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철마는 누구를 위해 달리는가 (1)
빌헬름 가(街) 77번지의 슐렌부르크 궁은 전형적인 로코코 풍의 건물로, 웅장하다기보다는 오밀조밀 섬세한 멋이 있었다. 수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의 성향을 겉핥기로 아는 이들은 물론이요, 그의 손에 의해 황제의 관을 쓰게 된 빌헬름 1세조차 비스마르크라면 당연히 고전주의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건물을 선호하리라 여겼기에, 그저 애물단지인 궁전을 버려두기 아까워 쓰려 한다고들 지레짐작했지만, 기실 비스마르크의 취향에는 은근히 들어맞는 면이 있었다.
하지만 제국을 이끌어가는 사람으로서 유지해야 할 체통이 있는 법. 라치빌(Radziwill) 대공이 작고한 후 구매한 이 건물을 지난 5년간 마치 처리가 곤란한 것처럼 방치하다가 지금에 들어서야 수상부(Reichskanzlei), 즉 그의 집무실로 쓰기 위해 개장하고 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혹 실무자들이 아무 생각 없이 비스마르크의 마음에 드는 장식이나 가구를 치워 없앨까 두려워, 종종 공사 감독의 핑계를 대고서 이곳에 들리곤 하는 비스마르크였다. 지금도 막 빌헬름 1세의 초상화를 가린다면서 그의 마음에 든 샹들리에를 마음대로 떼어내려 하던 총책임자를 호되게 훈계하고서 다시 작업을 감독(실은 감상)하고 있던 차였다. 그때, 옆에 말쑥한 젊은이 하나가 따라붙었다.
“꼭 그렇게 일일이 확인하실 필요까지는 없으실 텐데요. 수상님께서도 참 대단하십니다.”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장차 유럽의 강대국 총리가 집무할 곳이니, 이 또한 외교정책의 일부라 이 말일세. 실무자의 취향에만 맡겨두기에는 너무나 중한 일이지.”
분야는 다르지만 그 실무자에 속한다고 할 수 있던 요제프 폰 라도비츠(Joseph Maria Friedrich von Radowitz)는 그런 반응에 속으로 미소를 삼켰다. 역시 여기까지 찾아와 직접 수상의 의견을 듣기로 한 것은 옳은 결정이었다. 그의 맘대로 함부로 정했다가 나중에 무슨 후환을 당할지 모르는 일 아닌가.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실은 그래서 이번 철도의 건으로 의향을 여쭙고자 여기까지 와서 폐를 끼치게 되었습니다.”
“철도의 건이라? 그 만주라이(Mandschurei, 만주) 철도사업 말인가?”
“예, 일전에 서면으로 보고드린 것처럼, 베스트팔렌 왕립철도회사(Königlich-Westfälische Eisenbahn)와 상부슐레지엔 철도회사(Oberschlesischen Eisenbahn) 대표들이 공식적으로 사업 참여를 요청했습니다.”
극동의 일은 아직 (그리고 중국 정도를 제외하면 앞으로도 계속) 독일의 관심사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었던 비스마르크였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요 근래 그의 신경을 긁고 있는 발칸도 독일에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지역 아닌가. 독일의 이웃나라들이 그 지역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 독일 역시 반드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여러 강대국 사이에 낀 설움은 독일이 바로 그 강대국 대열에 합류한 뒤에도 계속되고 있었다. 어쩌면, 독일이 강대국 대열에 합류했기 때문에 그런 설움이 가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나를 찾아올 정도면, 두 회사 대표들을 만나야 하는 번거로운 과정 정도는 생략할 수 있도록 입장 청취 정도는 해왔으리라 생각하네만.”
“물론입니다, 각하.”
어차피 두 회사 모두 국영기업인 것은 매한가지지만, 바로 그 국가 자체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다 보니 경쟁의식은 그대로였다.
