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종, 군밤의 왕-105화 (105/320)

34. 두 북벌 (3)

영모개(穎毛介)는 이 일대 산중의 왕이었다. 적어도, 자신이 주장하기로는 그러하였고, 이는 그의 산채에 끌려온 사람들 역시 대개는 수긍하는 바였다.

“장가 이놈아. 감히 같은 나라 사람들을 배신하고서 저 양귀자(洋鬼子) 놈들 아래서 개처럼 기다니, 네 죄를 알렸다!”

어제 산 아래 마을에서 우연찮게 붙잡아온 오랑캐 앞잡이 녀석을 호탕하게 꾸짖으니, 녀석이 빌빌 기는 꼴이 볼만하였다.

“아이고, 대왕님! 쇤네가 무조건 잘못했습니다요! 목숨만 붙여주시면 뭐든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요 몇 년 사이 나라의 높은 분들이 허락해주었다는 핑계 대면서 동삼성 전역에 양귀자와 고려귀자들이 마구잡이로 밀고 들어왔다. 대개는 그저 한동안 들쑤시고 다니다 도로 어딘가로 돌아가곤 했지만, 먹고살 거리를 찾은 적지 않은 이들은 어딘가 눌러앉아 마을을 이루었다.

그러나 천하 산천에는 다 주인이 있는 법. 마땅히 마을을 이루었으면 이 어르신께 신고도 하고, 다른 대단(大團)이니 마적떼니 하는 자들이 설치지 못하게 자신이 떡하니 이곳을 지키고 있음을 감사히 여겨 식량이든 은자든 철마다 바쳐야 하지 않겠는가? 그저 저들의 뒤에 있는 외국 군대의 힘을 믿고, 우리는 오직 관헌들만 상대한다며 뻗대고 있으니 여간 고깝지 아니하였다.

그러니 밀린 세금 받아내고자 하던 차에, 그 마을에 들어가 잡부 노릇하는 이 장가 녀석이 우연찮게 걸려든 것이다. 그런데 녀석을 족쳐 마을의 누가 가장 가산 풍족하며 산속에서 벌이는 사업은 대체 무엇인지를 밝혀내고자 하였더니 웬걸, 엉뚱한 소리를 하기 시작하였다.

“조선 놈들이 대왕님 산채가 어디 있느냐 묻기에, 그저 어디어디 봉우리 근처에 인가가 있는데 정체가 뭣인지는 모르겠다고 에둘러 알려줬을 뿐입니다! 쇤네도 처자식 있는 몸인데 공덕 세운다 생각하고 부디 목숨만은 붙여주십쇼!”

“뭐? 조선 놈들? 고려귀자 얘기는 거기서 왜 나오더냐?”

무리 중에서 글을 읽을 정도로 총명해 그의 부관 노릇하는 석삼만(石三滿)이가 대신 설명하였다.

“두령, 거 듣기로 근자에 저기 직례서 난이 일어났는데, 그 다툼이 여기까지 미치면 저의 백성이 다친다면서 조선이 군병을 내었다고 합디다. 아마 그 마을 놈들이 이 기회에 두령에게 해코지하고자 얕은 수작을 부리지 않았나 싶은데요.”

“하, 어지간히 할 일도 없는 놈들이군. 그치들이 설마 이 놈 같은 뜨내기 말 듣고서 이 산속까지 올라오겠느냐? 그리고 양놈이라면 모를까 고려 놈들이 무에 무섭더냐?”

말이 끝나기 무섭게 멀리 망루에서 고함소리 들려오더니, 곧장 콩 볶는 소리가 들려왔다.

“적이다! 두령! 적습입니다! 남쪽 골짜기 타고 근 오십 명이 올라오더니, 곧장 총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남쪽 골짜기라면 중간에 나무가 없어 멀리서도 훤히 보인다. 그런 쪽으로 올라와서는 바로 사격을 시작하였다니, 토벌군 왔으니 얼른 도망하라 알려주는 격 아닌가.

“어찌 하시겠습니까? 듣자하니 썩 시원찮은 무리인 듯합니다만, 그래도 관군이니 말입니다.”

