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종, 군밤의 왕-126화 (126/320)

41. 쇳소리에 놀란 제비 날아가고 (3)

개미와 같은 미물도 비 올 때 되면 저들 드나드는 구멍을 둔덕으로 에워싸기 마련이니, 하물며 사람은 어떻겠는가. 아무리 어리석고 귀 얇은 백성이라지만 조만간 뭔가 흉흉한 일이 일어나리라는 그 분위기는 알 수 있었으므로, 어느새 북경 저자에는 저 멀리 이리 싸움터보다 더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

그 긴장은 옛 공왕부, 현 북양대신 치소의 담을 넘어와 이홍장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공왕부를 치소로 내려준 것은 서태후의 사사로운 감정에서 말미암은 것이었고, 훗날 – 혹시 모르는 일이지 않은가 – 집주인 공친왕이 돌아왔을 때 원한 살 일은 막기 위해 집무실과 막료들이 일할 전각들, 그 외 꼭 필요한 곳 몇 채를 제한 나머지는 모두 봉하여 일체 출입하지 못하게 해두었다.

그렇게 하였더니 결국 실제로 쓰는 것은 건물 세 채 중 하나나 될까. 호젓한 감이 들 정도였으니, 평소라면 꺼렸을지 모르겠으나 지금과 같을 때에는 차라리 그 편이 나았다.

“대인, 영국 공사관에서 전갈 보내기를, 곧 찾아뵙고자 한다 하였습니다.”

“알았다.”

지금 이 때를 당하여 찾아오고자 함은, 묻지 않아도 조만간 서태후가 벌일 엄청난 일에 대비하기 위함이리라.

“오 총병(摠兵, 오장경(吳長慶))으로부터 들어온 소식은 없더냐?”

어차피 북경 민심이 얼어붙은 시점에서 서태후도 자신이 뭔가 눈치를 채었으리라 짐작하고 있을 터. 그러면 손속을 아낄 이유도 없었다. 직례를 지키고 있던 오장경과 그의 정예 경자영(慶字營) 병사들을 들여보내 경계를 강화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지금도 천안문 밖 아문 한 군데를 차지하고 앉아, 조계 구역으로 들어가는 길목을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다. 아라사가 무엇을 획책하고 있든 이미 알고 있다는 허세의 의미도 겸하는 셈이었다.

“예, 아직 없습니다만, 시각을 보건대 대인께서 보고를 받으시고자 하실 듯하여 사람을 보내 확인케 하였으니 두어 각(刻, 약 15분) 안에 돌아올 것입니다.”

“잘 하였다. 그럼 물러가 보아라.”

“예, 대인.”

경자영에서 연락을 주고받기 위해 보내온 젊은 군교(軍校, 장교)였다. 저의 마음을 알고서 입 안의 혀처럼 구니, 요 며칠 사이 거의 저의 부관처럼 되었다. 이름이 원세개(袁世凱)라 하였던가.

명한 대로 물러가니 집무실에 울리는 것은 멀리 풀벌레 소리뿐. 고즈넉한 정취는 시상(詩想) 일으키기에 족하였으나 외려 이홍장에게는 심란하기만 할 뿐이었다.

무엇을 위해 여기까지 왔던가. 스승보다 위에 서려 아득바득 힘쓰고, 그 다음에는 서태후의 눈에 들어 더 높이 올라가고자 애쓰고, 마지막으로는 서태후와 공친왕의 싸움을 이용하여 나라에서 비할 바 없는 위세를 얻었다.

