닐 수도 있는 법.

“요코하마로부터의 소식이오. 황태자 전하께서 일본에서의 일정도 무사히 마치셨다 하더군. 아마 지금쯤이면 출항하셨을 것이오.”

어둑한 집무실에서 연해주 군정장관 운터베르거(Павел Ф. Унтербергер)가 서두를 떼자, 방에 모인 이들이 다들 침울한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이런 날이 오고야 말았군요.”

부디 현실이 아니기를 바라고 또 바랐건만, 결국 걱정하였던 일이 눈앞에 닥치고야 말았다.

러불동맹에서 아쉬운 쪽은 (아직은) 러시아인지라, 물주 프랑스 대표단을 멀리 다른 곳으로 청할 수도 없어 공식적으로는 모스크바에서 기공식을 개최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극동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극동 쪽 구간의 공사 예정지도 한 번쯤 직접 순방할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 차르와 여러 대신들이 동의하는 바였다.

중국의 협조를 구하거나 압박하여, 중국 영토를 통과하는 노선을 개통한다면 예산으로 보나, 시간으로 보나 훨씬 바람직할 것이었다. 여차하면 중국과의 협상에 따라 묵덴(심양)이나 훈춘 등 지역 중심지까지 포함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유사시 중국과 조선에 대규모 병력을 전개할 수도 있으니 사업의 수익성으로 보나 정치적 효과로 보나 최선이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외무부의 기르스를 포함한 신중론자들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중국령 관통에 반대하였고, 만일 추진하더라도 가급적 인구가 희박한 만주의 북쪽으로 한정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뜩이나 극동에서의 러시아 영향력 증가를 위협으로 인식하는 중국인데, 동북부의 핵심 거점을 우리 거점과 잇는 철도를 짓겠다고 하면 가만히 받아들일 가능성은 희박하였던 것이다. 괜히 동철과 그 뒤의 유럽 국가들을 자극한다면 러시아에게 유리한 결과는 아니었다. 더구나 전면전 상황에서 남쪽에 치우친 노선이 만일 양을 앞세운 중국이나 조선 군대에게 점령당한다면, 자칫 최악의 경우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어찌 되었건 블라디보스토크와 하바로프스크 사이는 철도로 이어야 하는 것이어서, 우선 그쪽 공사부터 추진하기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러니 시베리아 횡단철도 사업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블라디보스토크와 연해주 사람들 입장에서는 손해 볼 일이 전혀 없는 것이었다. 어디까지나 이론상으로는.

현실은 이러하였다.

“조선인 인부들의 시가지 출입을 막는 일은, 시내의 점포 중 귀화하지 않은 이들이 운영하는 점포를 휴업케 하는 일은 모두 조치가 완료되었습니다. 필요한 경우에 대해 배상금도 미리 지급을 완료했습니다.”

“조선인들 덕에 그럴 만한 재정은 풍족해졌으니 그나마 다행이라 해야 할까요.”

누군가의 씁쓸한 단평이었다. 여전히 고질적인 밀입국 문제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만, 그래도 조선인들 따라 오가는 돈이 적지 않아 그것을 바라보고 연해주로 건너오는 자들도 적지 않았다. 물론 그래도 이곳이 연해도(沿海道) 해삼위도호부 아니냐는 고약한 조선 농담대로, 여전히 조선인들이 도시와 일대를 장악하다시피 하고 있는 상황은 변함이 없었다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러한 실정이 대륙 반대편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고스란히 보고되지는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연해주를 터전으로 삼고 있던 무라비요프 백작이 작고한 이래, 이 일대에 얽힌 러시아 관료와 군인들 중 중앙 정계에서 목소리 낼 만한 거물은 전무하였고, 수도에서 직접 조사단을 내려보내거나 하지 않는 한 블라디보스토크는 ‘러시아의 동방 진주’ 정도로 계속 인식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중앙 정계에 발언권을 지니는 것을 넘어 지엄하신 차르 폐하의 바로 아래에 계신 분께서 친히 왕림하시게 되었으니, 겨우 쉬쉬하며 지내던 블라디보스토크의 고관과 유지들로서는 참혹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하여 궁여지책으로 떠올린 방도가, 일단 ‘생각보다 도시에 조선인이 많다’ 하는 인상도 들지 않도록 최대한 실정을 감추고 또 감추는 것이었다.

