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입은 화의 문이라 (1)
늘 그렇듯, 1876년 2월 X 클럽(X Club) 모임은 저녁식사와 함께 파했다. 겨울 해야 진즉에 저물었지만, 세계의 중심을 자처할 수 있는 런던답게 여기저기 가로등이 환하였기 때문에 하늘을 가득 덮은 구름은 누르스름한 빛을 띠었다.
“요새 날씨가 영 우중충하니, 원. 요 근래 햇빛 보기가 유난히 어려워지는 느낌일세.”
모임 끝나고 나서 좌장 겸 저의 친우인 토머스 헉슬리(Thomas Huxley)에게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가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래서 그런가 요새 더 관절이 쑤시는 느낌이야. 폐부 깊숙한 데 뭔가 막힌 느낌은 더하고, 거기에 만성적인 피로까지 겹쳤다네.”
“자네 주치의는 뭐라 하던가?”
“늘 똑같지, 무얼. ‘항상 건강하십니다.’, ‘서른 살 청년 건강이십니다.’ 자연과학의 발전이 암만 눈부시다 해도, 이렇게 응용 분야의 진보로 이어지고 있지 못해서야 되겠는가.”
제 벗의 건강염려증을 잘 아는 헉슬리는 가볍게 넘겼다.
“그보다 요새 자네를 귀찮게 한다는 그 동양인은 어떻게 했나?”
작년인가, 동양의 어떤 소국(小國)에 새로 대학을 세웠는데, 맨바닥에서 교수를 만들어낼 수는 없는 일인지라 우선 서양 학문을 배우기 위해 찾아왔다는 촌인지 존인지 하는 서른 남짓한 동양인이었다. 저의 책을 읽고서 묻고자 하는 바가 있다면서 끈덕지게 달라붙는 것이 여간 귀찮지 않았다.
“뭐 어떻게 할 것까지 있는가? 그냥 무시하고 있네. 왜 그러나?”
“실은 모임이 진행되는 동안 또 어떻게 알았는지 찾아와서 문밖에 서신 한 통을 놓고 갔거든.”
“그런 건 그냥 자네 선에서 알아서 확인해보고 버려주면 되지 않나? 뻔한 내용일 텐데...”
“글래드스턴 씨의 추천서가 뻔한 내용이라고 보기는 어렵지.”
농담하듯 툭 던지는 말에, 코트 챙겨 입던 손이 멈췄다.
“내가 아는, G.O.M(위대한 늙은이. 글래드스턴의 별명) 글래드스턴이 맞나?”
“다른 글래드스턴도 있나? 자, 받아서 한 번 보게.”
경제공황과 재정난으로 인한 논란 속에서 물러난 글래드스턴은 여전히, 아니, 어쩌면 야당으로 물러났기에 더 당당히 온갖 소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누가 도덕군자 아니랄까봐, 아일랜드 문제부터 요새 언론을 달구고 있는 ‘동방문제(Eastern Question)’까지. 건드리지 않는 사안을 찾기가 차라리 더 어려우리라.
펼쳐보니 정말 글래드스턴의 추천서가 맞았다.
“그 동양인이 코리아에서는 꽤 유명한 지식인이라는군. 그 나라 공사가 보증한 사람이니 한 번쯤 만나보아도 괜찮겠다... 라는데. 흠.”
이것이 노사학원 대표로 런던에 온 전우가 (아직 그런 이름이 붙지는 않았지만) 사회진화론의 대표주자 격인 허버트 스펜서와 만나게 된 계기였다.
