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종, 군밤의 왕-99화 (99/320)

32.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서생 (4)

“되었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선생께서 아라사 공사관에서 나랏일을 발설하였다는 고변이 들어와 그 전말을 확인코자 하였을 뿐이니 심려치 마십시오.”

종이에서 세필을 떼면서 이용익이 장담하였다. 대단치 않은 신변의 잡기만을 묻더니 금방 끝내버리는 것이, 김가진이 언뜻 짐작하기로는 무고(誣告)를 의심하고 있거나, 장동 김문 얘기를 꺼낸 데 지레 겁을 먹지 않았나 싶었다.

“다만 벌써 인정(人定)이 지나버렸는데, 저희 서에서 선생을 붙잡아놓느라 이렇게 된 일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편히 돌아가실 수 있도록 인력거를 미리 불러다두었으니 서 앞에서 타시면 되겠습니다.”

젊은 나이에 퍽 고생한다 싶어 – 김가진도 늙은이는 아니다만 – 적당히 공치사 해주고서 인력거에 탔다. 전동 모처로 가자 일렀더니 곧장 달려나가기 시작하였는데, 얼마 지나고 보니 웬걸.

“이보게. 길을 잘못 들었네. 지금 솔고개(松峴) 쪽으로 가고 있잖나. 전동은 반대편이야.”

그러나 묵묵부답이었다. 그래도 처음에는 지름길이라도 있는가 싶어 가만히 지켜보았지만 숫제 엉뚱한 동네로 접어들고 있지 않던가.

“거 이제는 안국방(安國坊) 언저리까지 왔군. 이거 날 새기 전에 당도하기는 하겠나? 차라리 여기서 내리려 하니 멈춰주게.”

고갯길을 조금 올라가더니 정말 멈추었다. 아마 공안서 서리 하나가 저의 모자란 친족을 가엽게 여겨 전속 인력거꾼으로 둔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내리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宮峴雲 (운현궁)’ 세 글자였으므로, 그제야 저의 처지를 깨달은 김가진은 절로 소름이 돋았다.

곧 우악스런 손에 이끌려 궁의 사랑채까지 갔더니, 집주인 흥선대원군이 너털웃음 지으며 맞이하였다.

“허허, 잘 왔네, 잘 왔어. 기개 넘치는 젊은이만 보면 내 소싯적이 떠올라 도통 미워할 수가 없단 말이지.”

미워할 여유도 없이 그런 젊은이들 중 거슬리는 자들은 바로 인당수 용왕에게 노비로 팔아넘기므로 그러한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비아냥거리는 말을 꾹 눌러 담았다.

“그래, 내 눈이 아직 다 침침해지지는 않았으니, 설마 고작 재보를 노리고서 그런 짓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대관절 무슨 포부를 품었기에 그리 하였는가 사정이나 청취하도록 하세.”

너무나 당당하게 그의 혐의를, 마치 이미 백주에 드러난 사실인 것처럼 얘기하고서, 취재(取才)라도 벌이듯 물어보는 대원군이었다. 잠시 얼떨떨한 마음을 속히 다스리고서, 이번이 어쩌면 천재일우의 기회일지 모른다고 속으로 되뇌며 말을 꺼내었다.

“물론 나랏일을 그리 가벼이 털어놓음은 죄 받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나, 미욱한 소생이 여기기에는 연아(聯俄)하여 거청(拒淸)함이 가히 나라의 대계가 될 듯하다 여기어 그처럼 하였습니다. 이미 소생 듣기로 합하께서도 장사를 모아 그러한 일을 종종 의론하게 하신다 했는데, 그렇다면 더더욱 이번 일을 만나 아라사에게 다가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허어, 그런가? 그러면 왜 아라사에 다가가야 하는가? 대서 땅에 설마 나라가 아라사 한 곳만 있다고 아는 것은 아닐 테고.”

떠보는 말투를 보니 과연 취재가 맞았다. 그렇다면 못할 것은 또 무엇인가. 저의 쓰임을 얻고자 백방 방황하였지만 이렇게 일이 돌아가니 참 우스우면서도 서글픈 일이었다.

“아라사가 가장 약하기 때문입니다.”

