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종, 군밤의 왕-83화 (83/320)

27. 철마는 누구를 위해 달리는가 (3)

아마 계륵이라는 말이 서양에 있었다면, 지금의 심정을 놓고서 그렇게 불렀을 것이다. 그저 만주에 철도를 놓는 것이라 생각하고서 모여들었다가 저들 생전에 완성을 보기 어려울 엄청난 대사업으로 계획이 수정되었다는 일방적 통보를 들은 영·불·독 대표들의 머릿속에서, 처음의 경악이 잦아든 뒤 떠오른 생각이 대개 그러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철도야말로 현대 문명의 핵심을 이룬다 할 수 있으니, 귀국에서 이처럼 대규모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혜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 재원은 어떻게 조달하실 생각이신지요? 만주 지역에만 철도를 부설하는 것도 충분히 많은 투자를 요구할 텐데요.”

“앞서 말한 것처럼 기간을 반백 년으로 잡고 진행할 생각이오. 그렇다면 당장 우리 조정의 수입으로도 충분히 충당할 수 있을 것이며,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나면 먼저 완공된 구간에서 또 소득을 얻을 수 있을 터이므로 크게 걱정스럽지는 않소이다.

물론 분고(分股, 주식)의 법을 준용하여, 그대들이 미리 자금을 보탠다면 그에 맞추어 후에 수익을 나누도록 할 것이므로, 보태고자 한다면 마음 가는 대로 하여도 괜찮소.”

독일 측 대표로 참석한 메비센(Gustav Mevissen)이 던진 질문에 이홍장이 태연히 답변하였다. 반절은 허세였지만, 어차피 저들이 이를 눈치 챌 계제는 아닌 듯하였으므로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중국의 속담에도 ‘지나치게 빠르게 하려다 보면 오히려 미치지 못한다 (欲速不達)’라는 말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너무나 큰 결정을 성급하게 내리다 보면 훗날 어려운 지경에 처하지 않을지요?”

이번에는 노구를 이끌고 직접 참석한 영국 측 대표 마테슨(James Matheson)이 의문을 제기했다.

지금 세 나라 대표들이 느끼는 가장 큰 문제는 단기적으로는 수익성이 땅을 치다 못해 뚫고 내려갈 지경이었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천장을 뚫고 치솟을 것이라는 점이 너무나 명백하다는 데 있었다. 나라의 앞날을 위해서라면 당연히 자금이며 기술이며 모두 댈 테니 지분을 내놓으라 해야겠지만, 지금의 정부,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사업을 생각하면 또 꼭 그렇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최상의 경우는 각자 소화불량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나누어 가져가는 것이다. 독식하자니 다른 나라의 눈치도 보이거니와, 당장 투자의 수익을 얻어내야 하는 상황에서 한동안 심연과 같이 자금을 삼킬 사업에 홀로 나서기도 저어되었다. 그렇다고 가뜩이나 어려운 정부 재정을 끌어올 수도 없는 법.

“아, 물론 그대들이 우려하는 것 또한 십분 이해하는 바요. 하지만 우리 조선에는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속담 또한 있소. 무릇 나랏일을 행함에 있어 그 첫머리를 때에 맞춤을 귀하게 여기니, 우선은 그대들의 뜻을 확인하고 함께할 나라를 구할 따름이외다.”

이번에는 이유원이 능글맞게 둘러대니, 대표들은 말을 잊었다. 허나 그의 말솜씨가 딱히 현란하였던 탓은 아니었다.

“잠시 시간을 주십시오. 말씀하신 것처럼 일의 시작이 중요하니, 저희 또한 그런 중요한 일을 논의하기에 앞서 마음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일동 중 가장 젊은 알폰스 로스차일드가 가장 먼저 흥분을 가라앉혔는지,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제의하였다. 아쉬울 것 없던 이홍장과 이유원이 그대로 수락하였으므로, 헐떡이며 찾아왔던 것이 무색하게 잠시 휴식을 취하게 되었다. 물론 말이 휴식이지 실제로는 가장 치열한 신경전의 막이 오를 것이었지만.

“흠흠, 우선 최선의 방책은 이익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 사업을 분할하는 것이겠군요.”

