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이 글을 어지럽히는 이들 (3)
동양인이 작고한 다윈의 이론을 가지고 싸움을 걸었다는 사실을 그저 흥미로운 가십거리로 넘겼을 법한 이들도, 하필 그 비판이 다윈의 외사촌 골턴을 겨냥하여 매섭게 몰아치는 것이라 어떻게든 대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자 비로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더구나 전우를 돕기로 한 것이 항상 활달하게 강연이니 토론이니 해 오던 헉슬리라, 그렇게 한 번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되자 행사를 기획하는 것 정도는 쉽게 진행되었다. 다름 아닌 런던학회(London Institution)의 강당을 빌려 공개토론회를 열 수 있게 된 것은 헉슬리가 아니고서는 어려운 일이었을 터였다.
그리하여 여름철 어느 날 저녁, 사흘 일정으로 계획된 토론회가 마침내 그 막을 올리게 되었다. 둥근 홀의 1층은 물론 중간층과 2층까지 청중이 가득 차, 대체 그 동양인이 무슨 얘기를 할 것인가 궁금히 여기고 있었다.
물론 개중 몇몇은 중국인인지 일본인인지 모를 그 자가 과연 제대로 영어를 하기나 하겠느냐 장난스레 의심을 표했지만, 그런 이가 런던 학회 같은 곳에서 귀중한 시간을 들여 토론회를 열겠다고 나섰을 리 없다는 생각에 곧장 입을 다물었다. 허나 아무리 그래도 영국인인 이상, 저들 나라의 학자가 저 이방인을 압도하기를 은근히든 대놓고든 바라기 마련이었다.
“후, 이만큼 호응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분명히 순수한 학술의 장이라고 명시하지 않았던가?”
방청객도, 토론 당사자도 아닌 애매한 관계자로서 맨 앞자리 구석에 앉은 스펜서가 헉슬리에게 목소리 낮춰 물었다.
“음. 양쪽에서 다 왔군.”
헉슬리가 살짝 고개 돌려보더니 말했다.
“이게 말이 학술이지, 그 뒤에 어떤 이슈가 걸려있는지 뻔하지 않은가. 작게 보면 아시아 정책, 크게 보면 지금까지 이번 내각이 펼쳐온 외교전략까지 걸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지.”
“미스터 존(전우)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게 하는 건 아닌가 싶군그래. 골턴 선생도 만만치 않을 텐데...”
“청하여 한 일인데 뭘 그런 생각을 다 하는가. 처음 만났을 때보다 영어 실력도 확 늘어났지 않은가. 그리고 어차피 사흘 싸움일세. 만약 오늘 토론에서 밀리는 성싶으면, 끝나고 돌아가서 함께 머리 맞대고 반박할 길을 찾으면 될 일이야. 대중은 역전극을 좋아하기 마련이지.”
“그래. 자네 말이 맞겠... 엇, 시작인가.”
X 클럽 회원이자 다윈의 (몇 안 되는) 친우이기도 했던 후커(Joseph D. Hooker)가 사회를 맡아, 간단히 이번 토론회의 취지를 설명하였다.
그러고서는 곧 무대 양쪽 문이 열리고, 미리 준비된 강단 앞에 두 사람이 섰다. 한 명은 검은 양복 차려입은 신사 골턴이요, 다른 한쪽은 흰색 ‘도-포’ 가운 입은 전우였다.
청중의 웅성거림이 잦아들자, 본격적인 토론이 시작되었다.
“간략하게 제 입장, 나아가 친애하는 벗이자 학계의 거장이었던 고 다윈 선생의 입장을 정리하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이 기회를 빌어 재차 강조하고자 하는 요점은 세 가지입니다.”
당당하게 허리 추켜세운 골턴이 먼저 발언하였다.
“첫째, 진화의 위대한 법칙은 가장 비천한 원생생물부터 가장 고등한 우리 인간까지 모두 아우릅니다. 자연선택의 원리에 따라, 그 중 뛰어난 것들은 살아남고, 열등한 인자는 도태되지요.
둘째, 자연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물종처럼, 인류라는 넓은 분류 아래에도 문명을 일구어낸 이들과 그리하지 못하고 정체된 이들, 심지어 퇴보하여 영장류의 수준으로 떨어진 이들이 고루 존재합니다.
셋째, 그 가장 지혜롭고 진보된 인종이 바로 우리 백인, 그중에서도 앵글로색슨 족이라는 점은 명백합니다. 이는 우리 대영제국이 인류 역사상 유례없이 번영하는 대제국이라는 사실로써 증명되지요.”
