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종, 군밤의 왕-135화 (135/320)

44. 이 글을 어지럽히는 이들 (2)

런던 토박이들은 지금 포석을 때리는 것을 ‘촉촉한’ 봄비라 할지 모르지만, 봄의 촉촉함에 대해 확연히 다른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는 먼 나라에서 온 손님 전우에게는 그저 축축하다, 나아가 눅눅하다 정도가 지금 날씨에 내릴 수 있는 단평이었다.

세상이 참 좋아져서, 한 법국 서생의 글대로라면 여든 날 만에 지구를 한 바퀴 돌 수 있을 정도라지만, 그래도 영국은 멀디먼 나라다. 그런 나라에, 그것도 떠난 지 삼 년이 채 되지 않아 전우가 돌아온 것도 기실 조정의 뜻과 무관치 않았다.

참의원에서 공산당이 발의하기를, 여러 대학원 – 공학원이니 어학원이니, 원체 요새 학원들이 많다 보니 구분을 위해 앞에 대(大) 자를 붙이게 되었다 – 원생들이 근년 사이 바깥 나라에서 유학하는 기세가 많이 잦아들었는데, 나라에서 도와주면 어떻겠냐고 하였다.

그러니 당연히 개화당에서는 그럴 만큼 국용(國用)이 풍족하지 않다는 핑계로 반대하여 의론이 쟁쟁하였는데, 소식 들은 상감이 중재하여 말하기를, 그래도 배우는 이들의 뜻을 그들 가산이 빈곤하다 하여 꺾이게 내버려 둘 수는 없으니, 차라리 서양 서생들을 초빙하여 조선 땅에서 가르치게 하면 크게 지출되는 바도 없고 좋지 않겠느냐 하였다.

대소 신료와 참의대부들이 듣기에 그럴듯한 말이어서, 곧장 공고하여 대학원에서 대서의 학자를 데려오면 그 봉급을 지원해주기로 하였다. 허나 아무나 데려올 수는 없는 일. 이왕이면 저들 화서대학에서 모셔오는 이들보다 더 뛰어나고 패기 있는 이들로, 또 조선 땅에서 홀로 배우기 어려운 것을 가르칠 수 있는 이들로 데려오기로 노사대학 선비들은 말을 맞추었으니, 그 나라 사정에 밝은 전우가 다시 런던을 찾게 된 것은 그런 곡절이 있었다.

돌개바람이 핸섬 마차(Hansom cab)의 지붕을 휘 훑고 지나가더니, 빗방울이 따라서 일순 차창을 두들겼다. 허나 그러든 말든 마차는 부드럽게 굴러가며, 말보로 가(街) 38번지를 향해가고 있었다. 처음 왔을 때만 하더라도 참 신기했던 물건이었는데, 두 번째 방문에서는 확실히 그런 감이 덜하였다.

거의 느껴지지 않는 덜컹거림은 가볍게 무시하고서, 미리 접어둔 신문의 기사를 살폈다.

‘적자생존. 그것은 스펜서 선생이 그의 역작 『생물학의 원칙』에서 주장한 문명 진보의 원리다. 그런데 지난 수년간 그가 펼쳐온 행보를 보면, 본인이 제시한 원칙에 과연 부합하는 것인지 진지하게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그가 고(故) 다윈 선생의 훌륭한 이론을 섬뜩하리만치 오용하고 있다는 데 대해 필자는 유감을 금할 수 없다. 스펜서 선생의 반침략연대가 개진해온 주장을 보자. 그들은 우리 영국이 문명의 선봉으로서, 필요하다면 폭력을 동원해서라도 미개한 민족들을 문명화된 세계로 끌어오는 것을 무조건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수년간 국제정치의 흐름은, 이러한 주장이 현실은 물론 국익과도 동떨어져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

반침략연대의 가장 큰 후원자 중 하나가 동양의 한 왕실임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스펜서 선생이 자신이 열등하다고 주장해온 황인종들의 도움을 입은 것은, 나아가 그들에게 유리한 주장을 런던 한복판에서 외쳐온 것은, 이론과 현실의 슬픈 도착(倒着)이라고밖에는 할 수 없다.’

‘다윈 선생을 기리며: 그의 이론과 그 오용에 대한 단상(斷想)’이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그 뒤로도 계속 부연하기를, 조선이라는 나라 하나로 보면 그나마 문명화되고 있다지만 결국 뒤떨어진 중국 문명의 한 부속지에 불과하며, 그나마도 영국이 두 차례 전쟁으로 ‘만다린’ 정부의 위세를 꺾지 않았더라면 계속 그 그림자에 가려 ‘은자의 나라’로 머물렀으리라고 단정하였다.