“물론입니다. 오십 년 동안 대륙을 종단하는 철도를 짓는 계획이라니, 말도 안 되는 얘기지요. 아마 저들이 어떻게든 주도권을 쥐어보겠다고 판돈을 확 올리려는 모양인데, 그런 술수에 놀아나서는 안 되고 말고요.”

“하지만 괜히 분할을 권유했다가 저들이 이번 사업 자체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겠다고 나서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지금 우리로서는 사업의 타당성을 걸고 넘어지는 것 외에 마땅히 내보일 카드가 없는 실정입니다만.”

메비센이 은근슬쩍 말을 던졌다. 어떻게든 자기들의 사업을 위해 수익을 거둘 방도를 고민해야 하는 영국과 프랑스 두 나라 대표들과는 달리, 메비센은 이번 철도 사업을 따내지 못한다 한들 큰 상관이 없었다. 그 역시 철도회사를 경영하는 입장이라지만, 사업 참여의사를 밝힌 기업들과는 연이 없었고, 바로 그 점을 눈여겨본 수상 비스마르크에 의해 직접 대표로 선정되어 파견되었던 것이다.

그가 받은 지령은 한 가지, 최대한 영국과 프랑스 사이를 이간질하면서 영국의 손을 은연중에 들어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유감스럽지만 이번 사업 자체를 반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느 한 기업이 홀로 가져가기에는 너무나 규모가 커져버렸습니다. 우리가 모두 그런 의사를 표명한다면, 저들 역시 우리가 아니고서는 손을 벌릴 곳이 없으므로 들을 수밖에 없겠지요.”

“허허, 물론이지요. 어쨌든 사업의 이윤뿐 아니라 각자의 국익까지 고려해야 하는 일로 비화하고 말았으니 말입니다.”

은근슬쩍 거드는 척하면서 ‘국익’ 얘기를 덧붙이자, 순간이나마 젊은 로스차일드의 눈에 이채가 서리는 것이 보였다.

사업을 나누어 가져갈 수 없다면, 차라리 조금 욕심을 내어 혼자 가져가는 편이 낫다. 어차피 그 오랜 기간 동안 중국 정부가 일관성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할 수는 없었으므로 제철소니 기술이전이니 하는 것은 차일피일 미루고 당장 유리한 지역에만 철도를 깔아 이익을 취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화폐로 환산할 수 없는 이익도 얻을 수 있다. 특히 젊은 로스차일드가 보기에는, 비록 다른 열강들이 중국 시장에 뛰어드는 것을 허용은 하고 있다지만 여전히 가장 우위를 점하고 있는 영국을 끌어내릴 절호의 기회일 터. 자금 조달 역시 본래 금융업계에 기반을 둔 로스차일드 가문이라면 어려울지언정 불가능은 아니다. ‘위대한 프랑스’를 복원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지금의 마크마옹 정부 아래에서라면 이 일로 경제는 물론 정치적인 영향력까지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실제로 로스차일드의 마음속 생각이 그렇게 흐르고 있는지는 알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싸움을 붙이려는 입장에서는, 노회한 영국인들이 그럴 가능성을 염두에 두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세 나라 대표들이 모였으니 여기서 합의를 해두도록 하지요. 우리는 이번 사업의 타당성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할 수밖에 없으며, 현재의 계획대로 사업을 추진할 경우 누구도 여기에 참여하지 않겠다. 이렇게 입장을 표명하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끄덕이는 다른 두 사람을 보면서 메비센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로스차일드 씨가 상당히 이번 사업에 관심이 많은 듯하군요. 여전히 미련이 남은 듯한데요.”

공식적으로 반대 의견을 표명한 뒤, 각각 갈 길 따라 흩어지던 중 메비센이 영국 측을 따라잡아 말을 걸었다.

“아무래도 그쪽은 야심도 야심이지만, 투자자금을 모으는 데 있어 유리한 면이 있으니 말입니다. 우리는 비록 가까이 있다고는 하지만, 규모에 있어서는 아무래도 밀리는 감이 있지요. 본국을 끌어들이자니, 그러잖아도 중국 시장에 들이는 돈에 비해 나오는 것이 적다는 불만도 많고.”