잠시 고민하던 끝에 결정하였다. 모름지기 녹림(綠林)에 의탁하였더라면 지를 때 지르는 배짱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 자라새끼 때문에 산채의 위치가 드러났으니, 이 봉우리를 버리기는 해야 하겠지. 하지만 저렇게 어설픈 놈들이 토벌군이랍시고 왔는데, 오히려 이 기회에 우리도 그 귀한 양창을 손에 넣을 수 있지 않겠느냐? 그것만 몇 정 있으면 까불거리는 놈들 코 누르기는 일도 아니지!”

관이라 하면 모자란 백성들 등쳐먹기만 할 줄 아는 머저리들이니, 조선이라 해서 별반 다를 것 있겠는가? 비슷하게 생각하던 옆의 부하들도 호응하였다.

“역시 두령이야! 자, 갑시다들! 가서 다 때려잡읍시다!”

아마 성정 잔인한 산적들이니 싸우고 돌아오면 필히 저를 참혹하게 죽일 것이었다. 무릎 꿇려진 채 함성 지르는 산적들 지켜보던 장유재(張有財)는, 부디 조선군이 이기기를 속으로 빌었다.

비록 양놈들 아래서 일하다 보면 쌓아올린 도박빚을 단거에 해치울 용한 수라도 생기지 않을까 싶어 흘러든 변변찮은 인간이었지만, 그래도 일이 이렇게 되니 그의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막내 작림(張作霖)이가 눈앞에 어른거렸던 것이다.

확실히 엄익관에서 서양 교관들에게 배웠던 것과 실제 싸움은 달랐다. 싸움의 전말을 보고받은 홍재희가 한숨부터 푹 내쉰 것은 그 때문이었다.

“후, 이 사람아,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어. 고작 산적 따위에게 밀리면 나라의 체통이 어떻게 되었겠는가?”

“면목 없습니다. 데려간 함경도 토병들이 건의한 것을 무시하고 그저 제가 배운 대로만 하였으니, 어찌 고루하다 하지 않겠습니까.”

당당하게 정면으로 다가가, 최대 사거리에서 적을 미리 제압한다며 일제사격부터 하고 천천히 접근하는 사이, 다른 능선 타고 몰래 다가온 산적떼의 습격을 당했다. 다행히 데려온 것이 함경도 포수들인지라, 침착하게 바로 장전하고서 사수 일인당 적 머리통 하나씩을 노리니 바로 적의 기세가 주춤해져 목숨 건질 수 있었다.

운수 좋게 처음에 바로 적괴를 잡았던지라, 사정 모르는 이가 보면 군공이라 하겠지만, 불쑥 수풀 사이에서 놈들이 나타났을 때 등골 타고 내려가던 냉기, 그리고 ‘아, 당했구나’ 하는 처음 느끼는 직감은 잊히지 않았다.

“뭐, 되었네. 훈수 두기가 쉽지, 막상 나도 병력 이끌고 직접 선봉에 나섰더라면 자네처럼 했을 테니까. 이 일을 교훈 삼아서 주욱 지켜나가면 될 일일세.”

아예 까막눈이라면 모를까. 글을 알고 또 종이값도 헐하니, 무엇이든 기록하는 것이 조선인의 성미에 맞았다. 『북정일기(北征日記)』처럼 성의없는 제목으로 이곳에서 겪은 일들을 적는 무관이 한두 사람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저 훗날 문집으로 나오고 끝나던 시절과는 달리, 이 경험은 도로 엄익관으로 들어가 소중한 교재로 쓰이게 될 것이었다.

“여하간 민심도 위무하고, 우리끼리 백 번 조련한다 한들 얻을 수 없는 교훈도 챙기고 있으니 모두 잘 된 일일세. 심지어 산채에 잡혀있던 양민들도 여럿 구했다 하지 않았는가?”

“예, 저희에게 산채 있다고 귀띔해준 장모라는 한인도 있어, 다행히 해코지당하기 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 그 또한 다행이로군. 그렇게 돕겠다고 나서는 이들 있어 우리 일도 한결 수월해지는 것인데, 고변하였다가 포상 받기도 전에 앙심 품은 적도에게 해를 당한다면 이 또한 우리 면이 상하는 일 아니겠는가?”