이름은 대표라지만, 실은 사실상 쫓겨난 격이라, 비록 이항로의 제자들과 사이가 좋다고는 할 수 없었기에 대신 노사학원 쪽에 붙었지만, 그 기질 어디 가지 않아 기정진의 논의도 비판한 적이 많았던 전우였다. 당연히 가야산 자락에 학원 터 닦일 무렵부터 서로 가시방석 앉은 것은 마찬가지라, 마침 주영 공사를 새로 바꾸는 차에 서양 나라에서 학문 배워 올 사람들을 모집한다 하니 그 자리에 끼어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여전히 양이에게서 배울 바가 얼마나 있겠느냐며 자부하던 전우였다. 그래도 가서 직접 눈으로 보고 온다면, 스승의 글에 (전우가 보기에는 합당한) 의의(疑義)를 달았다고 양으로 음으로 툭툭 건드는 다른 자들을 능히 억누를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영국행 배에 몸을 실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운현궁 대원군의 머릿속 깊은 데서 나온 꾀에서 시작하였음은 꿈에도 알 리 없었다.
공식적인 연락이야 전신으로 보내면 말 그대로 번개와도 같이 본국과 주고받을 수 있다지만, 이번 일은 운현궁이 맡긴 일이니 거기에 들지 못한다. 그러므로 족히 두세 달은 걸릴 서신을 쓸 수밖에.
허나 조선이 문호 열기 전에는 어차피 같은 팔도 안이라도 한번 주고받는데 그 정도 시일 걸릴 것을 각오하여야 했으므로, 새로 부임한 영국 공사 이호준(李鎬俊)은 전혀 거리끼지 않고 붓을 들었다. 어지간한 서신이라면 서양 붓(펜)과 먹물(잉크)을 쓰겠지만, 운현궁에 부칠 글을 어찌 그런 양이의 문구로써 다룰 것인가? 멀리서 챙겨온 먹을 조심스레 갈았다. 떠나올 제 당부 받던 일이 아직도 머릿속에 선하였다.
‘물론 영길리가 대서의 대국이므로 귀하게 다루어야 함은 맞지만, 자네와 같은 이가 고작 공사로 가기에는 격이 조금 맞지 않는다 여길 수도 있었을 테지.’
‘국사 받드는 일일진대 어찌 대소와 귀천을 놓고 사심을 품겠습니까?’
‘허허, 내 바로 그런 성품 때문에 자네를 천거한 게야.’
이호준의 서자 윤용(李允用)이 대원군의 서녀에게 장가 들었으니 따지자면 사돈이라, 충분히 위세 부릴 만한 입지였지만, 지금까지 몸을 사리며 조용히 경직과 외직을 돌고 있던 이호준이었다. 그러다 보니 개화당에도, 유림에도, 심지어 공산당에도 그를 주목하는 이가 없었다.
인물됨이 용렬하여 그렇다면 모를까, 사실 속이 능구렁이라 그렇다는 것을 같은 능구렁이 대원군이 못 알아볼 리 없었다. 그 집안의 대를 잇게 되면 절로 그리 되는 것인지, 이호준의 양자 되는 완용(李完用) 역시 아직 나이 스물도 되지 않았건만 총명하고 사려깊다는 평을 듣고 있었다. 그러니 이호준도 이곳 영국으로 함께 데려온 것이지만.
‘이미 금상께도 말씀 올려 윤허받은 사안일세. 장차 천하의 대세가 흔들리게 되면 필히 영길리가 끼어들게 될 터인데, 아국의 힘이 미약하니 대신 무얼 하든 아국을 신경 쓸 수밖에 없도록 변죽을 살살 건드릴 수밖에 없으이.’
적으로 두든, 아군으로 두든, 적어도 조선이라는 이름이 영국 위정자의 머릿속에 들어가도록 만든다. 그리하여 그 나라에서 정사를 논할 때, 조선이 그저 천하 정세의 거스름돈이 되는 일이 없도록 만든다. 어차피 장차 청국과 다투게 된다면 영길리와 아라사가 끼어들지 않을 리가 없으므로, 어떻게 영길리 내에 닿는 선을 만들어두자는 것이 대원군의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외국 문물 공부를 핑계로 노사학원의 이름난 선비들 여럿을 데려오고, 또 그 나라 여인들 풍속이 무속(巫俗)을 좋아한다 하니 몰래 총명하고 젊은 (그리고 욕심 많은) 무당 몇몇을 끌어들여 사교계에 풀어놓기도 하였다 (공식적으로는 역시 유학생이었다) .