과연 영국 공사로 있는 민태호(閔台鎬)가 대경실색하여 곧장 본국에 보고할 만한 내용이었다. 스펜서 그 사람 하나를 공박하는 글이라면 모르되, 애먼 조선까지 끌고 들어가 터무니없는 비난을 늘어놓고 있으니 말이다.

민태호 – 벼슬길이 순탄치 않은 여흥 민문이라지만 척신이 되기에는 촌수가 먼 덕에 버티고 있었다 – 의 장계 받아본 조정에서도 역시 곧장 반응이 나왔다. 지난 병자년(1876)의 일을 돌이켜보면 스펜서라는 사람은 영국과 아라사 사이 싸움을 막는데 큰 공을 세운 서생이니 조선에도 도움된 바가 있었는데, 그런 사람을 헐뜯고 나아가 무계한 말로 조선을 비방하니,

‘이를 가만히 둔다면 굳어지고야 말 터이니, 장차 큰 병폐가 될 것입니다.’

하는 여론이 일어나고, 국위니 국격이니 하는 것을 항상 선양해야 한다 들어왔던 국왕 귀남이 생각하기에도 잘못한 일 하나 없는데 그렇게 욕을 듣는 것은 영 억울한 것인지라, 민태호로 하여금 임시방편으로 현지에 있는 다른 조선 선비들을 그러모아 대응케 하였다.

그러던 차에 마침 병자년 난리 수습에 실제로 한몫하였던 전우가 이곳에 와 있었으니, 어찌 도움을 청하지 않겠는가. 물론 스승을 찾아 영국에 왔다가 생각도 못한 늦장가 들어, 본래 의도한 학업 대신 장인어른 병구완하고 있는 또 다른 전 무어라 하는 이도 있다지만 그는 애초에 사류(士類)가 아니어서 민태호로서는 끌어오기가 뭣하였다고 했다.

생각이 그에 미칠 무렵, 마부가 ‘워어’ 하니 늙은 말이 재주껏 알아들어, 마차가 멈춰섰다.

“다 왔습니다, 나리.”

“고맙소.”

살갗 색이 다르면 저들만 못하다며 깔보는 것이 코쟁이 나라의 누습(陋習)이라지만, 그것도 누굴 깔볼 여력 되는 이에게만 해당하는 것인지 값을 낼 때까지 마부는 공손함을 유지하였다.

전우가 알기로 스펜서는 은근 괴팍한 면이 있어, 저의 집을 구하는 대신 항상 남의 집에 세 들어 사는 버릇이 있었다. 그런 사람이 세간 사람들 평에는 또 과히 민감하여, 찬사를 받을 때는 몸이 가뿐하다고 하고, 스스로 생각하기에 남들이 저들을 흉본다 생각하면 그의 몸도 따라서 쇠한다 생각하니, 그의 벗 토머스 헉슬리의 집에 의탁하고 있는 지금 스펜서의 몸 상태는 묻지 아니해도 미리 알 법하였다.

집주인은 오랜 벗 다윈의 상례를 치르기 위해 떠나 아직 돌아오지 않았으므로, 손인 스펜서 홀로 멀리서 온 객 전우를 맞이하였다.

“그간 무탈히 지내셨습니까, 선생.”

“무탈하다고 말하고는 싶지만, 사실이 그렇지 않군. 그대는 그래도 여전히 건강한 듯하니 참 다행일세.”

하지만 이미 시원하게 까진 이마며 – 소싯적부터 그랬다고 들었다 – 하얗게 센 턱수염이며 1876년에 처음 봤을 때와 그대로라, 딱히 병약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찾아오는 길에 신문을 조금 보았습니다. 선생께서는 괜찮으신지요?”

“괜찮을 리가 있겠나? 하지만 저들 말에도 일리가 있으니 가만히 있을 뿐이지...”

축 처진 어깨는 스펜서의 몸살이 악화된 건강보다는 낙담한 심정 때문임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물론 의기소침해 하는 것과는 별도로, 지성 어린 눈빛은 그대로 남아 있었지만.

“일리가 있다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반침략연대는 실패했네. 그게 사실이야. 자네가 떠난 이후 글래드스턴 씨와 나는 벗들을 모아서 여러 차례 노력했지만, 끝내 아무것도 막지 못했지. 트란스바알(Transvaal, 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일부)에서의 일이야 우발적인 충돌이 발단이었으니 그렇다 쳐도, 중국의 일이나, 이번 이집트 사태까지, 무엇 하나 제대로 해내지를 못했어.”

