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불장난의 재미와 위험에 관하여 (3)
운현궁 마당에 풍악 울리니, 슬슬 여름 문턱 넘어가는 계절 무색하게 선선한 산바람 불어와 찾아온 객과 불려온 악공을 가릴 것 없이 훑고 지나갔다.
바람 타고 흐르는 선율이 흥겨워, 찾아온 청국 흠차대신 충허(崇厚)도 잠깐이나마 어깨 들썩일 뻔하였다. 물론 불러주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기껍게 여기는 티를 번국의 백성들 앞에서 낼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최대한 참고 참았지만.
“어떻습니까. 아무리 양이의 풍속이 근래 세인의 눈길을 끌고 있다지만, 여전히 우리네 가락이 가장 흥겹고 우리 하던 대로 여는 잔치가 가장 즐거운 법이지요.”
연회의 주인인 대원군이 자신이 맞이한 귀한 손 – 유일한 객이기도 했다 – 에게 다가와 인사를 겸하여 말을 건네었다.
은근슬쩍 ‘소방(小邦)’이나 ‘번국(藩國)’이 아니라 ‘우리네’라 하는 것에서 대국과 맞먹겠다는 심보가 드러났지만, 불러주는 이 있다는 데 (역시 드러내지 않고서 꾹 참고 있었지만) 감격하였던 충허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아아, 물론입니다. 대원위 합하와 같은 분께서 이 사람을 이리 환대해주시니, 잔치만 흥겹겠습니까?”
조선과 일본, 청국 세 나라가 각각 자주지국이며, 그 중 조일 양국은 청국을 대국으로 높이고 그에 따른다고 한 약조가 중원의 천명이 더 무너져 내리지 않도록 받쳐 주는 기둥과도 같음은 물정 어두운 충허도 익히 아는 바였다.
물론 엄밀히 말하면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었다. 서로 이미 공사를 두었다는 핑계로 입조(入朝)를 갈음한지 오래요, 근년 사이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조선도 실제로 외교에 있어 청국의 눈치를 살핀 적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천명을 받치는 기둥의 상태가 그렇게 눈속임으로만 멀쩡한 것이라 하니 안타깝기 그지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북경 조정에서 그런 사정을 모르는 이는 그저 조선과 일본이 대청의 울타리 안에 남았다 여기고서 안심하고, 사정을 아는 이는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가 저들이 이탈하게 되면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을 지경이 됨을 알았기에 말하지 않았다.
따지자면 충허는 전자에 속하는 사람이라, 만한(滿漢)의 구분 없이 인재를 널리 쓴다는 새 조정의 방침에 따라 이곳 조선 흠차대신으로 오기는 했지만, 그 뒤에는 눈에 거슬리는 자들을 여기저기 흩어놓으려는 이홍장의 심계가 있었다. 그가 판단하기에 조선은 어차피 지척이라 여차하면 천진에서 바로 사람을 보내면 되는 것이었으니, 오히려 옛날 마신이가 그러한 것처럼 흠차대신으로 유능한 인재를 보내었다가는 그 땅에서 연줄 만들어서 저에게 대적할 생각을 품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근래 저희 조정에서 이른바 동맹의 일이 언급되어, 적잖이 놀라셨을 듯합니다.”
“아, 허심히 말하자면 그런 감이 있었지요.”
예법으로 따지면 충허는 흠차대신이요, 대원군은 고작 종부시에 명목상 벼슬 하나만 있는 사람이니, 지금처럼 대원군이 공대함이 맞다. 그러나 실제 거느린 세력으로 따지면 오히려 하대하여도 모자랄 판이었다. 실제로 모창희가 물러난 뒤 충허가 오기 전 잠깐 그 자리를 채웠던 전임 공사로 말하자면, 어떻게든 대원군 눈에 들어보려 갖은 노력을 다하기도 하였다.
그러니 이처럼 대원군이 어울리지 않는 공손함 갖추는 것에 속뜻 있음을 알고 경계하여야 할 것이나, 충허의 눈썰미는 그에 미치지 않았고, 대원군 역시 이를 알았다.
