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동쪽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 맞다 (3)
그저 선의로 시작한 일이 엉뚱하게 옆 나라가 쪼개지는 결과를 낳았다는 소식에, 귀남은 그저 놀랄 따름이었다. 그러나 생각하여 보니 사태가 어쩌다 저 지경에 이르렀는지는 감이 잡히지는 않아도 적어도 일본 안에 원한 품을 이는 많을 듯하여, 일단 오해라도 먼저 풀자는 생각으로 일본 공사로 다시 조선에 온 이노우에 카오루를 궁으로 불렀다.
“나로서는 그저 좋은 제도를 옆 나라도 함께 시행하면 좋겠다 여겨서 권면하는 뜻을 보였을 뿐인데, 이리 되었으니 참으로 미안하구려.”
듣는 이노우에는 앞부분, 그러니까 당초 선의로 의원제 도입 환영을 선언하였다는 데는 여전히 회의적이었지만, 근래는 조금 나아졌다 해도 여전히 나라 밖의 일에는 깜깜이일 조선이 처음부터 일본을 쪼개놓을 심산은 아니었으리라 생각했다.
“어쨌든 우리 조선이 누차 다른 나라의 일에 끼어들어 졸지에 난리를 일으킨 꼴이 되었으니, 마땅히 잘못한 바를 고치고 해한 만큼 갚아야 할 것이오. 그대 정부가 필요로 하는 것이 있다면 부디 알려주기 바라오. 내 조정에서 기꺼이 논의하도록 하겠소.”
그러나 이노우에는 극구 사양하며 말했다.
“그렇게 신경을 친히 써주시니 나라와 나라 사이의 우호를 국왕 전하께서 얼마나 중히 여기시는지 다시금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비록 반도(叛徒)들이 나라를 참칭하였다 하지만 이번 일은 엄연히 일본국 안의 사정이며, 여기에는 참 예민한 사정이 여럿 얽혀 있습니다.
이번에야말로 전하의 선의가 자칫하면 잘못된 결과로 이어질 수 있으니, 송구스럽습니다만 전하의 어지신 마음과 더불어, 더 이상 일본국 국내의 사정에 관여하시지 않겠다고 확언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얼마 전 자신이 공사로 부임해 올 때만 해도 민권운동으로 동국을 뒤흔드는 공작이 잘 진행되고 있다고 이토로부터 확언을 들었지 않았던가. 그랬던 것이 조선의 ‘선의’ 두 번에 완전히 어그러져버렸으므로, 여기서 고맙다며 덥석 문다면 그야말로 사람이 아니라 낚시터 붕어라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조선을 활용하지 않는 것은 또 아쉽지 않은가. 어떻게 하면 조선왕에게 더 끼어들 핑계를 주지 않으면서도 이 황당한 정국을 처리할 수 있을까, 궁궐로 오는 길에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던 이노우에였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서양 나라들 사이에서라면 자칫 무례하다 할 만한 이 요구였다. 그러나 정말 운 좋은 범인(凡人)이든, 선량한 사람을 연기하는 위선자든 받아들이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었다. 전자라면 그 의도를 알더라도 미안한 마음에 그저 수락할 것이요, 후자라면 계속 그 가면을 쓰기 위해서라도 받아들여야 할 터.
“마음 같아서야 그러고 싶지만, 실은 엊그제 원산에 그 공화국의 자칭 임시정부 대표들이 도착하였다오. 말하기를 우리더러 중재를 해 달라던데, 혹 그 요청을 우리가 받아들이게 된다면 그 역시 귀국 사정에 끼어드는 꼴이니, 지금 그대가 청하는 그런 확언은 지금으로서는 해주기 곤란할 듯하오.”
말이야 그렇게 하지만, 이미 귀남의 마음은 미안한 마음에라도 중재를 돕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물론 저 혼자 궁리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니 요 며칠간 신료들, 그리고 필요하다면 참의원의 의견까지 들어보아야 하겠지만, 어쨌든 생각하기로는 자신의 잘못으로 애먼 일본 안에 싸움이 일어났으니 말리는 것까지는 사람된 도리로써 마땅히 해 주어야 하지 않는가 싶었다.
예상치 못한 정보에 이노우에의 귀가 퍼뜩 트였다.
“실례되는 일입니다만, 혹시 반군이 중재를 청하면서 내건 조건이 있었다면 미리 전해들을 수 있을지요?”