그러나 성인께서 천명을 아셨다는 나이를 한참 넘긴 지금, 그는 그 천명을 알고 있던가. 처음에는 그저, 나라 안에 자신만한 사람이 없다 여겨, 스스로 높이는 것이 곧 진충보국(盡忠報國)과 다름없는 길이라 생각하였다. 만약 나라 안이 평온하여 아직도 자금성에 앉은 서태후가 흔들림 없이 집정하고 있었다면, 아마 이홍장은 그저 공친왕을 갈음하여 개화의 실무를 맡는 정도로 만족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빈틈이 보였고, 그 생긴 빈틈을 그냥 두고 넘어갈 수는 없어 노리고 들어갔다. 그리고 그 결과 그는 나라 안 최대의 권신이 되고야 말았다. 결국 그가 꿈꾸던 것을 끝까지 미루어보면 이 자리에 당도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이런 자신을 막아내어 오직 바깥일에만 마음 쓰도록 하지 못한 옛 조정에도 잘못이 있을 것이다.

‘하하. 궤변이로구나.’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억지 논리라, 절로 자조가 나왔다. 원하던 것을 얻었는데 무에 부끄러울 게 있는가? 구차하게 변명할 것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세간에서 그를 벌써 왕망(王莽)이나 조조에 비하고 있다지만, 그렇다 하여 이홍장 그가 금세의 이윤(伊尹) 되지 못할 일은 또 아니니, 오직 결과가 말해줄 일이다.

그런데 지금 세상의 어리석은 자들은, 그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양이와 붙어먹는다, 만인을 내치고 한인만 중용한다 하면서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천하의 대국이 몸을 일으키는데, 어찌 거기 붙어있던 이와 벼룩의 무리가 왈가왈부한다는 말인가?

생각이 거기에 미치니, 마침내 결단을 내리게 되었다. 어차피 지금처럼 그의 요량껏 정사를 운영하다 보면 부딪힐 수밖에 없던 일이다. 나라가 크게 어지러워진다 하더라도 서태후의 잘못으로 모두 뒤집어씌우면 수습하지 못할 것도 아니며, 감히 반기를 든다 한들 회군 앞에서 얼마나 버티겠는가. 천하의 상군도 그가 영국을 통해 들여오는 은자로 목줄이 매여 있지 않은가.

그 결심 내리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린 것일까. 벌써 밖에 원세개가 돌아와 기척하더니, 영국 공사 웨이드(Francis Wade)가 낯선 손님 둘과 함께 들어왔다. 생긴 것은 양이가 아니되, 그 풍모를 보면 자신 앞에서도 당당한 것이 화인(華人)도 아니었다. 또 복식으로 말하자면 한 명은 관복 차려입은 조선 관헌이되, 다른 하나는 양장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있었다.

더 깊게 고민하기 전, 영어로 인사가 들어왔다.

“아, 각하, 항상 나랏일로 고생이 많으십니다.”

“천만의 말씀이오. 공사야말로 근래 정세가 어지러워 고심할 건이 많지 않소이까.”

이홍장도 영어로 받았다. 어리석은 자들이야 왜 대청의 대신이 오랑캐 말을 쓰느냐며 무어라 하겠지만, 이리하면 염탐하는 이를 걱정할 필요도 없거늘 어찌 이 편리한 방법을 버리겠는가.

“그렇지요. 그렇고 말고요. 그저 평화롭게 잘 지내면서 통상에 힘쓰는 것이 저희 정부의 뜻인데, 이를 알지 못하는 자들이 각하의 훌륭한 정책을 무너뜨리려 애쓰고 있군요.”

“안타까울 뿐이오. 미리 나라 안의 단속을 하지 못하였으니...”

“유럽인으로서도 죄송한 면이 있으니 딱히 무어라 하지 못하겠습니다. 러시아의 미스터 이그나티예프가 과욕을 부려서 자희태후 전하를 충동질한 것이겠지요.”

어느새 나이가 여든을 넘은 고르차코프 공작이 곧 공식적으로 은퇴할 것이라는 소문은 이곳 북경의 외교관 사이에도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그 뒤로 물망에 오른 것은, 딱히 한 것도 없지만 졸지에 러시아 발칸 진출의 최대 공신으로 부상한 전 영국 공사 슈발로프, 그리고 전쟁성 장관 기르스(Николай Карлович Гирс) 이렇게 둘 뿐이고, 이그나티예프는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었다.

