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종, 군밤의 왕-168화 (168/320)

55. 강철과 피 (2)

한바탕 폭풍이 훑고 지나간 운현궁에 정적이 돌아왔다.

‘그 전가 놈’을 당장 대령하라 하는 명이 떨어질 것이 분명하였으므로, 매를 먼저 맞게 하는 편이 피차 좋으리라 생각한 김가진은 다시 인천부로 돌아가 바로 전봉준을 데려왔는데, 잠시의 대면 후 곧장 떠나는 전봉준은 놀랍게도 오장육부가 모두 성하였다.

대원군도 이제 노쇠하였으니 직접 손찌검까지는 못하겠지만, 또 부리는 문객을 시켜서 ‘막힌 성정 통하게’ 해줄 수도 있는 것인데, 솟을대문 넘어가는 전봉준이 맞은 것은 축객령 하나 뿐이었으니 어찌 의외가 아니랴.

“저대로 두게. 제까짓 놈이 무얼 하겠는가.”

“예, 합하.”

대원군이 김가진의 눈에 서린 의문을 보았는지, 곧장 부연하였다.

“아직 버리기에는 아까운 자일세. 비록 무엄하게도 지존의 뜻을 거스를 생각을 하였다만, 저 자의 천성이 반골인 것이니 어찌 하겠는가. 중히 쓰지는 않더라도 계속 옆에 두면 필히 예리한 창끝으로 쓸 수 있을 터.”

“정녕 후환이 없을지요?”

“기어오르는 마음을 품었을지언정 그것을 사사로운 원한으로 삼을 만큼 도량이 좁은 자는 아니야. 내 호되게 꾸짖고, 역매의 아들(오세창)을 부려 『익정신보』로 무슨 여론 놀음 할 생각은 품지 말라 하였으니, 스스로 궁함을 알고 물러난 것이지.”

공산당의 당론 운운하며 감히 나랏일에 어깃장 놓을 생각을 하였으니 대원군 생각에 참 괘씸한 작자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적 김좌근 같은 자처럼 무언가 저의 이익을 위하여 종사의 위엄을 덜어낼 마음으로 그리하지는 않았으므로 당장의 해로움은 없을 것이었다.

오히려 이번 기회에 매사가 저의 뜻대로 되지 않음을 깨닫고, 조금은 길이 들 수도 있지 않겠는가 싶었다. 어차피 공산당 품을 떠나면 서생 축에도 들기 어려운 전가이므로, 곧 사세 여의치 않음을 알고서 저의 분수에 맞게 처신하게 될 것이었다.

“자네가 을사년(1845) 생이었던가?”

“병오년(1846) 생입니다, 합하.”

늙으면 느는 것은 한탄과 사설이라더니, 그 말이 맞는지 또 김가진에게 더 속을 풀어놓았다. 어쩌면 자신이 떠난 뒤에 공안서 맡아야 하는 이에게 조금이라도 자신의 일부 남기고 싶은, 대원군 자신도 잘은 모르는 깊은 마음속이 드러난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찌 되었건 계해년 환국 전의 나라 모양새는 기억하고 있겠지. 그때 나랏일치고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얼마나 되었겠냐만, 그 중에서도 간과(干戈) 극렬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네.

세간 사람들은 을축년(1865) 싸움에서 우리가 법국을 이겼으므로 그때도 조선국 무비 강성하였다고들 여기지만, 실지로는 그저 천행(天幸)이었을 뿐, 전혀 그렇지 않았네. 만약 그때 법국 백락내(벨로네) 그를 성상께서 회유하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참으로 어려운 싸움이 되었을 것이야. 당장 그해 훼멸(毁滅)되다시피 하였던 심도(沁都, 강화도) 인근 진들만 하더라도, 스스로 망가져서 터진 화포가 법국의 불질에 당한 것보다 세 배는 많았지.

우리가 그런 지경에서 올라와 겉보기로나마 성세를 이룩한 것은, 말로는 도의를 앙양(昂揚)한 덕이라지만 실제로는 그 뒤에 차근차근 병비를 갖추었기 때문이야. 위엄이란 결국 무(武)에서 나오는 것일세. 조종 오백 년을 보아도 군권을 쥐지 아니하고 집정(執政)한 이는 없었어. 어찌 나라 사이의 일이라고 다르겠는가?”