강 건너온 병력이 도합 일만이라지만, 그 중 오천은 고스란히 심양, 요양 등지의 도회에 머물며 민심을 위무하고 있고, 나머지 오천이 일대를 돌면서 도강한 조선인과 무늬만 조선인인 양이들을 돕고 있다. 개중에는 건너온 지 몇 해가 벌써 지나 모양새 그럴듯한 마을을 꾸린 경우도 있고, 또 산 속에서 탄광이나 철광을 찾아 크게 판 벌리는 덕대(德大)도 있었다.

그러나 사람 사는 곳 심리는 대국이든 조선이든 다르지 않아, 그렇게 멀쩡히 잘 사는 사람이 있으면 이들을 노려 벗겨먹고 살 심산 품는 악독한 자들도 있기 마련이었다. 더구나 전란이 일어난 지 두 달 가까이 지나면서 직례에서 난민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터라, 굶주린 백성이 당장의 주린 배를 채우고자 승냥이로 돌변할 공산도 컸다.

그리하여 성 안에 머무는 조선군도 마냥 한가한 것은 아니요, 군량(軍糧) 풀어 아사 직전의 난민을 구휼하랴, 곳곳을 돌면서, ‘우리는 이곳을 점령하러 온 것이 아니요, 그저 청국 조정과 인민을 지키기 위해 온 것이니, 두려워 말고 생업에 종사하라. 또한 난언(亂言)·난행(亂行)하는 무리는 고변하면 포상을 줄 터인즉 그리 알라.’ 운운하는 포고문 붙이랴. 어찌 보면 더 고역일 수도 있었다.

그나마 처음에는 꽤 경계하던 청국 관헌들이, 조선군이 와서 하는 일을 보더니 은근슬쩍 숟가락 얹을 속셈으로 뜨뜻미지근하게나마 협조를 하고 있으니 다행이었다. 아마 저들 올리는 장계에는, 조선군이 따로 난폭한 짓 하지 않고 백성을 돕고 있는 것이 모두 자신들의 공덕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이미 저들 조정의 실세 이홍장이라는 이와 조선 조정 사이에 합의된 바 있어 출병하였음을 익히 아는 홍재희로서는 우스울 뿐이었지만,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않은가.

똑같이 잰걸음으로 간다 하면, 사람보다 말이 훨씬 빠른 것은 당연한 이치다. 허나 병가의 관점에서 보면 또 꼭 그렇지도 않은 것이, 사람과 말이 함께 있으면 사람 먹을 곡량 외에 마초(馬草)를 따로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적지에서 빠르게 기동해야 하는 공친왕의 상군에 제대로 된 기병이 고르고 골라 뽑은 이 오백 기에 그쳤던 연유가 여기 있었다.

“너희의 소임이 중함은 이미 누차 들었을 것이므로, 내 더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예, 전하!”

오백의 입이 하나 되어 외쳤다.

“허나 정작 왜 중한지는 아무도 지금껏 말해주지 않았을 테지. 내 그리하여 친히 알려주고자 그대들을 불러모았다.

이제 북경이 하루 거리다. 먼 길을 돌아 왔지만, 가장 중요한 과업이 눈앞에 있으니 어찌 벌써 마음을 가벼이 하겠는가.”

손수 큼직한 지도를 짚어가며 설명하는 까닭은, 그의 말마따나 이들이 공친왕의 대계에 있어 마지막 보루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태원에서 출발할 때, 말로는 단번에 북경을 들이친다고 했지만, 당연히 6만 병력을 그대로 이끌고 북경까지 갈 생각은 아니었다. 이홍장이 서태후의 편을 들고 있는 한, 그렇게 머릿수만 믿고 들이받았다가는 그 옛날 염군(捻軍) 꼴이 날 뿐이다. 천진까지 밀려온 염군을 물리친 것이 공친왕 본인이었은즉 어찌 이를 모를까.

“날이 지날수록 우리는 불리해진다. 그대들 중 군략에 밝지 못한 자가 있다 할지라도 이는 잘 알 것이다.”

이 거사를 위해 중원을 횡단한 상군이다. 물론 중간에 태원에서 달포쯤 쉬었다지만,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 무거운 화포는 물론, 군량도 제대로 지참하지 못하였다.

그에 대한 공친왕의 대책은, 머릿수의 폭력이었다. 그저 사람만 채울 뿐인 녹영군·팔기군과는 달리, 상군 6만은 처음 향용 시절부터 증국번과 좌종당을 따른 정예를 제하더라도 나름대로 실전으로 다져진, 쓸 만한 이들이다. 사실상 회군만 믿을 수 있는 이홍장을 압박하기 위해, 최대한 많은 방향에서 동시에 공격을 가하는 것.

