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종, 군밤의 왕-164화 (164/320)

54. 경서와 칼 (1)

하와이국이라 하면 멀기는 확실히 멀지만 또 아예 연 없는 나라라고 하기도 무엇한, 그런 곳이었다. 조선인은 얼마 없지만 청국과 일본인들은 대거 들어가 살고 있어, 심지어 그 땅 원래 주인인 족속이라던가, 그 다음에 찾아온 대서와 미리견 백인들보다도 그 수가 많다고 하였다.

더구나 나라의 큰어른 대원위 합하 환갑연 할 적에 그 나라 국왕 가씨가 직접 내방하기까지 하였으니, 나라 세워지고 처음 있는 경사 – 오랑캐 임금이 직접 찾아온, 다들 쉬쉬하는 정축년 일(병자호란)은 당연히 그 축에 들지 않는다 – 이기까지 하였으며, 그 이후에도 나라의 명문 자제 두서넛을 꾸준히 인천부에 보내 공부를 시키고 있었다.

허나 그렇다고 해도 바다는 넓고, 이제 조선인들이 모는 기선도 종종 있다지만 여전히 먼바다는커녕 대마도 넘어 일본조차도 아직 이웃으로 두기가 어색한 형국에 어찌 하와이국을 가까운 나라라고까지 하겠는가.

그런데 그런 나라에서, 조선 조정이 자리 마련해주어 건너간 북해도 군사들이 섬 안의 가여운 미국 농부들 - 암만 그 섬에서 천석꾼·만석꾼 노릇한다 하여도 벼슬이나 학식 없으면 그저 농군 취급하는 것이 조선 풍습 아닌가 - 을 쳐 인명 여럿 살상하였다고 하였다. 북해도국의 상국(上國)인 일본국은 이를 책임지기는커녕 조선에 청하여 만에 하나 미리견이 이 일로 침노해오면 함께 막자고 하였다 하니, 어찌 여론이 끓어오르지 않겠는가.

가장 먼저 그 시류 읽고 입장 내놓은 것은 개화당이었다.

“아국과 일본국은 상조(相助)하기를 함께 맹약한 사이다. 물론 그 처신의 잘잘못은 이웃나라로서 따질 수 있겠으나, 그렇다 하여 옛적의 약조를 곧장 저버린다면 어찌 도의에 맞는다 하겠는가?

뿐만 아니라 지금 나라의 식산(殖産)하는 업이 크게 일어나, 물산이 날로 풍족해지는데, 이것들은 우리 백성를 위한 것이 아니면 모두 바다를 건너 팔려나감으로써 다시 나라와 만백성의 이익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처럼 우리에게 보태주는 일본국이 곤경에 처하였을 때 도리어 우리가 돌아선다면, 그 원한이 얼마나 사무치겠는가? 이는 이듬해 뿌릴 종자로 밥을 지어 먹는 격이다.”

이제 추거의 법도가 나라 안에서 널리 시행될 것이 분명해졌으므로, ‘우리가 이처럼 잘 하고 있다’ 하는 것을 널리 알릴 필요가 있었다.

요컨대 위로는 성상의 의중 살피며 기무회의와 참의원의 공론을 이끌고, 아래로는 백성을 꼬드겨 최대한 저들 무리의 이익되는 바에 따르게끔 만들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위와 같이 이런저런 신보에 기고하였는데, 예전에도 물론 여론을 노리고 저들 올리는 상소를 신보에 전하여 함께 싣게 하곤 하였지만, 이번에는 아예 처음부터 오직 읽는 백성들을 저들 편으로 끌어들이고자, 사정 알리고 깨우치는 짜임새를 갖추었다는 것이 유별났다.

반면 공산당은, 개화당과는 무조건 반대로 가는 것이 오래된 습성이기도 하거니와, 아무리 근래 가까워졌다 한들 백성들이 여전히 왜놈들을 썩 좋아하지 않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익정신보』에 이렇게 게재하였다.

“일본국은 비록 근래 수호(修好)하였다 하나 왜란의 구원(舊怨)이 있는 사이다. 이를 알고 부끄럽거나 미안하게 여길지언정 새로 우리에게 짐을 실어서는 아니 될 터인데, 이제 우리와 하등 원한 없는 미리견 사이를 이간질하려 하니 그 간사한 심계가 이와 같다.