개중 박 모라 하는 젊은 무당이 ‘신령의 참 주인(Mistress of Spirits, 眞靈君)’을 자처하며 귀부인들의 강령회(降靈會, séance)에 단골로 끼어들게 되었다고도 하였지만, 어차피 여인네들의 일이니 이호준은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될 일이지 않은가.
‘또한 지난 번 노비의 법제를 폐한 일로 영길리 내에 아국에 호의 품은 자들도 적지 않을 것이야. 이를 놓쳐서야 되겠는가?’
그리하여 수소문해보니 당시 총리대신 벼슬 하던 글래드스턴이라는 이가 발의한 사안이라 하여, 부임하자마자 찾아가 좋은 말로 아첨하며 환심을 샀다. 속으로야 어찌 되었든 겉으로 군자 노릇하면서 상대 비위 맞추기는 이호준의 장기라 할 수 있었다. (내심, 그의 귀한 양자 완용도 저의 그런 처세하는 술기를 배워 익히기를 바라는 이호준이었다.)
이것이 학자 스펜서와 선비 전우가 몇날 며칠간 우격다짐을 벌이게 된 사연이었다.
몇 달 배운 짧은 영어로는 끝내 소통에 한계가 있어, 논의 중반부터는 군에 있으면서부터 최익현의 이야기를 듣고서 외국 말을 공부했다는 황현(黃玹)의 도움을 받아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 그럭저럭 통하였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별 기대 않던 스펜서도 더욱 열이 받아서 논박을 벌이게 되기는 했지만.
“선생의 글을 보면, 인과 물의 성(人物性)이 같으며, 그 리(理)를 따져보면 곧 적자생존에 그친다 하였는데, 이것이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도 똑같이 쓰인다면 정녕 금수의 세상이 되지 않겠습니까?”
“인간은 고등하지만 결국 동물에 지나지 않소. 인간의 사회 역시 처음에는 그렇게 야만에서 시작해, 점차 문명으로 진보해나가는 것이라 할 수 있지. 이를 부정하는 것이야말로 기만이자 야만이외다. 역사를 살펴보시오. 얼마나 많은 야만이 그런 위선 뒤에서 정당화되었소?”
“그렇다면 중화의 요순(堯舜) 또한 상고의 군주이니 야만이라는 말입니까?”
“발전 단계의 일부다, 이 말이오. 서양 문명 역시 야만으로부터 발전하여, 고대 그리스와 로마라는 옛 문명을 일구었지. 동양 역시 이는 다르지 않을 게요.”
마음 같아서야, ‘그러다가 중간에 정체하고야 말았지만’을 덧붙이고 싶었지만, 아무리 학계의 명성이 높아도 일개 야인인 스펜서는 이 동양인 뒤의 글래드스턴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둘 사이에 자칫 멱살 잡고 싸울 만한 부분은 스펜서가 꾹 눌러담고, 점차 말이 서로 맞는 부분만 남게 되니, 어느새 둘은 서로 동의하는 면만 찾게 되었다.
“선생이 말하는 진보라는 것이, 창칼로 다투는 데 그치지는 않겠지요?”
“그야 물론이오. 어쩔 수 없이 군대가 동원되어야 할 때가 있음은 부정하지 않겠지만, 이를 빌미삼아 정부가 개인을 탄압하거나, 심하게는 사회 전체를 전제와 야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비극이 발생할 수도 있지.”
원 역사대로라면 훗날 수많은 애송이들이 자신의 글을 취장절구하여 바로 그 야만을 행하는 데 써먹으리라는 점을 의심조차 할 수 없던 스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지금 이르시는 말은 여러 성현들이 보아도 택할 만하다 하실 것입니다. 어찌 군병으로 사사로이 다툼을 밝은 도리라 칭하겠습니까?”
그리하여 전우가 상앙(商鞅)이 진나라에서 혹법(酷法)을 행하다 제가 만든 법에 걸린 이야기를 풀어놓자, 무슨 소리인가 의아하게 여기던 스펜서도 꽤 그럴듯하게 여기게 되었다. 마침내 상앙이 함곡관 관문을 넘지 못하고 요참(腰斬) 당하는 대목에서는 절로 탄식하였다.