“아시다시피 이번 사업을 공동으로 주관하는 중국과 조선 정부는 수주의 조건으로 대규모 기술이전을 요구했습니다. 탄광 개발이나 제철소 건설처럼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는 후속사업으로의 연계도 가능함을 시사하였고요.”
“굳이 외무부가 나서지 않아도 관련 상황의 조사는 그쪽에서 마쳐두었겠지? 시작한 김에 함께 읊어보게나.”
“예, 각하. 당장 상하이의 자르딘-마테슨(Jardine-Matheson) 사 – 영국 자본입니다 - 가 자회사를 내세워 공식적으로 입찰을 선언한 상황이고, 프랑스의 6개 독점회사는 알폰스 드 로쉴드(Alphonse James de Rothschild)의 주도 하에 컨소시움 결성을 예고했습니다. 아무래도 그 정도는 되어야 기술이전 조건에서의 협상이 가능하다는 판단인 듯합니다.”
“그리고 굳이 우리 정부가 그런 일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는?”
비스마르크가 자신을 시험하고 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은 라도비츠는, 잠시 생각과 기력을 가다듬었다.
“철도의 확장을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 입장에서, 극동은, 특히 중국은 기술이전으로 인한 손실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는 시장입니다. 제가 일전에 중국에 있을 때 입수한 정보로는, 중국 정부는 철도의 건설을 이유로 유럽인들이 자국 내륙으로 진출할 것을 우려해 그간 철도 개설에 반대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번 만주 철도 건은 다시 없을 기회라 할 수 있겠습니다.”
시큰둥한 반응에 서둘러 머리를 뒤져, 새로운 이유를 만들어내었다.
“마침 우리 정부도 내년에 북부철도회사 설립을 추진하고 있지 않습니까? 설비의 확충이 필요한 시점에, 장차 대규모 사업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금번 건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만. 그 정도면 되었네. 두 회사에게 조건을 걸어, 프랑스가 한 것처럼 컨소시엄을 만들든 상하이에 새로 공동으로 자회사를 세우든 알아서 협력할 조건을 만들도록 하게. 국익이 걸린 일인데 그깟 지역감정 정도로 출혈이 일어나서는 안 되겠지. 그렇게 여건이 갖추어지면 나 또한 긍정적으로 검토해보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각하!”
딴에는 성공했다고 여겼는지, 라도비츠의 얼굴에 희색이 돌았다. 이어지는 비스마르크의 말에 다시 당혹감이 고스란히 돌아왔지만.
“그리고 한 가지 더, 자네는 러시아 측에 협력을 타진해보도록 하게.”
“러시아... 말씀이십니까?”
“똑바로 들었네. 또한 장차 철도사업 전반에서의 협력 가능성이 있음을 넌지시 시사하는 것도 잊지 말도록.”
다른 많은 산업에서와 마찬가지로, 러시아는 자본으로 보나 기술로 보나 다른 나라의 지원을 받으면 받았지 투자에 나설 수 있는 나라는 아니다. 여전히 의아한 표정의 라도비츠를 보며, 비스마르크는 이 성실한 청년에게 그 성실함에 상응하는 재능은 없음을 안타깝게 여겼다. 세간에서는 독일 외교전선의 촉망받는 인재 중 하나로 보고 있었지만, 기준선을 자신에 맞추어 판단하는 비스마르크의 눈에는 차지 않았던 것이다.
“각하, 저의 미욱함을 용서해주신다면... 혹시 그런 제안을 보내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을지요?”
마침 집무실에 걸어둘 큼직한 세계지도 액자를 들고서 인부 몇몇이 지나갔다.
“거기, 잠시 멈추고 그 지도 내려놓아보게.”
“지도 말씀이십니까, 나리(Mein Herr)?”
“‘나리’가 아니라 수상일세. 계속 들고 있을 생각이면 들고 있고.”