물론 자유주의에 마음 쏠린 지금의 차르가 보수 강경론자 이그나티예프를 중용할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무언가 실적을 올리고자 극동으로 친히 온 이그나티예프로서는 초조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이런 공작을 다른 유럽 국가들이 뻔히 보는 앞에서 추진하려 한다는 말입니까. 러시아 공사관이 저들 혼자 있는 것도 아니고, 바로 옆집이 우리 영국 공사관인데요.”

동철의 일로 서태후에게 시달린 것이 한두 번이 아닐 텐데도 여전히 이번 일을 이그나티예프 홀로 획책한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비록 근시안일지언정 눈에 보이는 거리 안에서는 그 안목이 날카로운 서태후다. 대청이 아무리 쇠망하였다 한들 하루아침에 다른 나라 편으로 넘어갈 수는 없는 것임을 모를 리 없다. 그리고 그처럼 판돈이 커지게 되면, 가뜩이나 온 유럽의 경계를 사게 된 러시아로서도 자연스레 서태후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아마 서태후는 그런 생각일 것이다. 천자가 외국 공사관으로 이어하였다, 그것도 한창 싸움 벌이고 있는 상대의 공사관으로 도피하였다 하였을 때 불같이 일어날 어지러운 여론 정도야, 천자는 오직 천자이기 때문에 스스로 고귀한 것이라 여기는 자금성의 궁인들로서는 별 것 아니리라 여길 것이었다.

물론 그런 사정 있으리라 깨우쳐줄 만큼 웨이드와 이홍장이 친한 사이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홍장 개인을 위해서든, 대청의 미래를 위해서든 (이홍장 생각에는) 이번 이어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속사정을 지금 헤아려서 무엇 하겠소. 어차피 모두 알 수도 없고. 어찌 되었든 최선을 다해, 그리고 우리끼리 힘을 합쳐 막아야 할 것이오. 일전에 일러두었던 준비는 모두 갖추었소?”

“하하, 걱정은 내려두셔도 되겠습니다. 저희 공사관은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천안문 앞의 제복 입은 병사들을 보니 각하께서도 이미 준비를 마치신 듯하더군요.”

“물론이오. 북경 성문은 모두 빈틈없이 막고 있소. 공사관 쪽으로 들어가는 모든 길목도 마찬가지고.”

“금궁(Forbidden City)의 주변은 경비하지 않아도 될지요?”

“그 궁궐이 천자의 거처로 쓰인 지가 벌써 거의 사백 년도 넘었소. 이런 일에 대비한 비상통로 하나쯤 없겠소? 우선 러시아가 끼어들지 못하도록 떨어뜨려놓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할 게요. 그리고, 이번 일이 수습된 뒤 어떻게 할지도 논해야겠지.”

“잘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이 두 사람은, 만에 하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하여 찾아온 이들인데...”

겨우 막 옆에서 대기하던 두 동양인을 소개하려던 차, 문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났다.

“대인! 북양대신 대인!”

예의 그 정중한 표정 대신 황망함을 가득 담아 달려온 원세개가 숨을 몰아쉬었다.

“오 총병으로부터의 급보입니다! 황상께서, 허억, 황상께서 이어하셨습니다!”

한어로 오가는 말이지만, 대충 웨이드도 알아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곧장 더불어 표정이 어두워졌다.

“무어라? 교민항(交民巷, 조계지)을 지키던 자들은 무엇하였다는 말이냐? 당장 직고하렷다!”

“그, 그것이, 아라사 공사관이 아니라 동직문(東直門) 옆 아라사 교구(敎區)로 이어하셨다 합니다!”

잠시 헛웃음이 나올 만큼 강렬한 충격이 이홍장과 웨이드의 뒤통수를 때렸다.

“하, 하하. 어지간히 태후 전하께서도 급하셨던 것이로군.”

