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입은 화의 문이라 (3)
단테가 『신곡』에 쓰기를, 지옥의 가장 차가운 모퉁이는 배신자들을 위해 예비되어 있다 했지만, 사방이 배신자인 듯한 지금 디즈레일리는 자신이 바로 그 구석에 몰린 기분이었다.
언론에서의 다툼은 여전히 팽팽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한편에서는 디즈레일리의 ‘위험한 도박’이 실익은 없고 영국의 명예만 실추시킨다며 비판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그렇다고 러시아의 위협을 가만히 내버려둘 수 있는 것은 아니라며 반박하였다.
어쨌든 아직 전쟁이 시작한 것도 아니었으니, 디즈레일리의 전쟁 놀음을 신중하지 못한 짓이라 목청 높일 수는 있어도 거기까지였다. 이번 기회에 러시아 불곰들의 코를 눌러야 한다는 자들, 일단 뭐라도 일이 터지면 지금보다는 나아지리라 막연하게 여기는 자들. 애초에 여론의 향방이라는 것이 식자들의 말과 견해에 따르지는 않는 법이었다.
그러나 그 논란 소리에 그의 내각 안에 있던 정적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들고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지금 디즈레일리의 가슴을 옥죄는 일이었다.
“뭐, 지금 내 상황이 그렇다는 말일세. 지난 번 차관 건도 그렇고, 이번도 그렇고, 어떻게 극동만 얽히게 되면 항상 자네에게 한 수 내어주게 되는 느낌이군.”
공사 구분없이 서로 놀리고 비난하는 디즈레일리와 글래드스턴이다. 디즈레일리는 글래드스턴을 뜬구름 잡는 소리 하는 샌님이라 비방하고, 글래드스턴은 도덕과 명예를 모르는 유대인 놈이라며 욕하지만, 또 그러면서도 정작 서로의 수완은 인정할 수밖에 없으니, 돌아서면 서로 또 말로 물어뜯게 되겠지만 막상 마주하면 이야기가 달랐다.
“린드허스트(Lyndhurst) 경의 저택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느꼈던 것이지만, 말로는 도저히 상대할 수가 없는 사람이 자네란 말이지.”
그때가 아마 1835년이었을 것이다. 토리당의 젊은 의원들끼리 모여서 이야기 나누던 시절부터 이미 서로 여간내기가 아님을 알아보았으니, 인연이 길다고 할 수 있었다.
“사실 이번 건도 더비 백작이 아니었더라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테니, 굳이 승패를 가린다면 무승부 정도라 할 수 있겠지.”
일국의 수상이 외무장관에게 뒤통수 맞는 요지경 세상이었다. 문제의 보도가 나간 뒤 디즈레일리에게 찾아와 당당하게 이실직고하기를, 자신이 생각하기에 국익을 위해 최선인 행동을 했을 뿐이라며 사의를 표했다.
“그러니 너무 뭐라고 하지는 말게나. 나름대로 소신이 있었으니 그에 맞게 행동한 것이지 않은가.”
“당원이 한 명 늘어난 입장에서는 그렇게 쉽사리 말할 수도 있겠지.”
홍차 한 모금을 넘기며 디즈레일리가 본론에 들어갔다.
“굳이 번거롭게 불러들인 것은, 사태를 수습할 방도를 마련코자 해서일세. 어쨌든 일은 벌어졌고, 사실 지금 상황에서는 오히려 내 정적임을 확실히 알고 있는 자네가 가장 믿음직스러우니 말이야.”
가벼운 자조에 글래드스턴도 살짝 웃음을 보였다.
“솔즈베리 후작이나 리튼 경 정도는 믿을 수 있지 않은가?”
“하! 둘 다 이번 기회에 내 뒤통수를 때리려 달려들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차라리 지금 우리 둘이서 합의해서 단번에 뒤처리를 하는 게 나을 게야.”
이번 일로 다시 자유당 내에서 입지가 탄탄해진 글래드스턴과는 달리, 평소 적이 많았던 디즈레일리였다. 당장 그가 후계자로 점찍어두었던 솔즈베리 후작부터가 몇 해 전까지도 당 내의 대표적인 반대파 아니었던가.