처음 다윈이 그의 논쟁적인 책을 펴냈을 때부터 그의 곁을 지켜왔던 골턴이다. 당연히 설익은 이해로 여기에 맞서려 드는 이들이 무슨 어설픈 논리를 펼치는지 정도는 알고 있었고, 눈앞의 피부 누런 사내가 무슨 말을 할지도 얼추 짐작할 수 있었다.
적어도, 짐작할 수 있다고 스스로 여겼다.
“자, 이 자리는 말씀하신 것처럼 다윈 선생의 훌륭한 이론이 몇몇 오해로 인해 왜곡되고 있음을 보이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지금 골턴 선생께서는 스스로 말씀하신 바가 다윈 선생의 입장이라고 하셨는데요, 맞습니까?”
“그렇지요.”
“하지만 제가 읽은 어떤 다윈 선생의 저서에도, 문명에 도달한 사회에서 적자생존의 원칙이 지켜진다는 내용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지요. 분명 다윈 선생께서는 약자를 긍휼히 여기는 선한 마음이 있고, 그것이 문명화된 사회에서는 야만의 상태에서와 달리 적극적으로 발현되며, 나아가 이를 막아서도 안 됨을 분명히 하고 있으실 텐데요.”
“맞습니다. 당시 선생 곁에 있던 사람으로써 첨언하자면, 그 부분은 분명 논쟁의 여지가 있지요. 인간의 진보를 위해 생존경쟁은 계속되어야 하지만, 우리의 본성이 자칫 그것을 막을 수도 있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다윈 선생께서는 평소 말씀하시기를...”
“죄송합니다만, 아직 발언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금 하시는 말씀은 1871년에 선생께서 발간하신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The Descent of Man, and the Selection in Relation to Sex)』을 거론하고 계신 듯한데, 분명 그 책의 5장에서 ‘강경한 이성의 촉구에도 불구하고, 우리 본성의 가장 고결한 면을 희생하지 않고서는 우리의 동정을 제약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계시지요.
제가 논박하는 입장이니, 먼저 여쭙겠습니다. 선생은 이 부분에 동의하십니까? 제가 지금 거론한 부분이 다윈 선생의 본의이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철리(哲理)를 다윈 선생이 몰래 이르신 바가 있습니까?”
별 대비하지 않고 공격을 그대로 받아치려던 골턴이 머뭇거렸다. 생각해보면 그저 동양인의 어리석은 명예와 자존심 때문에 달려들었으리라 단정한 것이 실수였다.
그리고 막 불붙기 시작한 논쟁에서 벌써 골턴이 주춤거리는 것을 청중이 놓칠 리 없었다. 전우의 말마따나 다윈이 그렇게 말했다고 주장하는 것과 실제로 펴낸 책의 내용을 들고 나오는 것 중 무엇이 더 옳게 보이는가 하면, 당연히 후자였다.
한 번 대세가 그렇게 되자, 첫 번째 토론 내내 전우에게 골턴이 끌려다니는 형국이 되고야 말았다. 교묘하게 취장절구하여 (골턴 생각에는) 맨 처음 자신이 자신 있게 단언한 세 명제에 반대되는 것들만 끄집어내, ‘이것이 다윈 선생의 진의 아니냐’ 자신에게 확인케 하니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하하! 성공이야. 잘 해주었네.”
“감사합니다. 하지만 하루의 언쟁이 끝났을 뿐이잖습니까. 전쟁에 비유하면 골턴 선생은 수문장이요, 저는 공격하는 입장인데, 오늘은 그저 상대를 업신여기고 관문 앞에서 싸움에 응하였다가 사세가 좋지 않아 물러난 데 지나지 않습니다. 내일부터가 진짜 논쟁이 되겠지요.”
축하하는 스펜서와 헉슬리에게 전우가 초를 쳤다. 그러나 틀린 말도 아니어서, 둘의 들뜬 표정도 곧장 사뭇 진지해졌다.
“그러면 축하는 나중으로 미루고, 우선 우리끼리 말을 맞춰보아야겠군. 그래, 복안이 있는가?”
“물론이지요.”
둘째날 토론은 조금 더 논리정연한 다툼이 이어졌다. 마음 단장을 새로이 하고 나타난 골턴은 과연 자연과학 전체에서 손대지 않는 부분이 없다는 수재답게, 어제 논쟁 초반에 본인이 못다 전개한 논의에 이자를 붙여 강하게 밀어붙였다.