“그렇다고 해서 실패했다 단정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반대로 반침략연대가 있었기에 그 정도로 멎은 것일 수도 있겠지요.”

“만약 그렇다 해도, 우리가 기껏 막아낸 게 그 정도라는 얘기는 시대의 대세가 서로 침략하고 정복하는 데 있음을 역으로 증명하는 것 아니겠는가? 무너지는 둑을 한 사람 힘으로 막을 수 없는 것처럼...

그리고 그것 외에도, 저들의 지적 중 타당한 것이 없지 않고.”

전우 앞에서 말하기가 저어되어 말꼬리를 흐렸지만, 그 ‘타당한 것’이라는 게 전우도 읽은 것. ‘열등한’ 황인종의 힘을 빌려 섣부른 평화 따위를 주장했다는 비난임은 익히 알 수 있었다.

“어찌 그것을 타당하다 할 수 있습니까? 하늘 아래 다섯 장기와 여섯 부위(오장육부)를 가진 사람이라면 비록 살갗의 빛은 다를지언정 모두 같은 사람이고, 기질의 차이가 있다 하나 이는 같은 겨레 안에서도 으레 그러기 마련입니다.

우리 동양은 비록 대서에 비해 기술이 뒤떨어졌다 하나 함부로 문명의 정도를 낮추어 말할 수는 없고, 설령 미개하다 할지라도 문명한 나라라면 무릇 말과 도의로써 교화할 생각을 해야지, 잘못도 없는데 군병으로 다스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 말을 함부로 내어놓는 자가 어찌 온당한 말을 한다 이르겠습니까?”

마침내 전우가 찾아온 본 목적이 거론되자, 스펜서 역시 조금이나마 활력을 되찾은 듯했다. 물론 그 활력이 활로를 찾는 데 쓰이는 게 아니라, 상황을 더 비관적으로 조망하는 쪽으로 흘러감이 문제였지만.

“나라고 그런 반박을 시도해보지 않았겠나?”

처음 시작할 때부터 스펜서가 염두에 두었던 반박이었다. 하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당연한 사실처럼 보였던 것. 가만히 있으면 세상은 절로 문명으로 나오리라는 것이 이제는 흔들리고 있었으므로, 쉽사리 대꾸할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서양인들이 다른 인종들보다 우월하냐, 그렇지 않으냐가 아닐세. 정말 우리 앵글로색슨 인종이 뛰어나서든, 과학과 기술의 힘이든, 하다못해 신의 은총이든, 우리는 나머지 인종과 민족들을 아우르는 제국을 만들어냈고, 그런 제국이라면 나와 다른 이들을 어떻게 다룰 것이냐의 문제를 피할 수 없어.

게다가 지금 우리는 총칼과 군함이 있고, 반대편에는 없지. 이걸 구태여 놀리지 않을 이유를 찾는 편이 더 어렵지 않겠는가? 그동안 반침략연대가 버텨온 것만 해도 선방이라 해야 할 판인데.”

“배부른 고민이군요.”

성정에 밴 냉소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 말이 툭 튀어나왔다.

“그렇지. 하지만 이미 부른 배인데 고민을 안 할 수도 없지 않은가.”

생각해보니 조선의 선비들에게도 들어맞는 절묘한 말이었다. 지금 전우 그가 이렇게 만리타향에 나와서 남의 나라 사상을 걱정해줄 여유가 어떻게 생겼다는 말인가.

만약 아직껏 조선의 문이 굳게 닫혀있어, 대서 오랑캐들이 통상을 위해 허겁지겁 달려오는 대신 그 문호를 열기 위해 작정하고 군함 몰고 왔더라면, 조선 선비들도 지금쯤 스펜서 같은 서생의 반대편 입장에서, 그들의 총칼을 두려워하며 그 말에 따라야 하는가,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각오하고 정도와 의리를 지킬 것인가를 놓고 한창 갈등하고 있을 터였다.

“결국 이대로라면 적자생존의 원칙은 전쟁을 통한 생존투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네. 그 전에 미리 민족과 인종 사이의 질서를 잡고, 야만인들을 그나마 개명된 상태로 이끌어야 세계 문명의 진보를 이끌어 낼 수 있으리라는 저들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 이 말이야.