“그 정도야 도와주어야 하지 않겠소이까? 내 사람을 시켜 그쪽 공사관에 전하도록 하겠소.”
“나쁘지 않은 조건입니다.”
오쿠보의 집무실 소파에 앉아, 급보로 전해진 에조 측의 요구조건을 흝어본 이토 히로부미의 단평이었다.
“‘감히 지엄한 국체(國體)를 부인하겠다는 반심은 추호도 없으며, 다만 나라의 북쪽 관문을 지키며 무사들이 무사로 남을 수 있는 터전 일구기를 원할 뿐이다’... 서양식으로 말하자면 자치권을 요구하는 셈이군요.”
“독립 운운하는 것은 허장성세였다는 것이지. 불행 중 다행이랄까.”
차라리 막부의 잔당 정도만 데리고 변방에서 최후의 저항을 벌이는 것이라면 굳이 무력진압을 하지 않고 봉쇄 정도만 해두어도 알아서 무너졌을 것이다. 그러나 쓸데없이 먼저 발달한 언론 때문에 에노모토의 격문이 전국에 널리 퍼져버렸고, 북상하는 함대에 올라탄 무사만 해도 수백에, 심지어 규슈에서도 신정부에 실망한 사족 몇몇이 배를 빌려 에조치로 향했다는 보고가 있을 정도였다.
그러니 그 척박한 땅을 틀어막고 굶어죽기를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여차하면 외세를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그대로 다시 본토에 상륙하기만 해도 상당한 전력이 되는 것 아닌가. 사족들의 마음이 다 저쪽에 있으니 평민들을 모아다 군대를 새로 만들어야 할 텐데,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일은 아니다.
“에노모토 그 자도 바보는 아니니까요. 정말 나라 하나를 차릴 생각이라면 당장 가라후토(사할린)를 놓고서 노서아와 한 판 붙을 각오를 해야 할 겁니다.”
“그러고 보니 가라후토의 건이 있었지...”
눈살 찌푸리며 오쿠보가 고민에 빠졌다.
안세이(安政) 연간에 노서아와 통교하면서 붕 떠버린 가라후토와 치시마(쿠릴 열도) 문제는, 에조치를 사람 살 만한 땅으로 개척하기 위해서라면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건이다. 사족들을 저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라도 억지로 강경한 척을 해야 하는 에노모토는 적어도 겉으로 노서아에게 (별 쓸모도 없는) 북쪽 땅을 내어주겠다는 말을 꺼낼 수는 없는 입장이었다.
“지금 신주 안에 남아도는 게 사람이니 어디론가 보내기는 해야 하고, 그것으로 장차 식산흥업(殖産興業)의 밑천을 마련해야 하네. 내 누누이 말했으니 이토 자네도 그 뒤에 이어질 말은 눈 감고서도 외울 수 있겠지.”
“천만의 말씀이십니다. 설령 외운다고 한들 원숭이가 사람 흉내 내는 격이지, 각하의 통찰을 따라가겠습니까?”
“이 사람아, 지금이 아첨을 할 상황인가.”
뜬금없는 이토의 아첨에 오쿠보가 면박을 주었다. 물론 그도 사람인지라 줄곧 납덩이 달아놓은 것처럼 아래로 향하던 입꼬리가 잠시나마 위로 올라오는 것을 피하지는 못했다.
“어쨌든 그러려면 북쪽이든 남쪽이든 확실하게 우리 것으로 해야 하는데, 남쪽이야 당분간은 눈도 못 돌리게 되었고, 남은 건 북쪽뿐이야. 그런데 그쪽은 아무리 사람을 보내도 한동안은 이익은커녕 손해만 날 것이 명백하단 말이지.”
“방법이 있겠습니까?”
“조선이 북쪽에서 열심히 사업을 벌이고 있는 것을 보면 얼추 감이 잡히지 않는가? 게다가 지금 하코다테에 눌러앉은 자들은 속사정이 어떠하든 엄연히 역도야. 겉으로 투닥대는 형세를 갖추면, 욕심 많은 노서아는 어떻게 더 남쪽으로 내려올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라도 에조치에 발을 들여놓을 수밖에 없겠지.”