오죽하였으면 싸움을 싫어하는 그의 아들 주상도 이번 일에 앞장서서 군비를 늘리자 하였겠는가. 그런 뜻을 모르고서 헛소리를 하는 전봉준을 내칠 수밖에 없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내 떠나게 되면 – 물론 아직은 몇 해 남은 듯하니 헛된 생각은 품지 말게 – 곤전(坤殿, 중전)이 또 대신하게 되겠지만, 그렇다 한들 직접 공안서나 엄익관의 무부(武夫)들을 다룰 수는 없으실 터이니 자네가 힘써야 하네.”

“예, 합하. 여부가 있겠습니까.”

과연 속 모르는 김가진이 늙은 대원군이 펴보인 흉중의 뜻을 얼마나 받아들였을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지만.

그렇지만 대원군이 생각지 못한 것이라면, 전봉준이 취할 수 있는 수가 결코 만민공산당 안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이왕 조정의 방침이 청국에 대응하여 군비를 늘리는 쪽으로 정해졌으니, 여러 식자들이 예상하였던 것처럼 개화당은 곧장 환영하는 뜻을 밝히고 그에 편승하고자 하였다. 공산당이야 전봉준 한 사람이 무어라 하든 엄연히 운현궁의 당이므로, 결국 민태호 이름으로 정말 훌륭한 뜻이므로 조선 사람들은 모두 나랏일 돕자는 식의 뜻을 밝혔다.

그러니 남은 것은 최익현네 자유당 하나뿐인데, 당장 『교린삼장』 같은 좋은 뜻을 제쳐두고 군무에만 힘을 오롯이 쏟자 하는 것도 아니요, 그저 만에 하나 옆 나라가 잘못된 생각 품지 못하도록 태세 갖추는 것이라 하니 딱히 반대할 사유가 없었다.

국론 나뉘었을 때에는 모든 생각을 저울질한 뒤 대개 성단이 내려지지만, 반대로 국론이 정해진 뒤에는 이를 거스르기가 참 어려운 실정이었다. 주상의 위엄이 나눠준 만큼 돌아오고 보태준 만큼 두터워지니, 조정 생리 잘 아는 최익현으로서는 잠시 대세에 따르자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최익현 사정이고, 물주라 할 수 있는 안인수로서는 개화당이 하는 소리를 반박하였으면 좋겠다 은근이 생각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인천부에서 올라온 한 사내가 비슷한 뜻 품고 있다며 글을 실어달라 청하였다는 것 아닌가.

그리하여 얼마 뒤 안인수네 『해동일보』에 ‘만민공산당의 한 당원’ 명의로 실린 기고문이 하나 실렸는데, 내용 살피면 그 요체는 이러하였다.

‘강철과 피죽이냐, 피륙과 이밥이냐? 그것이 작금의 국정이 놓인 기로(岐路)이다.

지금 혹자는 나라의 성세를 말하면서 이를 지키기 위한 간성(干城)으로서 수사(水師)와 정병(精兵)을 이르고는 한다. 그러나 감히 반문컨대 지금 우리가 누리는 것이 성세(盛世)인가? 비록 주림 이기지 못하고 길바닥에 쓰러지는 이는 없어졌다지만 여전히 보릿고개에 피죽으로 연명하는 이는 남아있고, 보습 댈 땅을 모두 가지게 되었다지만, 천석꾼의 곳간은 날로 커져가는데 오직 땅뙈기 하나만 지닌 빈농들은 겨우 연명할 만큼 소출 늘어났다는 것으로 족히 여겨야 하는 실정이다.

겨우 국운이 트여 이런 이들에게까지 조금씩 개화의 이로움이 돌아가기 시작하였는데, 청국과 군비를 놓고 겨루게 되면 그 조세는 어디서 충당할 것인가? 팔도의 군현에서 올라온 참의대부들은 어찌 이 사정을 거론치 않는가?’

정면으로 어지를 거스르는 것 아니냐며 안태훈이 걱정하였으나, 안인수는 설령 죄까지야 받겠느냐, 그리고 윗전 사람들은 몰라도 아래에서는 반향 작지 않을 것이므로 단순한 난언으로 치부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그대로 밀어붙였다.

그리고 그의 말마따나, 정사에는 어두우나 목소리는 큰 – 그리고 저들 가산 하나만은 참 중히 여기는 – 무리가 팔도에 많았다. 대원군으로서는 답답할 노릇이었지만.