“지금의 천하 형세로 말하자면 대국이 넓은 아량을 베풀어준 덕에 우리 조선과 일본국이 모두 떨쳐 일어나 군국의 일을 경장하였은즉, 아라사는 함부로 남녘을 탐하지 못하고 바다를 건너오는 무리들 역시 통상의 이익 외는 넘보지 못하는 실정이지요. 그러니 천하가 절로 태평해져, 지금처럼 이 부족한 사람이 대인을 위하여 이처럼 자리도 마련할 수 있게 된 것 아니겠습니까.”
확실히 대원군 말마따나, 불러주는 사람 없어 저의 공사관 안에서 나올 일 없는 충허였다. 정동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유럽과 일본 공사관들이야, 저들끼리 어울려 이런저런 모임도 하고, 또 공사의 부인들도 중전이 꾸리는 모임에 들어 차도 마시고 정담도 (그리고 험담도) 나누곤 하는 것이 이미 일상이 되었다.
그러나 양이 나라들과 번국이 함께 어울리는 그런 자리에, 그것도 오랑캐 습속대로 노니는 자리에 어찌 대국 흠차대신이 왕림하겠는가?
깐깐한 모창희는 그런 생각으로 아예 발걸음하지 않았고, 수더분하면서도 의뭉스런 마신이는 얼굴에 철판 깔고서 지나가다 들렸다는 식으로 들어가 귀동냥이라도 했지만, 충허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여태껏 가만히 공사관 안에 앉아만 있던 것이었다. 그러니 대원군이 운현궁에 잔칫상 차려놓고 부른 것을 내심 반갑게 여길 수밖에.
“그러나 세상에는 분란 일으키기 좋아하는 흉한(兇漢)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 자들이 혹설(惑說)로써, 이번에 조선과 일본이 서로 협약하기로 하는 바는, 오직 청국을 도모하기 위함이라 하면서 이처럼 대국과 우리 두 나라 사이를 갈라놓으려 하는 것이지요.”
어느새 두 사람이 심각한 이야기를 – 대원군이 사설 풀고 충허는 그저 고개 끄덕이며 추임새 넣는 것이 대화의 대부분이었지만 – 나누자, 흥겹던 도드리 가락은 잦아들고 대신 청명하되 조용한 청성자진한잎이 울렸다. 당연히 악공이 스스로 알고 한 일은 아니요, 시위하던 이가 눈치를 준 것이리라.
“허나 어찌 그렇겠습니까? 우리 조선과 일본이 뭉친다 한들, 군병의 빼어남과 무수함은 대국을 따를 수 없지요. 양이를 등에 업지 않고서는 말입니다.”
여전히 제대로 작정하고 싸우면 설마 대국이 양이 무리에게 지겠느냐,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간 통상대신이니 무어니 높은 관직은 여럿 거치면서 그들이 만만찮은 상대임은 부득불 마음에 새긴 충허였다. 양이를 등에 업는다 하니 자연스레 경계심이 다시 치솟았다.
“그런데 이렇게 조선과 일본 두 나라가 엮인다 하면, 서로 군대를 움직이고 준비하는 태세를 마치 손바닥 위에 올린 것처럼 쉬이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 조선은 오로지 대국을 돕고자 하는 의로운 마음만을 지니고 있으니, 혹 일본국이 스스로 흉심을 품든, 양이의 충동질에 넘어가든 이를 알고서 대국에 고스란히 아뢸 터인즉 천하는 더욱 안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가 처음 청국을 설득하는 일에 거들어줄 것을 요청받았을 때 아들로부터 들었던 논리도, 뒤이어 참의원에서 큰 이견 없이 금번 동맹 제의의 일이 지나갈 수 있게 한 논리도 대략 이와 같았다. 물론 아들 홀로 궁리해서 낸 것은 아니겠지만, 듣고 나서 보니 의외로 그럴듯하였다. 대원군도 그리할진대 충허는 어떠할까.
“아, 잘 알겠습니다. 역시 항간에서 우려하는 말은 귀담아 들을 것이 못 되는군요.”
“물론입니다, 대인.”