요컨대 이왕 이렇게 된 것 열강들을 대상으로 사기극을 벌이자는 계획이었다. 북쪽의 개발에 들 막대한 자금을 노서아의 지갑에서 충당하는 것이다. 욕심 많은 불곰은, 에노모토의 공화국 정부가 실은 오쿠보의 신정부와 공모하고 있음도 모른 채, 동방 땅에 태평양으로 향하는 전초기지가 하나 더 생겼음에 눈이 돌아가 자본을 몰아넣을 것이고, 그것은 고스란히 해협 건너 일본 내지로 들어오게 되리라.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하기에는 당장 연해주 땅에서 조선인들이 벌이고 있는 행각이 너무나 명명백백한 증거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려면 겉으로나마 우리가 다투는 모양새를 취해야 하겠군요.”
“그렇지. 아예 다른 나라 살림을 차려버리면 그건 그대로 곤란하지만, 근자에 영국이 캐나다에게 했다는 것 정도로는 해둘 필요가 있겠어.”
이름은 자치령이되 실질적인 독립국으로 만들어주고, 다만 열강에 빌미를 주지 않도록 외교권만을 가져온다. 그러고서는 공수표로 북쪽의 여러 이권들을 팔아넘긴다. 즉석에서 생각해낸 것치고는 꽤 그럴듯하였다.
“에조, 아니, 이름부터 오랑캐(夷)면 조금 이상하니까 뭐 그럴듯하게 들리는 다른 이름을 정하라고 해두어야 하겠군요. 좌우지간 무슨무슨 자치령 내지 자치공화국이라고 칭하게 해주고, 합중국이나 연방이라고 이름을 붙여서 내지와 묶어두어야 할 테니, 당분간 이곳 청사 직원들은 매일 야근을 하게 되겠는걸요.”
“봉급 받고 먹고살려면 그 정도는 해야지 않겠는가.”
벌써 머릿속으로 새 국호로 대일본연방(大日本聯邦)은 어떠할지 고민하면서, 오쿠보는 별 생각 없이 (누군가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할) 말을 내뱉었다.
“그보다 이 모든 소란의 원인이 된 의원제의 일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체면이 있으니 요시노부가 직접 선거에 나오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이대로 가게 되면 다시 옛 번주들이 전면에 나오게 될 텐데요.”
“뭐, 어차피 우리가 문명국 대열에 들어서려면 해야 할 일이기는 하지. 그래야 저 열강들이 우리를 겉으로나마 대등하게 취급해줄 것 아닌가. 이왕 이리 된 일 구색 갖추어서 선거도 제대로 하고. 어차피 돌아와 보아야 아래의 사족들이 대거 이탈하였으니 뭐, 얼마나 힘을 쓰겠나.”
소리소문 퍼져나가, 여러 관료들이 벌써부터 억장 무너지는 표정을 감추느라 노력하는 것을 보면서 이토 히로부미는 몰래 비웃었다.
소싯적 열심히 배워둔 영어로 말하면 오쿠보는 천생 스테이츠맨(Statesman)이라, 나라를 세우고 일으키는 일에는 참 부지런하였을 뿐 아니라 이토 자신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혜안을 보여줄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처럼 경지가 고매하다 보니, 마치 구름 위에 혼자 있는 후지산 봉우리처럼 하계의 일은 놓칠 때가 있었다. 물론 구름 걷혀 아래의 사정에 관심 돌리게 되는 일 없도록 적당히 계속 기분 맞춰줄 필요가 있기는 했다.
이번 소동만 하더라도, 이토가 보기에는 능히 돌 하나로 새 세 마리는 잡을 수 있을 텐데 그 중 한 마리에만 집중하는 것이 참 오쿠보답다면 오쿠보다운 일이었다.
나머지 새 두 마리는 무엇인가? 하나는 이번 일로 불평분자들이 죄다 북쪽으로 몰려가게 되었고, 추후에 머리 내미는 자들은 나오는 족족 몰아낼 수 있게 되었으니, 오쿠보가 좋아하는 식산흥업의 정책을 거리낌 없이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물론 딴에는 신정부를 저들 것으로 만들 생각이겠지만, 저들 동쪽 번들이 공식적으로 신정부의 일에 발을 걸치게 되었으니 에조치는 나라의 손아귀에서 벗어났지만 나머지 영토는 고스란히 정부의 통제 하에 들어오게 된 셈이었다. 지금 당장은 실감이 나지 않아도, 가랑비 내리듯 조금씩, 이토 자신이 보고 배웠던 서양의 방식으로 나라 하나를 만들어내면 된다. 아마 여기까지는 오쿠보도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마지막 새 한 마리는, 아마 오쿠보가 당분간은 깊게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요, 신경을 쓰지 못하도록 이토 본인이 미리 잘 챙겨야 하는 일이었다. 당초 계획과 달리 도쿠가와의 잔당이 무사의 길을 버리게 되었으므로, 이제 군부는 고스란히 신정부, 정확히는 삿초의 것이다.