“무어라? 가장 약하다?”

그리고 무릇 기인이사(奇人異士)라면 말로써 강한 인상을 남겨야 하는 법.

“비록 북방의 대국이라 하지만 그 강토는 날씨가 차고 땅은 척박하여, 대개가 그저 사철 얼음덩이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정 알 바 아닌 대서 다른 나라들은 함께 편을 지어 아라사에 항거하니, 아라사로서는 억울히 여기면서도 속히 저의 동무 될 나라를 구하고자 할 것입니다.”

“정녕 아라사가 아국의 동무가 되겠는가? 차라리 삼키려들지 않겠는가? 대국은 강역이 천하의 으뜸이니 여러 차례에 나누어 조금씩 침탈하고 있다지만, 우리 해동은 그렇지 않으니 잠시 마음 놓았다가는 단번에 잡아먹히고야 말 것이야.”

“그것은 기실 대서 어느 나라나 매한가지 아닙니까? 오직 다른 곳에 마음이 팔려 아직 그 흉악한 심계를 드러내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러나 오직 아라사만은 그리할 여력이 되지 않으니 이것이 동무로 삼을만한 한 가지 이유입니다.

또한 다른 나라들은 바다 건너 멀리 떨어져 있지만, 아라사의 연해주는 바로 아국의 북변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직 우리가 바다 건너 있는 저들을 괴롭힐 수는 없지만, 여차하면 지금이라도 연해주는 취할 수 있습니다. 물론 아직은 군병의 힘이 미약하여 취한 뒤 오래 지키지는 못할 것이나, 그러한 가능성이 있는 것만으로도 저들은 우리를 가까이 하여야 할 테니 이것이 벗삼을만한 두 번째 이유입니다.”

말하는 것이 어지간한 서생보다는 차라리 저의 부류에 가까워 보여, 대원군은 간만에 쓸 만한 인재를 얻었다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왕이면 한 번에 그 그릇의 됨됨이를 가늠하여야 할 테니, 조금 더 떠보았다.

“이유를 열거한다면 족히 세 가지는 생각해두었을 테지?”

“물론입니다, 합하. 가장 중한 세 번째는, 지금 대서의 나라들 중 아국이 저들에 버금갈 정도로 강성해지는 것을 허여할 나라가 오직 아라사뿐이라는 데 있습니다. 다른 나라는 우리 아주에 가진 이익이 오직 통상이므로, 지금 청국이 앞장서고 아국과 일본이 뒤따르는 형세가 뒤바뀌지 않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라사는 통상만큼이나 동쪽 강역을 지킴이 급하고, 청국이 장차 성세를 되찾으면 외려 위험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아국이 가장 오른쪽에서 연경을 노리는 비수로 자라나면, 어찌 아라사로서는 기쁘지 않겠습니까? 소생 알기로 이처럼 아국을 거두어 이익으로 삼을 수 있는 나라는 대서 땅에 또 없습니다.”

“하, 기화가거(奇貨可居)렷다! 참으로 좋군. 허나 한 가지가 더 있다네.”

“무엇인지요?”

“바로 자네가 지금 내 손에 잡혀있다는 것이지!”

박장대소는 대원군 홀로 하는 일이라, 김가진은 도리어 표정 굳었다. 그러나 그것은 일신의 두려움이 아니요, 세상에 저만 잘난 줄 알았던 사람이 저의 위에 나는 놈을 만났을 때의 그 굳어짐이었다. 대원군 본인도 처음 장동 김문에게 세 꺾이기 전까지는 저러지 않았던가.

“아라사의 그 위패라 하였나? 그 젊은이가 직접 내게 와 저들 나라의 편에 설 것을 권하였다네. 자네가 토설한 그 이야기를 들고 와서 겁박하더군. 하다못해 상한(常漢)이 투전 놀음을 할 때조차 먼저 그리 나섬은 하수 중의 하수지. 저들이 무언가 아쉬운 구석이 있음을 이로써 드러내었는데, 마침 우리의 아쉬운 구석은 절로 없어졌으니 참으로 잘 풀렸다 할 수 있지 않겠나?”