“하지만... 우리 조정에도 안타깝게도 아직 참소(讒訴) 일삼는 무리가 그 뿌리의 말단을 지키고 있답니다. 그런 자들이 귀국의 사정이 어떠한지는 살피지 아니하고 오직 헐뜯으려 한다면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여전히 석연찮은 구석 남아있던 충허가 남의 핑계 대면서 반문하였다.
동맹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공동의 적을 상정하는 것이니, 지금 극동에 조선이 일본과 함께 적으로 삼을 만한 대상은 러시아나 영국이 아니면 청뿐이고, 셋 중 실제로 두 나라가 합쳐서 어떻게 해볼 만한 것은 청이 제일이다.
“하하, 대인께서는 염려치 마시지요. 저희 국왕 전하께서는 오직 천하의 밝은 도의를 지키는 데 마음을 두실뿐이니, 아무리 저희의 군병이 정예해진다 한들 삿된 데 쓰이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번에 세운 국제에서도, 만세불변할 전제(專制)의 뜻을 공공연히 천명하였으니, 이보다 확실한 보장이 있겠습니까?”
“으음... 그건 그렇지요.”
“일전에 제게 이르시기를, 하늘의 도리는 오직 만민이 스스로 저의 하고자 하는 바를 다할 수 있도록 함께 힘쓰는 것을 넘지 않는다 하셨습니다. 그런 분께서 어찌 대국을 침노하여 만백성을 도탄에 빠뜨릴 생각을 하시겠습니까? 이제는 일본국도 그런 생각을 감히 품지 못할 것이니, 대국까지 어지러움에 빠지기 전 미리 우리 조선이 발목을 잡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청국을 쳐야 한다고 했을 때 그의 아들이 제게 했던 말을 – 거기서 역천(逆天)이라는 거북스러운 말만 빼고 – 그대로 들려주는 대원군이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지금쯤이면 북경의 공사를 통해서도, 또 한양에 머무는 외국 공사들을 통해서도 동일한 뜻이 전해지고 있을 것이다. 임금의 거창한 포부와 함께.
아마 이홍장 정도라면 모를까, 대서 여러 나라들은 그저 도의를 숭상하는 조선 국왕이 또 무언가 엉뚱한 발상을 하였다며 가볍게 여기고 넘어갈 것이며, 지난 동란에서 조선이 오직 의리를 지킨 것을 기억하는 청국 안의 여론도 조선이 그 정도까지 해명하는데 한 번쯤 믿어보자는 식이 될 것이다. 이론상 가장 조선의 동향에 밝아야 하는 충허를 구워삶는 것은 그런 여론에 결정적인 무게추를 얹어줄 터였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셨다니 만에 하나 의심하는 무리가 있다 한들 그 의혹이 눈 녹듯 사라질 듯합니다. 앞으로도 대원위 합하께서 많이 도와주셔서 대국과 귀국의 사이가 세세토록 평안을 지킬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하하, 고맙습니다.”
물론 ‘많이 도와달라’ 하는 말은 곧 청탁을 할 것이라면 성의를 보여라 하는 뜻이다. 잘 알아들었다는 눈치를 보이니 충허도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 (물론 곧 청국 공사관으로 슬쩍 넘어갈 은으로 말하자면, 인삼이나 면필 팔아 청국에서 들여온 은이 고스란히 그 원 주인에게 돌아가는 격이었으니 딱히 손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대원군이 잘 풀렸다고 옆에 눈치하니, 말쑥하게 차려입고서 주변 시위하던 이들도 이를 알아채곤 곧 주안상을 본격적으로 내오라 일렀다. 악공들도 다시 흥겨운 장단으로 넘어갔다.
“자, 대인, 드시지요.”
“하하. 고맙소. 자리는 흥겹고 우환은 없으니 날까지 좋구려!”
그러나 같은 조선 안에서도 변화무쌍한 것이 초봄에서 여름 넘어갈 때의 날씨니, 아무리 운현궁 위 하늘이 쾌청하다 한들 수천 리 떨어진 교토까지 그리하기를 바랄 수는 없는 것이었다.
“늦봄 비 치고는 꽤 내리는군. 농부들은 풍년의 전조라며 좋아하겠네그려.”
물론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정말 애민의 정신으로 농사꾼들을 생각하여 한 말은 아니요, 예의 그 밀실에 마주앉은 오쿠보 도시미치를 떠보기 위하여 던진 것이었다.