“자, 그럼 시작해보세나. 우선 최근 캐나다나 일본의 예를 따라서, 연방 내의 일개 구성국 수준 자치권을 발칸 국가들에게 부여하는 것을 러시아에게 제의하자. 이게 우리 쪽의 원안일세.”
“우리 보수당보다도 러시아 차르는 공화국이니 독립이니 하는 데 경기를 일으킬 테니, 그 정도라면 아마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듯하군.”
“오스트리아도 마찬가지일 걸세. 그 친구들도 혹 헝가리 쪽의 다른 민족들이 허튼 소리를 할까봐 신경이 곤두서 있지 않겠나.”
자치권이니 자유니 하는 그럴듯한 말에 방점이 찍힌 것을 보면 참으로 글래드스턴다운 합의안이었다. 물론 지금 그런 것을 가지고 비아냥거릴 여유는 없었지만.
“하지만 설령 차르가 만족한다 해도, 러시아 외교전선 전체가 만족하지는 못할 거야. 꼭 일 벌리기 좋아하는 족속들이 한둘씩은 있지 않은가. 술탄도 쉽게 개혁안에 따라오지는 않을 테니, 발칸에 계속 손을 대기는 해야 해. 거기에 대한 복안쯤은 가지고 왔겠지?”
“하하, 보수당에서 나를 이상주의자니 도덕군자니 하면서 비아냥거린다고는 해도, 나 역시 생각이라는 걸 하고는 산다네. 구제금융을 조건으로 목줄을 채워두어야 할 테야. 이왕이면 제대로 채권단을 조직해서 꾸준히 관여할 수 있도록 하는 편이 좋겠지.”
점차 천문학적인 액수로 불어나고 있는 – 그리고 그렇기에 술탄이 디폴트를 선언하기에 이른 – 오스만 투르크 국채의 최대 채권자는 당연히 영국이고, 그 다음이 프랑스다. 당장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 따돌림 당하는 신세를 모면하려 하는 프랑스는 영국이 내미는 손을 거절하지 않을 것이 명백했다.
“러시아가 만약 끼어들고 싶어하면, 그럴 용의를 황금으로 보이라 하면 되겠지! 무엇하러 굳이 군대 대 군대의 싸움을 해야 하는가? 이쪽이 훨씬 우리에게 유리한데.”
기분이 나쁜 것을 제하고 보면, 설득력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군대, 특히 육군이라면 유라시아 어디로든 보낼 수 있는 러시아다. 아무리 레드코트(영국군)가 정예하다지만 강대강의 대립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반면 세계지도를 놓고 벌이는 지금의 경쟁을 아예 금력의 다툼으로 바꾸어버린다면, 러시아는 영국의 상대가 되기 어렵다.
“하지만 저 완고한 술탄이 유럽인 채권자들의 말을 듣겠는가? 가뜩이나 가만히 있으면 될 것을 굳이 무력진압을 강행해서 사태를 키웠는데...”
“그건 수상 각하께서 고민할 사항 아니겠는가. 하하하!”
글래드스턴의 너털웃음에 디즈레일리도 절로 쓴웃음이 나왔다. 지지도가 땅에 떨어진 지금의 술탄을 적당히 갈아치우고 꼭두각시를 내세우는 것 정도야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테지만, 그렇다고 해서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 두통 유발하는 사안을 맡아 처리해야 하는 것은 어쨌든 현직에 있는 자신이 아닌가.
“극동의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자네가 극동을 러시아에게 내어주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난리가 난 모양이라고 내 조선인 친구들은 말해주더군.”
갑자기 러시아가 황당한 요구를 내어놓으니 뭔가 곡절이 있으리라고는 짐작했지만, 엉뚱하게도 옛 돌궐의 강역을 놓고 벌어진 싸움이 조선까지 불똥 튀겼다는 얘기를 다름아닌 영국 신문의 기사를 통해 접하게 되자 조선의 조야는 발칵 뒤집혔다.
물론 원론적으로 따지면 조선이 어떻게 생각하든 영국의 위정자들이 신경 쓸 필요는 없는 노릇이었지만, 이미 여러모로 조선과 얽혀버린 글래드스턴은 또 매몰차게 조선 선비들을 내버릴 수도 없었다.
“보나마나 그 군밤장수 왕이 또 뭔가 해괴한 발상을 꺼내서 중재안이라고 내보였겠지. 이런 데서 귀 얇은 자네라면 당연히 그대로 가져왔을 테고. 일단 들어나 보세.”