“하, 우리 의회에도 그 이야기를 꼭 들려줘야 하는데 말이오. 결국 법과 군대로 자유를 누르게 되면 언제 그게 자신에게 돌아올 줄 모르는 일인데!”
이렇게 서로 좋고 좋은 이야기만 하니, 종종 멱살잡는 일이 있어야 비로소 재밌게 되는 토론으로서는 낙제점이었지만, 어차피 모임의 의의는 영국의 신사와 동양 반(半) 문명인의 대화라는 데 있었다.
그리하여 날을 거듭할수록 끼어드는 이도 하나씩 늘어났다. 스펜서의 친우 헉슬리도 대체 무슨 얘기를 그리 재밌게 하기에 저의 벗이 며칠째 고개도 내밀지 않는가 궁금해서 들리고, 모임을 사실상 주선한 글래드스턴도 짬을 내어 찾아오니, 어느새 이 토론이 신문에 보도되기에 이르렀다.
문제는, 그렇게 일이 커지는 것을 가만히 내버려둘 글래드스턴이 아니라는 데 있었다.
큼직한 삽화와 함께 글래드스턴의 논평이 실린 신문을 탁자에 내려치며, 수상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한탄했다.
“‘동양인조차 아는 전쟁의 어리석음’이라! 제길, 말이나 못하면...”
아직 글래드스턴이 수상 자리를 지키고 있던 시절, 노예제 문제를 놓고서 보기 좋게 한 방 먹었던 디즈레일리였다. 그 뒤끝이 아직도 남아있는데, 또 (하필 이번에도 조선이었다) 정적 글래드스턴이 그 놈의 도덕과 평화 소리를 하면서 발목을 잡아끈 것이다.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에서 시작한 반란의 불꽃은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진압해야 할 오스만 투르크는 그런 시늉을 하기도 전에 전비를 감당할 수 없다며 디폴트를 선언해 버렸다. 자신들이 망하면 최대 채권자인 영국도 피해를 볼 수밖에 없음을 알기 때문에, 저렇게 당당하게 나설 수 있는 것이리라.
그리고 그 자리를 노리는 것은, 발칸 반도의 슬라브 제(諸) 민족의 자주독립을 주장하며 개입하는 러시아였다. 기독교 주민들의 보호와 자치, 문명 운운하는 소리는 물론 겉 명분에 불과하고 지중해로 남하하는 통로를 마련하려는 것이 속내겠지만, 저들이 그런 명분을 진심으로 믿는다는 게 문제였다.
“각하, 여전히 대화의 가능성은 남아있습니다.”
발칸 문제의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이 자리에 불러두었던 외무장관 더비 백작의 말은 짜증을 더욱 돋웠다. 이 사태가 끝나면 꼭 저와 마음 맞는 – 그리고 은근히 후계자로 점찍어둔 – 솔즈베리 후작으로 갈아치우겠다 내심 다짐하는 디즈레일리였지만, 당장 손에 쥔 패가 이러할진대 어찌하겠는가.
“제발 이 헛소리에 동의하는 건 아니라고 해주게나.”
“다른 것은 몰라도, 이번 동방문제가 러시아와 전쟁을 벌일 만한 성격의 것은 아니라는 데는 동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 그러면 우리 러시아 친구들이 다르다넬스를 넘어 지중해까지 내려와도 된다는 말인가? 하는 김에 수에즈 운하 지분도 내어주면 어떻겠나?”
날도 우중충한데 대책 논의를 위해 불러놓은 장관까지 이런 소리를 하니, 좋은 말 나오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저 무뚝뚝한 장관은 초지일관 저의 하고 싶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각하, 오스트리아도 발칸 국가들의 독립을 원하지 않고 있습니다. 독일의 비스마르크 백작도 마찬가지일 것이고요. 지난 번 동아시아철도 사업에서 그렇게 고배를 마셨으니, 이번에야말로 발칸의 붕괴를 막아야만 할 겁니다. 저들의 제의는 충분히 합리적이고, 또 신뢰할 이유도 있습니다. 러시아 역시 그 정도 제안이면 합의할 수 있을 겁니다.”