물론 그 나라에 외침이 있다면 마땅히 도와야 하겠지만, 엄연히 이번 일은 그 백성이 남의 나라에서 작변(作變)한 것일진대 어찌 아국의 병비와 국용으로써 도울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는 말인가? 세간의 유식자(有識者) 자처하는 이들이 간혹 저들의 곳간과 나라의 안녕을 혼동하고는 하는데, 독자 제현은 그리하면 아니 될 것이다.”

그리하여 옛 한(恨)과 새 정, 무역의 실리와 병비의 도리 놓고서 국론이 크게 나뉘었다.

“무릇 싸움은 그 기세를 중히 여기는 법. 나라의 계책으로 무엇이 채택되든, 자기 쪽에 가까운 것으로 정해지게 되면 절로 힘을 얻게 될 것이니 이리 열 올림도 기이하지는 않다 하겠네.”

안인수가 대범하게 거액을 희사하여 정동구락부 셋방살이 대신 번듯하게 광통교 옆 인적 많은 곳에 당사 차린 자유당이었다. 물론 불과 며칠 사이 벼락같이 진행된 일이다 보니, 아직 현판도 하지 못하여, 여기에 자유당이라는 무리 있다는 것을 아는 이가 몇 되지는 않았지만.

“허나 아무리 안 어르신께서 힘을 보태주신다 한들, 개화당의 벌열과 운현궁 권세에 대등하게 맞설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인 유길준(俞吉濬)이 최익현에게 물었다. 당을 차리기는 했으되 대개는 박은식이 옛 자강사 사람들 그러모은 것이라, 정말 전업으로 당의 일에 임할 여력 있는 사람이라면 공식적으로 벼슬 내려놓은 최익현을 제하면 있는 집안 자제들 뿐인데, 아무래도 집안이 반남 박문과는 악연 많아서 개화당에 몸 담고 있기 무엇하였던 유길준은 그렇게 넘어온 사람의 하나였다.

“하하, 우선은 이름을 알리기만 하면 그것으로 족한 일일세. 천리행(千里行)이 한 번 달음박질로 되지는 않을 터. 일단은 나라 간의 도의와 사정을 들어, 저들 이르는 이치만 있는 것이 아님을 세간에 알려야겠지.”

허나 저 두 당이 다루지 아니한 새로운 방도가 있겠는가? 유길준 보기에는 그저 일본을 돕거나 돕지 않거나, 시책을 정한다면 이 둘 중 하나에 불과할 듯하였다. 물론 현지 사정을 잘 안다면야 다른 이야기를 해볼 수도 있겠지만, 대양을 사이에 둔 나라 사정을 이곳 한양에 앉아서 얼마나 알 수 있겠는가.

”그러면 현지 사정 아는 사람에게 물어서 사안의 전말을 밝히면 되지 않겠는가.”

“그런 사람이 나라 안에 있습니까?”

자신이 예조에 있으면서 알게 된 사실을 조금은 쓰임새 있게 풀어놓아도 되지 않겠는가 생각한 최익현이 씩 웃었다.

“임오년(1882)에 인천부에 들어와 경일학당에서 학업에 힘쓰는 이가 하나 있다고 들었네. 이역만리 고향에서 화란 일어난 소식이라면 그에게 듣는 것이 아마 가장 잘 들어맞을 게야.”

그리하여 하와이 유학생 하씨(하쿠올레, James Haku‘ole)에게 글을 보내었더니, 당장 저의 고국 사정이 급하여 조그만 도움이라도 받아내기를 바라던 터라, 곧장 응하여 따라왔다. 심지어 혹 통역 필요할까 싶어, 영어와 대국 관화 모두 구사하는 한인(漢人)으로 그 가형이 하와이에서 장삿일 한다던 젊은 유학생 손덕명(孫德明)도 어떻게 데리고서 왔으니, 그 정도 열의라면 하씨가 먼저 그들 찾아왔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다음 고시까지는 영락없는 한량 신세인 황현을 불러와 영어 통변(통역)을 맡기고서 하씨에게 저의 고국 사정을 물었더니, 유창하게 줄줄 말이 흘러나왔다.

물론 그가 멀리 호놀룰루의 사정을 모두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여기저기 살 붙인 것이 우연찮게 맞아떨어진 바가 적지 않았다.