전우가 반박하려고 해도, 이번에는 골턴이 최근 자연과학의 발전이 다윈의 이러이러한 학설을 지지하고 있는데 들어는 보았느냐 하고 내지르니 딱히 할 말이 없었다.
“... 이처럼 자연세계에서 적용되는 법칙이 인류 사이에서도 적용됨은 명백합니다. 나아가, 그런 경쟁이 있었기에 우리 조상이 유인원의 무리에서 벗어나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음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다윈 선생께서 말씀하신 이론에서 벗어나지 않지요.
그렇다면 진보를 위해, 지금까지 우리가 밟아온 길을 계속 걸어감이 맞지 않겠습니까?”
마침내 기나긴 공세에 마침표가 찍히자, 전우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 길이라 하심은, 정복하고 지배하는 것이겠지요?”
“물론이지요.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발전이 있겠습니까? 그대들 동양인 식으로 말한다면 이것이 하늘의 명령(天命)이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인간과 뭇 생물의 본성(性)이 같기 때문이고, 적자생존이라는 이치(理)에 따라 움직임 역시 매한가지이기 때문이겠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 또한 옳은 말씀입니다. 이제 제 뜻 – 그리고 다윈 선생의 뜻 –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은근슬쩍 사용하는 용어가 달라지고 있었다. 무슨 몇천만 년 전 금수가 이러이러하여 오늘날 흔히 보는 그 모양새 갖추게 되었다 하는 얘기는 전우가 죽었다 깨어나도 따라가기 어렵겠지만, 인물성동(人物性同)의 논변으로 말하자면 근 이백 년을 내려온 학통이 전우를 뒷받침하고 있었다. 골턴이 이를 어찌 알겠냐만은.
“하지만 생각해보십시오. 적자생존이란 가장 뛰어난 자가 아니라, 가장 잘 어울리는(適) 자가 살아남는다는 뜻이지요. 그리고 세상에는 가장 편리하면서도 올바르게 어울려 살아가는 도리가 있으니 이를 인의(仁義)라 합니다. 다윈 선생께서도 고등한 동물과 문명사회에는 서로 측은하게 여기고 돕는 성정이 있다 하셨지요.
그런데 지금 선생께서는 역으로, 다윈 선생께서 서로 다투고 물어뜯는 것이 도의라 이르셨다고 말씀하시니 본말의 뒤집힘이 이만큼 심할 수 있겠습니까? 선생의 말씀대로라면 도덕이 없음이 인성과 물성(物性)의 공통된 점이라 하겠지만, 지금 보면 반대로 도덕이 공히 배태되어, 그 궁극에 달하면 이렇게 겉으로 나오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도덕을 대놓고 부정할 만큼 간이 큰 골턴은 아니었다. 더구나 두 사람의 논쟁이지만 그와 동시에 대중 앞에서 저의 입장을 내다보이는 상황이니만큼, 불씨가 엉뚱한 곳으로 튀는 것을 미리 막으면서 동시에 반격하였다.
“도덕을 부정하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적자생존의 원칙에 따른 생존경쟁이야말로 도덕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야만적인 인종이 점차 도태되고 그 자리에 도덕적인 문명인이 들어서는 것이 맞지 않겠습니까? 스스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나는 인구로 고통받는 빈민과 약자들에게는, 적절한 개체수 조절을 통해 한 사람 몫으로 돌아갈 수 있는 복지의 혜택을 늘리는 것이 오히려 도덕적인 길 아닙니까?
이 논리를 국제관계에 적용하면 그것이야말로 대영제국의 나아갈 길. 문명의 빛을 지구의 모든 어두운 모퉁이에 퍼뜨리는 사명이 될 것입니다. 사람에게 적용하면 인류 전체를 가일층 진보시키는 우생학(Eugenics)의 길이 될 것이고요.”
청중들 듣기에도 그럴듯하여, 어느 쪽 말이 더 옳은지 섣불리 판단하기 어려웠다. 이어지는 공방에 다시 귀를 기울이니, 오고 가는 말다툼 가운데 시간이 훌쩍 흘러갔다.
“허허, 역시 선생께서 이르신 대로입니다. 인재는 인재로군요.”
둘째날 토론은 끝내 박빙의 무승부로 끝났다. 다만 계속 전우가 공세를 펼치고, 골턴이 이를 과학과 시사를 들어 잘 막아낸 것처럼 보였으므로, 굳이 따지자면 억지로 트집 잡는 것은 오늘은 골턴보다는 전우에 가까웠다.