“허나 볕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쉽지 않습니까. 해가 떠오르든 말든 구름이 가리고 있으니 말이지요.”
역시 뼈가 있는 말이었지만, 의기양양한 요시노부는 굳이 받아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자, 그래서 일조동맹에 대한 내각의 결심은 무엇이오? 아무래도 공식적인 답변이 나오기 전 우리 당우(黨友)들을 위하여 먼저 듣는 편이 나라 안의 평온에도 득이 될 듯해서 말이지.”
물론 따지자면 이제 요시노부의 직함은 일개 의원이다. 옛 쇼군이 다시 감히 대정봉환(大政奉還)의 큰 뜻을 짓밟으려 한다는 경계심을 살까봐, 확실한 지위를 확보하기 전까지는 심지어 애국공당 당수 자리까지 사양한 요시노부다. 물론 말이 그렇지, 나라 안에서 이름값 한다는 사람치고 요시노부가 애국공당의 구심점이자 사실상 영수임을 모르는 이가 없었지만.
“석연찮은 구석은 많지만, 어차피 내각으로서는 시기상조임을 내세워 논의를 미루는 것이라면 모를까, 딱히 거절할 명분은 없는 실정입니다. 저들이 대놓고 쳐들어오겠다고 하거나, 기존 조약을 저들에게 유리하게 개정하겠다 한 것도 아니니 말입니다.”
그리고 거절할 명분은 없지만 찬동할 명분은 차고 넘쳤다. 오쿠보의 눈앞에 있는 요시노부가 바로 그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던가.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데 있어서는 노련한 뱃사공과도 같았다. 사리사욕을 위해 조선에 부화뇌동하여, 국체의 존엄함을 상하게 하였다 하는 비난을 고스란히 받아치면서, 오히려 막부가 조선과의 신의를 지금껏 지켜왔으며, 어쭙잖게 책략을 꾸미다가 국위를 손상케 한 것은 신정부지 막부가 아님을 힘껏 주장하였던 것이다.
더구나 물밑으로 보내온 제안도 아니요. 명백한 국서(國書)의 형태로 들어오지 않았던가. 어디 감히 조선왕이 천황 폐하께 직접 글을 보내려 하느냐 반발하는 자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런 자들은 서부에서는 신정부의 헌병대에게, 동부에서는 여전히 그 이름 지키고 있는 신선조에게 쥐도새도 모르게 끌려간 뒤 곧 신문이나 서책을 통해 전향하였음을 밝히곤 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진심으로 기쁘게 받아들였던 것이라, 국서의 문구에 당당하게 이르기를 함께 천하의 도의를 지켜 누구도 함부로 침노하거나 침노당하지 못하게 만들자 하지 않았던가. 무언가 새로운 세상이 열려야 한다고 믿는 이들에게 그만큼 좋은 명분도 많지 않았다.
“천하를 상대로 ‘요나오시(世直し)’를 말하다니, 조선왕도 인물은 인물이지. 그런 명분 놀음에 놀아나는 이들이 이렇게 많은 것도 참 대단한 일이고.”
그리고 그저 멋모르고 좋아하는 백성이든, 천하의 도덕과 평화 운운하는 겉멋 든 지식인들이든 그렇게 찬동하는 여론이 목소리 높일수록 힘을 얻는 것은 애국공당과 요시노부였다. 교묘한 말놀이 가운데서 – 자유민권운동 시절부터 단련된 솜씨 아니었던가 – 어느새 옛 막부의 마지막 조선 외교는 실책이 아니라 같은 아시아 나라끼리의 연대로, 지나에 대한 속국 선언은 굴욕이 아니라 천하를 가까이 끌어들이고자 한 일시의 술수로 둔갑해 있었다.
더 답답한 것은, 그간 조선이 정말 일본을 억누르려 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는 점이었다. 홋카이도를 따로 떼어내면서 그 땅에 노서아발 서양 자본이 들어오게 되었으니 이는 그만큼 나라 재정에 대한 부담이 줄어든 것이었으며, 류큐를 병합하려던 것을 조선의 중재로 다시 뱉어내게 되었으니, 자칫 서양 나라로부터 조선같은 문명국은 아니라는 오해를 살 뻔하였던 것을 겨우 피해갔을 뿐 아니라 이를 통해 대만 땅의 경영권을 일부나마 얻어내었던 것이었다.