사건의 발단은 이러하였다.

멀리 휴가(日向)부터 바로 해협 건너 쓰가루(津輕)까지 일본 전국의 무사들이 하코다테 그 작은 동네에 모이다 보니, 무술의 유파는 이리 섞이고 또 저리 모이기 마련이었다. 무사를 높인다지만 정작 무(武)의 쓰임은 없던 태평한 시절에는 무슨 류 면허개전(免許皆傳) 받고서 도장 열고 죽도 대련이나 하였겠지만, 시대가 크게 바뀌었으므로 그 옛날 전국시대처럼 정말로 쓰임새 있는 싸움 솜씨를 중히 여기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일도일포류(一刀一砲流)는 이름 그대로 검 한 자루와 권총 한 자루를 들고서 급습하여 적을 일시에 제압하는 단병(短兵)의 술인데, 무사도 잇겠다며 신센구미(新選組) 떠난 사이토 하지메(斎藤一)가 저의 무술과 다른 이들의 기술 이것저것을 섞어 개창한 이래 불과 몇 년만에 하나의 유파를 이루었다.

그리하여 여러 무사가 힘을 합하여 빠르게 치고 빠지는 것을 장기로 삼는 풍림화산(風林火山)류와 더불어 북해도에서 크게 이름을 떨쳤는데, 마침 바다 건너 하와이 땅에 그 나라 국왕이 의뢰하는 엄청난 건이 하나 생겼다 하였으므로, 칼밥 먹는 일도일포류 사람들은 시시한 대만 농장 경비 따위는 관두고 모두 태평양을 반절 건너 나오는 오아후(Oahu) 섬에 가고자 하였다. (상대가 하필 흑선(黑船)의 악연 있는 나라인 미국 출신들이라는 점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허나 그만큼 문파 전체의 이름이 얽힌 일인지라, 사이토는 몰려든 이들 중 가장 정예한 육십 명을 뽑아 직접 이끌고 하와이로 향하였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사태를 키울 줄 뉘 알았으랴. 그저 시골 요짐보(用心棒, 경비·경호원) 어중이떠중이들이 왔더라면 그것으로 족하였을 터인데, 딱 보아도 군기 잡힌 사이토 대(隊)가 이올라니(‘Iolani) 궁 앞에 도열한 모습 본 국왕 칼라카우아가 크게 흡족하게 여겨, 그 자리에서 청하여 일도일포류를 환영식 자리에서 시연케 하였던 것이다.

즉흥적인 발상이었지만, 멀리서 구경하는 눈엣가시 샌포드 돌(Sanford B, Dole)의 그 허여멀건한 얼굴이 근심걱정으로 물드는 것을 보았으므로, 이때까지만 해도 칼라카우아 국왕은 참 훌륭하게 처리하였다고 자찬하고 있었다.

“아마 그러하셨을 것입니다. 국왕께서는, 음, 위세 보여주는 것을 참 좋아하시거든요.”

하쿠올레가 남의 나라 사람 앞에서 저의 임금 흉을 보니 본능적으로 최익현과 그 일행이 눈살을 찌푸렸지만, 풍속 다르면 신도(臣道)도 다를 수 있으려니 하면서 곧 낯을 풀었다.

“아마 그 가운데서 오해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잖아도 섬에 황인들이 늘어나는데, 기껏 성대하게 차려 놓은 설탕과 아나나스(파인애플) 농장을 황인들 힘 믿고서 통째로 집어삼키려 할 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했겠지요.”

“아니, 그것이 말이 됩니까? 선생의 모국으로 말하자면 일찍이 서양 법도 받아들인 문명한 나라요, 더구나 그 진주만이라는 곳에 미국 함대도 머무르고 있는데 그런 어리석은 일을 하리라 믿었다니요.”

유길준이 묻자 빈정대는 투로 하쿠올레가 답했다.

“이곳에서 쓰는 말을 빌리자면, 백인 우두머리들은 모두 소인배에 지나지 않습니다. 바다에 너울 일고 화산에서 용암 솟구치기만 해도 반드시 저들을 노리는 음모일 것이라 의심하는 작자들이지요.”