인부들이 주춤거리며 지도를 내려놓자, 비스마르크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외교라는 것이 혼자 하는 일은 아니니, 그나마 그들 무리 중에서는 나은 축에 속하는 라도비츠라도 최대한 가르쳐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외교관이라면, 사태에 대응하기에 앞서 그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통찰력까지 갖추어야 하는 법. 그 단계를 건너뛰고 그저 겉으로 보이는 득과 실로만 나아갈 길을 정하게 되면, 거대한 체스판을 움직이는 큰손이 아니라 그저 말이 될 수밖에 없다네. 체스판 위에서 말들끼리, ‘너는 폰, 나는 퀸’ 하며 아웅다웅한들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내 자네에게 종종 말했지. 사실 여기저기서 틈날 때마다 하고 다녔으니 아마 나중에는 내 전기에 그대로 실릴지도 모르겠군. 외교란 무엇이라 했지?”
“‘러시아와 친하게 지내는 것’이라고 하셨지요.”
“그래, 그러면 그 반대의 상황, 최악의 일은 무엇이겠는가?”
이 정도도 모르면 독일의 외교관으로서는 실격이다. 적어도 비스마르크의 생각으로는 그랬고, 다행히 라도비츠는 이 시험은 통과했다.
“프랑스와 러시아가 친밀해지고, 우리 독일은 배제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자, 그러면 지도를 보고 말해보게. 이번 철도사업이 장차 어떤 파급효과를 내게 될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라도비츠의 낯이 다시 밝아졌다.
“기실 우리로서는 입장을 취해서 저기 참여하는 시늉을 하는 것만으로도 이익일세. 아니, 그것이야말로 최선의 선택지라 하겠네. 우리가 개입하지 않으면, 저 땅에 영국이 발을 붙이는 것을 감당할 수 없는 러시아는 프랑스의 손을 잡을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우리가 끼어들어서, 러시아의 편에 서서 영국을 막아주는 시늉을 한다면? 그리고 그러면서 은근슬쩍 영국이 프랑스 대신 사업에서 주도권을 가져가도록 해 준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우리는 손해 보는 것 없이 프랑스의 해외 팽창을 차단하고, 거기에 러시아까지 영국을 계속 경계해야 하니 우리 편에 서줄 수밖에 없겠군요!”
찬탄과 선망의 시선을 겉에 두른 겸양으로 받아내며, 비스마르크는 말을 이었다.
“그래, 이제 얼추 내 생각을 알아차린 듯하니 다행일세. 이 정도면 이해가 되었는가?”
“예! 물론입니다. 역시 수상 각하께서는 제국의 보배이십니다!”
그렇게 얼추 라도비츠를 떠나보낸 뒤, 슬그머니 그의 눈치를 보는 인부들에게 턱짓을 해 도로 지도를 챙겨가도록 했다. 하지만 비스마르크 머릿속 생각의 실타래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라도비츠가 끝내 눈치 채지 못한 것, 그러나 비스마르크 그의 머릿속 세계전도에서는 그려지는 가능성. 언젠가 큰 말썽이 될 발칸 문제에서 러시아의 관심을 돌리는 문제가 있었다.
어차피 오래 가지 못할 오스만 투르크다. 이 동방의 병자를 노리고 계속 남하를 시도할 러시아야말로 그의 머릿속 외교의 대구상을 가로막는 한 가지 큼직한 문제였다. 여기서 좌절하게 되면 러시아는 유럽에서 독일 대신 다른 파트너를 찾게 될 것이고, 그대로 내버려두게 되면 크림 전쟁의 기억이 아직 생생한 영국이 독일 대신 프랑스에게 눈을 돌리게 될 것이다.