“그렇다면 아무래도 앞서 우리가 합의한 내용을 프랑스 측이 이행하지 않을 가능성을 우려해야 하지 않을까요?”

“설마 그러겠습니까? 이번 일은 기업과 기업 사이의 경쟁인 동시에 나라와 나라 사이의 경쟁이기도 한데, 일개 기업인으로서 함부로 그런 일에서 신의를 버릴 수는 없겠지요.”

“글쎄요. 제 생각에 우리 세 명 중 적어도 한 명은 이곳에 오기 전 자국 정부로부터 모종의 지령을 받고 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만.”

거짓말은 아니었던 이 말에 마테슨도 적잖이 동요하는 듯했다. 물론 이번 사업에 프랑스가 무리하게 참여해서 뼈아픈 실패를 겪게 된다면 상관은 없겠지만, 만에 하나 성공하게 되면 1840년 이후 수많은 영국인들이 중국 땅에 닦아둔 기반은 송두리째 흔들리게 된다. 당장 그 옛날 윌리엄 자르딘(William Jardine)과 손잡고 회사를 세워 아편을 수입하던 시절부터 절실히 겪지 않았던가. 이곳 동양에서 – 물론 세상 어디서든 안 그렇겠냐만은 – 관(官)과 상(商)은 불가분의 관계였다.

“메비센 씨, 뭔가 제안하고 싶은 게 있는 모양인데, 우선 들어보도록 할까요.”

“딱히 제안하고자 하는 바는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대로라면 프랑스 회사들이 중국 땅에 발을 붙이게 될 것이고, 그만큼 저희 독일 회사들이 장차 발붙일 수 있을 구석은 줄어들 것이란 점이지요. 저희는 적어도 영국 회사들의 기득권을 노릴 궁리는 하지 않습니다. 그럴 힘도 없고요.”

백발 성성한 마테슨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번 사업에서 프랑스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결국 어디선가 자금을 끌어오기는 해야 할 텐데, 중국 정부가 내어놓을 리는 없고, 시티 오브 런던의 금융가들도 지금 같은 시국에는 리스크가 큰 동양의 대규모 사업에 기꺼이 신용장을 내어주지는 않을 것 같군요.”

“물론 프랑스인들이 중국에 기반을 마련한다는 데 대해 정치인들이야 불만을 품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정말 그게 불만이라면 새로 수상이 된 디즈레일리 씨에게 가서 따지지, 이 늙은 사업가에게 와서 무어라 하겠습니까? 로스차일드 씨가 마크마옹 대통령의 밀명을 받았는지, 아니면 메비센 씨 당신이 비스마르크 수상의 지시를 받고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오직 내 자산과 소중한 투자자의 지시만을 받고 왔다, 이겁니다.”

독일이 전 세계를 집어먹겠다고 난리를 치지 않는 한 영불 양국이 손을 잡을 일은 없겠지만, 두 나라 기업들은 그것보다 훨씬 사소한 건에서도 저들의 이익만 맞아떨어진다면 충분히 힘을 합할 수도 있었다.

멀리 베를린에서 유럽을 좌지우지할 구상을 하던 비스마르크가 차마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중상주의의 시대는 지난 지 오래. 기업과 기업 사이의 논리는 국가와 국가 사이와는 달라도 크게 달랐던 것이다.

상정하였던 바를 벗어난 반응에 메비센도 딱히 더는 트집을 잡을 구실이 없었다.

그로부터 몇 주나 시일이 지났을까. 적어도 자금성 궁인들은 한 시름 놓았다며 안도하고 있었다. 물론 아직 보령 연소한 황제가 앓아누웠다고는 하지만, 무쇠도 능히 씹어먹을 수 있을 나이이니 설마 흉참한 일까지 일어나겠느냐, 하는 것이 황상의 용안은커녕 반경 일 리(里) 안에도 들지 못하는 대부분 궁인들의 생각이었다.

반면 황상이 와병한 이후 도로 청정하게 된 서태후로 말할 것 같으면, 천진에서 오간다는 철도인지 무언지 하는 물건의 교섭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데 고무되어, 겉으로는 겸양하는 시늉을 하지만 속으로는 매우 기껍게 여기던 중이었다. 이야말로 자금성 궁인들에게는 중요한 사실이었다.

