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종, 군밤의 왕-58화 (58/320)

19. 천하의 근심을 먼저 근심으로 삼다 (2)

부자(夫子) 가라사대,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고루해지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게 된다 하였으니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지난 삼 년을 파리에서 보낸 최익현이 생각하기에 전자는 오늘날 동녘 땅의 폐해요, 후자는 지금 그가 있는 대서 땅의 폐단이었다.

물론 이들이 만들어내는 기물이야 전례 없던 것이요, 날랜 기선과 빠른 철도로 사해(四海)를 하나로 묶음도 천지개벽 이래 처음이라지만, 그렇다 한들 사람이 바뀌지 않았거늘 그 본성이 어찌 바뀔 것인가. 최익현이 보기에 이 코뮌의 우두머리라는 자들은 이것을 잊고 있었다. 새로운 세상이라 한들 옛 도의가 어찌 사라지겠는가. 이를 무시하였기에 작금의 혼란이 있는 것이다.

“인질을 석방하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 명예니 뭐니 하는 구시대적 감상 따위 우리에게는 어울리지 않소!”

“부디 재고해주십시오. 사토리에 수용된 코뮌 포로들은 지금 제 몸 누일 곳도 없는 비좁은 마당에 수백 명씩 갇힌 채 죽어가고 있습니다. 물론 저쪽에서 먼저 잘못을 저지른 것은 맞지만, 그래도 인도주의와 문명의 이름으로 양해해주실 수 없겠습니까?”

“흥, 목숨을 아까워했더라면 애초에 우리의 대의에 어울리지 않는 자들이지! 마치 지금 우리 평의회와 코뮌 인민의 심판을 기다리는 배신자 클뤼스레(Gustave Cluseret) 놈처럼 말이오.”

코뮌 군사위원회의 위원장 들레클뤼즈(Louis Charles Delescluze)가 단호하게 뒤낭의 말을 끊었다.

“무슈 들레클뤼즈, 바로 그런 생각 때문에 지금 성가퀴를 지킬 장정도 충분치 않은 것 아닙니까? 말로만 이십만 대군 운운한다고 도시가 지켜집니까? 인의를 바로 세워야 인심이 돌아오고, 인심이 모여야 대업을 이룰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그러잖아도 장수를 갈아치운 일로 군령이 제대로 서지 않을 텐데, 그럴수록 의리로서 타일러야 하는 것입니다.”

저 클뤼스레라는 자는 예전 미리견 동란 때 북군 편에서 싸운 전적도 있는 자라고 하였다. 병가의 일에는 문외한인 최익현이 보기에도 그저 마음속 불타는 열정으로 힘껏 싸우면 이길 것이다 하는 정도의 대책 없는 무리들보다야 훨씬 뛰어난 인재였는데, 열심히 싸우다 힘이 부쳐 이시 요새를 버리고 후퇴한 일로 배신자로 몰렸다고 들었다.

“하, 경애하는 우리 대사 나으리, 댁의 고견은 묻지도 않았답니다. 그간 우리 평의회에 끼워주고 말장난 하는 걸 받아주었더니, 우리가 선생 편이라 생각하는 모양인데, 꿈 깨시지요.”

이시 요새가 함락되고, 조만간 베르사유에 머물던 공화국군 사령부가 파리 지척의 몽발레리앙(Mont-Valérien) 요새로 옮겨오리라는 소식도 더는 헛소문으로 치부할 수 없게 된 지금, 포위가 무색하게 공화국 사령관 마크마옹을 만나고 왔다는 뒤낭과 최익현이 자신의 편이 아님을 새삼스레 깨닫는 코뮌 사람들이었다.

말이야 당당하게 해도 속으로는 상황의 불리함을 모를 리 없으니, 그간 부렸던 멋과 여유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거칠고 모진 심성만이 맨얼굴을 드러냈다. 물론 이 정도에 대사를 그르친다면 마음 다스리기를 수양으로 삼는 선비라 할 수 없다.