아무리 역정 많은 서자였다지만 한 눈에 보아도 반듯한 서생이니 어두운 술수 부리는 재주는 아직 없는 듯했다. 재능도 있는데 가지고 노는 재미도 있으니 어찌 즐겁지 않은가?

“그러니 거짓으로 따르는 시늉을 하고서 나중에 돌아서도 그만이요, 그때까지는 저들이 철석같이 저들이 부리고 있다 여기는 자네를 통하여 마음대로 꼭두각시놀음도 할 수 있겠지. 정도껏 한다면 말이야. 이렇게 연줄 닿는 대서의 나라가 아라사 말고 또 있겠는가!”

편하게 웃음기 섞어가며 늘어놓는 사정이었기에 범속한 한량의 말투와 같았지만, 바로 그 꼭두각시놀음의 대상자를 눈앞에 가져다놓고 그런 말을 하니 김가진이 여전히 가시방석 위에 앉아있음을 낯으로 고스란히 보였다.

“물론, 어차피 집안에서도 겉도는 일개 서자요, 번듯한 벼슬 하나 없는 야인일진대 차라리 아라사 편에 붙으면 어떻겠는가, 생각할 수도 있겠지. 내 그런 일은 없도록 만들어줌세. 자네를 거두어들여 잃을 것을 아주 많이, 덩이줄기채로 달아주겠다, 이 말이야. 하하!

무엇을 원하나? 동반(東班)이든 호반이든 서간 한 통이면 별직 제수쯤이야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일이고말고. 자네 문중의 어른들이야, 누가 자네를 거두어들이기로 하였는지 알게 되면 딴소리 한 마디도 하지 못할 테지.”

당연히 그냥 주는 호의일 리가 없다. 초야에 묻힌 (묻힘을 당한) 서생 신세일 때야 한탄하던 것이 어쩌다 국외인의 귀에 들어갔다 변명할 수도 있겠지만, 벼슬살이하게 된 뒤에 그런 사정이 들통나게 되면 여지없이 반신(叛臣)이다.

여차하면 역적 모의로까지 몰아갈 수 있고, 그리하면 장동 김문의 파란만장한 내력을 파가적몰로 마무리하게 된다. 딱히 가문에 미련은 없었지만, 한낱 역도로 청사에 이름 남기고 싶지는 않았기에 김가진은 조용히 고개를 조아렸다.

그 모습을 보는 대원군은 참으로 흡족할 뿐. 슬슬 어깨 굳고 무릎 시릴 나이에 갑자기 대를 이어 왕업을 보필케 할 재목을 얻은 셈이지 않은가!

어쨌든 아무것도 없는 서자가 저의 힘만으로 운현동 깊숙한 곳 사정을 알아챈 것은 실로 찾기 어려운 재능이라, 겉치레 벼슬이야 어찌 되었든 장차 공안서의 깊은 일을 맡길 법도 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궁중의 며느리 중전은 사건의 발단이 된 자가 영달하지 못한 젊은이임을 알 뿐이다. 저의 손에 들린 투패를 먼저 내보인 것은 – 물론 그것 말고는 대원군의 눈길 끌 방도가 없었으니 그러려니 싶기도 하지만 – 중전도 마찬가지이니, 아직 미숙한 탓이리라.

이번 일로 또 다른 이득을 보았음을 끝내 홀로 궁리해 알아내지 못한다면 중전의 힘 닿는 곳도 거기까지인 셈. 여차하면 김가진을 잘 달래서 그 빈자리만큼을 채울 수 있도록 키워내도 될 것이다. 만약 둘 다 재목이 아니라면, 적어도 그 불타는 욕심만은 크게 다르지 않을테니 이호경식(二虎競食)하게끔 만들어 후환을 없애면 될 일이다.

운현궁으로부터 고대하던 답서가 왔다는 소식에 반색하며 겉봉을 뜯었다. 서신에는 정갈한 필치로, 올렸던 청을 받아들이겠노라 하는 글이 쓰여 있었다.

그리고 그 말대로, 본론을 살피니 정말 도움이 될 법한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중전께서 외국 공사의 안사람들을 불러 담소 나누심은, 마치 주상께서 나라의 지존으로서 다른 나라의 공사를 맞이함과 같습니다. 보필하는 도란 이처럼 명과 실이 맞아떨어짐을 우선하여야 합니다.