나날이 추워지는 날씨 속 칼바람 불지만, 외려 천안문 안의 분위기는 날로 온화해지는 까닭이 여기에 있었다.

“태후 전하, 전 시독학사 장지동이 궐문 밖에서 청죄하고 있습니다. 어찌하오리까?”

“나아가고 물러나는 도리를 알고 있으니 그 충절을 알만 하구나. 내 장차 황상을 친히 뵙고 그의 공적을 진달토록 할 것이다. 우선은 들라 하여라.”

지엄한 어투였지만 기뻐하는 속마음이 묻어나왔다. 하명하는 서태후의 표정 역시 온화하였다. (자금성 기준으로는)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장지동이 부복하며 다시금 죄를 청하는 소리가 났다.

“한량없는 은혜를 입은 몸으로써 나랏일을 사사로이 바깥에서 논하였습니다. 청컨대 미신(微臣)의 아름답지 못한 행적을 청사에 남겨 후대로 하여금 경계케 하도록 조처해 주십시오.”

“나라에 공을 세웠으나 오히려 스스로 낮추니, 어찌 경은 스스로 아름답지 못하다 칭하는가?내 북양대신이 일순(一旬) 전에 올린 글을 보니, 사소한 이익을 탐하던 양이들이 마침내 천조의 왕업에 힘을 보태기로 합심하였다 하였다. 물론 겉으로는 조선왕의 계책이라 하나, 경과 같은 뜻있는 선비들이 있어 세간의 지탄 받을 것을 각오하고 제 한 몸 바쳐 국사를 도왔으니 그 공을 어디에 돌려야 할지는 눈과 귀가 있는 자라면 모두 익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장지동이 조선 땅에 가게 만든 원인은 서태후 본인이 만인들 앞에서의 체면을 생각하여 동삼성에 철도를 놓는 계획을 고수하였기 때문이었으므로, 책망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국외인들이 사사로이 봉천 성 안까지 드나든다 하는데, 철도든 동도(銅道)든 빨리 놓아서 불안해하는 무리들을 속히 안정케 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실제로 놓든, 놓지 않든 중요한 것은 구실이요 핑계였다.

“신 역시 천진을 거쳐 오면서 교섭한 내용을 들었습니다. 비록 북양대신의 힘쓰는 바가 모두 온당하다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이번 일에서는 적절하다 하겠습니다. 이익을 나누는 일에 있어 양이들 사이에 균세(均勢)를 이루었으니, 어찌 그렇지 않겠습니까.”

결국 비스마르크의 의도와는 달리 마테슨과 로스차일드가 협력하여 일정 지분씩을 분담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다고 기껏 찾아갔는데 빈손으로 돌아올 수는 없었으므로, 이 정도면 저의 소임은 다 하였다 여긴 메비센도 새 합의안에 동참하였다. 자본의 양에서는 두 나라를 따라갈 수 없겠지만, 그래도 워낙 엄청난 규모로 이루어지는 – 어쩌면 인류 역사상 오가는 자금만 따지면 최대 규모가 아닐까 싶었다 – 대사업이었으므로 차마 빠질 수는 없었던 것이다.

“나는 본디 아녀자로서 과분한 황은을 입었을 뿐이니 상고의 일에는 밝지 못하다. 경이 말한 것처럼 이번에 양이들끼리 합심하여 분고의 제도에 따라 철도 놓는 일의 세세한 절목을 정하기로 하였다는데, 이것은 무엇을 이름인가?”

“대저 우리 천조의 강역은 광활하고도 원대하여, 철도의 일에 있어서도 선후를 정하고 이익을 나누는 데 있어 정하여야 하는 바가 결코 적지 않습니다. 분고의 법은 본디 강남의 상인들이 고안한 것으로. 양이들이 이를 모방하였는데, 요지는 어떤 장사를 함에 있어 그 밑천을 나누어 내고 각각의 고분(股份, 지분)에 맞추어 경영하고 소득을 나누는 데 목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고분을 가장 많이 차지하게 되면 다른 이들을 누를 수 있는가?”

갑자기 흥미가 동한 서태후가 물었다. 치부하는 것이야 그저 장사치들이나 마음 쓸 일이니 가볍게 여길 뿐이지만, 남을 멋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기회라면 놓칠 수 없던 것이다.