오스트리아의 재상 언드라시(Andrassy Gyula)가 보내온 중재안은 물론 디즈레일리 이하 내각 전원이 숙지하고 있는 바였다. 그리고 왜 디즈레일리가 역정을 내면서 합의를 거부했는지도. 그것을 알면서도 다시 꺼내는 더비 백작도 어지간한 성미는 아니었다.
“각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는 물론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반문명국들이 충분한 유인만 주어지면 자체적으로 개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지난 조선 차관의 사례에서 입증되지 않았습니까? 우리의...”
“거기까지. 오스트리아에서 무어라 해왔는지는 나도 알고 있네. 적당히 투르크 정부에게 행정개혁과 자치권 보장을 요구하자. 말은 좋지. 하지만 저들이 영국을 배제하고서 통보한 합의이지 않은가? 어떻게 그걸 믿을 수 있지? 항상 남쪽으로의 통로를 갈망하는 저 러시아 불곰들을 정면으로 가로막는 합의인데, 고작 자치권 정도로 저들의 관심사를 다른 데로 돌릴 수 있으리라 보는가?
이런 상황에서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것은 우리 함대뿐일세.”
이미 러시아는 중앙아시아에서 남하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인도가 위험에 처할지도 모른다. 작년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던 공포였다. 그런데 그때는 무언가 조치를 취하라던 자들이, 막상 문제가 닥치자 전쟁만은 안 된다며 난리를 치고 있었다.
“정말 저들이 평화를 사랑해서 저러겠는가? 아, 물론 글래드스턴 그 양반이라면 충분히 가능하지. 하지만 나머지들은, 그저 군비로 세금이 나가는 것을 원하지 않을 뿐이잖나? 아, 더 있겠군. 자유당 놈들이라면 충분히 이번 조치를 가지고 아일랜드 문제까지 걸고 넘어지겠지! 왜 발칸에는 보장하는 권리를 우리 바로 옆 아일랜드에는 보장하지 않느냐. 역시 전임자가 나았다 운운하면서!”
그제야 분기가 다 가라앉았는지, 잠시 숨을 고르던 디즈레일리의 눈이 방금 전 책상에 던진 신문에 도로 가 닿았다. 동양인 복식을 그린 삽화가 눈에 들어오자, 갑자기 머릿속이 잠시 반짝 하는 느낌이었다.
“생각해보니 오스트리아의 제안도 충분히 믿을 수 있겠군. 단, 러시아로부터 확실한 장담을 받는다면 말이야.”
더비 백작이 반색하면서도 수상의 이어지는 말을 경청하려 귀를 세웠다.
“러시아 극동이 최근 번영하고 있다는 보고 기억하나? 이번에 아예 발칸으로부터 손을 뗀다는 보장을 추가한다면, 조선과 일본 북부에 대한 이익 확보를 용인할 용의가 있다... 이렇게 운을 떼 보도록 하지. 정말 러시아가 신뢰할 만한 상대라면, 이런 제안을 거부할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눈에 띄어보겠다는 대원군의 생각이,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 뒤통수를 때리게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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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 클럽은 ‘다윈의 불독’으로 유명한 토머스 헉슬리가 주도한 소수정예 사교 모임입니다. 당대에는 쟁쟁한 (그러나 오늘날에는 잘 기억되지 않는) 영국 학계의 영향력 있는 인사들의 모임이었지요. 오늘날에는 사회진화론의 선구자 정도로만 기억되는 허버트 스펜서도, 당시에는 바로 그런 영향력 있는 사람의 일원이었습니다.
진화론(물론 다윈의 진화론 발표보다 시기적으로 앞서 있었습니다만)과 자유지상주의를 바탕으로 체계적인 (본인은 ‘복합철학(Synthetic philosophy)’라 불렀습니다) 사상을 제시하는 스펜서의 글은, 당대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여전히 뿌리 깊게 박혀 있던 기독교 세계관과 과학의 발전이 제시하는 새로운 세계관 사이에서 균형점을 제시했거든요.