다만 원하는 것이 있을 때는 무엇보다 그 원하는 바를 남이 알지 못하게 함을 귀히 여겨야 하니, 장차 꾀를 쓰실 때는 염두에 두어주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번 일에서는 천운이 따라 마침 중전께서 요하시는 바를 곧바로 들을 수 있었지만, 다른 일이 닥쳤을 때도 그리하리라 여겨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부인들끼리 모여 바깥사람의 거동을 논함은 늘상 있는 일이지만, 가령 어떤 나라의 선박이 제물포를 오간다, 청국 모 대신이 임지를 모처에서 모처로 옮겼다더라, 하는 이야기는 어찌 그런 자리에서 전해 듣겠습니까?

마침 현숙한 덕을 베푸시어 여아를 거두어 가르치는 학원을 세우셨다 들었습니다. 이처럼 세간의 어리석은 이들이 의심하지 못하게 하면서 그 떠도는 말을 거두어 들을 수 있는 방도를 장차 더 마련하셔야 할 것입니다.’

세밀하게 짚어주는 말을 보니, 어렴풋이 생각하고서 한 구석에 밀쳐두었던 얘기도, 추호도 미리 헤아리지 못했던 얘기도 있었다. 그 옛날 처음 사서(史書) 읽을 때 느꼈던 짜릿한 자극이었다.

과연 주상이 이른 대로 하였더니 청이 가납되었구나 싶어, 자영은 안도하였다. 그런 기회를 마련해준 부군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하였지만, 그보다는 역시 권력 휘두를 생각이 앞섰기에 설레기도 하였다.

그러나 잠시 그런 마음은 제쳐두고 서한의 왼편 끝까지 모두 읽어 내려갔더니, 정작 중요한 내용은 빠져있었다. 지밀상궁을 불러 물었다.

“여봐라, 혹 이 외에 다른 서신은 당도한 바 없더냐?”

“예, 마마. 이르신 대로이옵나이다.”

전해듣기로 이미 아라사인 위패를 궁으로 불러 알현케 하고, 논의할 내용은 모두 논의하였다 했다. 자영이 아는 것만큼 대원군이 치밀하다면, 무엇보다 정말로 나랏일을 새어나가게 한 자를 잡아들이고서 교섭을 진행하였을 텐데, 알고 보니 어떤 문중의 아무개가 아라사의 끄나풀이었다, 그런 이야기는 서신에 한 글자도 보이지 아니하였다.

‘아직 한낱 외인(外人)이라 온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나 홀로 알아보라 시험하는 것인가?’

아마 둘 다일 테다. 그리고 이 정도만 하더라도, 사실 몇 달 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일이니 고맙게 여겨야 할 노릇이었다. 기실 대원군으로서는 그저 먼 미래에 음지의 권력을 나누어주겠다 장담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

그러고 나서 민승호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손 털고 지나가면 될 일. 저의 손으로 쓸 만한 척족은 모두 쳐내고, 주상을 충동질하려도 돌부처같은 성정에 먹힐 턱이 없으니, 자칫 엄청난 실책이 될 뻔하였다.

그러나 주상을 믿었기에, 정확히는 주상의 수완을 믿었기에 이처럼 전면에 나섰던 것이라, 나중에 듣기로 대원군이 주상 보는 앞에서 직접 서한을 읽었고, 또 주상도 직접 자영이 올린 청의 내용을 알고 있다 확언까지 하였다고 했다. 그러니 어찌 보면 자영과 대원군 사이의 거래에 임금이 보증을 서 준 셈이라, 믿을 구석이라고는 저의 중궁전 자리 하나뿐인 자영으로서는 이야말로 크나큰 성은으로 여겨야 할 것이었다.

스스로 잘났다 여기는 사람이 으레 그러하듯, 남이 마땅히 자신을 도와야 한다고 여겼던 자영으로서는 낯선 감정이었다.