물론 자네 나라처럼 스스로 문명에 동참해서 진보의 길을 찾고 있는 경우도 없지는 않고, 나나 글래드스턴 씨가 그때 반침략연대를 이끌고 큰 호응을 얻을 수 있던 것도 그 때문이었지. 하지만 시일이 지나면서 보니 조선은 대세의 한 예외일 뿐이었지 않은가. 어떤 이유로 그런 예외가 될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예외 하나는 전체의 법칙을 반박할 수 없다는 점이야.”

그러나 과연 그렇겠는가? 조선이 꼭 법칙의 예외일까? 오히려 조선이야말로 먼저 어떤 답을 찾은 나라일 수도 있지 않을까?

적어도 전우는 그렇게 생각했다. 『교린삼장』 세 문장을 보고서, 참으로 옳은 길이라 찬탄하지 않았던가. 만일 저대로 하였는데 돌아오는 것은 냉대와 배신뿐이라 끝내 망국에 이른다면, 그것은 천하의 대세가 그렇게 오랑캐 구렁텅이에 빠져드는 것이니 해야 할 일을 다할 뿐, 하등 부끄러움 남지 않는 일이요 삼천 년 도통(道統) 잇는 나라다운 법도였다.

어차피 그런 아귀다툼이 세상살이 본연의 모습이라면, 물산 가냘프고 호구도 적어 오래 부지하지 못할 나라였다. 그런 나라가 도탄에 빠지는 것을, 화평의 도로써 몇 년이라도 늦춘다면 그 공이 어찌 작다 하겠는가?

“선생의 말씀이 옳을 수도 있습니다. 말씀대로 반침략연대는 한때의 시운을 얻어 잠시 성공하였을 뿐, 결국 어리석은 사람들의 일장춘몽에서 나온 것일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한바탕 꿈꾼 것이 부끄러운 일입니까? 선생 말씀마따나 장차 구미 열국이 서로 빼앗고 다투면서 세상 만방을 괴롭게 하게 될 것이라 하면, 적어도 갖은 힘을 다 써서 막아볼 궁리를 한 번쯤은 해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멀리 한양에서 영길리 윤돈(런던) 땅에 무서운 논의 오가고 있다는 소식 들은 귀남이 그래도 해볼 수 있는 데까지는 설득하여 세론(世論) 바꿔보려 노력해야 하지 않겠느냐 하였을 때 기무회의의 대소 신료들이 찬동하였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물론 그 기저에는, 말이야 약하다 약하다 하지만 적어도 정말 돌풍 한 번에 날아갈 만한 나라는 아닐 정도로 조선국의 국세가 크게 일어났다는 믿음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백 년 종사를 그저 근근이 잇는 데서 그치지 않고, 명도(明道) 밝히고 나아가 옛 중화의 아름다움을 지킨다는 나라로서, 적어도 한 번쯤은 나설 수도 있지 않겠는가.

“선생께서는 분명 일전에 말씀하시기를, 설령 서로 쟁투함이 인간의 본성이라 할지언정, 문명화된 사회가 그런 일에 함부로 마음을 두어서는 안 된다 하셨지요. 그렇게 되면 오히려 열심히 계발한 맑은 심성이 도로 흐려져, 예전만도 못한 야만의 상태로 굴러떨어진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때 분명 인물성(人物性)의 같고 다름을 놓고 저와 논쟁하시면서도 끝내 반침략연대의 건에 찬동하신 것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이보게, 내 말했지 않은가. 자연선택의 흐름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우월한 사회와 민족, 인종이 그렇지 못한 자들보다 우세해질 수밖에 없다네. 지금 아프가니스탄 정벌을 주장하는 자들을 탓할 수 있겠나?”

“물론 그들을 탓할 수는 없지요. 하지만 그들이 시끄럽게 외치며 세인을 미혹하는 동안 우리가 가만히 있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탓이 될 것입니다.”

완전히 돌아선 여론에 주눅든 지도 꽤 된 스펜서가 재차 저의 무력함을 열심히 털어놓았다. 힘을 북돋지는 못할망정 도리어 빼는 일에 열중하니 전우로서는 꾸짖을 법도 하겠지만, 저의 하고자 하는 말 하기에 바빠 거기까지는 생각이 닿지 않았다. 듣기에 열중하는 것은 스펜서도 마찬가지라, 은근슬쩍 ‘우리’로 끌어들였음을 눈치채지 못하였다.