‘왜 이렇게 조선인이 많은가’ 하는 질문이 황태자에게서 나오게 되면 그 뒤로는 기차와도 같이 죽 질문이 이어질 것이었다.

‘그렇게 조선인이 많은데 혹시 통제에 어려움은 없는가’ 하문할 것이요,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조선과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가 늘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저들이 우리를 통제한다고 하는 편이 더 옳을 것입니다.’하고 직고할 수도 없는 노릇.

그러니 황태자 앞에서 거짓말을 늘어놓는 것보다는, 모두의 속이 편하도록 진실을 적당히 치장하여 아예 이상한 점이 드러나지 않게끔 하는 편이 낫다. 이것이 도시의 세력가 대부분이 공유하는 생각이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황태자께서 도시를 직접 둘러보시겠다고 할 경우는 어떻게 하지요?”

“어떻게 동선을 잡아도, 조선인들이 거주하는 구역들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가급적 덜 ‘조선스러운’ 쪽을 지나실 수 있도록 노력해봐야지요.”

“그런데 조선인들이 결례를 범하거나 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대부분은 물론 예의 바르게 굴겠지만, 돌발적인 행동을 한다던가... 아무래도 말과 문화가 다르니까요.”

“최대한 조선인들에게 협조를 구해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운터베르거는 가만히 뭔가를 생각하고 있는데, 모여 있는 사람들끼리 대책을 재점검하며 말을 주고받았다. 그때 운터베르거의 막료 중 하나로 블라디보스토크 시를 총괄하고 있는 플라톤 예르몰라예프(П. Ермолаев) 준장이 나섰다.

“파벨 표도르비치(운터베르거), 허락해 주시면 제가 직접 나서서 다시 한 번 주의를 주겠습니다. 그들은 관직에 있는 사람들을 공경하니, 제가 직접 나서면 다들 경청하기는 할 것입니다.”

주변의 다른 참모들과 시의 주요 인사들이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훌륭하십니다.”

“조선인들 하는 말대로 ‘병사 천 명, 말 만 마리(천군만마)’ 얻은 것과 같군요.”

그런데 웬걸.

“불허하오.”

“각하?”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지금 준비하는 일이 잘못된 것이라는 믿음만 굳어지는구려. 처음에야 여러 사람들이 입을 모아 최대한 모두에게 좋은 방법을 마련하여야 한다 하였으니 그대로 해보자 하였지만...”

예르몰라예프 같은 이들이야, 여기서 조용히 지내다 은퇴하고 한 자리 얻어서 살아가면 족하다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이곳 극동에서 무언가 실적 올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생각뿐인 운터베르거는 그렇지 않았다.

“여러분도 다시 생각해보시오. 언제고 불거질 수밖에 없는 일이오. 만약 철도가 개통되어 우랄 서쪽으로 향하는 길이 활짝 열린다면, 그때도 지금처럼 이 도시와 연해주의 현실을 감출 수 있겠소?

그러니 이번에야말로 황태자 전하께 실정을 이실직고해야 하오. 물론 그 동안 왜 감추었느냐, 그런 질책을 받을 수는 있겠지. 하지만 나중에 당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지금 터뜨리는 편이 좋지 않겠소?”

“각하, 재고해주십시오.”

“그렇습니다. 섣불리 문제를 제기했다가, 정말 국경이 막혀버리거나 하게 되면 도시가 입을 피해는 추산조차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좌중의 동향이 다들 반대 – 말이 반대지, ‘너만 출세하면 그만이더냐’ 하는 불만이 여러 사람 턱까지 올라온 것이 보였다 – 에 가까운 것을 보자, 운터베르거도 결국 뜻을 굽히는 듯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우선 이번에는 계획대로 진행하도록 하시오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물론 운터베르거 본인이 계획에 동참하겠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더 잘 된 일 아닌가?’