거기에 남진이 계속되면, 계속 분열된 채로 가만히 있어야 할 합스부르크의 오스트리아 또한 독일의 팔을 잡아끌고 러시아에 맞서려 하거나, 대신 프랑스에게 은근히 다가갈 터. 어떻게든 양면전선은 피해야 하는 독일에게는 어떤 쪽도 암울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니 방법은 두 가지. 러시아에게 발칸 대신 신경 쓸 구석을 만들어주는 것. 그리고 러시아로 하여금 프랑스와 협력할 마음이 들지 않게 하는 것. 전자라면 사실 지금의 독일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지만, 후자라면 충분히 가능했다. 지금의 마크마옹 그 늙은이의 왕정주의 정부를 혼란에 빠뜨리고 차르가 경기를 일으킬 만한 공화주의 정부가 세워지도록 갖은 수를 동원해야 한다.
가뜩이나 비스마르크의 예상을 뒤엎고 빠르게 회복하고 있는 프랑스다. 꼭 러시아와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지금 정부를 그대로 방치했다가는 훗날 화근이 될 것임은 자명했다.
“하나, 둘, 셋!”
“이영차!”
인부들이 다시 육중한 액자를 들고 게걸음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열린 문 사이로 가장 먼저 알래스카가 사라지고, 이어서 대서양이 감춰지더니, 극동이 마지막으로 남았다. 중국 옆의 조그만 반도 하나가 눈에 어른거리는 것은 아마도 그가 요새 은근이 신경 쓰는 변수이기 때문일 테다.
그 국력으로 따지면 무시할 만한 수준일 조선이, 프랑스와의 전쟁이 시작될 무렵에는 유럽 국가와 중국 사이에서 중재를 자청하더니, 파리의 코뮌이 붕괴할 때는 정치범의 대규모 망명을 받아주지를 않나, 이번에는 평화유지군이라는 거창한 이름이 붙은, 창칼로 무장한 병사 수백을 코친차이나에 보냈다고 했다.
마크마옹에게 망신을 주기에는 이만한 소재가 없다. 프랑스 저들이 가장 먼저 문호를 연 극동의 나라가 프랑스의 체면을 떨어뜨린다. 코친차이나에서의 세력 확장을 막더니, 이제는 중국 동북부에서도 프랑스를 험담해, 끝내 영국에게 밀려나게 만든다. 그대로 물러날 마크마옹은 아니므로, 아마 군사적으로 극동을 압박하든, 아프리카나 중근동에서 엉뚱한 모험을 벌이든 할 것이며, 이는 다시 독일이 프랑스 위협론을 꺼내들 빌미가 된다.
어차피 언젠가 영국이든, 러시아든, 하다못해 미국이든 나서서 집어삼키게 될 나라이니만큼, 조선이 이 정도 역할만 해 주어도 비스마르크로서는 만족할 만한 결과였다. 그러면 다음으로, 어떻게 하면 조선이 그렇게 프랑스와 결별을 선언하도록 할지를 고민할 차례였다.
그 무렵, 만주 철도를 놓고 청과 조선 역시 홍역을 치르고 있었다. 보다 정확하게는 북경의 소란이 한성까지 퍼졌다는 게 옳은 표현이리라.
“국왕 전하께서는 재고해주십시오! 양이의 삿된 책동에 넘어가서는 아니 됩니다!”
“정녕 천조를 도와 천하의 평안을 원하는 적심(赤心)이 있으시다면, 금번 철도의 일은 마땅히 철회하셔야만 합니다!”
신보가 널리 인기를 끌면서, 이렇게 창덕궁 앞에서 소리소리 지르는 선비도 끊긴 지 오래. 간만에 나타난 자들이, 그것도 변발 휘날리며 한어(漢語)로 ‘통촉해주소서’ 운운하고 있으니 무슨 말인지는 몰라도 족히 사람들을 끌어 모을만한 구경거리는 되었다.
소문을 듣고서 득달같이 달려온 흠차대신 모창희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왠 잡배들이 소란을 일으키는가 하고서 와 보았더니, 그 우두머리 되는 자가 상상 밖의 거물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자네는 효달(孝達)이 아닌가?”