물론 수천 마일 바깥에서 엉뚱한 – 그러나 어쩌면 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는 - 험담을 듣는 돌의 입장에서 스스로 옹호하자면, 그런 일이 벌어져도 미국의 확장에 부정적인 미국 대통령 클리블랜드가 좌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뜩이나 언론에 ‘벨기에의 예를 보아라. 식민지는 저처럼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이니, 자유와 평등의 나라인 미국은 명분으로 보나 실리로 보나 아메리카에 머물면서 무역에만 열중하는 것이 맞다.’ 하면서, 태평양 섬들에 대해서도 불개입 원칙 일변도로 나서는 클리블랜드 대통령이었다.

그러니 만약 칼라카우아가 못된 마음 품는다면, 저 일본인 전사들을 농장에서 일하는 황인들 사이에 잠입시키던가 해서 밤새 그들의 목을 모두 치고, 본국에는 ‘너희 백인 몇몇이 불운한 사고로 죽었다. 참 유감이다.’ 하면서 적당히 무마하려 할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물론 미국인이 살해당하면 여론이 불같이 일어날 것이요, 어쩌면 곧장 진주만의 해병대가 이올라니 궁으로 직행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무엇하는가, 이미 그들 ‘안전위원회(Safety Committee)’의 수장들은 모두 조물주를 만나러 가 있을 터인데.

더구나 조선 국왕의 조언을 새겨들은 칼라카우아가 그런 클리블랜드를 충동질하여, 한 번 더 미국은 다른 나라를 병탄하는 것 같은 구대륙의 폭군들이나 할 만한 짓을 하지 않겠다고 확인을 받아오기까지 하였으므로 돌과 다른 위원들의 불안은 날로 불어만 갔다.

“그 다음부터는 아마 악순환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호놀룰루 소총대를 소집하고, 헌법 개정안에 반대하면서 무력 시위를 한다던가 했겠지요.”

“백인들이 요구한 헌법 개정 아니었습니까?”

“그야 그랬지만, 국왕 전하께서 귀국의 조언을 받은 뒤 역제안을 하면서 조금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안전위원회 쪽에서 요구사항을 제시하기 전에 먼저 의회에 인사권을 이양하는 내용의 헌법안을 내놓고, 1840년 헌법에서 애매하게 허용하였던 여성의 투표권까지 초안에 넣어버린 것이다. 그러면서 뻔뻔하게 이 중 여성 투표 부분은 협의가 가능하다 하였으므로, 당초 계획에서는 아예 동양인들은 유권자에서 배제하고 남은 이들에 대해서도 보다 엄격한 재산 제한을 적용할 생각이었던 안전위원회는 궁지에 몰렸다.

“... 그리하게 되면 한 줌이나 될까말까한 백인들은 그저 소수에 지나지 않게 되니까요. 거기에 총병대에 대적할 만한 전사들도 국왕 전하의 아래에 들어왔고.”

상대가 내세우는 문명과 진보의 명분을 가져다 역으로 손발 묶는 것은 조선국의 근래 장기이기도 했으므로 듣는 최익현이 무어라 하겠냐만, 언뜻 듣기에도 저 계책은 무리한 것이었다.

“허나 기세로서 상대가 못된 생각 품지 못하도록 위압함은 아예 드러내지 않고 옭아매는 것만은 못한 법이오. 더구나 지금 섬의 백인들은 – 그대 말대로라면 - 완전히 궁지에 몰린 것인데, 그리 되면 필히 좋지 못한 일이 일어나기 마련.”

“후, 그렇지요. 아마 그런 연유로 이번 파란이 일어난 것일 듯합니다.”

최익현 말대로였다. 호놀룰루 소총대의 세 중대 중 둘이 대규모 훈련을 하고, 소대 단위로 나뉘어 안전위원회 플랜테이션의 경비를 설 계획을 세웠다는 소식을 들은 칼라카우아가, ‘무엄한 생각 품지 못하도록 단단히 경고를 해 주라’ 하는 지시를 사이토에게 내렸는데, 가운데서 그 명을 전달해야 하는 사람이 영 미덥지 못한 수상 깁슨(Walter M. Gibson)이었다. 결국 그의 실수로 왕명 중 ‘경고’ 부분이 빠져버렸는데, 대놓고 두 진영이 으르렁대는 상황에서, ‘무엄한 생각 품지 못하게끔 하라’ 하는 명을 받은 사무라이라면 이를 어떻게 해석하겠는가.