황태자의 눈을 가리려 하는 간사한 지역 유지들, 그리고 그들에 홀로 맞서는 유능하고 충성심 넘치는 고관. 운터베르거가 생각하는 출세의 이상적인 모습에는 훨씬 가까운 것이었다.

그렇게 도시의 우두머리들이 동상이몽(同床異夢)에 빠져있는 동안, 차르의 후계자이자 아들인 니콜라이를 태우고서 함대는 동해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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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 러시아의 궁중 언어는 대개 프랑스어였습니다. 그로 인해 러시아 황태자가 그리스 왕자 (정작 왕가는 덴마크 출신이지요)를 프랑스어로 부르는, 객관적으로는 조금 이상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습니다.

작중에서는 러불동맹이 기묘한 나비효과의 연속으로 인해 조금 일찍 공식화되었고, 그로 인해 프랑스를 통한 자본 조달이 용이해지면서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공사도 빨라지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원 역사에서 1891년 여름 블라디보스토크-하바로프스크 구간 철도 기공식을 위해 극동으로 향하던 니콜라이 2세도 약 한 해 일찍 동쪽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기공식은 핑계고. 작중에 묘사된 것처럼 황태자가 세상 구경을 할 수 있도록 하려는 알렉산드르 3세의 배려가 강하게 작용하였습니다.

원 역사의 니콜라이 2세는 (당연히 조선은 생략하고) 실론, 자바, 싱가포르, 남중국을 거쳐 일본에 도착했습니다. 물론 이전에도 다른 나라 왕족을 종종 맞이했던 메이지 일본이었습니다만, 한 나라의 황태자, 그것도 북쪽으로 인접한 러시아의 황태자가 방문한 것은 중대한 행사였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관심이 집중되었지요. 심지어 일본의 국격을 위해 ‘과도하게’ 준비하지 말자는 주장이 일본 내에서 제기될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중 망상장애를 앓고 있던 서남전쟁 참전자 출신 경찰 쓰다 산조(津田三蔵)의 습격으로 황태자 니콜라이가 머리에 자상을 입는 사건, 이른바 ‘오쓰(大津) 사건’이 발생하면서 일본 전역이 파란에 휩싸이게 됩니다. 물론 작중에서는 서남전쟁도 없고, 러시아와 아시아개발은행 등을 통한 교류가 훨씬 크기 때문에 오쓰 사건도 일어날 일이 없을 듯합니다.

여담으로, 흔히 러시아의 황태자에 대한 칭호를 ‘차레비치’로 옮기고는 합니다만, 이는 차르 슬하의 모든 왕자에게 붙이는 표현으로 조선 식으로 굳이 옮기자면 ‘대군’ 정도가 될 것입니다. 보통 황태자에 대해서는 ‘계승자이자 황제의 아들(나슬레드닉 체사레비치наследник Цесаревич)’라는 호칭을 사용했지요.

원 역사의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공사 중 삼국간섭과 의화단 사건 등으로 극동에 대한 러시아의 발언권이 강해진 덕에 현 러시아 국경을 따라 북쪽으로 빙 우회하는 대신 만주를 관통하는 쪽으로 건설되었습니다. 러시아가 뤼순(포트 아서. 현 다롄)을 할양받으면서 요동 반도까지 지선(支線)이 확대되기도 했지요.

원 역사에서 플라톤 예르몰라예프는 블라디보스토크의 마지막 군정장관을 역임했습니다. 작중에서는 블라디보스토크가 훨씬 빠르게 성장하였기 때문에, 운터베르거의 아래에 있습니다.

파벨 시몬 운터베르거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독일계 집안 출신입니다. 원 역사에서도 이 무렵 극동에 머물면서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공사를 감독했고, 그 공을 인정받아 극동 전문가로 활약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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