“실로 영명하십니다. 다른 이들에게도 응당 차지하여야 하는 만큼을 돌린다면 가장 많은 고분을 지닌 자가 그만큼 산업(産業)의 일에 있어서도 저의 뜻한 바를 따르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비록 정예한 기물을 만드는 재주는 저 양이들이 잠시 중원에 앞서고 있다 하나, 물산의 풍족함은 어찌 우리에 비하겠는가. 만약 아조에서 철도의 일에서 고분을 얻어낸다면, 저 양이들을 이번 일에 있어 능히 통어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만약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장지동이 아니라 꽉 막힌, 예컨대 이홍조 같은 이였다면 ‘망극한 말씀이십니다’ 하고 만류했겠지만, 철도가 장차 매우 긴요한 시무로 떠오르리라는 데 있어서는 이홍장과 의견을 같이하던 장지동이었기에 이렇게 단언할 수 있었다.

“아아, 그렇게 된다면 비록 양인들이 천조의 내지를 출입한다 한들 오직 우리의 뜻에 따라 움직이게 될 터이니 어떤 근심이 있겠습니까? 절로 천하가 다스려지는 아름다움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황제가 와병하였다는 핑계를 대면서 원명원 중건의 예산을 전용하고, 비장해 두던 자신의 재보들까지 적잖이 헐어내며 서태후가 가칭 동아철도회사, 줄여서 동철(東鐵)에 대한 투자를 천명한 데는 이러한 사연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우스운 일화 정도로 생각하던 유럽인들이, 투자액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진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졸지에 청 황실 – 정확히는 서태후 – 이 최대주주가 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영국 의회에서는, 저처럼 각종 보화가 쌓여있던 북경인데 1860년 전쟁에서 그깟 보물창고 하나 털어오지 못했냐며 당시 전쟁 지도부를 질책하는 여론이 공공연히 일어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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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초의 철도는 1864년 기술 시연을 위해 자금성 선무문 밖에 영국인 듀랜드가 설치한 600m 길이의 협궤 철도로 전해집니다. 그러나 하필 중대한 상징성을 가지는 자금성 옆에서 시끄러운 열차가 움직이는 데 놀란 청 정부는 ‘지극히 해괴한(殊甚駭怪)’ 물건이라 부르며 신속히 철거하도록 하였지요.

이는 일본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아, 막말까지도 서양인들이 기술 시연 목적으로 철도를 소개하고, 현지인들은 단순한 구경거리 이상으로 바라보지 않는 경향이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흑선을 몰고 온 매튜 페리도 모형 철도를 만들어 미국의 기술력을 자랑하려 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1890년대 말에 들어서야 철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 청일전쟁의 패배에 따른 충격이 그 원인 중 하나였습니다 – 적극적으로 부설을 추진하기 시작한 청과 달리 일본은 1872년 도쿄-요코하마 철도 기공을 시작으로 빠르게 철도 구축에 나섰습니다. 신문물에 대한 이해 수준보다는 근대화에 대한 의지가 가장 큰 변인이었던 셈이지요.

로스차일드 가문은 앞서 드 로쉴드 등으로 표기하였습니다만, 아무래도 익숙한 것은 로스차일드일 듯해 이렇게 적었습니다.

작중 고분, 분고 등으로 불리는 것은 중국의 주식회사 비슷한 개념입니다. 그 발원은 길게 잡으면 송대, 보다 보수적으로는 명말청초 정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현대 중국에서도 주식을 株 대신 股라는 용어를 사용해 부르고 있지요.)

물론 중국의 주식회사 개념이 서양에 들어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당시 중국에서는 (그리고 조선에서도) 이러한 류의 시각이 상당히 퍼져있었습니다. 서양의 앞선 문물이 독창적으로 개발한 것이 아니라, 중국의 발전된 문물을 가져다가 ‘잠시’ 더 발전시킨 데 불과하다는 논리로, 중화사상과 서양 문물 수용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논리였기 때문에 (현대의 시각으로 보면 정신승리에 불과하지만) 19세기 중후반까지는 상당히 대중적으로 퍼져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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