“지금 선생께서는 비록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 하나, 여전히 이 나라 영국, 아니, 서양 전체에서 높이 거론되는 선비의 한 사람이십니다. 그러니 장차 유럽과 아메리카의 사람들이 세상 전체에 퍼져나가 패악질을 할 때, ‘나 또한 이렇게 배웠다’ 하면서 선생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먼 후대의 사람이 글로써 이 나라 영국과 영국이 일구어낸 천하의 청사를 적어내려갈 때, 천하의 어지러움이 어디서 기인하였다고 탓하겠습니까?”

말이야 거창하지만, 일의 성패야 어찌 되었든 지금 미리 목소리를 내어놓아야 후대에 면피가 된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였다. 명분의 이야기와 처세의 이야기를 섞어서 늘어놓음은, 오백 년 말싸움으로 단련된 선비 중에서도 특히 그 말싸움과 이의 달기를 즐기는 전우였기에 더욱 능수능란한 것이었을까.

과연 움추려 있던 스펜서의 어깨가 조금은 곧추 펴지더니, 한동안 응접실 안에 멀리 창가에서 들려오는 봄비 소리와 고민 섞인 잔기침 소리만 감돌았다. 그러기를 몇 분이 지났을까. 마침내 마음 정한 스펜서가 답했다.

“후, 좋아. 자네 말대로 해봄세. 잃을 게 또 뭐가 있겠나?”

저의 명예를 지키는 일이라지만 여전히 시큰둥한 – 그러나 그런 성격이 오히려 미리 반론을 예상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 스펜서와는 달리, 다윈의 장례를 마무리하고 돌아온 집주인 헉슬리는 말다툼에는 도가 튼 사람이라, 오히려 전우와도 맞닿는 면이 있었다.

“스펜서 씨가 그렇게 마음을 정했다면, 뜻을 같이하는 사람으로서 안 돕고 지나갈 수는 없지. 그래서, 무슨 생각이라도 있는가?”

일전 글래드스턴을 도와 열심히 반(反) 디즈레일리 활동 하던 시절에 면식 튼 사이라, 헉슬리가 편하게 전우에게 물었다.

“제가 살펴보니, 스펜서 선생 말씀마따나 지금 여론은 완전히 전쟁을 하자는 쪽에 돌아서 있습니다.”

“그렇지. 지금 상황에서는 가볍게 아무 말이나 했다가는 바로 저 상어 같은 놈들에게 물어뜯길 판국이야.”

한창 때 한 편 들어 다른 편 물어뜯기를 참 잘해서 다윈의 불독 소리까지 들었던 헉슬리였다. (나이 들면서 더 쳐진 양쪽 볼 때문에 그런 인상이 더 강해졌다.) 말싸움 생리에는 전우만큼 도가 텄다.

“그러니 제가 생각하기에 이번 일은 그런 세세한 시사의 흐름을 떠나, 순수하게 학문을 논하면서 서로 공박하는 모임으로 몰고 가야 합니다. 그리하지 않으면 결국 과거사를 놓고 지지부진한 다툼으로 끌려들어가, 우리의 설파하고자 하는 바의 반의 반도 내놓지 못할 테니까요.”

“토론회를 열자, 그런 말인가?”

“예, 말씀대로입니다. 물론 다윈 선생이 작고한 지 아직 얼마 되지 않았으니, 조금은 자중하면서 우리 편의 논지를 가다듬어야겠지만요.”

“세간의 관심이 문명과 야만의 다툼에 쏠려 있기는 하지. 이번 아프가니스탄 건이 마무리되기 전까지는 계속 그럴 테야.”

그런 시국이니만큼, 아무리 시사와 하등 무관한 학문적 토론이라 한들 세인의 관심 끌기는 손바닥 뒤집는 것과 같을 터였다.

“스펜서 선생을 비난하는 이들 중 혹시 학자나 그 비슷한 것으로 자처하는 이가 있는지요?”

잠깐 생각하던 헉슬리가 곧장 답을 내어주었다.

“한 명 있네. 프랜시스 골턴(Francis Galton)이라는 이인데, 확실히 인재는 인재라, 박물학부터 수학까지 참으로 다재다능한 사람이지, 작고한 다윈 선생의 외사촌이기도 하고. 사실 딱히 정치색은 없던 사람인데, 스펜서 씨가 이쪽 반침략연대에 몸담는 것을 보고 그 반대편에 섰다네.”