잠깐이나마 휘청이다 의자에 앉아 안정을 취한 웨이드가 입을 열 때까지, 어색한 정적이 방을 지켰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교회 쪽이라니.”

“그야 그 안에 지키는 병사도 없고, 주재하는 관리도 없으니 그렇지. 허나 지금에 와서는 보나마나 갖은 핑계로 러시아 관리들을 보내놓았을 테니, 제대로 당하였구려.”

동직문 옆에 둔 지도 벌써 이백 년이 거의 다 된 러시아 교회라, 신도도 적지 않고 그들을 수용하는 건물도 작지 않다. 공사관보다야 그나마 궁궐의 규모에 가까우니 황실의 (얼마 남지 않은) 위엄을 생각하면 그나마 다행이랄까.

공사관과는 달리 그쪽은 엄연한 대청의 영토이니, 엄밀히 말해 당장 쳐들어가 서태후를 도륙하여도 문제는 없겠지만, 마찬가지로 대청의 영토이므로 천자가 순수(巡狩)하는 셈치고 임하였다 하면 할 말이 없기도 하였다. 더구나 그들을 아라사인들이 에워싸고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흠흠, 아무튼 일이 이리 되었으니, 힘으로 해결할 때는 지난 듯합니다. 저희가 세 나라 사이에서 중재하는 데 도움을 드려도 괜찮을지요.”

충격에 휩싸여 완전히 잊고 있던 두 동양인 중 말쑥한 양장 차려입은 이가 뭔가 제의하려는 듯 말을 꺼내었다. 그의 입에서 유창한 영어가 나왔다는 사실이 떠오른 것은, 이미 그들 둘이 이홍장과 웨이드 두 사람의 승낙을 받고 떠난 뒤였다.

“계속 이렇게 되면 외직(外職)은 따로 안 나가도 되지 않겠습니다그려.”

지난 번에도 어명으로 상해를 다녀왔는데, 이번에도 특명을 받아 다시 북경에 행차하게 된 김옥균이 농을 던졌다.

“고균 이 사람, 과연 성상께서 걱정하신 대로 천하의 중대사가 얽히게 되었거늘 그렇게 농을 해서야 되겠는가.”

김홍집이 옆에서 가볍게 면박을 주었다.

멀리 한양의 귀남 생각하기에, 일이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 터질지는 모르는 것이지만, 터지게 되면 아라사와도, 청국과도 접경하고 있는 조선에는 반드시 그 여파가 미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러니 믿을 만하면서도 보내었다는 티가 나지 않는 젊은 관료들 – 이쯤이면 슬슬 총신 소리도 들을 법하였다 –을 보내, 다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저 그대로 돌아오되, 혹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되면 반드시 아라사가 얽힐 것인즉 끼어들어 중재하라 하였다.

이때 나라에 손해는 가지 않게 하되 반드시 이익을 얻을 것도 없으며, 특히 아라사든 청국이든 그 체통을 귀히 여김은 매한가지이므로 이를 건드리지 않는 방도를 마련하라 주문하였다. 아마 뭔가 난리가 나긴 나리라 여겼던 김옥균은 사실 어떻게 여기서 이권을 취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던 터라 (물론 암만 생각해도 영국과 러시아가 모두 끼어들게 되면 이권 취할 방도가 잘 나지는 않을 듯했지만), 김이 새는 감은 없잖았다.

그래도 할 일은 할 일이다. 더구나 집안만 그럴듯하지 아직 뭔가 대단히 영달하였다 할 수는 없는 김옥균을 이렇게 믿어주는 이가 금상을 제하면 얼마나 있겠는가.

“하하. 지금도 이렇게 농을 던지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열심히 계책을 자아내고 있으니 존형께서는 염려치 마십시오.”

“에휴, 말이나 못 하면...”

불과 수십 년 전만 하여도, 젊디 젊은 관원이 어명을 받아 이렇게 연경 구경을 나올 수 있다 하면 성은에 감복하여 매일같이 망궐례(望闕禮)라도 행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이미 유럽을 유람하고 온 김옥균의 성에는 찰 리가 없었다.