하지만 사츠마 사람들로 말하자면 사이고는 칩거하고, 오쿠보는 다른 일로 정신이 없으며, 골수 무사들은 마음만이라도 (때로는 몸까지) 하코다테에 가 있는 상황. 그러니 그 자리는 저의 조슈 동지들이 채우고, 부족한 병사들은 맨 처음의 구상대로 징병제로 충당할 수밖에 없다. 사족들이 혹 반기를 든다 해도, 당장 사람이 부족하다는 핑계를 대면 무어라 반박할 것인가.
그렇게 십 수 년이 지나면, 육군, 그리고 잘 하면 해군까지 조슈가 가져갈 수 있을 것이다. 멋모르고 신정부를 집어삼킬 생각에 군권을 도로 잡을 가능성을 포기한 번주들이 후회할 때면 이미 일은 끝나있으리라. 일본이 장차 따라야 할 프로이센의 모델이 보여주지 않았는가. 지금 당장은 북독일 연방처럼 대일본 연방이라는 겉보기 틀을 지켜야 하지만, 군사력이 완비되면 그럴 필요조차 없게 되리라.
“나라는 붓과 펜으로 다스릴 수 있어도, 권력은 철과 피에서 나오는 법이지!”
야마가타 아리토모에게 찾아가서, 자신은 동양의 비스마르크가 될 테니 한 번 동양의 몰트케가 되어보겠느냐 제의할 생각에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 기세 높게 내뱉은 혼잣말에, 의기양양한 웃음이 뒤따랐다.
원자가 옹알이를 넘어 요새는 간단하게나마 문장 정도는 말할 수 있게 되면서, 귀남은 이래서 사람이 팔불출 소리도 듣곤 하는구나 새삼스레 깨닫고 있었다. 날이야 장마도 지나고 복날 더위 가까워오고 있다지만, 아기 재롱부리는 것을 보면 그런 것 따위 무에 신경쓸 게 있겠는가. 하물며 둘째, 그러니까 대군마저도 옹알이를 (저의 형보다 빨리) 시작하였음에랴.
그래도 어쨌든 나라의 임금이니만큼 해야 할 일은 해야 하는 법이다. 저 귀여운 아들들을 위해서라도.
“다행히 일본국의 사정은 양자가 화해하여, 한쪽은 북해도공화국(北海島共和國)을 칭하고, 그 군주로 일왕을 섬기고 연방(聯邦)하는 법도를 어기지 않겠다 약조하니 다른 쪽이 받아들였다 합니다.”
하필 왜 ‘공화(共和)’를 국호에 집어넣었느냐를 가지고 민간에서는 말이 많았지만, 그저 서양 말을 옮기는 데 견강부회하여 고사를 끌어다 썼을 뿐임을 알았던 젊은 경연관들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애초에 공화국이라는 말 자체에 무슨 이상한 것이 있는가 싶었던 귀남은 말할 것도 없었다.
“참으로 잘 된 일이라 하겠습니다. 일본국이 이처럼 쪼개졌으며, 남으로는 유구국이, 이제 북으로는 북해도국이 지키게 되었으니 어찌 우리에게 횡포한 짓을 먼저 하겠습니까?”
이 모임에서는 거리낌 없이 속내를 말하는 김옥균이 먼저 평했다. 처음 내정개입이라며 반대를 표했을 때에 비하면 입장이 뒤집힌 셈이었지만, 프랑스 유학 이후 나라 사이 관계라 함은 자신을 상대보다 강하게, 그리고 그게 안 된다면 상대를 나보다 약하게 만드는 데 요체가 있다 여기던 김옥균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자칫 더 위태로운 지경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번 소동에 우리가 관여한 바가 없지 않으므로 혹 일본국의 사람 중 간사한 이들은 이 모든 일이 아국의 탓이라 몰아세울 수 있으니, 마땅히 경계하여 후환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지난 번 수신사의 일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일본국 사람들이 조선, 나아가 국외인이 나라 안에 개입하는 것을 크게 꺼려한다는 데 (물론 세상 어떤 나라가 그렇지 않겠냐만은) 생각이 닿았던 김홍집은 은근한 우려를 표했다.