그리하여 논란이 결국 어전까지 이르렀으니, 궁 안에서 오래 지냈던 이들은 절로 긴장에 숨을 죽였다.

곤룡포 대신 평복 입혀놓고 저자에 내어놓으면, 저 순박해 보이는 난쟁이는 누구인고, 하는 소리 들을지도 모르는 임금이다. 그러나 그처럼 성정이 온순하고 함부로 남을 꾸짖거나 탓하지 아니하는 어진 주상이 목소리를 높인 적이 몇 번 있었는데, 중전이 출산한 어린아이가 돌연 숨을 거두었을 때 내의원을 꾸짖은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신미년에 이필제 – 공안서의 보고에 따르면 군문 나온 뒤에는 이름 바꾸고서 길림 어딘가에서 천도교에 입교했다 하였다 –를 추상같이 나무란 것이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고는 하였다.

(연병법으로 인하여 실제로 고생하였던 이들이 속속 각사에 들어오면서 그 이야기는 더욱 증폭되고는 하였다.)

그런데 바로 그렇게 민감한 병비의 일을 직접 건드리는 글이, 간곡하고도 정중한 상소가 아니라 이렇게 시무 자체를 비평하는 글로 만들어져 어심 어지럽히게 되었으니, 비록 늦가을 서리처럼 매정하게 누구를 죄주거나 할 임금은 아니라지만 어찌 마음 다잡고서 어떤 옥음 내릴지 면밀하게 살피지 않겠는가.

그러나 어찌 되었건 정식으로 올라온 상소도 아니므로 비답을 내릴 것도 아니요, 국법으로 다스릴 만한 죄도 아니므로 직접 처결할 건도 아니었다. 그러므로 경복궁 안의 일상은 그대로 돌아가, 불운하게도 이번에 차례가 돌아와 호조의 일을 보고하게 된 어윤중이 먼저 어심의 어지러움을 헤아리게끔 되었다.

“부디 무사하십시오.”

“이 사람, 말만 들으면 어디 싸움터 나가는 줄 알겠네.”

털래털래 걸음 옮기는 어윤중 옆에 그의 동문 김윤식과 김홍집이 따라붙었다.

“흠흠, 어디 효도만 색난(色難, 낯빛 살피기가 어려움)이겠는가. 신하된 이로서 성심을 헤아리고 살핌이 가당한 일이지.”

“대서 속담에, 탄광의 광부들이 항상 새 한 마리를 데리고 들어간다 하던데, 지금 저를 그렇게 쓰시려는 것 아닙니까?”

“옳게 보았네그려. 나도 나이가 나이인데 이제 조금 처신에 신경을 써야 하지 않겠는가. 자네 다음으로 입시하는 것은 이 사람이니. 또 어떤 사람이 청탁하여 대신 진언해달라 한 계책도 있고.”

어윤중이 삐죽하게 약간의 심통 난 목소리로 되물었더니, 김윤식이 너털웃음으로 받았다. 솔직하게 인정하였으므로, 저의 동문이자 이제는 같이 대감 소리 듣는 입장인 그가 얄밉기는 해도 또 싫지는 않았다. 말은 저렇게 해도 또 걱정하여 따라붙은 것도 있지 않겠는가.

“겨우 모이는가 싶었던 국론이 다시 설왕설래하게 되었으니 성상께서 노여워하시지는 않으실까 두렵습니다. 저를 통하여 이득 보시는 바가 있으면 베풀어 주시는 바도 있으시겠지요?”

하필 지난번 기무회의에 집안일로 광주(廣州) 내려갔다 오느라 빠졌던 어윤중이 다시 물었다.

“흠. 지난 회의에서 이 총관(이경하)이 아뢰기를 공산당을 저들 편으로 여기는 향리들이 많이들 찬동하고 있다 하였는데, 알다시피 주상께서 공산당을 항시 꺼리시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따로 역정을 내거나 하지는 않으셨으니, 아마 자네가 추상같은 진노를 홀로 맞는 그런 일은 없을 듯하네.”

“그렇습니까.”

“아니라면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자, 이만하면 충분히 귀띔해준 것 아닌가.”

‘아니면 말고’하면서 능청맞게 김윤식이 살짝 웃었다. 허나 그들이 아웅다웅하건 말건 걸음은 옮겨지고 주상 기다리시는 전각은 다가와, 마음 부여잡고서 들고자 함을 아뢰었다.