물론 귀남의 입장에서는 조금 이야기가 달랐다. 나날이 우울해하는 중전이 불쌍하기도 하고, 또 가까이서 보니 사람됨이 정말 변변하지 못하냐 하면 또 그것도 아니었다. 아무리 귀남이 다른 이들만큼 머리가 돌아가지는 않는다지만, 같이 산 세월이 벌써 십 년인데 그 정도도 모를까.

아마도 테레비니 신문에서 자주 보던 유형, 그러니까 일신에 품은 재주는 많으나 욕심이 더 많아 그런 복을 모두 차 버리는 사람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면 귀남이 정말 정 붙여서 이 여인네를 계도할 수 있는가 하면 그럴 자신도 없었고, 또 그렇다고 계속 궁궐 한 구석에 사실상 갇힌 채로 내버려두자니 미안한 마음은 둘째치고라도 언제 사고가 터질지 몰라 은근히 불안하였다.

그러던 와중 문득 떠오른 것이 아버지 흥선군이었다. 자신이야 중전보다 뒤떨어지니 쉽게 다룰 수 없다지만, 수완 좋은 대원군이라면 그 말괄량이 기색을 잘 다스려 쓸 만한 사람으로 만들든, 도저히 다룰 수 없음을 깨닫고서 적당히 처분할 대책을 마련하든 해줄 듯하였던 것이다.

어쨌든 귀남 홀로 고민해서 떠올린 방도이기는 했으니, 다른 사람들이 그를 떠받들어 어질고 현량하다 칭송하는 것과는 달리, 이번 일에서 자영이 고맙게 여기는 마음은 그대로 받아들여도 될 법하였다. 그런 마음을 들여다볼 수만 있다면 말이다.

이그나티예프도 공사, 슈트루베도 공사다. 그러므로 북경 공사관에서 ‘파견’ 나온 어정쩡한 신세인 베베르는, 굳이 격을 따지자면 슈트루베의 아랫사람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같은 공사라 해서 정말 같을 리가 있겠는가. 임지의 격이 다르고, 쌓아온 경력의 격이 다르니, 결국 이그나티예프의 바로 아래에 있는 베베르는 애매하게 슈트루베의 옆사람 정도쯤 되었다.

그러나 공사관 한 곳에 주인이 둘인 불편한 동거와는 별개로, 베베르는 지금 자신이 있는 이곳 한양 생활에는 크게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이그나티예프 공사 각하,

베풀어주신 배려에 힘입어, 이곳 조선의 도성에 안착하였습니다. 먼저 이전에 서신으로 보고드린 것처럼, 하명하신 공작은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입니다. 비록 지속적인 관리와 관찰을 요하겠지만,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포섭한 김 가문의 사생아 가진을 통해 국왕의 친부 흥선 대공과 연락하는 데 성공했으며, 그가 구상하고 있는 중국과의 전쟁 계획을 (더 이상) 누설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그의 협력을 약속받았습니다.’

물론 조선인들이 만주 조정에 좋은 감정을 품고 있지 않음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와는 별개로 전쟁 벌이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 – 베베르는 개인적으로 호감을 품었지만 많은 러시아인들은 유약하다 부를 – 조선인들의 성향을 고려하면, 대원군이 반발을 두려워해 고집을 버리고 러시아의 손을 잡겠다 나섰다고 볼 수도 있었다.

‘또한 그와 별개로, 우리 극동에 상업적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조선의 귀족들을 중심으로 포섭 작업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조선의 귀족들은 학자이자 문필가이기도 하기 때문에, 예술을 화제로 삼아 끌어 모을 수 있습니다. 우호와 친선을 도모하는 이 계획에 대해 국왕 또한 큰 호의를 보였으며, 아예 박물관을 차려 서화를 모음은 어떻겠느냐 제의하였습니다. 예산의 사용을 허가해주신다면, 곧장 착수하도록 하겠습니다.’

귀남으로서는 예술 모아놓은 곳은 곧 박물관이니 별 생각 없이 제안한 것이었지만, 베베르의 마음에는 꼭 들었다. 그러잖아도 이름난 석파란 (이건 박물관에 기증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지고 돌아가 가보로 유지할 생각이었다.) 부터 시작해, 규모 면으로는 벌써 슈트루베의 도자기 컬렉션을 위협하고 있지 않던가.