그리하여 하필 진주만 기지 코앞인 할라와(Halawa)의 한 농장을 사이토 대가 습격하여, 가로막는 자들을 무참히 도륙하게 되었다. 물론 본때만 보여 주는 것이 목적이었으므로 말이 ‘무참’이지 실제로는 ‘고작’ 사람 넷을 황천 떠도는 고혼으로 만들어 준 것이었지만, 하필 그 네 명 중 하나가 당당하게 자신이 황인 폭도들을 꾸짖으면 알아서 물러가리라 착각한 혈기 넘치는 젊은이 로린 서스턴(Lorrin A. Thurston)이었으니 일이 제대로 꼬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제 사견을 말씀드리자면, 지금 일본 정부가 걱정하는 것만큼 심각한 정도까지 치닫지는 않을 것입니다. 애초에 저 백인들이 뭔가 쓸 수 있는 수가 없었기 때문에 무력에 호소하게 된 것이니까요. 비록 전사들이 신분상 일본연방 국민이라지만 계약에 따라 임무를 수행했을 뿐이니, 이제 귀국이 나서서 적당히 중재만 해 준다면 될 듯합니다.”

“글쎄올시다. 나라의 일은 공론을 빼고 처리할 수 없기 마련인데, 미국의 집정(執政)이 무어라 생각하든 그 국민이 이번 일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을 수도 있겠구려.”

“허나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번 일의 원인을 살피면 그저 탐욕스러운 몇몇 백인들이 작당하였을 뿐, 미국 정부가 나서서 무슨 음모를 획책한 것은 아닙니다. 잠시 여론이 일어나고 거기서 그치지 않을지요.”

“공론이라는 것은 대개 밀물처럼 몰려들면 썰물처럼 빠지기도 하는 것이오. 하물며 그 서스턴이라는 자는 그대 나라에 처음 당도한 천주교 선교사의 적손(嫡孫)이라 하였는데, 말 꾸미기로 하면 능히 한 차례 노도(怒濤) 일으킬 수 있을 듯하오만.”

아무래도 말싸움 경험 많은 나라 사람이 그 생리도 잘 알기 마련이었다.

미국 정부가 하와이의 백인 지주들을 딱히 신경쓰지 않는 것은 그들의 자유라면, 미국 정부가 무엇을 국익이라 생각하든 딱히 신경쓰지 않는 것은 미국 국민의 자유였다. 하물며 언제든 마음대로 미워할 사람을 찾는 간사한 사람 마음에 불 붙일 땔감과 부채질할 사람이 모두 갖추어진 지금은 어떻겠는가.

‘오늘은 하와이, 내일은 캘리포니아? 야만의 칼날 아래서 공포에 신음하는 선량한 문명인들!’

‘한 손에는 『논어(The Analects)』, 한 손에는 카타나! 서쪽에서 불어닥치는 황화(黃禍, Yellow peril)!’

습격을 지휘하던 사이토 하지메가, 얼핏 보기에 대장 노릇하는 듯한 백인 젊은이를 죽일 때 쓴 것은 미제 콜트 권총이었으므로 완전히 맞는 논평을 하자면 ‘한 손에는 카타나, 한 손에는 권총’이 맞겠지만, 이처럼 자극적인 헤드라인이 미국 조야를 강타하였으므로 그런 것을 따질 계제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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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로, 하와이 왕국은 국제법상 최초로 동등한 주권을 가진 것으로 서구 국가들에게 두루 인정받은 비서구 국가입니다. 물론 이는 나라가 대양 한가운데, 중요하기는 중요하지만 19세기 초중반 기준에서 군사적으로 점령하기에는 비용이 너무 드는 위치에 있었다는 지정학적 요인이 강하게 작용한 결과일 테지만요.

유럽인들의 화약무기 등을 이용해 카메하메하 1세가 1795년 하와이 제도를 통일한 이후, 지속적으로 하와이 왕국은 근대화를 추진해, 1840년에는 최초의 헌법을 제정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미국인들의 개입으로 인해, 일부 면 – 대표적으로 선거권 보유자의 범위 –에서는 후퇴하는 ’개정‘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집니다.