“자네, 너무 내 속을 잘 아는 것 아닌가? 마침 일본 북부에 새로 생긴 그 홋카이도 공화국이 재정난을 겪고 있으니, 러시아를 꼬드겨서 그쪽에 투자할 수 있도록 알선해주면 어떻겠는가, 하더군.”
잠시 생각해보니, 아예 전례 없는 제도라면 모르겠지만, 이미 동아시아철도회사의 사례도 – 생각해보니 언젠가 그쪽 지분을 빼돌릴 궁리도 해야 하겠지만, 급한 불을 끄고 난 뒤의 일이었다 – 있겠다, 이번에 오스만 투르크 국채를 놓고 세울 국제기구도 있겠다, 유사한 예가 적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우리야 좋지. 극동을 내주기로 한 것을 물릴 수는 없고, 어떻게든 러시아의 이익을 인정하는 모양새는 갖추어야 하니까. 하지만 러시아도 사정이 어려울 텐데, 군사력으로 빼앗을 수 있는 것을 굳이 이렇게 해결하려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비록 산업화가 덜 되어서 지금도 세계를 휩쓸고 있는 공황에 큰 타격이야 입지 않았다지만, 지금 영국이 하려는 것처럼 돈놀이로 세계를 손아귀에 쥘 궁리를 하기에는 한참 모자란 러시아다. 발칸에서 글래드스턴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이미 균형추가 영국에게 기우는 셈인데, 이미 디즈레일리의 입으로 공언한 극동에서의 이익을 굳이 남과 나눌 이유가 있겠는가?
의아해하는 디즈레일리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는지, 글래드스턴의 설명이 뒤따랐다.
“걱정 말게. 내 조선 쪽에서 듣기로 이미 러시아도 그런 해결방안에 동의했다고 하니까. 어떻게 그리 하였는가, 하면 또 재밌는 사정이 있더군그래...”
멀리 한성에 앉은 조선국왕 귀남 생각하기에는, 러시아가 갑자기 무리한 요구를 해오는 데는 또 나름의 사정이 있지 않은가 싶었다.
“비록 영국 내에서 외교정책을 놓고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하나, 우리 러시아와 조선 사이의 일과는 무관합니다. 차르 폐하의 정부가 요구하는 조건은 이전과 동일합니다, 국왕 전하.”
다시 한 번 조선이 연해주를 통해 부당한 이익을 취해왔음에 대해 나름대로 열변을 토한 러시아 공사 슈트루베가 입장을 요약했다.
처음 그가 이 얘기를 꺼낸 이후로, 조회니 경연이니 하면서 연해주 이야기를 쭉 들어온 귀남이 엉뚱한 질문을 던진 것은 그때였다.
“공사, 그런데 내가 듣기로 요새 연해주는 참으로 흥성하여, 사방 만리에서 상인이 몰려오고 도호부 격인 해삼위는 인정(人丁)이 크게 늘고 있다 하였소. 정말 아국이 귀국의 재보를 침탈하고 있다면 이는 예의 아는 나라로서 마땅히 허물로 받아들여야 할 일이지만, 정작 내 보기에는 그렇지 않은 듯하니, 혹 귀국 도성 피득혁이 이곳에서 수천 리나 떨어져 있어 귀국의 대군주께서 이런 사정을 잘못 알고 계시지 않으신가 싶구려.”
의도치 않게 아픈 곳을 찔린 슈트루베가 허둥대자, 임금은 더욱 의아해하는 눈총으로 빤히 살펴볼 뿐이었다.
극동에 제국의 미래가 있다 주장하며 평생을 극동에 바친 무라비요프 백작은, 나날이 악화되는 건강에도 아직 블라디보스토크 터줏대감으로 남아있다. 그의 신념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조선과의 조약으로 연해주가 처한 곤경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일시적인 불편’으로 보고되고 있었기에 필사적으로 진상이 밝혀지는 것을 막아야 하였던 것도 있었다.