신정부의 속을 아는 오쿠보로서는, 요시노부가 여론을 가지고 ‘장난질은 너희만 할 줄 안다 여기었느냐’ 하며 날뛰는 것을 보면서도 홀로 끙끙댈 뿐이었다. 분명 조선의 개입으로 망가진 일이 한둘이 아닌데도 이를 입 밖으로 낼 수 없지 않던가.
그러나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 불리한 시국을 인정하고 수습할 방도를 마련해야 했다.
“무엇을 원하시는지요?”
“설마 모르지는 않으리라 믿네. 오히려 내가 물어야 하겠지.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 생각인가? 이 내각이 계속 버티려면 결국 어떤 식으로든 이번 일에 책임을 지고 꼬리를 쳐내야 하네.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이번 동맹의 건에 대해서도 대놓고든 마지못해서든 찬동하는 뜻을 표해야 할 터.”
만약 끝까지 버티겠다면, 그 손을 억지로 펴서라도 권력을 빼앗아가겠다는 희미한 협박이 담겨 있었다. 역시 음험한 너구리 근성은 어디 가지 않는다 해야 할까.
요 며칠 사이 밤잠 설치면서, 이 물음이 언제고 던져지리라 각오하였던 오쿠보가 마침내 마음을 정했다.
“저는... 이 나라가 강성해지기를 원합니다. 자랑스러운 나라로 거듭나, 결코 다시는 국체를 위협받지 않기를, 세상 모든 나라가 천하에 일본국 있음을 알고 마땅히 경외하기를 원합니다. 그 마음만은 처음 사츠마 구석에서 몸 일으켰을 때부터 지금껏 변한 적이 없습니다.”
요시노부는 그 속 알 수 없는 눈으로 저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언제고 저 바다 건너의 야차들에게 잡아먹힐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보니, 잡아먹히기 전에 다시 옛날처럼 긴 잠에 빠져들까, 그러다가 정말로 큰 변을 당하게 되지는 않을까, 그것이 더 걱정되는군요.”
그 옛날 류큐의 일로 조선에 갔을 때, 조선의 소년 왕이 한 말이 새삼 떠올랐다. ‘살고 싶다면, 마찬가지로 살기를 원하는 다른 이를 해치지 말라.’ 그러나 그 말대로 가만히만 있으면 연명이야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오쿠보 그가 원하는 자랑스러운 나라는 결코 이룩할 수 없을 것이었다. 오히려, 지금도 살만한데 무엇하러 더 난리를 피우느냐 하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을 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것만은 약속해주십시오. 웅번의 옛 동지들도, 필요하다면 언제든 버릴 수 있습니다. 대업을 위해서라면, 나라를 위해서라면 지금 저를 따르는 사츠마와 조슈의 후배들도 마찬가지로 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식산흥업과 부국강병. 이것만은 결코 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서 주섬주섬, 준비해둔 서류를 건넸다. 무언가 싶어 얼핏 보던 요시노부의 눈도 곧 휘둥그레졌다.
“내각에서 지금까지 동래와 한양, 인천의 모든 연줄을 동원해 확인한 조선의 군사력입니다. 이런 나라와 동맹을 맺는다면, 적어도 우리가 목소리를 낼 만큼의 힘은 얻어내야 할 것입니다.”