“지난 두 달 동안 우리 의군(義軍)은 여러 성을 함락하고 위용을 떨쳤다. 보정을 함락한 연후 삼로병진(三路竝進)의 계책으로, 서로군은 정흥(定興)과 탁주(涿州)를, 중로군은 고안(固安)을, 동로군은 패주(覇州)를 공략하였으며, 이제 영정하(永定河)만 넘으면 북경은 지척인 셈이다.”

이홍장 역시 이를 알았으므로, 보정에서 한 번 당한 이후로는 철저한 지연전을 펼쳤다. 회군과 녹영군, 그리고 남은 병력을 긁어모은 팔기까지. 딱 무시할 수 없는 만큼만 수효를 갖추어 진격로의 주요 거점에 박아두고서는, 함락이 될 것 같으면 나머지 병력을 먹잇감으로 던져두고 회군만 뒤로 빠진다.

그렇게 남의 피로 번 시일 동안 이홍장은 북경 바로 앞 영정하 강안에 탄탄한 방어선을 구축해두었다.

하지만 허허실실(虛虛實實)의 싸움에서 공친왕이 쓸 수 있는 수가 다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아니,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천산산맥을 넘어 이리를 타격하겠다는 것은 호언장담만이 아니요, 실제로 훈련을 하기도 하였다. 지금 태항산맥(太行山脈) 자락을 타고 영정하를 상류에서 돌파한 일만 병력은, 좌종당이 훈련을 통해 손수 점찍어둔 영들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삼로병진’에서도 누락한 채 비밀리에 움직이고 있는 이들이 바로 북로군(北路軍)이었다.

“내일 낮까지는 이곳 골짜기에서 휴식을 취하고, 저녁에 출발하여 밤새 달린다. 모레 새벽 북경을 들이치면, 성 안의 뜻있는 사람들이 궐기하여 비로소 곡직(曲直)을 바르게 할 것이다. 그러나 무릇 모든 일을 꾀할 때에는 뜻한대로 되지 않을 것을 대비해야 하니, 그대들이 맡은 바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만일 일이 중간에 새어나가면, 서태후는 황상에게 승덕(承德, 열하)으로의 이어(移御)를 청할 것이다. 그대들은 통주(通州) 가는 방향 길목에 매복하고 있다가, 어가(御駕)가 보이게 되면 반드시 나서서 경사로 다시 모셔야 할 것이다.”

공친왕이 친히 이 네 번째 부대, 북로군을 이끈 이유는 무엇보다 절박하기 때문이었다. 얼마 준비하지 않은 군량은 다 떨어진지 오래라, 이 기근 속에서도 부득불 억지로 징발을 해야 했으며, 보정부터 점령한 다른 지역까지 보급하기 위해 병력을 또 할애해야만 했다. 더구나 이 정도까지 지연되었으니, 이제 산동이나 하북 다른 곳에서 증원될 병력이 후방을 노릴 위험도 대비해야 할 것이었다.

조금만 버티면 상군이 무너지리라는 희망 때문인지, 어려움을 알면서도 알량한 위신 때문에 위험을 외면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다행히 아직까지 서태후는 열하로 향하지는 않고 있었다. 허나 정말 북경이 함락에 직면하게 되면 일말의 거리낌 없이 도망을 선택할 서태후였다.

그리고 만에 하나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추격은 불가능하다. 여기까지 온 것도 어지간한 자들이라면 이미 한계를 넘고도 남았을 터. 아무리 열하가 북경의 지척이라지만 이는 천하 전체로 보았을 때지, 거리로 따지면 족히 3백리(170km)는 넘기므로 보정과 북경 사이보다도 멀다.

“천하의 명운이 이번 한 판 싸움에 달렸다. 그대들은 모두 이 무거움을 알고, 열과 성으로 임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팔기군의 군기가 해이해진지 오래라지만, 적어도 천하의 중심(을 자처하는) 북경을 지키는 팔기군은 그들 무리 중에서는 가장 나은 축에 속했다. 지난 십수년 전란 속에 만주팔기와 몽골팔기의 정예는 소진된 지 오래라지만, 그래도 경조(京兆)를 어찌 팔기가 지키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 대개 만인(滿人)의 생각이었다.