그렇다면 저 보수당 – 솔즈베리 후작이라 했던가 – 의 부추김을 받을지언정, 밑바탕만 따져보면 천하의 이치를 놓고 의견 갈려 스펜서를 비판하는 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주 좋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에게 연통을 넣어, 그간 그처럼 스펜서 선생의 글에 의의(疑義) 달아왔으니, 이제 서로 변론하여 옳고 그름을 가려보자고 해봄직 하겠군요.”

“하지만 저들이 응해주겠는가? 이미 여론은 저들 쪽으로 기운 지 오래인데, 아예 묵살하고 계속 성토하기만 해도 뜻한 바를 이룰 수 있지 않겠는가?”

“하하, 그야 눈길 끌기에 달려 있는 문제이지 않겠습니까.”

눈길 끌기라 하면 그 옛날 도포자락 휘날리며 글래드스턴을 응원하던 시절부터 이들 선비의 특기 중 하나임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헉슬리의 기대는 잘못 놓이지 않았음이 명백해졌다.

당당하게 전우의 이름을 걸고,

‘다윈 선생의 아름다운 글을 어지럽히는 이들(斯文亂賊)은 보라!’

라는 제목을 건 자극적인 기사가 나갔으므로, 이만한 도전장도 영국 언론을 통틀어 고금에 드물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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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섬 마차는 2인승 이륜마차로, 마부가 마차의 앞이 아닌 뒤에 앉는 형태가 특징적입니다. 무게중심이 낮아 승차감이 좋고, 마차의 크기가 작아 말 한 마리로도 끌 수 있었기 때문에 곧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지요. 특히 이미 교통정체가 심각하였던 빅토리아 시대 런던에서는 오늘날 택시와 비슷하게 운송업에 많이 쓰였는데, 이러한 유형의 마차를 통칭하던 ‘캡(Cab)’이라는 표현은 이후 택시를 부르는 영어 속어로도 이어지게 됩니다.

본래 역사에서 민태호는 그의 동생 민규호와 함께 민씨 척족의 핵심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중전 민씨의 눈에 들게 된 계기는 민승호가 대를 이을 아들과 함께 급사 (몇 번 언급되었듯 야사에 따르면 흥선대원군(추정)의 폭탄테러였지요)한 뒤 자신의 아들 민영익을 죽은 민승호의 양자로 들여보내면서였습니다.

하지만 작중에서는 민승호가 폭탄테러 대신 폭탄처리를 당해 권력에서 훌쩍 멀어져버리고 여흥 민씨도 외척 노릇은 엄두도 못 내고 조용히 다른 세도가들처럼 돈벌이나 하는 정도인 관계로, 민태호 역시 평범한 문신의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19세기 제국주의와 결부되어 항상 거론되는 사회진화론이지만, 정작 그런 이론이 실재했는지,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지녔는지에 대해서는 의외로 이론(異論)이 많습니다. 당장 사회진화론(Social Darwinism)이라는 말 자체가 당대보다는 후대에 비판적으로 19세기 후기~말기의 사상을 조망하면서 자주 쓰이게 된 표현이지요.

그러나 당시 제국주의자들뿐 아니라 일반 대중, 그리고 학계 사이에서, 일관적이지는 않더라도 적자생존에 입각해 식민지배와 폭력을 정당화하는 관념이 폭넓게 존재하였던 것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메이지 유신 초기에 이런 사상이 일본에 들어가면서, 개화와 더불어 확장을 동시에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널리 활용되었지요. (멀리 보면 대동아공영권이라는 끔찍한 이데올로기적 키메라의 한 부품이 되기도 합니다.)

허버트 스펜서의 건강염려증은 이전에도 잠시 언급했듯, 1880년대부터 대중적 인기를 잃음과 동시에 악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걸 보면, 아무래도 요즘 표현으로는 멘탈이 조금 약하지 않았는가 싶습니다. ‘열등한 인종’의 도태와 인종 분리주의를 주장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도태가 폭력적 수단을 통해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자유주의적 믿음을 가졌기에, 어떻게 보면 그의 이론이 ‘신제국주의’에 따른 무분별한 팽창경쟁이 일어나던 시기를 즈음하여 인기를 잃게 된 것도 당연한 수순이라 하겠습니다.

여기서는 그런 흐름이 영국 국내정치와 맞물려 훨씬 조기에, 그것도 조직화된 양상으로 나타났습니다. 당연히 원 역사의 프랜시스 골턴도 작중에서처럼 스펜서를 비판하지도 않았고요. 스펜서 본인이 본래 역사와 달리 훨씬 조기에, 그리고 실제보다 훨씬 큰 정치적 족적을 남기면서 발생한 결과 중 하나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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