하와이의 인구는 지속적으로 큰 변동을 겪었지만 대체로 18세기 후반에는 30만에서 70만 사이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영국의 제임스 쿡이 도착하면서 유럽 질병이 퍼진 결과 19세기 말까지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했고, 그 자리를 처음에는 백인, 그리고 그 뒤에는 중국인과 일본인, 한국인이 차례로 채워나가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아시아계가 최대 인종집단인 유일한 주지요.) 1900년의 하와이 인구구성을 보면, 일본인(류큐 포함)이 15만 4천 인구 중 약 6만 1천 명, 중국인이 약 2만 6천명, 백인은 약 2만 9천명 (포르투갈계를 제외하면 1만여 명), 하와이 원주민은 3만 8천명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Iijima 2020, “‘Nonwhiteness’ in 19th Century Hawai‘i.”).

칼라카우아 국왕은 국가장학금 프로젝트로 중국·일본을 포함한 여러 국가에 유학생을 보내기도 했는데, 그 중 작중에서는 조선으로 오게 된 제임스 하쿠올레는 1882년부터 1888년까지 일본 도쿄에서 서양 학문을 공부한 바 있습니다.

중간에 엉뚱하게 끌려나온 손덕명은 원 역사에서는 지금쯤 홍콩에서 의대를 다니고 있어야 합니다. 마우이 섬에서 목장을 운영하던 그의 형 손덕창(孫德彰, 흔히 손미孫眉로도 부릅니다.) 덕에 호놀룰루에서 서양식 교육을 받던 손덕명은 기독교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아예 입교해버릴까 두려워하던 형 덕창은 그를 중국으로 돌려보냅니다. 하지만 고향의 전통적인 중국적 삶에 만족하지 못한 손덕명은 가출하여 홍콩으로 가게 되고, 거기서 의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다시 광저우로 향했습니다. 이후 1887년 홍콩에 현 홍콩대의 전신인 홍콩 화인서의서원(香港華人西醫書院)이 생기면서 그쪽으로 가게 되었지요.

그런데 마신이 암살미수 사건의 나비효과로 인천에서 서양 의학을 배우는 중국인들이 생기면서, 손덕명도 홍콩에서 더 기다리는 대신 바로 인천으로 왔습니다.

원 역사에서 홍콩에 계속 머물던 손덕명은 점차 반청운동에 빠져들게 되는데, 그러면서 그가 소싯적 중국에 머물 때 얻었던 별명인 손문(孫文, 쑨원)으로 더 잘 알려지게 됩니다.

이전에 종종 언급했던 것처럼, 하와이의 합병을 주도한 것은 미국이 아니라 하와이에 거주하는 미국인 및 미국계 하와이인들이었습니다. 1875년 호혜조약 이후 크게 세력을 키운 백인 지주들은 국회의원 샌포드 돌(과일회사 돌의 창업주 제임스 돌의 숙부입니다.)을 중심으로 하와이 왕국의 지배권을 장악하려 모의하기 시작했는데, 이때 이들의 중심에 있던 비밀 모임이 바로 안전위원회입니다. 의회 내 백인 의원들의 모임으로 시작한 안전위원회는 곧 호놀룰루 총병대(작중 시점에서 약 2백명 규모입니다)를 통제하면서 오아후의 무력을 장악했고, 1887년 ‘대검 헌법’을 통과시킵니다.

작중에 등장하는 로린 서스턴은 안전위원회의 구성원 중 하나로, 원 역사에서는 1887년 헌법 제정 이후 내무부 장관으로 취임해 서른도 되지 않은 나이에 권력을 잡았습니다.

함께 등장하는 칼라카우아의 총신 월터 깁슨은 모르몬교 전도사 출신인데, 횡령과 관리 부실 등의 혐의로 파문당한 뒤 그대로 정계에 진출하여 칼라카우아에게 등용되었습니다. 한때는 재무부를 제외한 모든 부처의 장관까지 맡을 정도로 총애를 받았습니다만, 칼라카우아의 다소 엉뚱한 정책을 보좌하거나 만류하기는커녕 부추기곤 하였기 때문에 백인 지주들이 왕정에 반대하는 한 가지 원인을 제공하게 됩니다. 헌법 제정 이후 그는 미국으로 도주하여 무일푼으로 객사하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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