“뭔가 반박할 방법이 있을 걸세. 내가 말하고자 했던 건 저런 내용이 아니었는데...”
비록 다윈의 유명세에 편승한 면이 없잖지만, 스펜서는 엄연히 저의 궁리로 이론을 세운 사람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생각과 다윈의 이론이 합쳐져 우생학 같은 것이 나왔으니, 자칫 무시무시한 뭔가가 나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절로 몸서리가 쳐졌다.
더 무서운 것은, 골턴같이 총명하면서도 딱히 악한이라 하기 어려운 이가 당당하게 그것을 도덕적으로 옳은 길 – 길게 보면 – 이라 주장하였다는 점이었다.
“무엇이 옳은 인자이고 나쁜 인자인지 결정해서 배제하는 그런 권한은 누구에게도 주어져서는 안 되네. 자유로운 경쟁을 통한 것이라면 모를까.”
“자유로운 경쟁이라, 생각해보니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무슨 얘기인가?”
가만히 듣던 헉슬리가 끼어들었다.
“유학에서 말하는 인간의 본성 중에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이 또 있지요. 골턴 선생의 말에 논리로써 반박할 수 없다면 듣는 이들의 본성에 호소하면 될 일입니다.”
어떻게 보면 말다툼 경력 오백 년인 사회에서 살아남은 선비다운 잔머리였다. 다음날, 대망의 마지막 토론에서는 전우가 먼저 발언을 청했다.
“지난 이틀 동안 자연과학의 이야기가 계속 나왔으니, 오늘은 잠시 제 전공인 유학의 이야기를 해 볼까요.”
서양 철학도 이해하기 어려운데 동양 철학은 오죽하겠는가. 하지만 전우가 가까운 일상의 비유를 들어가며 설명하니, 어제 골턴이 늘어놓았던 박물학과 고생물학 타령도 어렵기는 매한가지였던 청중들은 그럭저럭 따라오는 듯했다.
“... 그리하여 리(理)인 성(性)은 약하고 기(氣)인 심(心)은 강한데, 이는 성은 그 자체만으로는 발현될 수 없어 반드시 심에 따르기 때문입니다. 허나 심은 비록 본질이 선하나 때로 흐려져 어질지 못한 지경에 이를 수 있으니, 이것이 성이 심의 주재자가 되어야 하는 까닭입니다 (性爲心宰).
똑같은 논리를 진화의 이론에 적용해 봅시다. 크게 보면 서로 돕고 돕는 것이 옳기도 하거니와 이익이 되는 길이니, 고등한 동물일수록 도덕과 유사한 감정이 싹트는 데서 이를 징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작게 보면 그런 도덕심의 발로 하나하나가 살아남아 자손 남기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요. 이는 기가 겸선악(兼善惡, 선악 중 둘 다 가능함)하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는 흥미롭게 듣고 있습니다만 – 전혀 진심이 느껴지지 않았다 –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무한하지 않습니다. 이 논쟁과 관련 있는 말씀을 해주시지요.”
가만히 듣던 골턴이 끼어들었지만, 가벼운 미소로 받아쳤다.
“곧 넘어가니 조금만 기다리시지요.
우리 인간이 지성을 지니고 문명을 이룬 것은, 바로 리로 하여금 기를 주재할 수 있게 하는 법도를 창안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천하 고금의 예를 보면, 나라를 세운 곳에 나름의 도리와 법을 세우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이곳 영국 또한 다르지 않지요.
자, 청중 여러분께 여쭙겠습니다. 여러분 중 스스로 도덕적이지 않다고 여기시는 분이 계십니까? 아니면 영국이 다른 유럽 나라들보다 비도덕적이라고 여기시는 분이 있으신지요?”
느닷없이 고개 돌려 좌중을 직시하며 물었다. 당연히 손드는 이가 나올 리 없었다.
“그런데 굳이 이미 갖추어진 도덕을 버리고 비도덕의 구렁텅이로 빠질 폐단을 일으키는 것이 과연 옳은 길일까요?