극동 개척에 투입되는 정부 재정 대부분이 고스란히 조선으로 들어간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적자 자체는 꾸준히 줄고 있었고, 인구도 (태반이 조선인 이중국적자라고는 하지만) 늘어나고 있었으니, 전모를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마침내 무라비요프의 공언대로 극동이 그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다못해 한없이 합리적인 고르차코프 공작조차, 이대로 극동이 중요해진다면 중국의 대륙종단철도 계획처럼 러시아도 시베리아 횡단철도 건설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하지 않겠냐고 사석에서 언급했다는 풍문이,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한양까지도 알음알음 전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번영’의 원인이 된 조러수호조약 개정의 (명목상) 당사자 슈트루베 역시 이 일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만약 조선왕이 미친 척하고, ‘그동안 미안했다. 조선인의 두만강 월경을 금일부로 금지하겠다’ 해 버리면, 연해주에서 조선만 ‘부당한 이익’을 취했던 것이 아님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이 정도로 심각한 상황을 왜 지금까지 이실직고하지 않았느냐며, 여러 사람이 날벼락을 맞게 될 터.
“하, 하지만 저희 극동에서 조선이 러시아보다 더 많은 이익을 취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지 않습니까? 나라와 나라 사이의 공정함을 위해, ‘예의를 아는 나라’로서 지금이라도 조치를 취함이 맞지 않을지요?”
“으음, 그래도 귀국은 북방의 큰 나라요, 우리는 아직 곳간 풍족하지 못한 작은 나라이니, 설령 그렇다 해도 선뜻 내어주기는 어렵겠구려... 대신 다른 방도를 마련하여 귀국이 손해 보는 바를 벌충해주면 어떻겠소?”
이미 조선이든 일본이든 압박하여 무언가를 더 따내지 않으면, 쌓아올린 거짓 보고의 무게에 침몰할 수밖에 없는 러시아 극동의 관계자들이었다. 이어지는 국왕의 제의를 듣고 보니, 총칼 휘두르며 모험에 나섰다가 밑천을 드러내느니 차라리 저의 임기 중에만 적당히 버틸 수 있을 정도로 그럴듯한 투자 방안을 만들어 본국의 눈을 가림이 나을 법했다.
그리고 정말 이게 본국의 눈을 가리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지금이야 가만히 있는 영국이라지만, 정말 러시아가 조선과 일본을 집어삼키겠다고 나서면 또 엉뚱한 트집을 잡아 개입할 영국임을 익히 아는 슈트루베였다. 이왕 그렇게 될 것이라면 차라리 비군사적인 방법으로 지금의 상황을 모면함이 낫지 않겠는가?
한 번 당했는데도 또 당할 수밖에 없게 상황을 이끄니, 이 모든 것이 싱글벙글 사람 좋게 웃으면서 독인지 약인지 모를 것을 내어주는 국왕 때문이었다. 슈트루베가 잠시 생각할 시간을 달라며 물러간 사이, 언제고 조선이 했던 것처럼, 호구 하나 잡아서 부국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하던 일본 신정부의 오쿠보 내각도 쌍수 들어 환영한다는 뜻을 밝혔다.
“... 이왕이면 이름도 그럴듯하게 ‘아시아개발기구’니 ‘아시아개발은행(Asia Development Bank)’이니 하자고 했다더군.”
“허, 세상 물정 모르는 동양 소국이 낸 제안이라기에는 참 절묘하군.”
“뭐, 그야 세상 물정 모른다고만 할 수는 없는 나라니까 그렇기도 하겠지. 비록 대부분은 고리타분한 유학자지만, 그래도 정부 요직에는 유럽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간 관료들이 적지 않은 모양이야. 그리고 지금 이곳 런던에 와 있는 이들도 있으니, 앞으로 늘면 늘지 더 줄지는 않겠지.”
러시아와 조선이 모두 이익 보는 방법을 마련해보라며 경연에서 부드럽게 당부한 것은 (물론 듣는 사람에게는 전혀 부드럽지 않았을 것이다) 귀남이로되, 날밤 새가며 공부하고, 오페르트와 벨레 등등 서양 땅의 사업하는 일에 밝은 자들의 조언을 받아가며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낸 것은 어윤중과 김옥균 등 젊은 관료들이었다.
그런 사정 알 리 없는 글래드스턴으로서는 여러 나라의 이익을 교묘하게 얽어낸 조선의 술수에 감탄할 뿐이었지만.