그런데 잠시 문 열릴 때 무엄하게 김윤식이 살짝 고개 들어 안쪽을 살피려 했다가, 주상과 눈이 마주치고야 말았다.

‘에고’ 소리가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게 절로 나왔는데, 곧장 옥음이 내렸다.

“아, 옛 생각이 나는구려. 아직 날 추운데 경들도 들도록 하시오.”

의외로 평시와 다르지 않은 어조에, 조금은 긴장이 풀렸다.

저의 팔자가 뜬금없이 바뀌었듯 이 나라도 어쩌면 망하지 아니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이래 귀남이 힘써온 것이라면, 나라 안팎의 누구도 원한 품지 않게끔 점잖고 선량하게 대함이 하나요, 만에 하나 일이 틀어지더라도 비참한 지경에 처하지는 않도록 나라의 방비를 키우는 것이 또 하나였다.

그런데 이 글을 보니 또 생각이 달라져, 누가 저의 뜻에 반대하는가 하는 노여움보다는 도리어 고민스러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그가 흔히 듣고 말하던 표현을 빌리자면, 왜놈도 원수고 북괴도 원수라지만, 가난도 원수이지 않던가.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무리 그래도 영 미덥잖은 자의 말을 믿고 군비 늘리기로 한 것을 되물리기도 저어되는 것이었다. 운현궁에서 후에 전하기를 그 글은 공산당 ‘빨갱이’인 전 모가 썼다고 하지 않던가. 그리하여 이왕 눈에 들어온 옛 경연관들까지 데려다가 한 번 뜻을 물어보기로 하였는데, 척 보았더니 다들 심란해 보이는 것이 아마 저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겠거려니 싶었다.

“호조의 일에 어려움은 없소?”

“늘 베풀어주시는 성은이 하해와 같으니 무슨 간난(艱難)이 있겠나이까.”

“그렇다니 다행이구려. 하면 이번 병비의 일을 논해야 할 듯하오.”

터질 것이 터졌다.

“이 전 모라는 자가 적은 것이 얼마나 맞는 말인지, 우선 이를 묻고자 하오.”

일전에 어지 받들어 나라의 온갖 통계는 다 다루어보았던 어윤중이었다. 나라 안에서 그가 이 사정을 모른다면 또 누가 알겠는가.

“곧장 아뢰자면, 그 말에 가감할 바는 없지 않으나 그 큰 뜻은 틀리지 않습니다. 비록 지금 나라 안에 유리걸식하거나 길에 쓰러져 죽는 자들이 없는 것은 맞으나, 또 각 군현마다 개화의 이로움을 얻은 바에 차등이 있음도 맞습니다. 더구나 근래에는 대읍(大邑)에 몰린 협호(挾戶)들로 빈궁하게 지내는 자들도 없지 않은데, 경사(서울) 성저나 인천부만 하여도 그 수가 기만(幾萬)은 될 것입니다.”

나라 안팎에 날로 거두는 소출은 늘어나고, 관개에 힘써 풍흉이 고르게 되었다지만, 오히려 그로 인하여 미곡의 값은 떨어지고 있었다. 더구나 수리(水利)의 덕을 크게 보는 목 좋은 전답이라면 누가 가지고 있겠는가. 물론 나라의 세금이 허투루 쓰이는 것도 아니요, 동헌에서 나온 아전이 함부로 잡세 매겨 수탈해 가는 것도 없지만,

“결국 정예한 전선과 화포를 제조하는 일에는 국용(國用)이 들어가고, 한 번 만든 군무(軍務)의 기물은 나라를 지키는 위엄을 제하면 그 어떤 이익도 내지 못합니다. 그러니 강철을 들여오면 피죽을 면치 못한다 하는 것이 아예 틀린 말은 아닌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크게 본 것이요, 당면한 군무의 일로 말하자면 그 정도에 이르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니 다행이구려. 생각해보면 무비란 함부로 가볍게 여길 수 없는 것이니, 자칫하면 피죽조차 호사가 되어버리는 수도 있을 것이오.”

듣고 보니 걱정하였던 만큼 임금의 심사가 뒤틀리지는 않은 것이라, 두어 번쯤 고심하던 김홍집이 평소 염려하던 바를 아뢰었다.