이르기를, 호적에 오른 인구가 천팔백만인 나라에 병정이 이십만이라 하였다. 물론 그 이십만 병력 중 실제로 총 들고 나라 지키는 것은 삼분의 일 정도요, 나머지는 보군(保軍)으로 전시에나 동원될 뿐 평소에는 훈련을 겸해 관개공사를 하고 둑을 쌓는 정도에 그친다지만, 당장 싸움터에 보낼 수 있는 병력이 칠만이라 하면 지금 일본의 두 배를 가뿐히 넘는다. 더구나 수도의 근위병부터 시작해 불란서산 후장식 소총도 도입 중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나마 해군의 사정은 나아서, 철갑함 아즈마(東)와 후소(扶桑)를 필두로 하는 일본 해군이 조선보다는 아직 위에 있었다. 그러나 이미 가용한 전함의 수로는 오히려 지속적인 유지보수가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일본 쪽보다 조선이 위에 있었다. 더구나 근래 국왕이 철갑함의 도입을 서두르라 어명을 내렸다 하지 않았던가. 지금이야 한 척 – 이름이 제연(制沿) 호라 하였다 – 이라지만, 수 년 내로 몇 척이 더해질 것이었다. 아마 협상을 통해 에노모토 다케아키가 홋카이도로 몰고 간 함선을 돌려받지 못했더라면 벌써 우열이 뒤집혔을 듯했다.
더구나 해안에 있던 수영들도 옛 목조 전선의 수명이 다하자 대체하는 대신 연안경비라도 하자는 심정으로 민간 기선을 사들이든, 조정을 통해 지나에 주문을 넣든 하였으므로 이대로라면 오쿠보의 숨이 붙어있는 동안에 섬나라 일본을 대륙에 붙은 조선의 해군이 압도하는 상황이 벌어질 만도 하였다.
“저들이 무기를 팔아준다 하여 안도할 것이 아닙니다. 지금이야 나라의 경제 사정이 좋지 않다지만, 우리의 금은으로 회복하게 되면 다시 저들 군대를 위해 공장을 돌리겠지요. 물론 그렇다고 해도 서양에서 들여오는 것보다는 헐하게 받을 수 있을 테니 당장 거절할 일은 아닙니다만...”
처음에는 오쿠보의 항복을 받아낼 생각으로만 왔던 요시노부도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하였다. 그러나 곧 무언가 마음을 정한 듯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우리가 조선의 위협을 막아낼 방도는 있을 듯하네.”
“무엇인지요?”
“어차피 우리보다 낫다지만 조선의 사정도 육군을 제하면 그렇게까지 대단한 건 아니잖은가. 우리 신주는 바다와 바람이 지켜주고 있지. 우리는 해군의 일에만 힘쓰고, 조선은 대신 육군에만 힘을 쏟으라 하면, 동맹의 이익은 모두 취하면서 조선이 혹 우리에게 목줄을 채우려들 위험은 막아낼 수 있겠지. 설령 저들이 뭔가를 하려 하여도 쓸 만한 함선이 모두 우리에게 있으면 뭘 어떻게 하겠는가?”
“좋은 생각이십니다. 저로서는 의원님께서 제가 말씀드린 큰 뜻을 잊지만 않아주신다면 족합니다.”
“마음이 맞아 다행이네.”
자리에서 일어선 요시노부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한때 수구의 표상이던 이로부터 나온 서양식 예법에 당황하는 오쿠보의 얼굴을 보면서, 옛 쇼군이 씩 웃었다.
멀어지는 오사카 항을 보면서, 이토 히로부미는 배웅 나온 사람들을 상대하던 미소를 지우고 생각에 빠졌다.
‘『일본책략』의 저자에 대해 곧 수배령이 내릴 것이야. 어차피 누구로 특정되지는 않겠지만, 한동안은 몸을 피하는 것이 좋을 걸세.’
믿었던 계책이 완전히 어그러지고, 그나마 의지할 만하던 야마가타 녀석은 육군의 육성을 잠정적으로 포기하는 대신 조슈 번에게 해군을 넘겨주겠다는 – 사츠마의 민심이 벌써 끓어오르고 있기는 했지만 이토가 알 바는 아니었다 – 오쿠보의 약속에 넘어가 자신을 팔아넘겼다.
물론 자신도 언제고 필요해지면 야마가타를 팔아넘길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딱히 그에게 원망하는 마음은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지금껏 크게 실패한 적이 없던 차에 이렇게 제대로 역풍을 맞는 것은 썩 유쾌하지는 않은 일.
그래서 아직 정당을 이끌기에는 일신의 부족함을 느꼈다며 정치 일선에서 잠시 물러날 것을 선언한 뒤 지금처럼 도피성 유학길에 다시 나서고 있었다. 이번에는 구라파가 아니라 바다 건너 아메리카로 가고 있으니 그나마 달라진 점이랄까. 급히 돌아와야 했던 그때와 달리 이제는 잠잠해질 때까지 한동안은 돌아오지 못할 터이니 여유롭게 배울 것은 배우고 익힐 낯은 익힐 수도 있을 것이었다.