“내 지난 경과별시 이후 일본국에 의원제를 권면하자 한 것은, 순전히 그들이 우리와 같이 생각하고 우리가 즐겁게 여기는 것을 함께 즐겁게 여기게 되면 장차 다툴 일이 없어지리라 여겼기 때문이었소.”
두 사람이 먼저 꺼낸 말을 듣고서, 잠시 생각 정리한 임금이 간만에 의견 실은 전교를 내리니 모여 앉은 모두가 경청하였다.
“우리가 다툼을 즐겁게 여기게 되면 저들 역시, ‘과연 조선이 우리 안에 싸움을 부추긴 것이로구나’ 여기게 될 것이요, 그렇지 않고 화합을 즐겁게 여기게 되면, ‘조선이 정녕 우리가 올바른 일을 하도록 돕고자 저리 행하였구나’ 여기게 될 것이외다.”
말이야 최대한 있어 보이게 꾸민다지만 속내를 살피자면 무슨 심오한 철리(哲理)는 아니었다. 똑같은 일을 해도 아 다르고 어 다르며, 이득 되는 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달리 보이는 법이니, 굳이 임금이 아니더라도, 또 이 자리 경연관처럼 총명한 수재들이 아니라 하더라도, 길바닥에서 군밤장수 노릇 한 마흔 해만 하면 누구든 깨달을 수 있는 일이었다. 적어도, 귀남이 생각하기에는 그러하였다.
“어찌 되었든 일본국이 저리 된 데 우리가 관여하였던 것은 사실이니, 장차 우리 하기에 따라 그것이 공이 될 수도, 과가 될 수도 있을 것이며, 그에 따라 일본국이 은원(恩怨) 헤아림도 갈리게 될 것이오. 물론 이 자리에서는 경들이 생각하는 것을 모두 털어놓음이 가한 일이지만, 또 나라 전체의 정사를 생각함에 있어서는 부디 이 일을 잊지 말기 바라오.”
수긍하든, 수긍하지 않든, 옥음이 내렸으므로 다들 성은의 망극함을 칭송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찬동하는 신료와 마음 깊은 곳까지 와 닿지 않는 신료, 그리고 영 떨떠름하게 여기는 신료가 따로 있었으므로, 고개를 숙이는 데 있어서도 그 완급이 미미하게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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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라는 이름은 사실 북해도(北海道)의 음독이 아니라, 그 반대로 본래 있던 홋카이도라는 이름을 일본식 독음으로 끼워 맞춘 것입니다. 이 경우에는 한 국가의 지방행정조직인 도(道) 대신 별개의 섬이라는 점을 강조해 도(島)를 쓰게 되었습니다.
원 역사에서 일본과 러시아의 국경선은 한동안 애매한 상태를 유지했습니다. 1855년 양국 최초의 조약인 러일화친조약(시모다 조약)은 쿠릴 열도를 대략 반분하고, 사할린 섬(가라후토)은 공동관리구역으로 규정하였지요. 그러나 메이지 유신 이후 신정부가 홋카이도를 첫 번째 확장 대상지역으로 점찍고 대규모 개척을 추진하면서, 양국 사이에 보다 제대로 된 정계를 할 필요가 제기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1875년 봄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이 조인되어, 쿠릴 열도 전역이 일본령으로, 사할린 전체가 러시아령으로 각각 귀속되었습니다. 이때 일본측 대표가 바로 능력을 인정받아 사면된 에노모토 다케아키였습니다.
한편. 엉뚱하게도 캐나다의 사례가 언급되었는데, 이는 1867년 성립된 캐나다 자치령(Dominion of Canada)의 이야기입니다. 미국의 국력이 삼류에서 이류 정도로는 올라오고, 점차 아메리카 대륙 전체에 세력을 투사하기 시작하면서 캐나다 식민지에서도 보다 체계적으로 자치를 보장받음으로써 미국에 흡수되지 않도록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이에 따라 현재 캐나다의 동부에 해당하는 네 개 지방의 연합으로 연방국가 캐나다가 탄생하였고, 고도의 자치권을 부여받게 되었습니다. 작중의 홋카이도 공화국도 그러니까 일본 연방 안에 있지만 신정부와는 정치적으로 대립할 수 있는 구조인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