그러나 1890년대 이후 스펜서는 빠르게 영향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1930년대 ‘서구의 몰락’을 화제로 만들어낸 오스발트 슈펭글러처럼,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셈입니다.
빅토리아 시대 영국은 흔히 냉혹한 합리주의와 과학만능주의가 지배하던 것으로 인식되지만, 의외로 그 반대의 흐름도 적지 않았습니다. 심령주의(Spritualism), 즉 인간에게 과학으로 완전히 환원될 수 없거나, 반대로 과학을 통해 실체를 밝힐 수 있는 영혼이 존재하며, 영매(Medium, 靈媒)를 통해 소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상당한 영향력을 지녔지요.
오늘날 오컬트로 불리는 많은 초자연적 주장들이 이때 성립하게 되고, 또 체계화되었습니다. 셜록 홈즈의 모험을 쓴 것으로 유명한 아서 코난 도일도 심령주의에 심취한 바 있었지요. 그러나 심령주의는 여성들 사이에서 더 큰 호응을 얻었는데, 이는 여성이 그 ‘감성 중심적 성향’ 때문에 초자연적 현상에 있어 더 높은 감수성을 지닌다는 당대의 통념 때문이었습니다.
그 아들의 엄청난 악명 때문에 묻히는 감이 있지만, 이완용의 아버지 이호준 역시 상당히 출세에 밝은 인물이었습니다. 대원군의 애첩 계성월의 딸과 자신의 서자 이윤용을 통혼케 하였으며, 원 역사에서는 풍양 조문과 대원군 사이에서 연결책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합니다. 덕분에 고종 즉위 직후 벼슬길에 나선 후 거의 바로 동부승지로 특진하였지요.
심지어 대원군 실각 이후에도 권세를 유지해, 1874년에는 형조판서 자리를 얻어내고, 어린 순종의 교육까지 맡게 됩니다. 갑신정변과 을미사변 이후에도 지위를 잃기는커녕 오히려 벼슬이 계속 올랐지요. 처세의 달인이라 할 수 있겠지만, 때로는 그런 사람이 자리 보전이라는 명목으로 엄청난 악행을 저지를 수도 있음을 생각한다면 좋게만 볼 것은 아닐 듯합니다. (특히 자식농사 부분에서요...)
뒷부분에 디즈레일리가 언급하는 1875년~1878년 동방위기(Eastern Crisis)는 19세기 후반 최대의 국제정치적 위기였다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1875년 발칸 반도의 슬라브계 기독교 주민들의 반란으로 시작한 위기는, 러시아가 범슬라브주의에 의거해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복잡한 양상을 보이게 됩니다.
열강의 이해관계는 복잡하게 얽혀있었습니다. 러시아는 자국의 영향권 확대를 꾀하고 있었고, 바로 옆 발칸반도에서 소수민족들이 독립하게 될 경우 다민족국가인 자신 역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역시 밀접한 관련이 있었지요. 독일은 스스로 중립적인 위치에 있는 중재자라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발칸반도가 통일되어 있어야 철도를 깔아 이익을 취할 수 있었기 때문에 결코 부외자가 아니었습니다. (작중에서는 거기에 더해 이미 비스마르크의 정책 실패로 국제 철도시장에서 독일이 손해를 봤다는 인식이 있지요.)
수에즈 운하 개통으로 지중해 제해권에 더욱 민감해진 영국은, 거기에 아일랜드 문제까지 얽혔기 때문에 러시아 측에 양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제12차 러시아-튀르크 전쟁, 영국 지중해함대의 개입 등 열강 간의 전면전 직전까지 위기가 격상되다가, 1878년 베를린 회의를 통해 겨우 문제는 일단락되었습니다. 물론, 발칸 일대의 민족문제, 나아가 근대 민족주의 자체가 불씨가 되어 1차대전이라는 거대한 폭발로 이어지고 말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