반면 면박 주는 김홍집은 오히려 눈이 돌아가다시피 하였으니, 나날이 국운 상승하는 조선과 달리 쇠락에 쇠락을 거듭하는 청국이라지만, 지금 그가 보고 있는 것이 쇠락한 것이라면 그 전에는 어떠하였을지 감이 잡히지 아니하였던 것이었다.

비록 천하의 공의(公義) 위함이라지만 남의 나라 사정에 함부로 개입하는 것은 떳떳한 일이 아니라는 데 긴급히 열린 기무회의의 중론이 모였으므로 (그간 열심히 개입당한 다른 나라들이 들었다면 기가 찼을 일이었다) 두 사람은 공식적으로는 그저 잠시 휴직하고서 북경 구경을 온 터였다. 그러니 가마 따위 호사는 누리지 못하고, 그저 운현궁에서 붙여준 경호하는 이들 몇몇을 대동할 뿐이었다.

이윽고 동직문의 큼직한 문루가 보일 즈음, 그 경호하는 이들의 우두머리라는 김가진이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 전문대가(前門大街) 서성이며 경자영의 동향을 주시하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음을 보고서 움직였을 터였다.

“오셨습니까.”

“고생 많네. 어찌 잘 알고서 때맞춰 왔군. 그 사이 별 탈은 없었는가.”

공손히 고개 숙이는 김가진을 가볍게 치하하며 김홍집이 물었다.

“예, 미리 저쪽 사정도 살피고 왔습니다. 그사이 회군 병사들이 교구를 에워쌌습니다만, 아직 서로 병장을 대놓고 휘두르지는 않고 있습니다.”

“안쪽 사정도 혹시 탐문할 수 있던가?”

“저 신강 땅에서의 다툼이 번져 혹 아라사인 교인들이 다칠지도 모른다는 핑계로, 보름 전부터 아라사 군병 여남은이 들락거렸다 합니다. 만일 이 일을 처음부터 노려서 한 것이라면, 저라면 들락거리는 시늉만 하고 실제로는 계속 들여보내기만 했을 듯합니다.”

경자영이 암만 정예하다지만, 저쪽도 공사관을 지키는 자들이라면 나름대로 정병일 테다. 더구나 교구 안의 사람들은 아라사인이 적지 않으므로 그것만으로도 경자영이 함부로 공격하지는 못할 터.

“자, 그러면 들어가보도록 할까요.”

“잠깐. 들기 전 그 잘난 계책이나 들어보세. 일단 손발은 맞춰야 뭐라도 할 것 아닌가.”

일리 있다고 여긴 김옥균이 옮기려던 발을 제자리에 붙이고서 저의 심계를 털어놓기 시작하였다.

“아니, 그 무슨 황당한 생각인가?”

“흠흠, 제가 나설 자리는 아닙니다만, 그래도 후과가 적지 않을 듯합니다만.”

“비상한 사안에는 비상한 계책이 필요한 법 아니겠습니까. 혹시 더 뾰족한 방안이 있으신지요?”

“으음... 아무리 그래도... 아니, 자네 말이 맞네. 이득과 손실보다 우선 두 나라의 체통 살리는 방도를 모두 생각해보라 하셨으니... 신하된 도리로 따름이 맞겠지.”

떨떠름한 심정을 누르고서 김홍집이 결국 김옥균의 편을 들었다. 그 계책이라는 것이, 아라사와 청국을 화해시키는 데서 시작해서 서태후의 조선 망명을 보장하는 데서 끝나는 제안이었으니 황당하기 그지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딱히 대안이 떠오르지 않음도 사실이었다.