“스펜서 씨 같은 학자들이 왜 동양인들과 어울려 다니나 했더니, 그자들도 나름대로 꾀부리는 재주는 있군그래.”
“내 그래서 1840년에도(아편전쟁) 그렇게 무력개입을 반대했던 것 아니겠는가.”
러시아 하면 경기 일으키는 중국이 이 은행의 일에 동참하지는 않겠지만, 조선과 일본만 엮여도 꽤 규모가 커진다. 비록 공식적으로는 러시아가 온전히 가져갈 것을 용인하는 영국의 양보에 기반을 둔 것이니 다른 열강이 끼어들 수는 없겠지만, 결국 러시아가 투자하는 금액이 시티 오브 런던의 금융가에서 나오리라는 점을 생각하면 아랫돌 빼어 윗돌 괴는 격이다.
“스펜서 씨도 확실히, 이번 일로 동양을 보는 눈이 조금은 달라진 것 같다고 하더군. 내 이번 캠페인에서 동원한 전략 중 상당수가 저 조선인들의 도움을 받아 고안한 것이라 하면 자네는 믿겠는가?”
“그게 정말인가? 거 참, 그치들이 선거를 한다고 했을 때는 그저 그럴듯하게 흉내내는 데 그치는 줄 알았는데.”
“존 씨(전우)가 말하기를, 그 나라에서 말다툼으로 정치를 한 것이 벌써 5백년에 가깝다 하던데, 다윈 선생의 이론에 따르면 그 정도라면 충분히 뭔가 한쪽으로라도 진보가 일어나지 않았겠나.”
글래드스턴이야 농으로 던졌지만, 실제로 스펜서를 요새 고민하게 만들고 있는 화두이기도 했다. 물론 반절은 동양에 대한 선입관과 착각으로 인한 것이었지만, 적어도 이전처럼 단순히 야만으로 치부하고 넘어갔다가는 학술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크게 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여하간 이번 일로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았네. 어지간히 언변에 자신있지 않고서는 언론 가지고 장난칠 생각은 하면 안 되겠어.”
“그러게 말일세. 동양 속담에 입은 재앙의 문(口是禍之門)이라고 한다던데, 그 안에 진실이 한 알갱이쯤은 들어있는 것도 같군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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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비 백작은 역사 속의 영국 외교관들 중에서 거의 신념에 가까울 정도로 확고한 고립주의 성향을 지녔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영국이 절대 다른 국가들 간의 다툼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믿었고, 원 역사에서는 디즈레일리 내각이 러시아와 전쟁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주영 러시아대사 슈발로프에게 내각의 회의 내용을 유출하기까지 했지요. (현직 외무장관이 말입니다.)
글래드스턴과 디즈레일리는 영국 정치사상 가장 유명한 라이벌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만, 의외로 서로 악감정만큼이나 호의도 품고 있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같은 토리당 출신이기도 했고, 그때 이미 (작중에 나오는 것처럼) 상대의 수완에 서로 감탄하면서 호의적인 평가를 했지요. 정치적으로 갈라선 이후에도 계속 대립하기는 했지만, 악감정과 호의가 뒤섞인 사이는 계속되었습니다.
원 역사의 오스만 술탄 압뒬아지즈는 1876년 봄 폐위됩니다. 1870년대 초중반 연이어 발생한 기근과 자연재해, 그리고 1875년 발칸 일대의 반란 등등 갖은 실책 속에서, 그간 막대한 예산을 퍼부으며 진행한 근대화 노력이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불만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지요. 그리고 폐위된 지 닷새만에 자결하여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합니다만, 정황이 정황이었던지라 여전히 암살되었다는 주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1875년 겨울 디폴트 선언과 뒤이은 동방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1881년 유럽 국가들은 오스만공공부채관리국(Ottoman Public Debt Administration)을 설립합니다. 공식적으로는 유럽 기업들의 이익을 위한 협의체였지만, 실제로는 유럽 국가 관료들이 운영하는 등 여러모로 식민지배 기구로서의 성격을 가졌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19세기 후반은 1865년 최초의 국제기구인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이 세워지는 등 국제기구를 통한 국제정치 이슈의 관리가 시도되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덕분에 원 역사에서는 2차대전 이후에 세워져야 할 아시아개발은행이 (비록 이름만 같기는 합니다만) 거의 100년 앞서서 등판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