다름아닌 장지동(張之洞)이었다. 나이 아직 불혹도 되지 않았으되, 그 문장을 다른 사람도 아닌 서태후가 좋아하여 일찍이 여러 사람으로부터 대성할 사람이라 평을 받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청류파라 할 만한 무리가 생기기도 전 조선 땅에 온 모창희로서도 능히 알아볼 만했다.
“예, 미욱한 장 모가 흠차대신을 뵙습니다.”
“여기서 대체 무얼 하고 있는가? 마지막으로 듣기로는 시독학사(侍讀學士)로 있었다 하였는데, 벼슬은 어찌하고?”
“이번 동삼성 철도의 일은 장차 직례를 노리는 비수와 같이 될 것이니, 어찌 이 한 사람의 벼슬에 연연하겠습니까? 이미 북경에도 저와 뜻을 함께 하는 선비들이 모여 태후 전하께 밤낮으로 간언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 목소리로는 부족하니 저 역시 이렇게 한성에 와 조선왕의 마음을 돌리려 하는 것입니다.”
마침 그때, 궁의 문이 열리면서 여러 사람들이 몰려나왔다.
“대국에서 찾아온 장 대인은 입궐하라는 어명이오!”
친절하게도 역관이 대동하여 똑같은 (아마도) 말을 한어로 옮겨주니, 결연한 마음을 먹은 장지동이 무릎을 털며 일어났다.
“이번 일로 다시 조정에 서지 못하게 될 것을 각오하고 찾아온 길입니다. 대인께서는 부디 마음에 크게 두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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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후반 세계정치의 주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등장했습니다.
비스마르크의 외교정책은 강대국으로 부상한 독일이 다른 강대국의 안보위협으로 인식되어 포위당하는 사태를 막는 데 그 주안점이 있었습니다. 이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바로 프랑스의 고립, 그리고 러시아와의 유화정책에 있었지요.
하지만 19세기 후반에 들어서 가속된 제국주의의 팽창은 비스마르크 홀로 막아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1870년대 삼제동맹의 위기에서 볼 수 있듯, 프랑스를 고립시키고 나머지 국가와 모두 사이좋게 지내기에 독일의 덩치는 너무나 컸고, 러시아와 영국 등 다른 열강들의 이해관계는 너무나 복잡하게 얽혀있었지요.
끝내 비스마르크 본인이 아니면 유지할 수 없었던, 그리고 조금 더 냉정하게 평가하면 비스마르크가 있을 때에도 완벽하게 기능했다고는 보기 어려운 비스마르크 체제는 그의 사후 붕괴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비스마르크 체제가 그의 사후까지 완벽히 작동했다고 해도 조선의 운명에는 큰 상관이 없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기본적으로 식민지 확장, 그리고 국익에 직접적인 보탬이 되지 않는 모든 해외 개입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던 비스마르크였기 때문이지요.
원 역사의 비스마르크는 프랑스의 고립을 위해 1875년 ‘임박한 전쟁(War in sight, Krieg in Sicht)’ 위기를 일으킵니다. 1875년 4월 한 독일 신문이 게재한 사설에서 시작된 이 위기는, 마크마옹 행정부의 군비증강 정책을 위협으로 주장하면서, 독일이 프랑스를 선제공격할 가능성을 언급하게 되지요.
그러나 러시아를 비롯한 주요 열강들이 예방전쟁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면서 독일이 한 발 물러나고 전쟁의 위기는 ‘모면’된 형국이 조성되어, 위기는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게 됩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마크마옹은 주전파로 인식되게 되었으며, 끝내 그의 왕정복고주의 노선은 대중의 지지를 잃게 되지요. (그 외에도 부르봉 가문 내에서 적절한 후보를 놓고 내분이 있었던 것도 있습니다.) 공화주의 하면 학을 뗄 수밖에 없던 러시아와 프랑스를 이간질하기 위한 술수의 하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