“애초에 이쪽에서도 당신들을 내 편이라 생각하지 않았으니, 딱히 섭하게 생각하지는 않소. 하지만 나는 그간 그대들이 나름의 도의는 지키고 있어 정부군에서 떠드는 것처럼 적도(賊盜)의 무리는 아니라고 여겼는데, 이제 보니 꼭 그런 것 같지도 않구려.”

“뭐라? 당신 말 다 했소?”

적어도 활이라도 몇 순 쏘아 본 최익현에 비해서조차 군문의 일에 식견이 뒤떨어질 들레클뤼즈다. 이 일이 터지기 전까지는 신보(신문) 쓰는 문인이었다나. 말솜씨만은 거창하여 군사위원장 자리를 얻어냈다지만, 장재(將材)라고는 없으니 코뮌이 파리 코앞까지 밀림도 그리 이상하지는 않으리라.

“그대들이 정녕 부끄러울 게 없다면, 어찌하여 그 대주교라는 작자를 붙잡고 있는 것이오?”

“그야 종교가 구시대의 악습이고, 폭군의 발판이기 때문이지! 우리 혁명을 안에서부터 좀먹을 게 뻔한데 가만 내버려 둘 수는 없잖소?”

“그러면 차라리 저쪽에 보내버리면 아예 내우(內憂)가 없어질 것 아니오? 그렇게 해서 포로의 처우가 개선된다면 동지에 대한 의리를 다하는 것이요, 저쪽이 약조한 바를 지키지 않는다면 저들이야말로 도적떼와 다를 바 없다는 그대들의 명분에 힘이 실리는 것인데, 어찌하여 끙끙 앓으면서 귀한 식량으로 그들을 먹여주고 부족한 군졸로 그들을 지킨다는 말이오이까? 무슨 켕기는 부분이라도 있는 것이오?”

하필 뒤낭에게서 프랑스어를 배우는 바람에 옮아버린 느릿느릿한 쥬네브 말씨로, 한 치도 밀리지 않고 또박또박 반박을 하니, 들레클뤼즈는 그저 붉으락푸르락. 무언가 대꾸를 하려다가 뒷목을 한 번 잡더니 그대로 축객령을 내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할 말을 중간에 끊을 최익현은 아니었지만.

“비록 내 지금은 초야의 선비라 하지만, 아직 아국 공사와 연이 있으니 그대들이 정녕 도의에 따라 처신한다면 마땅히 도울 수 있는 부분에서는 도울 수 있소. 한 번 더 생각해 보시오.”

고색창연한 시청(Hôtel de Ville) 앞에 모래주머니와 여기저기 민가에서 징발한 가구로 만든 바리케이드가 만들어지고, 흉흉한 기세의 국민위병들이 광장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최익현이 지적한 대로, 나름대로 요충지라 할 수 있는 이곳까지도 경계할 병력이 충분치 않은지, 지키는 태세가 마치 눈 성긴 체처럼 헤싱헤싱하였다.

문을 나서자마자 일행은 마침 시청으로 방위태세를 보고하러 온 돔브로프스키(Jaroslav Dombrowski)를 뒤낭의 요청에 따라 말 그대로 붙잡아 온 미셸과 마주쳤다.

“안에서 들레스퀴즈 동지와 한 판 하고 나왔다죠? 뭐, 익현 당신이나 그 사람이나 둘 다 꽉 막힌 건 똑같으니 안 봐도 알만하네요. 어쨌든 보이는 것만큼 우리 동지들이 어설프지는 않으니 쉽게 단정하지는 마세요.”

“잘 설명해줬소. 도시 바깥에서야 놈들의 포병대며 기병이며 하는 것들이 활약하겠지만, 이 도시는 우리 코뮌의 것. 자기 동네와 이웃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모두들 최후의 일인까지 싸울 것이오. 그걸 몰랐던 클뤼스레가 실수를 저질렀을 뿐 아직 우리에게 승산은 있소.”