‘극동에 불안정한 정치적 상황이 조성될 경우 조선의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는 아직 확언하기 어렵습니다. 조선인들은 천성적으로 싸움을 싫어하고, 특히 국왕은 지금까지 무력분쟁의 상황에서 기발한 방법으로 중재를 제안한 적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방안이 반드시 러시아의 국익과 합치되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착실하게 조선의 통치자들 사이에서 친러시아 정서를 함양한다면, 장기적으로 러시아의 국익과 조선의 국익이 일치한다는 인식을 보편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알기로 우리의 다른 경쟁자들은 – 프랑스 외방전교회를 제외하면 - 조선 땅에서 이러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으므로, 이러한 노력은 충분히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반면 각하께서 걱정하시는 일부 과격주의자의 주장처럼 남부 해안의 몇몇 섬을 조차한다는 등의 제안은 현실성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비록 한 발 물러났다지만 영국은 조선의 동향을 여전히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프랑스 역시 군사고문단과 외방전교회, 그리고 의원 벨레 씨 등 다양한 연줄을 통해 조선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바, 급격한 현상변경 시도는 오히려 러시아의 국익에 독이 되고 지금까지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것입니다.’

이그나티예프 같은 거물이 무슨 생각으로 다시 북경에 돌아왔는지, 아직 러시아의 거대한 관료기구에서 조그만 톱니바퀴에 불과한 베베르는 알 수도 없었고 알 생각도 없었다. 열강들의 세력다툼 사이에 정말 우의니 친선이니 하는 덕목이 자라날 틈이 있다고 믿는 베베르로서는 아마 알더라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겠지만.

그리하여 당장 러시아의 간섭을 받을 일 없이, 조선이 저들 편이라 착각하게 만들기만 하였으므로 이그나티예프의 극동 구상은 큰 파문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흘러가는 듯하였다. 그러나 과연 장차 중원 땅에 닥쳐올 일대 파란 속에서는 또 어떻게 될 것인가,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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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역사에서 조러간의 조약 체결은 작중과는 완전히 다른 국제적 환경 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임오군란·갑신정변 이후 청의 간섭이 심화되고, 약화되었다지만 아직 일본의 영향력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조선은 러시아에 주목했습니다. 외국인 고문 묄렌도르프는 당시 러시아에게 접근해 러시아-청-일본의 공동 독립보장을 제안하기도 했지요.

반면 러시아는 청일 양국은 물론이요 영국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1875년 동방위기가 영국이 양보하는 겉모양을 갖춘 채 조기에 해소된 작중과 달리, 원 역사의 1880년대는 제12차 러시아-투르크 전쟁, 제2차 영국-아프간 전쟁 등 그레이트 게임이 가속되는 시기였습니다. 우리에게도 거문도 점령사건으로 잘 알려져 있지요.

조러수호조약 체결 시점에서 러시아가 조선에 원했던 단기적 목표는 친러시아 상태로 독립을 유지하는 것, 그리고 거문도를 비롯해 영국의 군사적 진출을 저지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러시아는 이 중 전자를 조선에 강조하였습니다. 불가리아의 경우처럼, 러시아는 설령 조선을 보호국으로 삼더라도 그 독립을 보장할 것이며, 극동에서는 오직 ‘명예로운 평화’만을 바랄 뿐이라는 것이었지요.

그런 상황에서 파견된 베베르는 여러모로 조선에 이로운 방향으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일부 자료에서는 고종과 개인적인 친분을 쌓기까지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극동에서의 불리한 세력투사 여건으로 인해 영·청·일 어느 한 쪽에도 조선이 넘어가지 않기를 원했던 러시아의 전략적 판단이 물론 있었겠지만, 베베르 본인이 다른 몇몇 개화기 외국인 고문들처럼 조선에 대한 개인적 우호의 감정을 가지고 있었고, 그에 따라 외교관으로서의 언행도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 또한 분명 있습니다.

제국주의의 시대에도 – 어쩌면 제국주의의 시대였기 때문에 더더욱 - 이렇게 현지에 파견된 외교관들이 본국이 아니라 현지의 입장에 동화되는 사례는 결코 드물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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