“하교하시는 바가 지당합니다. 다만 신이 듣기로, 대국의 북양대신이 아조를 두려워하여 자국의 수사를 가다듬고자 한다 하였으니, 한편으로는 군비를 늘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대국과의 교분을 새롭게 하여 우리가 다른 뜻 품지 않았음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무릇 병기라는 것은 스스로 지키고자 하는 뜻을 담았지만, 마음 품기에 따라 남을 해하고 겁박하는 일에 쓰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성상께서는 어지시어 나라 사이의 사귀는 도의를 결코 거스르지 아니하시지만, 이런 사정을 모르는 자들로서는 우리가 군비를 갖추는 모습을 보고 놀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만일 북양대신이 그리 여기어, 다시 덕국이나 영국 등지에서 새로 무기를 들여오려 하게 된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그리하게 되면 그때에 맞추어 다시 태세를 다듬으면 되지 않겠소?”

가만히 수지를 맞추어 보던 어윤중이 말했다.

“황송한 말씀이오나... 만일 지금 예조참판(김홍집)이 아뢴 것과 같이 형국이 변하게 된다면 그때는 정녕 저 신보에 실린 대로, 피죽이냐 미반(米飯)이냐를 놓고 고심케 될 듯합니다. 비록 대국이 근래 혼미하다 하나, 엄연히 큰 나라를 자칭할 만합니다. 그런 나라와 대등하게 군비를 갖춘다 하면, 물론 그간 갖추어둔 제조국의 제도가 있으므로 함부로 불가하다 단언할 수는 없으나, 분명 나라 안에도 적지 않은 폐단이 생기고야 말 것입니다.”

말이 거기에 이르니 딱히 뾰족한 수가 없어 다들 고심하고 있는데, 옆에서 가만히 듣던 김윤식이 넌지시 말을 꺼내었다.

“이리 어전에서 뜻을 의론하니 이전에 성총 베풀어주셨던 때가 떠올라 참으로 감개가 무량합니다. 마침 이때를 맞이하여, 교분 있는 김옥균이 대신 진언해달라 청한 바가 있었으니 아뢰옵고자 합니다.”

마침내 자신이 수 년간 노리던 때가 왔다고 판단한 김옥균이, 마침 조선에 돌아왔을 때를 틈타, 서태후까지 끌어들이는 대계 하나를 마련하여 김윤식에게 청을 넣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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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1: [명사] (식물) 볏과의 한해살이풀. 높이는 1미터 정도이며, 잎은 가늘고 긴데 잎 면이 칼집 모양으로 줄기를 싸고 있다. 여름에 연한 녹색 또는 자갈색의 꽃이 원추(圓錐) 화서로 피고 열매는 영과(潁果)를 맺는다. 열매는 식용하거나 사료로 쓴다. 아시아가 원산지로 밭이나 습지에서 자라는데 한국, 일본, 중국, 인도, 유럽, 미국, 아프리카 등지에 분포한다. (출처: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우리가 ‘피’하면 떠올리는 피(血)는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피’ 동음이의어 중 두 번째입니다. 첫 번째로 피(풀)가 등재되어 있다는 것은, 불과 몇십 년 전만 하여도 사람 혈관 속 피와 논에서 자라는 피 중 무엇이 더 중요하였는지를 방증하는 듯합니다. 물론 식용으로서의 가치 때문이 아니라 무논의 골칫거리 잡초라는 점 때문에 가장 먼저 표제어로 등재되었던 것일 수도 있겠지만요.

전봉준이 원수 같은 가난 이야기를 꺼낸 덕에 귀남옹이 ‘빨갱이 주장’도 진지하게 고려해보게 되었는데, 이때를 노려 김홍집이 언급한 것은 국제정치학에서 ‘안보딜레마(security dilemma)’로 지칭하는 현상입니다. 양자관계에서 한쪽이 자국의 안보를 증진하게 되면, 그것이 다시 상대방의 안보위협으로 이어지게 되면서 군비경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온전히 ‘방어적인’ 무기는 존재하기 어렵고, 따라서 한쪽이 자신의 안전을 위해 도입한 무기체계는 유사시 상대를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평화가 유지되기 어렵다는 인식은 이론적으로 정교하게 다루게 된 것은 20세기에 들어서입니다만, 이미 투키디데스의 『펠레폰네소스 전쟁사』에도 비슷한 언급이 나올 만큼 유서 깊은 문제의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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