돔브로프스키가 멋들어진 콧수염을 자랑스레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러면 더더욱 그 대주교라는 자를 붙잡고 있을 필요가 없지 않소? 그대 아래의 병졸들이 그저 그러모은 오합지졸이라면야, 적에게 투항한들 죽음뿐임을 알려 생사를 놓고 싸우게 해야겠지만, 지금 그대들이 말하기로는 의로운 군대로 불의한 군대와 싸운다 하는데, 그렇다면 오히려 명분과 의리로써 적은 수로 많은 적을 맞이할 수 있도록 힘을 북돋아야 할 것이오.”

무언가 사양하는 말을 하려는 듯 숨을 들이신 돔브로프스키가 잠시 그대로 멈칫했다. 열정적인 손짓도 나오려다 만 것으로 보아 최익현의 말이 이치에 닿는지 골똘히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흠, 그 또한 일리가 있는 말이구려. 어차피 데리고 있어봐야 내통하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병력만 들 뿐이지.”

평의회의 소집령에도 불구하고 장부상의 국민위병 20만 중 실제로 파리 곳곳에 바리케이드를 쌓아 지키고 있는 이들은 5만이 채 되지 않고, 그나마 태반은 제대로 된 군인이라기보다는 그저 자기 동네만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든 자경단에 가깝다. 그러니 돔브로프스키가 공격을 명령한다면, 그에 따라 움직일 자들은 저 5만 중에서도 다시 반절이 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 정도라도 시가전이라면 승산이 있다는 것이 돔브로프스키의 생각이었다. 어차피 저들을 도시 밖에서 막아낼 방도는 없으니, 안으로 깊숙이 끌어들이고 일제히 반격하여 무찌른다. 군사적 식견이 전무한 들레스퀴즈 이하 평의원들도 그럴듯하다 여기지 않겠는가? 비록 공화국군이 프로이센 놈들이 석방한 포로까지 받아들여 다시 17만에 달한다고 하지만, 어차피 저쪽이나 이쪽이나 장기전으로 가게 되면 딱히 승산이 없기는 마찬가지. 적어도 협상으로는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 명분과 도덕의 싸움이 된다. 끝까지 코뮌이 폭도에 불과하다고 우기는 늙다리 티에르에게 힘을 실어주어서는 안 될 터.

“조금 더 생각해보겠소. 물론 한 사람의 뜻으로 결정해서는 안 되는 일이니, 평의회의 안건으로 올려서 중의를 모아야겠지만.

좌우지간 싸움이라는 것이 항상 사람 마음대로만 되는 건 아니니, 우리 대사님도 모쪼록 몸조심하기 바라오. 우리가 이기든, 아니면 스러져 놈들 군홧발 아래 짓밟히든, 누군가는 우리를 기억해 주어야겠지. 그렇지 않겠소?”

그 뒤로 시청과 바스티유 일대를 열심히 발품 팔며 돌아다닌 끝에, 날이 어둑해질 무렵에는 미셸을 통해 찾아가기로 연통을 넣었던 위원들은 거의 다 만나볼 수 있었다.

그러나 돔브로프스키가 수긍하는 듯 보이는 바람에 잠시 부풀어 올랐던 뒤낭의 기대는 곧 구멍 난 풍선마냥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물론 몇몇은 최익현의 세 치 혀에 넘어가, 인질 석방 대 포로 처우 개선이라면 납득할 만한 거래라 여기는 듯했지만, 정작 중요한 인사들은 요지부동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심지가 굳지 못한 자들이 경거망동하기 전에 반동의 싹을 잘라야 한다며, 당장 대주교를 처형하여야 하지 않겠냐며 반박하는 이까지 있었다.

급진적인 개혁안은 팍팍 잘 추진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의사결정에 있어서는 모두의 의견을 청취한다, 전체의 의지를 확인한다 운운하며 굼뜨기만 한 코뮌이다. 대주교를 어떻게 해보기도 전에 공화국군이 파리 시가지에 진입할 것임을 – 위원들 중에는 아직도 자신들의 절대적 승리를 굳게 믿는 이들도 적지 않았지만 – 직감한 뒤낭은 애초에 기대를 불어넣어준 최익현이 원망스럽게 여겨졌다.