“하하... 조선왕. 참 대단한 작자 아닌가.”
결국 그가 빠지고 군부의 지지도 은근슬쩍 물려지면, 입헌정우회 홀로 애국공당에 맞설 수는 없을 것이다. 그가 지지하던 프로이센 헌법도 이대로라면 자연스레 밀려 사라지게 되리라.
그러나 이토는 아직 젊다. 이미 만기친람으로 신정부의 모든 일을 총괄하면서 지친 오쿠보는 어떻게든 자신 생전에 뭔가 성과를 내려는 급한 마음에 – 기도 다카요시도, 사이고 다카모리도 이미 병환으로 작고하지 않았던가 - 너구리 쇼군의 손을 잡았다지만, 그 둘이 모두 물러난 뒤에도 이토는 정정하게 살아있을 것이다.
그러니 우선은 살아남아서, 다음 기회를 노리면 될 일이었다.
“내 바다 건너에서 반드시 술수를 마련하여 돌아올 게다. 다시 보자, 히노모토.”
당당한 혼잣말만큼이나 씁쓸한 설음이 마음을 울렸지만, 오히려 그만큼 반드시 돌아와 권력을 잡고야 말겠다는 결심만은 단단해지는 것이었다.
--- *** ---
1870년 천진 교안 당시 한 번 얼굴을 내밀었던 왕기얀 충허가 다시 등장했습니다. 원 역사에서는 지금쯤 일리를 통째로 내주고 심지어 5백만 루블의 배상금까지 러시아에 지불하기로 한 리바디아(Livadia) 조약을 맺고 돌아온 탓에 청 조정과 민간 양쪽에서 엄청난 비난을 당하고 있을 때입니다. 군밤의 나비효과로 인해 여기서는 여전히 호구잡히는 신세일지언정 몸은 편하게 되었네요.
드디어 작중 조선의 군사력이 타인의 눈을 통해서나마 조금 공개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실질적인 통계나 거시적인 군사력이 등장하는 부분에서는 정치와 사회의 변화를 다루는 것보다 더 조심스러워지는 측면이 있습니다. 개입되는 요인이 훨씬 복잡하면서, 사람들 머릿속의 사상이나 관념과는 달리 현실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으니까요.
작중에 몇 번 언급되었던 것처럼, 징병제를 빠른 시기부터 시행하였지만, 그만한 군대를 유지할 필요도, 여유도 없는 조선의 상황으로 인해 앞서 몇 번 언급되었던 것처럼 반절 넘는 인원은 총 대신 삽과 곡괭이를 드는 인력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실제 군역을 수행하는 정군(正軍)과 그런 정군의 생계를 보조하는 보인(保人)으로 구성되던 조선의 전통적인 군역 체계가 국민개병제와 결합되면서 변용되었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작중 조선의 인구를 고려하면 이십만도 조금 적은 감이 있습니다만, 이는 행정과 국가재정의 한계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해군의 경우는 훨씬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원 역사의 일본은 남북전쟁이 끝나면서 남군 해군 함선을 비교적 싼 가격에 들여와 운용했는데요, 아즈마(원 역사에서는 그 이전의 이름인 코테츠(甲鐵)로 더 유명합니다)가 그런 함선 중 하나입니다. 반면 후소는 원 역사에서는 1875년 수주되어 1878년 취역한 철갑함으로, 코테츠보다는 한 세대 뒤의 함선인지라 청일전쟁에도 투입된 바 있지요.
원 역사의 일본은 1880년 현 시점에서 다른 철갑함 – 예컨대 공고급 철갑함 공고와 히에이 – 도 운용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메이지 신정부라는 단일한 정부의 존재, 그리고 대만 출병으로 고조된 안보위협 등의 요인이 작용한 것이었지요. 두 가지 모두 작중 일본에는 해당사항이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후소라도 들여오는 데 성공한 오쿠보의 수완이 대단하다고 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