만약 영국이 문명의 진보를 위해 다른 나라, 다른 민족을 정복하고 다스리겠다고 한다면, 그 명분과 실제 행하는 바가 일치해야 할 것입니다. 골턴 선생 말씀대로 열등한 씨를 없앰으로써 인류 전체의 성정을 개량하겠다 한다면, 어찌 영국의 깃발 아래 있는 수많은 토인(土人)들이 가만히 받아들이겠습니까? 골턴 선생은 지금 앵글로색슨 민족의 우월함을 말씀하시지만, 정말 그렇게 우월하다면 먼저 도덕으로써 모범을 보이고 이로써 천하 만방으로 하여금 우러러보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다스림 받는 이들 역시 심복(心腹)하지 않아 길게 보면 더 많은 영국인의 땀과 피가 흐르게 될 것이요, 인의로써 다스리는 이들은 그런 피땀 흘리지 않고 여러 나라와 백성의 마음을 얻을 것이니 장차 영국보다 흥성하게 될 것입니다. 그 흘릴 피땀은 청중 여러분과 같은 영국 국민들의 것이기도 합니다.
문명의 진보는 물론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 진보의 짐은 천하가 함께 짊어져야지, 영국 홀로 짊어져서야 되겠습니까?”
실제의 이익과 고매한 명분을 교묘하게 섞어 설득하니, 지금까지 가만히 듣기만 하던 이들도 은근히 설복된 듯하였다. 골턴의 그럴듯한 말을 따르면 도덕적이지 못한 사람이 될 뿐아니라, 자칫 영국이 홀로 부당한 부담을 지는 – 그 부담이 누구에게 돌아갈지는 뻔하지 않은가 – 단초가 될 것이라 하니 성실한 납세자 중 누가 귀 기울이지 않겠는가.
전우의 장광설이 자신의 논리가 아니라 청중의 마음을 노리고 있었음을 깨달은 골턴도 당황하여 눈을 열심히 굴렸다.
“선생의 말씀이 그럴듯하기는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는 그렇지 않습니다. 한 번 들어보시지요...”
그러나 이미 흔들리던 마음에 박힌 쐐기가 어찌 쉽게 빠지겠는가.
마음 속으로 개가 울리며 헉슬리의 집에 돌아오자, 전우가 1876년에도 잠시 스쳐 지나가며 보았던 억척스런 메이드가 홍차 세 잔을 내 왔다. 사의를 표하고서 각자 한 잔씩 집어 그 향을 감상했다.
“정치에 관심 없던 것이 독이 되었구만. 골턴 저 사람, 우리 미스터 존이 무얼 하던 사람인지 감을 못 잡은 듯한데.”
“하하, 감사합니다. 이것으로 스펜서 선생을 부당하게 공격하는 이들이 사라지게 되길 바랄 뿐입니다.”
세 번 싸워 두 번 이겼으니, 전체 싸움에서도 이겼다고 보는 편이 좋았다.
“물론 골턴의 그 우생학 이론을 정면으로 공박한 것은 아니니, 비슷한 주장이 또 나오기는 할 걸세. 빈민 복지를 줄여서 다른 데 쓰자, 아니면 세금 자체를 감면하자. 그런 말은 충분히 나올 법하지.”
“그렇지만 적어도 그 해괴한 논리로 다른 나라를 겁박하지는 못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따지고 보면 성리학의 논변으로 골턴의 논리를 덮은 것이지, 완전히 파훼하지는 못하였으니 헉슬리의 평이 맞기도 했다. 그러나 반대로 골턴 역시 국내 정책이라면 모를까, 국제관계에서 문명과 진보를 영국 혼자만 외쳤다가는 재정은 재정대로, 명분은 명분대로 거덜난다는 전우의 언변을 끝내 돌파하지 못했으니, 전우의 자평하는 바에도 일리가 있었다.
그때, 메이드가 다시 문을 두드렸다.
“신문 배달입니다.”
“어? 아직 석간신문이 올 때가 아닌데?”
아직 여름이라 하늘은 보였다. 혹시 괘종시계가 고장났는가 싶어 창밖을 보니 아직 해가 중천이었다.
그러건 말건 무심히 다가와 쟁반 위에 올린 신문을 집주인 헉슬리에게 건네었다. 겉을 슥 살핀 헉슬리의 표정이 굳었다.
“끝내 전쟁이 일어날 모양일세.”
“뭐?”
가만히 차 마시던 스펜서가 놀라서 물었다.
“아프가니스탄의 아미르(군주)가 끝내 우리 정부의 최후통첩을 거부했다는군.”
무력시위를 위해 힌두쿠시 자락에 대기 중인 ‘사절단’은 그대로 침공군으로 재편되어, 카이버 고개(Khyber pass)를 넘어갈 터였다.
“하하... 결국 이 모든 일이 허사로 돌아갈 모양인가 보군그래.”