“뭔가 기똥찬 술수라도 부릴 줄 알고 기대했더니만, 끽해야 그놈의 의리, 의리 타령이 끝이었는가, 자네!”

연이어 퇴짜를 맞은 뒤 엉뚱하게도 국립은행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최익현이 답답하여, 참다참다 못한 뒤낭이 소리쳤다. 평소 이상주의자 소리를 듣고 사는 자신이 보기에도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고 있지 않은가?

“후···. 이럴 것 같았으면 차라리 자네에게 부탁하지 않고 혼자 방구석에서 낙담하고 있는 게 나을 뻔하였네. 뭔가 이루어질 법하다며 희망을 품었던 게 잘못이겠지.”

그러나 최익현은 오히려 태연자약하였다.

“일전에 말씀드린 적 있던가요? 우리 조선의 선비라는 자들은, 재주 용렬하고 식견은 좁을지언정 세상의 근심을 먼저 자신의 근심으로 삼고, 천하가 기꺼워한 뒤에야 함께 기꺼워하기를(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歟) 원하는 이들입니다. 그러므로 해야 할 일이 있을 때는 마땅히 나서고, 할 수 있는 바가 없을 때는 다른 길을 찾을 뿐입니다.”

엉뚱한 행선지에 이은 엉뚱한 답변에 더욱 어안이 벙벙해진 뒤낭이었다.

“그러잖아도 부족한 군세인데, 그나마 군공 세운 적 있는 장수는 가볍게 바꾸면서, 무엇이 잘못인지도 깨닫지 못하니 인화(人和)가 이미 깨진 것입니다. 저들이 도의의 중함을 모르니, 이제 필히 병란을 맞이하여 어지러움이 생길 테지요. 사리의 옳고 그름으로 설득되지 않음을 알았은즉 그 다음의 방도를 마련할 뿐입니다.”

최익현의 머릿속에서는 그 옛날, 스승 이항로가 일러준 군밤의 비유가 문득 떠올랐다. 예전의 자신이 그대로 지금 이곳 파리에 옮겨왔다면 어떻게 대처했을까. 아마 국외인으로서 남의 나라의 난에 개입할 수 없다며 한 발, 아니, 족히 열 발은 물러나서 불구경을 했으리라. 역시 오랑캐 나라의 정사란 어지럽기 그지없다고 한탄하면서. 근심은 근심으로만 남은 채, 그저 자신이 아직껏 쓰고 있는 일기 한 구석에 ‘법국정란전말(法國政亂前末)’ 글 한 토막으로 끝났으리라.

그러나 스승에게 군밤 얘기-무슨 군밤이든 잘 굽기만 하면 맛이 좋다는 주상의 하교-를 들었을 때 이미 굳은 신념의 한구석이 의심하는 마음에 자리를 내주었고, 이곳에 와서 뒤낭을 만난 뒤로는 또 한 번 생각이 크게 바뀌었다.

“이곳 프랑스에서도 밤을 구워서 먹더군요. 제가 예전에 들은 얘기를 전해드리지요. 집에 먹거리가 다 떨어져, 남은 것이라곤 고작 밤 몇 톨이 전부입니다. 그러면 그 밤을 어떻게 하면 맛나게 구워 먹을까 고민을 해야지, 이 밤은 못생겼고 저 밤은 벌레 먹었다고 버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형님께서도 일전에 말씀하셨지요. 세상이 어지럽고 강자가 약자를 핍박함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적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요. 지금 생각해보니 그 말씀은 반절만 맞는 듯합니다. 우리가 지금 우리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만 어지러운 세상이 비로소 다스려질 것입니다.지금 저들을 의리로써 설득하지 못했다면, 그 대신 다른 방도로 그 의리를 다할 궁리를 하면 될 일입니다.”

뜬금없는 일장연설이 끝날 무렵, 인간들이 어찌 다투든 신경 쓰지 않는 토요일의 태양은 센 강을 붉게 물들이며 기우는데, 어느새 국립은행 앞에 도달한 최익현이 씩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집을 몇 채 살 생각입니다만, 혹시 형님, 1프랑짜리 동전 가지고 계십니까?”