허나 지금은 상대가 상대인지라, 군적의 머릿수로는 12만에 달하는 금려팔기(禁旅八旗, 북경의 팔기) 중 – 정말로 총이나 궁시 들고서 싸울 재간이 있는지는 차치하고서라도 – 싸울 열의 있는 자는 얼마 되지 않을 터였다.

공친왕을 존경하여 차마 싸우려 하지 않는 자들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공친왕보다 그 아래에 있던 다른 군기대신을 존중하고, 굳이 이를 거슬러 서태후를 위해 목숨 바칠 마음을 먹는 자가 적었던 탓이 컸다. 일례로, 공친왕이 심상찮은 모의를 하고 있음을 눈치 챈 군기대신 원샹(文祥)이 작고하기 전에 그런 싸움에 함부로 끼어들지 말 것을 가족과 측근에게 당부하기도 하였지 않았던가. 평소 수도의 만인 사이에서 인망 높던 원샹의 말이었기에, 곧 다른 이들에게도 암암리에 퍼져나갔다.

그리고 서태후는 이제야 그런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 하늘 아래 믿을 자가 정녕 없다는 말인가!”

“참으로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태후 전하. 허나 이미 일이 이에 이르렀은즉 먼저 가당한 조치를 취하여야만 할 것입니다.”

저 말대로라면 이홍장 본인 또한 믿을 자가 아닐 테다. 말실수라기보다는 본심이었다. 이힌이 반역하기 무섭게 보정이 무너지더니, 조선왕 또한 일만 군사를 보내 압록을 넘어 봉천까지 들어왔다 했다. 지금이야 그곳 백성을 돕고 도적을 잡고 있다지만, 저것이 그저 현지의 관헌을 방심케 하려는 수작일 수도 있지 않은가?

더욱 심란한 것은, 마치 내통이라도 한듯 바로 병력을 내었다는 것이다. 반역의 기미가 그처럼 자명하였더라면 서태후 역시 알고 있었어야 할 텐데, 필히 가운데서 농간 부린 자가 있을 것이었다.

“금려팔기가 비록 예전만 못하다 하여도, 개중에 충심 잃지 않은 자가 분명 있을 것이오. 경의 군사로 말하자면 저 역도의 예봉을 무디게 하는 데도 바쁠 것이니 어찌 어가를 지키는 일까지 청하겠소?”

“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 죄가 크거늘 그리 마음을 써 주시니 어찌 그 황송한 마음을 감추겠습니까.

허나 사사로이 생각하기에는 어가의 움직임 또한 저들이 미리 헤아리고서 계책을 마련하지 않았을까 두렵습니다. 비록 영정하에서 적이 더 들어오고 있지 못하다 하지만, 공친왕은 군략이 빼어나니 필히 뒤에서 노리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부디 부족한 계획을 가납해 주십시오.”

그 농간 부린 자가 이홍장이 아니면 누구일까? 이홍장이 이어를 핑계로 회군을 동원해 자신과 황제를 볼모로 잡겠다는 이야기를 이처럼 태연하게 늘어놓으니, 서태후도 차마 무어라 할 수 없었다.

“경의 뜻대로 하시오. 경과 같은 충신이 있으니 실로 우리 대청의 동량이구려!”

겉치레 뒤에는 씁쓸한 자조가 감추어져 있었다.

“대청 만세! 공친왕 전하 천세!”

오밤중의 난데없는 호령을 선창으로 삼아, 함성이 이어지고 묵직한 발소리가 울려퍼졌다.

“천세! 전진하라!”

“놈들은 아직 잠잠하다! 빨리 성문 앞에 작약을 놓아라!”

야음을 틈타 최대한 은밀히 다가간 뒤 돌격을 명하였으니, 지금쯤 문루를 지키던 자들은 혼비백산하고 있을 터... 였는데, 이게 웬걸.

“어? 성문이, 성문이 열립니다!”

허무하게도, 성문이 절로 열렸다.

바로 후방으로 전해진 보고에 대한 막료들의 반응은 당연히 의심이었다.

“매복은 아닐지요?”

“우선은 조심히 진입하라 이르겠습니다.”