스펜서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 아무래도 고상한 인류 문명이니 진보니 하는 데서는 우리 말을 그럴듯하게 여기더라도, 막상 실제로 러시아가 이러쿵, 왕관의 보석(인도)이 저러쿵 하면 또 금방 넘어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래도 우리가 한 일의 공효는 끝내 남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표정 굳은 전우가 한 마디 보탰다.
“설령 이 나라 영국에서는 잊힌다 한들, 문명과 평화를 원한다면 우선 그것을 베풀라는 말만은 남아서 천하 곳곳에서 쓰일 것입니다. 두 분 선생님들께서도 보지 않으셨습니까. 고상한 이론은 현실 앞에서는 쓸모가 없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현실의 벽을 넘어서 힘을 지닐 수도 있는 것이겠지요.”
이 오랑캐 세상에서 도학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고민하던 선비다운 단평이었다.
“자네 말이 맞길 바랄 뿐일세.”
신문을 스펜서에게 넘기며, 헉슬리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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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유럽 도시의 중산층 및 전문직 종사자들 사이에서 유행하였던 것 중 하나가 학자들의 공개 강연회였습니다. (몇몇 강연회는 아직도 그 명맥이 이어지고 있지요.) 이 시기의 많은 사상가들이 그런 강연회를 통해 자신의 사상을 널리 알리고자 했고, 또 학술적인 호기심 때문이든, 지적 허영 때문이든 사회적으로도 그런 행사들은 대단한 인기를 끌었습니다. 물론 볼거리가 많았던 천문학이나 화학, 해부학 강연에 사람이 몰렸던 것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그냥 재미를 위해 찾아오는 이들도 적지 않았을 듯합니다.
골턴은 우생학의 창시자로 오늘날에는 그 악명이 높습니다. 하지만 작중에 묘사된 것처럼, 초기 우생학은 훗날 미국에서 유행한 것이나 나치가 자행한 것과는 달리 강제성을 상정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당시의 우생학이 ‘온건한’ 것이었다고는 할 수 없겠지요. 오히려 실제로 실행할 방도를 마련하지 않은, 관념적 차원에 머물던 것이었기에 널리 퍼지면서도 그런 애매한 온건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보는 편이 더 옳을 듯합니다.
만약 실행에 옮기게 되었더라면 얘기가 달라졌겠지만요, 실제로 당시 우생학에 반대하던 논리 중 하나가, 그런 정책을 정부가 실행하게 되었을 때 발생할 국민의 권리 침해 문제였지요.
작중에 묘사되는 것처럼, 다윈의 이름을 앞에 내걸고는 있지만 실제 다윈의 생각이 사회진화론의 주장과 얼마나 합치하는 것이었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많습니다. 다윈 본인부터가 자신의 이론이 문명사회에 적용 가능한 것인지를 놓고 말년까지 계속 고민했고요. 그렇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다윈이 무어라 말했든 사회진화론과 비슷하게 제국주의적 팽창을 정당화하는 논리는 등장했을 것입니다. 이념은 이익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니까요.
본래 역사의 제2차 영국-아프간 전쟁은 1878년 발발했습니다. 베를린 회의 이후 발칸에서의 세력 확장이 제한된 러시아가 대신 중앙아시아로의 확장을 가속하면서, 당시 바라크자이 왕조의 아미르였던 셰르 알리 칸을 압박한 것이 그 근원이었지요.
어쩔 수 없이 러시아 사절단을 받아들인 셰르 알리 칸은, 억지로 얻은 뒷배라도 충분히 쓸 수는 있다는 생각이었는지 영국 사절단 파견 ‘요청’을 거절하였을 뿐 아니라, 국경에서 출입을 막겠다고 엄포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인도 출신 병력이 대부분인 5만 대군으로 영국이 침공해오자 러시아는 우선 영국과 타협해보라며 사실상 아프가니스탄을 방기했고, 양과 질 모두 부족했던 아프가니스탄군은 곧 붕괴하여 국토 대부분이 점령당합니다. 카불에서 도피한 셰르 알리 칸도 1878년 객사하고 말지요.
이어서 영국에 저항하는 봉기가 일어나 ‘제국의 무덤’답게 여러 차례 영국군을 패퇴시키기도 했지만, 1880년 칸다하르 전투에서의 패배를 끝으로 모두 진압당합니다. 1919년 제3차 영국-아프간 전쟁으로 아프가니스탄이 독립국 지위를 회복할 때까지 아프가니스탄은 보호국 신세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