몽발레리앙 요새는 티에르 방벽의 일부다. 그 자리에 있던 수도원을 밀어내고 요새를 지을 때만 하더라도, 당연히 외적으로부터 파리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 중 하나가 되리라 믿었건만, 일이 이렇게 되어 도리어 파리 침공의 보루로 삼아 이 자리에 서게 되었으니, 아돌프 티에르가 보기에 이런 아이러니도 별로 없을 듯했다.

나른한 일요일 아침이지만, 어제 이곳에 차려진 현장지휘소에는 급히 보르도에서 올라온 대통령 티에르와 총사령관 마크마옹 이하 정부와 군부의 요인들이 죽 늘어서, 전보 한 통을 기다리고 있었다.

“방벽 반대편으로부터의 보고입니다.

‘포앵트뒤주르(Point-du-Jour) 방벽 점령. 오퇴유(Auteuil), 파시(Passy) 방면 진입 성공, 적 접촉 없음.’”

“부관, 계획대로 작전을 속행하라는 명령을 각 부대로 보내도록. 반군과의 접촉 전까지 최대한 도심으로 진입한다.”

마크마옹의 침착한 지시가 내려지고, 그새 참모들은 잽싸게 지도 위의 장기말을 확대된 파리 시 지도 곳곳으로 옮겼다. 사실상 구경꾼인 민간인들은 안도의 탄성으로 그리 넓지 않은 지휘소를 가득 메웠다.

“마침내, 일이 잘 풀리는군.”

“축하드립니다, 각하!”

티에르의 혼잣말에 옆에 다가와 있던 파브르가 성급한 경축의 말을 전했다.

“이것 참, 시작하기도 전에 놈들이 모두 항복해버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군요.”

“그럴 리가 있나. 설령 항복한다고 하더라도 받아줄 생각은 없네. 우리가 새로 세울 공화국에 저 빨갱이들 같은 극단주의자는 필요 없어. 지금 여기서 쏴 죽이든, 형장에서 쏴 죽이든, 하다못해 저기 바다 건너 남태평양 한가운데로 보내버리든 해야겠지. 당장 다보이 대주교도 석방하지 않고 있는 폭도들 아닌가?”

대주교에게는 안 된 일이지만, 차라리 여기서 흥분한 폭도들의 손에 선종하는 것도 프랑스의 국익을 위해서는 나쁘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정부라면 밭고랑 적시는 피 위에 세워지는 것이 어느새 이 나라의 전통이 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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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스타브 클뤼스레는 프랑스인, 그것도 생시르 사관학교 출신의 군인입니다만, 나폴레옹 3세의 쿠데타에 반대하다가 쫓겨납니다. 이후 크림전쟁 시기 잠시 재입대하기는 하지만 그때도 오래 발을 붙이지는 않았고요. 이후 뜬금없이 미국으로 건너가 흑인해방을 위해 북군에 입대하지만, 링컨의 정책이 지나치게 온건하다며 곧 제대합니다.

코뮌 시기에는 군 출신답게 코뮌군의 사령관으로 선출되었지만, 민병대에 가깝던 코뮌군 조직을 중앙집권적 지휘통제를 위해 재편하려다가 코뮌 지도부의 미움을 사게 됩니다. 이후 파면과 재임용을 반복하다가 마침내 베르사유 공격작전 실패와 이시 요새 함락의 책임을 지고 체포됩니다. 공화국군이 파리에 입성할 무렵에야 겨우 방면되었지요.

마찬가지로 야로슬라프 돔브로프스키도 코뮌의 얼마 안 되는 군 경험자였습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폴란드인이고요, 반러시아 봉기에 참여했다가 시베리아로 추방되고, 이후 탈출해 파리로 망명해 왔습니다. 클뤼스레가 면직된 뒤 코뮌군 총사령관직을 승계받았습니다. 그의 최후에 대해서는 다음 화 작가의 말에서 조금 더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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