그러나 잠잠히 생각에 빠졌던 공친왕의 답은 달랐다.

“아니다. 이건 공성계(空城計)야. 가장 빠른 전령을 시켜 말을 전하게. 아직 어가가 빠져나가지 않았다면 곧 빠져나갈 테니, 어떤 일이 있더라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저쪽이다! 어가가 저쪽으로 달리고 있다!”

여름이지만 비가 제때 내리지 않은 탓에 먼지가 부쩍 일어나, 이른 새벽 햇빛 아래서 아주 잘 보였다.

“달려라! 놓쳐서는 안 된다!”

“죽더라도 어가 앞에서 죽어라! 몸으로라도 막아!”

당장 눈앞의 목표에 눈이 먼 나머지, 추격하는 기병들은 어가 옆에 수상한 수레가 두어 량 있는 것은 미처 보지 못하였다.

“지금이다!”

“전원 정지!”

갑자기 행렬이 멈춰서고,

“사격 준비!”

“사격 준비!”

금군이 아닌 회군이 말에서 내리더니 문제의 수레에 올라탔다.

의아해하는 것도 잠시.

“사격 개시!”

“사격 개시!”

어가 향해 달려드는 상군 기병을 향해, 개틀링 포의 포화가 쏟아졌다. 그새 하마한 회군 호위병들도 창을 버리고 말 아래 숨겨둔 양창 꺼내드니, 가을 되지도 않았건만 추풍낙엽이라. 오백 기가 반절로, 반의 반으로 줄어드는 것도 금방이었다.

“하하, 조선 땅에서 새 작약을 들여와 재미를 보셨다지요? 조선이 양이의 회륜포(개틀링)를 들여왔다기에 저 또한 따라해 보았습니다.”

미리 북경을 빠져나와, 멀리 후방에서 어가가 무사히 다시 출발했다는 보고를 들은 이홍장이, 북경에 있을 공친왕을 향해 조소하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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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한 연참이 사정상 어렵게 되어, 대신 두 편 분량을 꾹 눌러담아 한 편으로 삼았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에 한 편 더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장유재의 아들 장작림(장쭤린)은 원 역사에서는 봉천군벌의 지도자로 유명합니다. 마적 출신이지만 품질 미달의 군벌이 범람하던 민국 초기 기준으로 나쁘지 않은 통치를 했으며, 개인적으로도 호걸스런 면모가 있어 오늘날에도 팬(?)들이 꽤 있지요. 그 아버지 장유재는 봉금 해제 전 만주에 넘어온 한인 집안 출신으로, 슬하 3남 1녀 중 막내가 바로 장작림입니다. 장유재는 이름과는 반대로 방탕한 생활로 가산을 탕진했으며, 장작림이 어른이 되기도 전에 죽고야 말았지요.

작중 공친왕이 묘사하는 삼로병진은, 원 역사의 제1차 직례-봉천전쟁(1922)에서 직례군벌이 취한 공세를 모방하였습니다. 물론 작중에는 당연히 천진에서 산동으로 가는 철도가 없으므로, 동로군이 정말 동쪽으로 향하는 대신, 중로군의 측면을 보호하는 느낌으로 바로 옆에 착 달라붙어 전진하고 있습니다 (다음 화에 지도를 첨부하겠습니다).

리(里)는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단위로 거리를 나타내지요. 그러나 전근대 단위들이 대개 그러하듯, 시기와 지역에 따라 그 정의는 상이해집니다. 현대 한국에서 리는 약 0.4km, 일본에서는 3.9km입니다만, 청대 중국의 리는 지역에 따라 0.5~0.6km 정도입니다.

승덕은 흔히 열하(熱河)로 알려진 북경 동북쪽의 도시입니다. 청 황제의 여름별장이 있던 곳으로 유명합니다만, 실제로는 피서를 위한 휴양도시가 아니라 한족 외의 다른 민족들을 통치하기 위한 제2의 수도였습니다. (아무래도 역사를 쓴 것은 한족이다 보니 이런 면모가 잘 부각되지 않은 면이 있습니다.) 청은 중원뿐 아니라 만주, 몽골, 위구르, 티벳 등을 모두 다스리는 다원적 제국이었고, 북경에 수용할 수 없는 非한족적 통치 기능(예컨대 티벳 불교)들은 승덕에 수용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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