얼마 있지 않아, 대청과 아라사의 강화를 천자가 친림하여 체결하고자 하는즉 북양대신은 속히 아라사 교구로 오라는 연통이 공왕부로 전해진 것은 그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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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이홍장의 이미지는, 청말의 마지막 명신 중 하나, 중국 근대화의 기반을 닦은 사람 정도지만, 중국 안에서는 훨씬 평이 복합적입니다. 이는 물론 현 중국 공산당의 입장이 관여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실 그 이전부터 이홍장에 대한 평은 크게 갈렸지요. 청류파가 비판하였던 것처럼 지나치게 서구 열강에 순종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그로 인해 ‘투항주의’ 정책을 펼친 권신, 심지어 자신의 회군을 위해 국익을 팔아넘긴 매국노까지, 다양한 비판 및 비난이 그의 생후 제기되었습니다. 특히 청일전쟁의 패배라는 굴욕의 주역이 될 수밖에 없었기에, 그런 안 좋은 결과가 그의 다른 업적에 대한 인상에까지 영향을 준 면이 있었겠지요.

그가 자신을 정당화하면서 언급하는 이윤은 상(은) 왕조 초기의 재상으로 전하는 인물입니다. 탕왕(湯王)의 손자 태갑(太甲)이 무도하고 방탕하자, 그를 쫓아내고 섭정으로서 국정을 전담하였다고 합니다. 후대의 기록으로는, 3년간 태갑을 추방한 뒤 그가 제정신을 차리자 왕위를 돌려주고 자신은 다시 신하의 자리로 돌아갔다고 하는데, 후대에 윤색되기 이전의 기록을 많이 담고 있는 『죽서기년』에서는 이윤이 왕위를 찬탈하려 하였으며 태갑이 그를 토벌해 주살하였다고 적고 있습니다.

원 역사의 오장경은 1880년 절강제독으로 임명되지만, 실제로는 산동성 등주에 머물면서 북양수사의 일을 돕습니다. 이는 프랑스와의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해방(海防)에 힘쓰기 위함이었지요. 원 역사에서 원세개가 오장경의 아래에서 종군한 것도 이때였습니다. 이후 오장경과 그의 경자영은 임오군란에 개입하여 한국 근현대사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게 되고, 잘 알려져 있다시피 원세개가 이름을 날리게 된 것도 이때부터였습니다.

여기서는 회군이 중앙을 조기에 장악하게 되면서, 오장경 역시 절강제독 이전 보직이었던 직례의 총병직을 유지하고 있고, 원세개가 이홍장의 눈에 들게 된 계기도 조금 바뀌었습니다.

작중의 중요한 장소로 등장한 러시아 교구는 북경에서 가장 오래된 서양인 거류지였습니다. 1685년 러시아가 아무르 강안에 구축한 알바진 요새가 함락당하면서 45명의 러시아인이 포로로 잡혀 북경에 정착하게 되었는데, 그 중 정교회 신부가 하나 있던 것이 그 시초입니다. 이후 제2차 아편전쟁으로 1860년 서양 공사관의 설치가 허용될 때까지 러시아 교구는 러시아의 대중외교 창구로 기능했습니다.

정교회 신부들이 카톨릭 선교사들과 달리 외교적 업무에 집중하면서 현지 선교에는 크게 비중을 두지 않아 (그래도 서서히 신도가 늘어나 작중 시점에는 수백에 달했습니다), 최초로 신부 서품을 받은 중국인 정교회 신자(지 미트로판)가 1882년에 나올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점으로 인해 청 조정과 민중의 반감으로부터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웠지요.

이후 1956년 중국과 소련의 외교적 협의에 의해 공식적으로 러시아 교구는 철폐되고, 베이징에 머물던 러시아인 정교회 주교와 신부들도 모두 귀국하게 됩니다. 이때 교구 소속 정교회 신도는 2만 명에 달했습니다.

여담으로, 유럽권에서 서태후는 Cixi로 흔히 불립니다. 자희태후를 병음으로 읽은 것이니, 어찌 보면 서태후라는 우리식 통명보다 더 공식 직위명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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